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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건 빛을 낸다 ♡

♡ 행복충만 ♡
  • 2
  • 그리나a(@rlaghkdud)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3-03 10:51




     
     
    아침공감 ^^*

    낯설음에 대한 용서할 수 없음, 실망스러움에 대한 인정할 수 없음,
    비겁함에 대한 치떨림, 거절당함에 대한 납득할 수 없음,
    부당함에 대한 조건반사...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정답 이외의 것이 너무나 엉뚱하고 실망스러울 때에
    분노를 느끼고 치욕스러워한다.
    특히 정의롭지 못함에 대한 분노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때도 있다.
    ‘장부루 丈夫淚’ 라는 남자의 눈물을 가리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절의와 정의 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표현한 것이다.
    표정을 바라보고 흘리는 눈물이 슬픔과 연민이라면,
    표정이 아닌 태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분노와 감격이다.
    분노는 그만큼 근원을 본다.

    용서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하여
    치가 떨리고 노여운 것은,
    상황 자체보다는 그 배후에 도사린 잘못된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릇됨을 응축하고 있는 자세, 그것을 볼 줄 알 때에 우리는 분노하며 운다.



    *김소연 시인의 책 <마음 사전>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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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28 10:47




     
     
    아침공감 ^^*


    신들에게 미움을 산 시시포스에게 주어진 형벌은
    커다란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이다.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쳐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바위를 언덕 위에 올려놓으면
     
    바위는 즉시 언덕을 굴러 내려가 원래 있던
    맨 밑자락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그럼 시시포스는 이 노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영원히 계속해야만 한다.

     
    신들만이 고안해낼 수 있는 참으로 끔찍한 형벌이다.
    그런데 시시포스에 주어진 벌은 왜 끔찍한 것일까?
    이 형벌이 주는 공포는 정확히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시시포스의 노동이 몹시 고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육중한 바위를 옮기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마다 근육은 끊어지는 듯하고
    심장은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고통, 그런데 만약 신들이 시시포스에게
    무거운 바위가 아니라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조약돌을 쥐어주었다면 어떠했을까?

     
    돌멩이 하나 들고 산책하듯 언덕에 올라갔다가,
     “앗, 돌이 굴러 떨어졌네!” 하고,
    휘파람 불면서 다시 처음부터 과제를 시작할까?

    작은 돌을 옮기는 과제가 전보다 덜 고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주는 고통이 전보다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시포스에게 주어진 형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과제의 난이도에 있지 않다.
    그가 느끼는 고통은 자신이 하는 노동이 공허하고
     
    의미 없는 것이라는 데에서
    온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일에 몰입할 수도 없다.
     
    그저 먹고살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동을 할 뿐이다.
    그래서 진짜 리더는 부하 직원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전에
    먼저 일의 의미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맥락을 알아야
    일에 몰입할 수 있음은 물론 큰 그림 안에서
     정확히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우창의 책 <일상의 경영학>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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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27 09:54



     
     
     
     
    아침공감 ^^*

    2015년 한 TV다큐프로그램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 석학들의 지식 향연장인 TED무대에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한 젊은 교수를 영상에 담았다.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신경학을 가르치는 ‘토드 로즈’ 교수였다.
    그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에서 신형 전투기를 제작하면서 조종사에게 맞는 조종석을
    디자인하기 위해 4,000명에 이르는 조종사들의 신체를 측정했다.
     
    그들은 키, 어깨, 가슴, 허리, 엉덩이 등 10개 항목에서 평균 치수를 알아냈고
    다음과 같은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과연 조종사들 중 몇 명이 이 열 가지 수치의 평균에 해당할까?’
    평균 수치에 해당하는 조종사는 4,000명 중 놀랍게도 ‘0’명이었다.

    ‘평균적인’ 신체 수치를 가진 조종사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적인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기에,
    학습환경을 평균에 맞춰 설계한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제각각 들쭉날쭉한 학습특성을 가진 수많은 아이들이
    교육과정 속에서 재능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 평균에 맞춰진 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균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발견한 토드 로즈 교수도 그렇게 상처받은 학생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진단받고,
    온갖 악동짓은 다 저질렀으며 전 과목 F학점이라는 최하위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문제아 중의 문제아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실패자라고 손가락질받던 그는
    하버드대의 촉망받는 교수가 되었다.




    *정선주의 책 <학력파괴자들>중에서 따온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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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19 11:23




     
     
    아침공감 ^^*

    ^^* 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
    예순 무렵부터 맛이 들쑥날쑥해진 엄마의 김치
    한 해는 맛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가 한 해는 쓰다가
    김치도 담글 줄 모르는 딸년 둘은 엄마 김치가 좀 이상해졌지
    세 치 혀로 감히 엄마의 김치에 대해 종알거렸는데
    예순을 넘기고부터 엄마의 김치는 매년 쓰기만 했다.

