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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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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3:35
    [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수정 2025-01-0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1일 법원이 전날 발부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체포영장을 “기한 내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윤 대통령 쪽은 “불법 영장”이라며 불응을 예고했다.
    법 절차에 따라 사법부가 발부한 영장을 당사자가 부정하고 저항한다면 국가의 법치 시스템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
    말 그대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다.

    공수처는 내란 주범의 처벌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법치 수호를 위해서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체포영장을 집행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등의 억지 주장을 펴며 수사에 응하지 않았지만, 법원의 영장 발부로 이런 주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더 이상 수사에 불응할 명분이 없다.

    더구나 법원은 이번 체포영장에 ‘이 영장의 경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은 예외로 한다’고 명시했다.
    두 조항은 군사상 비밀과 공무원의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그동안 경호처가 대통령실·경호처·안가 등의 압수수색을 막아온 근거가 됐다.

    하지만 법원은 피의자 체포를 위한 이번 영장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경호처가 윤 대통령 체포를 막을 빌미를 아예 없앤 것이다.


    이제 경호처가 영장 집행을 방해한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으로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집행을 방해할 경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특수공무집행 방해죄로 의율할 수 있음을 엄히 경고하는 내용의 공문을 경호처에 어제 전달했다”고 밝혔다.

    내란범 처벌을 위한 수사를 국가기관이 방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란 행위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형법 내란죄 조항은 ‘법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법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을 국헌문란으로 정의하고 있다.
    만에 하나 물리력으로 영장 집행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내란 범죄가 아니고 뭔가.

    윤 대통령 쪽은 체포영장이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 권한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했다.

    위헌·위법적 계엄령 선포를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여전히 우기는 것도 구제불능이지만, 어떻게든 처벌을 지연시키려 허무맹랑한 법기술을 동원하는 행태가 철면피 잡범 수준이다.

    관저 앞에는 극렬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영장 집행을 방해할 태세다.
    이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시간을 벌어볼 심산이라면 치졸하기가 그지없다.

    검사 출신이자 현직 대통령으로서 양심이 한줌이라도 남아 있다면 법 집행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758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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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3:12
    ((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멋진 글))
    거대한 ‘오늘’과 최성일씨
    입력 : 2025.01.01
    김숨 소설가

    10년 전, 그는 거대한 빙벽 앞에 서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빙벽의 높이는 13m 남짓. 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특수미술’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0, 30대를 영화 특수미술의 매력에 빠져 살며 등등 내로라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미술에 참여했다.

    제작사에서 ‘빙벽’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재료와 제작 과정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보름 만에 완성한, 다들 감탄하던 빙벽의 수명은 단 이틀.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빙벽을 부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이 큰 만큼 공허감도 컸다.

    십수 년 수입이 불안정했던 데다 어떤 배신으로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 된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빙벽을 부순 지 5년여 뒤, 마흔네 살의 그는 알코올중독자들이 입원한 폐쇄병동 휴게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고, 그의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다.

    그가 볼펜으로 A4용지에 그린 데생을 우연히 본 직원이 그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선물했다.

    그는 스케치북에 알코올중독 환자의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집중하며 스케치를 하다 보면 감정이 고요히 가라앉고 시간이 잔잔히 흘러갔다.

    인물화를 그리는 그의 곁으로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인물화가 완성되면 그것의 주인에게 말없이 선물하는 그에게 너도나도 부탁을 해왔다.

    “내 얼굴 좀 그려줘.”
    “내 어머니 얼굴 좀 그려줘.”
    “내 손주 얼굴 좀 그려줘.”

    환자들은 그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테이블을 ‘그의 자리’로 비워뒀다.

    병동에는 그를 포함해 80여명의 알코올중독자가 입원해 있었다.
    입원해 지내는 동안 그는 80여장의 인물화를 그렸고, 모두 선물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태양광 모듈(태양에너지를 직접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셀을 전지판 형태로 가공하여 배열한 것)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완성된 모듈을 들여다보고 있다.

    크랙이 가 있는지, 나방 같은 벌레가 붙어 있는지,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껴 있는지, 간격이 맞는지. 일이 많을 때는 12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평소에는 600~700개 정도의 모듈 품질을 검사한다.
    단순하지만 세심한 집중을 장시간 요구하는 일이다.

    “오늘 이대로요, 오늘 이대로.”

    오늘 이대로가 있기까지, 그는 100곳에 이력서를 냈다.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이유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기 때문.

    마흔 후반(1975년생).
    그는 자신이 젊다 생각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아들 도리를 하며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출근을 하는구나. 퇴근을 하는구나. 매일 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어떤 일이라도, 어떤 일이라도….’

    그는 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이력서를 냈고 넉 달 전부터 일하고 있는 곳에서 기적처럼 연락이 왔다.

