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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üß Gott~♥ Ciao~♥ 전악장 감상 고전음악 방송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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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veritas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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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 (@veritas0359)
    2021-07-28 11:32












    드뷔시 피아노 3중주 G장조

    Claude Debussy - Piano Trio in G major

    피아노3중주 G장조는 드뷔시가 18세때인 1880년도에 작곡한 곡으로 이탈리아에서 폰 메크부인의 피아노선생으로 머물렀던 당시에 쓴 곡이다. 이 작품에는 드뷔시가 존경했던 여러 작곡가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당시 유명한 가곡/오페라 작곡가였던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영향이 잘 드러나고 있고, 슈만의 피아노소나타 g단조, 프랑크의 피아노5중주 f단조 등의 영향도 엿볼수 있다. 총 4악장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제1악장 안단티노 콘 모토는 소나타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느린 서주가 붙은 변주곡형태의 경향을 보이면서 전통적 모델에서 벗어난다. 이후 2악장의 스케르토, 느린 리트형식의 3악장, 론도형식의 제4악장은 전통적 형식미를 따랐지만, 색채감 풍부하고 변화가 많은 和聲을 사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조가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작품은 드뷔시의 초기양식의 원숙함을 입증하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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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 (@veritas0359)
    2021-07-28 11:27








    접물잠(接物箴) 이식(李植)

    君子律身(군자율신) : 군자가 자기 몸을 단속할 적엔
    如處女然(여처녀연) : 처녀처럼 행동을 해야 할지니
    與惡人言(여악인언) : 좋지 않은 사람과 말을 할 적엔
    當若浼焉(당약매언) : 자기 몸이 더럽혀질 듯 여겨야만 한다
    矧於擇交(신어택교) : 더군다나 친구를 가림에 있어서랴
    惟善是與(유선시여) : 오직 선인(善人)과 함께여야 할 것이니
    宜詳宜愼(의상의신) : 자세히 살피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或取或拒(혹취혹거) : 취하거나 버리거나 결정해야 한다
    人之無友(인지무우) :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執之如友(집지여우) : 진정한 친구처럼 어울려 노닐면서
    以色以聲(이색이성) : 안색과 목소리를 일부러 맞춰 가며
    言笑怡怡(언소이이) : 희희낙락거리며 떠들고 웃노라면
    麤心浮氣(추심부기) : 거친 마음 뜬 기운이 어느새 돋아나서
    是長是滋(시장시자) : 날로 자라나 걷잡을 수 없으리니
    寒多曝少(한다폭소) : 추운 날은 많고 따스한 날은 적게 되어
    存者甚危(존자심위) : 지켜야 할 내 마음이 위태롭게 된다
    鮑魚之肆(포어지사) : 건어물 가게 속에 들어가거나
    塗炭之地(도탄지지) : 숯더미나 흙탕 위에 앉아 있어도
    不緇不磷(불치불린) : 더러워지지 않고 얇아지지도 않는 것은
    非吾人事(비오인사) : 나와 같은 사람의 일이 아니니
    如沙染泥(여사염니) : 마치 흰 모래가 진흙 속에서 검어지고
    如衣受膩(여의수니) : 마치 옷에 기름때가 묻는 것처럼
    一切放倒(일절방도) : 내 모습이 완전히 바뀐 가운데
    共就汚下(공취오하) : 더럽게 휩쓸려서 내려가리라
    不知不覺(불지불각) :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그 사이에
    與之俱化(여지구화) : 어느덧 그와 함께 똑같이 변하리라
    盍愼厥與(합신궐여) : 어찌 사귀는 일을 신중히 하지 않겠는가
    戒自今日(계자금일) : 오늘부터라도 부디 경계하라
    言而不語(언이불어) : 말을 하더라도 깊은 말은 하지 말며
    近而勿接(근이물접) : 가까이 있더라도 친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若逢惡臭(약봉악취) : 고약한 냄새 만나면 피해 가듯이
    似防勁敵(사방경적) : 성을 쌓아 사나운 적을 막아 내듯이
    用檢言動(용검언동) : 나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단속하면
    庶免墮落(서면타락) : 타락하는 일을 그런대로 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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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숲빛 (@veritas0359)
    2021-07-11 09:14




