    내 손 가면 가면 좀 나아질까 한 두 어 번 같이 김장을 담가봤지만
    엄마의 김치는 다시 달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김장하는 날 유독 심해지는 영감님의 잔소리도
     
    엄마의 김치 몇 포기를 쓰게 만드는 데 한몫했을 것이고
    어느 해인가 삭혀도 씻어도 먹을 수 없는 골칫덩어리가 된
    엄마의 김치를 버리고 나서 국산 재료만 사용하여
     
    조미료 일절 넣지 않고 담갔다는 김치를 시켜 먹으며
    재래된장 정보까지 공유하는 소갈머리 없는 딸년 둘도
    엄마의 김치를 열 포기쯤 쓰게 만들었을 테고

    엄마가 담근 새콤한 김장 김치 김장독에서 막 꺼내
    살짝 살얼음이 낀 김치 한 보시기에 따뜻한 밥만 있으면
    겨우내 반찬 걱정 없던 기억들은

    친정집 뒤란의 장독대와 함께 사라져버렸는데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매년 김치를 담고 있다
    육십칠 년 성상(星霜) 엄마의 인생이 쓰디써
    엄마 손에 남은 건 쓴 맛 뿐인 듯한데

    그래서 김치 담그는 날이면 행여 어린 새끼들 눈 매울까봐 애태우며
    김치 속 버무리느라 더 새빨개지던
     그 손으로 거둔 딸년 둘도 외면해버린 김치를 엄마는 매년 쓰고 있다.

    그래도 쓰다 달다 말없이 마나님 김치 먹어주는 영감님이 곁에 있어
    엄마는 매년 김치를 쓰고 있다.
    구부정한 허리와 쿡쿡 쑤는 무릎으로 죽을 힘을 다해 올해도
    한 40포기 썼다니
     
    글 쓴답시고 코만 길어진 둘째 딸년이 새벽 4시까지 쓴 것보다
    몇 배는 많이 쓴 셈이라
    둘째 딸년은 거기 감히 명함도 들이밀 수 없겠다.


    *성미정 시인의 시 『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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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18 19:34
    boat on the river - st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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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18 16:01



     
     
     
    아침공감 ^^*

    대부분의 표현은 말로 가능하다.
    입 밖으로 나오는 음성에 기대어 상당히 많은 것을 전달하는 셈이다.
    말소리가 아니라 몸동작으로 전달되는 것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독이는 일이 많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졸린 아이를 재우기 위해 등이나 어깨를 토닥거리게 된다.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예쁘다고 어르면서 엉덩이를 토닥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손동작을 애들은 금방 따라한다.
     
    이제는 안아 올리면 저희들이 먼저 부모를 다독인다.
    자주 그러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손동작을 배우게 된 것이다.
    작고 여린 손이 나의 등이나 어깨를 토닥이는 것이 귀엽고 기분도 썩 좋다.
    아이들은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인데도 위로가 된다.
     
    또 아이를 안고 좌우로 흔들거리던 몸의 기억 때문인지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기가 그러고 있더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웃었다.

    연휴가 제법 길었다. 잘 쉬었다면 좋겠지만 명절 인사와 집안일로 지친 이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배우자의 수고로움을 사주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가볍게 다독여주는 것은 어떨까.
    가족들의 어깨나 등을 토닥여준다면 당신은 좀 더 근사해질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위로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손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괜찮아, 수고했어, 잘 될 거야, 행운을 빌어...


    *칼럼 <길 위의 이야기> 중에서 이근화 시인이 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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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05 12:58




     
     
     
    ☞ 구정의 유래 ☜

     
    음력 1월1일을
    설날이라고 한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
     

    설날은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다..
     

    설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중국의 사서에서
    '신라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한말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에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 당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그후 1985년에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설'의 명칭을 복원했고
    사흘간 쉬기로 결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데,
    농경의례와 민간 신앙을 배경으로 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 날을 아무 탈 없이 지내야
    1년 365일이 평안하다고하여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란 뜻에서
    설날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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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05 09:38




     
     
     
    아침공감 ^^*


    칸트가 평생 건조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 그는 당구와 카드놀이를 즐겼고, 강사 생활을 할 때도
    레스토랑에서 사람들과 수다도 열심히 떨었고 극장과 살롱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럼 칸트가 “정확히 자로 잰 듯한” 일상을 살았다는 것은 거짓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가 시계추 같은 삶, 군인 같은 일상을 살게 된 것은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어떤 시기를 거치면서입니다.

