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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650a8f7fabf25.inlive.co.kr/live/listen.pls

Bonjour à tous . . . .

Avec 。Bellefemme" Chanson.World.Jazz..etc 。
  • 64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bellefemme

    @bellefemme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4-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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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정오방송 선곡중...

    Céline Dion - Dansons


    Released on: 2026-04-17

    Associated Performer: Céline Dion
    Arranger, Piano, Producer, Programmer: Luc Leroy
    Arranger, Composer, Lyricist, Producer: Jean-Jacques Goldman


    오랜 시간 이후 다시 만나는 Céline Dion의 신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를 넘어 삶의 균형 위에서 춤추는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 노래에서 ‘춤’은 즐거움이 아니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이다

    Jean-Jacques Goldman 특유의 가사는 늘 개인의 감정을 넘어
    시대와 인간을 동시에 바라본다. 세상이 흔들릴 때 '외줄 위에서'
    이 표현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 속에서 Céline Dion은, 멈추지 말라고.
    특히 이 부분은 이 곡의 핵심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해...

    춤은 개인의 위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연대의 몸짓이 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존엄에 대한 선언, 세상이 무너져도 우리는 서 있어야 하고,
    서 있는 한 움직여야 하며, 움직이는 순간 그 자체가 ‘살아 있음’이기 때문이다...

    벨팜므의 한줄평 : 무너지는 세계 위에서도 끝내 몸을 세우고 움직이려는 인간, 그 마지막 품위로서의 춤이다.

    .....

    춤춰요, 절벽 위에서라도
    가장 높은 능선 위에서도

    깊은 바닥은 떠나고
    날아오르듯, 회전하듯

    춤춰요

    세상이 흔들릴 때
    외줄 위를 걷듯 한 걸음으로

    서로의 몸을 얽고
    손을 맞잡고

    우리의 슬픔을 잊기 위해
    아무것도 우리를 붙잡지 못하게
    .
    .
    .
    춤춰요
    바르게 서기 위해서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목소리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그래도,
    당신과 나

    얼굴과 두 팔로
    끝까지 서서

    춤춰야만 합니다
    .
    .
    .



    Dansons, au-dessus des abîmes
    Aux arêtes des cimes
    Et les bas fonds, quittons
    Volons, valsons
    Dansons, quand le monde vacille
    Sur un pas, sur un fil
    À nos corps emmêlés
    Nos mains nouées
    Pour oublier nos peines
    Que rien ne nous retienne
    Ne nous retienne

    Dansons, au-dessus des grands vides
    Que nos souffles nous guident
    Les corps à l'unisson
    Jouez violons

    Dansons, ce soir il y a bal
    Au milieu des étoiles
    Envers et contre nous
    Doux rendez-vous

    Flottons, front contre front
    Flocons sur l'horizon
    Flocons sur l'horizon

    Dansons, pour être et rester droits
    Parce qu'on se le doit
    Pour tous les immobiles
    Tous les sans voix ni loi
    Parce que c'est inutile
    Parce que toi et moi
    Nos visages, nos bras
    Malgré tout puisqu'on ne peut danser que debout

    Dansons, inventons nos vertiges
    Avant que l'on se fige
    Quand l'univers hostile
    Une idylle, une île
    Dansons au-dessus des abîmes
    Aux arêtes des cimes
    Tournons puisque le monde
    Ne tourne plus r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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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0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4-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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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Épilogue - Du point de vue de la fille
    ...에필로그 - 딸의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간은,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어릴 적에는 그저 크고 단단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이제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통증을 견디는 모습으로 제 앞에 서 계십니다.
    그 모습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아립니다.

    이번 시간을 지나오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결국 서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회복을 바라며 곁을 지키던 시간 속에서,
    저는 제 몸과 마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사랑하려 합니다.
    더 강해지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약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더 많이 해내려 하기보다,
    함께 무사한 하루를 보내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걸음은 예전보다 느려졌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값진지 저는 이제 압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걷는 제 마음도,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습니다.

    부디 이 시간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기억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시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평범한 봄날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평범함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딸로서, 저는 오늘도 아버지의 회복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조용히 오래도록 기도합니다.