    그가 꺾이지 않고 이력서를 ‘또’ 낼 수 있었던 건 누나 덕분.
    에디트 피아프만큼 자그마한 누나.
    간장 종지 작은 건 참을 수 있어도 속 좁은 건 못 참는 누나는 끝까지 그의 복원력을 믿어주었다.

    거대한 것을 좇고 만들 때 그는 평균 사이즈에도 못 미치는, 이기적인 삶을 고집스레 살고 있었다.

    “소소한 것이 거대한 거예요. 평범한 것이 거대한 거예요.”

    신기루가 그리는 거대함을 버리고, 일상 속에 가만가만 놓여 있는 거대함을 성취하며 진짜 거인이 된 그.

    그의 소망은 한 가지.
    ‘오늘 이대로’ 내일을 사는 모습을 엄마와 누나에게 오래오래 보여드리는 것. 그리고 오늘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사는 것.
    “병삼아, 사랑한다.”

    “나는 늦지 않았어요.”

    그는 늦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바라보..지 않아요.
    예전에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바라봤어요.”

    아침 6시50분.
    집을 나서며 그가 하는 다짐은
    “오늘도 재밌게 일하자”.
    새벽 바다처럼 검푸른 모듈을 응시하는 그는 한없이 젊다.
    한없이 거대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2057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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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5-01-02 03:01
    나락의 시대, 지는 법을 못 배운 사람들
    입력 : 2025.01.01
    이용균 스포츠부장

    야구는 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그렇지 않다

    잘못과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야구를 제대로 안 해보고 아는 척한 게 틀림없다.
    대통령 예비 후보 시절인 2021년 모교인 충암고를 찾아갔을 때다.
    투구 폼을 잡으며 다리를 들어올렸는데(리프트 동작), 중심이 뒤로(1루 쪽으로) 지나치게 쏠렸다. 왼발 착지(랜딩 동작) 때 왼손 글러브의 위치는 몸 중심을 벗어났다.

    충암고 야구부 주장이 “좋은 성적을 내면 저희를 청와대로 초청해줄 수 있나”라고 물었다. 윤석열 당시 예비 후보는 “내년 졸업해서 야구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겠다. 올해 2관왕이니 떼놓은 당상이다”라고 말했고, 청와대 초청을 약속했다.

    ‘덕담’인 줄 알았겠지만 고교선수에게 대학 진학을 바라는 건, ‘악담’에 가깝다.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프로구단 드래프트 상위 지명을 바라는 게 맞다.(용산 이전도 계획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야구 역시 (다른 대부분 분야가 그랬던 것으로 드러나듯이) 잘 모르면서, 또는 업데이트 없이 과거 지식에 머문 상태에서 아는 척했던 게 틀림없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헤비 팬이든, 라이트 팬이든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다 안다.
    ‘매일매일’ 경기하는 야구 종목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야구는 한 시즌 140경기 넘게 치른다.
    프로스포츠 종목 중 경기 수가 가장 많다.
    우승팀의 승률은 60% 언저리다.
    제일 잘하는 팀도 10번 중 4번은 진다.
    얼마나 잘 지느냐가, 다음 경기의 승리 확률을 결정한다.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 최초 헌액자 중 한 명인 명투수 크리스티 매슈슨은
    “이기면 조금 배우지만, 패하면 모든 것을 배운다”
    고 말했다.

    그래서 야구는 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전, 마이너리그에서 3~4년 정도 경험을 쌓는다.

    실수와 실패와 패배를 충분히 겪은 뒤라야 제대로 승부할 줄 알고, 성공할 수 있다는 철학이다.

    실수와 실패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야구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고, 존중은 스포츠정신과 페어플레이의 기본이다.
    메이저리그 최다승 2위 감독인 토니 라루사는
    “야구의 신은 언제나 야구라는 경기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패배라는 벌을 내린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지는 법을 모르는(모른 척하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나락 간다’는 나락의 시대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받는다.
    내신에서, 수능에서, 취업 결정에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회복 불가능하다는 공포를 체득한다.

    그러니 첫 훈장과 첫 명함이 중요하다.
    의대 쏠림과 대기업 선호는 당연한 결과다.
    섣불리 연애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 역시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패배가 가져올 나락의 공포를 회피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이 아니다’라고 우기기 일쑤다. 그 어떤 합리적 판단도 거부하고 버틴다.

    패배에 대한 인정은커녕 ‘진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부정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계엄은 반대인데, 하야도 안 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안 되는 이상한 논리를 자신있게 얘기하는 단계에 이른다.
    국민에 대한 존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걸 못하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없다.
    야구를 해봤다면, 야구를 안다면 얼른 잘못을, 패배를 인정하는 게 맞다.


    2025년이 밝았다.
    그래도 애써 희망을 찾는다.
    야구가 보여준 적이 있다.

