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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4 00:47尹, 시간 지연 꼼수 봉쇄됐다
헌재, 예정대로 27일 첫 변론기일 진행
계속된 수취거절에 '송달 간주'로 응수
조하준 기자
입력 2024.12.23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해서 탄핵심판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버티며 시간 지연 꼼수를 부린 것에 헌법재판소가 정상적으로 문서 송달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예정대로 27일 첫 변론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 지연 꼼수는 봉쇄됐다.
23일 오후 천재현 헌재 부공보관은 정기 브리핑에서 "대통령에 대한 서류를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지난 19일 발송송달을 실시했다"며 "발송송달의 효력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소송 서류가 송달할 곳에 도달된 때에 발생하므로 소송 서류를 실제로 수령하지 않은 때에도 송달의 효력은 발생한다"고 밝혔다.
앞서 헌재는 19일 윤 대통령 관저로 탄핵심판 관련 접수 통지 및 답변 요구서, 준비절차 회부 결정서, 기일 통지서, 준비 명령 등 각종 서류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이 서류는 20일 관저에 도착했으나 경호처에서 재차 수취를 거부했다.
윤 대통령 측의 답변서 제출은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이뤄져야 하는데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법 상식을 총동원해 '시간 지연 꼼수'를 부린 것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즉, 고의로 송달을 회피해 '송달받은 날'의 날짜를 늦추어 오는 27일로 예정된 준비 절차에 불출석하거나, 출석하더라도 '서류를 받지 못했다'며 의견을 밝히지 않는 등 공전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헌재는 서류가 관저에 도착한 시점에 윤 대통령에게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헌재가 20일을 서류 송달일로 간주했으므로 윤 대통령은 7일 이내인 오는 27일까지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의무 사항은 아니다.
또한 헌재는 준비명령을 통해 계엄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과 계엄사령관이 선포한 포고령 1호도 제출하도록 했는데, 이 시한은 24일까지로 변동이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대리인 선임계도 제출하지 않는 등 심판 절차에 임하지 않고 있어 정해진 시한까지 서류를 제출할지는 미지수다.
1998년 대법원 판례로 형사소송법상 보충송달·유치송달 등이 어려운 경우 형사재판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우편으로 보낼 수 있고, 이 경우 송달의 효력은 해당 장소에 도달한 경우 발생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헌재는 19일 재판관 회의를 열어 수령 거부 상황에 대해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재판관들이 윤 대통령 측이 수령을 계속 거부할 경우 발송송달로 간주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진 헌재 공보관은 결정 배경에 대해 "재판부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발송송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 지연 꼼수는 헌재의 결단으로 인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렇게 고의로 꼼수를 부리며 탄핵심판을 지연시킬 경우 오히려 탄핵심판에 불성실하게 임한 것을 문제 삼아 파면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 증거가 지난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씨 탄핵 심판 선고문에 있는데 당시 선고문을 낭독했던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다"며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즉, 당시 박근혜 씨가 '진상규명 협조'를 약속해놓고 정작 수사에 불응하는 등 갖가지 꼼수를 부린 것을 두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어 당시 이 전 소장 권한대행은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며 이를 탄핵 인용 사유로 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또한 지난 7일 대국민담화에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그는 탄핵심판 서류 수령도 공조수사본부의 대통령실 압수수색 등도 모두 거부하고 버티며 시간 지연 작전으로 일관했다.
때문에 박근혜 씨 사례를 참고하면
윤 대통령 역시도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고의로 탄핵심판을 뭉개려 들 경우 오히려 재판관들이 파면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시간을 끌며 재판을 지연시키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파멸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35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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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4 00:21[교수논단] ‘그 자(者)’를 체포하라
이시원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입력 2024.12.23
11월 28일 천주교 사제 1,466명은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게 되는 사제들이 한 인간을 대상으로 원망과 한탄의 의미가 담긴 시국선언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주저와 인내가 있었을까?
사제들은 이 시국선언문에서
“그는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있다고 우기는 ‘거짓의 사람”이며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없애고, 쳐서 없애야 할 것은 유독 아끼는 ’어둠의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서 “무엇이 모두에게 좋고 무엇이 모두에게 나쁜지 조차 가리지 못하고 그저 주먹만 앞세우는 ‘폭력의 사람’”이며
“이어야 할 것을 싹둑 잘라버리고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을 마구 흩어버리는 ‘분열의 사람’”이라고 규정하였다.
나아가
“자기가 무엇하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국민이 맡긴 권한을 여자에게 넘겨준 사익의 허수아비요 꼭두각시, 그러잖아도 배부른 극소수만 살찌게, 그 외는 모조리 나락에 빠뜨리는 이상한 지도자”로 묘사하였다.
사제들은 “그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므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그 사람 마음 안에서 나오는 나쁜 것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대한민국을 괴롭히고 더럽히고 망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면서,
“헌법준수와 국가보위부터 조국의 평화통일과 국민의 복리증진까지 대통령의 사명을 모조리 저버린 책임을 물어 파면을 선고하자”라고 선언하였다.
필자는 ‘그 자(者)’의 인간적 특성을 그리고 그 자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 겪었고 또 겪어야 할 고통을 이 시국선언문 만큼 극명하게 표현해 준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12월 3일 늦은 저녁, ‘그 자(者)’는 거짓과 어둠, 폭력과 분열을 종합한 끝판왕의 굿을 벌렸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군대의 총부리를 국민들의 가슴을 향해 겨누고 위협하는 작당을 벌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으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긴장의 상황이었다.
자칫했으면 우리는 폭력과 야만의 세상, 불안과 공포의 세상, 체념과 절망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릴 뻔하였다.