    낭만주의(浪漫主義) 음악

    인간은 이성(理性)과 감정(感情)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살아간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이 이성과 감정 사이를 줄타기하며 균형을 이루어 온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주의는 ‘가슴’보다는 ‘머리’에 더 무게중심을 둔 예이다. 고전주의는 한때 이성을 무기 삼아, 온 유럽을 통치하며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했다. 낭만주의는 어쩌면 이러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 낭만주의

    본래 낭만주의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체에 걸쳐 유럽에 나타난 문예사조(文藝思潮)를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문학에 대한 비평용어였지만,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 사이에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일어난 주관적, 개성적, 공상적, 상징적, 신비적, 초자연적 특성을 보이는 모든 예술을 가리킨다. 독일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운동에서 그 출발점을 찾는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낭만주의가 발생한 시대적 원인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과 자본주의의 발달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사회적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져, 사람들에게 혁명 자체에 대한 염증과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이 지긋지긋하면 꿈과 이상,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마련이다. 근대화와 도시화, 자본의 축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낭만주의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낭만주의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 것은 계몽주의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대표되는 루소의 철학이었다. 이는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던 기존 철학자들의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루소는 모든 불행과 죄악의 원인이 문명에 있고 자연상태의 인간은 善하고 완전하다는 주장을 했다. 대량생산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도시화, 계약에 의한 인간관계 등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역설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조금씩 형태가 잡혀가던 낭만주의의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럼 낭만파의 클래식 음악은 어땠을까? 고전주의 음악을 가로지르는 음악적 틀에서 벗어난 새롭고 개성있는 작품들이 늘어났다. 공식을 깨고 색채를 다양화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예술 속에서 음악은 안방마님처럼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기악음악은 더 이상 궁정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 음악은 ‘일반적인 언어처럼 개개의 음절이 명확한 뜻을 지니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음의 ‘언어’로서 파악되게 되었다. 따라서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詩的(문학), 繪畵的(미술), 說話的(신화), 劇的인(연극) 세계와 결부된 감정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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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 (@veritas0359)
    2021-07-01 11:34














    문화(文化)에 대하여~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자연물(自然物)에 대한 새로운 가치창조 행위임과 동시에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며 그 창조행위의 결과물을 인류가 향유(享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런데 어느 특정한 민족문화의 육성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전통문화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실체(實體)는 독자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宇宙)라는 초월적 전체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듯, 一國의 민족문화도 고유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지니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문화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의 인식이 先行되어야 한다.

    첫째, 全세계 각각의 문화는 우발적으로 태생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정한 법칙성(法則性)을 수반하여 발생했다는 점이다. 문화발전의 법칙적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어느 민족, 어느 시대속의 문화에도 문화 그 자체의 내외적 논리의 발전이 있는 동시에, 당시의 정치·사회·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쌍방의 통일적 파악이 이뤄져야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전세계 어느 민족문화를 막론하고 그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라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민족문화는 이민족과 주변부족, 또는 도래인(渡來人)과의 상호접촉, 상호교통, 영향에 의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고등(高等)한 문화로 발전하여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민족문화에 대한 이해와 계승·발전을 위해서도 세계문화사에 대한 통찰과 탐구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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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숲빛 (@veritas0359)
    2021-07-01 09:26




