    1994년 시즌 막판 OB 베어스는 감독의 폭행 및 얼차려 시도가 있었고,
    선수들이 항명하며 팀을 떠났다.
    팀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그러나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한 뒤 자진사퇴했고 OB는 새 감독 체제에서 이듬해인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새 감독을 맡은 김인식 감독은, 나중에 국민 감독이 됐다.
    나락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은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배워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205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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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5-01-02 02:55
    제주항공 참사에 소금 뿌리는 가짜뉴스, 혐오발언들
    입력 : 2025.01.01

    제주항공 참사로 국민이 고통에 빠져 있는데, 사고 원인을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까지 횡행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피해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혐오성 글들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유언비어 유포와 선동은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난국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유가족에겐 2차 가해가 될 뿐 아니라 사고 장면을 지켜본 국민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엄단할 필요가 있다.

    참사 이후 극우 유튜버들이나 일부 누리꾼들이 퍼뜨린 거짓 정보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특정 정치 세력의 자작극” “북한의 대남 공작” 등 허위 사실과 음모론을 뒤섞은 것들인데 아무런 근거가 없다.
    심지어 사고 영상을 언론에 제보한 시민이 각종 음모론과 억측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영상이 매우 차분하게 촬영됐다는 점을 들어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식이다.
    이 시민은 협박전화까지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

    여성을 혐오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무도한 가짜뉴스들도 많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고 여객기 기장이 여자였다’ ‘기장이 여자라 랜딩기어가 안 나온 걸 몰랐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데 당연히 거짓이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유족들이 보상금을 타기 위해 일부러 공항에 진을 치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재난안전분야의 허위정보 실태와 대응방안’ 보고서를 보면 “재난·안전사고에서는 현장상황에 대한 정보의 공백을 메우고 일반 대중과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뉴스가 폭증한다.
    요즘의 탄핵 정국처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세월호·이태원 참사 때 유언비어의 확산, 피해자를 겨냥한 혐오로 혼란을 경험했고, 유족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참사는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로 비롯된 정치적 혼란 속에 벌어진 대형 재난인지라 국민의 고통이 더 크다.

    이 와중에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반사회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엄정한 조치는 당연하다.
    지금은 불안과 분노가 우리 사회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요청되는 시기다.

    가짜뉴스와 혐오발언을 발견하는 대로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181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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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5-01-02 02:01
    (가)
    미술관으로 간 명랑한 중년 | 7화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천재작가의 최후
    [리뷰] 서울 한가람 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나서
    25.01.01
    문하연(julia2201)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이 서울에 상륙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의 작품 10점과 바로크 화가 작품 57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유화로 그려진 완성작이라 규모가 작지 않다.

    다른 바로크 화가들의 좋은 작품도 많았지만, 이 장에선 카라바조 작품과 삶 위주로만 살펴보려 한다. 먼저 그의 초기 대표작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악마적 재능'을 가진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 개인 소장관련사진보기


    머리에 꽃을 꽂은 미소년이 가운뎃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리고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린 채 관객을 바라본다. 통증으로 눈가엔 눈물이 맺혔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분홍 장미가 꽂힌 투명한 꽃병, 꽃병에 비친 실내 풍경, 테이블 위의 체리, 손가락을 깨물고 있는 도마뱀의 꼬리까지 얼마나 세밀한지 그림이 아니라 스냅사진 같다.

    오른쪽에서 들어온 빛은 소년의 어깨 위로 떨어져 그의 동작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소년의 표정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꽃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편 문이 열린 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운뎃손가락은 남자의 성..기를 의미하고 도마뱀은 유혹, 고통을 상징한다. 고로 유혹에 넘어가면 성병에 걸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동성 연인이라는 견해도 있음) 자화상이든 초상화든 저런 독특한 자세를 그렸다는 것, 정물화와 자화상을 한 작품에 담고 있는 점은 매우 새롭다.

    그가 이렇게 그린 이유는 간단하다.
    "난 인물화도 정물화도 이 정도 그려! 그러니 나에게 그림을 맡겨!"
    사실적이고 디테일이 엄청난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그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뜻밖에도 법원이다.
    그는 무려 15번 고소·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7번 투옥된 전과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그림 찬스'를 썼고, 그의 작품에 매료된 성직자와 귀족들은 그를 꺼내주는 대가로 작품을 받았다.

    다혈질에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그는 테니스(유사한 스포츠) 경기 중에 라누치오 토마소니와 시비가 붙자, 그를 죽여버린다.
    토마소니도 만만치 않은 집안이라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데, 그는 사형을 면하고자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이름 앞에 '악마적 재능을 가진'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카라바조(1571~1610)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작가군을 지칭하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화가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우리가 익히 아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아서 카라바조란 이름을 사용했다.

