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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3
  • 깊고 푸른 밤(@djckvl)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21 11:54
    santiago 通信_ 16


    6.25 특집 드라마.

    인민군이 점령한 마을에 부상으로 홀로 낙오한 국군은
    적군의 눈을 피해서 어느 농가 근처의 다 쓰러져가는 농막에 숨어든다.
    그를 발견한 것은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농가의 젊은 과부.
    며칠 눈치를 살피다 어느 저녁에야 겨우
    보리밥 한 덩이와 풋고추, 막장을 한 바가지에 퍼담아 숨어있는 국군에게 건넨다.
    상한 몸에 여러 날 허기진 국군은,
    바가지를 받자마자 걸신처럼 보리밥을 입에 퍼넣고
    풋고추를 막장에 찍어 허겁지겁 한 입 베어문다.

    와삭!

    ... 내게는 이 장면이
    고추에 대한 영원한 로망으로 정지되어 있다.
    커서 어른이 되면 꼭 저렇게 고추를 막장에 찍어 먹으리라.
    고추맛도 모르는 열 살도 채 안된 어린시절이었다.
    고추의 맛도 맛이지만,
    입 안에서 부서지는 저 싱그럽고 탄력있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흔히 짜장면을 두고 어른이 되면 그러겠노라고 아이들이 벼르듯이
    나중에 반드시 고추를 아삭아삭 씹어 먹으리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식탐을 홀로 키워나갔던 것이다.

    불행이 찾아왔다.
    나에게는 매운 맛을 배겨내는 유전인자가 별로 없었다.
    사춘기를 보낸 후에 알아챈 사실이다.
    집안의 내력이 그러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꾸 먹다보면 매운 걸 먹는 실력도 늘어난다는 친구의 꼬임에
    쭈꾸미집에서 그 집 최고 매운맛을 시켰다가
    벽에서 용이 튀어나와 불을 뿜는 환각을 경험한 뒤로는
    끝내 매운맛을 포기하고 말았다.

    꼭 청양고추처럼 매워야 하나,
    그냥 풋고추를 먹어도 되잖아.
    맵지 않은 고추는
    네맛도 내맛도 아니어서
    쌈장에 찍어 먹는 오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고추가 없는 여름 식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수수하고 소박한 여름 밥상의 푸성귀들 가운데
    싱싱하고 깔끔한 고추의 매운 맛은
    더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린다.

    여럿이 모여 함께 밥을 먹을 때
    고추에 대한 이쪽의 짝사랑은 차마 짐작조차 못하고
    같이 앉은 사람들은 무심히 으적으적 고추를 씹어 먹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줄 알아서
    일부러 이별을 고하고 내가 떠나보낸 여인이
    결국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빛이 이럴까...싶다.

    댓글 0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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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14 10:40
    santiago 通信_ 15


    소설가 황순원의 단편 중에 '모델' 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목가적인 작가에게 이렇듯 모던한 제목이라니 싶지만,
    패션 모델이 아니라 그림 모델 이야기다.
    줄거리인즉슨,
    미술대학 여학생 두 사람이 자신들의 그림에 어울릴 모델을 찾느라
    온 거리를 싸돌아 다녔으나 별 소득도 없이 지쳐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사십 대의 허름한 지게꾼을 발견한다.
    찌든 조끼에 풍성한 구레나룻, 수염 북실북실한 저 지게꾼이 바로
    자기들이 찾던 모델이라는 것을 알았다.
    곧바로 자신들의 아틀리에로 데려와 그림을 그리고는
    두 시간 모델료로 천 환을 쥐어준다.
    하루종일 아낙들에게 시달리며 짐을 날라도
    겨우 일이백 환 벌이인데 지게꾼은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그녀들은 내일 또 와주십사 당부까지 했다.
    큰돈을 들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온 사내를 보고 마누라는 놀란다.
    지게꾼은 오늘 있었던 횡재를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네, 당신같은 몰골을 그려 뭐하려나.
    신기해하는 그녀에게 지게꾼이 건네는 말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러기 말이오. 낼은 두루마기라도 좀 걸치구 가야겠소...
    난 다리 밑에 가서 머리나 좀 깎구 오리다. 오랜만에 수염도 좀 밀구..."