    大바흐 집안의 둘째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바흐가문에서 5대에 걸쳐 배출한 음악가를 살펴보면 아마츄어 연주가까지 포함해서 연주자만도 32명에 달하고 알려진 작곡가만 해도 18명해서 근 40명에 달한다. 동서양을 막론하여 예술가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의 음악가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大바흐를 위시해서 세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아들 바흐들이 네 명 있다. 첫째 어머니 마리아 바르바라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7명중 장남인 빌헬름 프리드리히 바흐와 둘째인 칼 필립 엠마뉴엘 바흐!.. 그리고 둘째어머니 안나 막달레나사이에서 태어난 13명의 자식들 중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바흐와 막내인 요한 크리스안 바흐!! 이렇게 각각의 어머니에게서 두 명씩 당대의 명성있는 작곡가가 배출되었다. 오늘 소개할 바흐는 칼 필립 엠마뉴엘 바흐로서 첫째 어머니 마리아 바르바라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첫째 어머니 마리아로부터는 맨 위 두명의 아들형제가 음악가가 되었고, 둘째 어머니 안나로부터는 맨 아래 두 명의 자식이 음악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칼 필립 엠마뉴엘 바흐는 손위 형인 빌헬름 프리드리히 바흐보다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작곡가이다. 여러 문헌들과 그의 자서전을 종합해보면 그는 형제간 우애가 깊었고 형답게 의젓하고 성품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한다.

    아버지 大바흐에 대한 효심과 존경심 또한 남달랐다고 전해지며 이복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바흐가 아버지 大바흐를 대신해 아버지처럼 따르고 또 보살핌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복 형제들 이었지만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는 등 형제간 인간적 교류가 참으로 깊었던 사이였다.

    칼 필립 엠마뉴엘 바흐는 일명 "베를린의 바흐" 또는 "함부르크의 바흐"로 불린다. 1714년 3월 8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태어나 1788년 12월 15일 함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한 CPE 바흐는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오랫동안 베를린에서 살다가 만년에 함부르크로 갔기 때문에 베를린의 바흐 또는 함부르크의 바흐라고도 부른다.

    그는 처음부터 아버지로부터 쳄발로와 작곡을 배운 것 외에는 음악선생에게 배운 일이 없으며,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문학에도 정통한 문화인이기도 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유일한 스승은 아버지 바흐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1738년, 베를린으로 가서 프러시아의 황태자 프리드리히의 궁정 전속 쳄발리스트가 되었으며, 1740년 황태자가 프리드리히 2세로 왕위에 오르고서도 왕의 플룻 반주자로 왕을 보필했다. 1767년 텔레만이 죽자, 공석이 된 함부르크의 다섯 교회의 합창장(칸토르)으로 전출되어, 이 곳에서 활동하다 생을 마쳤다. CPE 바흐의 작품은 19곡의 교향곡과 200곡의 소나타, 50여곡의 쳄발로 협주곡이 있으며, 칸타타, 모테트 등 양적으로도 상당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바흐의 아들이요 제자이긴 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풍조에 따른 고전주의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의 음악어법도 대위법적인 것이 아니라 선율적이고 화성적이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발전시킨 것도 아니며, 율동적인 전개를 보여 변화가 많고 다채로운, 그리고 분방한 활력이 약동하며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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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숲빛 (@veritas0359)
    2021-06-29 10:47














    Claude Debussy - Coin des enfants, petite suite de six pieces pour piano seul

    1908년 12월 18일 파리에서 해롤드 바우어의 연주로 초연. 드뷔시 특유의 사랑스럽고, 회화적이며 동화적인 작품

    피아노를 보다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드뷔시는 1905년 10월 30일에 태어난 자신의 딸인 슈슈(Chou-Chou)를 위한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그리하여 [인형의 세레나데 Serenade of the Doll]를 1906년에 먼저 작곡한 뒤 그 반응을 지켜보았고, 사랑하는 딸에게 음악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뒤이어 다섯 곡을 작곡하여 모음곡 형식인 [어린이 차지 Children’s Corner]를 완성했다. 1908년에 듀랑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 곡의 초연은 그해 12월 18일 파리에서 해롤드 바우어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물론 자신의 딸인 슈슈에게 헌정되었다.

