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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3
  • 깊고 푸른 밤(@djckvl)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2-27 10:23
    santiago 通信_ 66


    도시 외곽의 주택가를 걷노라니 철물점 앞에 낯익은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저걸 뭐라고 불렀더라.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선 그냥 간단히 '연탄통'이라고 했다. '탄통'이라고 부르는 집도 있었다. 다 탄 연탄을 들어내고 새 연탄을 집어넣기 위해 연탄을 담아 오는 일종의 캐리어다. 저게 아직도 있구나. 시커먼 연탄을 담는 주제에 분홍색 바탕에 울긋불긋한 패턴을 수놓았다. 이 겨울도 막바지, 큰 추위 없이 밋밋하고 핏기없이 지나가는 계절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물건으로 해서 추억도 잠시 울긋불긋해졌다. 연탄이라면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연탄통이란 게 진작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등장한 이후 이내 가정마다 하나씩 비치되었던 물건이다. 마치 스카이콩콩처럼. 함석을 대충 잘라 나사로 드르륵 끼워 박은 철가방이 뭐 대수로울까 싶어도 일견 이 간단한 걸 왜 진작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따져보면 사람들의 통념이라는 것도 단순하고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탄의 추억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먼저 저 헙수룩한 골목 안, 오밀조밀 이어지던 브로크 벽돌의 낮은 담들과 그 담장 안에서 오랜 세월 색이 바랜 주택들을 떠올려야 한다.

    우리 유년 시절의 상당 부분은 이곳이 터전이었다. 드물게 아파트가 있긴 했지만 낡고 좁아도 주택이 보편적인 주거형태였다. 주인이 사는 안채가 있고 세 들어 사는 사랑채가 있으며 화장실과 창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따로 떨어져 있던 단층 양옥. 집집마다 잊지도 않고 꼭 대추나무나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자란다. 판에 박힌 아파트의 외관과는 다르게 이런 주택들은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봄날의 졸리운 햇볕이나 강렬한 여름의 태양, 퍼붓는 장마의 빗줄기며 혹독한 겨울의 눈발에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주택의 벽들은 그대로 산화되고 발효되었던 것이다. 얼룩들은 나중에는 어떤 무늬처럼 자리 잡게 되는데 어린 시절 나는 그것이 마치 그 집의 고유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그 주택들의 온수와 난방을 책임지고 또한 부엌의 화구 역할을 하던 연탄이다. 욕실이 바깥채에 있어 추운 날에 목욕은 엄두도 낼 수 없던 탓에,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연탄아궁이 위에 펄펄 끓는 물을 떠 와 손발을 씻었고 외풍 심한 방 안, 캐시미어 담요가 덮인 아랫목을 '절절 끓도록' 한 것도 연탄의 일이다. 엄마들의 월동 준비는 연탄과 김장이었다. 연탄을 몇십 장 창고에 쌓아두고 김장까지 마치고 나면 집집마다 엄마들은 이렇게 환호했다. "아이고, 인제는 잊어버렸다!" 먹성 좋은 축들은 각종 간식을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오징어나 노가리 같은 어포들은 연탄의 불맛이 가미된 때문인지 풍미가 각별했다. 연탄의 추억이란 단순히 지나간 기억 속 어느 구간의 반추反芻만이 아니다. 가난과 결핍의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피워 올렸던 희망의 온기, 구들장만큼이나 절절 끓어대던 삶의 안간힘에 대한 낡은 영수증 같은 것 아니겠는가.

    아직도 연탄을 쓰는 집이 있구나... 나는 작은 감동마저 일었다. 메뚜기 마빡만한 땅만 있어도 기어이 아파트가 비집고 들어서는 도시에서 아직도 석탄을 태워 추위를 이기는 동네라니. 용케도 재개발이니 신축이니 하는 개발의 광풍이 비껴갔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곳의 주민들은 스위치만 켜면 금세 온 집안이 따뜻해지는 편리가 부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창졸간에 두 배, 세 배가 올랐다는 가스값이다. 한 달 가스 사용료로 천만 원을 내야 한다는 목욕탕, 6백만 원이 청구되었다는 하우스 농가, 30만 원이 말이 되느냐는 원룸의 사정을 들으면 아직도 연탄을 쓴다는 걸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의 시가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연탄을 노래한 시는 의외로 많다.



