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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17:27우려가 현실이 된 뉴라이트 역사관
- '학술 한류' 사업에 식민지 근대화론 살포
- 외국인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전파하나?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1.02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3대 역사기관의 장으로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이 임명되며 역사 왜곡이 우려됐는데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1일 M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식민지 근대화론이 담긴 책을 공식 출간한 것은 물론 이런 내용을 번역까지 해서 해외에 배포한 걸로 드러났다.
작년 11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란 제목의 영문판 원서를 발간했는데 당시 보도자료에는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 독자들을 위해, 한국 경제사의 흐름을 파헤쳤다고 자평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MBC 취재진들이 내용을 읽어본 결과 해당 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얼룩져 있었음이 드러났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이 빠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며 조선왕조와 달리 총독부는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고 독립 이후 일본과 경제관계가 단절된 후 한국의 산업 생산은 급격히 위축됐다는 투의 내용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광복 이후 현대사에 대해서도 "1987년 민주화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틀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말하며 군사정권의 개발독재를 미화하고 우리의 민주주의 성과를 폄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재호 전남대 교수로 과거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를 미화해 논란이 된 집필에 참여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또한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긴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인 김낙년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과 같은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이다.
김 교수는 MBC의 반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며 "이 책은 김낙년 원장과는 무관하며, 생각이 다른 학자가 있다면 그분도 영어로 책을 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MBC 취재 결과 이 책은 이른바 '학술 한류' 명목으로 예산 지원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 산하 한국학진흥사업단은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신뢰도를 끌어올리겠다며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5년간 50억 원이 지원되는 프로젝트에 이 책이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저자의 요청에 따라 심의를 거쳐 전임 원장이 발간을 승인했다"며, 해당 책이 "연구원의 입장과 같거나 이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결국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일제 강점기 당시 벌어진 일제의 만행을 알아서 감춰주는 것은 물론 일제 덕에 한국이 발전했다는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05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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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17:22尹 체포 직전에도 정신 못 차린 경호처
민주당, "尹 지켜내면 결사항전 근위대 훈장이라도 받을 것 같나?"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1.02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윤석열 지지자들로 인해 혼잡해져 있는 한남동 관저 앞 모습.(사진 출처=연합뉴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및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 예외 사항을 적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경호처가 끝까지 대통령 경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경호처를 향해
"결사항전 근위대 훈장이라도 받을 것 같냐?"고 질타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2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통령 경호처는 기존대로 대통령 경호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2월 31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 당시에도 경호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공지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경호처는 그간 형사소송법 110조에 명시된 "군사상 비밀을 요구하는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규정과 111조에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직무상 비밀에 관한 물건은 감독관공서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들어 수사기관의 수사를 앞장서서 방해해 물의를 일으켰다.
서울서부지법은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에 한해 이 조항을 예외로 적시했고 공수처 역시도 오동운 공수처장이 철문을 잠그거나 바리케이드 등을 설치해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고 대통령 경호처도 쉽게 입장을 바꿀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재 윤 대통령이 머무는 한남동 관저 입구에는 질서 유지를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으며, 대통령 탄핵 찬반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즉각 경호처를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2일 오후 민주당은 노종면 원내대변인 명의로
'윤석열 지켜내면 결사항전 근위대 훈장이라도 받을 것 같습니까? 경호처는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고 법과 원칙에 따라 윤석열 체포에 협조하십시오'
란 제목의 서면브리핑을 내어
"경호처가 마치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 항전에 들어간 근위대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라면 애초에 상황인식과 전제부터 잘못됐다"
고 질타했다.
노 원내대변인은
"윤석열은 나라와 국민, 모든 걸 내던지고 관저 안에 숨어든 비겁자일 뿐"이라며
"끝까지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것은 내란에 가담해 비겁자에게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종준 경호처장을 비롯한 경호처 수뇌부를 향해
"무슨 권한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경호처 직원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려 하는가?
한솥밥을 먹는 동료 직원을 윤석열의 방패막이로 내던지는 패악질을 당장 그만두기 바란다.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고 윤석열 체포에 적극 협조하시라"
고 일갈했다.
