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아 있는건 빛을 낸다 ♡
♡ 행복충만 ♡-
2
-
그리나a(@rlaghkdud)
- 15 팔로워
- 3 팔로잉
- 소속 방송국 없음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6 10:12아침공감 ^^*
매력적인 책 <천천히 읽기를 권함>의 저자 야마무라 오사무는
고다 로한이라는 사람의 <노력론>을 인용해 이 점을 짚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고 신문을 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사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또 평생 감자가 익었는지 어땠는지도 모를 만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채로
끝나버린다.
식사 시간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밥이 된지 무른지, 국이 짠지 싱거운지 알맞게 된 건지,
무슨 생선을 조렸는지, 신선한지 묵은 건지, 상해가는지,
그런 일들이 모두 명약관화하게 마음에 비치듯 온 마음으로
식사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아케치 미쓰히데가 잎으로 싼 찹쌀떡을
잎도 벗기지 않고 먹어버린 일 같은 것은,
바로 미쓰히데가 오랫동안 천하를 거느릴 수 없음을 말해준다고 평한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의 말대로 “분명히 먹는 것과 읽는 것은 서로 많이 닮았다”
식사가 영양 섭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듯 독서도 지식 섭취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책갈피에서 삶의 갈피를 만지려면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다.
속독 대신 완독도 좋지만, 아예 책을 덮는 휴독도 필요하다.
장 그르니에도 이를 <일상적인 삶>에서 확인해준다.
그는 독서 자체가 정신에 때를 끼게 하는 행위이므로
가끔 독서를 멈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 휴독이 질 좋은 이태리타월의 역할을 해줌은 물론이다.
심지어 화가 드가는 두 시간 정도 책을 덮고 침묵하지 않으면
아무 발전이 없다고까지 했다.
애착을 갖는 일일수록 단절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독서에도 ‘안식’의 계명이 유효함을 발견한다.
*저술가 박총의 에세이 <책 읽기의 회심>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6 10:11아침공감 ^^*
병원 대기실에서의 일니다.
누가 아파서 왔는지 올망졸망한 세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는 울고 둘째는 칭얼대고 큰 놈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누구라도 그런 경우를 당한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드디어 옆에 있던 젊은 여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면서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여인은 핸드백을 열더니 조그만 종이쪽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쪽지를 펴보더니 금방 얼굴이 활짝 개이면서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저 연인의 얼굴을 단번에 바꿔놓는 것일까,
하도 신기하고 궁금해서 다가가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여인이 보여준 것은 한 신문에서 오려낸 쪽지였다.
그것은 세계적인 기록만을 뽑아 모은 기네스북에서 따온 기사로
한 여자가 쌍둥이를 16번, 세 쌍둥이를 7번, 네 쌍둥이를 4번,
모두 69명의 아이를 낳아 세계 최고의 출산 기록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폭발 직전의 여인이 웃음을 되찾은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면
무엇인가 하나씩 그런 것을 생각해보고 웃음을 찾을 수 있는 지혜,
그녀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판인 고 김재순의 책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에서 따온 글입니다.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4 15:17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
그리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4 08:43아침공감 ^^*
천렵
이문재
문자메시지 다들 받았을 줄 안다.
다음 주말 천렵이다.
솥단지 대신 코펠에 부탄가스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꿈은 바랬지만
초록들이 적극 동참하는 계곡으로 간다.
혈전처럼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기억과
벌겋게 부어 있는 오장육부를 꺼내
흐르는 물에 씻는다 바위 위에 널어놓는다.
쏘가리 열목어 쉬리 없어도 괜찮다.
몇 마리 송사리 비린내만으로도 흔쾌하다.
빈 몸으로 와 맨몸으로 만난다.
너는 오늘 남편도 가장도 아니다.
우리는 오늘 갑과 을이 아니다.
모든 계약과 마감에 괄호를 쳐놓는다.
불룩해진 아랫배 마음대로 보여준다.
오랜만에 괄약근에 힘주며 물장구를 친다.
