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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9
  • 깊고 푸른 밤 (@ djckvl)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3-07 10:33:03
    santiago 通信_ 50


    나의 생애는 서슬 퍼런 '독재의 시대' 로부터 출발했지만 두 번의 대통령 탄핵까지 거쳐 온 지금, 시민으로서 획득한 우리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는 실로 눈부신 지경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와 희생이 있어야 했는지. 토머스 제퍼슨이 말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 낭자한 피의 얼룩들이 내 청춘의 갈피에 빼곡하다. 우리 세대 한때 청년이었던 누구에게나 최루탄 같은 억압에 맞서서 화염병 처럼 저항이 폭발하던 '시대'의 기억이 상흔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우리는 드디어 이룩한 줄 알았다. 이제 눈물은 없을 것이며 억울한 무덤도 만들지 않으리라. "태양은 묘지 위에 빛나고 우리는 저 거친 광야로 나아갈 것"이라고만 믿었다.

    "사랑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빵이 아니라, 매일매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는 화분과 같은 것"이라는 서양의 격언은 우리의 자유와 권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다시 역사의 퇴행이란 없겠지...순진하기만 했던 우리의 표정에 내려앉던 햇살은 화사했다. 그래서 시인 김광규는 일찌감치 우리에게 은밀히 말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또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새워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어깨에 짐을 얹을 순 없다. 그게 적어도 최소한의 어른된 도리다. 처참한 정부 아래 잔인하고 뻔뻔한 인간들의 지배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비극은 우리 세대로 끝나야 한다. 이 세상 누구도 감히, 우리 아이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거나 겁박으로 울음을 터트리게 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가난과 독재의 참화에서 우리를 건져 올렸던 것처럼.

    언젠과 神과 대면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저희가 정녕 대단한 걸 원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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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3-02 11: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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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3-02 10:40:46
    santiago 通信_ 49


    찬바람만 불어도 입술이 자주 트는 체질이라 일찍부터 이런저런 립케어들을 사다 발랐다. 성분도 디자인도 가격도, 점성과 향기까지 천차만별인 제품들 사이를 편력한 끝에 한 제품에 종착했다.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내 입술에 가장 적합했으니까. 이후 근 30여 년을 이 한 제품만 쓴다. 아무리 '새로운 성분의 보습효과' 니 '신제품 론칭 기념의 파격 세일' 이니 심지어 가까운 이의 곡진한 권유가 있어도 내겐 ONE AND ONLY 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 제품이 가장 합당하다는 걸 내 입술이 '확고부동' 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몸의 기억' 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머리의 논리가 아니라 몸의 느낌이 기억하는 감각. '눈치' 나 '통밥'과도 뉘앙스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일이든 지인들끼리의 가벼운 모임이든 이 일이 성사될 것인가 엎어질 것인가의 예감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대충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일은 대부분 잘 마무리되기 마련이고, 뭔가 석연찮거나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거의 예외 없이 글러 버리거나 억지로 성사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된다. 어린 시절엔 워낙 경험이 없으니 이런 성패의 기미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뭔가 '쎄하다'는 느낌은 그냥 감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n년 동안 살아온 당신의 인생 경험이 모은 빅데이터예요."

    심화된 사례로는, '생활의 달인' 처럼 눈을 감고도 언제나 정확히 50 그램의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는 나이 지긋한 제빵사라든가, 굴삭기의 버켓 끝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켜는 중장비 기사의 묘기 같은 것들이다.

    '몸'이 연출하는 지극한 경지란 오랜 '시간' 이 축적한 내적 데이터베이스에서 발현된다. 긴 세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온갖 정보를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것이다. 천만 금을 줘도 살 수 없다. 꼭 실용을 위한 감각이 아니더라도 몸이 들려주는 진리의 말들은 자못 진중하고 지혜롭다. "이제부터 나, 육신肉身은 조금씩 자주 아프게 될거야. 대신 그동안 수고한 너(영혼)에게 충고해주지" 같은 느낌이다. 비가 올 것 같으면 관절이 먼저 알린다는 식으로.

