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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 아침고요

    @g1772740697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7-27 20:47
    삶의 질?
    어떤?
    어떤 기준이거나 평가항목인거야?
    물질?
    접촉?
    육체?
    정신?

    어느 한 부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테고
    어떤 이들과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벌어 생활에 쓰고
    그러면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원하지 않는 힘든 일은 하기 싫다는 의미도 포함되겠지?

    최근... 좀 다쳤다.
    행동에 제약이 많아져 거르는 것들도 생겨났다.
    그러던 중에 어떤 이의 말을 들었다.
    자신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니
    세상에 떠도는 그럴 듯한 표현을 자기의 판단인 양 내뱉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있어 삶의 질은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되는 먹거리와
    씻고, 목마르지 않을 물만 있어도 기본적인 충족이 된다.
    의식주 중
    [의]는 사회생활과 겨울의 추위때문에 완전히 배척하지는 못하겠고
    [주]는 실상 그리 간절하지 않다.

    관계가 더해질수록 필요로 하는 것이 많아진다.
    생물이 아닌 무생물인 경우에도 그렇다.

    삶의 질...이라...??🤔
    만족...이라는 말의 다른 버젼인걸까??
    "큰 불만 없다"는 것이
    삶의 질이 나쁘지 않다는 대답으로 가능한걸까??

    나열하고자 한다면
    긴 메모장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지만
    또한, 단순화시켜 버릴 수도 있는
    용어같다.

    삶의 질!
    나쁘지 않다.
    아예 없지는 않으나 큰 불편은 없다.
    거창한 것이 아니니
    불편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가능하기도 하고 가능할 듯도 싶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

    고로,
    삶의 질이 어떠한가에 대한 질의를 대한다면
    나쁘지 않아... 일 것이고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할테고
    그 이후 곧바로
    "너는?"이라
    되묻게 될 것이다.
    과연 세세히 답할 수 있을까?

    비교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마음에 한정된 속박의 용어이다.
    "삶의 질"이라는 말은.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7-12 23:33
    큰 비가 내리면
    냇가의 어귀나
    산책길에 있는 낮은 다리에는 떠내려온 초목들이 그득하다.
    거센 바람이 불었던 다음 날에는
    쓰러져 길을 막는 나무가 있다.

    더 많은 빛을 받기 위해
    다른 풀, 다른 나무보다 더 위로 넓게 자라고자 했던 생존열망이
    정작, 영양분과 수분의 공급을 위한 뿌리 뻗기였을 뿐
    제 한 몸 가눌 생태를 소홀히 한 결과다.
    한순간의 고난에 생명 자체를 앗기는 것이다.
    거름과 비료가 과하면 도리어 재해에 취약한 농작물들을 보며 자랐다.


    인간이라고 별다를까?
    기본도 안되는 것들이
    위로 향하고자 불쌍하고 더러운 성장만 꾀한다.
    부모라는 것들은 그걸 부추기고.

    인간세상,
    대부분은... 참...
    정이 안간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6-19 21:47
    숨막힌다는...
    답답하다는...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언제였는지...
    그 사람의 질문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다.
    답은 기억한다.
    "물 마실 때...요"

    자세가 삐뚤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물 마실 때 숨이 터억 막히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 때의 상황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억지스럽다.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포항이 집이시라던 그 사람은
    당시에 내가 안고가던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을 테니 이상한 답변으로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다.
    공기는
    그렇다.
    당혹스럽고 이해의 범주밖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생을 마쳐도 괜찮을 듯한 자각을 주었다.
    들숨 날숨을 길게 하고자 하던 순간에도 찾아들곤 하던 자각이다.

    반면,
    물은 그렇지 않다.
    지구 질량에서 미미한 존재인 물은
    표면적으로는 7/10인 정도라고... 어설프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삶을 지나가다 보면
    물이라는 요소가 인체와 갈망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절감하곤 한다.

    숨이 막혀 사망에 이르는 시간은
    수분부족에 의한 사망보다는 월등히 짧다. 공기는 생존의 절대요소인 것이다.
    물은?
    물도 역시 그렇다.
    다만, 짖궂다.
    시효를 시시각각 느끼게 하면서 애태우는 심술꾸러기다.
    3일이상 물을 마시지 않으면,
    호흡을 통한 방식이 아닌 모든 통로를 차단한다면,
    이상하다 싶은 경험을 하게 된다. 사막에서의 오아시스 환각과는 다른 경험이다. 수분의 부족으로 인해 전해질의 유동이 느려지거나 제한적이어서일 수도 있다.
    기억상,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광경과
    과연 이게 내 생각인가?? 싶은 사념과 혼란이 에워싼다.
    그리고선 걷잡을 수 없는 갈증이 덮쳐온다.
    실재로 싯다르따가 고행을 거쳐 부처의 등급에 올랐다면 반얀트리가 제공하는 수분이외의 섭취는 없어서였지 않았을까....하는
    막...나가는 생각도 했었다.

