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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2:35((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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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장군들'과 '윤석열의 장군들'의 공통점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26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4.12.21.
하지만 서독 법원들은 탈영병에게 사형을 내리곤 했던 나치 판사들에 대해선 면죄부를 안겼다.
'당시의 실정법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이라는 논리에서였다.
패전 뒤 서독의 탈나치화 과정에서 나온 어긋나는 판결들은 두고두고 논란을 불렀다(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혹시나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내가 독일인이라는 게 부끄럽소"
지난 글에서 '히틀러의 장군들' 얘기를 했었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을 2개월 앞둔 1941년 3월30일 자신의 집무실인 베를린 제국수상청에 250명쯤의 장군들을 불러 모았다.
그 자리에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포함한 적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을 주문했다. 동부전선에서 300만 독일국방군을 이끌었던 '히틀러의 장군들'은 주군이 바라는 대로 '처형'을 강조하는 훈시를 잇달아 내려 보냈다.
에리히 회프너(동부전선에 투입된 제4기갑부대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의 명령을 들어보자.
"모든 전투는 적을 가차 없이 그리고 완전히 절멸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수행돼야 한다. 특히 오늘날 러시아 볼셰비즘 체제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볼프람 베테, , 미지북스, 2011, 135쪽).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민간인과 소련군 포로들을 집단학살할 때 모든 독일 젊은이들이 손에 피를 묻히진 않았다.
탈영병은 저마다 다른 이유와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히틀러의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범죄의 하수인이 되길 거부하는 마음들을 지녔을 것이다.
병사들뿐 아니다. 지휘관들도 그랬다.
한 영관급 장교가 독일 점령지 폴란드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 하나를 읽어보자.
"내가 독일인이라는 게 부끄럽소.
소수의 독일인이 살인․방화․약탈을 통해 우리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소.
우리가 그들을 당장 멈추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독일인 전체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오. 이 범죄는 아마도 상부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행해지고 있는 것 같소](볼프람 베테, 143-144쪽).
위에 옮긴 글은 헬무트 슈티프(독일 육군 참모부 작전국 제3과장)가 바르샤바에서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독일이 패전 위기에 몰리자, 일부 지휘관들은 히틀러를 암살함으로써 뒤늦게나마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 했다.
1944년 7월 동프로이센 라슈텐부르크(지금은 폴란드 영토)의 '늑대소굴'(Wolfschanze)이라 일컬어지던 군 최고 지휘소에서 시한폭탄으로 히틀러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위 편지를 썼던 슈티프도 그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처형됐다.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른 장군들
위에서 보듯이, 독일국방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나치 학살을 지시 또는 방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폴란드 제8군사령군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장군(대장)은 나치친위대 특무대원들의 폴란드 민간인 학살을 못 마땅하게 여겼고, 육군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취 장군에게 거듭 항의했다.
비무장 민간인을 죽여선 안 된다는 전쟁윤리적인 측면보다는 엄정해야 할 군 기강을 흩트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항의 이유였다.
바로 그 때문에 블라스코비츠 장군은 히틀러로부터 신임을 잃었다.
전쟁기간 내내 일선부대 지휘관으로 있긴 했지만 육군 원수로 진급하지 못했다.
독일 패전 뒤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재판을 받다가 1948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 초기에 자..살한 블라스코비츠 대장은 법정에서 동료들의 전쟁범죄를 비난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다만 스스로 죽음으로써 독일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사죄를 했다고 짐작된다.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른 장군은 또 있다.
육군 원수 게오르크 폰 퀴흘러는 동부전선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했다가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44년 1월 북부집단군 사령관을 끝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퀴흘러는 이렇다 할 군 보직을 맡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집단학살을 못 마땅하게 여긴 장군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장군들은 침묵하면서 침략전쟁에 뛰어들었다.
역사가들은 지난날 독일국방군(Wehrmacht)의 엘리트였던 이들을 가리켜 '히틀러의 장군들'이란 집합명칭을 붙였다.
오늘의 독일연방군(Bundeswehr) 병사들이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
그 장군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계급이 고작 상병이었던 히틀러를 마음속으론 '꼬마 하사'(kleiner Gefreiter)로 낮춰 보면서도, 군 통수권을 지닌 그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이를 두고 독일 역사가 볼프람 베테(프라이부르크대, 전쟁사)는 "독일 장군들은 히틀러와 한통속이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의 장군들'은 나치 전쟁범죄의 공범자(부역자)가 됐다.
12.3 망상(妄想) 함께 한 '윤석열의 장군들'
안타깝게도 12.3 친위 쿠데타를 계기로 21세기 한국에서도 '히틀러의 장군들'을 떠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12.3 '내란 수괴'로 탄핵된 윤석열과 그의 충암고 1년 선배 김용현 국방장관, 이 두 주모자로부터 친위 쿠데타 계획을 들었던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경찰청장 등이다.
군복을 벗은 전 정보사령관도 '윤석열의 장군들'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롯데리아에서 현직 후배들과 햄버거를 함께 먹으며 내란 모의를 했다고 알려진다. 영화 같은 얘기다.
이들 '윤석열의 장군들'은 주군의 뜬금없는 내란 계획을 처음부터 함께 했다.
"그건 아니지요"라며 막아서기는커녕 순순히 따랐다.
끝내는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법정에 서야할 운명이다.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던 소수의 독일 장군들처럼, 윤석열의 심기를 건드릴 각오를 하고 좀 더 강경하게 그의 망상(妄想)을 지적하고 나섰더라면?
그들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내란 공모자'로서의 어려운 처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지금 대한민국은 긴장 상태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어떻게 결론 내릴지 시민들의 눈길이 쏠려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은 12.3 폭거를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만,
히틀러나 윤석열처럼 폭력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경우는 어떠할까.
