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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nights of quiet stars
  • 13
  • 깊고 푸른 밤(@djckvl)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29 10:49
    santiago 通信_ 61


    납량納凉이라 여름엔 공포영화라지만 한 번도 공포영화를 좋아한 적이 없다. 도대체 왜 일부러 '공포'를 체험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철없던 시절엔 나 역시도 군중심리 같은 유행에 끌려 극장으로 보러 다니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공포를 느낄 때 일어나는 몸의 화학적 변화가 서늘한 한기寒氣를 느낄 때 발생하는 신체의 물리적 변화와 비슷해서 유독 여름에만 공포영화가 성행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쨌든 '한기'를 느끼니까 더위가 가신다는 원리다.

    내 어린 시절에는 유난히 공포영화가 유행이었다.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에서 아직도 가끔 회자되는,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구미호’ 가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슬래셔 무비라든가 스플래터 무비 따위가 대세였다. 슬래셔나 스플래터 장르는 무자비한 살인의 장면을 팝콘을 먹으면서 구경하는 것이다. 살인마에 의한 살인. 이것이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귀신이나 악마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는 살해의 인과관계라든가 최소한의 권선징악이라도 있지만 살인마는 원한이나 욕구 같은 필요에 의한 가해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유 없는 난도질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여기도 해당된다. 그래서 착한 역할일수록 일찍 죽는다는 공포 영화의 클리셰도 있다.

    비를 맞는 기분에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포근한 실내에서 창 밖의 비를 무심히 건너다보는 느낌 때문에 비를 좋아한다는 통설처럼 공포영화를 즐기는 심리도 비를 좋아하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무참하고 살 떨리는 공포가 존재하는 영화 속 상황에 긴장해 있다가 무사태평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의 안도감도 공포영화를 즐기는 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에 열광하는 심리와도 비슷하다. 기구를 타고 위태위태한 '스릴'의 극단까지 치닫지만 안전장치로 인해서 절대로 사고가 날 리 없다는 안정감. 물론 공포를 느끼는 동안에 온 몸은 흥분하기 마련이니 이 화학적 반응 또한 쾌감의 일종이다.

    어째서 요즘은 공포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는가. 그것은 현실이 이미 충분히 공포스럽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작 '스릴' 때문이라면 이번 달 써야 할 지출들은 늙은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처럼 도사리고 있는데, 태풍이 몰아치는 밤 교외 동물원의 주차장처럼 텅텅 비어있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것만큼 짜릿한 '스릴'은 없다. 이상한 정부, 이상한 정치, 말도 행동도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소름이 끼치는데 공포영화를 왜 보나.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한기’로 어쨌든 더위가 가시는 중인데. 그런데도 아직 30%가 지지하고 있다. 내 주변 열 사람 중에 셋이다. 게다가 이건 영화가 아니라 놀랍게도 엄연한 현실이다. 긴장을 풀 수 있는 도피처도 없다는 소리다. 눈 앞에 생생한 현실의 공포가 우두커니 우리의 일상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도대체 공포영화 같은 걸 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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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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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22 11:20
    santiago 通信_ 60


    표절이란 남의 작품을 베끼는 행위를 말한다. 더 엄밀히 정의하면 타인의 창작물 일부 또는 전체를 도용해서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엄연한 절도요, 절도한 '장물' 을 이용해 일반의 사람들을 기망하려는 목적으로써 곧 사기다. 뭔가 근사하게 보이고는 싶은데 본인의 재주로는 죽었나 깨나도 안되고, 어디서 남이 해 놓은 걸 훔쳐와 '근사한 척' 하는 것이다. 도대체가 염치라고는 없는 뻔뻔한 작태다. 보통의 절도나 사기보다 형량이나 처벌이 미약하며 민사民事를 통한 손해배상으로 그 죄과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국민 대다수가 심각한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화적 인식이 낙후된 국가일수록 이 그릇된 사고방식의 뿌리가 깊다고 한다.

    알고 지내던 일러스트레이터가 광고회사에 그림을 팔았다. 대기업 광고에 들어가는 그림이라 고료도 짭짤했고 자신의 경력에도 도움이 되는 기회라 공을 많이 들였다. 광고가 나가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른 업체의 광고에 자신의 그림이 도용된 것을 알았다. 곧바로 고소를 했고 경찰서에서 자신의 그림을 훔쳐 광고에 실은 기업의 사장을 만났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죄송하게 됐다는 말도 없이 대뜸 한다는 말이 "아 거 같이 좀 씁니다, 까짓 거. 뭐 그림이 닳는 것도 아니고. 한 오십만 원 드리면 됩니까?" 오십만 원씩이나 준다고 거들먹 거리는 사장의 면전에 대고 시안비 빼고 원고료만 200만 원 받은 그림이라고 하자 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이 양반이 무슨 호구 벗겨 먹을라구 작정을 했나, 겨우 요거 하나 그리는데 200만 원을 준다고?" 무려 1990年대의 이야기다. 그저 옛날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일 뿐일까.