    ... Votre fille Hannah qui prie pour vo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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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0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4-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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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ril, le temps où nous réapprenons à marcher ensemble
    ...4월, 우리가 다시 걷는 시간


    4월은 종종 잔인한 달이라고들 말한다.
    계절은 분명 봄으로 향하고 있는데, 마음은 그 온기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꽃은 피어나고 바람은 부드러워지는데, 삶은 오히려 더 단단한 무게를 우리에게 건네기도 한다.

    아버지는 한 달이 넘는 병원 생활을 마치고 이제 집에서 조심스레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던 다리를 수술하고, 다시 걷기까지 무려 5년이 넘는 재활의 시간을 견뎌낸 분이다.
    휠체어에 의지하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지나 두 발로 땅을 딛게 되었을 때의 기적 같은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부상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다시 수술대에 오르고,
    다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산책이라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아온 사고는, 삶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아무리 애써 쌓아온 회복의 시간도 한순간에 멈춰 설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아버지에게만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 모두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간병이라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고, 서로의 숨을 맞추는 일이다.
    하루가 길어지고, 몸은 점점 지쳐가며, 마음마저 조용히 닳아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나 역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건강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 처럼 멀리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에는 돈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처럼 느껴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건강이 무너지면,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쉽게 의미를 잃는지,
    그리고 그때 비로소 보인다. 우리가 진짜로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족이라는 존재도 그렇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느껴졌던 사람들이, .... 어느 날은 가장 절실한 이유가 된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 머물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들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를, 우리는 종종 잃어버릴 뻔한 순간에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4월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서둘러 안겨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4월은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자리에도 새살이 돋듯, 우리의 마음과 몸 역시 천천히 회복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애쓰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지켜내는 방향으로.
    나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가족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삶으로.

    결국 삶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함께 견뎌낸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건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용히 다짐해본다.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자주 돌아보며,
    무엇보다도 서로의 안녕을 먼저 살피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의 회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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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0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3-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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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샹송, 노래 속에 흐르는 프랑스의 삶
    # La Chanson, la vie française dans une chanson

    프랑스 음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샹송 Chanson 입니다.
    프랑스어에서 샹송은 단순히 “노래”라는 뜻이지만,
    음악 장르로 말할 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중가요가 아니라 프랑스인의 삶과 감정을 담아낸 이야기 있는 노래,
    다시 말해 한 편의 시처럼 들려오는 음악입니다.

    샹송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 시대에 프랑스 남부를 떠돌던 음유시인들이 사랑과 전쟁,
    자연을 노래하던 전통이 그 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샹송의 모습은 19세기 말,
    파리의 카바레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에는 예술가와 시인, 음악가들이 모여들었고,
    작은 무대에서 노래와 시가 어우러지는 밤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카바레인 Le Chat Noir 같은 장소에서는,
    음악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예술과 삶을 나누는 대화처럼 여겨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샹송은 프랑스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삶의 상처와 희망을 음악 속에서 찾았고,
    그 감정을 노래로 표현한 가수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Édith Piaf입니다.
    그녀의 대표곡 La Vie en rose 는 전쟁 이후의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곡으로, 지금까지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기는 흔히 샹송의 황금기라고 불립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Jacques Brel, Charles Aznavour, Georges Brassens 같은 아티스트들은
    샹송을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문학적인 예술 음악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Ne me quitte pas 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노래이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집니다.
    또 La Bohème 는 가난했던 젊은 예술가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로,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꿈을 꾸던 예술가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샹송의 가장 큰 특징은 가사가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멜로디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 가난했던 젊은 시절,
    파리의 거리 풍경 같은 것들이 시처럼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샹송 가수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음악이 모두 이런 스타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 세대는 새로운 음악을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록앤롤과 영국의 팝 음악이 프랑스로 들어오면서
    프렌치 팝 French Pop 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악은 흔히 예예 Yé-Yé 음악이라고 불립니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Françoise Hardy 와 France Gall 이 있습니다.
    이들의 노래는 샹송보다 훨씬 밝고 경쾌하며,
    젊은 세대의 감정과 패션 문화를 반영했습니다.
    예를 들어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 는 청춘의 외로움과 사랑을
    담은 노래로 당시 젊은이들의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샹송과 프렌치 팝은 서로 다른 음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뿌리를 가진 두 가지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샹송이 이야기와 감정의 깊이를 담은 전통적인 프랑스 음악이라면,
    프렌치 팝은 시대의 트렌드와 젊은 감각을 반영한 현대적인 음악입니다.

