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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3
  • 깊고 푸른 밤(@djckvl)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4-12 10:32
    santiago 通信_ 6


    여태껏 비가 내리면 꽃잎이 마구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가 들리면
    밤새 저것들이 버티어 주었으면, 했다.
    아침에 창을 열었을 때
    꽃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머쓱하면
    나는 쓸쓸해서 어떡하나,
    어린것의 성장통을 지켜 보는 것처럼
    마냥 노심초사했었다.

    밤새 긴 비가 줄기차게 다녀 간 다음에도
    어린 꽃잎들이 건재했다.
    여전히 구름처럼 화사한 더미인 채로
    듬성듬성 숱이 빠진 빈틈도 없이.

    결국, 꽃잎은 겨우 물에 씻겨 가는 게 아니었다.
    달려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달려 있다가
    종래에 때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가지를 놓아버리는 거였다.
    아무리 작고 연한 존재로 처음 세상에 왔어도
    제가 가야 하는 날쯤은 自力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꽃이 이러할진대.

    도랑처럼 고여 흐르는 빗물에
    떨어진 꽃잎들이 은어떼처럼 저승길을 헤엄친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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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4-07 10:38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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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4-05 11:22
    santiago 通信_ 5


    봄의 술집은 너무 고급스러우면 안 돼.
    생각을 해봐라.
    대궐같은 꽃천지에 이렇게 실컷 눈이 시리고
    숨만 쉬어도 세상 냄새가 온통 향수 같기만 하잖냐.
    가로등 불빛 흐드러진 꽃그늘에 숨이 자욱이 막히고
    하늘엔 흰 별이요 지상엔 흰 꽃이라,
    황홀해서 정신이 없는 지경인데
    이런 감각의 彼岸을 빠져나와서 들어간다는 술집이
    또 화려하고 세련되믄 되겠냐 안 되겠냐.
    사는 게 너무 호화판이어도 죄 짓는 거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게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도록
    꽃구경 실컷하고 꽃냄새 원없이 맡은 다음이면
    술집은 좀 겸허하게스리
    허름한데루 가야 한단 말이다.
    누가 드럽고 지저분한델 들어가재.
    허름한 거랑 드러운 걸 구분 못 허냐.

    툭하면 웃는 늙은 내외가
    주방이며 불 앞이며 홀이며
    느릿느릿 분주하고
    연탄 화덕에 플라스틱 의자가 있는 집.
    동네 수십 년을 살아도 그런 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술집 말이다.
    웨이팅 한다는 맛집 나부랭이는 개나 주고.

    내 일찍이 청춘에 한번
    열나게 연애하다가 오지게 깨 먹고
    어느 봄날에 목욕탕엘 갔거든.
    목욕 마치고 근처에 있던 아무 중국집엘 들어갔어.
    짜장면이나 먹을까 하고.
    점심때가 좀 지나있었지.

    중국집 안은 테이블이 겨우 여섯 갠데
    그나마 한 테이블 위에는 밀가루 포대랑 무슨 채소 꾸러미가 얹혀있고
    축 개업기념 거울은 족히 해방 직후부터 죽 걸려 있었던 거 같더라.
    꼬장꼬장한 주인장 노인이
    주방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주문을 받는데
    꼭 60년대 수필가처럼 생겼어.

    손님이 나 밖에 없었다.
    바닥은 직전에 물청소를 했는지 어울리지 않게 참신하고
    그 봄이 되도록 아직 연탄난로를 철거 안 했더라구.

    좀 있다 짜장면이 나왔는데
    생각보단 맛이 괜찮은거야, 하나도 기대 안 했는데.
    한번 데리고 오면 좋아하겠네 하자마자 바로 정정했지.
    아 이제 그거 안되지.

    수필가가 주방에서 나오더니 식당 문을 활짝 열어제꼈어.
    오후의 봄햇살이 짐짝처럼 털썩 입구에 떨어지고
    매달아놓은 대나무 발이 활기에 차서 짤그락거렸지.
    애들이 길가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비둘기처럼 날아들었다.

    바람냄새가 났어.
    세상 모든 꽃과 나무와 풀과 씨앗의 체취가 묻은
    노곤한 봄볕에 건조된 공기.
    그리고 짜장 볶는 냄새, 양파 냄새, 수돗물 냄새처럼
    세속의 속된 욕망 같은 것들이
    목욕을 마친 몸의 비누냄새와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 순간에.
    짜장면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난 끝내 울지 않았어.

    내 말은
    바로 그런 식당같은 술집 말이야.

    봄날엔 그런 술집을 찾아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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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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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29 11:05
    santiago 通信_ 4


    어린시절 J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가난한 집에 멀쩡한 우산이 없어서
    찢어지거나 부러진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멀쩡한 한두 개는 언제나 언니와 오빠 차지였다.
    아무도 자신의 우산을 비웃지 않았지만
    J는 온 세상이 자기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뒤에 J는 차림이나 주변이 수수하고 검소했지만
    우산에 관해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소 비싸고 쓸데없는 기능이 거북해도
    그녀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우산을 가졌다.
    그렇게 사모으는 통에 발생한 잉여의 것들은
    가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중국에선 우산을 선물하면 안 된대요.
    이별을 암시한다네요.

