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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은결사랑II님의 로그 입니다.

그리운사람에겐 그립다말하고 보고픈 사람에겐 보고싶다말하고 사랑하는사람 에겐 사랑한다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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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I은결사랑II(@ruf08)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6




    공자천주 孔 子 穿 珠
    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것이 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말로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있었던 일화에서 유래됐으며 '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어느날 공자는 지인에게 진기한 구슬 하나를 얻었다. 희안하게도 구슬에는 아홉 개의 구비가 있었다.
    이로 인해 공자는 아무리 구슬 구멍에 실을 꿰려고 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공자는 바느질하는 아낙이라면 '문제 해결방법을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뽕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낙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야기를 들은 아낙은 공자에게 "꿀을 쓰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낙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공자는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공자는 개미 허리에 실을 묶어 구슬의 한쪽 구멍에 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아낙에게 얻은 아이디어를 살려 꿀을 발라 놓았다.
    잠시 후, 꿀 냄새를 맡은 개미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더니 반대편 구멍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일화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배우는 일에 있어 나이나 신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논어(論語)의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루 하루 배움에 있어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지식을 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펌 -

    댓글 0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5




    여도지죄 餘 桃 之 罪
    중국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잘생긴 미소년이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모친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몰래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타고 나갔다.
    당시 위나라에서는 왕의 허가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두 다리가 잘리는 형벌이 존재했다.
    하지만 위왕은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느라 발목이 잘린다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으니,
    미자하가 얼마나 효자냐?”라며 그의 죄를 묻지 않았다.
    한번은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달다’며 반쯤 남긴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위왕은 “나를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맛이 아주 좋다고 ‘자기가 먹던 복숭아도 과인에게 줄’ 정도이니”라며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미자하의 미색도 빛을 잃기 시작했고 왕의 총애도 덩달아 식었다.
    어느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자 위왕은
     “저놈은 원래 성질이 좋지 못한 놈이다. 한번은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탔고, 언젠가는 먹던 복숭아를 감히 나더러 먹으라고 했다.
    저 무례한 놈을 당장 끌어내다 목을 베어라!”고 말했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먹고 남은 복숭아의 죄’ 즉 여도지죄 [餘桃之罪]라 부른다.
    지나친 총애가 도리어 큰 죄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한 것을 가리킬 때 쓰인다.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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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4




    사랑엔 절정이란것이 없다고 봅니다.
    정말로 최고조가 지나고 나면 정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무조건 잘해주고 이해해주고 싸우더라도 잘 넘어가고
    잡으면 받아주고 .. 가끔 선물도 하고 ..스킨쉽하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수 있는 아주 가식적인 부분일 가능성이 있죠 ..
    그러나  이런 부분이 정말 가식이라도 여러번 걸쳐 지나가면서
    서로간에 깊은 애정적 유대감이 생긴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제껏 살면서 많은 나날들을 보냈지만 사랑이란것을 함부로 규명할수 없으면서도
    적어도 그런 감정이생겨날수 있는 소소한 부분들이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나와서 살면서 나에게 내가 바라는 상대가  다가와 좋다라고 말해주는 그런 상황이나상태는
    정말로 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소중하다고 말이죠..
     적어도 그런 좋은 사람이라면 놓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몹시 의심스러운 그런 나날을 보낸다면 우린 이런 시점을 권태기라고 말하기 쉽지만
    아무리 불타오르는 그런 커플 일찌라도 가끔은 휴식을 가지고 재충전을 해야 하는 그런 때가 필요합니다.
    물론 상대가 님에게 잘해주는 그런 소중한 부분 함부로 치부하는 그런 잘못된 일 없이 말이죠 ...
    충전을 해서 다시 애정이라는 그런 관계적인 면에서 추진력을 내야 할것 같습니다. 
    흔히 서로간의마음이 소원해 지면 ... 이벤트로 막음하려는 그런 부분이 많습니다. 
    이처럼 남들에게 조언을 구한다거나 혹은 하루종일 또는 2-3일 정도는
    가까운 미래를 위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다만 좋은 사람을 놓치는 그런 짓을 범하지 말기 위해서
    상대에게 진정으로진지하게 생각을 정리 해야 할 시간을 요청을 하거나헤어짐을 고려하기보다 
     어떻하면 현재의 어떤 관계를 더욱더 발전시킬지에 대해 상대분과 깊은 대화를 나누셔도 좋습니다.

