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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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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고 푸른 밤 (@ djckvl)

quiet nights of quie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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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25 10:58:59
    santiago 通信_ 32


    겉포장지가 튼튼한 라면으로 고른다. 봉지가 찢어져 국물이 새지 않게 조심조심 뜯어 면과 스프를 꺼낸 후 면을 잘게 부순다. 작게 부술수록 떠먹는 맛이 좋다. 부순 라면을 다시 봉지에 넣고 스프를 같이 뜯어 넣는다. 이어 뜨거운 물을 붓고 재주껏 입구를 단단히 봉한 다음 기다리는데 이때 보통의 컵라면 대기 시간보다 좀 더 진득하니 있어야 깊은 국물맛을 볼 수 있다. 이걸 '뽀글이' 라고 한다. 군대에서 자주 해먹던 즉석라면이다. 병사들이 허기와 입맛을 달래기 위해 취사를 금지하는 내무반 수칙을 피해서 감방의 죄수들이 흔히 해먹는 식의 '야매' 요리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면 뽀글이의 진가가 드러난다. 가령, 차가운 새벽 초소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장비와 군복을 벗고 다시 자리에 누울라치면 잠은 이미 천리만리 달아나 있고 뱃속은 굴풋하니 뭔가 뜨끈하고 든든한 게 간절해진다. 사제 컵라면을 어디다 쟁여 둔 들, 동기며 고참들 손에 그 시간까지 남아날 리 없고 내용물로쳐도 단연 뽀글이쪽이 면이며 국물이며가 푸짐하다. 같이 근무를 다녀온 후임이 주섬주섬 준비를 해오면 어두운 내무반 구석에 앉아 하나씩 식판에 부어 먹었다. 김치쪼가리 하나 없어도 가히 그 맛이란 둘이 먹다가 갑자기 하나가 늑대인간으로 변해도 모를 맛이다.

    전역 후, 추억도 반추할 겸 숙취가 있던 어느 아침에 이걸 다시 해먹었다. 맙소사, 이게 같은 음식이란 말인가. 한 술 뜨고는 도저히 더 넘길 수가 없었다. 물과 스프가 완전히 따로 놀아서 마치 숭늉에 고춧가루 푼 것 같은 밍밍한 국물이며 퉁퉁 불은 면에선 밀가루 냄새가 역하게 났다. 세상에, 이걸 전엔 어떻게 꿀떡꿀떡 떠먹었던 거야, 국물까지 다 마셨는데. 아무리 상황이 감각을 변질시킨다 해도 이거야 원 도루묵의 고사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숙취 탓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후 말짱한 아침에 다시 해먹었다. 마찬가지였다. 다 버렸다.

    생각하면 뽀글이는 라면을 끓일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었던 '라면적인 어떤 것' 일 뿐이다. 금지된 터부에 대한 달작지근한 편법일뿐 손만 뻗으면 라면이 지천인 보편적인 민간의 생활에선 그 억지같은 맛이 이해될 리 없는 것이 당연하다. 군대라는 억압된 공간의 결핍과 부실이 작은 만족과 희미한 기쁨도 크게 증폭시킨 것일 터. 라면 비닐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게 몸에 해롭지 않느냐는 말도 그때부터 있었다. 제대가 두어 달 남았을 때 돈가스가 반찬으로 처음 나와서 병사들이 난리법석 했던 시절이다. 요즘 군대야 먹는 거 입는 거 흔전만전이라니 지극히 다행한 일이지만.

    계절이 차가워질수록 국물이 그윽해진다. 의사가 밀가루와 국물을 가급적 멀리 하라고 자꾸 잔소리를 하는 통에 라면이니 칼국수니 일주일에 한 번도 어쩌다 먹는 중이다. 나이가 들어도 먹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이 나는 철딱서니는 뭔지. 인생에 있어 수많은 라면의 시간이 있었고 수없는 라면의 추억 또한 아득하지만 뽀글이, 한때는 내 병영생활의 낙이자 갑갑한 시절의 위안이었거늘 변해버린 나의 싸늘한 외면이 꽤나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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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20 10: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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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18 11:03:56
    santiago 通信_ 31


    해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는 날을 괜시리 신경 쓰곤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면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이루어져야 한다. 날씨와 온도, 손끝에 닿는 건조한 공기의 기분까지. 더운 계절 동안 줄곧 마시던 아이스커피에서 어느 날 문득 따뜻한 커피로 바꾸는 순간이란 차가운 계절로 돌입하는 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늘부터 정말 가을. 이런 기분. 봄과 여름이 발산과 몰입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수확과 안식의 느낌을 주는 까닭일테지. 맹렬했던 한 해의 열정도 이쯤에서 누그러지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느리게 흩어지는 풍경소리처럼, 찬 계절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가 내게는 바로 따뜻한 커피를 처음 마시는 날이다. 매년 그렇게 차가운 커피에서 따뜻한 커피로의 전환은 평화롭고 향기로운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였다.