히틀러처럼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전쟁범죄적 명령, 또는 윤석열처럼 국회의원들을 붙잡아 가두라는 반민주적 명령이 '고도의 정치행위'이며 따라서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은 앞에서 살펴본 '라드브루흐 공식'에 비춰볼 때 그야말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히틀러는 지지율이라도 높았지만...
옛성현의 말씀을 되새겨 보며 글을 마쳐야겠다.
2,400년 전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 생존 추정)는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 백성을 잃은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라 했다[맹자집주(孟子集註) 이루 상(離婁 上) 9].
맹자의 깊은 뜻을 감히 풀어쓴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에 주어진 기본적인 덕목이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은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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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2 02:34((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글))
[A]
'히틀러의 장군들'과 '윤석열의 장군들'의 공통점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26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4.12.21.
12월3일 실패로 끝난 친위 쿠데타(내란) 음모에 동원된 군인이 1500명쯤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국회로 들어간 인원은 절반인 750명 쯤이다.
그날 병사들은 출동 명령에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 여기고 서둘러 총기를 챙겨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헬기를 타고 여의도 국회 마당 위에 들어선 순간, 이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알려진다.
국가를 지키려는 일인 줄 알았더니, 민주주의 파괴범이자 내란의 하수인이자 부역자로 몰릴 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상관의 출동 명령에 따라 나선 병사들을 탓할 수는 없다.
책임은 이 젊은이들을 이용해 무한 권력을 틀어쥐려던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그리고 이들에 두 손 모아 고분고분했던 군경 지휘관들에게 있다.
만에 하나 12.3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그 지휘관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즈음 우리 귀에 들려오는 민망스런 거짓말과 변명(TV를 보고 알았다는 둥, 무릎을 꿇고 말리려 했다는 둥)보다는, "위기에 빠진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대의를 따라 함께 나섰다"는 뻔한 허튼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들은 왜 '당나라 군대'가 됐나
12.3 쿠데타 과정에서 일부 병사들은 태업(怠業) 비슷한 행동을 했다고 알려진다.
동작 빠르게 움직이질 않고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마냥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막아서는 시민들을 군홧발로 차기는커녕 윽박지르지 않았다.
그 무렵 윤석열은 특전사령관에게 "의결 정족수가 차지 않은 것 같다. 문을 빨리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의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데리고 나와라"고 거듭 재촉했다. 끝내 여의도 국회 유리창이 깨지긴 했지만, 단 한발의 총성도 없었다.
병사들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처럼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
시민들과 의원들이 막아섰지만, 폭력적인 행동을 삼갔다.
권력자가 술기운을 빌려 저지른 친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내란 수괴'란 오명이 따라붙었다.
상황이 이렇게 마무리된 데엔 이름 모를 '민주 병사들'의 숨은 노력이 한몫했다고 보인다.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나온 뒤 여의도를 물러가면서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던 어느 병사의 뒷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21세기 한국의 희망을 읽었다.
아울러 그 병사의 몸짓에서 군사 쿠데타는 구시대 유물이며 한국에선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 "나는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겠다"며 아예 처음부터 출동을 거부한 지휘관이나 병사들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항명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그들은 '명령 불복종죄'로 군법재판에 넘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불명예 제대' 등 이런저런 불이익이 따랐을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5.16 쿠데타나 12.12 쿠데타 때를 돌아보면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의 심기를 거슬려 고초를 겪은 군 지휘관들이 한둘 아니다.
쿠데타 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기면 관군(官軍)이고 지면 반란군'이 되는 험악한 시절이었다.
탈영병이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
12.3 친위 쿠데타 당시 출동 명령을 듣는 병사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못가겠다"는 말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디로 무엇 때문에 출동하는지 모르고 나섰기 때문이다.
테러나 대북 관련 긴급사항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여의도 국회의사당 마당에 내리고 주어진 임무가 반민주적임이 분명히 드러나자, 탈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병사들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 전쟁에서든 젊은 병사들은 전선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또래 젊은이들을 겨냥해 죽기 살기로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총을 내려놓고 탈영할 것을 꿈꾸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탈영했던 독일군 사병 요제프 라칭거가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1927-2022, 교황 재임 2005-2013)다.
나치 정권에 반감을 지녔던 청년 라칭거는 1945년 4월 독일군 방공포부대에서 도망쳤다. 그 뒤 곧 미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됐지만 목숨은 건졌다.
독일군 헌병에게 붙잡혔다면? 처형됐을 것이 뻔하다.
1943년 전황이 기울면서 탈영병들이 늘어나자, 나치가 만든 공포의 집단이 독일국방군 야전헌병(SA-Feldpolizei, 약칭 Fepo)이다.
이들은 전선 후방을 돌아다니며 탈영병이나 낙오병들이 눈에 띄는 대로 붙잡아 모조리 처형하는 것으로 악명을 얻었다.
나치 독일의 침략 전쟁에는 모두 1,800만 명의 독일인이 군인으로 참전했다.
이 가운데 90%쯤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총을 쥔 징집병이었다.
이들 가운데 탈영을 꾀한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탈영병 처리는 냉혹했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최근작(Blood and Ruins, 2021)에 따르면,
독일 육군의 경우 탈영병으로 붙잡혀 처형된 숫자가 3만 5,000명에 이른다(리처드 오버리, , 책과함께, 1161쪽).
▲ 1941년 소련 침공 무렵의 히틀러와 그의 장군들. 유럽을 지배하려는 히틀러의 망상은 독일의 패망과 아울러 많은 유럽인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위키미디어
'법의 탈 쓴 불법'과 라드브루흐 공식
히틀러의 잔혹한 전쟁 수행방식을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 탈영을 한 병사의 죽음은 골수 나치 말고는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법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1878-1949)는 정의롭지 못한 법을 거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sche Formel)에 따르면 '실정법'이 정의롭지 못할 경우 그 명령은 '법의 탈을 쓴 불법'이다.