    그 당시엔 '벤처기업'이라 불리던 어느 중소기업 사장은 처음 해외시장에 선 보일 제품을 만들고 나서 디자인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품질이야 이미 다 비슷비슷한 상황이니 제품이 세련돼 보이도록 특별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시제품을 만들고 내부 품평을 거치고 다시 만들고 새로 만들고를 거듭한 끝에 결국 최종 제품이 나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반응이 좋았다. 석 달이 지나자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이 시중에 나돌았다. 역시 고소를 했고, 경찰서에서 만났을 때 이쪽은 좀 더 터프했다. "바빠 죽겠는데 꼴랑 이딴 걸로 사람을 오라 가라야, C발!"

    "우울하지 않으면 당신은 진지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라는 커트 보네거트의 말이 있다. 레드 스미스라는 미국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쉽다. 하는 일이라고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다가 손목을 긋는 것뿐이니까." 글쓰기만이 아니라 모든 창작은 스스로의 피를 태우고 뼈를 갈아 마시는 처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이 고통스러운 정신적 분만의 결과물을 빼앗거나 훔치는 걸 태연히 생각하는 인간들이 이 나라에는 아직도 많다.

    논문 표절률이 43%라는 건 그냥 자기 논문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런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이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옹호하는 인간들이 있다. 최근에 불거진 어느 가수의 표절은 너무나 명백한 표절에다가, 거듭된 표절에다가,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지만 표절이 아닌 다른 곡들도 있으니 표절만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심한 일 아니냐고 거들고 나서는 일부 팬들이 있었다. 표절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옹호하는 무리들이야 그 저질한 의도가 뻔하니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고 도대체 왜 표절이 문제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부류들은 이런 설정을 상상해 보면 된다.

    어렵게 어렵게 취업한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밤낮없이 회사 생활에 몰두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느 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아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나 다른 배경 좋은 동료가 가로채는 바람에 성과를 빼앗겼다고 대성통곡을 하며 집으로 뛰쳐 들어왔을 때, 아이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닳는 것도 아닌데, 좀 쓰면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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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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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8-15 11:14
    santiago 通信_ 59


    근래에 들어 영화가 시들해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재미있는척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탑건 매버릭’ 도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뻔한 트릭을 두 시간 넘게 보는 기분이었다. 흔히들 평가하는 것처럼 이야기의 밀도는 다소 느슨했을지라도 35年 전의 '탑건' 이 차라리 신선했다. 물론 거기엔 ‘톰 크루즈’라는 혜성 같은 신예의 화려한 등장이 한몫했고 감독이었던 토니 스콧의 박력 있는 연출 또한 흥행을 끌어올린 요인이었다. 토니 스콧은 10年 전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토니 스콧이 없다면 탑건의 속편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톰 크루즈 역시 탑건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문에 '인터넷의 가십을 믿지 말라'며 정색했던 때가 있었다.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매버릭 톰 크루즈는 과거 눈부신 경력을 갖추고도(아마도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에) 세속적 성공의 요령을 터득하지 못해 묵묵히 파일럿의 숙명을 감내하는 한물 간 해군으로 등장한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전편에서 꽤 비중 있었던 어느 인물은 상당한 출세를 하지만 곧 세상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톰 크루즈와 격정적인 베드신으로 남정네들에게 마른침을 삼키게 했던 켈리 맥길리스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후덕한 최근의 근황이 인터넷에 떠도는 중이다. 이쯤 되면 탑건의 ‘속편'은 탑건 이후 흘러간 35年의 시간을 ‘순장殉葬’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클로징 세리머니 같은 느낌이다. IMF 비밀요원 이단 헌트는 인류를 악에서 구하느라 노상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 중이니 톰(TOM)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 데 없는 것인가.

