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함 단아함 아름다움
좋은 멜로디에 담긴 좋은 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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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jackbenoo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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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27 14:38
그런 날이 있지요.
새 옷을 입은 날에 김칫국물이 튀고,
우산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음방에 들어왔더니
좋아하는 음악의 끝부분만 나오다가
곧 종방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날
그런 때도 있지요.
도대체 뭘 하며 살아온 건지,
남긴 것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아서
무슨 일에도 자신이 없고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댈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
/
당신은 그 사람을 가졌는지요?
온 세상이 등을 돌린 듯 느껴질 때
나를 끝까지 지켜주는 자긍심과 자존감.
스스로 끄집어낼 힘이 없을 때
살며시 톡톡,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람을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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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27 14:13
저 멀리 초등학교때 큰 책상 하나를
짝과 함께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상 가운에 또렷이 선을 그었습니다.
넘어오지 말라고
지금 돌이키면 어쩔수 없었던
그 유아적 유치함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올라옵니다
중년을 통과하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선긋기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영역에 대하여 함부로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이지요
그 선을 지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태도이자 기술로서의 선긋기는 또 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정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싶은 순간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았는지요.
일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적절한 선을 긋는 것.
때로는 떠들석한 무리들로부터 물러나
자신을 선 밖에 세워둘 줄 아는 것.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서의 선긋기입니다.
중년의 삶에서 참 중요한 듯 합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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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26 15:37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뒤
가장 많이 다쳐본 곳,
빨간 약을 가장 많이 발라본 곳은
아마 무릎이겠지요.
이제는 내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며
삶의 하중을, 살아온 시간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생의 길목에서
먼저 닳아버리고,
언젠가는 저 멀리서 오는 비의 기척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겠지요.
한때는 사랑을 얻기 위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는 그 사랑을 무릎 위에 누이고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지요.
무릎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꼭 안아주어야 할 때
두 팔로 무릎을 감쌉니다.
내 눈물을 내가 받아야 할 때,
무릎 위에 얼굴을 묻습니다.
무릎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지막 사랑을 위해
한 번 더 바닥에 대어야할 자리,
앞으로도 혹시 모를
내 눈물을 고이 받아내야 할 자리,
신에게 마음을 맡기고 싶을 때 꿇어야 할 자리,
무릎은 그런 곳일 것 입니다.
당신의 무릎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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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21 16:54
영화 "코코"에서는
죽은 이들이 영혼의 모습으로
사후 세계에서 여전히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망자의 날’이 되면 그들은 잠시 현생으로 여행을 떠나지요.
마치 공항 출입국 심사처럼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그때 산 사람들의 재단 위에 사진이 올려져 있으면 통과,
사진이 없다면 현생으로 갈 수 없습니다.
망자들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로 사라지는 순간은
산 자들의 세상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 누구의 마음에서도
다시는 이름이 불리지 못하고,
그 누구의 기억속에 등장하지 못할 때,
존재 자체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지요
영화 속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에는 슬픔이,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에는 고통이 따름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 훗날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사람으로 남을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고 싶어지는 이유입니다.
언젠가 나를 기억해 줄 누군가의 마음속에
작지만 밝은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도록요.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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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15 17:42
영화 “스타이즈본“은 음악으로 번역된 사랑의 서사입니다
OST들은 각각의 곡이 한 장면의 감정을 압축하고,
인물들의 내면을 ‘음악으로 번역한 시’처럼 표현합니다.
1. Maybe It’s Time - 변화의 두려움
잭은 성공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의 마음은 깊은 공허 속에 있습니다.
무대 위의 환호와 조명 속에서도 그는 외로웠습니다.
음악만이 삶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난청으로 인해 술과 약물에 기대어 노래를 이어갑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변화가 두렵습니다.
그래서 잭은 담담히 노래합니다.
“Maybe it’s time to let the old ways die.”
(이제는 낡은 방식을 버려야 할 때일지도 몰라.)
이 노래를 듣고 있던 앨리는
그의 내면 속에 숨겨진 고독과 상처를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이 장면은 잭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그가 왜 사랑에 기대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2. Shallow - 사랑과 삶의 도약
이 노래 속에서 잭과 앨리는 서로에게 묻습니다.
잭이 앨리에게,
“이 세상 속에서, 정말 행복해?”
앨리는 잭에게,
“끝없이 채워도 공허한 그 마음, 지치지 않았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노래는,
후렴으로 들어가며 참사랑과 참예술, 그리고 참인생을 향한 포효로 바뀝니다.
큰 무대에 처음 선 앨리는 긴장하지만
억눌려 있던 마음을 온전히 쏟아내듯 노래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잭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잭은 앨리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렸던 음악의 순수함을 되찾고,
앨리는 잭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냅니다.
"Shallow"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자,
사랑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진실된 삶을 살겠다”는 삶의 선언이 담긴 곡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사랑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3. Always Remember Us This Way - 사랑의 절정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이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자”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잭과 앨리의 사랑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
앨리는 이제 한 명의 솔로 가수로 당당히 무대에 서 있습니다.
