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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3
  • 깊고 푸른 밤(@djckvl)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7-17 10:43
    santiago 通信_ 86


    예전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가 뭐였냐고 물었을 때 별생각 없이 ‘백 투 더 퓨처’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다음 다음 사람이 자기는 ‘인디아나 존스‘ 를 제일 재밌게 봤다고 말하자말자 난 마치 불에 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맙소사, '인디아나 존스' 라고 말하지 않았다니.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후회했다. 핸드폰 기종이 바뀌기 전까지 내 전화벨 소리는 존 윌리암스의 '인디아나 존스' 테마였다. 페도라를 두 개 가지고 있는데 그저 여행용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다분히, '인디아나 존스' 의 중절모를 의식한 코스튬이다.

    시인 고은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빗대 시인 서정주를 두고 ‘정부政府’ 라고 했다는데 학창 시절의 내게 '인디아나 존스' 는 학교의 방학이나 학기 같은 어떤 ‘학사행정’ 같은 존재였다. 예술이 끼치는 영향을 교훈과 오락으로 나눈다면 '인디아나 존스' 는 명백히 오락적 영화로 분류될 테지만 내겐 단순한 영화적 오락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오락 영화 이상의 무슨 ’사유의 여백‘ 이 있다거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따위의 '고상한 척' 이 들어 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가 추구하는 지향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나는 그저 오락영화란 말이지, 우리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즐겨봅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영화야 버려진 팝콘 알갱이보다도 많지만 '인디아나 존스' 속에 등장했던 모든 오락적 요소들은 내게 그 차원을 달리했다. ’소년‘ 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그 영화 속에는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의 모든 소년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시리즈는 1981년의 ‘레이더스’ 로 부터 시작하지만 나는 1984년의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을 먼저 봤다. 시리즈 3편인 1989년의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까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이후 2008년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에 가서는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어딘가 맥이 빠지고 예전 '인디아나 존스'의 ‘활기’ 도 사라진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주연인 해리슨 포드가 ‘연로’ 한 탓이라기 보다는 홍수처럼 범람하여 공기처럼 대세가 되어버린 컴퓨터그래픽의 남발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얘기까지 하자면 이 지면이 모자란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올해 개봉하는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 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이제 영화에 시큰둥한 어른이 되었다. 아무리 굉장한 영화가 등장했다고 해도 ‘픽션’ 은 언제나 시시할 뿐이다. 이것은 영화의 탓이 아니다. 세파에 찌들고 냉정한 시속에 물들다 보면 ’뻔한 진실‘ 과 ’눈감아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순수‘ 나 ’정의‘ 같은 말들 위에 설탕 뿌려논 것 같은 영화들이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몇 번이나 가슴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세상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인디아나 존스' 가 있었던 인생만큼은 행복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미 ‘E.T’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 주었지만 '인디아나 존스' 라는 영화가 보내준 그 순수한 행복, 그 설레는 상상력은 나의 유년을 반짝이게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 방학, 어두운 극장의 은막 위에 쩌렁쩌렁 울리는 주제곡을 배경으로 열리던 모험의 세계. 저 시칠리아 시골 극장의 어린 토토처럼 내 어린 날의 시네마 천국.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내 당대에 '인디아나 존스'를 보낸다. 진심으로 아쉽고, 또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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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7-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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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7-10 10:54
    santiago 通信_ 85


    얼마 전, 늘상 밖에서만 듣다가 모처럼 인라이브에 접속했다. 한적한 골목길 모퉁이에 창 넓은 아늑한 카페 같은 방송국이 있어 예전 자주 들러 마음을 뉘였었다. 국장이신 여사님도 가을꽃처럼 은은하고 차분하시다. 도어벨이 울리며 커피 향 자욱한 실내에 들어서는 듯한 착각이 모처럼 일었다. 두꺼운 러시아 소설을 읽다 일어선 듯한 국장님이 반겨주셨다. 부드러운 선곡들은 변함없군요. 격조했다는 인사와 안부가 오가고 이내 화제는 자연스레 ‘격변’한 방송환경으로 옮겨졌다. 이때가 토요일 오후, 인라이브 안에 열려있는 방들을 세어보니 무려 백여 개가 넘는다. 인라이브에서 10년을 훌쩍 넘게 지내온 내 눈에도 처음 보는 생경한 광경이다.