식민지 지배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딛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피땀으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시대적 전환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성장의 한계라는 장벽에 부닥치면서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정도에 이르고 있다.
후속세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후속세대 자신의 안정적인 삶뿐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지속적인 유지 발전을 위해서도 최우선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속가능성의 문제,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심한 사회적 균열과 갈등의 문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남북한 간의 긴장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소위 3불 즉,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신의 고통을 안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기에는 국정의 비전과 효율성을 인도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유능한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아웃사이더가 정치적 증오와 균열을 숙주로 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 우리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훌륭한 식견과 품성을 가진 정치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금의 시대적 전환기를 뚫고 나가는데 매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엉터리 지도자가 떡 버티고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엉터리 지도자임이 들어난 ‘그 자(者)’는 그냥 막고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난장판을 만들었다.
도자기 박물관의 코끼리처럼 그가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 옮겨 놓을 때 마다 국정은 일그러졌다.
끝내는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자폭에 가까운 짓거리 까지 벌려 내란수괴죄의 피의자로 몰리고 있는 판인데도 그는 계속 몽니를 부리고 있다.
12월 7일과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주변에 집결한 엄청난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을 비웃기나 하듯이 ‘그 자(者)’는 국민들과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者)’에 기생하는 일부 세력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로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날로부터 3주가 지났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날의 공포, 그날의 긴장이 우리의 뇌리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 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그 자(者)’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이 나라를 나락의 상태로 빠뜨리려 했던 음모와 계획이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음에도 ‘그 자(者)’는 버티고 있다.
‘그 자(者)’가 계엄령의 발동을 통해 내란의 동조자로 몰아넣었던 군대와 경찰의 주요 수뇌부는 다수가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그 자(者)’의 동조자로 들러리를 서야 했던 12명의 국무위원들도 속속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그 자(者)’와 ‘그 자(者)’의 동조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내란행위로 인해 경제적 피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 맞는 외교적 행보도 커다란 위축을 겪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실제 계엄령이 작동되고 ‘그 자(者)’의 의도대로 친위 쿠테타가 성공하였다면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야만과 폭력의 국가, 불안과 공포의 국가가 있을 뿐이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 칠 일이다.
이제 불안과 불확실성을 끝내야 할 시간이다.
그에 대한 답은 ‘그 자(者)’를 체포하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 자(者)’를 체포하여 내란의 진상을 온전하게 규명하고 그에 대한 죄과를 합법적으로 그리고 국민의 이름으로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가 지켜내야 할 공동의 귀중한 자산이다.
우리 후속세대를 위한 삶의 터전이다.
‘그 자(者)’의 일그러진 그림자를 한시라도 빨리 지우는 것이 대한민국을 다시 영광스럽게 부활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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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3 22:53[김세원의 복지이야기] 인구소멸지역에 발생하는 빈집
실태조사, 규제완화 등 대책 시급
고라니 출몰하고 흉가처럼 방치되는 빈집
방치하면 지역사회 공동화, 범죄노출 우려
김세원 대전과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24.12.23
한 채 가격이 1천만 파운드(178억 원 추정)가 넘는 영국의 호화저택 들이 빈집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천문학적 금액의 집을 구매는 했는데, 집주인들 대부분이 거주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주택을 소유한 부호들은 번거롭게 임대를 주느니 최소의 경비원을 고용해 빈집을 지키는 것을 선호한다.
런던의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기에 집을 갖고만 있어도 큰 이익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실가족은 런던 북쪽 외곽의 비숍 애비뉴에 1989년과 1993년 복수의 호화주택을 매입했는데 평균 112만 파운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집들은 2024년 700만 파운드 이상으로 올랐다.
집이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된 노숙인들이 호화주택에 들어가 살다가, 주인들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올해 초 유럽 전역에는 1천173만 5천 채에서 1천243만5천채에 달하는 집이 비어있다고 보도했다(스페인 340만 채, 이탈리아 200만에서 270만 채, 프랑스 240만 채, 독일 180만 채, 포르투갈 73만 5천 채, 영국 70만 채, 아일랜드 40만 채).
비어있는 집들은 2008년 외환위기 전후 부동산 호황을 타고 지어졌으며,
소유주가 한 번도 없었던 별장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사회운동가들은 유럽의 노숙인 수를 410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그들이 이 빈 집들을 사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빈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빈집이 소재한 동네의 주민들이라면 으레히 이런 말들이 오간다. “하도 오랫동안 사람이 안 사니까 풀이 엄청 우거지고 보기도 안 좋아. 야생 고라니도 왔다 갔다 하고. 마을도 작은데 흉가처럼 방치되니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도 무서워하지. 경관은 물론이고 범죄에 이용될 까 걱정도 되고 말이지!”
우리의 빈집은 인구 소멸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년 이상 방치된 빈집은 13만2000채(6만1000채가 인구 감소 지역에 위치)로, 2040년에는 전국 주택 10채 중 1채 이상이 빈집으로 버려져 지역 슬럼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적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십여년간 방치된 빈집에는 각종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쥐와 벌레가 가득하다.
마을에 빈집 하나가 생기면 주변에 빠르게 빈집이 생기는 전염 효과도 강한데,
빈집이 늘면 주변 아파트 값이 3000만 원 가까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올 6월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및 해양수산부는 빈집 정비 통합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는데, 벌써부터 예산부족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빈집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본다면,
먼저, 빈집의 재생적 가치를 고려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빈집을 “지자체 장이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로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혹은 사용하지 않는 주택”으로 정의한다.