    오늘날 프랑스 음악은 이 두 흐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Zaz 같은 가수는 전통 샹송의 감성과 현대적인 팝 사운드를 함께 사용합니다.
    그녀의 노래 Je veux 는 자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곡으로,
    옛 샹송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샹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이 음악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멜로디가 화려하거나 리듬이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사를 이해하고 노래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을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파리의 거리, 센 강가의 바람, 몽마르트르 언덕의 작은 카페 같은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샹송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프랑스인의 삶과 문화가 담긴,
    작은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젊음과 추억,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들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듯,
    샹송을 들으면 한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떠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샹송은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으로 읽는 노래라고 .....


    ......

    Épilogue


    어느 늦은 밤, 조용히 흐르는 샹송 한 곡을 듣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래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파리의 오래된 거리처럼, 샹송의 노래 속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릅니다.
    그 속에는 사랑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도 있고, 꿈을 꾸던 젊은 날의 풍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샹송은 거창한 음악이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가 삶을 살아가며 조용히 꺼내 놓은 한 편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마음에 닿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샹송은 프랑스의 노래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을 닮은 노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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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팜므의 한줄평
    샹송은 노래라기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조용히 다시 들려오는 한 편의 삶의 이야기다.

    La phrase de bellefemme
    La chanson n’est pas seulement une mélodie
    c’est une histoire de vie qui revient doucement murmurer au cœur avec le passage du te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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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3-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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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red Mason Diamond, 1937~
    발행일 - 1997년
    Guns, Germs, and St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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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만 몰랐지?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작은 딸의 웃음 섞인 한마디가,
    조용하던 오후의 공기를 살짝 흔들어 놓았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다 읽었다...? 는 그 책,
    총(Guns), 균(Germs), 쇠(Steel)

    나는 괜히 자존심이 상한 척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묘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정말,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었을까...?

    서재 책꽂이 가장 윗단,
    남편과, 두 딸들이 이미 읽고 책장에 자리한, 묵혀둔 묵직한 752쪽
    저자는 Jared Mason Diamond, 과학자이면서 문명 연구가,
    생물학에서 인류학까지 넘나드는 사유의 여행자.

    나는 첫 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건너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따라가겠다는 다짐으로.

    ...한 질문에서 시작된 거대한 사유

    이 책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단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어떤 민족은 세계를 지배했고, 어떤 민족은 그렇지 못했는가?

    뉴기니의 정치인 얄리가 던진 질문,
    왜 당신네는 그렇게 많은 화물을 가져왔는가?

    그 질문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향한 의문이었다.

    다이아몬드는 답한다. 인종의 우열이 아니라, 지리와 환경,
    그리고 1만 3천 년 전의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문명을 만든 것은 영웅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책의 제목은 상징이다.
    총 - 군사력, 기술 축적의 결과
    균 - 전염병, 면역의 역사
    쇠 - 금속 기술, 도구와 산업의 기반

    그러나 그것은 원인이 아니다. 결과다.
    진짜 시작은 ‘식량 생산’이었다.

    어떤 대륙에는, 길들일 수 있는 가축이 많았고,
    저장 가능한 곡물이 있었으며, 동서로 길게 뻗은 지형 덕분에
    농업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그 작은 차이가, 잉여 식량을 낳고
    잉여는 분업을 낳고, 분업은 기술을 낳았다.

    그리고 결국, 총과 균과 쇠가 만들어졌다.

    문명을 움직인 것은, 천재 한 사람의 번뜩임이 아니라
    토양과 기후, 동물과 씨앗이었다는 사실
    읽는 내내 나는 묘한 겸손을 배웠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울림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사랑해왔다. 음악 역시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
    기후와 언어, 역사와 전쟁이 한 나라의 선율을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문명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앞선 나라, 뒤처진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는, 보이지 않는 오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오만을 조용히 걷어낸다.

    어떤 사회도 본질적으로 우월하지 않다. 다만 조건이 달랐을 뿐이다.
    이 통찰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모든 것을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문화와 선택, 인간의 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완전한 답이라기보다, 거대한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틀 위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좋은 책은,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각을 계속하게 만든다.

    ...작은 딸에게 건네는 마음

    책을 덮으며, 나는 처음의 그 질문을 떠올렸다.
    “엄마만 몰랐지?”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엄마는 늦게 읽었어. 하지만 천천히 읽었단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왜 지금 우리가 여기 있는지 생각하면서.”

