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iet nights of quie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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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djck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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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4-10 10:41santiago 通信_ 72
가수 현미 선생이 작고 하셨다. 그 며칠 전에는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이 별세 했다. 나는 현미 선생의 ‘밤안개’ 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왕가위의 영화 중에 ‘화양연화’를 좋아하는데 '밤안개'라는 곡에는 어딘가 그 영화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미 선생의 노래 중에 내가 아는 곡은 '밤안개' 한 곡이 유일했고 비교하자면 사카모토 선생의 음악을 훨씬 많이 들었다. '마지막 황제 OST' 라든가 특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같은 곡은 요즘도 자주 듣는다(생각난 김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반복해서 듣고 있다). 게다가 사카모토 선생은 ‘친한파’ 로서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반전과 평화를 주장했던 양심적인 음악가로도 명망이 높았다. 인간의 죽음 앞에 경중이 있으랴만 그럼에도 나는 사카모토 선생 보다 현미 선생의 작고가 더 애잔하다. 내 안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무가 일어난다. 몇 해 전 배우 신성일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기분을 설명하자면 뭐랄까,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를 둘러싼 세계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 신성일 선생 역시도 나는, 그분의 영화도 신성일 선생 자체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마치 익숙한 생활의 일부를 상실한 기분이었다. 특별히 좋아하고 추앙했던 적은 없었지만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 있어 그들은 언제나 늘 한 곳에 걸려 있는 그림이거나 오래된 나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 어린 시절부터 현미와 신성일이 있었던 익숙한 정경들과의 작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빠와 엄마’ 였던 때, 두 사람의 공간 안에서 어린 나와 내 동생은 무럭무럭 몸이 자라고 마음이 커져갔던 것이니 나로선 단 한 번도 나의 세계 안에 현미 선생도 신성일 선생도 벽에 걸거나 나무로 심은 적이 없다 해도 그들에 대한 아빠와 엄마의 추억을 온전히 '상속' 받은 셈이다. 은연중에 그들은 벽에 걸린 익숙한 그림이었고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커져버린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떠났다. 그림을 떼어낸 오래된 벽엔 그림크기만큼의 말끔한 면적이 헛헛하게 드러나고 잘려진 오래된 나무의 그루터기는 홀로 기대어 앉기에 충분하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잦아지는 이별에 적응하기 위한 마음의 방어기제 같은 것인지 다시 오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한 작별의 말들도 이제는 괜스레 비감하지 않게 되었다. 고맙다는 마음은 자주 들었다. 뭐가 고마운 건지는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저 이 어설픈 세상을 북적북적 같이 부대끼며 살아줘서 고마운 것일까.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 좋은 음악 들려줘서 고마웠어요.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나십시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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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4-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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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4-03 10:20santiago 通信_ 71
오래 전에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선배가 운영하는 조그만 사무실에 다니고 있었고 '그' 는 우리 사무실에 들른 거래처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도 나도 서로가 처음 보는 자리였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했는데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보자마자 이 사람을 전에 분명히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사람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더듬거리고 있는데 그가 불쑥 물어왔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그럼 그렇지, 분명히 본 게 맞다니까. 그에겐 우리가 클라이언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이 거래처의 직원을 사귀어 둬서 나쁠게 없었다. 단순한 비즈니스적 관계 이상의 인맥이 된다면 내게도 이익일 것이라는 다분히 속물적인 계산까지 넣어서 나는 그의 말을 흡족하게 되받았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했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본 사이였는지 인연의 궤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학번까지 같았다. 그러나 접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부터 군대의 근무지, 학교는 물론이고 살았던 동네, 심지어는 자주 가는 목욕탕까지 대조를 했지만 그와 내가 겹치는 지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그와 닮은 누군가와 착각을 한 나머지 나 혼자 오해 했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나를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착각을 동시에 한다는 게 보통의 흔한 우연인가. 