농어촌정비법에서는 “지자제장이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로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아니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농어촌 주택이나 건축물”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통계청의 농어촌 인구주택 총조사는 “매매 임대 분양 이사 등의 사유로 조사기간 사람이 살지 않는 단독주택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 기거주용 건물 내 주택”이다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집 1890
고흐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5마일 정도 떨어진 오베르에 5월부터 7월까지 머무르며. 8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초기작품들에 비해 색채도 밝아졌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베르는 공기 중에 행복감이 가득하다”고 적었다. 우리의 농촌도 행복한 공간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면 한다.
상충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변화에 탄력적으로 법과 조례를 운용해야 한다.
지역의 빈집에 대한 처리 및 관리에 있어 각 지방자치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빈집 문제 해결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농촌 빈집의 경우 고령 소유자가 많기에 농촌정비사업의 자발적 참여 유도가 어렵다. 철거보다는 빈집의 재생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제공이 시급하다.
셋째는 빈집의 활용과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다.
농어촌민박업에 대한 연면적 제한, 농어촌민박 사업 경영을 위한 계속 거주 의무, 조식 외 석식 제공 부문 등에는 보완과 완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실태조사다.
각 부처마다 빈집에 대한 통계가 다르다.
보다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선진국들도 빈집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 프랑스 등은 2000년 전후로 빈집세를 도입 해 2년 이상 비워 둔 집에 많게는 지방세를 300%까지 중과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은 1유로 프로젝트(리모델링을 조건으로 1유로에 처치 곤란한 빈집을 팔고 싶은 주인과 시골 주택 싸게 사고 싶은 사람을 연결)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23 10월 기준 빈집이 900만 채에 달한다.
그 대책으로 2015년 빈집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였고 교토시는 2023년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빈집세 관련 조례를 마련했다.
우리가 초스피드 성장으로 세계 10위의 무역국이 되었고, 잘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OECD에 가입했지만 그 성장통은 사회 전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빈집도 그런 후유증의 하나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 충실히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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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21:05‘내란 모르쇠’에 분노한 민심,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 달려갔다
입력 : 2024.12.22
오동욱 기자 배시은 기자
이번에도 2030대가 앞장···‘선결제 응원’도 물밀 듯
영하권 밤샘 시위에 ‘난방버스’까지 등장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22일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차 빼라! 차 빼라!”
‘탄핵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22일 오전부터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앞 경찰 차벽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이른 새벽부터 모인 이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들을 막아선 경찰 병력에게 “시민을 막을 게 아니라 윤석열을 잡아야 한다”고 외쳤다.
탄핵안 가결 후에도 ‘계엄은 정당한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내란 수사에는 불응·무시로 일관한 윤 대통령을 향해 누적돼온 시민들의 분노가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는 전날 오전 8시부터 서울에 진입하려다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막힌 뒤 약 32시간 밤샘 대치를 벌였다.
경찰은 교통 불편을 이유로 전농의 상경을 막았다.
이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려지자 광화문 등에서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고 있던 시민 다수가 남태령 현장으로 합류했다.
이번에도 2030여성들이 가장 앞에 섰다.
이들의 발길은 22일 새벽부터 이어졌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행렬은 늘어났다.
고등학생 허윤서씨(18)는
“‘경찰이 농민들을 못 오게 하려고 폭력진압까지 한다’는 SNS 글을 보고 화가 나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웹툰작가인 김예담씨(24)는 “경찰이 트랙터를 막고 농민을 고립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돼 길을 터 드리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시위에 공감과 연대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 안양시에서 온 회사원 엄승윤씨(30)는 “명박산성(이명박 정권 광우병 집회 당시 경찰이 세운 차벽)과 박근혜 때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것이 자꾸 생각이 났다”며
“밤새 계속 방송으로 보다가 안 나오면 너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다 쌀밥으로, 농민들이 만든 야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기성세대로서 2030대에 부끄러워 참여했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김태임씨(52)는 “광화문 시위 뒤에 집에 갔다가 유튜브를 보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고 해서 주섬주섬 다시 나왔다”며
“경찰이 막길래 ‘딸 데리러 왔다’고 하고 왔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사 박대령씨(47)는 남태령역 역사에서 기타 연주를 하면서 “시끄러운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노래로 위로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상담·임상심리전문가연대 소속 박대령씨(47)가 22일 오후 1시쯤 전농 집회에 연대하기 위해 남태령역 역사 안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 오동욱 기자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의 후원도 뜨거웠다.
남태령역 출구마다 후원품이 쌓였고 이를 정리하고 나누는 자원봉사자들의 행렬도 이어졌다.
국회 앞과 광화문 일대 탄핵 촉구 집회에서 봤던 ‘선결제’ 응원이 이번에는 ‘배달 선결제’로 계속 이어졌다.
자원봉사자 김봉헌씨(55)는
“핫팩부터 여성용품, 빵, 커피, 도넛, 떡국, 어묵 등 셀 수 없이 계속 후원이 들어오고 있어서 정신없이 나누고 있다”며
“이 현장이 뿌듯하다. 동료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민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교통 통제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SNS에서의 응원도 계속됐다.
하루종일 ‘남태령’이라는 단어가 SNS 인기검색어에 올랐고,
밤샘 집회를 한 시민들에게 방한용품·간식·의약품 등 후원하겠다는 글도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아예 ‘난방용 버스’를 대절해 현장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나이드신 분들, 아프신 분들은 잠시 히터 대용으로 사용해달라”고 말했다.
안방에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경찰차 빼라” 등 댓글로 응원했다.
전농의 유튜브 채널 현장 생중계 영상에는 한때 1만7000여명의 시청자가 동시에 몰렸다.
전농 측은 경찰과 교섭 끝에 이날 오후 4시44분 트랙터 10대만 이끌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이동했다.
4시25분쯤 경찰 기동대 차량이 철수하며 차벽이 허물어지자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청년이 이겼다”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현장에선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 노래가 활기차게 울렸다.
