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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9
  • 깊고 푸른 밤(@djckvl)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18 11:01
    santiago 通信_ 57


    아동문학가이자 마종기 시인의 아버님 되시는 마해송 선생의 작품 가운데 ‘정불서 靜不暑’ 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다. 제목을 풀이하자면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모른다' 정도가 될까. 이 염천에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글을 쓰시니 얼마나 덥겠느냐며 지인이 선풍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기계 바람을 원체 싫어하는 자신에겐 무용無用이라, 아예 준 것이면 팔아서 돈으로 바꾸겠는데 그러지 못하니 손님이 오면 접대나 하는 용도다. 펜을 든 손목에서는 구슬땀이 흐르지만 장판방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그리 더운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불서다. 수필의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종일토록 땀 흘려 일하고 저물어 한 탕(목욕)한 다음 진건한 청요리를 하고 다시 한 탕 하는 맛이란 여름밖에 없는 즐거움이었다."

    어느 일본 만화의 주인공은 동네 야구시합이 있던 날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윈드브레이커까지 입은 채로 땀을 줄줄 흘려가며 시합에 열중한다. 적당히 쉬어가며 해도 되는데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조차 않고 그는 무아지경으로 열심이다. 그가 전력으로 시합에 임했던 이유는 바로 시합이 끝나고 마시는 맥주, 차갑게 식혀 아이스박스에 재워둔 그야말로 뼛속까지 써늘한 맥주를 들이키는 쾌감을 위하여 그는 일부러 온몸이 열화에 들떠 땀범벅이 되도록 체력을 소진했던 것이다.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지가 더할 수 없는 시원함으로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억지로 사우나의 열기를 참는 노력과 비슷한 것이다.

    더위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다음 찬물에 목욕을 하고 새로 갈아입은 속옷과 반바지 티셔츠에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인 채로 여름 저녁밥상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시절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자면 여름이란 계절이 다소 우직하달까, 어딘가 빈틈이 있는 여름이어야 한다. 아무리 더워도 결코 어떤 '선'을 넘지 않는 소박한 성정의 여름. 물론 그 시절에도 가끔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가 존재했지만 산업화의 굴뚝이 매연을 뿜어내고 하천으로 오염된 물이 흘렀을 망정 도회의 여름은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지만 그때는 도심 한복판의 가옥이라도 한밤의 어느 시간엔 어디선가 서늘한 기운이 제법 불어왔다. 동네 개들이 일없이 깨어나 돌아가면서 짖어대던 심야. 그래서 그 서늘한 온도에 대비하고자 모두는 한여름에도 얇은 이불을 지참하고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더위에 지친 낮의 피로를 회복하고 다음 날 또다시 일터로, 학교로 가곤 했다.

    이 자연친화적이었던 '열기의 순환'이 깨져버린 것이 에어컨의 등장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새삼스레 고마워하는 문명의 이기에다 대고 나 같은 인간이 투덜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이 좋으면 하루 종일도 좋도록 뜨겁고 숨 막히는 외기外氣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에어컨 빵빵한' 집까지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찬물에, 서늘한 대기에,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가 산산히 씻겨나가는 그 상쾌한 '타격감' 이 그립다는 것이다. 기상도 일기도 세태에 따라 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과학적 불안에 따른 이슈를 따로 들고 오지 않더라도 요즘의 더위는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원인과 예방의 방안이 무엇이든 간에 여름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낭만들은 점점 드문 일이 되어간다. 카디건을 걸치고 양말을 신은 채로 뜨거운 국을 마시는 한여름을 보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말이 불현듯, 모골이 송연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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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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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11 11:25
    santiago 通信_ 56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고 나서 다시 깨어나는 임사체험臨死體驗의 경우가 있다.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체험자들은 사후死後 세계를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사망 직후 강렬하고 황홀한 빛을 보았다는 것과 자신의 일대기가 마치 필름처럼 촤르르 흘러 가더라는 공통된 증언이 있고, 그다음부터는 이야기가 제각각이다.