또한 공수처를 향해서도
"경찰력의 협조를 받아 과감하게 내란수괴 윤석열을 체포하시라. 만에 하나 공무집행 과정에서 경호처가 조금이라도 방해한다면 미리 경고한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시라"고 당부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06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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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3:41((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마음 따뜻한 글))
비통해도, 주먹밥을 쥔다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수정 2025-01-01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먹밥을 나눠 먹는 광주시민들. 5·18기념재단 제공
잘게 썰어 양념한 버섯을 팬에 달달 볶는다.
간 고기에 불고기 식으로 간장 양념을 해서 바싹 볶아도 좋다.
무엇이 됐든 취향껏 ‘소’ 역할만 할 수 있으면 미리 볶아 한 김 식혀둔다.
그 사이 대용량 밥솥에서는 밥이 끓고 있다.
뜸까지 잘 들여 고슬고슬하게 지어졌으면 참기름 넉넉히 두르고 맛소금을 골고루 뿌려 잘 섞어두자.
갓 지은 밥을 적당히 쥐어 미리 만들어 둔 소를 넣고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다.
한 김 식히면 좋겠지만 뜨거울 때 쥐어야 모양이 잡힌다.
동그랗게 말린 밥을 김 가루에 굴리면 주먹밥 완성이다.
그렇게 큰 밥통 한솥을 다 비울 때까지 주먹밥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대로 된 밥상 차리는 것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여간한 노동이 아니다.
요령 없어 크기 제각각이지만 맛은 있다.
농성장에 가져갈 참이다.
입에 넣는 건 금방인데 만드는 데에는 제법 손이 가는 음식들이 있다.
제 손 거쳐 만들지 않으면 그저 뚝딱인 줄 아는 음식들. 주먹밥, 김밥, 유부초밥 같은 나들이 음식들이 그렇다.
수저와 그릇 놓고 식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노동은 집약적인 수고가 든다.
수저 놓을 형편 못 되는 식사자리가 어디 나들이뿐일까.
급하게 차린 농성장에서 나들이 음식은 거의 주식이고,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광장의 시민들을 먹일 일용할 양식도 나들이 음식이 되기 마련이다.
5월 광주의 주먹밥이 그랬다.
양동시장의 상인들은 쌀밥에 소금 쥐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의 주린 배를 채웠다.
2024년 여의도의 겨울, 먹이기 위한 노동은 자영업자들의 손을 빌려 재현된다.
어느 가게든 선결제가 이어졌고, 상인들은 선결제 물량이 다 나갔더라도 기꺼이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잔을 얻어 마셨다.
광장에 나올 수 없는 이들은 노동의 대가를 기꺼이 흘려보냈고, 그이들의 시간만큼 누군가를 먹였다.
편의점의 핫팩이 동나면, 누군가 상자째 들고 온 핫팩들이 일사불란 나뉘었다.
주머니의 초콜릿이며 사탕이 한데 모여 남태령 집회 장소를 한바퀴 돌기도 했다.
뒷사람 먹으라며 차마 꺼내 먹질 않아 오히려 남았다는 미담이 들려온다.
일상에선 그러려니 하던 당연한 것들이 한순간 무너졌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 여의도를 향했던 이들의 마음은 공포와 용기로 뒤섞여 있었다.
계엄 이전의 일상이라고 뭐 얼마나 자랑할 만했는가?
바닥 모르고 퇴보하던 시절을 살며 우리는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함께 사는 세상을 욕망하고 있었음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증명되고 있다.
사십여년 전 주먹밥 짓는 마음 모여 네 글자를 세웠다.
‘민주주의’.
누군가를 먹이고 싶은 마음, 그게 누가 됐든 배곯지 말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넘실거릴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양동시장 주먹밥이, 전태일의 풀빵이 생각났다.
분절된 사회 속, 각자도생으로 사는 줄 알았건만 이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서로가 서로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공동의 경험이 만들어낼 세상은 여전히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그럼에도 몇걸음 더 걷게 될 것이다.
얼굴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이 서로를 먹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연대다.
여전히 비통한 이 세상에서, 연대로 작동할 세계를 꿈꾸며 주먹밥을 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5886.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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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3:35[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수정 2025-01-0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1일 법원이 전날 발부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체포영장을 “기한 내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윤 대통령 쪽은 “불법 영장”이라며 불응을 예고했다.