남태령을 넘은 트랙터 10대는 동작대교를 건너 한남동 관저 앞까지 갔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남태령을 기어이 넘고야 말겠다는 시민과 농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관저 앞까지 트랙터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트랙터가 관저 앞을 향하는 것을 보며 관저 인근 한강진역 앞에서 다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참석했다.
집회가 해산된 후에도 시민들은 관저 맞은 편에 정차한 트랙터 앞에 모여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쳤다.
22일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트랙터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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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3:08[칼럼] 내란을 소란이라 우기는 10% 극우세력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입력 2024.12.21
12월19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결과는 윤석열 국정지지 16% (갤럽 12월2주. 11%), 정당지지도는 민주당39%, 국민의힘26% (갤럽 12월3주. 민48%, 국24%)로 나타났다.
국정지지율이 1자리수로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박근혜 탄핵 당시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윤석열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일부 보수 언론과 극우 세력이 '윤석열 결사옹위, 이재명 아웃' 여론전 프레임을 형성했기 때문에 윤석열 지지율은 당분간 10%박스권 (10~14%)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우리는 보수 찍는다'고 하던 영남지역의 한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런 사람의 규모가 약 10%정도 있다.
이들은 '이재명이 대통령되면 안된다'는 프레임으로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을 극대화시키고 윤석열 내란을 물타기하면서 본인들만의 확증편향을 점점 강화시켜 갈 것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윤석열이 구속되어도 10% 정도의 지지율은 유지될 것으로 예측한다. 정당지지도 역시 8년 전 탄핵 정국과 비교하면 여당 지지도 낙폭이 그때만큼 크지는 않다.
2016년 당시에는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지지도는 그해 4월 총선 직후부터 10월 초까지 29~34%였으나,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후 12%까지 하락했다.
그렇지만 향후 내란혐의 수사에 가속도가 붙고 혐의를 입증할 정황과 증거가 계속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힘 정당지지도는 점차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명태균 수사와 재판에서 심각한 국정농단의 증거들이 쏟아지면 보수진영 전체가 궤멸위기로 치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지지도가 8년 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근본적인 차이는 정보접근성이다.
박근혜 시절에는 카톡으로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수준이었다면, 박근혜 탄핵 이후 시대는 알고리즘이 지배한다.
과거에는 전달받은 정보에 노출되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에 의해 이용자 입맛에 맞는 정보만 일방적으로 편식하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알고리즘은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과 SNS이용이 보편화된 시대상황과 연관이 깊다.
포털,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인터넷 정보제공자들은 이용자의 개인적 성향이나 관심사, 사용 패턴, 검색 기록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각 기업이 가진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데이터에 따라 우선적으로 노출시킬 정보를 선별한다
즉 필터버블이 형성되고, 필터버블로 인한 정보접근의 편향이 '확증편향' 과 '선택적 인지'를 심화시켜 양극단이 단단하게 형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필터버블이란 인터넷 이용자의 정보(위치, 과거의 클릭 동작, 검색 이력)에 기반하여 웹사이트 알고리즘이 선별적으로 어떤 정보를 이용자가 보고싶어 하는지를 추측하고, 이용자에 맞추어 필터링한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이용자가 이미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이용자들이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정보로 부터 분리될 수 있게 하면서 자신만의 문화적, 이념적 거품에 가둘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지식과 가치관 확대가 방해받으면서 우리사회의 이념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불법.위헌계엄 해제를 방해하고 김건희 특검 거부, 탄핵안 당론 거부 등 내란혐의에 동조한 정당, 위헌정당이다.
친윤파가 장악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헌정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2013년 통합진보당이 내란을 선동했다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 해산을 청구하여 통진당을 해산시켰던 사례가 있다.
통진당은 내란을 모의했다는 것으로 해산되었는데,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켰고 이 내란에 동조했기 때문에 통진당 사례보다 더 엄중한 위헌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무력으로 전복하려한 내란사태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내란수괴와 내란혐의자를 모조리 잡아들여 내란 동조세력까지 발본색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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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3:04송요훈 기자, "확증편향 빠진 조선일보 기자... 돌아버리겠다"
진정한 저널리즘에 대한 고찰
조하준 기자
입력 2024.12.21
20일 조선일보에 올라온 박은주 기자의 칼럼. 전형적인 운동권 비난 칼럼이다.(사진 출처=송요훈 기자 페이스북)
21일 MBC 기자 출신 송요훈 기자가 이른바 '확증편향에 포획된 기자들'을 향해 강한 비판을 날렸다.
특히 그는 이번 12.3 내란 사태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예고했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칼럼을 썼던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를 강하게 질타했다.
송요훈 기자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한 기자들의 태도를 질타했다.
그는 "확증편향이란, 한마디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걸 강화하는 것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건 눈에 불을 켜고 찾지만 불리한 건 귀를 막고 듣지도 않으려 하는 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불리한 것조차도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그런 해석을 고집하며, 반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배척하고 적대시하고 혐오한다"고 덧붙이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기자에게 확증편향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확증편향에 빠진 대표적인 예시로 조선일보의 칼럼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20일 실렸던 박은주 기자의 칼럼 를 강하게 비판하며 '확증편향의 끝판왕'이라고 질타했다.
