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nights of quie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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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djck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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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8-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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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31 10:59santiago 通信_ 88
'정인이 사건' 이라는 게 있었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정인이의 부모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세세한 정황을 모르는 것이다. 일부러 듣지 않고 보 지 않았다. TV에서 뉴스로 정인이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아예 채널을 돌려버렸고 포털에 올라온 기사는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 아내에게도 지인들에게도 미리 부탁했다. 절대로 절대로 정인이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내게 하지 말아 달라고. 어떤 정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날 상상이 너무나 힘들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해진다는 것이 인간 생리의 약속이라지만 어떤 일은 오히려 더욱 예민해지고 거슬리게 된다. 아이들이나 노인들, 죄 없는 동물들이 학대받거나 곤경에 처해지거나 심지어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따위의 뉴스를 보고 나면 며칠 동안 오물을 뒤집어쓴 셔츠를 입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내가 선량한 인간이라거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별도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살면서 쌓여온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감응‘ 이다. 모든 불행과 슬픔은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어린 목숨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그 부모의 비통이나 어린 생명의 가여운 운명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슬퍼하게 되지만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비극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어린것이 남긴 신발이며 옷가지며, 삐뚤빼뚤한 글씨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그러니 ’정인이 사건‘ 같은 일은 내겐 아주 고약하고 지독한 악몽이었다.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저 도망치고 마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죽음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모든 행동과 업적들은 모두 농담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이를테면 죽음은 인간의 모든 얼룩과 상처, 과오와 실책들은 모두 ’리셋‘ 할 수 있는 블랙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이 거대한 악惡은 도대체 뭐라 말해야 좋을까. 신은 왜 이 거대한 모순을 우리들 가운데 남겨 두었나. 혹자는 말하기를 예전의 세상이 더욱 참혹하고 잔인했으나 다만 미디어가 요즘처럼 발달하지 못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면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생지옥이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인가.
또다시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고 피해 갈 수 없을까 궁리했건만 이번엔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군중 속에서 젊은 남자들과 맞닥뜨리면 괜스레 움츠러들고, 기름기 번들번들한 중년 부부가 지나가면 이유 없는 적의가 일어난다. 불행과 폭력이 언제 나에게 벼락처럼 내리 꽂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온몸이 곤두서 있다. 우리 평범한 일상의 평화라는 것은 그토록 대단한 댓가를 필요로 했던 것인가. 우디 알렌의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신을 믿지 않는다니 맙소사, 신이 있다는데도 세상이 이 지경인데.” 나는 아직도 무신론자이지만 어린 시절 친구 따라 간 교회 주일 학교 예배시간에 배웠던 찬송이 불현듯 생각난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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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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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24 12:45santiago 通信_ 87
오래전의 일이다. dvd 대여점에서 dvd를 고르고 있었는데 보고 싶어 하는게 며칠씩 안 돌아왔다. 다른 볼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짜증이 났다. 그때 대여점 안의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뉴스라는 게 마침, 앞으로는 가정에서 인터넷 회선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골라 볼 수 있는 시대가 곧 오리라는 것이었다. 짜증이 나 있는 나를 불안하게 살피고 있는 대여점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난 피식 웃었다. “웃기네. 어느 천년에 저런 게 되겠어.” 그러자 주인도 억지로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럼 우린 다 굶어 죽게.” 그 바로 이듬해, 굶어 죽게 된 대여점 주인은 자전거 수리점인가 뭔가로 업종을 바꾸어 점포를 새로 연다고 했다. 피식거리며 비웃었던 미래가 현실이 된 것이다.
어떤 ‘미래’ 는 정말로 순식간에 다가온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어느샌가 자연스런 일상이 되고 나면 이전에 겪었던 재래식의 과거는 추억도 뭐도 아닌 채 그저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할 구태의연한 시절의 유물로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디지털의 등장으로 급변한 관청의 행정절차만 봐도 그렇다. 이제 웬만한 관청의 업무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순식간에 해결이 된다. 물론 정확하다. 굉장하지 않은가. 아득한 과거에는 단순히 ‘서류를 빨리 접수해 주는’ 조건으로 건네는 뇌물이 있었다고 했다. 세태의 변화가 이러하다. 은행이나 병원의 행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 ‘돈’ 이라는 걸 손으로 만져본 게 언제인지 정말로 가물가물하다.
이미 여러 차례 공론화 되었어도 아직 말만이 무성한 우리의 ‘오래된 미래’ 도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컨대, 하늘을 나는 자동차, 시속 1200km의 고속열차, 안락사의 허용, 완전한 재택근무, 부동산의 합리적 안정, 우주여행의 대중화, 화성식민지 등등. 개인적으로는 자동차의 자율주행만 빨리 보급되어도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으로 안한 사고의 폐해는 대폭적으로 줄어들 것이란 소망이 있다. 먼 훗날 자율주행이 일반화된 세상에서는 과거의 ‘원시적’ 기술에 의한 사건과 사고들이 얼마나 어이없게 여겨질 것인가.