법 절차에 따라 사법부가 발부한 영장을 당사자가 부정하고 저항한다면 국가의 법치 시스템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
말 그대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다.
공수처는 내란 주범의 처벌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법치 수호를 위해서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체포영장을 집행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등의 억지 주장을 펴며 수사에 응하지 않았지만, 법원의 영장 발부로 이런 주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더 이상 수사에 불응할 명분이 없다.
더구나 법원은 이번 체포영장에 ‘이 영장의 경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은 예외로 한다’고 명시했다.
두 조항은 군사상 비밀과 공무원의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그동안 경호처가 대통령실·경호처·안가 등의 압수수색을 막아온 근거가 됐다.
하지만 법원은 피의자 체포를 위한 이번 영장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경호처가 윤 대통령 체포를 막을 빌미를 아예 없앤 것이다.
이제 경호처가 영장 집행을 방해한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으로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집행을 방해할 경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특수공무집행 방해죄로 의율할 수 있음을 엄히 경고하는 내용의 공문을 경호처에 어제 전달했다”고 밝혔다.
내란범 처벌을 위한 수사를 국가기관이 방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란 행위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형법 내란죄 조항은 ‘법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법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을 국헌문란으로 정의하고 있다.
만에 하나 물리력으로 영장 집행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내란 범죄가 아니고 뭔가.
윤 대통령 쪽은 체포영장이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 권한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했다.
위헌·위법적 계엄령 선포를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여전히 우기는 것도 구제불능이지만, 어떻게든 처벌을 지연시키려 허무맹랑한 법기술을 동원하는 행태가 철면피 잡범 수준이다.
관저 앞에는 극렬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영장 집행을 방해할 태세다.
이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시간을 벌어볼 심산이라면 치졸하기가 그지없다.
검사 출신이자 현직 대통령으로서 양심이 한줌이라도 남아 있다면 법 집행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75877.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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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3:12((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멋진 글))
거대한 ‘오늘’과 최성일씨
입력 : 2025.01.01
김숨 소설가
10년 전, 그는 거대한 빙벽 앞에 서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빙벽의 높이는 13m 남짓. 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특수미술’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0, 30대를 영화 특수미술의 매력에 빠져 살며 등등 내로라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미술에 참여했다.
제작사에서 ‘빙벽’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재료와 제작 과정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보름 만에 완성한, 다들 감탄하던 빙벽의 수명은 단 이틀.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빙벽을 부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이 큰 만큼 공허감도 컸다.
십수 년 수입이 불안정했던 데다 어떤 배신으로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 된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빙벽을 부순 지 5년여 뒤, 마흔네 살의 그는 알코올중독자들이 입원한 폐쇄병동 휴게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고, 그의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다.
그가 볼펜으로 A4용지에 그린 데생을 우연히 본 직원이 그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선물했다.
그는 스케치북에 알코올중독 환자의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집중하며 스케치를 하다 보면 감정이 고요히 가라앉고 시간이 잔잔히 흘러갔다.
인물화를 그리는 그의 곁으로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인물화가 완성되면 그것의 주인에게 말없이 선물하는 그에게 너도나도 부탁을 해왔다.
“내 얼굴 좀 그려줘.”
“내 어머니 얼굴 좀 그려줘.”
“내 손주 얼굴 좀 그려줘.”
환자들은 그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테이블을 ‘그의 자리’로 비워뒀다.
병동에는 그를 포함해 80여명의 알코올중독자가 입원해 있었다.
입원해 지내는 동안 그는 80여장의 인물화를 그렸고, 모두 선물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태양광 모듈(태양에너지를 직접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셀을 전지판 형태로 가공하여 배열한 것)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완성된 모듈을 들여다보고 있다.
크랙이 가 있는지, 나방 같은 벌레가 붙어 있는지,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껴 있는지, 간격이 맞는지. 일이 많을 때는 12시간 동안 1000개 이상의, 평소에는 600~700개 정도의 모듈 품질을 검사한다.
단순하지만 세심한 집중을 장시간 요구하는 일이다.
“오늘 이대로요, 오늘 이대로.”
오늘 이대로가 있기까지, 그는 100곳에 이력서를 냈다.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이유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기 때문.