    종교화 그려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

    5살에 흑사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카라바조는 13살에 티치아노의 제자인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4년간 도제 교육을 받는데, 이때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시 그가 속해있던 롬바르디아 지역 화풍과 훗날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의 연관성에서 유추해 보면 일상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 기법과 빛과 어둠을 대비하는 기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까지 사망하자 20살 무렵 로마에 입성한 카라바조는 뒷골목을 떠돌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푼돈을 받고 그림을 그렸고, 주세페 체사리 공방에 들어가 기계적으로 꽃과 과일을 그렸다.

    이에 신물이 난 카라바조는 공방을 나와 로마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제로 한 '점쟁이', '카드 사기꾼'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으로 델 몬테는 1595년 카라바조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리고 와 함께 지낸다.
    당시 로마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기를 맞았고, 가톨릭과 예수회 교회들은 신자를 모으기 위해 대대적인 종교화 제작에 들어갔다.

    카라바조도 재단화를 의뢰받아 세 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마태오의 영감, 성 마태오의 순교) 이로 그는 단박에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성 토마스의 의심 ⓒ 우피치미술관관련사진보기


    이 작품은 복제본이 많기로 유명한 '성 토마스의 의심'으로 토마스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그의 상처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는 장면이다.
    손톱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토마스의 옷은 낡다 못해 어깨 시접이 벌어져 있고,
    그 뒤로 호기심 가득한 사도들이 구경꾼으로 등장한다.
    마치 여길 보라는 듯 손가락을 뻗어 시선을 유도하고, 관객은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곧이어 창백한 얼굴의 예수를 마주한다.

    그는 등장인물들을, 심지어 예수조차도 성스럽게 그리지 않았다.
    배경은 어둡고 조명에 의한 집중도는 올라간 가운데 묘사는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마치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생생하다.

    그는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종교화를 그렸는데, 이 때문에 너무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퇴짜 맞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런 스타일을 고집한 이유는 그가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을 표현해야 더 사실적인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 토마스도, 뒤의 사도들도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의심 많고 가난한 '인간'들이다.


    ▲그리스도의 체포 ⓒ 우피치 미술관관련사진보기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체포'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유다는 예수가 누군지 알리기 위해 그의 볼에 키스했고, 예수를 알아챈 군인이 그를 체포하는 장면이다.

    예수 뒤에서 손을 올리고 도망치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고, 맨 뒤에서 등불을 들고 있는 이는 말쿠스(그리스도 체포 현장에서 귀를 잘렸고, 예수가 그의 귀를 치료했다는 인물) 인데, 그의 얼굴에 카라바조는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성화에 종종 자기 얼굴을 넣었다고 한다).

    믿었던 제자의 배신으로 잡혀가는 예수의 얼굴은 비참해 보이고, 두 손은 긴장감으로 인해 깍지를 꼭 끼고 있다.
    '성 토마스의 의심'에 나오는 토마스와 '그리스도의 체포'에 나오는 유다는 동일 모델로 보이는데, 이는 카라바조가 의도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그가 왜 키아로스쿠로(격렬한 명암 대조를 통한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기법)의 대가인지, 빛의 거장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스도를 체포하기 위해 손을 뻗은 군인의 갑옷을 보라.
    반사된 빛이 눈이 부시다.
    무대 위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자포자기한 표정의 예수에게 고통을 초월한 성스러움보단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난다.

    4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맞은 최후


    ▲이 뽑는 사람 ⓒ 우피치 미술관관련사진보기


    카라바조가 종교화만 그린 것은 아니다.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나 장르화도 그만의 스타일로 그렸는데, 이 그림은 '이 뽑는 사람'이다.
    작품 크기도 크고 얼마나 현장감이 생생한지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야무지게 펜치를 쥐고 이를 뽑기 위해 어금니를 악문 남자와 공포에 질려서 한쪽 손을 번쩍 올리는 남자 사이의 긴장감은 보는 이의 어깨까지 움츠러들게 한다.

    이를 뽑히는 남자의 입가에 선혈이 흐르고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로 긴장감은 극도로 상승해 저 장면을 바라보는 맨 앞의 작은 아이 뒷모습만으로도 저 아이가 얼마나 겁을 먹었을지 짐작이 간다.

    더욱 놀라운 건 그는 모든 그림을 밑그림 없이 곧바로 그렸다는 점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246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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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2:01
    (나)
    미술관으로 간 명랑한 중년 | 7화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천재작가의 최후
    [리뷰] 서울 한가람 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나서
    25.01.01
    문하연(julia2201)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나폴리로 향하는데, 나폴리에선 몸을 숨겨주는 대가로 에 '7가지 자비로운 행동'이란 주제의 그림을 의뢰한다.