다시 말해서 '극도로 부정의한 실정법'은 법이 아니며. 그에 따른 처벌은 '법률적 불법'이다(지난날 박정희와 전두환의 잇단 긴급조치와 포고령들이 그러했다).
라드부르흐는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사실상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법과 정의 사이의 충돌이, 법률이 결함 있는 법으로 간주되어 정의에 자리를 내줘야 할 만큼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면, 정의가 실정법에 우선한다'고 했다.
나치 독일의 잘못된 법 집행을 비판적으로 다뤄온 연구자 헤린더 파우워-스투더(오스트리아 빈대학, 윤리학․정치철학)가 꼽은 사례 글을 보자.
[법무부 서기였던 푸트파르켄은 괴히트라는 한 상인이 공중화장실 벽에 '히틀러는 대량학살자이며 전쟁은 그의 책임'이라는 문구를 써놓았다며 나치 당국에 그를 신고했다.
괴히트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했다.
종전 뒤 푸트파르켄은 튀링겐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살인의 공범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라드부르후는 이 사건에서 정의가 실정법을 대체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헤린더 파우어-스투더, , 진실의힘, 2024, 264쪽).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따르면,
실제로 전후에 독일연방(서독) 법원은 지난 나치 정권 아래서 탈영병을 무조건 사살해도 좋다는 독일국방부의 명령이 잘못 됐다고 못 박았다.
판결문엔 '라드브루흐 공식'에서 빌려온 문구가 보인다.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서, 법률이 '부정의한 법'으로 정의에 양보해야 하는 경우 법률은 한계에 직면한다. 그 법률은 법적 성격을 상실하며 전혀 법이 아니다](이재승, , 앨피, 2010,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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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5:23((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좋은 글))
법과 말과 총과 쿠데타 [아침햇발]
이재성 기자
수정 2024-12-19
윤석열과 전두환은 정치에 등판하는 모습부터 닮았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지 석달이 지난 1980년 8월23일, 조선일보가 1면과 3면을 털어 보도한 ‘전두환 육군대장 전역식’ 기사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한자 제목으로 박제되어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가 돌아가며 윤비어천가를 바쳤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진, 운전기사와 순댓국 먹는 모습 등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기사가 많았다.
1980년의 한국과 2021년의 한국은 거의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비정치인 출신 유력 대권주자를 향한 언론의 아부와 굴종에는 시공을 초월한 유사성이 있다.
정권을 잡는 과정도 비슷했다.
전두환이 군대를 이용했듯이, 윤석열은 검찰을 이용했다.
전두환의 희생양이 광주였다면, 윤석열의 희생양은 조국이었다.
정치의 영역에 검찰이 난입하여 법과 도덕을 뒤섞었고, 봉건시대 같은 연좌제로 멸문지화 수준의 처벌을 했다.
조국 일가가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남용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검찰을 정치에 동원하는 걸 방치한 그 순간부터 윤석열의 쿠데타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윤석열은 오래전부터 쿠데타를 꿈꾸었던 게 아닐까.
검찰총장 시절 ‘내가 만일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부터, 대선 후보로서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발언까지, 전두환과 쿠데타를 흠모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말도, 이제 와 복기해보면, 본인의 권력은 영구권력일 거라고 믿었던 증거로 읽힌다.
윤석열에게 빙의해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전두환의 총과 윤석열의 법은 물리력의 차이가 있을 뿐,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육사 하나회 척결인데,
하나회라는 권력의 빈자리를 검찰이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이 지배하던 사회가 가고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자 세상은 검찰의 것이 되었다. 자신들의 비리는 감추고 정적은 제거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법만큼 중요한 것이 말이다.
윤석열은 법에 이어 말까지 장악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는 레토릭은 민주당 정부에서만 한시적으로 작동하는 기만적인 눈속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의 언론은 찬양했다.
‘바이든’이라고 말했지만 ‘날리면’이라고 우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보도를 한 문화방송(MBC)을 징계했다.
계엄이 성공하고 합동수사본부가 수사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서초동 편집국장’ 때 그랬던 것처럼, 언론을 내용적으로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윤석열은 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다.
항명하면 자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적이 별로 없는 이유다.
법과 말에 이어 총까지 가졌다고 생각하는 폭군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 본인과 아내의 범죄 혐의에 점점 조여오는 수사의 압박에서 벗어날 길은 쿠데타를 통한 영구집권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12·3 내란사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알코올 의존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 포악한 성향과 망상 같은 정신병리학적 접근이다.
윤석열이 대학 입학 이후 지적 성장을 멈춘 상태이고, 제멋대로 날뛰는 폭군이었던 사실은 분명해 보이지만,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는 건 사태의 본질에 관한 인식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정신병리학적 결함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폭주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구조적 결함의 핵심에 검찰과 언론이 있다.
검찰은 정권과 조직을 동일시하며 국민의힘 서초동 지부처럼 행동했고,
언론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던 윤석열을 칭송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국가적 폭력을 1인 체제의 전유물인 양 자의적으로 사용한 검찰이 있었기에,
언론이 그런 검찰과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했기에,
윤석열이라는 광인의 시대착오적 쿠데타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민주주의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언제든 괴물이 나타나 한입에 먹어치울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3988.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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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5:00[사설] 내란범 돕겠다는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 안 할 이유 있나
민중의소리
발행 2024-12-20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양곡법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탄핵민심을 따르지 않고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내란수괴 윤석열의 길을 쫒은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내란공범 피의자인 한 권한대행을 탄핵소추 하는 대신 국정운영 협의 당사자로 치켜세워준 것은 혼란에 빠진 나라와 국민의 삶을 빨리 어루만져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권한대행은 이런 야당 대표와 국민의 염원을 배신하고 거부권으로 응대했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자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계속 앉혀놔야 하는가.
