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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건 빛을 낸다 ♡

♡ 행복충만 ♡
  • 2
  • 그리나a(@rlaghkdud)

  • 2
    그리나a (@rlaghkdud)
    2015-11-08 11:05



     
    아침공감

    ‘양기’의 용법은 절기마다 차이가 있다.
    오늘도 나는 남산에 올라갔다 왔다. 그런데 망종때 올라갔던 때와는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망종 때는 무작정 정점, 즉 팔각정에 도달하는데
    집중했었다.

    더운 날씨라 담이 흠뻑 났지만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헌데 입동 무렵에는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방법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땀을 내지 않도록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다.
    땀을 내면 땀구멍으로 귀한 양기가 누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동 무렵에는 과도하게 정점을 향해 달리기보다
    은밀하면서도 뜨겁게 양기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겨울철 양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이렇게 얘기한다.
    “마음속에 무언가 감춘 듯 밖으로 드러내지 말고, 사사로운 마음이 있는 듯하고
    무언가 귀한 것을 얻은 것처럼“ 하라고 말이다.
     
    양기를 지키는데 저렇듯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양기는 곧 생명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은근하고도 은밀한 뜨거움. 이것이 겨울을 여는 우리의 행동강령이다.
    이때는 사생결단을 내어 양기를 길이 보존해야 한다.
    양기는 난로에서 일방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잠깐은 뜨거울지 몰라도 난로 곁을 떠나면 열은 금방 식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 나 자신으로부터 양기를 구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 안에서 은근하고도 은밀하게 그리고
    뜨거운 양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관계는 나와 타자가 다른 두 기운을 교류하는 행위다.
    다른 두 기운의 마주침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생명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서로 따르면서 응하는 이 율동이 잘 이루어지면,
    그 사이에 온기를 가진 생명에너지가 형성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도 한 신체가 될 수 있다는 철학적 사유가
    비로소 실감 난다.




    *김동철, 송혜경이 쓴 <절기 서당>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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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10-31 12:20




     
     
    아침공감 ^^*


    한 중년남자는 아직도,
    아련하게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 여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해 연말,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엉뚱한 사람과 연결이 되었답니다.

    몇 마디 오간 후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대편 여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했다지요.
    얼결에 통화가 끝났는데 그 목소리의 여운이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겁니다.
    아리땁고 엄마性있는 여인의 한 원형으로요.

    한 시인에게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꼭 필요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모르는 사람이 잘못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다가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붙잡고 있을 한 젊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는군요.
    그래서 망설이다가 답장을 썼다지요.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시인은 그 시의 제목을 <동질(同質)>이라고 붙였습니다.

    살면서 그런 떨림과 간곡함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와
    조우(遭遇)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심리상담가 정혜신의 에세이 <동질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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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10-21 21:39




     
    너와 함께 있는 밤.^^*
     
    오늘 밤엔 네 곁에 있고 싶다.
    네 곁에 앉아 말없이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면 네 손을 끌어다 내 볼을 어루만지게 하고 싶다.
     
    너의 손끝에 어린 그리움의 자락이 내 볼에 닿는 순간.
    나는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지 몰라.
    비록 지금 같이 있지는 못해도 나는 너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남남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를 가슴에 안고 싶다.
    내 깊은 가슴 속에 너의 눈길과 그리움으로 싹을 틔우고 싶다.
    내 사랑으로 내 열정으로 너의 사랑을 키우고 싶다.
    밤은 이렇게 흘러가겠지?
    너를 이렇게 영원히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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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10-21 19:01
    아침공감 ^^*


    올렌카에게 무엇보다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톤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주인공 올렌카를
    이렇게 설명한다.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여자 올렌카.
    극단을 꾸려가던 첫 번 째 남편과 살던 시절,
    올렌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한다.
    “연극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훌륭한 거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연극을 통해서만 참된 위안을 느끼고
    교양있는 인도주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야”
    남편을 여의고 목재 상인과 재혼한 뒤에는 역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한다.
     
    “우리 부부는 극장에 가지 않기로 했어.
    우리 같은 근로자가 그런 우스꽝스런 구경을 하고 다닐 시간이 어디 있니?
    또 극장에 다닌다 해서 이로울 것도 없잖아.”
    남편의 위엄 있는 말투까지 닮아버리는 여자가 올렌카였다.

    그러다 목재상 남편이 죽고 수의사인 스미르닌과 사귈 땐
    그에게 건네 들은 지식을 동료 수의자에게 읊고,
    스미르닌의 중학생 아들 사샤에게 모든 애정을 바칠 때에는
    사샤가 학과, 교과서, 교원에 대해 한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올렌카는 참으로 사랑스럽고 미워할 수 없는 여자다.