    작품이 완성되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 이들로부터 작품 의뢰가 밀려든다.
    나폴리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그는 급작스럽게 몰타섬으로 떠난다.
    몰타섬에서 기사 작위를 받으면 사면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몰타에 도착한 그는 대영주의 초상화를 그려줬고, 모든 게 그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기사 작위도 받고 사면도 받고, 성 요한 대성당에 '세례자 성 요한의 참수'라는 서양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도 완성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인데, 제 버릇 개 못 주고 여기서도 귀족과 싸우다가 그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다.
    또다시 탈옥한 그는 다시 시칠리아섬 인근 시라쿠사로 도망친다.

    시라쿠사에서 에 걸 그림을 그려주고 그는 또 안위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도망자인 그는 늘 불안에 떨었고, 실제 자객에(몰타 기사단, 혹은 토마소니가 보낸 걸로 추측) 의해 크게 다치기도 한다.

    3년 만에 다시 돌아간 나폴리에선 그를 환대했다.
    이때 로마에서는 카라바조의 광팬이자 교황의 조카인 시피오네 보르게제 추기경이 그의 사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로마로 돌아간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마지막 역작을 준비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 한가람 미술관관련사진보기

    그 그림이 바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다.
    이 주제로 그려진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골리앗의 머리를 쥔 다윗의 얼굴엔 승리의 기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 그림은 흔히 카라바조의 이중 자화상으로 해석한다.
    젊은 카라바조(다윗)가 지금의 카라바조(골리앗)의 머리를 쥐고 회한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목이 잘린 채 고통으로 가득 찬 골리앗을 바라보는 다윗의 얼굴은 복잡하다.
    죄 많은 자신의 목을 잘라 용서를 구하는 것 같다.

    로마에선 카라바조의 사면 소식이 들려왔고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들고 로마로 가는 도중 질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도피 생활 4년 만에 일이었고,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범죄자를 두둔한 권력자들

    전시를 보고 돌아와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
    너무나 천재적이고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만일 그가 로마에서 여러 번 투옥당했을 때 꺼내주는 성직자나 귀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죄에 대한 벌을 받았을 테고, 그랬다면, 망나니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법!

    로마에서도, 나폴리에서도, 몰타에서도, 시라쿠사에서도 권력자들은 그의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이득)만 준다면 그를 숨겨주고 보살폈다.
    그러면서 그의 죄는 점점 더 과감해졌고 죄질은 더욱 불량해졌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그가 제일 나쁘지만, 그런 그의 기질을 키우고 부채질한 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그를 두둔한 권력자들이다.

    잡범이었을 때 더 큰 범죄를 일으키지 않게 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득을 위해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여정이 현 우리 정치 상황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인 사람에게,
    천재의 독창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바로크가 뭔지 궁금한 사람에게 카라바조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는 오는 2025년 3월 27일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 글과 그림은 전시 도록을 참고해 썼습니다.



    원문에서 그림을 보며 읽어 보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246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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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2:00
    ‘12·3 사태’에 다 있다…‘제왕적 대통령제’와 작별해야 할 이유②
    입력 : 2025.01.01
    박순봉 기자 유새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는 왜 제왕적 대통령제와 이별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온전히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이고 위헌적인 판단의 결과물이지만, 대통령제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작동시키지 못해 시스템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 사람의 오판으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 진영 대결이 극단에 이르러 ‘상식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권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극적 최후 맞은 대통령들

    한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가원수로서 ‘만인지상’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마지막에는 그 권력에 자신의 몸을 베이는 대통령들이 대다수였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힘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와 모순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제가 가진 독재 체제로의 변질 가능성을 또렷이 보여줬다.

    이 전 대통령은 1~3대로 12년, 박 전 대통령은 5~9대로 16년간 장기집권 했다.
    집중된 권력은 개인을 부패하게 했고, 부패한 개인은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3·15 부정선거 후 4·19 혁명으로 물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뒤이어 11~12대 대통령 전두환씨의 독제 체제가 등장하자 국민적 저항이 들끓었고, 1987년 민주화는 대통령제를 단임제로 바꿨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장기 독재 체제로 변질되는 문제를 막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통령제의 비극은 계속됐다.
    대통령들은 사법처리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최후를 반복했다.
    민주화 이후 배출된 단임 대통령 8명 중 5명은 구속되거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단임 대통령제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는 심화했다.
    대통령은 중간 임기 평가를 받을 기회도 없고, 필요도 없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비자금 내역까지 공개되며 국민 저항이 격화해 결국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고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2년형이 확정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인이 처벌받진 않았지만 가족들이 수사를 받으며 오점을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1일 기자에게 “가족 리스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결국에는 비선 측근 문제로 정권을 내줬다”라고 말했다.

    본인, 가족, 측근 비리가 대통령제 때문에 생겼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은 크다.