    우선 종교에 따라 달라지기를,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나 천사들이 마중을 나오더라고 하고 불교에 깊었던 사람들은 강을 건너자 크고 화려한 사찰이 있더라는 식이다. 가톨릭 신자는 성녀聖女 같은 분이 데리러 오신다는데 보나 마나 성모 마리아의 현신現身일 것이고. 그러나 종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현상을 겪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이 등장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오래전에 작고하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주로 마중을 나오신단다.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급성 폐렴 치료 중 코마 상태가 되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아직 때가 아니니 다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조지 마이클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White Light' 란 곡을 썼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먼저 가 있던 아이들(개나 고양이)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과학자들이야 당연히 뇌의 특정한 상태에 의한 착각이거나 환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체험자 가운데는 이런 경우도 있다. 죽음 직후 영혼이 된 청년이 슬퍼할 부모님 걱정에 마음이 미치자마자 순식간에 시골 고향집 안방 천정에 둥둥 떠있더라는 것이다. 순간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당시 방에 있던 부모님이 농협에서 빚을 낸 영농자금 상환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그는 들었는데 죽음에서 깨어나고 난 후에 그 빚 상환 이야기를 했더니 노인들이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환각이건 착각이건 간에 커다란 빛의 존재를 느꼈다는 공통점 말고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당부를 한다는 것인데 이미 사바세계의 경계를 넘나든 이력이 있는 몸이니 코인은 손절하라거나 어떤 테마주를 사서 묻어 두라거나 모처의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따위 신기神氣 있는 조언이면 좋으련만, 그들의 당부란 것은 그저 "절대 남 해코지 말고 착하게 살라" 고 한다는 것이다. 저승을 다녀왔던 어느 한 사람도 돈이나 명예, 물질과 부귀에 대한 미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 죽음이 두렵거나 남은 생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도 했다. 흔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들 한다. 죽음의 '본때' 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욕망이나 인간사 희로애락의 안간힘은 한낱 허무 속을 날아다니는 티끌 같은 것인가.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신조가 사망했다. 자국민의 총에 맞아 죽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평소 그가 지껄인 무도한 언행들을 생각하면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일말의 '통석의 념' 조차 없다. 아베의 망언은 헤아릴 수 없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그는 "한국에는 기생이 있어서 그런 것(위안부 활동)이 생활 속에 녹아든 것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죽는 날까지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을 꿈꾸던 전범 가문의 황태자는 비명에 눈을 감은 후 삼도천을 건널 무렵 과연 누가 마중을 나왔을까.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혼백이 잠시나마 평온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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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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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04 11:40
    santiago 通信_ 55


    오래전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리시버를 귀에 꽂고 있었는데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았다. 겨우 잡힌 채널은 뉴스. 심심하니 이거라도 들으면서 가자고 별생각 없이 켜놓았는데 귀에 꽂은 리시버를 통해 들려오는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발음이 어찌나 부드럽고 가지런하던지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그 안정되고 편안한 '어조'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와 까무룩히 잠든 적이 있었다.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감미롭달까, 귀에 감겨 듣기 좋은 순간은 바로 가을과 겨울 사이 환절기의 깊은 밤, 홀로 운전을 하던 차 안이었다. 국도國道를 달리고 있었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사람의 장례식에 가는 길이었다. 예전에 어느 장례식을 다녀오던 오후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박기영의 '산책' 이란 노래의 가사가 인상 깊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와, 관계와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불현듯 돌아보는 시간과 가끔 마주친다. 그 밤의 쓸쓸한 길과 공기와 계절 속의 드라이브도 그랬다. 망자亡者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도착하면 그가 늘 자랑하던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을 처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건만 이젠 세상에 없는 이의 마지막 절차를 배웅하러 가는 길은 멀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시각도 청각도 무중력 상태처럼 먹먹한 가운데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만이 또렷했다. 대전 부근을 지나자 주파수를 놓친 라디오에선 노이즈가 통곡처럼 터져 나왔고 서둘러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다이얼은 멈췄다. 그 지역의 종교 방송 채널이었는데 불교방송이었는지 원불교 방송이었는지 가톨릭 방송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으나 전문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미루어 수녀님이거나 스님이거나 교무님이지 않았을까. 고향에서 올라온 편지를 읽듯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내려 가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얻는 상처는
    육신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몸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받는 마음의 생채기는
    일체의 소통으로부터 소외된 누군가가
    애타게 갈망하는 관계의 흔적입니다.
    우리의 피곤했던 오늘 하루는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입니다.
    우리의 보잘것 없는 것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간절한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자주 생각하세요.
    그리고 언제나 영원을 꿈꾸세요.