    그야말로 엑소더스다. 수년 전 인라이브에서 벌어진 일이 이번에는 ‘저쪽’ 에서 일어났다. 저쪽에선 한 번도 회원가입한 적 없어서 내부로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몇 번인가 인라에서 잘 나가는 시제이가 저쪽에서 ‘두 탕 뛴다’ 는 소문을 듣고선 구경하러 간 적은 있다. 그 ‘구경‘ 이 내가 저쪽을 아는 전부다. 그러므로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은 어떤 게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창졸간에 난민 신세가 되어버린 유저들의 불만은 대체로 비슷했다. 너무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버려서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격변’ 이 있어야 했는지 역시도 내 소관 밖의 일이지만 순식간에 동호의 터전을 잃고 헛헛해하시는 ‘디아스포라‘ 들을 위로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한다는 이 명제뿐이다.” 라는 말이 세상에는 있다는 것이다. 인라의 원주민들도 수년 전 하루아침에 기둥 서까래며 대문부터 방바닥까지 싹 바뀌어버린 곳에서 묵묵히 지내왔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식식거려도 봤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적응하게 마련이었다. 동병상련의 정한인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고 뾰족하게 굴 일도 아니다. 저쪽의 운영진들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개편을 단행했을까. 일일이 설명은 못해도 이 모든 난리를 감내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낭패가 목까지 차오른 회의실에서 격론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터 남의 터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마음 붙이는 곳이 오래 건재해 주길 바라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이지만 현실은 끊임없는 변화와 단절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마이클 잭슨이 별세하고 일주일 만인가 난생 처음 인라이브에 가입했었다. 그래서 인라이브에서의 첫 신청곡을 기억한다. “Human nature” 바라건대 부디 인라이브에서 마지막 신청을 하는 날이 서둘러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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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7-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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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7-03 10:26
    santiago 通信_ 84


    알고 지내는 어르신이 자기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색색깔의 열매들도 실하지만 늘 보면 사진을 참 잘 찍으신다. 나는 사진을 잘 모르지만 모르는 눈으로 봐도 구도에 집착하거나 조명에 애를 쓴 흔적 없이 수수한 가운데 색감도 부드럽고 배경과의 조화도 나쁘지 않다. 이 분이 또 언제 이런 취미가 있으셨나. 넌지시 물었다. 사진이 참 좋으네요. 무슨 카메라인가요. 어르신의 대답. 폰으로 찍었는데. 팔순 아마추어의 실력이 이 정도다.

    중학교 2학년 때 강변으로 소풍을 갔다. 평소 좀 어리숙하던 친구 하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낡은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때만 해도 수동식 카메라는 귀하던 시절이다. 소풍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죽이 맞는 대여섯이 모여 캄캄해질 때까지 온갖 폼을 잡아가며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소풍이 끝난 강변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중2병 사춘기들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 얼마나 같잖고 유치했겠나.

    며칠 동안 우리는 현상되어 나올 사진을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각자마다 최고의 샷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진은 단 1장도 구경하지 못했다. 수동이라 조작에 서툴렀던 것인지, 실컷 찍어 놓고선 빛에 노출되어 필름이 홀랑 타 버린 것인지 어리숙한 친구 놈은 사진 한 장 내놓지 않는 내막을 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허탈해진 우리끼리 여러 추측들을 했었지만 아무래도 내 짐작엔 필름을 아예 집어넣지 않았던 게 아닐까 했다. 백 장 넘게 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필름을 갈아 끼운다고 부스럭 거리는 걸 본 기억이 없으니까.