단 한 올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자 그와 나는 거의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던 선배는 재미있어 죽겠다고 뒤집어졌지만 이 명백한 기시감이 도무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끝에가서는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어째 무안한 기분마저 들자 나는 거의 체념하며 이런 혼선두 서로간에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언제 대포나 한 잔 합시다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자 그는 말난 김에 오늘 당장 마시자고 했다. 그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왔고 나는 사무실의 여직원과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갔다. 여직원도 우리와 동갑이어서 동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땐 정신없이 퍼마실 시절이라 그날도 몇 차까지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다음날 푸석푸석한 얼굴의 여직원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전해 준 이야기는 노래방에서 두 사람이 마치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몇 십년 만에 만난 듯이 서로 부둥켜 안고는 줄창 발라드만 부르더라는 것이다. 따라나온 그의 여자 친구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몇 번이나 저 두 사람 오늘 처음 본 사이가 맞냐고 자신에게 묻더라고도 했다. 새벽 2시에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으로 가겠다고 버둥거리는 그와 나를 두 여자와 택시 운전수가 땀을 철철 흘리며 간신히 떼어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속한 영업팀은 다른 라인으로 교체되었고 우리 사무실엔 그를 대신해 다른 영업 사원이 출입했다. 그와 나는 실체가 전혀 없는 인연에 쓸데없이 열을 낸 것이 서로 머쓱했던 것인지 연락을 주고 받는 것도 어딘가 어색했다. 다시 만나지 못했고 그 후로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지금은, 미안하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런 인연도 아니었건만 도대체 그와 나의 무엇이 서로를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평행우주처럼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인연의 결과가 어떤 오류로 인해 이편의 기억으로 넘어 온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을 다 해봤지만 뾰족한 결론이 날리는 만무했다. 이 혼란스러운 사건의 상대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훨씬 쌉쌀하고 애처로운 느낌으로 오래 마음에 남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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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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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27 10:45santiago 通信_ 70
비가 내리고 나자 한나절은 족히 날씨가 한 달 전으로 돌아간 듯 서늘해졌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쌀쌀하지만 이틀도 못 갈 봄날의 변덕이다. 꽃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비가 살살 뿌린 탓도 있지만 아직은 낙화落花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 빗줄기에 쓸려버린 꽃나무 가지가 휑하니 비어 버리면 으레 갈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이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별안간 자취가 없어진 꽃들 생각에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한 해를 기다려야 저 환한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별의 정한이 다소 있기로서니 과히 탓할 바는 없지 않을까. 해서 꽃이 질 때 즈음 비가 내리면 마음이 울적하다…고 하면 좀 과한 말이고, 불안하다고 하면 어째 자발없어 보이는 것이니 그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정도일까. 노심勞心일지언정 초사焦思는 아닌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다. 꽃이 지는 일에 이렇게 여러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그저 늙고 있다는 증거이지 뭔가.
황사와 미세먼지가 봄철 한반도의 연례적 상황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생각을 좀 달리 하게 된다. 얇고 화사한 저 잎들이 건조하고 퍽퍽한 대기의 검은 분진 속에서 찌들어 가다가 끝내 먹먹한 공해 속에 바스라질 듯 사멸한다면 그것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참하고 애처로운 정경은 없을 것 같았다. 작은 나비떼나 반딧불이처럼 어느 한순간 모두 가지를 떠나 훨훨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면 봄이란 계절이 얼마나 더 사무치게 황홀할까마는 동화 같은 망상이 이에 이르자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내리는 빗발에 후두둑 가지를 털고 내려와서는 흐르는 빗물에 떠밀려 이승을 황황히 떠나는 것이 훨씬 나으려니 바라게 되었다. 물의 장례, 비 내리는 날의 발인, 물빛의 이별이다. 봄꽃의 작고 연약한 ‘비늘’ 들이 비의 강물에서 치어稚魚처럼 저희들끼리 조잘거리면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나이를 먹고서야 최근에 살구나무 꽃을 처음 알아보았다. 그나마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평소에 그저 벚꽃에 근접한 종이려니 하며 지나쳤던 나무와 꽃이 실은 살구였다. 매화보다는 여리고 벚꽃보단 어딘가 진한 느낌이다. 옅은 자색이 희미하게 스민 하얗고 작은 꽃잎.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슴에 자욱하도록 펄럭이고 있었다. 너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인생 헛살았대도 할 말이 없네.