마흔 후반(1975년생).
그는 자신이 젊다 생각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아들 도리를 하며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출근을 하는구나. 퇴근을 하는구나. 매일 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어떤 일이라도, 어떤 일이라도….’
그는 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이력서를 냈고 넉 달 전부터 일하고 있는 곳에서 기적처럼 연락이 왔다.
그가 꺾이지 않고 이력서를 ‘또’ 낼 수 있었던 건 누나 덕분.
에디트 피아프만큼 자그마한 누나.
간장 종지 작은 건 참을 수 있어도 속 좁은 건 못 참는 누나는 끝까지 그의 복원력을 믿어주었다.
거대한 것을 좇고 만들 때 그는 평균 사이즈에도 못 미치는, 이기적인 삶을 고집스레 살고 있었다.
“소소한 것이 거대한 거예요. 평범한 것이 거대한 거예요.”
신기루가 그리는 거대함을 버리고, 일상 속에 가만가만 놓여 있는 거대함을 성취하며 진짜 거인이 된 그.
그의 소망은 한 가지.
‘오늘 이대로’ 내일을 사는 모습을 엄마와 누나에게 오래오래 보여드리는 것. 그리고 오늘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사는 것.
“병삼아, 사랑한다.”
“나는 늦지 않았어요.”
그는 늦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해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바라보..지 않아요.
예전에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바라봤어요.”
아침 6시50분.
집을 나서며 그가 하는 다짐은
“오늘도 재밌게 일하자”.
새벽 바다처럼 검푸른 모듈을 응시하는 그는 한없이 젊다.
한없이 거대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205704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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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3:01나락의 시대, 지는 법을 못 배운 사람들
입력 : 2025.01.01
이용균 스포츠부장
야구는 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그렇지 않다
잘못과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아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야구를 제대로 안 해보고 아는 척한 게 틀림없다.
대통령 예비 후보 시절인 2021년 모교인 충암고를 찾아갔을 때다.
투구 폼을 잡으며 다리를 들어올렸는데(리프트 동작), 중심이 뒤로(1루 쪽으로) 지나치게 쏠렸다. 왼발 착지(랜딩 동작) 때 왼손 글러브의 위치는 몸 중심을 벗어났다.
충암고 야구부 주장이 “좋은 성적을 내면 저희를 청와대로 초청해줄 수 있나”라고 물었다. 윤석열 당시 예비 후보는 “내년 졸업해서 야구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겠다. 올해 2관왕이니 떼놓은 당상이다”라고 말했고, 청와대 초청을 약속했다.
‘덕담’인 줄 알았겠지만 고교선수에게 대학 진학을 바라는 건, ‘악담’에 가깝다.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프로구단 드래프트 상위 지명을 바라는 게 맞다.(용산 이전도 계획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야구 역시 (다른 대부분 분야가 그랬던 것으로 드러나듯이) 잘 모르면서, 또는 업데이트 없이 과거 지식에 머문 상태에서 아는 척했던 게 틀림없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헤비 팬이든, 라이트 팬이든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다 안다.
‘매일매일’ 경기하는 야구 종목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야구는 한 시즌 140경기 넘게 치른다.
프로스포츠 종목 중 경기 수가 가장 많다.
우승팀의 승률은 60% 언저리다.
제일 잘하는 팀도 10번 중 4번은 진다.
얼마나 잘 지느냐가, 다음 경기의 승리 확률을 결정한다.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 최초 헌액자 중 한 명인 명투수 크리스티 매슈슨은
“이기면 조금 배우지만, 패하면 모든 것을 배운다”
고 말했다.
그래서 야구는 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전, 마이너리그에서 3~4년 정도 경험을 쌓는다.
실수와 실패와 패배를 충분히 겪은 뒤라야 제대로 승부할 줄 알고, 성공할 수 있다는 철학이다.
실수와 실패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야구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고, 존중은 스포츠정신과 페어플레이의 기본이다.
메이저리그 최다승 2위 감독인 토니 라루사는
“야구의 신은 언제나 야구라는 경기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패배라는 벌을 내린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지는 법을 모르는(모른 척하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나락 간다’는 나락의 시대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받는다.