    이 책은,
    세계를 지배한 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의 이야기다...


    ....

    # Épilogue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지식을 건넨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딸의 한마디가, 엄마를 다시 책 앞으로 불러왔다.

    문명은 거대한 대륙의 축에서 시작되었지만...
    생각의 문명은,
    이렇게 작은 식탁 위 대화에서 이어진다.

    나는 이제 안다. 총과 균과 쇠는
    인류의 운명을 바꾼 힘이었지만,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은
    질문하고, 읽고, 다시 생각하는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은, “엄마만 몰랐지?”라는
    사랑스러운 도발 한마디였다.

    “별아, 엄마랑 좀 놀아줘.”

    딸과의 대화는 때로는 벽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창문처럼 열린다.
    말은 짧은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세계는 깊다.
    어렵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나는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배우고 있다.
    세상의 속도, 요즘의 언어,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던 질문들까지.

    책 한 권이 세상을 설명해주었다면,
    딸과의 대화는 나를 설명해준다.

    문명의 축이 동서로 뻗어 있었듯
    우리의 시간도 나란히 흐르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 다른 감각, 다른 리듬.
    그 사이를 오가며 나는 조금 더 유연해진다.

    어쩌면...
    총과, 균과, 쇠보다 더 강한 힘은
    이렇게 서로를 향해 건네는 한 문장인지도 모른다.

    엄마, 그건 말이야...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 설렘.

    딸과의 대화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 덕분에
    나는 오늘도 한 발 더 배우고, 조금 더 자란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작은 식탁 위의 토론이
    우리 집만의 문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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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llefemme (@bellefemme)
    2026-02-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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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 raison pour laquelle j’aime la chanson française
    내가 샹송을 좋아하게 된 이유


    ...내가 샹.송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떠올리면,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풍경 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기억으로는 다섯 살쯤 되었을까...?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셨다.
    오디오 전축 앞에 앉아 LP를 올리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내린 뒤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으로 시간을 시작하셨다.
    그 시간엔 말이 거의 없으셨고, 늘 무표정한 모습으로,
    거실에는 음악만 조용히 흘렀다.

    나는 한글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아버지 흉내를 내고 싶어 동화책을 들고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시늉을 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천천히 책을 읽어주셨다.
    그 목소리와 온기, 그 시간의 공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아버지의 향기다.
    친구들은 대부분 엄마의 냄새를 기억한다지만
    나는 유난히 아버지의 스킨 냄새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버버리 특유의 그 단정하고 묵직한 향.
    어릴 적부터 그 냄새 속에서 자라서인지
    지금도 아버지는 여전히 버버리 화장품만 쓰신다.
    참 고집스러운 분이다.

    하지만 그 고집 덕분에
    내 기억 속의 음악과 책과 커피,
    그리고 샹.송이 함께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그 음악이 무엇인지 몰랐다.
    클래식인지, 샹.송인지, 칸소네인지,
    유럽의 음악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집 안을 채우는 소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그저 집의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흘러나오던 음악들은
    클래식부터 샹.송, 칸소네까지
    아버지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유럽 음악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영.미 팝을 배.워.서 듣기 전에
    유.럽 음악을 먼저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영어 가사는 잘 들리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처럼
    프랑스어도 몰랐지만,
    샹.송은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게 되었다.

    뜻.은 .몰.라.도..

    멜로디와 발음, 숨의 길이, 감정의 흐름은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스무 살, 여대생 이 되었을 때도
    나는 유행하는 팝송보다
    이상하게 샹송 쪽으로 더 귀에 담겼다.
    모두가 아는 노래보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오래된 목소리들이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유년시절 포함해서

    어.느.덧...
    그렇게 수십 년이 넘도록
    지금도 샹.송을 듣고 있다.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20년 넘게 인.터.넷 방.송까지 하게 되었고,
    여전히 이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

    나에게 샹.송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유년의 거실에서 시작해
    청춘의 혼란을 지나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삶이 음악을 핑계로
    나를 놓지 않으려 애써온
    아주 오래된 기억의 방식이다

    ..
    Alors peut-être que je ne peux pas dire
    que la chanson est simplement mon goût.
    Nous avons vécu trop longtemps ensemble,
    et traversé trop de temp

    그래서 아마
    나는 샹.송.을 취.향 이라고 말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함께했고,
    너무 많은 시간을 건너왔으니까.

