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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9
  • 깊고 푸른 밤(@djckvl)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1-03 11:22
    santiago 通信_ 42


    힘을 빼고 아무 생각없이 넋두리하듯 끄적거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처음엔 브런치 brunch 를 해볼까 싶었다. 대단한 걸 쓸 건 아니지만, 블로그는 독자의 대상이 지나치게 넓고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위로 노출된다는 게 께름칙했다. 대단한 걸 쓸 게 아니라서 더 그랬다. 블로그는 전성기에 비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많이 줄어들었고 다른 소셜 네트워크가 백가쟁명처럼 다양하게 펼쳐져 있긴 했다. 그러고보면 브런치가 오히려 더 넓고 다양한 다수에게 노출되는 편이다. 그래서겠지만 상업성을 꽤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현재 주류 플랫폼이 무엇이냐의 문제였다. 거기다 브런치는 다소 정형화된 컨셉을 가져야 한다는 제한도 있어서, 그렇다면 우선 연습 삼아 여기서 몇 회 자판을 두드려볼까,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다. 아무 생각없이 하소연하는 공간이라도 너무 폐쇄적이거나 지나치게 노출이 제한된 지면은 긴장감이 없다. 미미하더라도 타인의 열람을 의식해야 자극이 된다.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인 내밀한 공간이 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라이브 로그에 글을 쓰게 된 사연이다.

    작년 봄부터 매주 쓰기 시작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은 몰랐다. 문제는 뭘 쓰느냐였다. 일단 '글감' 만 잡히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대충은 해결이 된다. 매번 뭘 써야 하나, 오래 붓방아를 찧었다. 모바일 앱 가운데 매일 글감을 선별해서 이것을 주제로 글을 써보시오 하는 게 있다. 세상은 참 넓기도 하지.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시나 디지털 환경이 심화될수록 읽기와 쓰기에 대한 원형적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게 아닌가 한다. '쓰기'를 독려하는 앱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유튜브 세대들의 저조한 문해력文解力을 한탄하는 글들이 요즘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것을 보면.

    스탭으로 있을 때 방송국 게시판에 이런저런 게시물들을 만들어 연재하듯이 올린 적이 있었다. 스탭으로서 운영진을 비롯한 시제이들의 수고에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한 자발적인 일이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로그에 사진으로 詩나 문장들을 그래픽해서 올리는 것은 이를테면, 오랜 지기들을 위해 내어 놓은 한 잔의 차와 같은 것이다. 인라이브에서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깊숙이 말이 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 그렇게 드물게 서로의 소회를 말없이 교환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 로그에 다녀간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들의 로그에 일없이 들르듯이. 각자의 삶에 매몰되어 이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지만 칠판 한 구석에 끄적인 메모처럼 서로의 근황을 그런 식으로 확인하는 셈이다. 그러니 나로선 로그에 올리는 글과 사진들은 말하자면 그들을 위해 주간週刊으로 발행하는 아주 짧은 잡지같은 것이랄까. 발행인 '깊고 푸른 밤' 구독자는 '그리운 닉네임들 모두' 이다. 일주일에 두 번, 지금껏 로그를 채우고 있다.

    새해가 밝았다. 깊고 푸른 밤의 로그에 오시는 그리운 모든 이름들이여. 건강과 행복이 여러분의 일상에 빈번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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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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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27 11:05
    santiago 通信_ 41


    저녁상을 물리고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산책을 나오는 시간이면 가끔 만나는 가족이 있다. 나는 이들을 마스크 쓰기 전부터 알았다. 아버지가 아들과 동행하거나 엄마와 아들이 같이 걷곤 했는데 부부는 대략 60대 초반, 아들은 서른 전후쯤으로 보였다. 아들은 장애가 심했다.

