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nights of quie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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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djck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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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8-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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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8-17 11:54santiago 通信_ 23
天文의 셈이란 여부가 없는지라 입추를 기점으로 태양으로부터 지구의 黃道는 비끼기 시작했다.
바람이 다르다. 에어컨을 쐬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여름 뜨겁긴 했으되 늦게까지 질질 끌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이러다가도 또 며칠 늦은 더위에 들볶일지도 모르지만.
나이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한 해 한 해 여름을 나는 일이 날로 고단해지고 있다.
도심에 모기가 드문 것이 폭염 때문이란다.
하도 더우니 모기조차 그 본능을 포기한 것이라고.
해마다 여름을 넘기지만 어느 여름에 모기가 스스로 행동거지를 자중한 적이 있었나.
그토록 대단한 여름이다, 요즘의 여름이란.
물정 어두운 소리라고 모기같은 건 싹 다 씨가 말랐으면 좋겠다고들 하지만
실제 모기가 멸종하면 생태계에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전망이 순식간에 캄캄해진다는 진단과 비슷한 것이다.
생태의 나비효과.
통계에 의하면 한 세기 동안 상어에 물려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한 해 동안 모기에 의해 죽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
심지어는 사람보다 더 하다.
매년 살인사건으로 전세계 35만 명의 인류가 사라지는데
모기가 죽여 없애는 숫자는 무려 75만 명이다.
그런데도 모기가 사라지면 안된다는 확고부동한 가설이 있다는 건
아직 우리의 과학이나 논리로는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월남전을 다룬 어느 소설에 밤새 참호에서 경계를 설라치면 지루하고 졸리다 보니
'긁는 재미' 라도 있으라고 일부러 모기가 물도록 내버려둔다는 묘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고작 이런 걸 모기의 순기능이라고 하면 멍청한 소리도 작작하라고 욕 먹겠지만
여하튼 세상 어느 生物도 이유없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가끔 하게 된다.
아직 이름이 없을 뿐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는 뭇사람들의 경구처럼.
만 번 그렇더라도 긁은 재미가 아니라 깨를 볶은 재미가 있어도 모기 물려 줄 의향은 눈꼽만큼도 없다.
멸종도 무서운 일이라니 모기 없이 살아도 안되는 노릇이고
그저 가급적 마주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코 앞이다.
처서를 지나야 더위가 완전히 씻긴다고 했다.
화염 속 한 철 이겨 내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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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8-1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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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8-09 10:51santiago 通信_ 22
水가 귀한 사주라 그런가 어릴 때에는 물을 좋아해서 많이 마셨다.
체질이 소문이 나서 어쩌다 친척댁에 묵게 되면 그 주인께서,
너 온다구 해서 물을 많이 끓여뒀다고 농을 할 정도였다.
목으로 넘기는 물만 좋아한 게 아니라 물에서 노는 일도 즐겼다.
제대로 자세를 교정받은 정식 수영은 근년의 일이지만
이전에도 개헤엄처럼 풍덩거리긴 해서 물속에서 곧잘 놀았던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해한다.
그래서 물에 대한 나쁜 기억이 없다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처럼 흔하고 푸근한 것도 드문데.
생활이 바빠지면서 수영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여름을 보내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는 코트를 한 번도 입지 못하고 겨울을 보낸 기분이 든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싯달타' 에서
강물은 현재에만 존재할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없고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으니,
매 순간 흐르지만 그곳에 언제나 존재하며
동일한 것임과 동시에 늘 새롭다고 했다.
"강물은 그들에게 삶의 소리요,
현존하는 것의 소리이자 영원히 생성되는 것의 소리였다."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가 강물 소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상선약수 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 水善利萬物而不爭
"최고의 善은 물과 같으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그 공을 다투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이야말로
물의 속성을 여실히 정의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입추도 지나고,
어른들 말씀에 양력도 팔월 첫 주만 넘겨도 물에 몸을 넣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작년에 이어 올 여름도
물에 들어가는 건 물 건너 간 듯 싶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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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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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26 15:23santiago 通信_ 21
이제 폭염은 일상화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까지 올라오는 지열을 느끼면 숨이 막힌다.
이 정도면 거의 재난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니 더 심각하다.
이 熱火의 한가운데서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정말이지 감사한다.
더구나 코로나 관련한 의료진들의 분투가 가히 눈물겨울 정도라니
시원한 실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건강과 안전에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방학이 있고 그늘진 마당의 외갓집이 있던 시절의 여름은
이토록 혹독하지 않았다.