    톰 크루즈 없는 탑건을 상상할 수 없듯이 탑건 없는 톰 크루즈 역시 떠올릴 수 없다. 나는 십 대 시절에 탑건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로서는 '기가 막히게 생긴 외모’ 를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내다 걸었던 출세작이다. 세대마다 비슷한 또래의 스타들이 태어나고 빛나며 같이 늙어가는데 우리 세대의 많은 스타들 중에서도 그는 단연 걸출하고 성실하다. 톰 정도의 스타라면 그 세대의 문화적 로망을 이끌고 다니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가치관이나 신념마저도 이 쇼 비즈니스의 아이콘이 선도하는 아우라에 함몰될 때가 있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난 후 미국 내 해군 지원자가 대폭적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고 그가 타고 다닌 오토바이나 착용했던 선글라스의 폭발적인 매출은 유행의 판도를 바꾸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탑건 상영 이후에 공군사관학교 지원자가 몇 배나 늘어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영화의 정치적 의미나 이념적 선동성에 대한 논란은 잠시 접어두자. 우리에겐 그저 단순한 오락영화일 뿐이다.

    35年 전, '탑건'을 영화관에서 보았던 나로서는 다 늦게 만들어진 속편이란 다름 아닌 우리 세대의 '탑건이 있었던 시절'에게 보내는 송가頌歌처럼 느껴졌다. 모두 늙고, 병들고, 죽는다. 톰 크루즈, 토니 스콧, 발 킬머, 켈리 맥길리스, 그리고 그 시절 스물네 살의 스타에게 열광했던 하이틴의 세계도. 이젠 어마어마한 거물이 된 톰 크루즈는 아직도 나이에 비해 젊고 날렵하지만 그와 함께 시간의 터널 속을 걸었던 우리들은 생활의 진창 속에 내려앉은 푸른 시간의 녹을 조심스레 쓸어내릴 뿐이다. 빛나던 시절은 빛나던 순간으로 그만 봉인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저 먼 터널의 끝은 희미한 빛으로 가물거리기만 한데.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등 뒤에서 어둡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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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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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25 11:11
    santiago 通信_ 58


    무슨 금융 앱이 편리하다고 지인이 추천을 해줘서 연초에 깔았다. 처음엔 열어보지도 않다가 요즘 그거 쓰냐고 지인이 일부러 묻고 나서야 회원 가입을 하고 며칠 들여다봤다. 별 게 별 게 다 된다. 입출금은 물론 보험이나 이자 조회, 신용등급에다가 심지어 다른 은행 관리까지 가능하다. 스위스군용 칼처럼 아주 다용도다. 덕분에 요즘 잘 쓰고 있다. 게다가 예금 이자까지 후하다. 와, 이게 다 가능해, 이야- 이야- 넋 빠지는 소리를 연발하고 나서는 꼭 이런 멍청한 소리를 덧붙인다. "이 좋은 걸 왜 진작에 몰랐지." 옆에 계신 분이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그렇게 감탄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호롱불 켜놓고 천자문 읽는 사람인 줄 안다고 구박했다.

    매번 은행까지 찾아가서 특정된 용지에 수기手記로 금액을 기입해 돈을 찾거나 통장을 들이밀어 입금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디지털의 방식은 견줄 수 없이 편리하고 안전하다. 은행 업무 전산화의 결과로 오프라인 지점들이 대폭적으로 정리가 되는 바람에 인원 감축이나 노년층의 '금융접근성 저해' 등은 우려스럽긴 하지만 이미 디지털 금융은 대세가 되었다. 나부터도 은행을 찾아가 창구 직원과 대면한 게 2, 3년 래에는 드물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에서 뭘 좀 할랬더니 잘 안되는데 어떡하죠?" 같은 용건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발명이 나타날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다.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적 견해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가령 사진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현대 예술의 평범함에서 비롯된 발명일 뿐 재능 없는 화가의 피난처”라는 악평이 있었고 결코 예술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많은 미술평론가들의 견해가 있었다. 물론 이 시대에도 사진의 예술성을 미리 간파한 선구적 예술가들은 있었다. 워드 프로세서가 보편화되자 사람들은 작가들에게 "손으로 글을 쓸 때와 타자打字로 글을 칠 때 영감이라든지 착상이라든지 작업의 방식에 차이가 있느냐" 고 물었다. 워드 프로세서도 넘어 이젠 컴퓨터 텍스트 프로그램이 대세인 요즘에야 이런 질문조차 마치 고물상 좌판에서도 밀려나 창고에 처박혀 먼지를 쓰고 있는 고철처럼 고루하고 촌스러운 것이지만.

