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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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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 깊고 푸른 밤 (@ djckvl)

quiet nights of quie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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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8-09 10:51:04
    santiago 通信_ 22


    水가 귀한 사주라 그런가 어릴 때에는 물을 좋아해서 많이 마셨다.
    체질이 소문이 나서 어쩌다 친척댁에 묵게 되면 그 주인께서,
    너 온다구 해서 물을 많이 끓여뒀다고 농을 할 정도였다.

    목으로 넘기는 물만 좋아한 게 아니라 물에서 노는 일도 즐겼다.
    제대로 자세를 교정받은 정식 수영은 근년의 일이지만
    이전에도 개헤엄처럼 풍덩거리긴 해서 물속에서 곧잘 놀았던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해한다.
    그래서 물에 대한 나쁜 기억이 없다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처럼 흔하고 푸근한 것도 드문데.

    생활이 바빠지면서 수영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여름을 보내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는 코트를 한 번도 입지 못하고 겨울을 보낸 기분이 든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싯달타' 에서
    강물은 현재에만 존재할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없고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으니,
    매 순간 흐르지만 그곳에 언제나 존재하며
    동일한 것임과 동시에 늘 새롭다고 했다.

    "강물은 그들에게 삶의 소리요,
    현존하는 것의 소리이자 영원히 생성되는 것의 소리였다."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가 강물 소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상선약수 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 水善利萬物而不爭

    "최고의 善은 물과 같으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그 공을 다투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이야말로
    물의 속성을 여실히 정의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입추도 지나고,
    어른들 말씀에 양력도 팔월 첫 주만 넘겨도 물에 몸을 넣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작년에 이어 올 여름도
    물에 들어가는 건 물 건너 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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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28 10: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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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26 15:23:26
    santiago 通信_ 21


    이제 폭염은 일상화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까지 올라오는 지열을 느끼면 숨이 막힌다.
    이 정도면 거의 재난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니 더 심각하다.

    이 熱火의 한가운데서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정말이지 감사한다.
    더구나 코로나 관련한 의료진들의 분투가 가히 눈물겨울 정도라니
    시원한 실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건강과 안전에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방학이 있고 그늘진 마당의 외갓집이 있던 시절의 여름은
    이토록 혹독하지 않았다.
    아무리 더워도 반드시 어딘가엔 한숨 돌릴 시원한 구석이 있었다.
    에어컨이란 물건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던 시절이다.
    등목이 있었고 푸른 채소와 수박이
    갈색 '고무 다라이' 에서 빙글빙글 빛나던 수돗가.
    고작 그 정도에도 더위는 쉬이 가셨다.
    나이 든 어른들은 기계 바람이라 싫다고
    선풍기마저 외면하곤 했는데.

    이 폭력과도 같은 재난도 결국은
    우리가 낭비하고 탕진하며 소홀히 한 일들에 대한 엄연한 업보다.
    우리야 지은 죄가 있으니 달게 받고 세상 떠나면 그만이지만
    어린것들은 무슨 죄로 이런 환경을 물려받아야 하는가.

    국가라는 하나의 작은 경계 안에서도 앞선 세대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보다 나은 합리적인 세상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것은 당대의 필요와 요구이기도 했지만 거시적으로는
    다음 세대의 터전을 위한 노력이었음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적어도 제대로 되어먹은 어른이라면.

    애면글면 하나씩 고치고 바로잡고 원칙을 세우고 나니
    이젠 기후가 이 모양이다.
    마치 한눈 팔다 새카맣게 태워 먹은 프라이팬을 돌려줄 때 같은 낯짝으로
    우리는 世代를 교체할지도 모르겠다.
    아 인생의 피로여.

    부디 이 땅을 이어받을 후세의 지혜와 노력이
    또다시 세상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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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21 10: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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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19 11:44:52
    santiago 通信_ 20


    영화가 시들해진 건 한참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의 피로 탓도 있거니와,
    언제부터인가 '보이는 것' 과 '보여주는 것' 의 차이를 느끼는 어떤 관점이
    몸속에 새겨졌달까.
    아무리 좋은 의도로 꾸며봤자 어차피 모든 픽션은 僞造라는 허무가 있었다.