    우리의 저 재래식 카메라가 있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어 놓고 그 찰나의 순간이 인화되어 나오기까지에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필름도 카메라도 현상비도 비싸던 시절이라 엔간히 못 나온 사진도 추억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눈을 감은 순간이나, 전혀 다른 사람 같은 우스운 표정도,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도 모두 추억이었고 명백한 과거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모니터로 쓱 보고선 마음에 안 들면 대번에 지워 버릴 수 있는 환경에서의 사진들은 알록달록하고 화사하기만 해서 오히려 가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나만의 기분일까. 우리네 삶의 풍경은 그런 것이 아닌데. 환하고 매끄럽고 반듯한 순간보다도 구겨지고 남루하며 부끄러운, 그런 볼품없는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삶을 직조하고 인생의 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사진을 어쩜 이렇게 잘 찍으세요. 처음엔 그냥 허허 웃던 양반이 내가 작심을 하고 칭찬을 거듭하자 마음이 찔렸던지 끝내는 실토를 하셨다. “아 같은 사진을 몇 십장 찍어 놓고 그중에 제일 괜찮은 놈으로 골라 보내니 보기 좋을 밖에.”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도 디지털의 장점이다. 구식 필름 카메라로 찍든 디지털카메라로 찍든 중요한 것은 사물과 인물과 풍경에 대한 찍는 이의 ‘기획’ 이다. 사물을 해석하는 눈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영감에 달려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속해서 셔터를 눌러대는 노인의 마음에는 텃밭에서 자라나는 저 어린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기특했을 것인가. 찍는 이의 마음속에 자식을 들여다보듯 애틋한 정이 서려 있는 것이니 당연히 사진이 좋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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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6-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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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6-26 10:29
    santiago 通信_ 83


    인도人道와 건물의 벽이 90도로 만나는 지점에 꽃이 피었다. 봄부터의 일이다. 작고 여린 노란 꽃.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 틈을 어떻게 파고들었을까. 늘상 다니는 길에 피어있는 중이라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대문 열린 집 묶여 있는 강아지 쳐다보듯 매일 눈길이 머문다. 좀 더 젊었던 시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가에 그저 흔하디 흔한 들풀일 뿐 피고 지는 사정을 내 알 바 아니었다. 자꾸 나이 타령 하게 되는데 나이를 먹으면 저런 게 새삼스럽고 유난스러워진다. 평생 저런 잡초 따위 안중에도 없다가 늦게 철이 난 것인지, 세파가 새긴 마음의 고랑에 바람이 든 것인지 콘크리트 사이에 피어난 노란 들꽃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콘크리트 사이에 절박하게 뿌리를 내린 이런 식물을 노래한 많은 시와 산문들이 이미 있어 왔고 거기에서 사람들은 늘상 식물의 생명력을 찬탄했다. 어쩌면 그렇게 독하고 강인하냐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거대한 바위틈에서 용케도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어린 목숨 같다며 안쓰러워했지만 내가 들꽃의 모습을 보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은 도대체 여기 뭐 하러 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들꽃의 입장에서도 그저 재미 삼아 들른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소부의 손길이 닿은 것인지 부주의한 바퀴가 지나가며 할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느 날엔가엔 줄기가 거의 반이나 잘려 나가 있기도 했다. 금세 말라죽겠거니 했지만 웬걸, 한 차례 비를 맞은 뒤에는 더욱 푸르고 탄력 있는 줄기로 자라나 오히려 전보다 더 수북해져 있었다. 악착같은 부활이다.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모진 생명력은 둘째치고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저 고생을 하는 것일까.