    생각하시기에 정말로 마지막 사랑이라면 앞으로는 마치 처음 모든것이 시작되던 그때인것 처럼
    항상 새로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꼭 필요 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그것을 새삼 느끼며 앞으로 몇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간동안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는것이죠 ... 
     자꾸 자꾸 안좋은 상황만 겪게되면 상대도 님과 비슷한 그런 생각을 가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과민하게 하실 필요또한자연스럽게 줄여 보시길 빕니다.
    너무 잦은 헤어짐의 연습 그리고 소소한 다툼을 줄이는 그런 형태의연애가 필요 하다라고 생각됩니다.
    늦었지만 짧은 연애의 식견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집고 넘어 가시길 빕니다.

    상대의 첫모습 그리고 첫 느낌 그것이 무뎌지면 무뎌질수록 관계는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계기를 만들기보단 오히려 처음 만난 장소에 가보는것이 효과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런 곳만가도 그때의 감정으로 몰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려고 하셔야 하고 아주가끔은 이해를 바탕으로 싸울일을 마무리 하셔야 합니다.
     지금 어쩜 상대분도 자신이 재대로 된선택을한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을수 있습니다.
    이런때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어떤어떤 점이 좋더라"
    " 누구보다도 우리정말 좋은 사이 인것 같애 " , " 내가 어떻게 해주면 너가 즐거워 질수 있을까",,,,,등등등
    같은 좋은 표현만 하시길 빕니다.  사랑의 말이 씨가되어 사랑의 감정이라는 나무가 자랄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의 물과 양분을 주는 것이지요. 이런게 필요한 상태인것 같습니다.
    아마 상대도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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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2




    1890년 다코다에서 사생을 건 인디언과 백인의 치열한 전투 

     어느 날 인터넷 웹사이트를 서핑 하다가 나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독립 200주년기념일에 최초로 공개된 1,855년 미국 제14대 대통령 프랭크린 피어 슨 에게 수꾸아미 족(Suquami)의 인디언추장 시애틀이 보낸 편지의 답신 내용과 오늘날 그 추장의 이름을 따서 시애틀 시로 부르게 된 연유였습니다.
    시애틀 시는 미국 서부 최북단 캐나다와 국경을 마주한 와신톤주의 해변도시이며 여러분도 잘 아시는 미국 최대의 갑부 빌리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그의 대저택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맨 처음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북부지방에 정착한 백인들은 점차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서부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인디언을 몰라내기 위해 치열하고 무자비한 전쟁을 감행하게 됩니다. 원주민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최신무기와 조직적인 전술에 패하여 점차 서부의 맨 끝자락인 태평양 연안 지역까지 몰리게 됩니다. 이제는 더 밀려 갈 곳도 없고 간다면 바다밖에 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 지역에 몰린 수꾸아미족의 추장 시애틀에게 프랭크린 피어슨 미대통령은 마직막 남은 그 땅을 빼앗기보다 평화적으로 살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 때 추장 시애틀이 피어슨 대통령에게 회신한 편지 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부터 빌려 온 것이며 하늘과 땅 그리고 신선한 공기 반짝이는 물은 우리 소유가 아닐 찐데 어찌 사고 팔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팔지 않으면 총으로 강제로 뺐을 것이 분명 합니다. 백인들이 이 땅을 빼았아가면 그 땅은 도시가 되어 황량하게되고 노래하는 온갖 벌래소리, 새소리도 살라지고 숲은 황폐해져 짐승들도 살라지게 됩니다.산림의 향기 나는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없게 됩니다. 이 땅을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모독입니다. 백인들이 알게 될 한가지 사실을 우리는 지금 알고 있습니다. 당신네들의 신과 우리의 신은 같은 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은 모든 인간들의 신이며 백인들 만 독점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마지막 인디언들이 살아지고 오직 광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이 남도라도 이 해변과 숲은 여전히 우리 백성들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백인들도 역시 소멸할 것입니다. 아마 다른 종족 보다 먼저 사라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당신들에게 팔기로 한다면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우리가 보살피듯이 보살피며 그 땅에 대한 기억을 지금 모습대로 간직하십시오. 신에게 대지는 소중한 것입니다. 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감동한 피어 슨 대통령은 그 땅을 사서 수꾸아미족의 마지막 추장을 기념하기 위해 그 추장의 이름을 따서 그 도시의 이름을 시애틀 시로 명명하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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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1




    자본주의 사회의 혈액(순환)이라면 곧 화폐의 바람직한 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이 화폐가치,즉 돈은 지금까지 우리가 소중히 추구해 왔던 사랑, 용기,
    명예등의 질적 가치를 양적 추상물로 떨어뜨리는 경향¹을 보이고 있다.