꽃의 영혼들은 어디로 갈까.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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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2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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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20 10:39santiago 通信_ 69
‘봄의 전령은 꽃’ 이라고 하면 참으로 판에 박힌 진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판에 박힐 만큼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체할 다른 비유나 상징을 찾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 꽃들이 가지마다에 앉기 시작했다. 봄의 전령들이 다시 세상을 찾아왔다. 봄을 실감하는 데엔 역시나 꽃을 대신할 것이 없다. 불어오는 바람 속엔 모서리 하나 없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모양인지 새들은 높고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도 겨울의 관성을 벗지 못해 여전히 어둡고 두꺼운 편인데 어느 날 다가온 계절을 실감하게 되면 이들이 걸친 옷감들도 완연히 가벼워지리라. 눈만 돌리면 사방이 온통 봄으로 범벅이 된 듯한 시골에 비해서 도회의 봄이란 무언가 정제되어 있는 감흥을 준다. 콘크리트의 여백에서 피어나는 가느다란 춘정春情같은 것이다.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한 철을 보낸 보도블록들은 세수도 못한 채 아침조회에 불려 나온 기숙사생들처럼 뚱한 표정이다. 이 겨울, 비도 눈도 꽤나 드물었던 탓이다. 겨울 가뭄이 길었던 것 치고는 새 봄에 돌아온 꽃과 잎들은 씩씩하다. 해마다 그렇듯이.
그리하여 가로수, 화신花信이 도달할 길목마다 깃발을 들고선 퍼레이드 행렬처럼 화려하고 명랑한 이 거리는 이내 만개한 순백의 함성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벚꽃의 하얀 그늘 밑을 어린것들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강아지와 쓸쓸한 노년과 상심한 청춘이 지나가겠지. 사시사철 가로수가 보여주는 여러 장면 가운데 봄의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다. 신이 인간과 나무를 함께 살도록 한 것은 참 너무하다 싶을 만큼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해가 길어진 덕분으로 아파트 어귀의 마트를 들렀다 나오는 퇴근길 장바구니들의 발걸음은 느슨해지고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들은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저녁 뉴스가 시작되는 TV 소리, 주방에서 끓고 있는 찌개, 생선을 굽는 냄새…모두의 베란다 창이 조금씩 열려있다. 목련은 같은 정원에 피어 있어도 꽃잎이 벙그는 시기가 나무마다 다르다. 어째서 너는 빠르고 또 너는 늦느냐고 차마 물어보진 못하고 구경만 하는데 사위가 어둑시근해지면서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봄의 밤이 찾아왔다. 둥글둥글 미지근한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마트에 들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원근 6백여 세대의 창들이 일제히 봄밤의 환한 어둠 속에 잠긴다. 퇴근하는 새들이 흰 별이 돋기 시작한 청회색 하늘로 낮게 사라지면 북쪽 하늘이 서서히 짙어져 온다.
계절이 아름답다. 어쩌면 이렇게 비현실적인 감각이 있을 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 판인지 어안이 벙벙한데 시절은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아름다워도 되는 것이냐. 어느 순간 갑자기 무언가 툭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이 위태위태한 불안을 끝내 견디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희망, 그 하나다. 절대로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가 우리를 버티게 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오로지 사랑만이 절망하지 않는 모든 순간을 지켜내는 것처럼. 나른한 현기증 같은 비릿한 꽃가루의 향기가 풍겨올 때에 나는 알아차렸다. 이것은 다분히 희망의 체취이며, 내 뜨거운 사랑의 징후인 것을. 눈물이 마르고 나면 그곳에도 꽃이 피겠지. 나는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천천히 걷기 시작하기로 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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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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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13 10:43santiago 通信_ 68