더 큰 문제는 김건희특검, 내란특검에 대해 거부권 행사 여부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권한대행은 두 법안 공포시한이 1월 1일인 만큼 "12월31일 마지막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중복, 혼선, 경쟁, 갈등 문제에 더해 내란 관련자들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총리실이 특검법에 대한 결정을 연말까지 미루겠다는 입장은 내란방조 행위와 다름없다.
윤석열은 지금 헌법재판소의 탄핵 관련 서류 수령을 3일째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고 절차적 시빗거리를 만들고 있다. 모두 시간을 끌어 보자는 속셈이 뻔하다.
그 안에 또 무슨 흉계가 숨어있을지 알 수 없다.
윤석열과 내란범들은 비상계엄의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 북한 군부를 자극하여 전쟁을 일으키려던 무시무시한 범죄자들이다.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 민주노총 위원장, 심지어 판결 내용이 맘에 안 든다고 현직 부장판사를 체포해서 불법 감금을 시도했던 흉폭한 자들이다.
이런 미치광이 독재자와 그 일당의 내란 실행을 말리지도 못한 국무총리의 행태는 명백한 범죄다.
마치 뇌가 없는 사람처럼 시키는 대로 일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하명이나 하던 것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그런데 이런 총리가 무슨 낯으로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민주당은 12월 31일 두 개의 특검법 공포 여부를 보면서 탄핵소추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계속되는 탄핵안 남발이라는 여당의 비판도 신경 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내란 실패에 내전으로 만회하려는 무도한 독재자를 제압하기 위해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가 우선인 때다.
한 권한대행이 만약 조금이라도 윤석열의 대통령직 복귀를 방조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그의 뜻을 받들려는 모습을 드러낸다면 국민은 즉각적인 탄핵을 하지 못한 야당에게 화살을 돌릴 수 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이 정치의 기술이라는 것을 국민들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재지 않고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로 돌아가길 바란다.
내란공범 한덕수 권한대행을 당장 탄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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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3:56국회를 탱크로 밀어버리라는 김용현, 제2의 차지철인가?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12/20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차지철이라는 인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5.16 군사 반란 때 박정희 바로 옆에서 경호를 담당했던 대위 출신이다.
그는 나중에 박정희의 경호실장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쪼인트’를 깠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박정희의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은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나자 “캄보디아는 국민 400만 명을 죽였는데, 우리도 100~200만쯤 죽여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하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본 것이다.
그 전통 아닌 전통을 전두환에 이어 윤석열이 계승했다.
제2의 차지철 탄생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 차지철을 능가하는 사람이 탄생했으니 그가 바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그는 삼성 장군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관을 역임하고 더 이상 승진을 하지 못해 늘 문재인 대통령을 원망했다고 한다.
김용현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자 경호처장이 되어 그 유명한 입틀막 사건을 네 번이나 일으켰다.
김용현은 매사 고압적이고 국회에 나와서도 의원들을 노려보기도 하였다.
그때 아마 “니들은 계엄령 선포되면 다 죽어”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김용현 계엄날 “탱크로 밀어버려” 발언 파장
김용현은 계엄날 오찬에서 “국회를 탱크로 밀어버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현은 12월 3일 11시 40분 국방컨벤션센터 오찬에서 '국회가 국방예산으로 장난질인데, 탱크로 확 밀어버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이어 "해당 오찬에 참석한 국방부 정책차장인 방정환 준장이 당일 오후에 휴가를 내고 정보사 판교사무실로 이동했다"며
"방 준장은 물론 휴가를 승인한 조창래 국방부 정책실장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사단은 또 "3일 새벽 김용현을 관저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양0열 씨라는 민간인"이라며 이와 관련한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계엄선포 당일 오후 7시부터 윤석열 주재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안가에서 만찬을 할 때 김용현 전 장관과 박안수 육군총장(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이 동석했다고 주장하면서
"안가를 관리하는 박종준 경호처장 등을 즉각 소환해 이 모임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사단은 "대규모로 군 고위 현역 직위자들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국민께 사실을 알려드릴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란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핵심 직위자들이 아직도 현직에 머물러 있다“며 이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민주 부승찬, 계엄 전 여인형 문자 공개…"곧 세상 바뀔 것"
한편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상계엄 전인 지난달 25일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곧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 의원은 지난 16일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해 "계엄이 내려지기 전 받은 문자라 아직도 저장하고 있다"며 이 메시지를 공개했다.
부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방첩사의 민간인 사찰을 막고 방첩사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하며 여 사령관과 충돌했던 시기였다"며 "문자를 보고 황당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섬뜩하다"고 말했다.
여인형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방첩사 요원들을 동원해 주요 인사 체포와 선관위 전산 서버 확보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APEC 정상회의 전에 계엄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말은 새빨간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번 내란은 충앙고 출신들이 주도
주지하다시피 윤석열은 충암고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윤석열은 집권하자 충암고 출신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충암고 1년 후배인 이상민을 행안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을 장악했다.
그때 초대 경찰국장으로 김순호가 임명되었는데, 그는 프락치로 활동하며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데 앞장서 경찰로 특채되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국방대 총장으로 영전했다가 은퇴하였다.
김용현 역시 충암고 출신으로 윤석열 정권의 실세로 활약했다.
그는 경호처장에 이어 국방부 장관이 되었는데, 그때 아마 계엄령을 염두해 둔 것 같다.