    내 죽으면 화장을 하거라
    뼛속까지 속속들이 잘 태워
    몽근 가루로 빻은 다음
    달동네
    별동네
    그 굽이굽이 어둡고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다오

    가스보일러, 기름보일러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 자가용 밑에는
    염화칼슘 그 마약 같은 흰 가루를
    뿌린다 하더라만
    아직도 부끄러운 살빛으로 쌓였다가
    일상의 피로에 지친 저 어미와
    노동의 완력에 다친 저 아비의 발 밑에서
    차라리 나는 자진하겠으니
    더러는 덩어리째 던져다오


    김영천 시인 '연탄재의 유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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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2-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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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3-02-20 10:30
    santiago 通信_ 65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한창 좋을 때(?)는 서너 살 무렵의 기억도 주절주절 이야기해서 부모님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했다. 흔히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으면 머리도 좋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나보다 훨씬 더, 옛날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 30년 전 같이 놀러 갔을 때 타고 다녔던 렌터카의 차번을 아직도 외우고 당시 숙소 주인장의 옷차림까지 기억하는 실력이지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해서 대단하지도 않은 대학들을 4번이나 떨어졌다. 그러니 좋은 기억력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특성에 불과하다. 기억력이 조금 좋은 대신 나는 수리數理에 약했다. 이 세상의 직업이 이과理科적인 것으로만 존재했다면 아마도 나는 일찌감치 가축을 돌보거나 공장에서 아주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는 노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고 희희낙락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4수한 친구나 나나 도찐 개찐인 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라고 과거형이 된 이유는 지금은 그다지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술도 많이 마셨고 무엇보다 이젠 머리가 늙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권하는 술잔을 마다할 순 없지 않은가. 기억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었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가령 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를 TV에서 다시 볼라치면 이건 완전 처음 보는 새 영화다. 저 영화에 저런 장면이 있었어? '매트릭스'를 보면서도 쿨쿨 졸았던 집중력이라 할 말 없긴 하지만 몹시 지루한 영화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렇듯 줄거리는 대개 기억을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기억력이 감퇴한 요즘에는 워낙 유명해서 내용이 여러 번 회자된 영화가 아니면 다시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처음 보는(것 같은)영화가 전부 공짜니까.

    그나마 읽은 책에 대한 망각은 좀 덜한데 그것은 밑줄 그어가며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기억을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약은, 감탄하는 것이다." 생업의 일이다 보니 어쩌면 망각의 폭풍 속으로 난파되려는 기억의 화물선을 지키기 위해 나의 뇌가 성난 파도와 싸워가며 벌이는 처절한 사투의 생리학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행복의 조건은 건강한 신체와 적당한 건망증"이라고 한 건 마크 트웨인이다. 적당히 잊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말이다. 인생은 늘 상상 이상으로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끊임없는 실수와 실패의 반복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이 사실을 고통스럽게 절감하게 된다. 그러니 그 모든 실책들을 몸의 어딘가에 담아둔다면 이내 과부하로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강렬한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기 마련이다. 이제는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남지 않은 인생. 부디 따뜻하고 아름다운 ‘강렬한’ 기억들만이 앞으로 우리의 추억 속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미움과 원망의 기억들은 서둘러 사라지기를. 사멸死滅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완벽한 토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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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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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26 10:34
    santiago 通信_ 64


    "당신은 88세의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것은 숙명宿命이다.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짓을 하며 살아도 어쨌든 간에 여든여덟 살 성탄절에 눈을 감는다.

    "88세까지 당신은 재물운이 좋지만 갑작스러운 경제적 손실의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운명運命이다. 가변적이다. 여든여덟 살 크리스마스 때까지 부자로 살것인지 가난뱅이로 살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숙명이나 운명이나 그게 그 소리 아니냐고 오해들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 즉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숙명이고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가 운명이다(네이버 국어사전) 그래서 숙명은 잘 숙宿을 쓰고 운명은 움직일 운運을 쓴다. 말인즉슨,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운명이고 이미 결정된 결말이 숙명이란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에서 '운명적 사랑'은 흔해도 '숙명적 사랑'은 드물고 '운명의 장난'이지 '숙명의 장난'은 없다. 결말이 미리 지어진 것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엔 운명도 숙명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남몰래 경멸했다. 요행에 기대는 나약하고 무능한 심리라고 생각했다. 모든 순간들은 (무려)'숙명'이 바뀌는 순간이 될 수 있으며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성패와 흥망이 결정된다고 굳게 믿었다. 철이 없었다. 겨우 한두 개 어디서 주워들은 걸 무슨 대단한 깨우침 인양 착각 하고 세상 모든 일에 달관한 듯 우쭐거리던 주제가, 인간사 모든 일이 운명과 숙명의 굴레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마흔을 넘고나서 였다.

