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i aber Ein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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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chrkfkd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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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 (@chrkfkd61)2025-09-05 12:23
김진사의 애인
1
김 진사 초시(初詩)에 합격하고
사랑 때문에 대과(大科)를 버렸다
서울의 신 판관(申判官) 따님 놓칠세라
어린 소녀 손잡고 우도까지 왔으니
그 앳된 소녀 물도 없고 절도 없는
허허벌판 우도 풀밭으로 끌려왔으니
저 창백한 달과 함께 얼마나 울었을까
지금 서울 여자도 오기 어려운 길
냉장고도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허영된 서울 여자들 우도에 한번 와보고는
"우리 우도에 가 살까" 하지만
양반집 규수 서울에서 우도까지
부모들은 얼마나 말렸을까
생각하면 아찔한 낭만
그런데 지금 여자들 펄펄 나네
아까 따라오던 호랑나비처럼 펄펄 나네.
2
진사김공석린유애비(進士金公錫麟遺愛碑)가
충혼탑 뒤 돌담에서 입다물고 서 있다
모르는 이는 그저 허리 잘린 비석이거니 하겠지만
알고 보면 이건 기막힌 사연
허리 잘린 옛 비석은 오른쪽에 있고
허리 성한 비석은 왼쪽 지붕 안에 있다.
김 진사와 황무지와 1844년
그 이전은 국유목장 말만 200마리
살아서 바라보던 종달리 지미봉을
지금은 비석이 되어 바라보고 있다.
소나무 몇 그루 시야를 가리고
고추 잠자리도 그때처럼 태연하다
잔디밭에 보리가 그때처럼 널려 있다
150년 전 그가 개간한 보리밭에
얽은 비석을 맴돌다 김 진사 귀에 대고
"서울서 데려온 여자는?" 하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없다.
3
그래 이해해 주마
걸핏하면 우도로 달려오는 나를 봐서
김 진사가 서울 색시 데리고 예까지 온 것을 이해해 주마
우도 등대로 가다가 솔밭에 앉아
일출봉을 바라보며 바람에 날리는 흰머리
김 진사도 여기 앉아 그렇게 날렸을 거다
사랑은 긍정이지 부정이 아니니까
산천은 변해도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고
야, 대단해 김 진사의 사랑 행각은 현대판이야
그때 그라고 시를 쓰지 않았을까
초시에 급제하고 복시를 남겨둔 마당에
시가 모자라서 대과를 포기했을까
어디 그때 그 연가를 읽어볼까
우도란 제주도 동쪽 물 건너 외딴섬
말똥 냄새 그득한 쇠머리 언덕
그곳밖엔 사랑이 안전할 수 없으니
보리밥에 마늘짠지 담가 놓고 산다 해도
너만 있으면...
사랑은 서로 고통을 나누는 거
사랑은 서로 미치는 거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없는 거
사랑은 사랑 이외의 것을 버리는 거
대과야 뭐 대과
내가 우도로 가는 것은
진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 가는 거요
어서 일어나 우도로 갑시다
이 보따리 머리에 이고
황진이로 갑시다
그래야 달을 봐도 서럽지 않고
별을 봐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
백 년 이백 년 후엔
누군가 시 쓴다고
이섬에 올 거요
그 사람 오기 전에 미리 갑시다.
「김진사의 애인 / 이생진」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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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 (@chrkfkd61)2025-08-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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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학년 1반 13번」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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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 (@chrkfkd61)2025-08-25 16:02
바닷가 우체국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이아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은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 보 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 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 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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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 (@chrkfkd61)2025-07-31 16:08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스텅스 블루」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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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터 (@chrkfkd61)2025-06-03 12:20
풍경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풍경달다 / 정호승」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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