해당 칼럼에서 박은주 기자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향해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80년대 집회시위 선동’ 기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구호 발성과 손짓에 힘이 있었다. 짠하기도 했다. 구식 기술로 은퇴 후 재취업에 나선 선배를 보는 느낌이랄까"라고 잔뜩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해 송요훈 기자는
"박은주 기자는 ‘계엄 준비설’을 최초로 폭로한 민주당 최고위원 김민석이 몹시도 미운가 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시비를 건다. 정치에서 사라졌어야 할 운동권인데, 80년대의 구식 선동기술로 재취업에 성공했단다. 배가 아프다는 거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박은주 기자는 "그날 그는 ‘윤석열 계엄론’을 밀지 않았다. 근거를 대지 못해 '386 상상력 참 구리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일 후, ‘김민석이 맞았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자신도 포기했던 ‘윤석열 계엄론’을 증명해준 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송 기자는 "계엄 선포가 잘못이라는 건지 계엄 선포로 김민석의 주장을 증명해준 것이 잘못이라는 건지 헷갈린다. 비뚤어지고 배배 꼬여 보고 싶은 대로 보니 사리 분별을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 박은주 기자는 해당 칼럼에서 "민주당은 그간 대통령 부부를 향한 ‘혐오’와 ‘탄핵’ 두 개의 카드를 잔인하게 흔들었다. ‘유례없는 폭거’였지만, 어쨌든 합법이었다.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 역시 합법이다. 심지어 유례없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절차상의 불법 여부는 차치하고, 국민들은 계엄령 발동 순간 바로 분노했다. 바로 그 수많은 ‘유례’ 때문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계엄령은 전시나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엔 그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위헌, 위법이다.
아울러 계엄령 해제 권한이 있는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해 점거하려 했다.
이 역시도 위헌, 위법인데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 역시 합법이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송요훈 기자는
"미치겠다. 이런 게 확증편향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제 맘대로 해석하고 고집하는, 그래서 차라리 벽 보고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은 대화 불능의 확증편향"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박은주 기자는 "군부 정권과 운동권은 사실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군부 독재’를 비판하며 운동권은 불법을 저질렀고, 정권은 난장판을 수습하며 권위를 유지했다. 역사는 결국 ‘자유와 민주’를 선점한 쪽 편이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운동권 전과자’를 장관도 시켜주고, 국회의원으로 뽑아줬다. 기름진 권력은 오래지 않아 산패했고, 그 정점에 조국과 윤미향이 있었다. ‘운동권 청산’ ‘586 청산’이 시대정신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이런 박은주 기자의 비난에 송요훈 기자는
"돌아버리겠다"고 소감을 밝히며 "윤석열의 계엄이 586 혹은 운동권의 ‘정년 연장의 꿈’을 돕고 있고, 윤석열 탄핵 심판은 ‘인민재판의 완결판’이라는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는 국장급 중견기자다. 기자 ‘짬밥’이 쌓여갈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법인데, 확증편향으로 눈이 좁아지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문제의 박은주 기자는 지난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씨를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가 있다는 낯 간지러운 찬양성 기사를 써서 물의를 빚은 인물이었다.
송요훈 기자는 이 점을 언급하며 "그것 때문인가,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인데 비난의 꼬리표가 쌓이다 보면 귀를 열고 듣는 대신 자기합리화에 매몰되어 쉽게 확증편향의 노예가 되긴 하더라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고 보니 조선일보가 띄운 대선후보들은 퇴임 후에 감옥에 가거나 임기 중에 탄핵되거나... 어째 다 그 모양인가! 내 눈에 조선일보는 언론사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 사령부로 보인다"고 직격했다.
송요훈 기자의 지적대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 사태를 '내란 행위'가 아니라고 정당화하는 무리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명색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사실 전달을 하지 않고 확증편향에 빠진 채 이런 망발을 일삼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저널리즘의 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중동이 정파성이 강한 언론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내란죄를 범한 내란 수괴 윤석열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나서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 이런 식의 칼럼을 쓰며 비아냥거리는 것이 정파성을 떠나 저널리스트로서 올바른 태도인지 다시 한 번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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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2:36((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글))
[C]
'히틀러의 장군들'과 '윤석열의 장군들'의 공통점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26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4.12.21.
히틀러만 해도 1930년대 독일 경제를 크게 일으켰기에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지금도 적지 않은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침략전쟁만 벌이지 않았다면, 비스마르크 이후 최고의 독일 정치인이었다"고 여긴다).
지지율도 무척 높았다.
히틀러의 침략전쟁 오판은 1930년대 후반의 잇단 성공(체코와 오스트리아 병합 등)과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오만함 탓이 컸다.
독일국방군 고위 장성들 가운데는 히틀러 예찬론자가 적지 않았다.
알프레트 요들(독일국방군 작전부장, 육군대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히틀러가 1938년 9월 뮌헨 협정을 통해 총 한방 쏘지 않고 체코 주데텐 지역을 갖게 되자, "총통의 천재성과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함이 다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승리를 획득하게 만들었다"고 일기에 썼다(귀도 크놉, , 울력, 2018, 210쪽).
그런 히틀러가 1년 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번진) 폴란드 침공 모험을 꾀하자, '히틀러의 장군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히틀러와는 달리, 윤석열의 지지율은 20%를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을 보여 왔다.
논문 표절, 주가조작 등 부인 김건희에게 따라붙은 여러 범죄혐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지지율이 그렇게 낮은데도 몇몇 '윤석열의 장군들'과 손잡고 12.3 내란을 꾀하는 오판을 했다.
'친위 쿠데타'라는 비상수단으로 (지난날 민주화로의 길고 고단했던 기억을 지닌) 21세기 한국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 여겼다면, 그야말로 얼빠진 판단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지율이야 오르내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잘못된 권력자와 그의 몇몇 참모들이 내리는 오판(誤判)은 장기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아주 힘든 상황으로 내몬다는 점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히틀러와 '그의 장군들'이 그랬고, 21세기 초 윤석열과 '그의 장군들'이 그러고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히틀러와 윤석열을 비교하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둘은 무엇보다 국제정치에서의 체급(영향력)이 다르고,
피해자(희생자)의 규모와 범죄의 양상도 다르다.