그녀의 피아노 위로 흐르는 멜로디는
사랑의 절정이면서도, 곧 다가올 이별의 예감을 담고 있죠.
무대 아래에서 앨리를 바라보는 잭의 눈빛에는
자부심과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사랑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언제나 사라짐의 그림자를 동반한다”는
영화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노래가 곧 대사이며, 감정이며, 서사입니다.
그래서 A Star Is Born은 한 편의 영화이자,
사랑과 예술을 노래로 써 내려간 한 권의 시집과도 같습니다.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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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14 17:09
드러냄과 감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빛 아래 놓여 누구에게나 보이도록 내어주는 것과,
어둡고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품고 간직하는 것.
때때로 마음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또 어떤 순간에는 깊은 곳에 넣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드러냄과 감춤 사이,
그 미묘한 결을 알아차리는 일이
어쩌면 한 사람의 성숙을 가늠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A Star Is Born〉의 마지막 장면,
무대 위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앨리가 부르는
‘I’ll Never Love Again’.
이 곡은 원래
잭이 앨리를 위해 만들어 두었던 노래였습니다.
앨리를 향한 그의 사랑이 고스란이 스며들어 있는 곡이지요.
언젠가 앨리가 이 노래를 불러
앨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주기를 바라며 썼지만,
정작 그는 처음에는 이 곡을
마치 서랍 깊숙이 넣어두듯 감추어 둡니다.
언젠가 앨리가 스스로 그 노래를 꺼내어 부를 수 있기를 바라며,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남겨둔 것이지요.
그 곡을 연주하던 순간의 잭의 표정은
드러냄과 감춤의 결을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그 장면에서
감정의 방향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택합니다.
언젠가 드러나길 기다리는 사랑의 고백을
왜 그는 그렇게 감추어 두었을까.
아마 관객마다 잭의 마음을
조금씩 다르게 읽어내게 될 것입니다.
음악 속에 남겨진 그 사랑의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움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앨리에 대한 잭의 사랑을 노래한 이 곡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는
잭에 대한 앨리의 사랑을 드러내게 됩니다.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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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13 15:09
바람결, 물결, 잠결, 꿈결, 숨결.
나뭇결, 머릿결, 비단결, 살결.
모든 것에는 결이 있습니다.
결은 참 중요합니다.
나무는 결을 따라 다루어야 하고,
물은 결을 타고 흘러야 하며,
머리칼도 결을 따라 쓸어내릴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습니다.
엉겹결에, 무심결에,
우리의 말에도 결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억지로 의도하거나 작정하지 않아도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순간을 가리키지요.
돌이켜보면
마음에도 결이 있고,
성품에도, 목소리에도 결이 있나 봅니다.
인생에서 신기한 일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일도
대개 그렇게 ‘결결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큰 각오나 특별한 준비 없이
어쩌다 엉겹결에 스쳐 지나는 자리에서
무심결에 건넨 말 한마디에서
문득 마음의 결이 닿는 사람을 알아보게 됩니다.
결이 맞는 사람과 있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알아보고,
불필요한 힘을 쓰지 않아도 서로의 속도가 자연스레 맞습니다.
어깨를 기대면 튕겨나오지 않고,
말을 건네면 상처 없이 가만히 닿습니다.
결이 비슷한 사람은
내 삶을 더 아름답게, 더 편안하게 흘러가게 하는
따뜻한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 마음의 결을 조용히 어루만져 줄 누군가를
어딘가에서,
엉겹결에, 무심결에라도 만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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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12 15:19
‘명(名)’은 ‘이름’을 뜻합니다.
이 글자는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결합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저녁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이름을 불러야 했지요.
그래서 ‘명’이라는 글자에는
“어둠 속에서 부름으로써 관계를 잇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이름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부름으로써
그가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이름의 본래 역할이 아니었을까
이름을 부르는 마음은
지워지려는 것, 멀어지고 사라져가는 것을
끝내 붙잡으려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녁에 떠올리는 이름은
더욱 애틋하고, 더없이 뭉클합니다.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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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jackbenoodle)2025-11-11 16:09
‘서도’, 글씨에도 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도는 글자를 또박또박 잘 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백지 위에 글자를 어디에 두고,
어떤 간격과 흐름으로 놓을지를 헤아리며
글자들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서도 관계론"에서 말합니다.
/
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는 그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의 실수는 다음 자나 다음다음 자로 보완한다.
한 행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고친다.
이렇게 완성된 한 폭의 글씨는
실수와 보상, 결함과 사과로 점철되어 있다.”
신영복, 《서도 관계론》
/
이 말은 단지 서예의 이치를 넘어 삶의 진리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종종 첫 획을 망치면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선 획의 실수는 다음 획으로,
앞선 행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지요
서도 관계론은 말합니다.
삶의 실수는 지워야 할 얼룩이 아니라,
다음 획이 품어야 할 이야기와 여백이라고.
그래서 이 관계론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삶의 전반전이 실수와 결함으로 어그러졌더라도
후반전의 보상과 사과로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위로입니다.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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