    기어이 이유를 찾아내자면야
    아마도 마블이니 DC니 하는 히어로물이 판치기 시작하던 무렵이
    그나마 붙들고 있던 영화라는 콘텐츠의
    새끼손가락마저 놓아버린 시점이 아닌가 한다.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게다가 지들은 하나도 웃지도 않고 막 날아다니잖아.
    나는 영화에 시들해졌고
    언제부턴가 의무감에 억지로 본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다 몇 해 전,
    무심코 보았던 영화 한 편으로 해서
    영화에 대한 싫증이 잠시 가셨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고, 다시 영화라는 건
    하늘을 날아다니며 우리를 걱정해주는
    쫄쫄이 입은 백인들의 조울증을 돈 내고 구경하는 일이었다.
    (너무 꼬였나 ㅎ)

    최근에 본 영화에서 다시 한 번,
    내가 처음 영화를 인식했을 때와 같이
    칼날처럼 서늘한 것이 내 안에 들어왔다.
    넌 결코 날 외면할 수 없을 거라고
    영화가 나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다시 영화가 싫증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영화는 언제든 또 나타난다는 사실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뿐이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고
    이란의 영화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가 말했다.

    내게 영화라는 걸 다시 돌아보게 만든 두 영화 모두 우연히도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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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14 10: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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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12 10:39:36
    santiago 通信_ 19


    神이 俗界에 사는 우리에게 권장하는 삶의 표본이란
    소작농과 같은 생활이 아닌가 한다.
    적당한 경작지,
    거칠고 적은 음식,
    많은 노동,
    욕심없는 일상.

    왜냐하면 이것은 그대로,
    현대 의학이 목이 쉬도록 강조하는
    건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몰두할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
    小食,
    잦은 운동,
    마음의 안정.

    이렇게만 하면 죽고 사는 일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평생 의사 얼굴 안보고는 살 수 있다고
    그 의사들이 말한다.
    결국 신의 당부라는 것은,
    겸허히 살라는 말씀 아니겠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나 먹는 일을 관리하는 것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일이다.
    나이가 드니까 실감하는 것이,
    자꾸 뭘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자꾸 뭘 안 먹는게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고 지인이 말했다.
    난 동의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평생 지켜왔다는 식생활 원칙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가장 배가 고플 때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것을
    겨우 조금만 먹으라.

    어둡고 핍진한 中世에
    이미 절식의 효용을 깨달은 천재의 혜안이 놀랍다.

    음식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이란 생활 속의 커다란 위안이다.
    나 역시도 먹자는 일이라면
    연어 통조림 뚜껑 따는 소리를 들어버린 수달처럼 집요해지는 인간이지만
    가끔은 세상이 이거 너무 먹자판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한편으론,
    그런 과식의 인플레이션은 어쩌면
    현대의 일반화된 정서의 허기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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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07 10: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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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7-05 10:39:44
    santiago 通信_ 18


    더운 나라에 여행을 가서 즐기는 여러 풍광 가운데
    스콜을 좋아했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은 찾아오는 열기의 대류에 의한 세찬 소나기.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마치 뜨겁고 습한 대지에 내리는 세례같았다.
    패연히 퍼붓는 한차례의 물벼락은
    쌓인 여독을 씻는 듯한 심리적인 개운함도 있거니와
    더운 나라 특유의 향신료 냄새를 질색하는 나에게는
    雨後의 맑아진 공기로 해서 異國의 낯선 정취를 잠시 잊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비 그치자마자 태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맹렬해진다.
    난 그게 무언가, 사려 깊은 자연의 순환처럼 느껴져서
    평소 비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식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여름날 오후에 가끔 아버지가 더위를 식히고자
    고무호스로 물을 뿌려 마당을 적시곤 하셨다.
    기왕에 화단의 자잘한 것들에게 물도 줄 겸 해서.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원에 물을 뿌리는 일은
    아버지가 담당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어린 형제는 런닝셔츠 바람으로 서늘한 대청마루에 엎드려
    크레용으로 파랗게 바다를 칠하고
    엄마는 부엌에서 오이를 썰거나 열무를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매미도 울지않는
    여름날 오후의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네 식구, 여름의 대지에 뿌려지던
    아버지의 스콜.
    물거품에 피어난 무지개의 환영이
    중년의 내 눈가에 아직도 선연하다.

    아득한 시간이 있고
    아늑한 추억이 있다.

    한줄기 바람이 불면 금세 목덜미가 서늘해지던
    내 유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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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30 10: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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