    드라큐라를 이해한다. 갈증을 풀 그 어떠한 방법이나 수단이라도 실행하게 되리라는 측면에서는. 인내, 자제를 팽개치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행태라고 본다.

    수분은...
    물은...
    그렇다.
    이루고 싶고
    이르러 닿고 싶고
    내내 어우러지고 싶은 갈증에는
    늘... 물이 연상된다.
    공기가 아닌 까닭은
    조금이라도 여지의 시간을 바라는 욕심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은 물이다.
    나는
    사흘 넘게
    혀를 적시는 그 어떤 것도 만나지 못했다.
    갈증이 혈관을 타들어가도록 조이고
    눈앞에도 정신에도
    환각마냥 갈증어린 욕망들이 난무한다.

    어쩔 수 없다.
    나를 다독이는 방법으로는.
    응급처치로 조금이나마 연명을 해야 한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 외의 처치는 없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6-07 22:58
    어린 시절의 관성일거다.
    익숙한 야생의 열매들을 보면 따서 입으로 넣는 일련의 행동은.

    어쩌다
    노린재의 알을 깨뜨린 맛을 느끼면
    "으~"하며 뱉어내게 된다.
    그 중 몇 번인가는
    '죽기밖에 더하겠어?'라는 각오(?)로 마저 으적이게 된다.

    사람을 대할 때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절대로 먼저 입으로 넣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못믿겠으니까... 안믿으니까...

    믿는,
    믿어지는 이들이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6-03 22:34
    청하면
    주저하지 않고 독설을
    이쁘든 그렇지 않든 냉큼 선물할 수 있다.

    생의 한 단면을 비평해보라며 건의하면
    그 성의가 괘씸하여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고
    너덜거리게 해 줄 수 있다.
    전제는,
    보여지는만큼에 더한 일관성이냐 아니냐가 될 것이다.
    보다 더 너덜거리고 싶다거나 항변을 하고싶다면
    동행과도 같은 이력을 앞세워도 좋다.
    그마저도 동거동락에 비하면 제한적인 요소일테지만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정도로도 감사하다.

    청해보라.
    사적인 코멘트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너덜거리게 해 드릴 수 있다.
    관종들은 청하는 시점에서 이미 본인이 깨닫고 있겠지만 그도 못하는 멍청한 것들도 있을테니까...
    권... 한다.
    까짓 타인의 평가일 뿐이라고 하급 치부해버리면
    흥미로운 순간이 될 뿐이다.
    세이경청할 필요가 있나?
    손 탁탁 털듯 마믐을 털면 된다.
    용기를 내라.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5-05 20:46
    지금은 덜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속구 좌완투수라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라는 야구속설이 있었다.
    왜일까?
    그만큼 흔하지 않다는 것과
    그래서 타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안타의 확룰이 낮다는?
    야구는 확률과 통계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스포츠.

    인생을 회고할 때
    선택과 판단과 결정의 적절성을 가늠할 때면 들곤 하던 생각이다.

    "나는 과연
    '좌완강속구 파'... 였는가??"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5-01 21:05
    개인의 정보 취득에 걸쳐 있다 보면
    만화의 한숨표현 스케치가 필요할 때가 많다.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살지 않았던 머~언 과거는 아량껏 눈 감아 보려 해도
    지근거리의 인생이 엉망인 것들이
    타인을 향해서
    대중을 향해서 정도의 설파를 하고 글을 짓고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한다.
    어느 정도의 뻔뻔함이면
    어느 정도의 자기용인이면 그런 짓거리들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것은
    실상을 모르는 타인이거나 대중들의 반응이다.

    쉽게 열광하지 말아달라. 제!발!
    너희같은 것들 때문에
    거짓의 스토리들이 세상을 휩쓸고
    니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그걸로써 하찮은 것들이
    으스대며 금전만능주의의 세태를 퍼트린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4-28 20:06
    아마도...
    전역 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의 어디쯤엔가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영화광고판을 보았었다.
    영화는 본 적이 없고, 책으로 읽었으나 줄거리는 흐릿하다.
    할렘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연이어 자연스레 겹쳐지는 그 곳이 뉴욕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지역도 사람도 소설도 영화도 아니다.
    하나의 연주곡이 이끌 뿐이다.
    Mark Knopfler의 A Love idea.
    어느 분이 엔딩곡으로 사용하던 그 곡은 그 시절에 발생했거나 존재했었던 많은 기억들을 소환시킨다.
    글쎄!!
    그다지 유쾌한 소환은 아니지만 잊혀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기억들이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3-31 22:44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저는....
    지금입니다.
    선배들 방, 페이지가 넘겨지지 않았다.