    ...

    Pour moi, la chanson est ce fil invisible
    qui relie mon enfance, ma jeunesse
    et la personne que je suis aujourd’hui.
    Une passion tenace,
    profondément intime.

    나에게 샹.송은
    유.년.과 청.춘,
    그리고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지독하고도,
    아주 개인적인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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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llefemme (@bellefemme)
    2026-02-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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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Chan-wook, 朴贊郁, 1963 ~
    데뷔작품: 달은...해가 꾸는 꿈 1992
    활동 연대: 1980, 1990, 2000, 2010, 2020 ...

    # Park Chan-wook, rester fidèle à son propre monde


    ...오프닝과 클래식 음악
    서.사...의 시작이 아니라 ‘정서의 선.포’

    박.찬.욱 영화에서 오프닝은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는 첫 장면에서 이 영화가 어떤 감정의 세계에 속하는지를 먼저 선언한다.

    그 수단이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복수는 나의 것 의 절제된 음계,
    올드보이 의 바로크적 선율,
    친절한 금자씨 의 종교음악에 가까운 화성...
    아가씨 에서 반복되는 왈츠와 고전적 리듬...
    이 음악들은 시대 재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비극,욕망,아이러니를 예고하는 서.곡이다.

    특히 박찬욱은 클래식을 ‘고상한 음악’으로 쓰지 않는다.
    폭력과 결합시키고,
    파멸 직전에 배치하며,
    도덕적으로 불편한 장면에 겹쳐 놓는다
    이로 인해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아.름다운데, 불.길하다.”
    이 이중 감정이 바로 박찬욱 영화의 출발점이다.

    ...화면 구도와 색채

    영화라기보다 ‘움직이는 회.화’...

    박찬욱의 미장센은 영화적이라기보다 회.화.적이다....
    그는 장면을 ‘촬.영’하지 않고 ‘배.치’한다...

    ...프레임 속 인물의 위치

    인물을 화면 중앙에 두는 것을 피한다
    문틀, 창, 계단, 병풍, 액자 같은 경계 구조물을 적극 활용한다
    인물은 늘 무엇인가에 가려지거나, 분리되어 있거나, 갇혀 있다
    이는 서사를 설명하지 않아도
    인물이 처한 심리 상태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색채의 의미화

    박찬욱의 색은 사실적이지 않다. 항상 의미를 띤 색이다.

    붉은색, 욕망, 피, 죄책감
    녹색, 부패, 은폐, 비밀
    흰색, 순결이 아니라 ‘강요된 도덕성’
    검은색, 죽음보다 ‘결심’

    친절한 금자씨의 흑백과 컬러 분할,
    아가씨의 일본식 색조 대비는,
    미술관에서 전시 가능한 수준의 색 설계다.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색의 감정’을 경험한다.

    ...카메라 움직임

    감정을 따라가는 비현실적 시점
    박찬욱의 카메라는 현실적 시점에 충실하지 않다.
    불필요하게 길게 이동하고,
    갑작스럽게 인물을 떠나며,
    때로는 인물보다 ‘욕.망’이나 ‘기.억’을 따라간다

    대표적인 예가, 올드보이의 복도 롱테이크,
    아가씨 의 계단과 복도를 오가는 시선이다.
    이 카메라는 관객에게 말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다.”

    ...배우 연기와 과장된 리액션

    자연주의가 아닌 ‘연극적 리얼리즘’
    박찬욱 영화의 연기는 종종 과.하.다 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는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스타일이다.

    그는 배우에게, 현실적인 연기보다 정서적으로 정확한 연기를 요구한다.
    표정은 크고, 대사는 리듬을 타며, 침묵조차 계산되어 있다
    이는 연극적이지만,
    그 덕분에 영화는 현실을 초월한 비극 구조를 획득한다.

    특히 조연 배우들까지
    하나의 ‘톤’ 안에 정확히 맞춰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은
    박찬욱 연출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자 강점이다.

    ...박.찬.욱 영화의 정서적 본질

    박찬욱은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복수는 구원을 주는가...
    욕망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도덕은 누가 정의하는가..

    그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아름답게 설계된 지옥 안에 데려다 놓는다.