    칸트는 1770년, 만 46세가 되던 해, 꿈에도 그리던 교수가 됩니다.
    그는 교수 취임 후 논문 보충을 하던 중
    문제를 다시 전반적으로 검토했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칸트의 ‘침묵의 10년’입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수정 정도를 생각했던 작업이 어느덧 자신이 사용하던
    모든 개념들을 철저히 검토하는 거대 작업이 되어 버린 겁니다.

    1770년에 시작한 침묵은 1781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 ‘침묵의 10년’ 끝에 날아가는 마음으로 그는 ‘순수이성비판’을 써냅니다.

    참고로 니체는 철학자는 ‘예민한 후각’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 삶의 최적의 조건에 방해되는 것.
    다시 말해 사유에 방해되는 것을 냄새 맡고는 일찌감치 거리를
    둬야한다고 말합니다.
     
    철학자가 냄새 맡는 방해물이란 세속의 소음 같은 것이죠.
    철학자는 세상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고 뛰어드는 것들에서 물러나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산다는 겁니다.

    새로운 개념을 품었을 때 철학자는 임신부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삶에 좋은 것들을 잘 가려서 섭취해야지요.
    좋은 식사, 따뜻한 바람, 가벼운 산책, 신중한 독서, 좋은 음악...
    어찌 보면 칸트의 ‘침묵의 10년’은 니체가 말한 ‘임신부’로서 보낸
    10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기간에 칸트의 생활 방식은 크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매우 절제된 삶, 세심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문과 사교 사이를 확고하게 나누어 버렸고 정확히 자로 잰 듯한 일상을
    살게 된 겁니다. 그는 스스로를 잘 돌보았습니다.
     
    여러 유명 대학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영입 의사를 밝혔을 때에도
    그는 가볍게 산책하고 조용히 연구할 수 있는 생활이 더 소중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철학자입니다.
    덧붙이자면 ‘순수이성비판’을 쓰면서 그는 그 책을 닮아버린 겁니다.
    삶과 철학이 일치한다는 것은 철학자에게는 기본 덕목이지만
    사실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철학자는 아주 드물답니다,
     
    이 고귀하지만 드문 예가 바로 칸트입니다.


    *인문학자 고병권의 글 <책을 닮은 삶-칸트> 중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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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04 10:14




     
     
    아침공감 ^^*

    몇 주 전 나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했다.
    서둘러 아이들을 깨우고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시킨 후
    마당으로 나가보니 아이들은 이웃집 개랑 뒹굴며 한창 노는 중이었다.
     
    개털과 잔디가 묻은 채로 등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장 옷을 갈아입으라고 들여보낸 후, 나는 씩씩거리며 시계만 쳐다보았다.
    마침내 차고에서 자동차를 후진시키고 있을 때
    큰아들 톰이 “가방을 안 가지고 왔어요!”라고 외쳤다.
     
    톰이 가방을 챙겨 나오기까지 나는 또 기다려야 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아 아이들이 학교 앞에 내리자마자 공항으로 달렸고,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탔다.

    그날 밤 돌아오는 비행기는 거센 폭풍을 만났다.
    동체가 요동을 쳤고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혹시나 일이 잘못되는 경우 아이들이 기억할 내 마지막 모습이
    시간에 늦었다고 안달하며 화내는 모습이겠거니 싶어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상황이면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고 할까?
    무사히 착륙한다면 나는 두 번 다시 가족과 그렇게 허둥지둥 헤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고,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이 헤어지는 순간은 늘 진지하다.



    *월간잡지 앰블러에 실린 글 '아침 인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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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6-02-03 08:54




     
     
    아침공감 ^^*

    매사에 적극적인 한 경영자는 특이하게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부러워한다고 말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내비가 보여주는 신속한 ‘오류 수정 능력’ 때문이랍니다.
     
    내비가 이전 경로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안팎인데
    그게 안되는 인간... 답답하다는 겁니다.
    군대에서 하급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시정하겠습니다’ 라지요.
     
    그와 운율을 맞추는 고참들의 맞대응 멘트는
    ‘너는 시정만 하다가 군대생활 마칠 거냐?’ ...구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의 ‘시정’이, 말처럼 쉽다면
    그런 군대식 문답들이 스테디셀러처럼 존재할 리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신속한 오류 수정 능력을 부러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기계이고 대부분의 우리는 사람입니다.
    ‘배째라’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가벼운 반성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
    자학 모드 수준의 시정 강박에까지 이르면 보기에 딱합니다.

    살면서 무엇보다 먼저 시정되어야 할 것은,
    자기를 보듬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하는, ‘자기애’와 관련된 나태함이 아닐까요?
    그런 나태함을 바로 잡는 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시정 강박에 대한 설왕설래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거겠지요.



    *심리상담가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 에서 따온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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