    아마도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들을 데리고 나와 양주가 번갈아가며 산책을 시키는 것이리라. 나는 늦은 퇴근길이나 뭘 사러 나가다 가끔 그 부자 또는 모자와 마주치곤 했는데 때로는 몇 발자국 뒤에서 그들을 따라갈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같이 걸을 때는 어머니 쪽에서 가끔 웃거나 농담을 건넸지만 아버지는 거의 말이 없었다. 부자는 그저 걷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들은 걷기 조차 힘든 지경의 장애였기 때문이다.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길어 올린 듯한 침묵을 뒤따라가는 동안 불행이 어떤 신념처럼 그 침묵 속에 있었다.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는가. 세상은 왜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가. 신은 왜 우리를 방치할까. 그렇다면 신은 왜 있을까. 아니, 정말로 있기는 하나. 밤이 깃들면 생명의 시간을 소진하며 영원을 희구하는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낡아만 간다. 섭리와 운명, 이 굉음처럼 거대한 우주의 음향 속에서 처연한 밤들이 묵묵히 깊어간다.

    우리는 어쩌면 동정同情을 학습해왔다. 누군가의 불행과 슬픔을 우리는 나눠야 하고 공감해야 하며 위로해야 한다는 양심의 규범을 사회적인 훈육의 일환으로 배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어린 심성에 심어진 감정의 연대라는 것은 절실하지 못했다. 고백하거니와, 어떤 공감과 위로는 피상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 대한 감정은 보다 본질적인 상련相憐의 위무로 구조화된다. 세상엔 슬픔이 지천이란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이 보다 입체적으로 도달한다. 가령, 내가 속한 친구들 무리에선 고맙게도 아직 한 사람도 없지만 다른 그룹들에선 벌써 장례식장으로 친구들을 불러들이는 녀석들이 생겼다. 우리는 친구의 여생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그와 함께 보냈을 앞으로의 시간과 그가 남긴 시간을 동시에 잃었다는 슬픔으로.

    내가 죽었다 깨어난들 그 장애를 입은 청년과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심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에 걸쳐 그 가족을 짓누를 어둡고 무거운 일상과 전망을 어떻게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 해가 저물고 어김없이 제야除夜의 시간은 다가온다. 또 하나의 성상星霜이 영원 속으로 편입되는 우주의 운행 앞에서, 세상은 아직도 엉망일망정 내게 작은 소망이 있으니 그 밤의 산책을 나오는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 神이 있다면, 그래서 정말로 신을 대리하는 천사가 있다면, 단 하룻밤만이라도 그들과 함께 잠이 들기를. 그래서 그 밤의 꿈에서만은 천국 같은 낙원에서 세 사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모든 짐을 훌훌 벗고 깃털처럼 자유롭기를. 나 같은 게 감히 이런 소원을 빌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해피 뉴 이어.
    이 황량하고 눈물겨운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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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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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20 11:13
    santiago 通信_ 40


    입대 후 6주간의 훈련병 기간은 한겨울이었다. 고난의 시절은 언제나 기억 속에서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그 해 겨울은 정말 미친 듯이 추웠다.