    우리가 '몸'의 목소리를 떠메고 저 중년의 언덕바지에 올라서면 묵묵히 불어오는 관조觀照의 바람 속에서 예지의 불빛들은 물결처럼 일렁인다. 인생의 이유, 삶의 목적, 神의 손길, 인간의 존재, 숙명의 고독, 운명의 안간힘, 인연의 약속...인간의 언어로는 가르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삶의 크고 작은 요령들이 몸의 기억을 통해서 체화體化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억지로 알아내려고 서두르지 않고 지난한 물리적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육신이 끝내 삶의 법칙을 깨달아가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모든 일이 여기에 있다. 끝내 무無로 돌아갈 존재의 모든 몸부림들은 그렇게 휘청거리고, 서성거린다.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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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23 10: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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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21 10:59:47
    santiago 通信_ 48


    "문재인은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이었다" 라고 누군가 주장을 한다면 아무리 문재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기 마련이다. 이런 말의 진위를 가리는데는 최소한의 지능조차도 필요없다. 중학생 수준의 상식만 있어도 같잖지도 않게 웃어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넓은 세상에서는 "문재인과 김정일이 실은 형제" 라고 하면 대번에, "어쩐지" 라든가 "역시나 내 그럴 줄 알았다" 내지는 "아이고 세상에,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될라고"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부류들이 있다. "예끼 여보쇼, 진짜 뭔 개돼지도 아니고 그런 턱도 없는 소릴 누가 믿어 이 양반아"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내기할까요 믿나 안 믿나? 이런 부류들은 추미애와 홍석천이 '친자매' 라고 해도 믿는다.

    노인들끼리 알음알음 돌려보는 메시지를 우연히 훔쳐본 적이 있다. 은밀한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대통령이 여성장관을 발탁한 이유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청와대의 비밀스러운 안가에서 밀회를 즐기기 위해서다. 이 의도를 간파한 영부인은 대통령과 매일 밤 부부싸움 중이고 가끔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얼굴에 긁힌 영부인의 손톱자국을 감추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런 걸 대통령이라고 계속 쳐다보며 살아야 하나'

    대리운전기사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이명박이가 노무현한테 왜 그랬냐, 그거야 노무현이 다 해 처먹고 이명박이 해 처먹을 건 하나도 안 남겨줘서 그런 거죠. 원래는 지 임기때 다 해 먹으면 안되고 다음에 들어 올 사람을 위해서 좀 남겨놔야 되거든. 근데 이명박이가 들어와서 해 먹을라고 보니까 해 먹을 게 한개도 없는거야. 그니까 뚜껑이 빡! 열려서 밑에 있는 놈들한테 야, 저 새끼 죽여버려" 더 듣고 있다간 차가 도착할 때쯤 좀비가 되어 있을 거 같아 억지로 자는 척하려는데 그가 덧붙였다. "김재규가 사형당한 게 아니고 뉴저지에서 주유소 했던 건 아세요?"

    민주주의라는 제도 한편에 존재하는 절망에 가까운 비극은, 터무니없는 인간들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권리' 는 우리의 공동체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엄연히 개입한다.

    UFO 괴담 중에 '지구 지옥설' 이라는 게 있다. 1947년 미국 로스웰에 추락한 비행접시의 잔해 속에, 실은 몇 명의 외계인이 생존했는데 그중 여성 외계인을 담당했던 미 공군 소속 여간호사가 우주와 지구의 비밀을 밝히는 여성 외계인의 구술口述 을 텔레파시로 전달 받아 정리했다는 것이다. 책으로도 나와있다. 많은 내용 가운데 '지옥' 의 실체를 밝히는 대목이 흥미롭다. 외계인에 의하면 지옥은 따로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지옥이며, 온 우주를 통틀어 죄를 지은 죄수들을 '지구 교도소' 로 보내 끊임없는 환생과 윤회의 과정을 통해 교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구인들은 모두 '아름다운 대우주' 에서 추방된 죄수들의 영혼이며 그래서 우리가 이 지구에서 겪는 수많은 불행과 재앙들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임과 동시에 우리 죄수들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동력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뭐 이것도 어차피 '괴담'일 뿐이니까.