    내용은 다소 도식적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나를 둘러싼 마음의 어둠을 갉아먹었다. 사과를 먹는 청순한 치아처럼 아삭아삭. 어떤 절망이라고 할까, 모순이라고 할까, 비닐봉지에 담긴 것처럼 우울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때 낮고 따뜻한 구원의 목소리는 물기처럼 왔다. 그녀의 성대는 영혼의 통로처럼 은혜로운 것, 더없이 잔잔하고 포근했으니, 난 잠시 어떤 의례를 치르는 기분으로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해 커다란 비애 속으로 걸어가야 하는 내게 그녀의 목소리는 강江의 수면 위에 잔잔히 떠있는 나룻배처럼 나를 위로했던 것이다. 멘트가 끝나자 양희은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잡음 속에서 양희은은 분해되었다.

    미망인은 나와 목례를 나눈 후 와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일부러 울지 않기로 작정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너무 울어서 진이 빠져 버린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절벽에 맺힌 암염巖鹽처럼 창백하고 건조했다. 사람의 음성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음향 가운데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안의 말처럼 귀하게 빛나는 것이 있을까. 느리고 낮을수록 언어의 의미는 더욱 단단하고 선명해진다. 축축한 늦가을의 낙엽들이 죽은 파충류처럼 아스팔트에 붙어 있던 그날의 국도를 생각한다. 그 검은 길을 지날 때 캄캄한 자동차 안에서 담요처럼 나를 감싸던 그 정갈하고 침착했던 목소리를.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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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0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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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6-27 12:03
    santiago 通信_ 54


    청춘靑春이 한 마리 고래 같은 것이라면, 내게 청춘은 언제 왔다가 언제, 영원永遠의 심해深海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나는 아직 그 고래에 올라타고 있나. 설마, 세월이 내게만 그렇게 친절 할리가. 내 동정童貞의 밤을 지배하던 여배우가 있었다. 밤마다 정염情炎을 한 바가지씩 퍼붓고 가던 이탈리아의 중년 여인. 요즘 그녀의 부고가 뜨지나 않았는지 IMDB를 가끔 뒤적인다. 그녀가 팔순에 든지도 한참이 지났다. 밤마다 나를 찾아왔던 필름 속의 그 화려한 관능은 이제 흔적도 없지만 다행히 그녀는 아직도 무고하시다.

    매일매일 한 세대의 부스러기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우리 세대의 추억들을 고물처럼 실은 낡고 육중한 화물선은 날마다 망각의 지역과 기억의 보관소로 뱃고동을 울리며 떠난다. 배의 꽁무니에 따라붙은 시간의 갈매기들은 크로노스의 정령처럼 선박의 항로를 조력한다. 배 떠나는 항구의 서정이 서글픈 것이면 차라리 하늘로 날려 보낼까. 수만 개의 풍등風燈처럼 이 행성의 끝을 향해 망망히. 의미도 기념도 없이 마른 재처럼 황황하게.

    머리숱은 줄고 흰머리는 늘어나며 한 번 달라붙은 살은 좀 체 빠져나갈 생각을 않는다. 나이가 들면 '체형의 평준화' 가 이루어진다는 우스개처럼 늙도록 육신에 매달리는 미련을 섭리는 비웃는 것이겠지. 노안이 찾아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자세히 들여다보며 애쓰지 말라는 신의 귀띔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늙은 눈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들이 오히려 선명하다.