    영화 '더티 댄싱' 의 여주인공 제니퍼 그레이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풋풋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았다.
    영화가 성공하자 두 차례에 걸쳐 코를 성형했고
    그 결과, 더 예뻐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래의 청순했던 매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흐지부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자신을 객관화 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관점을 파악하는 일이며
    자신의 입지를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성과 논리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허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고전들이 끊임없이 경고하는 것이다.
    정관정요의 君道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정관 2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현명한 군주, 어리석은 군주라고 하는가.

    위징이 대답하기를
    군주가 현명한 것은 널리 남의 의견을 듣기 때문이며
    군주가 어리석은 것은 한쪽 말만 믿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권력을 추구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를
    이젠 중학생도 다 아는 지경의 민심인데,
    자신을 추켜 세우는 일부의 환호에
    불나방처럼 뛰어 들어다가는 이내 무너지기 십상이다.
    눈에 불을 켜고 토끼잡이에 몰두해 본 들
    언제 솥 안에 삶길지 모르는 사냥개의 운명이 거기에 있다.
    내가 그만한 그릇이 되는가의 평가는 둘째치고,
    이토록 열렬히 자신을 밀어올리는 무리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가는
    적어도 한 번쯤 시간을 들여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헛된 욕망에 허덕이는
    노름꾼들조차 조언하지 않던가.

    초장 끗발 개 끗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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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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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07 11:45
    santiago 通信_ 14


    여름이 가장 눈부신 순간이다.
    사계절 가운데 이 시기를 가장 좋아한다.
    아직 열대의 온도가 스미지 않은 풋풋한 바람.
    파랗게 시작하여 점차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시각적 감각의 스펙트럼이 그 안에 있다.
    늦은 여름이나 이른 가을의 바람엔
    이런 청량감이 없다.
    그때의 바람엔 어떤 절정에서 겨우 놓여난 듯한
    피로의 기미가 있을 뿐이다.

    먼 기억 속의 어느 초여름날에
    예정에 없이 江가엘 간 적이 있었다.
    강변은 온통 둥근 자갈들이었고
    오래된 나무 옆에 木造 창고가 있었다.
    네가 있었고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

    강물 소리 끊이지 않았다.
    바람은 새떼처럼 연신 우리 곁에 몰려왔다 떠나고,
    오래된 나무들이 파란 하늘에
    하루종일 머리칼을 헹구고 있었지.
    강의 수면이 튕겨내는 햇살의 파편들이
    네 어깨위에 하얗게 내려앉았었다.
    누군가 근처 밭에서 수박 두 덩이를 사 와서
    우린 그걸 돌로 깨트려 먹었다.
    과즙을 입가에 흘리면서.
    미지근하고 달았다.
    끈적끈적해진 손을 강물에 씻을 때,
    휘날리던 너의 그림자.

    그날 밤, 골목 끝 너의 집 방범등 아래에서
    너는...수박맛이 났었지.
    뺨의 점도 수박씨 아니냐고 놀렸다.
    그날 너의 눈동자는 유난히 자주 흔들렸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다 청춘이었구나.
    청춘의 한복판이었구나.
    새처럼 떨던 너를 들여보내고
    홀로 골목을 빠져나올때에
    내 온몸의 피가 한없이 뛰고 있었다.
    이제 추억은 눈물처럼 말라가지만
    깊고 깊었던 그 골목의 순간들.

    내 마음 속의 방 한 칸엔 아직도
    그 밤의 공기와 저녁의 빛깔들이
    박제되어 있다.
    차가운 망각의 복도를 지나
    그 방의 문을 열때마다
    너의 샴푸냄새는 나프탈렌처럼,
    언제나 나를 마중 나온다.

    "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대, 여름보다 아름답고 화창하다.
    모진 바람이 5월의 꽃봉오리를 떨구니
    여름이 너무나 짧은 것을 어찌하랴.
    때로 태양은 너무 뜨겁고
    그 금빛 얼굴이 흐려지기도 한다.
    어떤 아름다움도 언젠가는 시들고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로 어여쁨도 상하고 말지만
    그대 지닌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고
    그대 지닌 아름다움도 가시지 않는다.
    죽음조차 그대 앞에선 굴복하리니,
    불멸의 노래 속에 때와 함께 살라.
    인간이 숨쉬고 눈으로 보는 한
    이 노래는 살아서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라."