    새로운 기술이 반드시 재앙의 전조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와 '장치'에 과몰입하는 상황이나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오염과 폐기에 대한 환경 문제들이야 새로운 기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디지털이라는 게 지나친 정확성 내지는 기계적인 선택과 출력의 방식으로 해서 비인간적이지 않은가란 질문에는 수긍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술의 역기능에 비해 그 순기능은 혁혁하다. 특히 언제나 대충대충, 두리뭉실, 좋은 게 좋은 거고 '우리 편은 무조건 통과'에다가 '야매'와 '가라'와 '유도리'가 오랜 시간 득세해온 혼탁한 사회에서는 디지털의 정확성이 더욱 선명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한다.

    내가 가진 애플리케이션 하나는 문득 몇 년 전 오늘의 날짜에 찍은 사진들을 돌이켜 보여준다. 3년 전, 5년 전 같은 날짜, 같은 계절에 있었던 나의 인생. 나와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 별 거 아니지만 얕게 흘러갔다고 느낀 세월 동안에도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그 앱의 이벤트로 느낄 수 있다. 나 같은 기계치가 이런 말 하는 건 주제넘지만, 현대의 발명은 여기까지 왔다. 함부로 비인간적인 디지털이니 하는 말도 쉽게 하면 안 되는 세상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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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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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18 11:01
    santiago 通信_ 57


    아동문학가이자 마종기 시인의 아버님 되시는 마해송 선생의 작품 가운데 ‘정불서 靜不暑’ 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다. 제목을 풀이하자면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모른다' 정도가 될까. 이 염천에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글을 쓰시니 얼마나 덥겠느냐며 지인이 선풍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기계 바람을 원체 싫어하는 자신에겐 무용無用이라, 아예 준 것이면 팔아서 돈으로 바꾸겠는데 그러지 못하니 손님이 오면 접대나 하는 용도다. 펜을 든 손목에서는 구슬땀이 흐르지만 장판방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그리 더운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불서다. 수필의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종일토록 땀 흘려 일하고 저물어 한 탕(목욕)한 다음 진건한 청요리를 하고 다시 한 탕 하는 맛이란 여름밖에 없는 즐거움이었다."

    어느 일본 만화의 주인공은 동네 야구시합이 있던 날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윈드브레이커까지 입은 채로 땀을 줄줄 흘려가며 시합에 열중한다. 적당히 쉬어가며 해도 되는데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조차 않고 그는 무아지경으로 열심이다. 그가 전력으로 시합에 임했던 이유는 바로 시합이 끝나고 마시는 맥주, 차갑게 식혀 아이스박스에 재워둔 그야말로 뼛속까지 써늘한 맥주를 들이키는 쾌감을 위하여 그는 일부러 온몸이 열화에 들떠 땀범벅이 되도록 체력을 소진했던 것이다.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지가 더할 수 없는 시원함으로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억지로 사우나의 열기를 참는 노력과 비슷한 것이다.

    더위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다음 찬물에 목욕을 하고 새로 갈아입은 속옷과 반바지 티셔츠에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인 채로 여름 저녁밥상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시절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자면 여름이란 계절이 다소 우직하달까, 어딘가 빈틈이 있는 여름이어야 한다. 아무리 더워도 결코 어떤 '선'을 넘지 않는 소박한 성정의 여름. 물론 그 시절에도 가끔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가 존재했지만 산업화의 굴뚝이 매연을 뿜어내고 하천으로 오염된 물이 흘렀을 망정 도회의 여름은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지만 그때는 도심 한복판의 가옥이라도 한밤의 어느 시간엔 어디선가 서늘한 기운이 제법 불어왔다. 동네 개들이 일없이 깨어나 돌아가면서 짖어대던 심야. 그래서 그 서늘한 온도에 대비하고자 모두는 한여름에도 얇은 이불을 지참하고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더위에 지친 낮의 피로를 회복하고 다음 날 또다시 일터로, 학교로 가곤 했다.

    이 자연친화적이었던 '열기의 순환'이 깨져버린 것이 에어컨의 등장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새삼스레 고마워하는 문명의 이기에다 대고 나 같은 인간이 투덜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이 좋으면 하루 종일도 좋도록 뜨겁고 숨 막히는 외기外氣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에어컨 빵빵한' 집까지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찬물에, 서늘한 대기에,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가 산산히 씻겨나가는 그 상쾌한 '타격감' 이 그립다는 것이다. 기상도 일기도 세태에 따라 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과학적 불안에 따른 이슈를 따로 들고 오지 않더라도 요즘의 더위는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원인과 예방의 방안이 무엇이든 간에 여름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낭만들은 점점 드문 일이 되어간다. 카디건을 걸치고 양말을 신은 채로 뜨거운 국을 마시는 한여름을 보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말이 불현듯, 모골이 송연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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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푸른 밤 (@djckvl)
    2022-07-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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