    신병훈련소에선 규칙상 훈련 기간 6주 동안 PX(군용 매점) 출입이 금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전부리 좋아하질 않으니 처음엔 그깟 매점 못 가는 게 대수롭지 않았다. 춥지만 않으면 다른 건 뭐든 상관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별 것 아닌 군것질을 못하게 되자 단 걸 일체 입에 대지 못해서 나중엔 달달한 게 땡긴 나머지 금단현상까지 오게 되는데, 단맛을 끊으면 몸이 그렇게나 원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허나 하루 세 끼 배식도 허겁지겁 해치우는 군대에서 딱히 달짝지근할 게 있을 리 없다. 헛헛한 입맛에 담배만 줄창 피워대는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전, 훈련소 안 작은 교회의 예배가 있어 종교 여하를 불문하고 훈련병 전원이 참석해야 했다. 아마도 훈련소장이던 중령이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축복이었다.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후끈하게 틀어놓은 히터의 황홀한 온기 속에서 일병을 단 군종병이 집도하는 예배시간에 우리들 대부분은 정신없이 졸았다. 깊은 잠에 빠진 몇몇은 대놓고 코를 골기도 했는데 킥킥대는 우리에게 사람 좋은 군종병은 한 번도 우리의 예배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감격스러운 것은,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출구에서 군종병이 훈련병 모두에게 사탕을 한 알씩 나누어 준 것이다. 한 줌도 아니고 딱 한 알의 과일 드롭프스. 본인도 얼마 전까지 생활을 강제당한 경험이 있으니 누구보다 우리의 애환을 헤아렸을 것이다. 한 줌씩 줬다간 그 많은 인원들에게 경비가 감당 안됐을 것이다. 한 알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그 견고하고 달콤하던 과일 합성 감미료. 단맛에 기갈이 들린 육신에 잉크처럼 퍼져나갔다. 사탕을 입에 넣는 순간, 눈동자의 촛점이 풀리던 녀석도 있었는데 이때에만은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그리스도 주 예수의 은사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영접했다.

    아무도 감히 사탕을 깨물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누군가 그런 '비행'을 저질렀다면 일주일 내내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입 안에서 깨져버린 유리조각을 혀로 골라내는 것처럼 어찌나 공을 들여서 빨아먹었던지 내 평생 사탕이 입 안에서 용해되는 과정을 그토록 침착하고 순차적으로 집중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물론 그 후, 그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는 사탕은 다시 구경해 본 바가 없다. 추억은 아름다워라, 전역 후에 과일 드롭프스 한 통을 사 봤는데 절반도 먹지 못하고 버려졌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가끔 이때를 떠올릴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종교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리스도 주 예수의 은사로부터 결국 모든 신의 구원이란 바로 이 사탕 한 알 만큼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단맛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육신의 권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탕이 봉지째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도 아닌 그저 '사탕 한 알' 만큼의 해갈. 딱 그만큼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사탕이 입 안에서 다 녹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세속의 고난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생명의 원죄와 싸우며 고단한 날들을 이어가야 할 뿐이다. '그리하여 착한 주인공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는 이야기가 얼마나 '영원히' 비현실적인지 우린 오래전에 알아채고 말았으니까.

    기적이란 때로 멀리 있지 않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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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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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13 11:06
    santiago 通信_39


    비만은 당사자의 나태나 생활습관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체질이나 유전 형질의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 요즘 심심찮게 등장한다. 공부는 일종의 재능이어서 노력한다고 다 잘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머리가 따로 있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다. 말인즉슨, 살이 찌는 건 일종의 질환적 요인이니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고, 공부를 아무리 노력한들 타고난 머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발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다이어트 시장이나 거대한 교육 컨텐츠 사업의 뿌리를 뒤흔들 소리가 아닌가.

    실제로 자신은 언제나 전교 1, 2등에 서울대를 나와서 현재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아이는 자기를 닮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라는 어느 엄마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자신은 솔직히 학창시절 한번도 공부가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대충 읽으면 다 외워지고 시험에 뭐가 나올지 다 알겠더라, 당시엔 공부가 안되는 아이들을 이해 못했는데 막상 내 아이를 보니 공부도 일종의 재능이라는 걸 알겠더라는 토로였다.

    나부터도 NO PAIN, NO GAIN 이라는 서양의 격언을 망망대해의 등불과도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섬기고 살아가지만, 하려고만 하면 무조건 되는 거니까 안되는 건 순전히 무능한 네 탓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선동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연하고 순수한 의지들이 상처받고 짓밟혔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착잡하다. 의지 결핍과 게으름의 소치로만 치부되던 실패들이 이제야 과학의 검증을 통해 대명천지에 누명을 벗게 되는 것일까.