    저녁에 맥주를 사러 나갈 때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반팔 셔츠를 입었다. 침실의 공기는 아직도 후덥지근해서 올해는 늦더위가 유난히 길다고 툴툴거리며 선풍기 옅은 미풍을 켜 둔 채로 잠이 들었다. 이게 하루 전날의 일이다. 다음날 매서운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며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무스탕을 입은 행인을 보았다... 기온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이거야 완전 '눈 떠보니 겨울' 같은 느낌이다. 마치 오랜 시간 코마에 빠져 있다가 의식을 차린 환자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난 여름에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겨울이었어."

    2020년 9월 미국 덴버市는 낮 최고 기온이 38도를 기록하며 이상 고온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자 기온이 영하 2도로 급강하했다. 무려 36도의 온도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미국 기상청은 최고 15cm의 눈이 내릴 것이며 당분간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워낙 넓은 땅 덩어리 인지라 벼라별 일이 다 있겠지만 미국은 우리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는 말이다.

    서울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10월의 어느 아침에 드디어 나는 더운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다시 만난 따뜻한 커피는 여전히 향기롭고 부드러웠지만 기분은 어쩐지 언제 공습이 닥칠지 모르는 점령된 도시의 폐허에 갇힌 것 같았다. 요즘은 그런 소리 별로 안 하던데 예전에는 "인류는 자연을 정복했다" 든가 "과학은 이제 자연 재해를 예방한다" 는 따위의 시건방진 소리를 태연하게 주절거리는 인간들이 있었다. 누가 내게 권력을 준다면 이런 인간들을 샅샅이 색출해서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찰싹찰싹 때려주고 싶다.

    자연과 운명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티끌이자 먼지이며 존재감조차 없는 미물에 불과하다. 자연을 향한 우리의 게으름, 교만, 반역과 침범은 한정된 행성 지구 안에서 반드시 살떨리는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해마다 일어나는 통에 이젠 이상할 것 없이 일반화된 '이상 기후' 라는 것도 우리가 뿌린 씨앗이 아닌가. 온도를 바꾸는 커피의 저 사소한 변화의 여운조차도 자연의 손에 좌우되는 것인데 자연을 정복하긴 뭘 정복해. 손바닥 맞은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서 이번엔 귓볼을 빨래집게로 집어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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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13 1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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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12 10:50:57
    santiago 通信_ 30


    "얼마나 실망하셨을지 압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수많은 미국인들 또한 그러하실 줄 압니다. 고통스럽고 이 고통은 오래 지속되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꼭 기억해 주세요. 우리의 캠페인은 후보 한 사람이나 하나의 선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 희망이 있고 너그러운 포용이 있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국을 만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가 우리의 생각보다 깊이 분열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미국을 신뢰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결과를 받아 들이고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열린 마음으로 기회를 줘야 합니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 승복 연설 가운데 일부다. 전국 득표수에서 힐러리가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지는 바람에 그녀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선거 18일 전에 실시된 지지율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무려 93% 의 우세를 유지했다. 언론은 이 지지율의 추세가 깨질만한 계기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이번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단, 내가 이길 경우에만." 그럼에도 힐러리 클린턴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이인제 방지법이라는 게 있다. 정당 경선의 후보자로 선출되지 않은 사람은 해당 선거의 본선에 후보로 나갈 수 없다는 조항이다. 공직선거법 제 57조 2항. 1997년과 2002년 두 번이나 당내 경선 결과에 불복하여 탈당한 뒤, 독자 출마한 국회의원 이인제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하여 2005년에 신설된 법안이다.

    소주잔에 뜨거운 용광로 철물을 부어 넣으면 그 조그마한 잔은 흔적도 없이 녹아없어지거니와 여차하면 집까지 몽땅 태우고 만다. 여태껏 관운이 기똥차게 풀리는 바람에 겨우 고만한 그릇으로 一人之下의 자리까지 올라봤으면 이제 과분함을 알고 여생을 돌보는 게 어떨까 한다. 더이상 국민들은 모리배들의 치졸한 권모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또 한 번 민의의 용광로가 분출하는 발화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도대체 뭘 보고 배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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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06 10: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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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0-05 10:48:00
    santiago 通信_ 29


    코로나 우울증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태다.
    바이러스로 해서 길어진 고립의 시간 때문인지 올해엔 유난히 귀뚜라미 소리가 깊다.
    낮동안 고막이 먹먹하도록 울어대던, 이미 하늘로 올라간 本隊에서 낙오한 매미들의 뒤늦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데 저녁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귀뚜라미가 또한 영롱하다.