나이보다 많은 후회들을 바싹 말린다.
아랫도리까지 벗어버리고 거풍한다.
우리들 몸에도 엽록체가 있는 것 같다.
단순하지만 명쾌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비현실적인 것들
파 마늘 고추와 함께 집어넣는다.
너는 또 그 노래를 부르는다.
너는 또 고개를 외로 꺾고 꺼억꺼억 웃음 웃는다.
기어코 죽은 친구의 이름을 외치는다.
오랜만에 너는 너로 돌아가 있는다.
좋아 보인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름산 여름계곡 여름 지난 청춘들
제대로 충전을 해보지 못한 상한 충전지들
알코올의 힘으로 기억의 힘으로 젊어져 박박 우겨댄다.
문자메시지 다들 받았을 줄 안다.
여름 천렵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이문재시집 <지금 여기가 맨앞>에서 가져왔습니다.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4 08:39아침공감 ^^*
‘침대 반경 50미터 생활자’ 사노 요코의 하루는
마음먹고 또 마음먹어서 겨우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냉장고 속 자투리 재료를 몽땅 냄비에 넣고 때로는 맛있는,
때로는 말 그대로 토할 것처럼 맛없는 요리를 한다.
가끔은 아침밥을 먹으러 카페에 가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고 반드시 우스운 점을 찾아내
“저런 걸 볼 수 있다니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호쾌하게 웃는다.
밤새도록 한국 드라마를 보다 턱이 틀어진다.
엄청난 양의 DVD를 사 모으며 ‘뒤늦게’ 재산을 탕진한다.
그러고는 ‘대체 난 어떤 할머니로 보일까’라며 풀이 죽는다.
어느덧 〈겨울연가〉 욘사마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이섬 가로수 길을 걷고 있다.
욘사마가 묵었던 호텔방을 예약하곤 뿌듯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가을동화〉 원빈, 〈올인〉 이병헌, 〈호텔리어〉 김승우…
끊임없이 새롭게 사랑에 빠진다.
암이라고? 2년 뒤면 죽는다고?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 싶다’며 쇼핑에 나선다.
예쁜 부츠를 충동구매하고 마음에 드는 잠옷을 잔뜩 사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대체 난 어떤 할머니로 보일까’라며 풀이 죽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상큼한 녹색 재규어로 차를 바꾸고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 한탄하기도 한다.
산다는 것의 생생함, 추함, 괴로움을 찬찬히 바라보다 이내 울적해지고,
우울해하는 것에 질려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친구들을 불러
‘치매 예방’ 마작을 즐긴다.
*일본의 동화작가인 사노 요코의 책 <사는 게 뭐라고>에 나오는
사노 요코 할머니의 하루를 옮겨적어 봤습니다.
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4 08:36아침공감 ^^*
내가 기억하는 수박 맛은 좀 뜨뜻하다.
수박을 먹은 최초의 기억은 국민학교 4학년 때쯤이다.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아마 그 전에도 나는 여러 번 수박을 먹지 않았을까.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내가 내 얼굴보다 커 보이는 수박 한 조각을
양손으로 들고 있는 흑백사진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 먹은 수박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어쩌면 사진만 찍고 수박은 먹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비합리적 의심이 든다.
“따고 배짱”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도박과 관련된 말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니까 아직 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돈을 가장 많이 딴 사람이
무슨 급한 일을 핑계대면서 갑자기 그만하겠다고 할 때
그 판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돈을 딴 사람에게 느끼는
당혹감과 배신감의 표현이 바로 “따고 배짱이냐?”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기원을 생각해본다.
그 말은 어쩌면 수박과 관련된 말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수박을 팔 때 수박장수가 수박에 삼각형으로 솜씨 좋게 칼집을 낸 다음,
칼끝으로 쿡 찍어 삼각뿔 모양의 수박 조각을 들어 올리며 맛보기를 권하곤 했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맛만 한번 보라면서.