노슈가 아메리카노 NO SUGAR AMERICANO의 교도들이자 아메리카노 무당파無糖派 동지 여러분들께 선언하거니와 나는 이제 '모던'한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 '아메리카노에 설탕이나 쳐서 마시는 무식한 촌놈'의 일원으로 합류하려 한다. 미리 말해둘 것은, 그러나 나에게 무설탕 노시럽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것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운 계절에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커피 그대로여야 한다. 공기도 몸도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습기 속에서, 마시는 음료마저 들쩍지근하다면 상상만 해도 습도의 체감이 상승할 것 같지 않은가. 저 머나먼 자메이카와 탄자니아, 브라질과 베트남의 들판에서 발원한 이국의 향기 물씬 배인 이 쓰디쓴 정열의 액상은 차가운 얼음의 냉기를 품은 채 더없이 담백한 청량감으로 목구멍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얘기가 좀 다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진심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걸 식도로 꿀꺽꿀꺽 들이부은 이유는 아마도 '대세'를 거스르는 별종이 되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럴 때만 쓸데없이 소심하다) 하기야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커피는 뭐가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무슨 맛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체 트렌드에 후진 인간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 커피의 역사라는 게 그리 오래지 않은 탓도 있다.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라는 게 들어오기 전까지 다방이나 카페, 레스토랑에서 파는 커피는 대부분 커피 하나에 프림 둘, 설탕 셋의 전국민적 레시피로 획일화된 이른바 '다방커피'였다. 걸쭉하고 진한 자판기 커피같은 걸 폼 잡고 앉아서 마시는 것이다. 보다 젊은 패들이 이때부터 '블랙커피'라는 걸 마시긴 했다. 인스턴트로 만들던 블랙커피가 이후 다국적 커피 자본에 의해 아메리카노로 고급화된 셈인데 설탕도 프림도 첨가하지 않는다는 제조의 공정은 비슷하다 해도 맛과 향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난 블랙커피든 아메리카노든 뜨겁고 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실라치면 가끔은 달인 한약을 마시는 것처럼 힘이 들어서 동양의학의 문화권에서 이게 인기가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메리카노는 대세가 되었고 '국민음료'로 등극했다. 커피 소비량이 프랑스에 이은 세계 2위다. 일인당 년간 367잔을 마신다.
내가 과민했던 것이겠지만 "아메리카노에 설탕 넣어 먹어요" 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마치 "나는 과일을 싫어해요"와 비슷한 뉘앙스다. 과일처럼 순수하고 정갈한 입맛이 싫다고 말하면 뭔가 기름지고 느끼한 취향으로 낙인 찍히는 기분처럼. 카페라떼니 에스프레소니 하는 것들을 마셔 봤지만 텁텁해서 나는 별로였다. 쓰지만 않다면 아메리카노가 깔끔했다. 쓴 맛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다가 어느 날 설탕을 조금 넣어 마셨다. 오호, 쓰지도 않았고 커피의 맛이 더욱 부드럽고 깊어졌다. 그날부터 몰래 설탕을 넣어 마신다. 아메리카노가 이땅에 전래된 순간부터 봉인되었던 '무설탕 원칙'의 터부를 건드린 것이다. 설탕을 몰래 넣는 순간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전율을 느낀다. 누군가 불쑥 나타나 내 손목을 낚아 채고는 “아메리카노에 설탕이라니, 당신 제정신이야?” 마구 삿대질을 할 것 같다. 빈정대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무설탕의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이유는 커피의 쓴맛과 향을 즐기는 취향이 어딘가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설탕의 유해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 탓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설탕은 비만의 주적이니까.
그렇게 소심하게 무설탕 아메리카노에 대한 레지스탕스를 이어가던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난 지금도 싱겁고 연해서 멀겋게 끓여낸 밥 탄 숭늉 같은 이른바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라면 질색이다...언젠가부터 소위 '원두커피'는 미국식 멀건 커피의 대명사가 되고 이제는 호텔에서 시골 역전에 이르기까지 전국이 '아메리칸'으로 획일화 되어 버렸다. 그 멀건 물에 각설탕까지 넣으면 아예 마시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가 된다."
(황석영 에세이 '황석영의 밥도둑 - 추억의 에스프레소 한 잔' 중에서)
역시 배우신 분. 이 분은 문단에서 미식가로도 정평이 나신 분이다. 내가 바로 '그 멀건 물에 각설탕 넣어 먹는' 사람이지만 유명 작가의 질타와도 같은 소회 덕분에 나처럼 ‘새같은 심장’도 용기를 얻게 되었다. 문맥의 본뜻이야 어떻든 무설탕 아메리카노를 싫어한다고 말해도 되는거였군요. 이제 점점 깊어가는 나이에 자꾸 무언가 눈치를 보며 사는 것도 어째 미련한 짓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당당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아메리카노에 설탕 쳐서 마시는 인간' 이다, 어쩔래.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커피에 대한 이런 나의 취향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후후.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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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3-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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