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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9
  • 깊고 푸른 밤(@djckvl)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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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17 10:27
    santiago 通信_ 73


    중학 시절 자전거로 통학했는데 딱 이맘때의 봄이었다. 2학년 1학기 오후의 하굣길, 자전거에 앉은 내 가슴팍과 얼굴로 봄날 저녁의 부드럽고 미지근한 바람이 물결처럼 밀려왔고 병아리색으로 바래진 햇살은 노을빛으로 짙어져 먼 건물들의 원경이 차츰 흐릿해지던 시간.

    전두환 덕택에 교복과 두발의 자율화가 시행되던 중이라 일본식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라 머리마저 길게 길러도 선생들은 상관하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이 봤다면 외국인 학교 학생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E.T. 를 자전거에 태우고 탈출하던 영화 속의 아이들처럼 우리는 달렸다.

    모퉁이를 돌아서 어느 여고 앞, 건축이 지연되는 중이던 공사현장의 비포장 길을 신나게 달리는 참인데 그때 먼발치에서 걸어오던 여인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다. 젊은 여자였고 적당한 키에 하얀 원피스, 갈색 스타킹. 비끼는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빛의 간섭으로 그녀의 자세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중요한 건 햇빛의 역광으로 인해 그녀, 원피스 속에 육체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나는 마치 난생처음으로 여자를 구경하는 프랑켄슈타인처럼 온몸이 얼어붙은 채 그녀를 지나쳤다. 그녀를 스쳐가는 몇 초 동안 내 귓가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번개처럼 지나간 순간의 일이었지만 나도, 심지어 자전거도, 나와 자전거를 둘러싼 공기마저도 발갛게 상기 되어서 미열이 있는 것처럼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밤, 봄은 한층 원숙해져 있었다. 생의 전혀 다른 이면이 열린 것이다. 알 수 없는 흥분과 설레임이 불규칙적으로 다가왔다 사라졌고, 코 밑의 수염 자리가 유난히 거무튀튀했으며 꽃잎을 깊숙이 들이킬 때 나는 향기 어린 비린내를 맡는 기분도 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여성’ 이라는 '객체'를 그날에 이르러서야 난생처음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고 사고하며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세계는 인식의 반영이라고.

    그날 밤... 나는 얼마나 당돌하고 발칙했던가. 길고 복잡하고 몽환에 어지러운 꿈이 있었다.

    정말이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사춘기의 첫 순간. 아득하기만 한 시간의 저 편, 어느 봄날의 오후.
    자전거가 일으킨 부연 먼지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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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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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10 10:41
    santiago 通信_ 72


    가수 현미 선생이 작고 하셨다. 그 며칠 전에는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이 별세 했다. 나는 현미 선생의 ‘밤안개’ 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왕가위의 영화 중에 ‘화양연화’를 좋아하는데 '밤안개'라는 곡에는 어딘가 그 영화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미 선생의 노래 중에 내가 아는 곡은 '밤안개' 한 곡이 유일했고 비교하자면 사카모토 선생의 음악을 훨씬 많이 들었다. '마지막 황제 OST' 라든가 특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같은 곡은 요즘도 자주 듣는다(생각난 김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반복해서 듣고 있다). 게다가 사카모토 선생은 ‘친한파’ 로서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반전과 평화를 주장했던 양심적인 음악가로도 명망이 높았다. 인간의 죽음 앞에 경중이 있으랴만 그럼에도 나는 사카모토 선생 보다 현미 선생의 작고가 더 애잔하다. 내 안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무가 일어난다. 몇 해 전 배우 신성일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기분을 설명하자면 뭐랄까,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를 둘러싼 세계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 신성일 선생 역시도 나는, 그분의 영화도 신성일 선생 자체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마치 익숙한 생활의 일부를 상실한 기분이었다. 특별히 좋아하고 추앙했던 적은 없었지만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 있어 그들은 언제나 늘 한 곳에 걸려 있는 그림이거나 오래된 나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 어린 시절부터 현미와 신성일이 있었던 익숙한 정경들과의 작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빠와 엄마’ 였던 때, 두 사람의 공간 안에서 어린 나와 내 동생은 무럭무럭 몸이 자라고 마음이 커져갔던 것이니 나로선 단 한 번도 나의 세계 안에 현미 선생도 신성일 선생도 벽에 걸거나 나무로 심은 적이 없다 해도 그들에 대한 아빠와 엄마의 추억을 온전히 '상속' 받은 셈이다. 은연중에 그들은 벽에 걸린 익숙한 그림이었고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커져버린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떠났다. 그림을 떼어낸 오래된 벽엔 그림크기만큼의 말끔한 면적이 헛헛하게 드러나고 잘려진 오래된 나무의 그루터기는 홀로 기대어 앉기에 충분하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잦아지는 이별에 적응하기 위한 마음의 방어기제 같은 것인지 다시 오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한 작별의 말들도 이제는 괜스레 비감하지 않게 되었다. 고맙다는 마음은 자주 들었다. 뭐가 고마운 건지는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저 이 어설픈 세상을 북적북적 같이 부대끼며 살아줘서 고마운 것일까.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 좋은 음악 들려줘서 고마웠어요.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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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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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4-03 10:20
    santiago 通信_ 71