하지만 시․공간의 차이를 떠나 둘 다 권력자가 품는 망상(妄想)으로 말미암아 혼란과 고통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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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히틀러의 장군들'과 '윤석열의 장군들'의 공통점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26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4.12.21.
하지만 서독 법원들은 탈영병에게 사형을 내리곤 했던 나치 판사들에 대해선 면죄부를 안겼다.
'당시의 실정법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이라는 논리에서였다.
패전 뒤 서독의 탈나치화 과정에서 나온 어긋나는 판결들은 두고두고 논란을 불렀다(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혹시나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내가 독일인이라는 게 부끄럽소"
지난 글에서 '히틀러의 장군들' 얘기를 했었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을 2개월 앞둔 1941년 3월30일 자신의 집무실인 베를린 제국수상청에 250명쯤의 장군들을 불러 모았다.
그 자리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포함한 적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을 주문했다. 동부전선에서 300만 독일국방군을 이끌었던 '히틀러의 장군들'은 주군이 바라는 대로 '처형'을 강조하는 훈시를 잇달아 내려 보냈다.
에리히 회프너(동부전선에 투입된 제4기갑부대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의 명령을 들어보자.
"모든 전투는 적을 가차 없이 그리고 완전히 절멸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수행돼야 한다. 특히 오늘날 러시아 볼셰비즘 체제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볼프람 베테, , 미지북스, 2011, 135쪽).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민간인과 소련군 포로들을 집단학살할 때 모든 독일 젊은이들이 손에 피를 묻히진 않았다.
탈영병은 저마다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히틀러의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범죄의 하수인이 되길 거부하는 마음들을 지녔을 것이다.
병사들뿐 아니다. 지휘관들도 그랬다.
한 영관급 장교가 독일 점령지 폴란드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 하나를 읽어보자.
"내가 독일인이라는 게 부끄럽소.
소수의 독일인이 살인․방화․약탈을 통해 우리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소.
우리가 그들을 당장 멈추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독일인 전체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오. 이 범죄는 아마도 상부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행해지고 있는 것 같소](볼프람 베테, 143-144쪽).
위에 옮긴 글은 헬무트 슈티프(독일 육군 참모부 작전국 제3과장)가 바르샤바에서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독일이 패전 위기에 몰리자, 일부 지휘관들은 히틀러를 암살함으로써 뒤늦게나마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 했다.
1944년 7월 동프로이센 라슈텐부르크(지금은 폴란드 영토)의 '늑대소굴'(Wolfschanze)이라 일컬어지던 군 최고 지휘소에서 시한폭탄으로 히틀러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위 편지를 썼던 슈티프도 그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됐다.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른 장군들
위에서 보듯이, 독일국방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나치 학살을 지시 또는 방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폴란드 제8군사령군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장군(대장)은 나치친위대 특무대원들의 폴란드 민간인 학살을 못 마땅하게 여겼고, 육군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취 장군에게 거듭 항의했다.
비무장 민간인을 죽여선 안 된다는 전쟁윤리적인 측면보다는 엄정해야 할 군 기강을 흩트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항의 이유였다.
바로 그 때문에 블라스코비츠 장군은 히틀러로부터 신임을 잃었다.
전쟁기간 내내 일선부대 지휘관으로 있긴 했지만 육군 원수로 진급하지 못했다.
독일 패전 뒤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재판을 받다가 1948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 초기에 자..살한 블라스코비츠 대장은 법정에서 동료들의 전쟁범죄를 비난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다만 스스로 죽음으로써 독일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사죄를 했다고 짐작된다.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른 장군은 또 있다.
육군 원수 게오르크 폰 퀴흘러는 동부전선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했다가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44년 1월 북부집단군 사령관을 끝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퀴흘러는 이렇다 할 군 보직을 맡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집단학살을 못 마땅하게 여긴 장군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장군들은 침묵하면서 침략전쟁에 뛰어들었다.
역사가들은 지난날 독일국방군(Wehrmacht)의 엘리트였던 이들을 가리켜 '히틀러의 장군들'이란 집합명칭을 붙였다.
오늘의 독일연방군(Bundeswehr) 병사들이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
그 장군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계급이 고작 상병이었던 히틀러를 마음속으론 '꼬마 하사'(kleiner Gefreiter)로 낮춰 보면서도, 군 통수권을 지닌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이를 두고 독일 역사가 볼프람 베테(프라이부르크대, 전쟁사)는 "독일 장군들은 히틀러와 한통속이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의 장군들'은 나치 전쟁범죄의 공범자(부역자)가 됐다.
12.3 망상(妄想) 함께 한 '윤석열의 장군들'
안타깝게도 12.3 친위 쿠데타를 계기로 21세기 한국에서도 '히틀러의 장군들'을 떠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12.3 '내란 수괴'로 탄핵된 윤석열과 그의 충암고 1년 선배 김용현 국방장관, 이 두 주모자로부터 친위 쿠데타 계획을 들었던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경찰청장 등이다.
군복을 벗은 전 정보사령관도 '윤석열의 장군들'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롯데리아에서 현직 후배들과 햄버거를 함께 먹으며 내란 모의를 했다고 알려진다. 영화 같은 얘기다.
이들 '윤석열의 장군들'은 주군의 뜬금없는 내란 계획을 처음부터 함께 했다.
"그건 아니지요"라며 막아서기는커녕 순순히 따랐다.
끝내는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법정에 서야할 운명이다.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던 소수의 독일 장군들처럼, 윤석열의 심기를 건드릴 각오를 하고 좀 더 강경하게 그의 망상(妄想)을 지적하고 나섰더라면?