    클래식 음악, 회.화.적 화면, 과.장.된 연기, 잔.혹.한 서사.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감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

    ...정리하면

    박찬욱 영화는 ‘이야기를 보는 영화’가 아니라
    감각과 윤리를 동시에 시험당하는 영화 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

    # Épilogue
    Qui est Park Chan-wook, du point de vue de Bellefemme


    박찬욱은 설명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관객에게 친절하지도, 쉽게 이해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끝까지 묻는다.
    당신은 이 감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그의 영화는 언제나 아름답게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화면은 정교하며, 인물들은 단정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곧 균열을 낸다.
    질서 정연한 프레임 속에서 욕.망은 꿈틀대고,
    고상한 음악 아래에서 윤.리는 무너진다.

    박찬욱은 폭력을 보.여주기 위해 폭.력을 쓰지 않는다.
    그는 폭력이 왜 미.학으로 포장되어 왔는지를 폭로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잔혹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피는 장식이 아니라 질문이며,
    복수는 쾌감이 아니라 구조다...

    배우들은 그의 세계에서 현실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감정의 상징이며, 욕망의 도형이다.
    조금 과장된 눈빛과 침묵은
    현실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박찬욱은 배우에게 연기를 맡기지 않는다.
    그에게 배우는 하나의 색이고, 하나의 선이며, 하나의 리듬이다.

    무엇보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국내든 해외든, 장르든 예.술영화든
    자신이 설계한 감.각의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 집요함이 때로는 불.편함이 되고,
    바로 그 불편함이 그의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가 된다.

    나의 시선에서 박.찬.욱은
    한국 영화가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 하나를 완성한 감독이다.
    정서로 설득하지 않고,
    미학으로 굴복시키며,
    마침내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그의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보다...
    이상하게 남아 있는 감각을 더 오래 붙잡게 된다.

    그리고 그 여운 속에서,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아,

    이 감독은 끝까지 자기 세.계.를 배.신.하지 않았구나...

    Ah... jusqu’au bout, ce réalisateur est resté fidèle à son propre monde.

    Bravo. Magnifique, Park Cha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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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2-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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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어쩔수가 없다 (NO OTHER CHOICE, 2025)


    개봉: 2025.09.24.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스릴러, 코미디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139분
    배급: CJ ENM


    ...시간을 두고 다시 보았을 때,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영화가 있다.


    작년 여름, 작은딸과 극장에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보았다.
    그때의 관람은 비교적 담담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장면을 넘기며, 엄마와 딸이라는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미 수없이 증명된 배우였고, 그날의 관람은 ‘확.인’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른 뒤, 올해 며칠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이 영화를 만났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화면을 멈추지 않고, 다른 생각을 끼워 넣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그제야 이 영화가 단순한 서사나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또렷해졌다.
    첫 관람에서는 지나쳤던 침묵의 길이, 시선이 머무는 위치, 감
    정이 폭발하지 않고 눌려 있는 순간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병헌의 연기는 다시 볼수록 더 단단해진다.
    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숨기고, 미루고, 끝내 꺼내지 않는다.
    그 절제 속에서 인물은 더욱 현실에 가까워지고, 관객은 그 인물의 내부로 천천히 끌려 들어간다.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판단할 작품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관객의 삶이 조금 달라진 뒤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다.

    그래서 이 리뷰는 뒤늦게 쓴다.
    첫 감상이 아니라, 두 번째 관람 이후에...
    이 영화가 내 안에서 충분히 가라앉은 다음에...


    ... 스토리

    이병헌이 연기한 만수는 25년 경력의 제지 기술자다.
    직업적 자부심도, 가정도, 삶의 리듬도 안정된 인물이다.
    영화의 시작은 그가 이미 ‘인생을 완성했다’고 믿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 감정도 없이 말한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한 문장은 만수의 인생을 순식간에 절단한다.

    그는 재취업을 노력의 문제 라고 믿는다.
    석 달이면 충분하다고, 자신의 경력과 성실함이면 어디든 필요로 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나이는 경.쟁.력이 아니라 감점 요인이 된다.
    경력은 고.비.용 인.력 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기술은 더 이상 현장에서 존.중받지 않는다.

    마트 아르바이트, 반복되는 면접 탈락, 주택 압류 위기
    가족 앞에서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하지만, 존엄은 조금씩 닳.아간다.