수박장수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 수박 한 조각이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지만 한 입 먹고 나면
안 사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따버린 수박은 다시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안 사고 그냥 가는 사람이 있다면 수박 장수로부터
“따고 배짱이냐”라는 소리를 뒤통수로 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중앙선데이에 실린 <김상득의 행복어사전>에서 따온 글이었습니다.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2 14:43
안녕하세요 ..
오신님들 늘 행복 하세요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
그리고
사랑합니다 .^^*
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2 09:32아침공감 ^^*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루는
선풍기 -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시인 김영승의 시 <반성.743>중에서 따온 부분입니다.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20 15:01아침공감 ^^*
수많은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왜 하나같이 집을 나서 길을 떠나는 걸까?
길 떠나는 주인공들은 이제 막 자아가 생겨나고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소년소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오래된 이야기들은 소년들의 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여우 누이, 주먹이, 구렁덩덩신선비, 세상에서 제일 큰 참깨나무, 바리데기,
장화홍련전, 심청전, 장자못 전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 등
우리 민담, 민간 신화, 전설부터 백설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잭과 콩나무, 장화 신은 고양이,
흰눈이와 빨간장미 등 서양의 민담과 동화에 이르기까지,
옛이야기는 ‘길 떠남’이 주제였다.
옛이야기 속 길 떠난 소년들의 종횡무진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한 독립과 성장이란 무엇인지,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는 왜 떠나야 하는지, 어떻게 떠나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
옛이야기들은 때로 세상과 삶에 대한 오싹하면서도 경이로운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우리의 미래에 귀 기울이면
옛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비밀을 들려준다.
“집을 떠나라, 고개를 넘어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먹을 복은 타고난다, 그러니 믿고 움직여라.”
“남의 삶을 살지 말고 자기 삶을 살아라.”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끌어안는 게 답이다.”
‘시작할 권리’를 잃어버린 이 시대 청년들에게,
그리고 한 번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본 적 없는 모든 이들에게
옛이야기는 엄중한 경고, 통쾌한 제안, 대범한 지혜를 전한다.
*구비문학가 신동흔의 책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책소개글에서 따온 글입니다.
댓글 0
-
2
그리나a (@rlaghkdud)2015-08-18 07:43아침공감 ^^*
예전에 어느 항공사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교 길에 집으로 뛰어가는 광경을 담은
그 광고의 카피는 이랬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는 걸어서 가지만 집으로 갈 때는 뛰어갑니다.
그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야구는 가정적인 운동경기다. 좀 엉뚱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야구는 집을 떠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라고.
집을 나가려는 사람과 못 나가게 막는 사람, 공격과 수비는 그렇게 나뉜다.
점수를 내기 위해 타자는 집을 나가야 한다.
안타를 치든 볼을 잘 가려 포볼을 얻든 투수가 던진 공을 몸으로 맞든
어떻게든 집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집 나간 사람이 1루와 2루를 지나고 3루를 돌아 홈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점수를 얻는 경기다.
홈런도 그렇다. 오른쪽 담장을 넘기든 왼쪽 담장을 넘기든
비거리가 얼마든 어쨌든 타자가 한번에 1루와 2루와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는 것을 말한다.
홈으로, 집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경기.
관중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고 환호하는 경기.
야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집을 향해 달리면서 남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종일 타석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헛스윙, 어림없는 파울,
평범한 내야 땅볼 같은 것만 친 타자였다 해도,
어쩌다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춘 타구는 내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병살타가 되고 마는 그런 타자였다 해도, 절망하기엔 이르다.
경기가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니까.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 집이 크든 작든, 방이 다섯 개든 하나든, 전세든 월세든,
그 집으로 뛰어간다면 우리는 끝내 홈런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남자는 내려야 할 정류소가 아직 멀었는데 벌써 일어선다.
문 앞에 서서 차문이 열리길 초조하게 기다린다.
드디어 차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남자도,
쉰 살이 넘은 남자도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집으로 들어서는 남자의 귀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응원의 환호가 들린다.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홈런이다.
* 에세이스트 이상득의 글 ‘저녁밥이 있는 삶’ 이었습니다.댓글 0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