이번 내란 사건의 행동대장인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다른 사령관들은 내란에 사과하고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데 유독 여인형만 아직도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
사무실에 전두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들의 롤모델은 전두환이었던 셈이다.
충암고 출신이 상당수 내란에 연루되자 충암고 후배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다닌다고 한다.
급기야 충암고는 교복까지 자율화했다.
한편 윤석열이 졸업한 서울대도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로 윤석열을 꼽았다.
결국 윤석열이 군대, 경찰, 모교까지 다 망쳐놓은 셈이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법기술을 부리는 모습이 불쌍해 보인다.
그는 곧 김건희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윤석열은 제2의 전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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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3:50정치의 언어학- ‘체포’하지 않고 ‘끄집어낼’ 수 있을까?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12/20
윤석열과 40년 지기라는 석동현 변호사가 윤석열 변호인단에 들어가 한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석동현은 윤석열의 내란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행위지 내란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전쟁, 전시, 비상상황이라는 합당한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할 때는 여야가 조금 갈등했을 뿐 전쟁도 전시도 비상시기도 아니었다.
따라서 계엄령 발포의 요건을 어겼다.
또한 계엄령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하고 국회에 통보해야 하는데, 윤석열은 국무회의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심지어 회의록도 없었으며, 국회에 통보하지 않았다.
그토록 절차를 강조하던 윤석열이 계엄령 절차도 지키지 않고
엿장수 마음대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
석동현 변호사는 윤석열이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말 중에는 체포란 말은 없다.
그러나 곽종근 특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이 “아직 계엄해제가 안 된 것 같으니 끄집어 내라”고 한 윤석열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석동현 변호사에게 묻자.
체포하지 않고 끄집어 낼 수 있는가?
아무리 계엄령이라도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하려는 것 자체가 위헌이다.
조폭이 부하에게 상대를 “없애버려”했는데, 나중에 “없애버리라 했지 살인하라고는 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법정에서 그걸 인정해 주겠는가?
없애버리다가 죽여버려와 동의어듯 끄집어내라와 체포하라는 동의어다.
실제로 체포조가 운영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보사에서 북파공작원까지 동원해 이재명 대표,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려 했다.
심지어 민간인인 김어준까지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래도 그 말을 할 수 있는가?
부산 엘시티 사건 재수사해야
따라서 법정에 가서 석동현이 같은 논리를 펴면 여지없이 탄핵될 것이다.
석동현도 검사 출신이므로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과의 우정을 생각해 무리수를 둔 것 같은데,
그러다가 인생 망치는 수가 있다.
석동현은 부산 엘시티 사건과 연루되었는데 묘하게 유야무야되었다.
따라서 새 정권이 들어서면 부산 엘시티 사건은 반드시 재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현 부산시장인 박형준은 엘시티 사건은 물론 국정원 사찰 사주에도 연루되었으나 역시 덮여졌다. 대장동 수사 반만 해도 엘시티 비리는 모두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이 언제 계엄을 예고했나?
석동현은 “확실히 말씀드릴 것은 대통령도 법률가이니까 체포를 해라, 끌어내라하는 용어를 쓴 적은 없다고 들었다”며 “대통령께서 ‘절대 시민들과 충돌하지 말라’ 그러한 지시와 당부를 했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국회 증언을 통해 윤석열이 직접 비화폰으로 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것과 상반된 주장이다.
또 다시 바이든-날리면 사건으로 국민을 호도하려는 것인가?
윤석열의 말은 계엄해제 후에 한 말이다.
석동현 변호사는 또 “예고하고 하는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국회에서 계엄 해제하고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두는 내란이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계엄을 예고한 적이 없다. 다만 야당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미리 경고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계엄해제가 선언된 것은 6시간 후다.
윤석열 일당은 계엄 후에도 2차 계엄을 작당했다는 게 드러났다.
부정선거 덫에 빠진 듯
석동혁은 윤석열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해 “대통령은 최고 레벨의 많은 정보, 보고가 올라오는 직책이고 그런 상황을 종합해서 판단과 결심, 사고 형성을 한다고 보는 게 상식”이라며 “어느 한 부분이 주요하게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석동현의 말을 빌자면 윤석열은 부정선거로 당선된 셈이다.
윤석열은 여론조사에서 5%이상 이겼는데, 결과는 0.73% 차이가 난 것은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평소 여론조사에 신경도 안 쓴다는 윤석열이 여론조사와 실제 개표 결과가 다른 것을 두고 부정선거라니 기가 막힌다.
지난 대선은 대장동 사건이 안 터졌다면 이재명 후보가 5% 차이 이상으로 이겼을 것이다.
그후 벌어진 대장동 수사에서 돈 받은 사람은 모두 저쪽 사람들이란 게 밝혀졌지 않은가?
하지만 곽상도는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았어도 무죄가 되었다.
이 역시 정권이 바뀌면 모두 재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정청래가 국회소추위원장
한편 국회 탄핵소추단은 이날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소추위원인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대리인을 맡게 된 법조인 명단을 발표했다.
총 17명의 대리인단 공동대표는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송두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이광범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3인이 맡기로 했다.
김 전 헌법재판관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재판관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상의 명단으로 봐 석동현이 아무리 억지 주장을 펴도 탄핵소추 위원들이 하나하나 반박에 탄핵되고 말 것이다.
5200만 국민이 모두 증인인데 아니라고 하면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특히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장면이나 정보사가 선관위에 난입한 장면은 빼도 박도 못한다.
앞으로 어떤 결정적 증거 나올지 아무도 몰라
또한 앞으로 어떤 결정적 증거가 폭로될지 아무도 모른다.
군인들도 차츰 증언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의 증언은 결정적이다.
군인들도 죽지 않으려면 이실직고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비열하게 구는 윤석열을 보자니 상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조폭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계엄은 계엄이고 그 많은 본부장 비리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르긴 모르되 형량이 100년은 넘을 것이다.