인공지능 AI에 대한 논의들이 뜨겁다. 이것으로 해서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건 이미 명백한 사실이며 다만 어디가 얼마나 뒤집어질 것인지를 알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공지능이 본격화되면 무엇보다도 의사의 진단이나 판사의 판결 같은 데이터 집약적인 엘리트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인공지능에 의한 판결의 의미를 다루는 신문기사는 이미 2017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소망을 수정하기로 한다. 자율주행보다 인공지능에 의한 사법의 판결이 공인되는 그 날이 가장 먼저 오기를. 그런 세상이 왔을 때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겠지. “엣날엔 모든 판결을 판사가 지 멋대로 정했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뭐야 그게. 인류가 불을 발견한 다음 날 즈음의 법원인가.”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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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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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17 10:43santiago 通信_ 86
예전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가 뭐였냐고 물었을 때 별생각 없이 ‘백 투 더 퓨처’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다음 다음 사람이 자기는 ‘인디아나 존스‘ 를 제일 재밌게 봤다고 말하자말자 난 마치 불에 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맙소사, '인디아나 존스' 라고 말하지 않았다니.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후회했다. 핸드폰 기종이 바뀌기 전까지 내 전화벨 소리는 존 윌리암스의 '인디아나 존스' 테마였다. 페도라를 두 개 가지고 있는데 그저 여행용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다분히, '인디아나 존스' 의 중절모를 의식한 코스튬이다.
시인 고은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빗대 시인 서정주를 두고 ‘정부政府’ 라고 했다는데 학창 시절의 내게 '인디아나 존스' 는 학교의 방학이나 학기 같은 어떤 ‘학사행정’ 같은 존재였다. 예술이 끼치는 영향을 교훈과 오락으로 나눈다면 '인디아나 존스' 는 명백히 오락적 영화로 분류될 테지만 내겐 단순한 영화적 오락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오락 영화 이상의 무슨 ’사유의 여백‘ 이 있다거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따위의 '고상한 척' 이 들어 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가 추구하는 지향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나는 그저 오락영화란 말이지, 우리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즐겨봅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영화야 버려진 팝콘 알갱이보다도 많지만 '인디아나 존스' 속에 등장했던 모든 오락적 요소들은 내게 그 차원을 달리했다. ’소년‘ 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그 영화 속에는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의 모든 소년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시리즈는 1981년의 ‘레이더스’ 로 부터 시작하지만 나는 1984년의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을 먼저 봤다. 시리즈 3편인 1989년의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까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이후 2008년의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에 가서는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어딘가 맥이 빠지고 예전 '인디아나 존스'의 ‘활기’ 도 사라진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주연인 해리슨 포드가 ‘연로’ 한 탓이라기 보다는 홍수처럼 범람하여 공기처럼 대세가 되어버린 컴퓨터그래픽의 남발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얘기까지 하자면 이 지면이 모자란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올해 개봉하는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 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이제 영화에 시큰둥한 어른이 되었다. 아무리 굉장한 영화가 등장했다고 해도 ‘픽션’ 은 언제나 시시할 뿐이다. 이것은 영화의 탓이 아니다. 세파에 찌들고 냉정한 시속에 물들다 보면 ’뻔한 진실‘ 과 ’눈감아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순수‘ 나 ’정의‘ 같은 말들 위에 설탕 뿌려논 것 같은 영화들이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몇 번이나 가슴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세상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인디아나 존스' 가 있었던 인생만큼은 행복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미 ‘E.T’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 주었지만 '인디아나 존스' 라는 영화가 보내준 그 순수한 행복, 그 설레는 상상력은 나의 유년을 반짝이게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 방학, 어두운 극장의 은막 위에 쩌렁쩌렁 울리는 주제곡을 배경으로 열리던 모험의 세계. 저 시칠리아 시골 극장의 어린 토토처럼 내 어린 날의 시네마 천국.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내 당대에 '인디아나 존스'를 보낸다. 진심으로 아쉽고, 또한 행복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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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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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10 10:54santiago 通信_ 85
얼마 전, 늘상 밖에서만 듣다가 모처럼 인라이브에 접속했다. 한적한 골목길 모퉁이에 창 넓은 아늑한 카페 같은 방송국이 있어 예전 자주 들러 마음을 뉘였었다. 국장이신 여사님도 가을꽃처럼 은은하고 차분하시다. 도어벨이 울리며 커피 향 자욱한 실내에 들어서는 듯한 착각이 모처럼 일었다. 두꺼운 러시아 소설을 읽다 일어선 듯한 국장님이 반겨주셨다. 부드러운 선곡들은 변함없군요. 격조했다는 인사와 안부가 오가고 이내 화제는 자연스레 ‘격변’한 방송환경으로 옮겨졌다. 이때가 토요일 오후, 인라이브 안에 열려있는 방들을 세어보니 무려 백여 개가 넘는다. 인라이브에서 10년을 훌쩍 넘게 지내온 내 눈에도 처음 보는 생경한 광경이다.