    * 저술가 박총의 에세이 <내 삶을 바꾼 한 구절>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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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9 07:52
    아침공감 ^^*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희한한 빵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휴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는 주 4일, 목,금,토,일을 영업하고 수요일은 재료를 준비한다.
    직원들은 주5일 근무제, 월, 화, 휴무로 일한다.
    그리고 연중 한 달은 장기휴가다.
    사실 마르크스는 근무시간, 노동일을 줄여야 자본주의의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요컨대 자본주의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킨다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해 생산력이 높아지면 하루 십 수간씩 일하지 않아도
    사회와 생활이 굴러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라 몸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휴일이 많은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지금보다
     
    ‘빵을 더 잘 만들기 위해, 빵을 안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빵에 대해 더 파고들고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빵만 보이고 세상이 안 보이게 되면 어떤 빵을 만들어 제공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음식이나 술, 공예품, 음악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자극을 받아 빵을 만드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고,

    지금보다 나은 재료가 없을지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찾아가고, 다양한 책을 읽을 시간도 필요하다.
    그처럼 빵 이외의 것들과 만나는 시간은,
     
    기술을 부리는 사람으로서의 감성을 연마하고, 삶의 폭과 깊이를 더하며,
    견문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의 움직임을 느끼는 눈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시대가 원하는 빵을 계속 만들기 위해서,
    일과 생활이 하나가 된 삶에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와타나베 이타루의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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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8 16:26

    아침공감  ^^*

    옛날에 어떤 부부가 자식 두기를 고대하다가 아들을 낳았는데
    크기가 방울만 했다.
    밖에 나돌아 다닐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주먹만큼 밖에 안 돼서
    주먹이라 불렸다. 하지만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할 일을 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낚시를 할 때에 주머니 속에 있던 주먹이는
    갑갑해서 슬쩍 밖으로 빠져나왔다.
     
    풀밭을 쏘다니던 주먹이를 누렁소가 풀과 함께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리저리 나뒹굴던 주먹이가 정신을 차려 배를 마구 차고 꼬집자
    소가 놀라서 똥을 싸질렀다. 똥에 묻어 나온 주먹이가 한숨을 돌리려 할 적에
    솔개가 날아와 그를 훌쩍 낚아챘다.
     
    주먹이가 솔개에 채여 날아가면서 세상을 아득히 내려다볼 때
    황조롱이가 솔개에게 달려들어 싸움이 났다.
    그 서슬에 발에서 놓여난 주먹이가 까마득히 떨어지는데
    다행히 땅이 아닌 물에 퐁당 떨어졌다.
    그때 쏘가리가 성큼 헤엄쳐 와서 주먹이를 꿀꺽 삼켰다.

    주먹이는 쏘가리 뱃속에서 숨이 막혀가며 힘껏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렀다.
    마침 낚시로 쏘가리를 낚았던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쏘가리 배를 가르자
    주먹이가 폴짝 튀어나왔다. 주먹이가 그간 겪었던 일을 들려주자
    사람들이 다들 놀라며 즐거워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주먹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크고도 넓은 게 이 세상이다. 하늘이든 땅이든 아득해서 끝이 없다.
    주먹이가 황소한테 먹히고 솔개한테 채였다고 하는데,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우리를 통째로 삼키거나 낚아채려고 하는 무서운 함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중요한 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세상이 크고 무섭다고 숨어서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주먹이가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어둡고 지루하며 답답한 일이다.
    좀 과장하면,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다.
    움직이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은 어떻게든 해법이 있기 마련이다.
    저 주먹이가 거듭 위험에서 헤쳐 나온 것처럼 말이다.
    설령 해법을 못 찾은들 또 어떠랴.
    소신껏 길을 가다 아름답게 부서지는 것 또한 하나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월간 잡지 샘터에 실린, 건국대 국문과 교수 신동흔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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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7 15:21




     



     
    아침공감  ^^*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곯아버린 연필심처럼, 하루 한 번 쯤 가벼워져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누구도 이기지 마라, 누구도 넘어뜨리지 마라
    하루 한 번 문신을 지워낼 듯이 힘을 들여
    안 좋은 일을 지워라
    양팔이 넘칠 것처럼 하루 한 번 다 가져라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행동하라

    하루 한 번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으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펼쳐놓아라
    먼지가 되어 바닥에 있어보라
    하루에 한 번 겨울 텐트에서 두 손으로 감싼 국물처럼 따듯하라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큼 애틋하라
    하루 한 번 내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라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시인 이병률의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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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5 07:59
    아침공감 ^^*

    정(情)이란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고, 인연이 맺어지는 길을 연줄이라고 한다.
    그 연줄, 그러니까 인연의 줄을 이루는 고갱이가 되는 것이 정(情)이 아닐까.
    '정을 붙인다' '정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처럼 정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
    그럼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거나 단절시키는 일종의 접착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는 정을 정나미라고 하는데,
    정나미는 '정(情)'에 '나미'가 붙어서 된 말이고,
    '나미'는 '남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정나미는 '정이 남은 것'이고 '정이 남은 것이 떨어졌다'는 말은
    마음 속에 더 이상 어떤 대상에 달라붙어 있게 할 접착제,
    즉 정의 재고(在庫)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덧정 없다'는 말이 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줄 정이 없다'는 뜻이다. 덧정은 더해지거나 덧붙은 정인데,
    한 곳에 정을 붙이면 그 주변의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정이 덧정이다.
    '색시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하는 노랫말처럼 정은 주고받는 것이다.
    또 '오는 정이 고와야 가는 정이 곱다'는 말처럼
    두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정이다.
     