    모음곡 구성
    1 그라두스 & 파르나수스 박사(Doctor Grandus ed Parnassum)
    2 짐보의 자장가(Jimbo’s Lulaby)
    3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Serenade for the Doll)
    4 눈은 춤춘다(The Snow is Dancing)
    5 작은 양치기(The Little Shepherd)
    6 골리웍의 케이크워크(Golliwogg's Cakewalk)

    사랑스럽고 회화적이며 동화적인 이 작품은 연주 테크닉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연주가는 물론이려니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및 일반 애호가들로 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출판 당시 각 장면의 제목을 영어로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작곡가가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질 것임을, 혹은 세계의 모든 어린이를 위한 작품임을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 곡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에 상응하여 1911년에는 드뷔시의 친구인 앙드레 카플레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여 초연, 출판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19세기로부터 유래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음악의 전통에 의거한 듯 보이기도 한다. 멘델스존의 [어린이를 위한 소품]이나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비제의 피아노 연탄곡인 [어린이의 놀이], 무소르그스키의 [어린이의 방], 차이코프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등등 19세기에는 중산층에 피아노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들이 많이 작곡되며 독립적인 카테고리를 세워나갔다. 이 가운데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는 다른 어린이용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작곡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어린이의 유희적이거나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드뷔시 특유의 명상적이고 이미지적이며 현대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러하다.

    상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어린이 차지]의 여섯 곡은 프로그램에 의해 서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아이가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재미있게 노는 동선(動線)을 따라 관찰자의 1인칭적 시선이 차례로 옮겨가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에 제시된 ‘Corner’란 단어가 의미하듯, 이 [어린이 차지]는 어린이의 행동과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어린이가 속해 있는 영역과 공간에 대한 전체의 인상을 옮긴 만큼 음악의 메시지가 직설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이다. 그러한 만큼 이 작품에 담긴 작곡가의 독창적인 정서와 고유의 음향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고도의 연주력과 남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1곡: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

    첫 곡은 클레멘티의 교본을 희화적(戱畵的)으로 모방한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 Doctor Grandus ed Parnassum]이다. 이 작품은 전부 온음계로서 빠른 발걸음을 연상케 하는 음표들의 행진과 환상적인 멜로디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단조롭고 지겨운 클레멘티 연습곡에 대한 어린이다운 반발을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2곡: 짐보의 자장가

    첫 곡에 이어서 어린이가 방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묘사한 두 개의 작품이 등장한다. 두 번째 곡은 [짐보의 자장가 Jimbo’s Lulaby]. 짐보는 슈슈가 가지고 놀던 코끼리 인형으로서 둔중하지만 섬세한 음향이 나지막하게 깔린다.

    3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세 번째 곡은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Serenade for the Doll]로서 5음계의 주제가 무곡적인 리듬감을 통해 불연속적인 진행으로 펼쳐진다. 인형과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4곡: 눈은 춤춘다

    이제 아이의 무대는 실외로 옮겨진다. 네 번째 곡인 [눈은 춤춘다 The Snow is Dancing]는 오스티나토(ostinato)로 구성된 장면으로서 페달링을 통한 자욱한 음향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야외의 풍경을 묘사한다. 아이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오른손 멜로디와 스타카토 연타를 통해 간간이 등장한다.

    5곡: 작은 양치기

    다섯 번째 곡은 [작은 양치기 The Little Shepherd]로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플루트를 위한 [시링크스]를 상기시키는 전원풍의 작품이다. 최소한의 음표로 아이가 속해 있는 자연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 환원시킨 이 장면에는 드뷔시의 음악적 기법이 고도로 응축되어 있다.

    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마지막 여섯 번째 곡은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Golliwogg's Cakewalk]로서 드뷔시가 처음으로 재즈적인 이디엄(idiom)을 사용한 작품이다. 흑인 어릿광대의 그로테스크한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케이크워크란 미국 남부 흑인들로부터 비롯되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래그타임(ragtime)의 일종으로서 으쓱거리는 걸음걸이가 특징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티브를 의도적으로 희화화하여 인용한 부분이 중간에 등장하기도 한다.

    추천음반

    1. 발터 기제킹(EMI)2. 상송 프랑스와(EMI)3.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DG)4. 넬손 프레이레(DECCA)5. 파스칼 로제(O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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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숲빛 (@veritas0359)
    2021-06-27 14:47
















    안토닌 드보르작 피아노 5중주 작품 81

    Antonín Dvořák - Piano Quintet in A major, Op.81

    1887년 완성. 1888년 프라하에서 초연됨.