아무리 더워도 반드시 어딘가엔 한숨 돌릴 시원한 구석이 있었다.
에어컨이란 물건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던 시절이다.
등목이 있었고 푸른 채소와 수박이
갈색 '고무 다라이' 에서 빙글빙글 빛나던 수돗가.
고작 그 정도에도 더위는 쉬이 가셨다.
나이 든 어른들은 기계 바람이라 싫다고
선풍기마저 외면하곤 했는데.
이 폭력과도 같은 재난도 결국은
우리가 낭비하고 탕진하며 소홀히 한 일들에 대한 엄연한 업보다.
우리야 지은 죄가 있으니 달게 받고 세상 떠나면 그만이지만
어린것들은 무슨 죄로 이런 환경을 물려받아야 하는가.
국가라는 하나의 작은 경계 안에서도 앞선 세대들은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보다 나은 합리적인 세상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것은 당대의 필요와 요구이기도 했지만 거시적으로는
다음 세대의 터전을 위한 노력이었음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적어도 제대로 되어먹은 어른이라면.
애면글면 하나씩 고치고 바로잡고 원칙을 세우고 나니
이젠 기후가 이 모양이다.
마치 한눈 팔다 새카맣게 태워 먹은 프라이팬을 돌려줄 때 같은 낯짝으로
우리는 世代를 교체할지도 모르겠다.
아 인생의 피로여.
부디 이 땅을 이어받을 후세의 지혜와 노력이
또다시 세상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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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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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19 11:44santiago 通信_ 20
영화가 시들해진 건 한참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의 피로 탓도 있거니와,
언제부터인가 '보이는 것' 과 '보여주는 것' 의 차이를 느끼는 어떤 관점이
몸속에 새겨졌달까.
아무리 좋은 의도로 꾸며봤자 어차피 모든 픽션은 僞造라는 허무가 있었다.
기어이 이유를 찾아내자면야
아마도 마블이니 DC니 하는 히어로물이 판치기 시작하던 무렵이
그나마 붙들고 있던 영화라는 콘텐츠의
새끼손가락마저 놓아버린 시점이 아닌가 한다.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게다가 지들은 하나도 웃지도 않고 막 날아다니잖아.
나는 영화에 시들해졌고
언제부턴가 의무감에 억지로 본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다 몇 해 전,
무심코 보았던 영화 한 편으로 해서
영화에 대한 싫증이 잠시 가셨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고, 다시 영화라는 건
하늘을 날아다니며 우리를 걱정해주는
쫄쫄이 입은 백인들의 조울증을 돈 내고 구경하는 일이었다.
(너무 꼬였나 ㅎ)
최근에 본 영화에서 다시 한 번,
내가 처음 영화를 인식했을 때와 같이
칼날처럼 서늘한 것이 내 안에 들어왔다.
넌 결코 날 외면할 수 없을 거라고
영화가 나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다시 영화가 싫증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영화는 언제든 또 나타난다는 사실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뿐이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고
이란의 영화감독 아시가르 파르하디가 말했다.
내게 영화라는 걸 다시 돌아보게 만든 두 영화 모두 우연히도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이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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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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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1-07-12 10:39santiago 通信_ 19
神이 俗界에 사는 우리에게 권장하는 삶의 표본이란
소작농과 같은 생활이 아닌가 한다.
적당한 경작지,
거칠고 적은 음식,
많은 노동,
욕심없는 일상.
왜냐하면 이것은 그대로,
현대 의학이 목이 쉬도록 강조하는
건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몰두할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
小食,
잦은 운동,
마음의 안정.
이렇게만 하면 죽고 사는 일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평생 의사 얼굴 안보고는 살 수 있다고
그 의사들이 말한다.
결국 신의 당부라는 것은,
겸허히 살라는 말씀 아니겠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나 먹는 일을 관리하는 것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일이다.
나이가 드니까 실감하는 것이,
자꾸 뭘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자꾸 뭘 안 먹는게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고 지인이 말했다.
난 동의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평생 지켜왔다는 식생활 원칙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가장 배가 고플 때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것을
겨우 조금만 먹으라.
어둡고 핍진한 中世에
이미 절식의 효용을 깨달은 천재의 혜안이 놀랍다.
음식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이란 생활 속의 커다란 위안이다.
나 역시도 먹자는 일이라면
연어 통조림 뚜껑 따는 소리를 들어버린 수달처럼 집요해지는 인간이지만
가끔은 세상이 이거 너무 먹자판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한편으론,
그런 과식의 인플레이션은 어쩌면
현대의 일반화된 정서의 허기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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