    둘이 서로 낮은 손뼉치기를 하던 장면.
    싫으면서도 믿을 수 있고
    영광을 함께 나누고픈 동료.
    그 장면은 뭉클했다.
    작가를 잘 모르지만 그 두 장면덕분에 고마웠다.

    댓글 0

  • 14
    아침고요 (@g1772740697)
    2026-03-31 11:53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테니까."

    생테그쥐페리? Saint-Exupéry.
    그를 잘 모른다. 아니, 거~~~의 모른다.
    조종사였다는 것은 책 표지 안쪽의 작가 약력에 나와 있었으니 알았고
    금수저답게 젊은 시절을 보냈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그렇지만 내게는 '어린왕자의 작가'라는 대표성으로 그만이었다.
    혹성 B 뭐라는 곳의 어린 왕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닐스의 모험에서 닐스보다 거위를 더 좋아했었던
    아마도 그 쟝르일거다.
    그 소설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삽화와 바오밥 나무와 장미와 여우' 때문이다. 쏟은 시간이라는 의미도.
    어쩌면 그건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먹는 것과 날으는 것의 가치 중 어느 것에 더 마음을 뺏기느냐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비해 어려웠던 책을 선물받았었다. 열 넷.
    미슬 선생님이셨고 키가 크셨고 멋쟁이셨다. 할머니와 홀어머니 남동생이 있는 집안의 맏딸이셨다.
    다른 분들께 받은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여러가지 것들도 인생내내 나칭반 역할을 했지만 그 분의 선물은 더욱 많은 사색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갈매기의 꿈]과 [예언자]였다.
    얇은 그 두 권의 책을 오래도록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거절이다.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관념은 결국 내 꺼가 아닌 거다. 그리고 그 관념은 개개인마다의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왜 이 책이었을까? 왜 나였을까? 선생님의 감상은 어떤 걸까?
    30대 초반쯤 찾아뵈었을 때 여쭤볼까 하다가 그런 생각을 접었다. 내 자신도 명확하지 않은 관념에 대한 질문은 결례여서이다. 아마도 여쭤 볼 기회가 더는 없을 듯...하다.
    떠들어 댈 수는 있을지라도
    스스로... 그 책들에 대한 정돈된 굳센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할 테니까.


    [어린 왕자]소설은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첫만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워낙 유명해서 어디에서든 봤겠지... 생각하고 있다.

    어린 왕자의 소설 속에서 가장 공감하고 오래 남는 대사는 주로 여우의 몫이었다.
    20대 때는
    '길들여진다'라는 말에 꽂혔었다.
    후배들에게
    인연의 설레임이라거나 귀함을 예로 들 때 써먹기도 했었다. 덕분에 어이없게도 인생상담 요청이 많았지만 청춘이 청춘이니만큼 그러려니 했었다. 그럼에도 홀로 휘청이던, 목동이 집이었던 쪼맨한 애의 방황을 다독여주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후배들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길들였으면 책임을 져...라는 가치관이 두터워진 시기를 이끌었다.

    30대 후반에 다다를 즈음,
    '기다림'이라는 말로 화두를 삼았던 적이 있다.
    기다렸다. 시기와 대상과 움틈을.
    현실에서든 마음에서든 기억에서든 기다림에 대해 벅찬 환희를 선사하는 이들은 안타깝게도....한 손의 다섯손가락이 마저 꼽아지지가 않는다. 제기랄! 이 지랄맞은 인생. 뜻과 도래와 인간의 맺음이 일사천리가 아니다. (__);;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어디에서든 만나고 싶지 않다.
    섣부른 조언이 될까봐 겁나고
    조언의 효용성이 개차반일까봐 창피하다.
    그래도...
    여러 구절들은 간직하겠다.
    장미에 대한 어린 왕자의 태도와 마음,
    각 혹성들에서 만난 이들이 풀어놓던 말들,
    어린 왕자의 심정,
    여우의 말...들.

    의도대로 되지 않는 인생일지라도
    되도록이면
    심정을 앗아가는 가치관들에게마저 등돌리지는 않겠다.
    그것이 곧
    얼마만큼인지 모를 남은 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 믿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표현되어진 가치관과 함께
    길들임도 기다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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