    오래된 바둑판처럼 영원할 것 같던 사람들도 화물선에 동승하여 하나둘 떠났다. 조지 마이클, 마이클 잭슨, 프린스, 데이빗 보위, 커트 코베인, 휘트니 휴스턴, 신해철... 밑반찬들의 이름처럼 나의 방과 학교에서 익숙했었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마음의 우물 속에 묵직한 돌을 집어넣는 기분이 든다. 이들로 하여 열광했던 시간이 있었으니 해마다 연하장을 써 보내는 수고를 맡는다 해도 유감 없지만, 그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세월을 보내는 일도 나이를 먹는 일도, 웃으면서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어딘가 진이 빠지는 일이었으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세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새롭게 푸근하다. 영원의 어느 모퉁이에 물고기처럼 착한 영혼들이 별빛처럼 모여 사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흐뭇해진다.

    병마가 두 해를 넘기는 동안 우리는 수화手話처럼 서로를 헤아리고 마스크처럼 자주 침묵했다. 불행은 이내 걷히리라는 야윈 희망마저 낡은 빨래처럼 쓸쓸히 말라가는 것이니, 어느 날 돌아본 청춘은 완행열차처럼 진부하게 떠나버렸고 추억은 피로연이 끝난 싸구려 국밥집처럼 낭자하다. 청춘이란 말에 닭살 돋을수록 아직 청춘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청춘아, 되돌아 가는 길 어디에서 쉬느냐. 점심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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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6-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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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6-20 11:50
    santiago 通信_ 53


    집안일 중에서 청소가 제일 싫다. 살다보면 별 다른 이유없이 나와 안 맞는 게 있는데 청소가 그랬다.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이야 물론 좋아하지만 청소의 과정이 나는 유난히 지루하고 귀찮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이 청소해 놓은 공간을 염치없이 쓰는 건 또 싫다. 하기 싫어도 내가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 평생을 통틀어 한 번도 청소가 즐거웠던 적이 없다. 게다가 청소란, 여자들이 흔히 푸념하는 것처럼 "웬만큼 해서는 티도 안 나고, 그렇다고 조금만 안 하면 금세 티가 나는" 거추장스러운 일인 것이다. 어린 시절 미니카를 모은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먼지가 끼는 것이 번거로워 그만두었다.

    반대로 설거지를 좋아한다. 살다 보면 까닭없이 잘 맞는 게 있는데 나에겐 설거지가 그랬다. 10분 청소할래, 1시간 설거지 할래, 물어본다면 당연히 설거지다. 이 일의 매력은 기름진 오물 더미에서 깨끗하고 매끄러운 식기를 건져내는 세척의 희열이다.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떠돌이 개나 고양이를 데려와 때와 먼지에 찌든 놈을 물로 깨끗이 씻겼을 때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깨끗하고 따뜻한 물을 소나기처럼 흩뿌려 수북히 묻은 불결한 거품을 말끔히 씻어낸 다음, 뽀얀 식기의 표면을 '뽀드득' 어루만질 때엔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신이여, 우리의 죄를 이처럼 사하시길.

    그러니 설거지의 참맛은 맨 손으로 하는 데 있다. 음식찌꺼기를 초벌로 씻어낼 때나 건조한 계절 동안엔 피부를 걱정하느라 어쩔 수 없이 고무장갑을 끼지만,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두는 계절이 돌아오면 마치 오래 차고 있던 수갑을 벗듯이 상쾌한 기분으로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음식 냄새가 밸지 모르니 내내 끼고 하라고 옆에선 지청구를 늘어 놓지만 거의 취미에 가까운 이 살림의 도락을 짐작하지 못하리라. 헹굼을 시작하기 전 반지를 빼는 순간엔 야릇한 기분마저 든다.

    이 물기 찬연한 가사의 취미에 어울리는 음악은 단연 재즈다. 커피메이커는 부드러운 커피향을 피워올리고 싱크대 위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연신 재즈가 흘러 나온다. 낮은 피아노 소리와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며 원두를 내리는 커피메이커와 봄날의 개울물처럼 흐르는 개수대의 잔잔한 물소리. 먹고 사는 일이 불현듯 막막해지면 설거지만 전담하는 가사도우미를 해 볼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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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6-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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