그들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내란 공모자'로서의 어려운 처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지금 대한민국은 긴장 상태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어떻게 결론 내릴지 시민들의 눈길이 쏠려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은 12.3 폭거를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만,
히틀러나 윤석열처럼 폭력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경우는 어떠할까.
히틀러처럼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전쟁범죄적 명령, 또는 윤석열처럼 국회의원들을 붙잡아 가두라는 반민주적 명령이 '고도의 정치행위'이며 따라서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은 앞에서 살펴본 '라드브루흐 공식'에 비춰볼 때 그야말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히틀러는 지지율이라도 높았지만...
옛성현의 말씀을 되새겨 보며 글을 마쳐야겠다.
2,400년 전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 생존 추정)는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 백성을 잃은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라 했다[맹자집주(孟子集註) 이루 상(離婁 上) 9].
맹자의 깊은 뜻을 감히 풀어쓴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에 주어진 기본적인 덕목이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은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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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2:34((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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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장군들'과 '윤석열의 장군들'의 공통점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26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4.12.21.
12월3일 실패로 끝난 친위 쿠데타(내란) 음모에 동원된 군인이 1500명쯤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국회로 들어간 인원은 절반인 750명 쯤이다.
그날 병사들은 출동 명령에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 여기고 서둘러 총기를 챙겨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헬기를 타고 여의도 국회 마당 위에 들어선 순간, 이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알려진다.
국가를 지키려는 일인 줄 알았더니, 민주주의 파괴범이자 내란의 하수인이자 부역자로 몰릴 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상관의 출동 명령에 따라 나선 병사들을 탓할 수는 없다.
책임은 이 젊은이들을 이용해 무한 권력을 틀어쥐려던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그리고 이들에 두 손 모아 고분고분했던 군경 지휘관들에게 있다.
만에 하나 12.3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그 지휘관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즈음 우리 귀에 들려오는 민망스런 거짓말과 변명(TV를 보고 알았다는 둥, 무릎을 꿇고 말리려 했다는 둥)보다는, "위기에 빠진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대의를 따라 함께 나섰다"는 뻔한 허튼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들은 왜 '당나라 군대'가 됐나
12.3 쿠데타 과정에서 일부 병사들은 태업(怠業) 비슷한 행동을 했다고 알려진다.
동작 빠르게 움직이질 않고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마냥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막아서는 시민들을 군홧발로 차기는커녕 윽박지르지 않았다.
그 무렵 윤석열은 특전사령관에게 "의결 정족수가 차지 않은 것 같다. 문을 빨리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의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데리고 나와라"고 거듭 재촉했다. 끝내 여의도 국회 유리창이 깨지긴 했지만, 단 한발의 총성도 없었다.
병사들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처럼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민들과 의원들이 막아섰지만, 폭력적인 행동을 삼갔다.
권력자가 술기운을 빌려 저지른 친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내란 수괴'란 오명이 따라붙었다.
상황이 이렇게 마무리된 데엔 이름 모를 '민주 병사들'의 숨은 노력이 한몫했다고 보인다.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나온 뒤 여의도를 물러가면서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던 어느 병사의 뒷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21세기 한국의 희망을 읽었다.
아울러 그 병사의 몸짓에서 군사 쿠데타는 구시대 유물이며 한국에선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 "나는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겠다"며 아예 처음부터 출동을 거부한 지휘관이나 병사들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항명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그들은 '명령 불복종죄'로 군법재판에 넘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불명예 제대' 등 이런저런 불이익이 따랐을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5.16 쿠데타나 12.12 쿠데타 때를 돌아보면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심기를 거슬려 고초를 겪은 군 지휘관들이 한둘 아니다.
쿠데타 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기면 관군(官軍)이고 지면 반란군'이 되는 험악한 시절이었다.
탈영병이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
12.3 친위 쿠데타 당시 출동 명령을 듣는 병사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못가겠다"는 말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디로 무엇 때문에 출동하는지 모르고 나섰기 때문이다.
테러나 대북 관련 긴급사항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여의도 국회의사당 마당에 내리고 주어진 임무가 반민주적임이 분명히 드러나자, 탈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병사들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 전쟁에서든 젊은 병사들은 전선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또래 젊은이들을 겨냥해 죽기 살기로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총을 내려놓고 탈영할 것을 꿈꾸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탈영했던 독일군 사병 요제프 라칭거가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1927-2022, 교황 재임 2005-2013)다.
나치 정권에 반감을 지녔던 청년 라칭거는 1945년 4월 독일군 방공포부대에서 도망쳤다. 그 뒤 곧 미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됐지만 목숨은 건졌다.
독일군 헌병에게 붙잡혔다면? 처형됐을 것이 뻔하다.
1943년 전황이 기울면서 탈영병들이 늘어나자, 나치가 만든 공포의 집단이 독일국방군 야전헌병(SA-Feldpolizei, 약칭 Fepo)이다.
이들은 전선 후방을 돌아다니며 탈영병이나 낙오병들이 눈에 띄는 대로 붙잡아 모조리 처형하는 것으로 악명을 얻었다.
나치 독일의 침략 전쟁에는 모두 1,800만 명의 독일인이 군인으로 참전했다.
이 가운데 90%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총을 쥔 징집병이었다.
이들 가운데 탈영을 꾀한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탈영병 처리는 냉혹했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최근작(Blood and Ruins, 2021)에 따르면,
독일 육군의 경우 탈영병으로 붙잡혀 처형된 숫자가 3만 5,000명에 이른다(리처드 오버리, , 책과함께, 1161쪽).
