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빗소리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로 자신을 높여 가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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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g16890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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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8 23:23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스미는 것이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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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8 13:33
강화도의 어느 까페에서~~
평일이고 한적하여 조용한 곳에 들어 왔더니~~~
나이든 분들이 우르르~~~
순간 어느 시골 장터온 듯 ㅡㅡ
어서 나가야겠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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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8 13:26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 서거
독립 전쟁에서 독립군이 거둔 가장 큰 승리로 기록되는 청산리 대첩!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분은 청산리 대첩에서 활약했던 나중소 선생입니다.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전 만주 독립군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던 나중소 선생님의 일생을 지금 만나보겠습니다.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나비장군”
나중소 선생은 1867년 4월 13일, 경기도 고양군(현재 서울 정릉)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탁월한 무예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로 인해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곧바로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진위대 부위로 재직한 선생은 1907년 9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 당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국비유학생으로 유학해 일제의 군대의 특성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등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1919년 3월, 나중소 선생은 북간도 왕청현에서 서일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되어 수백 명의 무장 독립군을 양성하였습니다. 그 해 10월 대한정의단이 북로군정서로 개편된 후에는 참모부장으로 사령관 김좌진을 보좌하였습니다.
또한 북로군정서군의 사관연성소 교수부장을 겸임하며 300여 명의 독립군 사관을 기르는 힘썼고, 직접 일제와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나중소 선생이 참가했던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의 대승으로 유명합니다.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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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4 12:48※한국인도 헷갈리는 올바른 맞춤법
설겆이 ☞ 설거지
짜집기 ☞ 짜깁기
뇌졸증 ☞ 뇌졸중
되물림 ☞ 대물림
살고기 ☞ 살코기
설레임 ☞ 설렘
악천우 ☞ 악천후
도매급 ☞ 도매금
깨방정 ☞ 개방정
비누곽 ☞ 비눗갑
궁뎅이 ☞ 궁둥이
높힘말 ☞ 높임말
해꼬지 ☞ 해코지
깡소주 ☞ 강소주
잎파리 ☞ 이파리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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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4 12: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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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4 11:51광복 영화 보고 가면 더 좋은🎞 전국 #광복절 가볼만한 곳 추천 🇰🇷
다가오는 광복 80주년!
[항거: 유관순이야기] 부터 [암살]까지
광복 영화 보고 가면 더욱 깊게 빠져들 수 있는
광복절 여행지 추천 드려요!
📍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항거:유관순 이야기] 속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투옥되었던 형무소.
옥중 만세를 외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느껴보세요!
_위치_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 영양 #남자현지사역사공원
[암살] 속 주인공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세 손가락의 여장군' 남자현.
혈서로 독립 의지를 밝혔던 치열했던 여정을 따라가 보세요!
_위치_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석보로 208
📍 수원 #111CM (특별전시 #윤동주가사랑한한글)
영화 [동주]를 보고 가면 더 감동적인 전시🏛
윤동주의 시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_위치_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성로 195 (111CM)
_운영기간_2025.07.03.(목)~2025.08.24.(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에 휴관합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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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4 10:26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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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4 09:13
독립운동가 유상근 선생
1945년 8월 14일, 광복을 하루 앞두고 순국.
강원도에서 태어난 유상근 선생은 집안 사정으로 만주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
19세에 이모부가 있는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1930년 독립운동에 참여할 뜻을 품고 상하이로 가서 대한인교민단 단장 김구 선생을 만났다.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영국인이 운영하는 버스회사의 검표원으로 일했으나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었고 홍콩과 광둥지방을 오가며 인삼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1932년 김구 선생의 부름으로 상하이로 돌아온 선생은 한인사회 치안과 밀정 처단을 위해 조직된 의경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일본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철도 총재 처단 의거에 선발되어 이를 준비했다.
1932년 5월 26일, 대련에 국제연맹 리튼 조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접한 김구 선생은 환영식에 참가하는 일본군 고위관료들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때 유상근 선생을 대련으로 파견한다.
4월 27일, 유상근 선생은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수통형 폭탄을 들고 대련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선생은 의거를 위해 미리 가 있던 최흥식 선생을 만났고, 이성원, 이성발 형제의 도움으로 거사를 준비했다.
5월 24일, 거사 이틀 전, 상하이로 보낸 전보가 추적당해 선생은 일경에서 체포되고 만다.
선생은 여순 관동주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및 기타 말도 안 되는 죄명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여순감옥에서 13년의 수감생활을 하다 1945년 8월 14일....
광복을 하루 앞두고 일제에 의해 옥중 고문사, 순국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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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3 12:37
하늘이 구멍났나 보다.
새벽의 폭음 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뒤척이며
특히 휴기철에 버려지는 생명들 생각하니 천둥소리에 빗물로
여러 생각에 눈가에 눈물이 맺힘에 올해만큼은~~~~
버려지는 생명이 없도록 학대받는 생명이 없기를
또한 비피해로 큰 고통받는 이가 없기를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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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품은달°˚ (@g1689061000)2025-08-13 12:17


독립운동가 박상진 선생(1884.12.7~1921.8.13) 서거
혁명적 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다.
오인(吾人)은 대한독립광복(大韓獨立光復)을 위하여 오인의 생명을 희생에 공(供)함은 물론, 오인이 일생의 목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子子) 손손(孫孫)이 계승하여 수적(讐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불변하고 결심 육력(戮力)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서고(誓告)함.
- 1915년 선생이 주도한 대한광복회의 결의문에서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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