내신에서, 수능에서, 취업 결정에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회복 불가능하다는 공포를 체득한다.
그러니 첫 훈장과 첫 명함이 중요하다.
의대 쏠림과 대기업 선호는 당연한 결과다.
섣불리 연애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 역시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패배가 가져올 나락의 공포를 회피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이 아니다’라고 우기기 일쑤다. 그 어떤 합리적 판단도 거부하고 버틴다.
패배에 대한 인정은커녕 ‘진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부정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계엄은 반대인데, 하야도 안 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안 되는 이상한 논리를 자신있게 얘기하는 단계에 이른다.
국민에 대한 존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걸 못하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없다.
야구를 해봤다면, 야구를 안다면 얼른 잘못을, 패배를 인정하는 게 맞다.
2025년이 밝았다.
그래도 애써 희망을 찾는다.
야구가 보여준 적이 있다.
1994년 시즌 막판 OB 베어스는 감독의 폭행 및 얼차려 시도가 있었고,
선수들이 항명하며 팀을 떠났다.
팀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그러나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한 뒤 자진사퇴했고 OB는 새 감독 체제에서 이듬해인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새 감독을 맡은 김인식 감독은, 나중에 국민 감독이 됐다.
나락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은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배워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205702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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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2:55제주항공 참사에 소금 뿌리는 가짜뉴스, 혐오발언들
입력 : 2025.01.01
제주항공 참사로 국민이 고통에 빠져 있는데, 사고 원인을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까지 횡행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피해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혐오성 글들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유언비어 유포와 선동은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난국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유가족에겐 2차 가해가 될 뿐 아니라 사고 장면을 지켜본 국민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엄단할 필요가 있다.
참사 이후 극우 유튜버들이나 일부 누리꾼들이 퍼뜨린 거짓 정보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특정 정치 세력의 자작극” “북한의 대남 공작” 등 허위 사실과 음모론을 뒤섞은 것들인데 아무런 근거가 없다.
심지어 사고 영상을 언론에 제보한 시민이 각종 음모론과 억측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영상이 매우 차분하게 촬영됐다는 점을 들어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식이다.
이 시민은 협박전화까지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
여성을 혐오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하는 무도한 가짜뉴스들도 많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고 여객기 기장이 여자였다’ ‘기장이 여자라 랜딩기어가 안 나온 걸 몰랐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데 당연히 거짓이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유족들이 보상금을 타기 위해 일부러 공항에 진을 치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재난안전분야의 허위정보 실태와 대응방안’ 보고서를 보면 “재난·안전사고에서는 현장상황에 대한 정보의 공백을 메우고 일반 대중과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뉴스가 폭증한다.
요즘의 탄핵 정국처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세월호·이태원 참사 때 유언비어의 확산, 피해자를 겨냥한 혐오로 혼란을 경험했고, 유족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참사는 대통령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로 비롯된 정치적 혼란 속에 벌어진 대형 재난인지라 국민의 고통이 더 크다.
이 와중에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반사회적 행위가 벌어지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엄정한 조치는 당연하다.
지금은 불안과 분노가 우리 사회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요청되는 시기다.
가짜뉴스와 혐오발언을 발견하는 대로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18150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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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2:01(가)
미술관으로 간 명랑한 중년 | 7화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천재작가의 최후
[리뷰] 서울 한가람 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나서
25.01.01
문하연(julia2201)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이 서울에 상륙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의 작품 10점과 바로크 화가 작품 57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유화로 그려진 완성작이라 규모가 작지 않다.
다른 바로크 화가들의 좋은 작품도 많았지만, 이 장에선 카라바조 작품과 삶 위주로만 살펴보려 한다. 먼저 그의 초기 대표작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악마적 재능'을 가진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 개인 소장관련사진보기
머리에 꽃을 꽂은 미소년이 가운뎃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리고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린 채 관객을 바라본다. 통증으로 눈가엔 눈물이 맺혔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분홍 장미가 꽂힌 투명한 꽃병, 꽃병에 비친 실내 풍경, 테이블 위의 체리, 손가락을 깨물고 있는 도마뱀의 꼬리까지 얼마나 세밀한지 그림이 아니라 스냅사진 같다.