    그런데 '정을 쏟는다' '정을 기울인다' '정이 흐른다'는 말들을 보면
    정은 대체로 물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은 또 당연히 어떤 깊이를 갖게 된다.
    그래서 '정이 깊어진다'고 말할 수 있고,
    얕은정과 깊은정으로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정은 이렇게 물과 같은 것인데,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따뜻한 물,
    마음의 온천에서 넘쳐흐르는 물이다.
    '따뜻한 인정'이라고 하지 '차가운 인정'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온정(溫情), 열정(熱情) 같은 말들도 본디 정이 따뜻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런데 그 따뜻함이 식어 버리면 말 그대로 냉정(冷情)하게 되고 만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는 말처럼 정에는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있다.
    그런데 미운 정이 지나치면 역정(逆情)이 된다.
    역정은 거꾸로 된 정, 정이 바로 흐르지 않고 거꾸로 흐르게 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가 날 때, 성이 날 때 '역정이 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가 장승욱의 책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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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5 07:57

    아침공감  ^^*

    ‘게으른 놈 음력 7월에 후회한다’는 속담이 있다.
    미루고 미뤄도 심판의 시기가 어김없이 도래하고
    그 앞에서 벌벌 떠는 자신을 마주할 때에야 ‘아차’ 싶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바야흐로 ‘숙살지기’의 때가 온 것이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하고 매서운 기운을 말한다.
    숙살지기의 ‘숙’은 성숙의 ‘숙’과는 다르다.
    열매를 맺기 위해 끙끙거리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성숙의 ‘숙’이라면
    숙살지기의 ‘숙’은 더 이상 끙끙거리지 않는다.
    이제 성장과 성숙을 모두 마치고 불필요한 가지며, 잎도 모두 떨군다.
    열매를 거둬 들일 시간이 온 것이다.

    숙살지기의 ‘숙’은 본래 엄숙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후회가 막심해도 즉, 자신이 맺은 열매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 떠안고 가는 것,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숙살의 ‘숙’이다. 그런 태도야말로 엄숙하다고 할 수 있다.

    가을의 숙살지기를 온몸으로 견디고 나면, 나무든 사람이든 더욱 단단해진다.
    그 힘으로 겨울을 살고 다시 봄을 열 수 있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여물지 못하면 땅에 떨어질 때 박살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열매의 껍질은 단단하기 마련이다.
     
    고로 입추가 지난 후에 처서가 오듯이 성‘숙’한 후에야 엄‘숙’ 할 수 있다.
    가을의 성숙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가 엄숙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때에 이르러 천지가 비로소 숙연해진다.
    그러니 이 기운을 타고 나 역시 엄숙해져야 할 때다. 


    *인문학자 김동길, 송혜경이 쓴 <절기서당>에서 따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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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그리나a (@rlaghkdud)
    2015-09-05 07:53
    아침공감 ^^*

    밀라노 근교의 레코에 사는 렌초와 루치아는 결혼식 날 아침,
    주례를 보기로 한 마을의 신부, 돈 압본디오로부터
    주례를 볼 수 없다는 통고를 받는다.
     
    스페인 귀족이자 이 지역의 영주인 돈 로드리고가
    루치아에게 흑심을 품고 돈 압본디오에게 주례를 서지 말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내막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잠시 돈 로드리고의 마수를 피하기로 하고,
    렌초는 밀라노로 가고, 루치아는 몬차의 수녀원에 숨는다.

    밀라노에 도착한 렌초는 도시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에 휘말려
    누명을 쓴 수배자가 되고, 몬차 수녀원에 숨었던 루치아는
    돈 로드리고의 사주를 받은 산적에게 납치된다.

    평범한 계급의 연인이 세도가의 방해로 혼사 장애를 겪는,
    이처럼 세속적인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 것을 회피한 마을 신부가 있다.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존경받는 강력한 계급에 몸을 맡기는 것이
    그가 성직자를 선택하게 된 충분한 이유인 듯 했다.
    돈 압본디오는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그리고 다소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삶의 방식은 주로 모든 대립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었다.
    예외적인 경우, 두 적수 사이에서 편을 들어야 했을 때,
    그는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 있었는데,
    다른 편에게 자신은,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본 압본디오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 군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와 정반대 편에 있는 페데리고 보로메오 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를 납치한 산적과, 맨몸으로 만난다.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책 <약혼자들>에 관한 내용이구요.
    소설가 장정일씨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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