    대통령과 여성장관이 청와대에서 밀회를 즐긴다고 넌지시 알려온 분은 무려 은퇴한 '교사' 이시고, 김재규가 뉴저지에서 주유소 했다던 대리기사 아저씨는 경기도에서 기계설비 공장을 운영하다 털어먹고 잠시 생계의 방편을 모색 중인 4년제 공대를 졸업한 나름 '먹물' 이었다.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하염없이 개판일까의 의문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쩌면, "지구가 바로 지옥" 이라는 가설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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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16 10: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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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14 17:01:17
    santiago 通信_ 47


    번화한 대로에 24시간 밀키트 무인 판매점이 등장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무인 카페도 봤지만 밀키트는 처음이다. 개화기 사람이 전차 구경을 처음하는 것처럼 들여다본다. 이런 시대까지 왔구나...메뉴가 다양하다. 갈비, 불고기, 온갖 국과 찌개며 족발에 보쌈, 찜닭에 양념게장까지 있다. 가성비가 좋고 맛도 괜찮아서 의외로 주부들이 많이 찾는단다. 코로나로 외식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비대면 수요가 늘다보니 나름의 활로를 찾는 방편일 것이다. 밀키트는 나도 몇 번 마트에서 사서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래봤자 인스턴트거니 했던 내 짐작이 선입견이었을만큼.

    여행이나 독서같은 콘텐츠들처럼 어느 때부터인가 음식을 만드는 일도 따로 '요리' 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멋쩍을만큼 대중화되고 음식을 만드는 수준도 꽤 평준화되었다. 밀키트처럼 냄비에 넣기만 해도 음식이 완성되는 세태인지라 '그냥 한 끼 대충 때우고 말지' 같은 말은 어쩐지 불성실하고 생활의 활력이라고는 없는 게으름처럼 느껴진다. 남자들이 요리 한두 가지 할 줄 아는 건 이제 기본적인 소양이고, 웬만한 요리의 레시피는 언제든 검색이 가능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나는 이러한 요리의 대중화, 더불어 저변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MSG, 바로 조미료가 아닌가 한다. 한참 애를 써서 만들었는데 기대한 맛이 아니거나, 아무리 이것저것 집어넣어봐도 알고있는 그 맛이 아닐때, 손질의 과정에만 상당한 품이 들다 보니 대개는 요리를 포기하거나 다시 또 음식을 만드는 일에 질리게 마련이다. 바로 그럴 때 조미료야말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구원의 해결사 같은 것이다. 어떤 분야든 이런 만병통치의 요술램프가 존재하는 곳은 보다 안정된 토대 위에서 발전하게 된다. 가령, 믿음직한 선배가 잠시 자릴 비우면서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해 놔. 이따 내가 와서 마무리하면 되니까" 라고 말해주면 어지간한 실패의 두려움 같은 건 순식간에 날아가면서 뭔가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처럼. 그리고 그런 과감한 시도가 있을 때 그 분야는 발전하는 것이다.