▲ 1941년 소련 침공 무렵의 히틀러와 그의 장군들. 유럽을 지배하려는 히틀러의 망상은 독일의 패망과 아울러 많은 유럽인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위키미디어
'법의 탈 쓴 불법'과 라드브루흐 공식
히틀러의 잔혹한 전쟁 수행방식을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 탈영을 한 병사의 죽음은 골수 나치 말고는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법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1878-1949)는 정의롭지 못한 법을 거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sche Formel)에 따르면 '실정법'이 정의롭지 못할 경우 그 명령은 '법의 탈을 쓴 불법'이다.
다시 말해서 '극도로 부정의한 실정법'은 법이 아니며. 그에 따른 처벌은 '법률적 불법'이다(지난날 박정희와 전두환의 잇단 긴급조치와 포고령들이 그러했다).
라드부르흐는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사실상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법과 정의 사이의 충돌이, 법률이 결함 있는 법으로 간주되어 정의에 자리를 내줘야 할 만큼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면, 정의가 실정법에 우선한다'고 했다.
나치 독일의 잘못된 법 집행을 비판적으로 다뤄온 연구자 헤린더 파우워-스투더(오스트리아 빈대학, 윤리학․정치철학)가 꼽은 사례 글을 보자.
[법무부 서기였던 푸트파르켄은 괴히트라는 한 상인이 공중화장실 벽에 '히틀러는 대량학살자이며 전쟁은 그의 책임'이라는 문구를 써놓았다며 나치 당국에 그를 신고했다.
괴히트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했다.
종전 뒤 푸트파르켄은 튀링겐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살인의 공범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라드부르후는 이 사건에서 정의가 실정법을 대체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헤린더 파우어-스투더, , 진실의힘, 2024, 264쪽).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따르면,
실제로 전후에 독일연방(서독) 법원은 지난 나치 정권 아래서 탈영병을 무조건 사살해도 좋다는 독일국방부의 명령이 잘못 됐다고 못 박았다.
판결문엔 '라드브루흐 공식'에서 빌려온 문구가 보인다.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서, 법률이 '부정의한 법'으로 정의에 양보해야 하는 경우 법률은 한계에 직면한다. 그 법률은 법적 성격을 상실하며 전혀 법이 아니다](이재승, , 앨피, 2010,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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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5:23((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좋은 글))
법과 말과 총과 쿠데타 [아침햇발]
이재성 기자
수정 2024-12-19
윤석열과 전두환은 정치에 등판하는 모습부터 닮았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지 석달이 지난 1980년 8월23일, 조선일보가 1면과 3면을 털어 보도한 ‘전두환 육군대장 전역식’ 기사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한자 제목으로 박제되어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가 돌아가며 윤비어천가를 바쳤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진, 운전기사와 순댓국 먹는 모습 등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기사가 많았다.
1980년의 한국과 2021년의 한국은 거의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비정치인 출신 유력 대권주자를 향한 언론의 아부와 굴종에는 시공을 초월한 유사성이 있다.
정권을 잡는 과정도 비슷했다.
전두환이 군대를 이용했듯이, 윤석열은 검찰을 이용했다.
전두환의 희생양이 광주였다면, 윤석열의 희생양은 조국이었다.
정치의 영역에 검찰이 난입하여 법과 도덕을 뒤섞었고, 봉건시대 같은 연좌제로 멸문지화 수준의 처벌을 했다.
조국 일가가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검찰을 정치에 동원하는 걸 방치한 그 순간부터 윤석열의 쿠데타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은 오래전부터 쿠데타를 꿈꾸었던 게 아닐까.
검찰총장 시절 ‘내가 만일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부터, 대선 후보로서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까지, 전두환과 쿠데타를 흠모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말도, 이제 와 복기해보면, 본인의 권력은 영구권력일 거라고 믿었던 증거로 읽힌다.
윤석열에게 빙의해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전두환의 총과 윤석열의 법은 물리력의 차이가 있을 뿐,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육사 하나회 척결인데,
하나회라는 권력의 빈자리를 검찰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이 지배하던 사회가 가고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자 세상은 검찰의 것이 되었다. 자신들의 비리는 감추고 정적은 제거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법만큼 중요한 것이 말이다.
윤석열은 법에 이어 말까지 장악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는 레토릭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한시적으로 작동하는 기만적인 눈속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의 언론은 찬양했다.
‘바이든’이라고 말했지만 ‘날리면’이라고 우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보도를 한 문화방송(MBC)을 징계했다.
계엄이 성공하고 합동수사본부가 수사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서초동 편집국장’ 때 그랬던 것처럼, 언론을 내용적으로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윤석열은 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다.
항명하면 자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적이 별로 없는 이유다.
법과 말에 이어 총까지 가졌다고 생각하는 폭군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 본인과 아내의 범죄 혐의에 점점 조여오는 수사의 압박에서 벗어날 길은 쿠데타를 통한 영구집권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12·3 내란사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알코올 의존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 포악한 성향과 망상 같은 정신병리학적 접근이다.
윤석열이 대학 입학 이후 지적 성장을 멈춘 상태이고, 제멋대로 날뛰는 폭군이었던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는 건 사태의 본질에 관한 인식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정신병리학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폭주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구조적 결함의 핵심에 검찰과 언론이 있다.
검찰은 정권과 조직을 동일시하며 국민의힘 서초동 지부처럼 행동했고,
언론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던 윤석열을 칭송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국가적 폭력을 1인 체제의 전유물인 양 자의적으로 사용한 검찰이 있었기에,
언론이 그런 검찰과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했기에,
윤석열이라는 광인의 시대착오적 쿠데타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민주주의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언제든 괴물이 나타나 한입에 먹어치울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3988.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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