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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HEART🎼

네가 태어났을 때는 모두가 웃고 너만 울었지만 네가 죽을 때는 모두가 울고 너만 웃는 그런 인생을 살아라. - 故김수환 추기경-
  • 49
  • 리슨투마헛빗

    𝓛ion𝓗eart🎼(@jenefsis83)

  • 77
    ς੭엘피。 (@llllllp)
    2025-10-05 12:08


    💕풍성하고 행복만 가득한 한가위 하셔요~
    늘 행복 가득 하시고 바라는일 모두 이루셔요~💕
    ╭┈┈τнänκ чöü♥(👍🏻 ˃ ᴗ ˂ )👍🏻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9-21 10:45


    비행기가 이륙하면 좌석에 있는 분들의 모습을 봅니다. 고단한 분은 잠을 청합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좋은 선택입니다. 지루한 분은 앞에 놓인 모니터에서 영화를 검색합니다. 장거리 여행에 ‘영화’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좋은 선택입니다. 애주가는 와인을 청합니다. 적당한 음주는 기분 좋게 합니다. 인생의 맛과 멋을 아는 선택입니다. 생각이 깊은 분은 책을 읽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30년의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삶의 지혜를 배우는 탁월한 선택입니다. 일을 좋아하는 분은 노트북을 꺼내서 작업합니다. 거래처의 메일을 검색하기도 하고, 문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성공을 위한 선택입니다. 요즘은 항공사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항공사의 마일리지를 사용하면 빠른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피곤하면 잠을 청하지만 대게는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3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이면 강론 준비하는 데 적합한 시간입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강론이 마무리되고 공항에 도착하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기분 좋게 친구를 만나고, 여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간 비행기 안에 있지만 선택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하느님 나라로 가는 비행기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정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 자갈밭에 떨어진 씨, 가시밭에 떨어진 씨, 좋은 땅에 떨어진 씨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고통 앞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삶의 지침이 되고, 등대가 되어 열매 맺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열매 맺는 겸손의 3단계를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사람입니다. 성사 생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물론 양심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나눔과 희생 그리고 겸손과 헌신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양심의 소리는 물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도 택하고, 건강보다 질병도 택하고, 장수보다 단명까지도 택하는 사람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군대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전투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그 죄를 물으면 군대가 존립하기 어렵습니다. 승리와 패배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경계를 소홀히 해서 부대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합니다. 모든 부대는 불침번과 초소 경계병을 운영합니다. 불침번과 초소 경계병이 있기에 다른 부대원들이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깨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열매 맺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의를 생각하는 것이고, 특히 하느님의 뜻과 의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의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영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우들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 A.D. 2025년 8월 27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조재형 신부 묵상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9-19 03:36




    처음으로 인보이스에서 인라이브가 추천하는 목소리 명단에 올랐네요!

    신기하고 감사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열심히 불러 올리겠습니다 :)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8-11 08:29


    인간이 창조되어 이 세상에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 등을 다루는 성경 말씀...

    나름 오랜 시간 기도하고 묵상하며 성경을 통독하던 어느 날, 마태오 복음서 4장 4절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 4,4)

    .
    .

    사람은 배부르면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야 행복할 수 있다.

    그 의미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 성경에서 전체적으로 계속 말씀하고 계신 바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삶의 이유나 의미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8-10 09:02


    아는 사람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대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나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맞다.
    나는 행복하다. 젊은 시절보다 고희를 훌쩍 넘긴 지금이 더!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평화와 기쁨이라는 두 기둥이 버텨 줄 때라야 행복하다. 그
    러기에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쁘게 살려고 노력한다.

    첫째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 사항을 훈련해 왔다.

    우선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 그때마다 나는 잠시 어둠 속에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바꾼다.
    하느님이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잘 해결해 주시겠지.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드린다.
    그래도 안 될 때는 묵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인근 공원길을 한 바퀴 돌며 성모님께 전구를 청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평화가 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며 “이 고비만 잘 넘기면 틀림없이 더 좋은 일을 주실 거야” 하고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곤 한다.

    다음은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가능한 한 미운 사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가 미워지면 내 마음의 평화가 깨진다. 더구나 미운 사람은 대체로 가까이 있게 마련. 그를 자꾸 만나게 되면 괴롭다. 그래서 그가 한 미운 짓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래서 그랬겠지… 저래서 그랬겠지… 하다 보면 미운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연민이 일면서 그가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지금 나에게 미운 사람은 없다. 훈련의 결과다.

    둘째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도 기쁘게 살고, 남도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나로 하여 남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내가 더 기뻐지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기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을 때,
    유익한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 갈 때, 공기 맑은 숲길을 혼자 산책할 때, 마음 통하는 친구랑 여행을 하고 피정을 할 때,
    좋은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동한다. 감동을 할 때면 엔돌핀보다 강한 긍정 호르몬 다이돌핀이 나온다지 않는가. 독서를 하다가,
    티브이를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거나 듣다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가,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민들레를 보다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가슴 뛰었던 어린 시절처럼, 지금도 걸핏하면 감동의 순간을 즐긴다.

    또 모든 일에 감사한다. 특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남이 가진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멋져 보이기는 해도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좋다. 설령 그들이 그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내가 간수하기엔 버거울 것임을 알기에 주어진 내 것에 감사하며 만족한다.

    특히 요즈음은, 내가 공들여 쓴 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독자들이 전화나 메일로 보내오는 찬사에 감사하며 더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다음으로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표정은 밝게’ ‘생각은 깊게’ ‘말씨는 곱게’를 훈련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밝게 웃으며 반갑게 대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면 언어에 신경을 쓴다. 혹여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될까
    조심하며 기쁨의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칭찬의 말, 격려의 말, 축복의 말 한마디에 그가 활짝 생기를 얻는 것을 보면 내가 기뻐진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사심 없이 문자 메시지를 넣거나 전화 또는 메일로 축하해 준다.
    내 축하를 받고 기뻐하는 그가 또한 나를 기쁘게 하므로.