    우선은 내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예측의 범위를 완전히 넘어서는, 그저 우연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겪고 나면 합리合理라든가 인과因果라든가 필연必然 따위의 말들이 두리뭉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 봐도 운명이라고 밖엔 볼 수 없는 여러 사례들이 있었다. 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나를 깊이 고뇌하게 했던 것은 '선량한 사람들의 불행'이었다. 결국 노력과 성공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으며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인생에서 마냥 궂은날도 마냥 맑기만 한 날도 없다는 걸 깨닫고 나자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을 '대중화' 시킨 사람은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다. 그는 나이 오십에 사주를 보러 갔다가 사업을 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 한보를 일으켰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칠운삼運七運三이지." 아직까지 나의 판단과 결정은 어디까지나 과학에 근거하지만 과학의 예봉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학교에서는 절대로 가르칠 수도 가르칠 방법도 없는 비결祕訣.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헤아리는 것도 역시 나이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무슨 집단적 업보가 있어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한 번은 넘겨야 하는 운명이거나 숙명이려니...이렇게라도 생각을 해야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따지고 들면 허파가 뒤집힐 지경이다. 그래, 다 하늘의 깊은 뜻이라고 믿자,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는 중이고 그러다 보면 눈앞을 뿌옇게 가로막는 5년이란 시간도 언젠가는 안개처럼 사라지겠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아직도 가끔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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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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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19 10:53
    santiago 通信_ 63


    조직폭력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경찰도 검찰도 자신의 보스도 아닌 신입 조폭이라는 말이 있다. 갓 스무 살도 안된 앳된 이 주먹 세계의 신인新人들은 ‘형님’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시키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애들이다 보니 살인까지도 겁없이 감행한다. 구속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의 사정이고 오직 조직의 명령에만 복종할 뿐, 그리고 학교(교도소)를 거쳐야 조직에서도 서열이 올라가고 가오(위신)가 선다.

    그러나 막상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오래 빵(감옥)에서 썩고 난 후에 그들은 조직을 위한 헌신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출소를 하면 조직 내에 서열은 올라갈지 모르나 꽃잎 같던 청춘은 흘러가 버리고 선불 맞은 멧돼지 같던 혈기도 세월에 닳은 나머지 흐지부지, 교활한 잔머리만 남을 뿐이다. 또다시 조직의 명령에 따라 총대를 메는 일은 없다. 그만하면 고생은 끝난 셈이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이때쯤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다시 신입 조폭이다. 이들의 목표가 되어버리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을 때리고 겁박하여 먹고 산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로 생각하자면 더없이 참담한 일이다. 남의 발을 밟거나 컵을 쏟아 상대방의 옷을 버리기라도 하면 몇 번이나 사과를 해도 미안한 감정이 가시지 않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은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인 것이다.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는 게 직업이다 보니 자신들이 갉아먹는 '나와바리' 에 혹여 다른 조직이 침범하게 되면 이들의 폭력성은 극에 달한다. 뉴스에 간간히 보도되는 폭력 조직간의 패싸움이 그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오로지 주먹으로만 해결하던 낭만이 있었다고 했던가. 패싸움에 사시미가 등장하고 난 후부터 '건달'은 사라지고 '폭력배'만이 남았다.

    이긴 쪽은 상대 조직에게 철저히 복수한다. 그래야 "또 해보자꼬 달라들지 않기(영화 '친구' 의 대사)" 때문이다. 복수를 자행하는 방법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흔한 설정이지만 실제 조직 폭력의 세계에선 절대 금기시하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가족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피를 빠는 족속들이 무슨 마지막 순수의 보루처럼 도덕적 양심에 입각해서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고 합의한 게 아니다. 아무리 복수에 눈이 멀어도 절대로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언제 입장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 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보험인 셈인데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 눈깔에 피눈물 난다'는 속담의 뒷골목 버전 아니겠는가. 밤거리의 차가운 비정과 처절한 폭력의 집단이지만 이들의 깜냥도 최소한 이 정도는 된다.