    결정적 전환점은 과거 몸담았던 문 제지 와의 재회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박희순이 연기한 ‘선.출’ 반장은 조직에 순응하는 새로운 관리자다.
    만수의 경력은 오히려 조직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굴욕적인 면담 이후, 만수는 깨닫는다.
    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빼.앗거나, 만.들어야 한다.

    이후 영화는 취.업 스.릴.러 라는 독특한 방향으로 전환된다.
    만수는 폭력적이거나 충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방식으로 시스템의 빈틈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가 지키고 싶었던 ‘가.족을 위한 선택’과
    점점 사라지는 ‘자기 자신’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끝내 명확한 구원이나 도덕적 판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남긴다.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연출과 장르 운용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스릴러와 코미디의 균형이다.
    웃음은 상황에서 발생하고,
    긴장은 현실에서 증폭된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고,
    긴장되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감독은 블랙코미디를 유.머 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한다.

    특히 중반 이후, 취업 과정을 하나의 게임 구조처럼 설계하면서도
    그 규칙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차갑게 드러낸다.

    ...이병헌의 연기

    이병헌은 이 작품에서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눌러 담는다.

    분노는 표정이 아니라 호흡에서 나오고.
    절망은 눈물이 아니라 자세에서 드러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만수가 끝까지 자신을 피.해.자 라고 규정하지 않는 태도다.

    그는 사회를 원망하지만,
    동시에 그 규칙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이 미묘한 자기모순을 이병헌은 과장 없이 구현한다.
    춘사,청룡 수상이 납득되는 연기다.

    ...손예진과 박희순의 활용

    손예진은 감정적 버팀목이 아닌, 현실을 직면하는 배우자로 그려진다.
    위로보다 질문을 던지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박희순의 선출은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다.
    그는 살아남은 자 이며, 관객에게 불편한 거울이 된다.

    이 영화에는 명확한 악인이 없다.
    모두가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촬영과 음악

    촬영은 전체적으로 차갑고 건조하다.
    프레임은 점점 만수를 압박하는 구조로 바뀐다.

    초반, 여백이 있는 구도
    후반, 밀폐된 공간, 낮은 천장, 답답한 앵글

    음악 역시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등장해, 현실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든다.

    ...리뷰

    어쩔수가 없다 는 실업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존엄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무너지는가 를 묻는 영화다.
    이 작품의 용기는, 관객에게 위로를 주지 않는 데 있다.
    노력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말도 하지 않고
    가족이 모든 것을 구원해준다는 환상도 거부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정말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고, 오래 남는다.
    엔딩 이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어쩔수가 없다 는 한국 사회 중년 남성의 위기를 빌려,
    ‘선.택이 사라진 사.회’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2025년 가장 완성도 높은 사회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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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llefemme (@bellefemme)
    2026-01-3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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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Épilogue


    유년 시절,
    TV 화면 속 실비 바르탕은
    나에게 가수라기보다
    하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존재였다.

    바비 인형처럼 길게 뻗은 팔다리,
    빛을 머금은 듯한 하얀 피부,
    노래할 때마다 찰랑이던 긴 금발 머리
    그 모습은 마치
    내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
    어느 날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무대 위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건 노래 이전에
    선망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사춘기에 접어들며
    그 선망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왜?.. 나는 푸른 눈동자가 아닐까,
    왜?.. 실핏줄이 비치는
    백인의 피부가 아닐까,
    왜?.. 금발이 아니라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을까?..

    거울 앞에서 그런 질문들을?..
    혼자서 수도 없이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금발로 염색하겠다는 다짐은
    막연한 유행이 아니라
    그 시절 나름의 정체성 실험이었는지도 모른다.

    실비 바르탕은
    나에게 프랑스 였고,
    동시에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의 세계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의 삶에서 유일하게
    직접 공연장에서 만난 프랑스 가수는
    파트리샤 카스였다.

    무대 위의 그녀는
    어린 시절의 실비 바르탕처럼
    눈부시게 반짝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모든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밀도가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젊음의 환상 대신
    겪어낸 사랑,
    견뎌낸 상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선택들이
    차분히 스며 있었다.

    파트리샤 카스는
    관객을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인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래할 뿐이다.