    오래 전에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선배가 운영하는 조그만 사무실에 다니고 있었고 '그' 는 우리 사무실에 들른 거래처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도 나도 서로가 처음 보는 자리였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했는데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보자마자 이 사람을 전에 분명히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사람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더듬거리고 있는데 그가 불쑥 물어왔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그럼 그렇지, 분명히 본 게 맞다니까. 그에겐 우리가 클라이언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이 거래처의 직원을 사귀어 둬서 나쁠게 없었다. 단순한 비즈니스적 관계 이상의 인맥이 된다면 내게도 이익일 것이라는 다분히 속물적인 계산까지 넣어서 나는 그의 말을 흡족하게 되받았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했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본 사이였는지 인연의 궤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학번까지 같았다. 그러나 접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부터 군대의 근무지, 학교는 물론이고 살았던 동네, 심지어는 자주 가는 목욕탕까지 대조를 했지만 그와 내가 겹치는 지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그와 닮은 누군가와 착각을 한 나머지 나 혼자 오해 했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나를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착각을 동시에 한다는 게 보통의 흔한 우연인가. 단 한 올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자 그와 나는 거의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던 선배는 재미있어 죽겠다고 뒤집어졌지만 이 명백한 기시감이 도무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끝에가서는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어째 무안한 기분마저 들자 나는 거의 체념하며 이런 혼선두 서로간에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언제 대포나 한 잔 합시다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자 그는 말난 김에 오늘 당장 마시자고 했다. 그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왔고 나는 사무실의 여직원과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갔다. 여직원도 우리와 동갑이어서 동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땐 정신없이 퍼마실 시절이라 그날도 몇 차까지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다음날 푸석푸석한 얼굴의 여직원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전해 준 이야기는 노래방에서 두 사람이 마치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몇 십년 만에 만난 듯이 서로 부둥켜 안고는 줄창 발라드만 부르더라는 것이다. 따라나온 그의 여자 친구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몇 번이나 저 두 사람 오늘 처음 본 사이가 맞냐고 자신에게 묻더라고도 했다. 새벽 2시에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으로 가겠다고 버둥거리는 그와 나를 두 여자와 택시 운전수가 땀을 철철 흘리며 간신히 떼어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속한 영업팀은 다른 라인으로 교체되었고 우리 사무실엔 그를 대신해 다른 영업 사원이 출입했다. 그와 나는 실체가 전혀 없는 인연에 쓸데없이 열을 낸 것이 서로 머쓱했던 것인지 연락을 주고 받는 것도 어딘가 어색했다.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 후로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지금은, 미안하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런 인연도 아니었건만 도대체 그와 나의 무엇이 서로를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평행우주처럼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인연의 결과가 어떤 오류로 인해 이편의 기억으로 넘어 온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을 다 해봤지만 뾰족한 결론이 날리는 만무했다. 이 혼란스러운 사건의 상대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훨씬 쌉쌀하고 애처로운 느낌으로 오래 마음에 남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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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3-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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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3-27 10:45
    santiago 通信_ 70


    비가 내리고 나자 한나절은 족히 날씨가 한 달 전으로 돌아간 듯 서늘해졌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쌀쌀하지만 이틀도 못 갈 봄날의 변덕이다. 꽃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비가 살살 뿌린 탓도 있지만 아직은 낙화落花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 빗줄기에 쓸려버린 꽃나무 가지가 휑하니 비어 버리면 으레 갈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이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별안간 자취가 없어진 꽃들 생각에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한 해를 기다려야 저 환한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별의 정한이 다소 있기로서니 과히 탓할 바는 없지 않을까. 해서 꽃이 질 때 즈음 비가 내리면 마음이 울적하다…고 하면 좀 과한 말이고, 불안하다고 하면 어째 자발없어 보이는 것이니 그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정도일까. 노심勞心일지언정 초사焦思는 아닌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다. 꽃이 지는 일에 이렇게 여러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그저 늙고 있다는 증거이지 뭔가.