    마피아 세계의 금언 중에서는 '충고는 필요 없다'라는 게 있다. 영리한 놈은 충고를 해야 할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으니 충고가 필요 없고, 바보 같은 놈은 아무리 충고를 해봤자 도무지 알아먹질 못하니 충고가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마피아들은 충고를 해봤자 소용없는 바보를 어떻게 처리할까. 아무리 영험한 무당의 가호를 받는 바보라 해도 끝내 '조직의 손길' 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잔인하리만큼 엄격한 '관리' 가 있어놔서 암흑의 세력일망정 오랜시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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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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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9-05 10:42
    santiago 通信_ 62


    처서處暑가 지난 늦은 여름의 바람이 분다. 어딘가 힘이 빠지고 기진맥진한 기운의 바람이다. 뻑적지근한 습기도 없고 숨을 막는 열기도 없다. 하루가 다르게 온도가 떨어져 근래의 아침저녁으론 싸늘한 지경이다. 나이 오십 줄에 터득한 인생의 법칙 가운데 하나는 제 아무리 맹렬한 더위라도 처서만 지나면 영낙없이 누그러진다는 사실이다. 속담에는 처서까지 맹위를 떨치는 늦더위에 빗대 "처서 밑에 까마귀 대가리가 벗겨진다"는 말도 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처서 이후의 더위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언제쯤 오려나, 재발한 전염병으로 인해 여름의 계획들은 김이 빠져 버리고 사방천지 축축하고 꿉꿉하여 몇 번이나 잠자리를 뒤척이던 장마 무렵부터 나는 처서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종전終戰처럼 싸워 쟁취하는 것도 아니고 해방解放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소식도 아니건만 달력에 동그라미 몇 겹이나 쳐 둔 절기를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는 일은 길었다. 에어컨이 흔해질수록 여름은 이상하게 더 지루해졌다. 아직 한낮으로는 가끔 성하盛夏의 잔열이 남았다고 해도 햇빛 속을 걷노라면 여름을 '떨이'하는 계절의 폐업선언 같은 지리멸렬한 열기일 뿐이다.

    명절이 코 앞이고 두어 번의 태풍까지 버티고 나면 또다시 성큼 강철처럼 차가운 겨울의 문 턱에 다가설 것이다. 그 사이에 가을이 반짝이며 끼어 있다. 가볍게 입고 밤늦도록 쏘다닐 수 있는 시간들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고난 뒤에 행복이 온다는 것은 섭리의 법칙이요, 자연의 생리라지만 그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다. 그리하여 인생에는 무릇 즐기는 때와 몰두하는 때가 모두 따로 있는 것이니, 좋아하는 옷을 입고 선량한 바람속을 한가로이 거니는 시간들이 모두에게 듬뿍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폭염 속의 태양과 비와 습기와 잠 못 드는 밤들을 건너온 사람들이니까.

    봄가을이 점점 짧아진다는 말에 대해 그 근거와 사실 여부에 관해선 설왕설래가 있지만 여름이 길어진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따져보니 사계절이라고 해도 실상 봄과 가을의 영역은 여름과 겨울보단 확연히 협소하다는 조사 결과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이란 여름과 겨울이라는 기나긴 고난 가운데 봄과 가을이라는 짧은 휴식이 있는 셈이다. 굳이 고난이라고 할 건 뭐냐, 사귀기 나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랜 교제의 시도 끝에 깨달은 것은 나의 성정은 여름과도 겨울과도 화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포기하는 나를 용서하는 일도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가운데 하나다. 남은 생의 '여력' 을 쏟을 곳은 아직도 많기 때문에.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이렇게 가을을 읊었다.

    슬픈 기러기 북쪽 하늘에서 오고
    다듬이질 소리에 스민 시름은 강 남쪽에 가득하다
    적막하기만한 이 가을의 기분을
    늙지도 않았건만 이미 깊이 알아버렸네

    雁思來天北
    砧愁滿水南
    蕭條秋氣味
    未老已深諳

    / 秋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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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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