    독하고 강인한 생명의 안간힘을 이제야 깨닫는다는 건 미련하고 안일했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을 도회로만 돌았던 나 같은 ‘도시 촌놈’ 도 시골 외가에서의 생활이나 군대 시절을 통해 자연 속 모든 생명의 간절함에 대해서 꼭 한 번은 숙연해지는 시간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도 나이를 먹게 되니까 웬일인지 세상 모든 씨앗과 풀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왜 거대한 우주 가운데 하필 이 지구라는 행성에 내려와 뿌리를 내려야 하는지 그 절박한 당위當爲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선문답의 화두와도 같은 것 아니겠는가. 아마 나 같은 사유의 그릇은 평생을 바쳐도 깨닫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속세의 모든 ‘거죽’과 의식들을 버렸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쉼 없는 안간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휴식은 죽음일 뿐이다. 저 가파른 틈새에 피었던 노란 들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정비 차원에서 제거되어 영혼마저도 이 행성을 떠날 것이다. 그곳에 피었을 때부터 예정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들꽃의 악착같던 회복을 떠올리자면 눈물겨운 일이다. 도대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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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6-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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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6-19 10:52
    santiago 通信_ 82


    한낮으론 한여름을 찜 쪄먹을 기세의 온도지만 저녁으로 들어서면 확연히 선선해진다. 기온도 내려가거니와 바람이 한껏 불어와 낮 동안의 열기가 금세 가시는 것이다. 한낮의 더위 속에도 아직은 열대 같은 습기가 없다.

    지중해의 여름 날씨는 건조하다. 더워도 습기가 없는 탓에 대기가 쾌적하여 활동하기 좋고 그런 기후 덕분으로 휴양지도 많다. 지중해성 기후라고 우리는 학교 지리 시간에 배웠다. Cs성 기후. 여름엔 고온건조하고 겨울엔 온난다습하다. 스페인과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기후의 특성상 작은 창에 두꺼운 흰 벽으로 지은 집들이 많은데 ‘실제로 볼만한 건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것으로 유명한 관광지 그리스 산토리니의 그림 같은 가옥들이 바로 이런 형태다. 내가 왜 이런 걸 시시콜콜히 알고 있느냐 하면, 한마디로 이런 날씨를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초여름 날씨가 얼핏 이것과 닮아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계절 중에 이 맘 때를 가장 좋아한다. 외국 날씨를 닮아서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이라는 촌스러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더워도 건조하고 바람 잘 불어서 좋다는 말이다. 습기만 없다면 엔간한 더위는 내겐 별 거 아니었다. 날씨를 두고 이런 말은 좀 웃기지만 비유하자면 이 계절과는 뭔가 ‘말이 통하는‘ 것 같달까. “제 일이 이런 걸 어떡합니까. 더울 밖에요. 대신에 해만 빠지면 제가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께.”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이다. 뭔가 융통성이 있는 것이다. 아직 매미 소리도 개구리들의 떼창도 도착하지 않은 이른 여름. 어딘가에서 오이를 씻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 쾌적한 ‘이국적’ 여름의 기간은 길어야 20일을 넘지 못한다. 이 청순한 시절을 보내고 나면 술에 취한 듯 불콰한 낯짝에 비지땀을 줄줄 흘리며 폭염이 들이닥칠 것이다. 폭군 여름, 숨 막히는 전제군주정의 시작이다. 겨울을 나는 일도 여름을 보내는 일도 이제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되다. 새해의 설렘이나 휴가의 즐거움 같은 것이 시시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저 먹고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덜 번거롭고 가벼운 계절들이 좋아진다. 여름과 겨울이 ‘급격히’ 싫어지고 가을과 봄으로는 살만한데 때론 무난하고 밋밋해서 뭔가 한줄기 아쉽다. 그래서 난 이 계절을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뜨거운 활력과 시원한 휴식이 함께 존재하니까. 꽤나 맹렬한 낮의 더위에 맥이 풀릴라 치면 저녁 무렵의 선선한 바람이 나를 훑는다. 바람이 어찌나 다정한지 그 바람 속에는 대자연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5월의 어린잎들도 이때쯤 ‘하이틴’ 으로 변모한다. 짙푸른 초록의 절정을 앞둔 미완의 풋풋함이다. 벌써 다음 주만 넘어가도 기후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습기의 지옥을 불러내기 위한 장마의 선발대가 슬슬 출몰하겠지. 인생의 좋은 시절은 왜 언제나 이렇게 늘 짧고 아쉽기만 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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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6-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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