오른쪽에서 들어온 빛은 소년의 어깨 위로 떨어져 그의 동작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소년의 표정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꽃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편 문이 열린 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운뎃손가락은 남자의 성..기를 의미하고 도마뱀은 유혹, 고통을 상징한다. 고로 유혹에 넘어가면 성병에 걸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동성 연인이라는 견해도 있음) 자화상이든 초상화든 저런 독특한 자세를 그렸다는 것, 정물화와 자화상을 한 작품에 담고 있는 점은 매우 새롭다.
그가 이렇게 그린 이유는 간단하다.
"난 인물화도 정물화도 이 정도 그려! 그러니 나에게 그림을 맡겨!"
사실적이고 디테일이 엄청난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그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뜻밖에도 법원이다.
그는 무려 15번 고소·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7번 투옥된 전과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그림 찬스'를 썼고, 그의 작품에 매료된 성직자와 귀족들은 그를 꺼내주는 대가로 작품을 받았다.
다혈질에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그는 테니스(유사한 스포츠) 경기 중에 라누치오 토마소니와 시비가 붙자, 그를 죽여버린다.
토마소니도 만만치 않은 집안이라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데, 그는 사형을 면하고자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이름 앞에 '악마적 재능을 가진'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카라바조(1571~1610)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작가군을 지칭하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화가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우리가 익히 아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아서 카라바조란 이름을 사용했다.
종교화 그려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
5살에 흑사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카라바조는 13살에 티치아노의 제자인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4년간 도제 교육을 받는데, 이때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시 그가 속해있던 롬바르디아 지역 화풍과 훗날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의 연관성에서 유추해 보면 일상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 기법과 빛과 어둠을 대비하는 기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까지 사망하자 20살 무렵 로마에 입성한 카라바조는 뒷골목을 떠돌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푼돈을 받고 그림을 그렸고, 주세페 체사리 공방에 들어가 기계적으로 꽃과 과일을 그렸다.
이에 신물이 난 카라바조는 공방을 나와 로마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제로 한 '점쟁이', '카드 사기꾼'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으로 델 몬테는 1595년 카라바조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리고 와 함께 지낸다.
당시 로마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기를 맞았고, 가톨릭과 예수회 교회들은 신자를 모으기 위해 대대적인 종교화 제작에 들어갔다.
카라바조도 재단화를 의뢰받아 세 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마태오의 영감, 성 마태오의 순교) 이로 그는 단박에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성 토마스의 의심 ⓒ 우피치미술관관련사진보기
이 작품은 복제본이 많기로 유명한 '성 토마스의 의심'으로 토마스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그의 상처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는 장면이다.
손톱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토마스의 옷은 낡다 못해 어깨 시접이 벌어져 있고,
그 뒤로 호기심 가득한 사도들이 구경꾼으로 등장한다.
마치 여길 보라는 듯 손가락을 뻗어 시선을 유도하고, 관객은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곧이어 창백한 얼굴의 예수를 마주한다.
그는 등장인물들을, 심지어 예수조차도 성스럽게 그리지 않았다.
배경은 어둡고 조명에 의한 집중도는 올라간 가운데 묘사는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마치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생생하다.
그는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종교화를 그렸는데, 이 때문에 너무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퇴짜 맞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런 스타일을 고집한 이유는 그가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을 표현해야 더 사실적인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 토마스도, 뒤의 사도들도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의심 많고 가난한 '인간'들이다.
▲그리스도의 체포 ⓒ 우피치 미술관관련사진보기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체포'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유다는 예수가 누군지 알리기 위해 그의 볼에 키스했고, 예수를 알아챈 군인이 그를 체포하는 장면이다.
예수 뒤에서 손을 올리고 도망치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고, 맨 뒤에서 등불을 들고 있는 이는 말쿠스(그리스도 체포 현장에서 귀를 잘렸고, 예수가 그의 귀를 치료했다는 인물) 인데, 그의 얼굴에 카라바조는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성화에 종종 자기 얼굴을 넣었다고 한다).
믿었던 제자의 배신으로 잡혀가는 예수의 얼굴은 비참해 보이고, 두 손은 긴장감으로 인해 깍지를 꼭 끼고 있다.