    대통령들의 비극적 최후는 승자독식에 따른 정치 양극화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전임 정권 수사는 일종의 공식이지만 칼 끝을 겨누는 수준에 그치느냐, 실제 휘두르냐는 다른 문제다.


    정치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치 대결 구도와 양극화의 ‘트리거’로 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고,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도 보수와 진보의 전쟁이 만들어낸 파편으로도 지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제냐 혹은 의원내각제냐는 짜장면이냐 짬뽕처럼 무엇이 더 옳으냐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지금은 정치권이 복수혈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대통령제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탄핵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격화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이에 편승한 정치세력”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한 약화에 초점을 맞춘 개헌과 두 거대정당 중심의 정당체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위험 드러낸 비상계엄

    윤 대통령 재임 기간은 대통령제의 위험성이 다양한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기다.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행령 통치 등으로 야당과의 협의 과정을 사실상 거부하며 국정을 독자 운행하려 했다.
    여당에도 일방적 지시를 내리며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고착화했다.
    21~22대 국회에서 대치 정국의 결정적 책임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친윤석열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도 ‘여소야대라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하면 ‘거부권과 시행령으로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답했다”며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협치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고, 야당을 적으로 간주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야 간 대치 정국은 더 심화했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 따라 국회의 운영 양태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하고 국민 여론도 반대하는 의대 2000명 증원을 고수한 과정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대통령 개인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급 참모진 등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한 수석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 당일에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수석은 대국민 담화 발표 직전인 오후 10시쯤에야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가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국무회의 과정도 윤 대통령 개인의 의사 결정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정족수를 채우는 데만 집중했다.
    일부 장관들은 이미 정족수가 찼다는 연락을 중도에 받기도 했다.

    장관들은 대통령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저 정족수를 채우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보면,
    장관들 다수는 계엄 선포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논의 과정도 사실상 없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헌법으로는 제2의 윤석열을 막을 수가 없다”며
    “승자독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 정치개혁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며 “다음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16020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portal_news&utm_content=sub_thumb3&utm_campaign=newsstan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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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5-01-02 01:21
    [마을만세] 마을활동가들에게 ‘기본소득’을!
    이민희 (사)여민동락공동체 이사
    발행 2025-01-01


    “마을 사무장의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라!
    사무장은 1년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2024년 세밑, 어떤 지역의 한 마을활동가가 SNS에 올린 일성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단 두 줄이었지만 문장 사이사이, 보이지 않게 꾹꾹 눌러 박은 속사정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보조금 사업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마을 만들기’가 연례행사처럼 앓는 몸살이다.

    한 해 두 해 일이 아니고, 겪을 때마다 사업 자체를 엎어버리고 싶을 만큼 모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차마 ‘마을’을 포기할 수 없어서 버티고 있는 활동가들이 많다.
    마을활동가들의 불안정성은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마을의 일은 결국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을 만들기, 사람이 먼저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토지, 노동, 화폐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으로 만들고 개발지상주의에 몰입한 대가로 사람들간의 연결망은 단절되고 공동체는 해체됐다.

    파멸적인 생태위기와 경제위기가 삶의 대안으로 ‘마을’을 소환했다.
    '마을'이라는 인간생활의 최소 단위를 생태적, 인간적으로 복원하고 풀뿌리 단위의 자립과 자치를 실현하는 문제가 긴요하고도 절박해졌다.

    이로부터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사업들이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중앙부처에서부터 지자체까지 사업이 쏟아졌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토건주의’와 닮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도시건 농촌이건 자연발생적인 마을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현실에서 마을의 복원은 민관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과 ‘노동’은 공동체를 이루는 필수요소다.
    ‘관계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노동의 결과물이다.
    마을활동가들은 마을의 의제를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득하고 조직하고 연결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마을 만들기 전 과정에 마을활동가의 노동이 스며들지 않은 것이 없다.
    이들의 노동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합당한 대우는 없는 일종의 ‘그림자 노동’이다.

    활동가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 합리적이고 적당한 보상체계 마련은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마을의 사무장을 1년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하는 노동 환경이라면 마을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을은 소비되고 있고 사람들은 지쳐서 현장을 떠나고 있다”
    는 마을활동가들의 자조 섞인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마을활동가들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마을은 어떻게 달라질까?
    마을활동가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행정이 요구하는 실적 내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함께 더 신명 나고 재미있게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자본’ 축적에 기여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비단 마을활동가들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민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마을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필수이다.
    주민들이 공론장에서 만나 교류하면서 호혜하고 연대하며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때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고 공동체는 성장한다.

    이때의 ‘공론장’은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완전히 열린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확산,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해 먹고 살기 힘겨운 다수의 대중은 의도치 않게 참여가 제한되고 공론장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시간이 부족해 마을 일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을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주민의 공동체 진입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니,
    애당초 노동과 마을은 떼어놓고 사고할 수 없다.