    함민복 시인의 글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제일 아름답게 들리는 온도가 몇 도 씨라는 신문기사를 보았는데 몇 도 씨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있길래 찾아봤다.
    24도다. 아울러 시인은 '십삼 초 동안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센 다음 그 수에 더하기 사십을 하면 화씨온도가 된다' 고 했다.
    우리네 관습에 익숙한 섭씨로 바꾸면 25초 동안 귀뚜라미가 우는 횟수를 3으로 나눈 뒤 4를 더하면 섭씨의 온도가 파악된다는 기사가 있다.
    그래서 이르기를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 옛날 인디언들이 귀뚜라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어째서 하필 24도인가.
    귀뚜라미가 짝짓기를 하는데 제일 적당한 온도가 24도 안팎이라 이 온도에서 수컷이 최선을 다해 짝을 부르기 때문에 소리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24도 정도의 온도일때 대기의 공명이 가장 깨끗하기 때문이 아닐까 식의 기상학적 추측을 했다면 순진한 생각이라는 말씀.
    순전히 생물학적 치정의 발로란 말이다.
    낮의 고요를 점거했던 매미도 마찬가지다.
    쩌엉쩌엉 울어대는 매미는 전부 숫매미인데 그 거북스럽도록 울창한 소리의 이유란 오로지 죽기 전에 한 번, 짝짓기를 위해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결론인즉슨 매미도 귀뚜라미도 죽자사자 '여자' 때문에 그토록 고래고래 온몸이 터져라 소리를 낸다는 말이다.
    오오 이 찌질한 비련이여.

    연민이 북받치는 이 구애에는 사정이 더 있다.
    그나마 울어재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좋으련만 매미와 귀뚜라미들 중 절반은 용건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단다.
    개체수 전체로 보면 교미에 성공하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한여름 길을 가다 일찌감치 죽어버린 매미의 사체가 보도블록에 뒹굴길래 조심스레 집어서 화단의 흙 위로 던져 준 일이 있었다.
    그때 죽은 매미의 표정이 참 밝고 편안해 보인다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 친구는 목적을 달성했던 모양이다.

    생각하면 이 세상 모든 수컷들의 삶이라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
    생계를 위한 노동과 근로는 물론이요 짝짓기, 이 유전자의 세습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미련이 수컷들에겐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의 운명은 가혹하지만 남자의 운명 또한 가히 가련하지 않은가.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남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남자의 일생.

    계절의 낭만이라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에도 치열한 생존의 안간힘이 존재한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일의 무게를 새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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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9-29 10: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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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9-27 11:09:13
    santiago 通信_ 28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지면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곳이니까) 여름과 가을의 환절기가 되면 미국의 민요들이 떠오른다.
    오 수재너, 올드 블랙 죠,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아마도 학창시절 이 무렵의 음악 교과서 진도가 마침 이런 노래들을 배우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해마다 봄날의 오후가 되면 아래층 음악실에서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같은 내 친구' 가 앳된 합창으로 교정에 울려 퍼지는 기억이 떠오르는 연상작용처럼.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고 듣고 있으면 특정한 계절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멜로디의 정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사의 내용 탓일 수도 있는데 나에겐 아델의 some one like you 가 유독 그렇다.
    깊은 가을, 말하자면 겨울을 목전에 둔 원숙한 가을이 아닌 밝고 더운 계절에 이 曲이 나오면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어색하다.
    마치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 합창을 들으면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처럼.

    시즌송이지만 너무 유명해져서 사계절 내내 익숙한 곡들이 있다.
    비치보이스의 노래들이나 Autumn leaves, April come she will 같은 노래들.
    웸의 Last christmas 나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는 장난스런 청취자들이 한여름에도 곧잘 라디오에 신청하곤 한다.

    이제 슬슬 가을로 접어드는 무렵, 내게 가을을 상징하는 노래란 단연 '이별의 노래' 라는 가곡이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고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멜로디며 가사가 천상 가을이었던 노래였는데, 나에겐 어느 조용한 오두막에 정갈한 슬픔이 있어 창으로 부연 안개 속에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들의 정경이 떠오른다.
    아마도 작사한 시인 박목월의 쓸쓸한 체험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해 이 곡을 들을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 우연히 시인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한없이 고독했을 중년의 그 어두운 커피색 로맨스...

    노래가 시작되면 '구만리' 창공에 ' 기러기' 처럼 흩어진 바람이 스산한 공간을 떠메고 한꺼번에 국경을 넘어오는 기분이 든다.

    한낮이 끝나고,
    밤이 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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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9-15 10: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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