    어느 덧 화폐의 본질이 인간을 지배 하게되고, 인간은 화폐를 숭배하게 되었
    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외란 돈이 없는 무산자계급 에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부
    유하고 풍요로운 자 마저도 돈에 종속되기는 마찬 가지 인 듯 하다.

    부를 가진 사람이 가질수 있는 행운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아니라 그
    것을 잘 쓰는데 있다²

    그러므로 그것을 잘쓰지 못하고 쌍아 놓기만을 한다면,  가난한 자 보다 오히
    려 부유하고 풍요로운 자가 더욱 돈에 소외된 자 일지도 모른다.


    ¹ 마르크스/독일 이데올로기
    ² 세르반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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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10




    글 / 정해각 

     어느 날 나는 아내와 같이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다가 문득 아내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여러 동물이 지닌 본성을 모조리 두루 가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심코 그러니까 만물의 영장류지! 말해 놓고 생각해 보니 새삼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수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포악한 사람, 음흉하고 잔인한 하이네 같은 사람, 여우와 같이 교활하고 비굴한 사람, 소와 같이 강인하고 우직한 사람, 늑대와 같이 협동과 복종이 강한 사람, 양과 같이 온순하고 다정 다감한 사람, 개와 같이 충직한 사람, 뻐꾸기같이 이기적이면서 사술에 능한 사람, 이렇게 나열해 보니 인간이란 온갖 동물들이 지닌 본성을 두루 갖춘 최 정점에 위치한 전 횡적인 지적 생명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동물이 가진 본성은 단지 본능적인 종족번식과 생존의 수단인데 반하여 인간이 가진 본성은 성장 발전하는 지식수준에 결부된 복잡다단한 수단과 방법으로 변절 되 가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인간은 참으로 천지조화의 걸작품이다. 이성은 숭고하고 능력은 무한하며 그 다정한 자태와 감탄할 만한 움직임, 천사 같은 행동과 신과 같은 지혜, 인간은 세상의 꽃이요 만물의 영장이로다"라고 극찬 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지혜란 선악과와 같아서 선과 악의 양면성을 공유하고 있어 이를 이용하는 본성에 따라 가치의 척도가 다르게 평가 될 것이며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올바르게 작용하고 행동할 때 이러한 찬사를 듣기에 합당할지 모르지만 단지 동물과 같이 맹목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인간이기 이전에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정보화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보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이 신지식은 새로운 부를 창출한다고 합니다. 정보화시대에서 국가의 자원은 천연자원에서 정보로 그 자리를 내 주게 될 것이며 개인의 부도 지금의 현금과 부동산에서 지식으로 그 순위 내어 줄 날이 멀지 않다고 석학 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이 이 신 지식이라는 선악과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태초에 하나님의 명을 어겨 먹었던 선악과 이상의 파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 예견됩니다. "정보화 시대 이 세상의 구원의 빛인가 어둠의 묵시록인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은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얼룩진 인간의 본성을 본래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구원받기 어렵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 들여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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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유정 (@tjsdlswkd1)
    2015-11-30 07:09




    지식과 정보가 중시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또 다른 폐해가 있다면, 너무 많
    은  정보가 또 다른 혼란을 야기 시킨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을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심지어 그것이 존재한다
    는 사실이나 그 정보의 가치 조차도 부인하려 든다. 그리고 협소하게 규정된
    특별사항 만으로 후퇴¹함으로써 더 좁은 시각에서 정보를 판단함으로써 여러
    자료에 의한 다양한 정보의 시각을 스스로 포기한다.

    어떤면에서 너무 많은  양의 정보가 정보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 뜨린다
    는데 문제가 있다.

    오늘도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하여  많은양의 정보를 혼란 스럽다 할 정도로
    접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알려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불완전한 삶을 산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무지(無知)가 아니라 잘못 아는데² 있기 때문이다.

    ¹ 앨빈토플러 / 미래의 충격
    ² 요기배라 / 미국의 야구선수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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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II은결사랑II (@ruf08)
    2015-11-28 22:26
    사랑, 보고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다'는 말을 좋아한다. '보고 싶다'는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보고 싶다'는 순수한 애정의 표현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사랑의 고백이다. '보고 싶다'는 '사랑한다'이다.
    - 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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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II은결사랑II (@ruf08)
    2015-11-28 22:24
    고통, 삶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
    - 정채봉

    댓글 0

  • 1
    II은결사랑II (@ruf08)
    2015-11-28 22:23
    사랑, 아름다움
    사랑하면 보여요.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면 보여요. 상대의 마음도 보이고요, 이웃의 아픔도 보이고요. 그냥 보아서 보는 것은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마음으로 보이는 것, 사랑으로 인해 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랍니다.
    - 최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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