    드보르작은 1841년 9월 8일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외딴 시골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태어났다. 여관 겸 푸줏간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어릴 적부터 싹튼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음악공부를 시작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에게 바이올린과 성악의 기초교육을 받았으며, 16세 때 프라하에 있는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음악공부에 매진하였다. 32세 때 애국적인 소재를 담은 칸타타를 작곡하면서 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로 하여금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게 한 계기는 브람스가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유명해 졌으며 1891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1892년부터 1895년까지는 미국에서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1887년 여름, 프라하 인근의 한적한 시골별장에서 작곡된 피아노 5중주는 피아노와 현악 4중조로 편성되었다. 초연은 1888년 1월 6일 프라하의 시민 클럽 회관에서 이루어졌다. 드보르작은 5개의 5중주를 작곡했는데 이 곡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선율미와 지방색 그리고 악기의 교묘한 용법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F단조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는 이 곡은 테마가 되는 선율과 리듬에 보헤미아적인 정감이 농후하다. 우수에 잠긴 선율이 격렬한 정열로 고조 될 때의 감동은 더 할 나위 없다.

    현악 5중주는 미국에서 뉴욕 국립음악원장으로 재직하던 때인 1893년 여름휴가 기간에 작곡되었다. 드보르작의 가족은 이 곡이 작곡되기 직전에 원주민들과 파티를 즐긴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그들의 영향으로 쓰여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작품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제1악장은 원주민들에게서 들은 인디안의 노래를 자유롭게 변형한 것으로 드보르작이 아메리카 체재중에 쓴 작품 중에 4음계와 5음계로 된 것 중의 하나이다. 한편 스케르초의 悲嘆調의 선율은 원시적인 특징들이 섞여 있으며 선율적 재료의 사용이 아주 자유스럽다. 이곡은 장엄하고 종교적인 엄숙함을 느낄수 있는데, 스미스(S.F.Smith)의 조국찬가(My Country, 'tis of thee)를 일부 인용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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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숲빛 (@veritas0359)
    2021-06-25 12:51






    글라주노프 바이올린협주곡

    Alexander Glazunov -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82

    1904년 완성. 당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헌정되었고, 그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각 악장구분없이 휴지부없이 연결되는 단악장형식이다.

    솔로이스트가 한 콘서트에서 두 세개의 작품을 한꺼번에 연주하던 시절, 글라주노프의 A단조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20분 남짓한 길이의 이 곡은 현대의 콘서트 형태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많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아직 이 곡을 녹음한다. 뒤로 갈수록 흡인력이 강해지는 이 곡에서 첫 두 악장은 간략한 형태이고, 3악장은 트럼펫 선율을 동반하는 쾌활한 피날레이다.

    네이선 밀스틴(Nathan Milstein)은 이 협주곡이 완성된 1904년에 태어났고 이 곡에 있어서 작곡가에게 탁월함을 인정받은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밀스틴이 1915년 글라주노프의 지휘 아래 이 곡을 연주했을 때 그는 아직 소년에 불과했다. 그가 이 곡을 글라주노프와 함께 마지막으로 연주했을 때가 1925년이었고 직후에 밀스틴은 러시아를 떠나 서방 세계로 간다. 밀스틴은 이 곡을 세 번 녹음했는데 이 중 두 번은 지휘자 스타인버그와 호흡을 맞추었다. 그의 두 번째 음반이 연주에서뿐 아니라 녹음 상태에 있어서도 최고라고 볼 수 있다. 밀스틴은 평형을 잃지 않고 톤 처리와 리듬 모두를 소화함으로써 곡 해석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균형잡힌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 또한 인정받아 왔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 감상적이다. 최근 발매된 음반 중에서는 고전적으로 연주한 프랑크 페터 치머만(Frank Peter Zimmermann)이 단연 최고이며, 과장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연주한 막심 벵게로프도 훌륭하다.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 애호가라면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 아래 녹음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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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 (@veritas0359)
    2021-06-25 12:27


    지나친 충고는 우정을 깨뜨린다!