    이것도 J에게 들은 말이다.

    우리는 상처가 맺힌 우리 마음의 점막을 좀 더 주의깊게 다루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새 법률처럼 우리를 속박해서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자신에게 매번 관대하기만 한 것도 곤란한 일이지만
    아무리 전쟁같은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라고는 해도
    우리는 우리 마음의 멍울들을 자주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신발장을 열라치면 안에 쌓아둔 우산들이 우르르 쏟아진다는 J의 집착을
    꼭 보상심리라든가 미련의 소치로만 받아 넘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J가 우산에 대해서만 유독 사치를 부리는 일은
    어린 시절의 상처에 연한 연고를 바르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또한,
    이제 다시는 찢어진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어른이 된 J가 어린 시절의 J에게 보내는
    작고 쓸쓸한 위안에 다름 아닐 것이다.

    가끔은 구멍 숭숭 뚫린 삶의 허술한 틈이
    다시금 생활의 힘을 얻고 일상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잠깐의 낮잠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J는 옛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 기억 속에는 학교를 향해 힘없이 걷고 있는
    찢어진 우산의 J가 있겠지.
    그러나 그녀는 이내,
    안도하리라.

    삶은
    자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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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2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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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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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18 11:52
    santiago 通信_ 3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군정을 획책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수많은 미얀마 시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그 중엔 조준사격도 포함되어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시위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직업과 계층만큼이나
    연령과 성비를 가리지 않는 희생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군대의 진압은 아직도 무자비하다.

    어느 가난한 동아시아의 전근대적 상황이라고 팔짱을 끼기엔
    우리의 기억은 뼈가 시리도록 멀지 않다.
    놀러가다 죽은 아이들로 얼마나 우려 먹는거냐고
    비아냥 거리는 인간들과 뒤섞여 사는 작금인지라
    41년 전, 5월의 광주는 여전히 유령처럼 우리를 배회한다.
    그날의 피와 살로 발효된 역사의 거름은 어떤 숲으로 피어났는가.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미얀마의 지옥에서
    시위대의 세력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화약냄새 최루탄 연기 매케한 거리에서
    나부끼는 깃발을 향해 산 자들은 연이어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관세음보살.

    5.18 광주에서 시민을 총으로 살해한 계엄군이
    41년 만에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사죄를 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중년이 되었을 시간이다.
    가해자는 40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피해자는 농사를 지으러 고향으로 가던 청년이었다. 스물 다섯.
    검문에 겁을 먹고 도망을 쳤다는 게 살해의 이유였다.
    유족들은 늦게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한다고 했다.
    용서.

    광주에 투입되었던 특전사 3개 여단, 보병 2개 사단의 계엄군들 중에서
    처음으로 용서를 구한 유일한 사례다.
    41년 만에.

    Everything will be OK.
    미얀마의 시위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열 아홉 소녀 치알 신의 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그녀의 영어 이름은 Angel.

    미얀마여 울지 말아요.
    모든 건 다 잘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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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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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3-10 13:00
    santiago 通信_ 2

    조석간 차고 미지근하던 며칠을 보내다 문득 거리에서 봄이 이내 곁에 와 있음을 느낀다. 마치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마을 공터에 들어 온 서커스단의 천막처럼.

    바람속에 내재된 온기에는 花信의 기미가 역력하고 가로수 늘어선 거리의 징후는 다분히 변혁적이다. 계절이란 늘 온건하고 점진적으로 바뀌게 마련이지만 봄이란 계절만큼은 언제나 혁명적이다. 긴 어둠의 침묵같은 겨울이 늘상 형벌같다는 느낌 때문일테지. 겨울 안에서 벌이는 축제들이 유난히 화려한 것은 날씨로 인해 경직된 정서의 반작용일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 겨울이 갔다.
    병마는 여전히 티라노사우르스처럼 세상을 배회하는데 경칩이 지난 이 해동머리에 봄은 다시 평화유지군처럼 왔다. 半百 이 되도록 봄을 맞느라 가슴 설레는 일이란 없던 인생이었으나 세간의 말들이 그러하듯이 나이가 들수록 꽃과 나무에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내 세상은 노랗고 희고 연분홍이다가 간간히 붉디 붉어 황홀하려니.
    고맙다. 이 비루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을 잊지 않아서. 간혹 슬픈 봄이라 형용하는 언사들의 이유가 이런 까닭일까.

    생명이니 도약이니 청춘이니 하는 진부한 수사들은 다 버려두고 그저 봄이란 우울한 한 철을 버텨낸 시간에게 보내는 꽃다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꽃다발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울고 웃을 것인가.

    울린다, 구슬픈 나팔소리.
    웃음소리 커다란 곡마단 천막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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