    셰익스피어 소네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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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6-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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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5-31 11:03
    santiago 通信_ 13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환기를 위해서 창문을 힘껏 열어 두는데
    한겨울에도 예외가 없다.
    아침의 규칙이다.

    이맘때 아침 창문으로 맞아들이는 공기란
    잘 다려 놓은 와이셔츠 냄새 같기도 하고
    새 책에서 풍기는 종이냄새처럼도 느껴진다.

    이내 정겨운 소음들이 창을 타 넘어 들어오는데,
    억수같이 비오는 날 말고는 쉴새없이 낙천적인 애들.
    까치, 까마귀, 멧비둘기, 참새, 직박구리, 박새...
    저희끼리 떠드는 소리를 온 아파트 주민들이 다 듣는다.

    짹짹거리는 그 중구난방 사이에
    다가오는 버스의 엔진 소리며
    멀어지는 택시의 경적 소리가 있다.
    食前부터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명이다.

    그 중에서도 아침을 정갈하게 하는 소리는
    싸리비로 아파트 구석구석을 비질하는 소리다.
    콘크리트 바닥을 써억써억, 하루도 빼먹지 않고
    누군가 이 아침부터 그야말로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는 것이다.
    보나마나 경비 아저씨겠지만.
    맑은 아침에,
    내 주거의 터전이 청결해진다는 실용적인 감상까지 더해져
    경건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출근길, 말끔한 보도블럭 위를 걷노라면
    출근을 하는 나의 생활도,
    비질을 한 누군가의 이른 아침도,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수다도,
    각자 생의 형태가 모자이크처럼 맞물려
    이 보도블럭처럼 세상의 길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분수껏 열심히 살다 보면
    뭐든 더 좋아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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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5-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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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5-24 11:01
    santiago 通信_ 12


    마이클 잭슨이 작고하고 꼭 일주일만이었나,
    인라이브에 처음 가입을 했다.
    첫 신청곡도 기억난다.
    마이클 잭슨의 Human nature.

    우리 세대의 사춘기 시절을
    거의 거느렸다시피 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때까지도 그의 죽음이 얼떨떨했고
    산다는 일의 허무가 체험적으로 다가왔었다.

    당시 닉네임이 吉人이었는데
    역경易經에 나오는
    길인지사과 조인지사다 吉人之辭寡 躁人之辭多
    에서 따온 말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그 말이 적으며
    덕이 없는 자는 말이 많다는 뜻이다.
    공창에서 내 수다를 구경한 사람들은
    내 닉네임의 유래를 듣고 나면 폭소를 터트리곤 했다.

    이곳을 드나든지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온라인의 사이버 세상,
    비록 익명으로 만나는 실체가 없다시피한 커뮤니티지만
    늘상 들어가는 방이 있고
    그 속에서 만나는 친숙한 면면들이 있다는 사실은
    권태로운 생활속에서 조약돌처럼 빛난다.

    어느 분 말마따나
    레몬 시장의 법칙이 여기에도 있어
    질 나쁜 인간들 때문에 괜찮은 사람들이 발을 끊어버리는
    안타까운 일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접속 환경이 변하기도 했고
    최근의 일처럼, 방송 시스템이 바뀌는 바람에
    염불보다 잿밥이 목적이던 '선수' 들이
    대거 걸러지기두 했다.

    누구에게나 취미라고 할 만한 잡기가 있는 법이고,
    하등 먹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일에 몰두하는
    여가활동이 있게 마련이다.
    모두 고단하고 촘촘한 생계의 굴레 속에서
    잠시 피워보는 딴전의 요령들이리라.

    현실에서 나는 과묵한 편이고
    때론 낯도 가리는 지경인데
    공창에선 덕이 없도록 수다인 것은,
    어쩌면 익명의 자유 안에서 평소의 나를 보상하려는
    심리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if they say why why
    tell them that it's human nature
    왜냐고 묻는다면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해 줘

    i like livin' this way
    i like lovin' this way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이런 방식의 사랑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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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1-05-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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