'성 토마스의 의심'에 나오는 토마스와 '그리스도의 체포'에 나오는 유다는 동일 모델로 보이는데, 이는 카라바조가 의도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그가 왜 키아로스쿠로(격렬한 명암 대조를 통한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기법)의 대가인지, 빛의 거장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스도를 체포하기 위해 손을 뻗은 군인의 갑옷을 보라.
반사된 빛이 눈이 부시다.
무대 위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자포자기한 표정의 예수에게 고통을 초월한 성스러움보단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난다.
4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맞은 최후
▲이 뽑는 사람 ⓒ 우피치 미술관관련사진보기
카라바조가 종교화만 그린 것은 아니다.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나 장르화도 그만의 스타일로 그렸는데, 이 그림은 '이 뽑는 사람'이다.
작품 크기도 크고 얼마나 현장감이 생생한지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야무지게 펜치를 쥐고 이를 뽑기 위해 어금니를 악문 남자와 공포에 질려서 한쪽 손을 번쩍 올리는 남자 사이의 긴장감은 보는 이의 어깨까지 움츠러들게 한다.
이를 뽑히는 남자의 입가에 선혈이 흐르고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로 긴장감은 극도로 상승해 저 장면을 바라보는 맨 앞의 작은 아이 뒷모습만으로도 저 아이가 얼마나 겁을 먹었을지 짐작이 간다.
더욱 놀라운 건 그는 모든 그림을 밑그림 없이 곧바로 그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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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2:01(나)
미술관으로 간 명랑한 중년 | 7화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천재작가의 최후
[리뷰] 서울 한가람 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나서
25.01.01
문하연(julia2201)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나폴리로 향하는데, 나폴리에선 몸을 숨겨주는 대가로 에 '7가지 자비로운 행동'이란 주제의 그림을 의뢰한다.
작품이 완성되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 이들로부터 작품 의뢰가 밀려든다.
나폴리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그는 급작스럽게 몰타섬으로 떠난다.
몰타섬에서 기사 작위를 받으면 사면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몰타에 도착한 그는 대영주의 초상화를 그려줬고, 모든 게 그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기사 작위도 받고 사면도 받고, 성 요한 대성당에 '세례자 성 요한의 참수'라는 서양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도 완성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인데, 제 버릇 개 못 주고 여기서도 귀족과 싸우다가 그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다.
또다시 탈옥한 그는 다시 시칠리아섬 인근 시라쿠사로 도망친다.
시라쿠사에서 에 걸 그림을 그려주고 그는 또 안위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도망자인 그는 늘 불안에 떨었고, 실제 자객에(몰타 기사단, 혹은 토마소니가 보낸 걸로 추측) 의해 크게 다치기도 한다.
3년 만에 다시 돌아간 나폴리에선 그를 환대했다.
이때 로마에서는 카라바조의 광팬이자 교황의 조카인 시피오네 보르게제 추기경이 그의 사면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로마로 돌아간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마지막 역작을 준비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 한가람 미술관관련사진보기
그 그림이 바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다.
이 주제로 그려진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골리앗의 머리를 쥔 다윗의 얼굴엔 승리의 기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 그림은 흔히 카라바조의 이중 자화상으로 해석한다.
젊은 카라바조(다윗)가 지금의 카라바조(골리앗)의 머리를 쥐고 회한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목이 잘린 채 고통으로 가득 찬 골리앗을 바라보는 다윗의 얼굴은 복잡하다.
죄 많은 자신의 목을 잘라 용서를 구하는 것 같다.
로마에선 카라바조의 사면 소식이 들려왔고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들고 로마로 가는 도중 질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도피 생활 4년 만에 일이었고,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범죄자를 두둔한 권력자들
전시를 보고 돌아와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
너무나 천재적이고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만일 그가 로마에서 여러 번 투옥당했을 때 꺼내주는 성직자나 귀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죄에 대한 벌을 받았을 테고, 그랬다면, 망나니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법!
로마에서도, 나폴리에서도, 몰타에서도, 시라쿠사에서도 권력자들은 그의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이득)만 준다면 그를 숨겨주고 보살폈다.
그러면서 그의 죄는 점점 더 과감해졌고 죄질은 더욱 불량해졌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그가 제일 나쁘지만, 그런 그의 기질을 키우고 부채질한 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그를 두둔한 권력자들이다.