    그 공연을 보고 나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린 시절 내가 선망했던 것은
    금발도, 푸른 눈도 아니었음을
    그저
    자기 삶을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동경했던 것이었음을

    실비 바르탕이
    나에게 꿈의 얼굴이었다면,
    파트리샤 카스는
    삶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취향이
    어린 동경에서 성숙한 공감으로
    이동한 순간처럼 남아 있다.

    프랑스 샹송은
    언제나 이렇게 내 삶에 들어왔다.
    나보다 먼저 살았고,
    나보다 깊이 아파했고,
    그래서 나보다 정확하게
    감정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들을 따라가며
    조금씩
    나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En repensant une dernière fois à Patricia Kaas,
    j’aimerais écrire ce que son concert a laissé en moi,
    comme une résonance qui ne s’est jamais vraiment tue.

    파트리샤 카스를 마지막으로 다시 떠올리며,
    나는 그녀의 콘서트가 내 안에 남긴 것을 쓰고 싶다.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적 없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울리고 있는 하나의 공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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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À suivr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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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bellefemme (@bellefemme)
    2026-01-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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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s icônes de la chanson française
    프랑스의 아이코닉한 가수들


    ....몇 사람의 목소리로 정리해본다.

    그 목소리들은 단순히 노래를 잘했던 가수가 아니라,
    한 시대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얼굴들이다.

    ...그 시작에는 언제나
    에디뜨 피아프가 있다.

    피아프의 목소리는 아름답다기보다 필요했다.
    전쟁과 가난, 상실과 생존의 시간 속에서
    프랑스는 그녀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La Vie en rose는
    현실을 장밋빛으로 왜곡한 노래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장밋빛이 아니던 시대에
    사랑만큼은 믿어보겠다는, 가장 처절한 낙관일거다.

    피아프의 샹송은 감정을 꾸미지 않는다.
    울음과 고백, 후회와 집착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프랑스 샹송이 인.생을 노.래한 다는 말은
    사실, 피아프 이후에야 가.능해졌다.

    ..
    그 다음 세대,
    프랑스는 전혀 다른 얼굴의 여성을 선택한다.
    실비 바르탕이다.

    바르탕은, 고통을 끌어안은 피아프와 달리,
    세련되고 밝은 표정으로 시대를 건너온다.
    그러나 그녀의 명랑함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
    Comme un garçon 속의 바르탕은
    사랑받기 위해 순응하는 여성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연출할 줄 아는 인물이다.

    프랑스는 그녀를 통해, 여성의 감정이
    순수와 슬픔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했다.
    경쾌함, 욕망, 젊음, 자유.
    샹송은 이때부터, 조금 더 가볍게 걸으면서도
    결코 얕아지지 않는 법까지도...

    ...
    이브 몽탕은
    이 모든 감정들을
    남성의 침묵으로 정리한 존재다.

    몽탕의 노래는
    설명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처럼
    조용히 말을 건넨다.

    Les Feuilles mortes에서
    그는 사랑의 끝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낙엽처럼 떨어진 기억을
    그저 바라볼 뿐...

    몽탕은
    프랑스 샹송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저음에는
    후회도, 체념도, 분노도
    모두 말없이 섞여 있다.

    프랑스가 사랑한 남성상은
    영웅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어른이지 싶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프랑스는 다시 한 명의 여성을 불러낸다.
    파트리샤 까스!

    까스의 목소리는
    이미 모든 것을 겪은 이후의 톤을 가진다.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Mademoiselle chante le blues에서
    그녀는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블루스를 부.른.다. 기보다
    블루스가 되어 서 있다.

    파트리샤 까스는
    프랑스 샹송이
    21세기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인물이다.
    감정은 여전히 깊고,
    표현은 더 절제되었으며,
    고독은 오히려 더 품위 있게 남아 있다.

    이 네 명의 가수를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 음악의 핵심이 보인다.

    프랑스는,
    행복을 강요하지 않았고,
    젊음을 집착하지 않았으며,
    사랑의 실패를 숨기지 않았다.

    대신,
    노래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프랑스 샹송은
    언제 들어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처럼 느껴진다.

    샹송은,
    노래가 아니라 기.록이고,
    유행이 아니라 태.도이다.

    그리고 에디뜨 피아프에서
    실비 바르탕을 지나
    이브 몽탕과 파트리샤 까스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이렇게 말해왔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느꼈던 모든 감정만큼은 끝까지 노래했다.”

    이게 바로,
    프랑스가 노.래해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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