    만약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다면,
    공동체의 관계망이 강화되고 마을이 살아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20세기 전후 사회의 총체적인 복원을 위해 기획된 ‘복지국가’는 완전고용과 사회보험을 활용한 빈곤의 퇴치를 목표로 삼았다.
    그로부터 1백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류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화, 기계화(자동화), 노동의 변화, 빈곤의 확산, 불평등(소득 양극화) 심화 등은 복지국가 탄생 초기에는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들이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소득이 적고 가난할수록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복잡하게 설계된 복지제도도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했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하고 국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외롭게 자..살을 선택했던 '송파 세 모녀의 비극'(2014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고용의 불안정성→소득의 불안정성→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성'이라는 연쇄구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마을공동체의 복원은 요원하다.
    마을활동가 몇 명의 헌신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잠정적 유토피아’로 가는 길

    학교 무상급식 문제로 '보편적이냐 선별적이냐'를 놓고 온 나라가 논쟁을 벌였던 것이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다.
    우여곡절을 뚫고 무상급식은 시행되었고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하는 시대가 코 앞에 왔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전혀 불가능하고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이미 핀란드, 스위스, 미국,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체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도 “기본소득은 필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실현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꿨다.
    이를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했다.
    20세기 초 세계 자본주의의 변방 국가에 불과했던 스웨덴은 사람들이 가장 절실해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국난을 극복하며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돋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실현 가능한 잠정적 유토피아는 기본소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노동, 소득, 복지, 사회의 구조적 전환 없이 마을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내란사태가 종식되면 조기 대선이다.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 총체적인 위기를 딛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만들어가는데 기본소득이 핵심 논제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정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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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1:06
    [김지학의 세상다양] ‘서육남’ 윤석열 사단은 어떻게 자멸했는가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활동가
    발행 2025-01-01

    윤석열 정권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자멸해 버렸다.

    윤석열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졌기 때문인데, 이는 주변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두고 정보를 오직 하나의 소스(출처)를 통해서만 얻었다는 데 원인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시점(2022년)에 그는 ‘서육남(서울대 60대 남성)’이라는 말과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주변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만을 배치시켰다. https://vop.co.kr/A00001614933.html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때려잡아야 마땅한 반국가세력’으로 여겼고 대응했다.
    윤석열은 “짐이 곧 국가”라는 근대 절대왕정의 군주마냥 행동했다.
    자신이 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해 발표한 담화에서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야당이든 노동조합이든 시민단체든 국민들이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간첩이고 빨갱이였다. https://vop.co.kr/A00001665039.html


    실력만 본다며 ‘서육남’으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정부 내 인사 인선 기준은 오로지 “실력”이라며 “지역, 여성, 연령”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역, 여성, 연령’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게 어찌 보면 마치 다양성과 포함(Diversity and Inclusion)에 가치를 둘 것처럼 둔갑했다.

    그러나 이어진 발언은 “국민들께 보여주기 위한 트로피 인사(보여주기식 사회적 소수자 기용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는 안 할 것”이라고 당당히 공언했고, 결과는 ‘서육남’이었다.

    참고로 보여주기식 사회적 소수자 기용을 뜻하는 표현은 토큰(token)이다.
    트로피(trophy, 상패)라고 하지 않는다.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을 소수 채용하는 것을 토크니즘(tokenism)이라고 한다.

    “토큰”으로 기용된 사회적 소수자들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이란 사회적 정체성 사이에 권력이 불균형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관점이다.
    포함이란 누구도 사회적 정체성만으로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겠다는 실천이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원칙적으로 배척하고 편협한 정부조직을 만들어 그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윤석열은 그렇게 자멸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2015년 11월 4일 캐나다에서 트뤼도 총리(당시 43세)가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취임식 날 그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갈 장관 3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50:50이었으며 캐나다 선주민, 난민, 이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장관들이 임명되었다.
    연령도 30대부터 60대까지 지역도 10개 주와 3개 준주 출신 인사가 포진하며 지역 안배를 이뤘다.

    트뤼도 총리에게 성평등·다양성 내각을 꾸린 이유를 묻자,
    “2015년이니까요”라고 말했고 “캐나다를 닮은 내각”이라고 표현했다.