그건 김건희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한국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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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3:44바보조일[바로보는 조선일보] - 47. 조선일보김씨가 부끄러움을 알까?
이득우 조선일보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
기사입력 2024/12/20
12.3 내란의 배후에 조선일보가 있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
조선일보의 선동적인 기사가 윤석열의 망상적 사고와 확증 편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계엄령에 대해 전 국민이 걱정하고 있을 때 국민을 바보로 아는 계엄령 괴담으로 호도하던 집단이 조선일보다.
윤석열의 거부 남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거나 그를 부추겼다.
유독 국회의 입법 활동에 대해서는 폭주나 독재 등의 자극적인 말로 그러잖아도 비정상인 윤석열을 흥분시켰다.
조선일보는 윤석열의 내란을 ‘오판’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 오판에 핵심 역할을 한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런 조선일보가 아직도 반성은커녕 선동질을 계속하고 있다.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왜곡했던 김대중 전 주필이다.
한반도의 위인 김대중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도록 그를 조선일보김씨로 부르겠다.
조선일보김씨가 추한 모습으로 ‘이재명 앞에서 보수마저 길을 잃을 수 없다’고 내갈겼다.
대한민국을 망국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른바 자기 입으로 원로입네 하는 추레한 자의 교활한 술수에 못내 씁쓸하다.
조선일보김씨는 윤석열 내란이라는 반국가 범죄에 연루되었다가 반성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무도한 정권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다가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눠 씻지 못할 죄악을 지을 뻔한 사람들의 회한과 눈물이 그에게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들을 기회주의, 보신주의 심지어 배신이라고 몰아붙인다.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기회주의. 보신주의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임에도 그는 음험한 선동질을 하고 있다.
왠지 불길하고 불길하다.
조선일보김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도 비슷한 작태를 벌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시민들을 ‘난동자’로 불렀다.
나중에 그는 첫 문장에서 한 번만 ‘난동자’로 쓰고 뒤에서는 ‘그들’로 호칭했다는 변명했다고 한다.
윤석열의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과 묘하게 겹친다.
참으로 비열한 인간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며 마치 시민들이 난동을 일으켜 무정부 상태가 된 것처럼 묘사했다.
당연히 전두환 살인마 일당에 의한 폭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이후로 조선일보와 조선일보김씨는 전두환 일당의 총애로 호의호식을 누리게 되었다.
조선일보김씨가 광주의 민주 시민들을 ‘난동자’로 부르며 소설을 쓴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다행히 우리는 노벨상에 빛나는 한강이라는 소설가를 가졌다.
그는 ‘소년이 온다’에서 그들이 난동범도 폭도도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조선일보김씨의 엉터리 소설을 소설가가 진실로 바꿔 준 것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강연에서 광주 민중항쟁 당시 ‘철저한 언론 통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김씨는 스스로 언론 통제를 넘어서 창작을 한 것이다.
기자가 진실을 배신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자기 보신을 선택한 추악한 사례다.
많은 시민은 엉터리 소설 대신 진실과 정의를 믿으며 윤석열 내란에 목숨을 걸고 국회로 모여들었다. 진실의 힘이 위대함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경찰을 시민들이 막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김씨의 눈에는 국가공권력을 막고 나서는 난동자들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무자비한 전두환 일당의 총칼 앞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2024년 12월 4일 민주 시민들은 내란 세력들을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감격을 맛봤다.
조선일보김씨가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고 그래서 지금도 몽니를 부리고 있다.
조선일보김씨가 얼마나 천박한 인식을 가졌는지 쉽게 드러난다.
좌파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단다.
보수 우파들도 좌파를 닮았으면 하는 망상을 한단다.
아무말대잔치를 하는 자에게 의미야 없겠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박근혜 탄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다면 이런 부끄러운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박근혜가 좌파라고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편 가르기에 이골났어도 이건 좌우를 가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치명적인 손상이 간 중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민주시민들이 나라를 건져 냈지만 국격에 흠이 갔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만드는데 미쳐 날뛴 조선일보가 부끄러움을 알기나 할까?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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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3:34김용현 "탱크로 확 밀어버려"... 전방 기갑여단장, 정보사에서 대기
기자명 아이엠피터(임병도)
입력 2024.12.20
'휴가'였던 구삼회, 민간인 노상원 연락 받고 판교 사무실행... 만약 전차 동원됐다면 끔찍한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전에 정보사령부에 있었던 인물들
내란이 벌어졌던 12월 3일, 계엄군이 전차부대까지 동원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19일 박선원 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를 4시간여를 앞두고 정보사령부 판교 사무실에 군인들이 모입니다.
이날 참석자를 보면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과 김봉규 정보사 신문단장,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 방환 국방부 전작권전환TF장이었습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앞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안산시 상록수역 롯데리아에서 계엄모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정환 준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측근입니다.
이자리에는 구삼회 2기갑여단장도 있었습니다.
구 여단장은 노상원 전 정보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휴가를 내고 판교 정보사 사무실로 갔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편, 이날 판교 사무실에는 북파공작원 (HID) 요원 5명과 정보사 특수임무요원 20여명도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병주 의원은 "이들의(북파공작원)의 임무는 선관위 직원의 납치·감금이었다"라며 제보 내용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전차와 장갑차 동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
12월 3일 정보사 판교 사무실에서 구삼회 2기갑 여단장이 대기한 것을 두고 비상계엄 선포 후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제2기갑여단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부대로 서울 시내와는 직선거리로 약 3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최단 시간 내 서울로 출동할 수 있는 기갑부대입니다.