    남의 부탁을 받으면 어지간해서는 거절하지 않는다. 소소한 것에서는 물론이고, 좀 무리하다 싶은 일, 예컨대 분당 성요한성당
    요한대학 말씀 봉사자로 불림을 받았을 때도 받아들였었다. 또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자진해서 나서기도 한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내어놓으면서 그를 도와 보려고 노력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함을 알기에.

    나의 행복 비법은 결국 다음 말씀의 실천이 아닌가 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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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8-09 08:44


    ‘동원 체제와 동행 체제’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체제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는지 묵상하면서 강의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런 관점에서 ‘동원 체제’와 ‘동행 체제’라는 사회 구조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함께 알아 보고자 합니다. 동원 체제는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사람들을 위에서 아래로 끌고 가는 체제입니다. 명령이 있고, 복종이 있습니다. 사람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과거 유대 사회에서도 존재했습니다. 제사장, 율법 학자,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도구로 백성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죄인은 배제되어야 할 존재였습니다. 교회의 구조도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교황, 주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 구조가 있었습니다. 이런 동원 체제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의 철학적 성찰로 동행 체제로 변화되었습니다. 신분과 세습으로 권력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선출된 권력이 국민을 위해 권한을 행사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이미 동행 체제를 보여 주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동행 체제는 함께 걷는 체제입니다. 사람을 존엄한 주체로 여기고, 결정에 함께 참여하게 하며, 길 위에서 서로 배우고 나누는 공동체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동행 체제의 방식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지 않고 함께 식탁에 앉으시고, 함께 걸으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 말씀은 강제 명령이 아니라, 초대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동행 체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은 사람을 동원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이었습니다. 세리와 병자, 죄인들과 함께 밥을 드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셨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위에서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으며 열리는 길 위의 나라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구조를 쇄신하려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교회는 소공동체로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였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동원 체제의 교회에서 동행 체제의 교회로 방향을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이었고, 초대교회 공동체가 함께 했던 길이었습니다. 서울 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라는 방향을 정하였고, 1990년부터 동원 체제 교회의 틀에서 동행 체제의 교회로 변화를 모색하였습니다. ‘지역, 말씀, 실천, 본당과의 연결’이라는 소공동체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복음 나누기 7단계를 시작하였습니다. 교우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말씀을, 공동체를 통해서 실천하려 하였습니다. 친교와 나눔이 공동체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께 이렇게 탄식합니다. “제가 이 백성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어찌하여 저에게 그들을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까?” 모세는 백성을 동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무게에 눌려 울부짖으며, 하느님께 함께 길을 찾자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 개.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함께 내어놓을 때,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사목과 공동체는 어떤 체제에 있을까요? 신자들을 동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동행하고 있습니까? 사목자는 지휘자입니까? 아니면 벗이자 동반자입니까?



    오늘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살아간 이 사제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명석하지 않았고, 설교도 간결했으며,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매일 고해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눴습니다. 신부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 역시 ‘동원’이 아닌 ‘동행’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하느님을 향한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신부님이 진정한 사목자요 목자라 불리는 이유는, 교우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교우들 곁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성 비안네 신부님처럼, 함께 걷고, 함께 나누며, 함께 우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그 길 위에서 열립니다. 동원하지 말고, 동행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요청에 우리가 기쁨으로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조재형 신부 묵상 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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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8-02 21:16


    살다 보면 누구나 문제를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피하고, 어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재미있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하지 못하거나. 그런데 또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아예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로 하는 겁니다.
    그럴 경우는 결과가 하나입니다.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도 선택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만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막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사막이라는 장벽 앞에서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타조알을 비워 그 안에 물을 담고, 그것을 사막에 묻으며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사막을 건넜고,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유다 지방을 넘어서 이방의 세계로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신처럼 될 수 있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 믿음으로 그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진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길을 따라 로마가 길을 닦았고, 그 길을 따라 교회는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본당도 3년 전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교우는 많은데 보좌 신부가 없었습니다. 영어 미사는 손님 신부님께 부탁했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대교구와 달라스 교구가 협의해
    보좌 신부님을 파견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 본당에는 부주임 신부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이후로 영어 미사는 물론이고, 주일학교와 청년 모임도 활발해졌습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곱은 하느님과 씨름합니다. 밤새워 씨름합니다.
    야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하느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씨름했던 사람에게 하느님은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주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말도 전해집니다.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면 부처라도 버려야 한다.”
    그것은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에게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문제가 어렵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청하고, 함께 움직이면 하느님께서 길을 여십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이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그대로 남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문제를 회피하지도 마십시오. 문제와 씨름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맡기면,
    하느님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마주한 사막 앞에서 타조알 하나라도 들고 한 발짝 내딛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 여정의 끝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

    -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조재형 신부 묵상 글 -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8-02 19:50


    나는 있습니다.

    "나는 있는 나다."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탈출 3,14)
    '있는 나' ...하느님의 이름이며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면 우리도
    ‘있는 나'입니다.

    나는 있습니다. 나는 있고, 나는 존재하고,
    나는 숨을 쉬고,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나는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더 필요한건 없습니다.

    나는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형성합니다.
    여자와 남자, 젊은이와 늙은이,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나는 있습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느끼십시오. 그리고 축하하십시오!

    (보혈선교수녀회 - 울리케 디크만 수녀님 글에서 일부)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7-16 04:37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17-21)

    댓글 0

  • 49
    𝓛ion𝓗eart🎼 (@jenefsis83)
    2025-04-14 19:08




    A remarkably authentic looking Jesus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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