잡범이었을 때 더 큰 범죄를 일으키지 않게 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득을 위해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여정이 현 우리 정치 상황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인 사람에게,
천재의 독창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바로크가 뭔지 궁금한 사람에게 카라바조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는 오는 2025년 3월 27일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 글과 그림은 전시 도록을 참고해 썼습니다.
원문에서 그림을 보며 읽어 보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246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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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1-02 02:00‘12·3 사태’에 다 있다…‘제왕적 대통령제’와 작별해야 할 이유②
입력 : 2025.01.01
박순봉 기자 유새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는 왜 제왕적 대통령제와 이별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온전히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이고 위헌적인 판단의 결과물이지만, 대통령제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작동시키지 못해 시스템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 사람의 오판으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 진영 대결이 극단에 이르러 ‘상식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권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극적 최후 맞은 대통령들
한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가원수로서 ‘만인지상’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마지막에는 그 권력에 자신의 몸을 베이는 대통령들이 대다수였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힘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와 모순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제가 가진 독재 체제로의 변질 가능성을 또렷이 보여줬다.
이 전 대통령은 1~3대로 12년, 박 전 대통령은 5~9대로 16년간 장기집권 했다.
집중된 권력은 개인을 부패하게 했고, 부패한 개인은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3·15 부정선거 후 4·19 혁명으로 물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뒤이어 11~12대 대통령 전두환씨의 독제 체제가 등장하자 국민적 저항이 들끓었고, 1987년 민주화는 대통령제를 단임제로 바꿨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장기 독재 체제로 변질되는 문제를 막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통령제의 비극은 계속됐다.
대통령들은 사법처리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최후를 반복했다.
민주화 이후 배출된 단임 대통령 8명 중 5명은 구속되거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단임 대통령제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는 심화했다.
대통령은 중간 임기 평가를 받을 기회도 없고, 필요도 없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비자금 내역까지 공개되며 국민 저항이 격화해 결국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고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2년형이 확정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인이 처벌받진 않았지만 가족들이 수사를 받으며 오점을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1일 기자에게 “가족 리스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결국에는 비선 측근 문제로 정권을 내줬다”라고 말했다.
본인, 가족, 측근 비리가 대통령제 때문에 생겼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은 크다.
대통령들의 비극적 최후는 승자독식에 따른 정치 양극화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전임 정권 수사는 일종의 공식이지만 칼 끝을 겨누는 수준에 그치느냐, 실제 휘두르냐는 다른 문제다.
정치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치 대결 구도와 양극화의 ‘트리거’로 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고,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도 보수와 진보의 전쟁이 만들어낸 파편으로도 지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제냐 혹은 의원내각제냐는 짜장면이냐 짬뽕처럼 무엇이 더 옳으냐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지금은 정치권이 복수혈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대통령제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탄핵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격화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이에 편승한 정치세력”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한 약화에 초점을 맞춘 개헌과 두 거대정당 중심의 정당체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위험 드러낸 비상계엄
윤 대통령 재임 기간은 대통령제의 위험성이 다양한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기다.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행령 통치 등으로 야당과의 협의 과정을 사실상 거부하며 국정을 독자 운행하려 했다.
여당에도 일방적 지시를 내리며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고착화했다.
21~22대 국회에서 대치 정국의 결정적 책임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친윤석열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도 ‘여소야대라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하면 ‘거부권과 시행령으로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답했다”며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협치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고, 야당을 적으로 간주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야 간 대치 정국은 더 심화했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 따라 국회의 운영 양태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하고 국민 여론도 반대하는 의대 2000명 증원을 고수한 과정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대통령 개인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급 참모진 등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한 수석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 당일에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수석은 대국민 담화 발표 직전인 오후 10시쯤에야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가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국무회의 과정도 윤 대통령 개인의 의사 결정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정족수를 채우는 데만 집중했다.
일부 장관들은 이미 정족수가 찼다는 연락을 중도에 받기도 했다.
장관들은 대통령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저 정족수를 채우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보면,
장관들 다수는 계엄 선포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논의 과정도 사실상 없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헌법으로는 제2의 윤석열을 막을 수가 없다”며
“승자독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 정치개혁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며 “다음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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