실제로 2기갑여단은 12·12 쿠데타 당시 전차 35대를 동원해 중앙청과 국방부 육군본부 등을 무력으로 장악했던 부대입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문 전 사령관과 함께 있었던 구 여단장을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 여단장은 검찰 조사에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몇 달 전부터 전화해 진급을 거론하며 '장관이 네게 국방부 TF 임무를 맡기려 한다'고 했고, 비상계엄 당일도 같은 이야기를 하며 판교 정보사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구 여단장은 자신은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TV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4일 오전 1시경 노상원 전 사령관으로부터 "다 끝났다"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민주당, 김용현 '탱크로 확 밀어버려'
구 여단장은 내란 사태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상계엄 선포 당일 엄청난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의혹도 나옵니다.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있던 12월 3일 당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국방컨벤션센터 오찬장에서 '국회가 국방예산으로 장난질'이라며 '탱크로 확 밀어버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민주당은 주장했습니다.
만약 민주당 주장처럼 김 전 장관이 내란 사태에 전차를 동원했다면 정보사에 대기하고 있었던 구 여단장의 2기갑여단이 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2월 3일 국회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지만, 전차와 장갑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입니다.
가정이라고 해도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사태가 벌여졌을 수도 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전방에서 막강한 화력과 장비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 일선 기갑부대장이 민간인의 지시에 휴가를 내고 정보사 사무실에 대기를 했습니다.
그가 이날 왜 정보사에 갔는지, 비상계엄 선포 후 부대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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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1:32해군 의장대 노은결 소령의 충격 폭로...현역 군인 상대 테러했나?
'대통령불경죄'로 정보요원들에게 테러 당한 노은결 소령
조하준 기자
입력 2024.12.20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노은결 해군 소령의 모습.(출처 : 서울의소리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20일 서울의소리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려진 해군 의장대 소속 노은결 소령의 충격 폭로가 세상의 충격을 주고 있다. 요약하자면 노 소령은 윤석열 정부에 단단이 찍힌 죄목으로 비밀요원들로부터 사찰을 당한 것은 물론 테러까지 당했으며 아내를 성폭행하겠다는 협박과 딸에게 상해를 가하겠다는 협박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폭로가 사실일 경우 내란 혐의에 이어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날 노 소령은 MBC 출신 장인수 기자와 함께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최근 아내와 딸을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협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가족들이 사찰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돼 용기를 내어 기자회견에 나섰다고 했다.
노 소령은 지난 10월 23일 오후 1시경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 병영생활관 8층에서 본인을 사찰하던 신원 불상의 인물에게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그 결과 계단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고 군 의무조사를 통해 심신장애등급 7급, 장애보상등급 3급, 상이등급 6급으로 퇴역대상이 됐으나 전역부동의 및 계속 복무 신청을 해둔 상태이며 현재 재활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신원 불상의 인물은 자신에게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하지 않는 종북불온세력, 빨갱이"라고 매도했고 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협박을 했는데 그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성폭행하고 이제 겨우 두 돌된 딸은 얼굴에 큰 상처를 내어 평생 후회하도록 만들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노 소령은 자신이 이 사실을 폭로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럼 도대체 일개 해군 소령에 불과한 그는 왜 윤석열 정부에 단단히 찍힌 것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1층에 들어서면 양쪽 벽면과 천장에 그림이 있었는데 그는 그 그림을 보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속, 주술 등과 관련된 그림처럼 느껴졌는데 그러던 중 노 소령은 행사 대기 중 경호처 소속으로 판단되는 인원들이 서로 "김건희 여사가 그림을 구입했다. 그림이 매우 비싸다. 무술이나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더라"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대통령실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경우 대통령실을 나와 자신의 휴대전화에 보이스 녹음 형식으로 들은 내용을 녹음했다고 했다.
본인이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건 올해 7월이었다고 한다. 그는 해군 관사인 바다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아파트 바로 옆에는 해군호텔이 있는데 해병대 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의 주범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올해 4월 해군호텔에 방문한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해병대 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에 크게 분노해 왔던 인물이었기에 임 전 사단장의 모습을 본 이후 임 전 사단장이나 그와 닮은 사람을 보면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노 소령은 "당장 어떻게 사용하겠다기보다 그가 모른다고 했던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부인했던 사실이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촬영했다"고 했다.
촬영한 사진은 차에 두고 다니던 태블릿 PC에 그 때 그 때 옮겨 백업을 해두었다고 한다. 올해 7월에도 임 전 사단장의 모습 촬영을 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태블릿 PC로 사진 복사 작업을 하던 중 신원 불명의 남성 2명이 양옆으로 다가와서 자신을 제압하고 태블릿 PC와 휴대전화를 가져갔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노 소령에게 "죽고 싶냐? 지금이라도 가족이 안전하고 싶다면 쓸데없는 행동을 멈추라"고 섬뜩한 경고를 했다. 이에 노 소령은 처음 겪는 일이라 많이 당황했으며 특히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협박에 두려웠다고 했다. 때문에 가족들이 자신으로 인해 걱정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이후로는 주변에 관심을 끊고 조용히 지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22일 가족들과 함께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방문했을 때 화장실에 있었을 때 누군가 화장실 문밖에서 "내일 12시 병영생활관 9층"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고 이 때 사찰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했다. 당시는 각종 녹취나 폭로가 뉴스를 도배하는 상황이었다.
노 소령은 "불상의 그 인원들도 제가 무얼 얼마나 알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제 가족들이 사찰을 당하고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왔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용산 국방부로 갔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방부에 가는 도중 혹시나 일이 잘못돼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보메일을 작성해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 이종원 씨의 시사타파TV에 미리 보냈다고 했다.