    한때는 화학조미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오해가 만연했지만 마치 정글 오지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처럼, 낭설일 뿐이라는 꾸준한 홍보덕에 이젠 그 오명도 상당히 희석된 듯하다. 심지어 조미료와 설탕의 조합만으로도 장안의 유명한 냉면집 육수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니, 시장에 존재하는 수십 가지 조미료가 모두 각자의 용도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 흔한 말이지만, 요리라는 행위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은 뭐니뭐니해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표정을 보는 일이다. 자기 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자식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배부른 광경은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에 감동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짜릿한 기쁨도 드물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담긴 진심이 간절할수록 상대의 영靈과 육肉을 모두 살찌우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써놓고 보니 무슨 요리쯤 한가닥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저 가정식 백반에 흔하디 흔한 국과 찌개 이야기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써늘한 날에 가족들과 둘러앉은 밥상의 온기는 새삼 사무친다.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사이라서 食口라고 한다지. 일정한 때에 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어깨를 맞닿은 채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따뜻한 기분마저 든다. 입춘도 지나 이 겨울도 이젠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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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09 1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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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2-08 10:56:30
    santiago 通信_ 46


    막히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진입한 귀경길. 네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예의 충주 지나 여주, 이천으로 접어들자 이 길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로 가득하다. 멀찌감치 신호등이 몇 번을 바뀌는 동안에도 행렬은 꼼짝하지 않는다. 어제 오늘 일인가 체념하다가도 허구헌 날 이러는 게 맞는 일인가 싶다. 설날 아침에 내리는 눈은 서설瑞雪이라 좋은 징조라고 하지만 먼 길을 가야하는 운전자에게는 어지간히 부담스러운 일기日氣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생각만큼 눈은 많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설 연휴의 눈 내리는 귀경길' 이라는 상황에 비해선 길은 다소 수월한 편이었다.

    요지부동인 차 안에 갇혀 하품을 거듭하며 멍하니 시선을 던지자니 거친 바닥의 덤불 더미에서 참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전선 위에 가지런히 앉는다. 그러다 이내 와르르 전선을 내려와 다시 덤불 위에 제각각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앉자마자 다시 또 후다닥 전선 위로 옮겨간다. 십 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이걸 몇 번이나 되풀이 한다. 전선에서도 덤불에서도 이들은 마땅한 용건이 없다. 먹이를 찾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올라왔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엔 저 참새들의 군집을 주도하는 리더가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딱히 그래보이진 않았다. 어느 한 마리가 자리를 뜨면 동시에 전부 그를 따라 움직일 뿐이다. 철새들이 겨울하늘을 떼 지어 날아갈 때 맨 앞에서 나는 새가 우두머리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오랜 시간 착각했지만 과학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무리 중 하나가 어쩌다 맨 앞에서 날아갈 뿐이라고. 뒷차가 빵빵대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마종기 시인의 '낚시질' 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낚시질 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 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平生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한 마리 참새의 작심作心에 무리 전체가 이동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어쩌면 관성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고향의 부모님을 뵙고 나서 이제 남은 여생의 시간을 헤아리자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고 물기가 어린다. 그들에게 아직도 나는 반백을 넘긴 '물가의 어린 것'일 뿐이다. 서로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혈육의 정리는 점점 더 애절하기만 하는 것인데 집을 나서는 순간, 싸늘한 도회로 돌아가야 하는 나와 가족들은 이내 냉엄한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낯선 객지의 주민住民으로 바뀐다. 가슴에 고이 담아둔 묵직한 가족간의 애정이 채 그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귀가의 피로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교통체증, 미끄러운 길, 폐쇄된 휴게소, 버벅거리는 네비게이션, 도착 후의 피로, 피로 후의 일상...

    부모를 사랑하고 가족과 화목하는 방법이 이럴 수 밖엔 없을까. 먹고 사는 일이 다 그렇지 뭐...그러면 대관절 먹고 사는 일이 무엇이길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릴없이 전선과 덤불을 오가는 참새의 이동처럼 고단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중력에 갇혀서 우리는 매번 진실의 갈피들을 함부로 흩날리며 사는 것은 아닌가. 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늙으신 부모와 정다운 고향집을 버리고 이 차가운 길로 들어섰을까.

    마종기 시인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낚시질 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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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1-26 10: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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