그야말로 엑소더스다. 수년 전 인라이브에서 벌어진 일이 이번에는 ‘저쪽’ 에서 일어났다. 저쪽에선 한 번도 회원가입한 적 없어서 내부로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몇 번인가 인라에서 잘 나가는 시제이가 저쪽에서 ‘두 탕 뛴다’ 는 소문을 듣고선 구경하러 간 적은 있다. 그 ‘구경‘ 이 내가 저쪽을 아는 전부다. 그러므로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은 어떤 게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창졸간에 난민 신세가 되어버린 유저들의 불만은 대체로 비슷했다. 너무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버려서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격변’ 이 있어야 했는지 역시도 내 소관 밖의 일이지만 순식간에 동호의 터전을 잃고 헛헛해하시는 ‘디아스포라‘ 들을 위로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한다는 이 명제뿐이다.” 라는 말이 세상에는 있다는 것이다. 인라의 원주민들도 수년 전 하루아침에 기둥 서까래며 대문부터 방바닥까지 싹 바뀌어버린 곳에서 묵묵히 지내왔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식식거려도 봤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적응하게 마련이었다. 동병상련의 정한인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고 뾰족하게 굴 일도 아니다. 저쪽의 운영진들은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개편을 단행했을까. 일일이 설명은 못해도 이 모든 난리를 감내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낭패가 목까지 차오른 회의실에서 격론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터 남의 터 가릴 것 없이 우리가 마음 붙이는 곳이 오래 건재해 주길 바라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이지만 현실은 끊임없는 변화와 단절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마이클 잭슨이 별세하고 일주일 만인가 난생 처음 인라이브에 가입했었다. 그래서 인라이브에서의 첫 신청곡을 기억한다. “Human nature” 바라건대 부디 인라이브에서 마지막 신청을 하는 날이 서둘러 오지 않기를.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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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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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djckvl)2023-07-03 10:26santiago 通信_ 84
알고 지내는 어르신이 자기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색색깔의 열매들도 실하지만 늘 보면 사진을 참 잘 찍으신다. 나는 사진을 잘 모르지만 모르는 눈으로 봐도 구도에 집착하거나 조명에 애를 쓴 흔적 없이 수수한 가운데 색감도 부드럽고 배경과의 조화도 나쁘지 않다. 이 분이 또 언제 이런 취미가 있으셨나. 넌지시 물었다. 사진이 참 좋으네요. 무슨 카메라인가요. 어르신의 대답. 폰으로 찍었는데. 팔순 아마추어의 실력이 이 정도다.
중학교 2학년 때 강변으로 소풍을 갔다. 평소 좀 어리숙하던 친구 하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낡은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때만 해도 수동식 카메라는 귀하던 시절이다. 소풍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죽이 맞는 대여섯이 모여 캄캄해질 때까지 온갖 폼을 잡아가며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소풍이 끝난 강변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중2병 사춘기들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 얼마나 같잖고 유치했겠나.
며칠 동안 우리는 현상되어 나올 사진을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각자마다 최고의 샷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진은 단 1장도 구경하지 못했다. 수동이라 조작에 서툴렀던 것인지, 실컷 찍어 놓고선 빛에 노출되어 필름이 홀랑 타 버린 것인지 어리숙한 친구 놈은 사진 한 장 내놓지 않는 내막을 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허탈해진 우리끼리 여러 추측들을 했었지만 아무래도 내 짐작엔 필름을 아예 집어넣지 않았던 게 아닐까 했다. 백 장 넘게 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필름을 갈아 끼운다고 부스럭 거리는 걸 본 기억이 없으니까.
우리의 저 재래식 카메라가 있던 시절에는 사진을 찍어 놓고 그 찰나의 순간이 인화되어 나오기까지에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필름도 카메라도 현상비도 비싸던 시절이라 엔간히 못 나온 사진도 추억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눈을 감은 순간이나, 전혀 다른 사람 같은 우스운 표정도,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도 모두 추억이었고 명백한 과거였던 것이다. 요즘처럼 모니터로 쓱 보고선 마음에 안 들면 대번에 지워 버릴 수 있는 환경에서의 사진들은 알록달록하고 화사하기만 해서 오히려 가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나만의 기분일까. 우리네 삶의 풍경은 그런 것이 아닌데. 환하고 매끄럽고 반듯한 순간보다도 구겨지고 남루하며 부끄러운, 그런 볼품없는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삶을 직조하고 인생의 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사진을 어쩜 이렇게 잘 찍으세요. 처음엔 그냥 허허 웃던 양반이 내가 작심을 하고 칭찬을 거듭하자 마음이 찔렸던지 끝내는 실토를 하셨다. “아 같은 사진을 몇 십장 찍어 놓고 그중에 제일 괜찮은 놈으로 골라 보내니 보기 좋을 밖에.”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도 디지털의 장점이다. 구식 필름 카메라로 찍든 디지털카메라로 찍든 중요한 것은 사물과 인물과 풍경에 대한 찍는 이의 ‘기획’ 이다. 사물을 해석하는 눈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영감에 달려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속해서 셔터를 눌러대는 노인의 마음에는 텃밭에서 자라나는 저 어린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기특했을 것인가. 찍는 이의 마음속에 자식을 들여다보듯 애틋한 정이 서려 있는 것이니 당연히 사진이 좋을 밖에.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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