    황사와 미세먼지가 봄철 한반도의 연례적 상황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생각을 좀 달리 하게 된다. 얇고 화사한 저 잎들이 건조하고 퍽퍽한 대기의 검은 분진 속에서 찌들어 가다가 끝내 먹먹한 공해 속에 바스라질 듯 사멸한다면 그것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참하고 애처로운 정경은 없을 것 같았다. 작은 나비떼나 반딧불이처럼 어느 한순간 모두 가지를 떠나 훨훨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면 봄이란 계절이 얼마나 더 사무치게 황홀할까마는 동화 같은 망상이 이에 이르자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내리는 빗발에 후두둑 가지를 털고 내려와서는 흐르는 빗물에 떠밀려 이승을 황황히 떠나는 것이 훨씬 나으려니 바라게 되었다. 물의 장례, 비 내리는 날의 발인, 물빛의 이별이다. 봄꽃의 작고 연약한 ‘비늘’ 들이 비의 강물에서 치어稚魚처럼 저희들끼리 조잘거리면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나이를 먹고서야 최근에 살구나무 꽃을 처음 알아보았다. 그나마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평소에 그저 벚꽃에 근접한 종이려니 하며 지나쳤던 나무와 꽃이 실은 살구였다. 매화보다는 여리고 벚꽃보단 어딘가 진한 느낌이다. 옅은 자색이 희미하게 스민 하얗고 작은 꽃잎.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슴에 자욱하도록 펄럭이고 있었다. 너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인생 헛살았대도 할 말이 없네.

    꽃의 영혼들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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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3-2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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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3-20 10:39
    santiago 通信_ 69


    ‘봄의 전령은 꽃’ 이라고 하면 참으로 판에 박힌 진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판에 박힐 만큼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체할 다른 비유나 상징을 찾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 꽃들이 가지마다에 앉기 시작했다. 봄의 전령들이 다시 세상을 찾아왔다. 봄을 실감하는 데엔 역시나 꽃을 대신할 것이 없다. 불어오는 바람 속엔 모서리 하나 없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모양인지 새들은 높고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도 겨울의 관성을 벗지 못해 여전히 어둡고 두꺼운 편인데 어느 날 다가온 계절을 실감하게 되면 이들이 걸친 옷감들도 완연히 가벼워지리라. 눈만 돌리면 사방이 온통 봄으로 범벅이 된 듯한 시골에 비해서 도회의 봄이란 무언가 정제되어 있는 감흥을 준다. 콘크리트의 여백에서 피어나는 가느다란 춘정春情같은 것이다.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한 철을 보낸 보도블록들은 세수도 못한 채 아침조회에 불려 나온 기숙사생들처럼 뚱한 표정이다. 이 겨울, 비도 눈도 꽤나 드물었던 탓이다. 겨울 가뭄이 길었던 것 치고는 새 봄에 돌아온 꽃과 잎들은 씩씩하다. 해마다 그렇듯이.

    그리하여 가로수, 화신花信이 도달할 길목마다 깃발을 들고선 퍼레이드 행렬처럼 화려하고 명랑한 이 거리는 이내 만개한 순백의 함성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벚꽃의 하얀 그늘 밑을 어린것들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강아지와 쓸쓸한 노년과 상심한 청춘이 지나가겠지. 사시사철 가로수가 보여주는 여러 장면 가운데 봄의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다. 신이 인간과 나무를 함께 살도록 한 것은 참 너무하다 싶을 만큼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해가 길어진 덕분으로 아파트 어귀의 마트를 들렀다 나오는 퇴근길 장바구니들의 발걸음은 느슨해지고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들은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저녁 뉴스가 시작되는 TV 소리, 주방에서 끓고 있는 찌개, 생선을 굽는 냄새…모두의 베란다 창이 조금씩 열려있다. 목련은 같은 정원에 피어 있어도 꽃잎이 벙그는 시기가 나무마다 다르다. 어째서 너는 빠르고 또 너는 늦느냐고 차마 물어보진 못하고 구경만 하는데 사위가 어둑시근해지면서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봄의 밤이 찾아왔다. 둥글둥글 미지근한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마트에 들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원근 6백여 세대의 창들이 일제히 봄밤의 환한 어둠 속에 잠긴다. 퇴근하는 새들이 흰 별이 돋기 시작한 청회색 하늘로 낮게 사라지면 북쪽 하늘이 서서히 짙어져 온다.

    계절이 아름답다. 어쩌면 이렇게 비현실적인 감각이 있을 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 판인지 어안이 벙벙한데 시절은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아름다워도 되는 것이냐. 어느 순간 갑자기 무언가 툭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이 위태위태한 불안을 끝내 견디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희망, 그 하나다. 절대로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가 우리를 버티게 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오로지 사랑만이 절망하지 않는 모든 순간을 지켜내는 것처럼. 나른한 현기증 같은 비릿한 꽃가루의 향기가 풍겨올 때에 나는 알아차렸다. 이것은 다분히 희망의 체취이며, 내 뜨거운 사랑의 징후인 것을. 눈물이 마르고 나면 그곳에도 꽃이 피겠지. 나는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천천히 걷기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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