    날씬하고 싶지 않은 사람 누가 있고 공부 못하고 싶은 학생이 어디 있으랴.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이 따위 가당찮은 표어 가운데 가장 짜증나는 건 이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런 구호아래 일어났던 모든 폭력과 학대는 언제나 '사랑의 매' 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왔다. 자원없는 개발도상국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와 만났을 때 발화하는 그 야만적 프로파간다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다.

    밤새도록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저체온으로 죽는다는 도시 전설을 전국민이 믿어온 세월이 있었다. 선풍기 괴담을 믿는 것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미신을 신봉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가설만이 난무하고 그 검증은 전무하던 시절은 이제 흘러가고, 상식에 대한 우리네 가난하고 척박했던 관습의 음울한 습기들도 이제는 과학의 태양 아래 건조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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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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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06 10:55
    santiago 通信_38


    초등학교 입학 무렵엔 손이 작아서 연필 깎는 게 서툴렀다. 샤프라는 물건이 대중화 되기 전이다. 어린 게 벌써부터 편한 걸 찾으면 안된다는 교육적 지침도 있어서 가급적 연필을 쓰도록 했다.

    등교 전날 아빠가 연필을 깎아 주셨다. 나는 잘라내기도 버거운 나무결을 거품 걷어 내듯 칼로 살살 돌리면 매끈하게 드러나는 까만 연필심. 아빠는 연필깎기의 영웅이기도 했다. 가지런히 필통에 누운 연필들이 어찌나 대수롭던지 닳아버린 연필심이 밤새 고드름처럼 다시 자라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전영록의 유행가처럼 연필의 미덕은 역시 수정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지우개만 있으면 지저분한 誤記의 흔적이 없다. 게다가 흑연과 그 흑연을 둘러싼 나무. 이게 제품 사양의 전부다. 쓸쓸하리만치 심플한 구조의 필기구. 만년필 등속처럼 잉크를 주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볼펜에 비해 필기감이 부드러워 손목의 피로가 덜 하다. 샤프의 매끈하고 편리한 실용성과는 그 감상이 또 다르다. 일일이 깎아야하는 수고가 선행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런 ‘木工’ 의 절차 때문에 손에 쥔 연필이 내가 길들인 것처럼 정이 간달까. 연필을 깎을때 손으로 어린 포유류의 털을 고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의 바람소리를 실어 보내는 시대, 가상 화폐의 채산성은 오리무중이고 공매도의 존폐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며 중국과 대만의 갈등은 3차 대전을 촉발할지도 모르는데, 검찰과 언론과 정당과 시민사회는 날마다 뒤엉켜 비명과 악다구니를 서로의 낯짝에 집어던지는 이 혼란하고 광기에 휩싸인 아비규환의 세상에,

    연필이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마음은 한결 따뜻해진다. 연필의 친구들은 이러하다. 지우개, 자, 병따개, 옷걸이, 보자기, 훌라후프, 지팡이, 목도리, 양초... 형태 그 자체로 존재인 것. 내면도 외면도 오직 하나로 이루어진 사물들.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이들은 또 얼마나 긴요한지. 그리고 모두 아이들과 노인들처럼 연약한 부류들과 친하다. 솔직한 내면을 드러낸 채로 존재하는 것들은 감동적이다. 며칠 기름지고 체질에 맞지 않은 음식들로 지친 위장에, 느즈막히 식은 밥 그대로 맹물에 끓여 먹은 후의 그 슴슴하고 개운한 입맛같은.

    연필의 영원한 단순성을 예찬한다. 숲에서 비롯된 육체를 지닌 이 착한 물건은 게다가 언제나 자신을 뉘우치는 것이다. 지우세요, 지웁시다, 언제든지. 인간의 미련과 후회가 얼마나 지대하고 잦은 것인지 이 세상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가끔 그런 공상을 한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에 몸부림치며 날마다 시들어가는 우리에게 연필은, 신이 보내온 목조의 聖者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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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12-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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