이후 노 소령은 동문 행정안내실에서 출입 조치를 받아 병영생활관으로 곧장 갔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나 욕을 하는 동시에 그의 복부를 가격하며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누가 또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이에 노 소령은 "가족은 전혀 모르고 이제 그만 하려 한다"고 답했는데 선글라스의 남성은 다른 곳에 제보한 적 없는지 캐물었다고 했다. 노 소령은 제보한 적 없다고 잡아뗐으나 신원미상의 남성은 노 소령의 핸드폰을 빼앗아 뒤져보기 시작했고 곧 그가 제보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 남성은 불같이 화를 내며 가지고 온 전선 줄을 꺼내 노 소령에게 계단에 묶으라고 시키며 계단 난간 바깥쪽에 매달리도록 시켰다고 했다.
겁에 질린 노 소령은 저들과의 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지시에 저항 없이 따랐는데 그가 계단 바깥쪽에 매달리자 멀티탭 전선으로 그의 목을 묶었다고 한다. 신원불명의 남성은 “여기서 떨어져 봐야 죽지 않고 허리 병신 정도만 된다. 오늘은 경고로 끝내겠지만 다음번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네가 아는 게 뭐냐’고 물었고 노 소령은 ‘아는 게 없고 그만 끝내고 싶다’고 했는데 그 남성은 노 소령을 도발할 생각인지 앞서 말씀드린 참담한 말로 그의 가족들을 협박했다. 그 말에 흥분한 노 소령도 소리치며 계단을 넘어가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는 노 소령을 때리기 시작했고 결국 노 소령은 계단에서 떨어져 허리를 비롯한 온 몸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그날 저녁에 발견돼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노 소령은 "군인으로 복무하며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분노로 그의 사진을 찍은 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을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아내와 딸의 안전을 협박하고 나아가 저를 폭행한 건 용서받을 수 없는 국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아울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그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자수와 양심고백을 할 것을 부탁했고 대통령실 경호처를 향해서도 국방부의 수사에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
이상의 노은결 소장이 말한 내용이 사실일 경우 결국 '대통령불경죄'라는 황당한 죄목으로 국가가 현역 군인을 사찰, 폭행한 것도 모자라 살해하려 시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대통령불경죄' 역시도 김건희 여사가 구매해 붙여놓은 그림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진 것과 해병대 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에 분개해 책임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촬영하려 한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불명의 정보요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은 노 소령을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하지 않는 종북불온세력, 빨갱이"라고 매도하며 살해하려까지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태가 노 소령 외에 또 더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공정과 상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는 불공정과 비상식이 판치는 정부였으며 살벌하기 그지 없는 독재정권이었음이 다시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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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12-21 01:29[조하준의 직설] 국민은 개뿔! 권력이 최고여!
조하준 기자
입력 2024.12.20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국민의힘은 2연속 탄핵소추된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현직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기도한 내란 혐의를 저지른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85명이나 탄핵에 반대하며 민심에 역행한 것이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정말 그러고도 '국민의힘'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가 된 상황에서도 국민의힘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 제명 및 출당 조치부터 이뤄지지 않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최소한 '꼬리 자르기'라도 보여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힘은 그런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또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권성동 원내대표는 노골적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헌법재판관 3인의 임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기각될 경우엔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탄핵소추는 헌법에도 보장된 국회의 고유 권한임에도 이런 소리를 한 것이다.
정말 그가 검사 출신 법조인이 맞고 또 8년 전 박근혜 탄핵심판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을 이끈 인물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일엔 정점식 의원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는 대표적인 인물인 황교안 전 총리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대관을 해주었고
황 전 총리는 그의 추종자 무리들과 함께 국회에서 마음껏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렸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이번 12.3 내란 사태 발생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또 같은 날 나경원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안질의 중 "민주당 의원들은 어떻게 일찍 들어왔는지 몰라도 우리(국민의힘)는 부랴부랴 경내로 들어오려 했을 때 이미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국회가 모두 포위되었다"라면서 "일부 의원들은 국회 경내로 들어가려다가 민주당 지지자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당사로 복귀해 해제요구를 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당시 국회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국민들이었나?
아니면 계엄군과 경찰이었나?
계엄군과 경찰의 불법 행위에 맞서 싸운 국민들에게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런 망언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배경은 민심보다 자신들의 집권 야욕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젠간 윤 대통령이 파면되더라도 당장 자신들의 집권 기간을 연장하고 야권 제1의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른바 '사법리스크'로 자멸해 대권 출마가 봉쇄될 때까지 철면피로 버티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또 하나는 석연찮은 수사기관들의 행태로 여전히 내란 수괴 윤석열이 체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란죄를 저지르고도 17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체포되지 않은 채 한남동 관저에서 버티고 있으니 국민의힘 의원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망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 수사기관들은 아직도 내란 수괴 윤석열을 체포하지 않은 채 시간만 잡아먹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윤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여러 차례 비추었고
또 수사에 불응하는 모습, 헌재의 탄핵심판에도 불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수사기관들은 법적 절차 타령하며 시간만 끌고 있는가?
만약 윤 대통령이 지금 긴급 체포되어 수감 중이라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렇게 대놓고 민심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 의원들이 저렇게 뻔뻔하게 나서는데 굼벵이처럼 굼뜬 수사기관의 태도 역시 적잖이 일조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제 이번 사태로 국민의힘이란 정당이 어떤 정당인지 전국민이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이 당은 더 이상 쇄신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며 국민보다 내란 수괴를 지키며 정권과 함께 파멸의 길을 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총부리를 돌리며 내란을 획책한 내란사범을 비호하는 정당이 과연 민주공화국에 있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행태만으로도 국민의힘은 충분히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 대상이라고 본다.
필자가 단순히 국민의힘이란 정당을 싫어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내란죄에 동조한 무리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민주공화국의 정당으로서 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 지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국민의힘에도 이번 내란 사태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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