    2015년이 아닌 2025년에도 한국사회는 아직 “한국을 닮은 내각”을 갖지 못했다.
    한국을 닮은 내각 그리고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50:50이다.
    정확히는 여성 인구가 조금 더 많다.
    20대가 약 14%, 30대가 약 15%, 40대는 약 18% 정도다.
    이주민과 장애인의 비율은 약 5%정도다.
    등록하지 않았거나 못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더 많다.
    이주민과 장애인의 인권이 향상되면 통계와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이주민과 장애인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성소수자 인구도 약 5-10%정도로 보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어디든 성소수자의 인구 비율이 그렇다.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내 주변에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 출신지역, 가족의 형태, 고용의 형태, 소득·경제력, 학력·학벌 등까지 더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한국을 닮은 내각과 정부”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실제로 시민들의 모습과 닮았는가?
    그렇지 않다.
    300명의 국회의원과 18명의 장관은 거의 대부분 고학력·고학벌·고소득층·법조인·비장애인·비성소수자·50-60대·남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선 기준으로 말한 “실력”이 어찌하여 사회적 특권그룹에 속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사회가 “실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가질 수(쌓을 수)있는 사람이 한정적인 것은 아닌지, 또 “실력”이라는 것의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트뤼도 총리도 내각을 구성할 때 “능력”을 강조한 적이 있어 흥미롭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 위주로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며
    “장관들이 담당 부처의 정책 결정권자로 실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대표하는 그 그룹과 함께 그 그룹에 의해 그 그룹을 위해 일하겠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배제한, 다양성 외면한 정부의 파멸은 당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체성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 수 있는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게 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P&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양성과 포함(Diversity and Inclusion)에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터를 자신에게 안전한 곳(Safe environment)으로 느끼고 소속감(Belongness)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럴 수 있는 곳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일의 효율성, 창의성, 자발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만약 기업의 리더들이 오직 고학력·고학벌·비장애인·비성소수자·50-60대·백인·남성으로만 구성돼 있다면 그 기업이 모든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양성을 토크니즘(tokenism)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단순히 ‘왜 이렇게 여성의 수가 적냐’거냐 ‘왜 장애인이 한 명도 없냐’와 같은 질문으로 여기며 그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포함(Inclusion)은 그동안 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겨 온 사람들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정의, 공정, 평등의 문제다.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의 성공과 실패, 생사가 걸린 문제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관점을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 포진해 놓는 것이다.
    조직 내 다양성은 다양한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갖게 하며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윤석열의 실패 원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김건희 말만 들었다’, ‘종교인의 말만 들었다’, ‘충암파의 말만 들었다’와 같은 분석을 한다.
    결국 같은 말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는 계속 소외·배제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조직을 점점 쇠퇴하게 만들고 결국 멸종하게 만든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와 실천은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

    윤석열의 시계는 처음부터 거꾸로 갔다.
    절대왕정시대에 머문 그의 관점은 처음부터 당당히 다양성을 외면하였으며,
    포함이 아닌 배제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https://vop.co.kr/A000016657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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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5-01-02 00:51
    집회 끝나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태극기, 이게 '애국보수'?
    친윤 집회 참가자들의 거듭된 국기 모독 행태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1.01


    서울 도시철도 5호선 광화문역 내 쓰레기통에 친윤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버려진 태극기와 성조기들.(사진 출처=딴지일보 자유게시판)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이하 친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국기 모독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애국보수'를 자처하며 집회 때마다 매번 태극기와 성조기를 휴대하고 있지만 정작 집회가 끝난 후 지하철역 쓰레기통에는 그들이 사용한 태극기와 성조기가 쓰레기로 수도 없이 버려져 있었다.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등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친윤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후 사용했던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함부로 쓰레기처럼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사진을 찍어 올려놓은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항상 스스로를 '애국보수'라 자처하며 윤석열 탄핵 찬성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데 정작 이들이야말로 국기를 모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

    국기, 국장의 모독에 대해 명시한 형법 105조에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친윤 집회에 참석한 후 태극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 역시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친윤 집회 참석자들의 태극기 모독 행태는 8년 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의 친박 집회에서도 벌어졌던 일인데 똑같이 반복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친윤 집회 참가자들의 시위 시간이 마치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처럼 정해져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홍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청년부위원장은 지난 12월 23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태극기부대의 칼퇴근이 의심'된다는 글을 공유한 뒤
    "왜 태극기부대는 항상 같은 시간에 사라지나?"라며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공유된 게시물에는 '실제로 태극기부대들 4시 되니까 퇴근하는 중'이라고 주장하는 글과 함께 시위 현장이 담긴 사진이 첨부됐다.
    사진 속에는 광화문과 남대문 일대에서 친윤 집회 참가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일정 시간이 지나자 점차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이 담겼다.


    매 집회 때마다 일정한 시간에 퇴근하듯이 철수하는 점과
    집회 때마다 대량의 태극기가 공급되고 집회 후 버려지는 행태로 인해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친윤 집회 주최 측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즉, 친윤 집회 주최 측과 참가자들 모두 "윤석열을 지키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고용된 '알바생'이라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도 수구 단체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아 '시위 알바'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었고
    그냥 집회에 참석하면 일당 2만 원, 목욕을 하고 참석하면 5만 원, 유모차를 끌고 참석하면 15만 원의 일당을 지급했다는 2017년 1월 JTBC 보도 등이 나온 바 있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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