    ◈자공(子貢)이 우정을 묻자, 공자 이르길「진실된 마음으로 충고하여 벗을 선도(善導)하되, 듣지 아니하면 곧 그만두어 스스로 욕됨이 없게 하라」하였다.

    子貢問友。子曰:「忠告而善道之,不可則止,無自辱焉。」 顏淵:23

    【註解】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가는 우정의 경구다. 허물없는 사이라며 함부로 대하는 ‘욕친구’보다는 윤리적 정서 속에서 도의생활의 실천을 위해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훨씬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우정일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벗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해 본 적이 있는지, 그의 성공에 일말의 뒤틀린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음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의 고통을 기꺼이 나눠 질 용기가 있는지, 단 한번이라도 상대를 수단으로 대한 적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원의 우정으로 불릴 만하다. 일본 영화계의 어떤 인사는 우정에 대하여「어려움을 겪을 때, 언제든 나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라! 하지만 나는 그와 동일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절대 그를 찾지 않겠다」고 사뭇 거룩하기까지 한 우정의 도(道)를 말한 바 있다.

    어찌 됐든 벗과의 진정한 우정은 서로의 미덕을 찾아 격려하고 기뻐해 주며 고통에는 위로하고 함께 아파해 주며 장점을 붇돋아 주는 대신 허물은 뼈아프게 충고하고 상대는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관계일 것이다.「忠告」는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의 결점을 일깨워주는 훈계로서 ‘告’는 ‘곡’으로 읽는다. ‘도(道)’는 이끌어 주다는 ‘도(導)’와 같다. 그런데 문제는 단점을 아프게 지적할 경우 흔연(欣然)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난다. 제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지나치거나 반복되면 심리적 저항이 생기기 마련이다. 도를 넘는 ‘지적질’로 상대가 감정이 상하여 듣기를 거부한다면 즉시 충고를 그만두어야 한다. 선도(善導)의 역할을 지속하다가는 제 스스로 모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관계보다는 알면서도 모른 척 관여하지 않지만 스스로가 깨닫고 개선해 나가는 관계가 더 멋지긴 하다.

    이인(里仁)편 26장에서도 벗과의 사귐은 그 정이 지나치면 소원해진다(朋友數,斯疏)고 했다. 적정한 분한을 지키지 못하고 감정이 과잉발현되었을 때 이처럼 현실적 폐해를 낳으므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예(禮)’로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공야장(公冶長)편 17장에서 공자는 사귐이 오래될수록 한마음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안영(晏嬰)에 대해서는 벗들이 변함없이 존경했다며 안영의 교제도(交際道)를 칭송했다. 도를 지키며 예(禮)로 절제의 미덕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문구이지만 이 안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과 중용지도의 교훈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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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빛 (@veritas0359)
    2021-06-08 11:01






    종교와 이데올로기

    평생 열성적으로 교회나 성당을 다니고 예수를 신앙한다는 것 그 자체도 일종의 이념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기독교 이념에 세뇌당한 것이다. 세뇌당한 이데올로기를 버려야 하지만 한번 물들면 사실 그게 쉽지 않다.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념이다. 정치적 이념만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이데올로기도 있다. 그 이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다. 기독교의 복음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율법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왜 율법에 예속된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하다 못해 밥먹을 때 손을 씻는 정결의식이라는 것도 엄청난 제식이 필요하고, 이념에 따라 도축 처리하여 먹는 코셔 푸드(Kosher food)의 과정 등 모두 삶을 옥죄는 것들이다. 이 속박된 율법에 대해 바리세인들이 예수를 향해 ‘왜 당신네 제자들은 손을 안씻고 먹느냐’고 했다. 배가 고프니깐 벼 이삭만 훑어서 먹은 것인데 안식일에는 해서는 안되는 율법위반 행위 아니냐고 한 것이다. 예수는 말한다「안식일이라는 게 율법 덩어리란 말이지..내가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나를 위하여 있다!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예수는 일체의 이념을 거부한 사람이다. 석가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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