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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9 21:33윤석열과 한동훈이 수사한 양승태 무죄, 이게 나라인가?
유영안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1/29
사법농단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논란이다.
검찰이 기소 후 1810일, 약 4년 11개월이 지나고서야 1심 재판이 열렸지만 무죄가 선고되자 사법부 내부도 술렁이고 있다.
재판이 기간도 유난히 길었을 뿐만 아니라, 왜 하필 총선을 앞둔 이 시기에 1심 판결이 나왔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양승태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로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가 1심 재판을 맡았다.
검찰의 구형량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징역 7년, 박병대 전 대법관 징역 5년, 고영한 전 대법관 징역 4년이었다.
그런데 중앙지법이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무엇이며, 중앙지법의 1심 판결이 왜 부당한지 알아본다.
양승태의 혐의
양승태는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 동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이를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양승태는 각종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죄명으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 공소장에 적시됐다.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재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이다.
그야말로 비리 백화점 수준이었다.
무죄 선고 이유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 미비?
중앙지법 재판부는 임종헌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죄 등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가담 등 공범 관계가 검찰의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검찰의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란 말이다.
이것은 검찰이 문재인 정부 때는 제대로 수사하다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자 공소장을 엉터리로 썼다는 방증이다.
기소와 공소 유지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선고 직후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히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공소장을 얼마나 엉성하게 썼으면 48개 혐의가 모두 무죄가 나왔을까?
법원은 공소장 내의 내용만 가지고 재판을 한다.
이탄희 고발로부터 시작된 양승태의 사법농단
이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판사 시절인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하며 시작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이탄희 의원이 항의하자 발령이 번복되기도 하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2017년 4월 18일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부실 조사'라는 반발이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각 법원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상 최초로 구성되어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대법원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2차·3차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광범위하게 남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양승태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의도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려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거기에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사법농단'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자 태도 달라져
양승태의 혐의 중 가장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의도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점이다.
양승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위안부 합의에 충실하기 위해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재판을 일부러 연기하는 등 친일적 성격을 보였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정권은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 투기 허용,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해도 항의를 안 해 친일정부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따라서 이번 중앙지법의 1심 판결엔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친일 의식이 은영중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사법농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승태가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재판을 일부러 연기해 일본에 유리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친일 성격이 강한 윤석열 정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귀신들이 재판했나?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한 사법부의 최종적 판단까지는 아직도 절차가 많이 남아 있다.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있고, 법리가 워낙 복잡한 탓에 대법원에서 파기돼 다시 재판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법관들도 대부분 ‘친윤라인‘이라 별로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삼권분립은 말뿐이고 윤석열 정권에는 견고한 ’사법 카르텔‘이 형성해 있다.
검찰이 판사 사찰을 왜 했겠는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재판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받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고 성토했다.
이탄희 의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관 블랙리스트를 최초로 내부 고발하며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더니 사법부 재판까지 달라지고 있다.
이게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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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9 19:36(나)
"순방비는 역대 최다, '성과'로 홍보한 건 대부분 MOU"
MBC 스트레이트, 尹의 실속 없는 거품 외교에 대한 탐사보도 1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1.29
작년 11월 말에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2주 만인 12월 중순에 윤 대통령은 또 네덜란드로 국빈 방문을 떠났다.
그리고 이 자리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이 동행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네덜란드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와 함께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회사 ASML 방문도 했다.
그 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외국 정상 최초’로 ASML을 방문했다고 홍보했다.
또 윤 대통령도 “양국은 정부, 기업, 대학을 아우르는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기로 했다”며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이 ‘반도체 동맹’ 사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있고 불과 열흘 뒤 ASML은 한국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신 노광장비 하이NA(HighNA)를 삼성이 아닌 경쟁업체 미국 인텔 사에 처음으로 넘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노광장비 회사 ASML은 한국의 기대를 비웃듯 최신 노광장비를 삼성의 경쟁사인 미국의 인텔에다 넘겼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또한 MBC 취재 결과 정부가 네덜란드 순방 당시 진짜 역점에 두었던 건 따로 있었다는 뒷말도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건 이미 당시 보도에서 나왔듯이 네덜란드 측에 과도한 의전 요구를 해서 대사를 초치했던 사건이었다.
즉, 윤석열 정부가 진짜 역점에 두었던 건 의전이었던 셈이다.
이런 실속 없는 해외 방문은 프랑스 순방 당시에도 있었다.
작년 5월 당시 프랑스는 생산, 운송 시 탄소배출량 많은 전기자동차에 보조금을 제외하는 이른바 녹색산업법을 발표했다.
이는 화석연료 사용이 많고 운송거리가 먼 한국에는 상당히 불리한 내용의 법이었다.
작년 6월 프랑스 순방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산 전기자동차 보조금 문제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았고 오로지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만 올인하다시피 했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그리고 발표 한 달 뒤인 6월에 윤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해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정상회담을 했다.
물론 이번에도 기업인들이 대동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저 녹색산업법에 관한 논의는 정식 의제에 오르지도 않았고 그 당시 정부가 역점에 두었던 건 오로지 2030 부산엑스포 유치밖에 없었다.
정부는 뒤늦게 방문규 산업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가 잇달아 프랑스를 방문해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논의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뒤였다.
즉, 정부가 힘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정작 정부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셈이다.
덕분에 유럽 현지에 공장이 있는 코나만 살아남았고 니로와 쏘울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해 한국산 전기자동차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그 덕에 유럽 현지에 공장이 있는 코나만 살아남았고 니로와 쏘울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최대 700만 원의 보조금 혜택이 날아갔을 뿐 아니라 현지에서 한국산 전기자동차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
그에 반해 이미 공장을 현지화한 일본의 경우 도요타와 니산, 마스다의 전기차 6종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문제의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총선을 출마한다는 이유로 취임 107일 만에 장관직에서 사임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중장기적 경제 정책은 하나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방 전 장관은 총선에 나갈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임명했다.
3개월짜리 장관이 산업 정책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리도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380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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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9 19:35(가)
"순방비는 역대 최다, '성과'로 홍보한 건 대부분 MOU"
MBC 스트레이트, 尹의 실속 없는 거품 외교에 대한 탐사보도 1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1.29
작년 12월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후 부랴부랴 재벌 총수를 대동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떡볶이 먹방 쇼'를 벌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지난 28일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한국 정치, 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정경유착 행태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스트레이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마다 항상 재벌 총수들을 대동했고 그 때마다 대통령실은 MOU를 수백 건이나 체결했다는 ‘성과’를 부풀려서 홍보한 대통령의 실속 없는 거품 외교와 정경유착 행태에 대해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찍이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자칭했다.
그걸 명분으로 숱하게 해외 순방을 떠났고 그 때마다 재벌 총수들이 항상 따라다녔다. 〈스트레이트〉는 현재 취임하고 1년 9개월 동안 윤 대통령이 거둔 외교적 성과는 어떠했는가?
그 점을 먼저 살펴봤다.
작년 6월 윤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이 동행했다. 그리고 205개 기업이 경제사절단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베트남과 모두 111건의 MOU를 체결했고 역대 대통령들 해외 순방 성과 중 최대라고 홍보했다.
작년 6월 베트남 국빈 방문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총 111건의 MOU를 체결했다는 성과를 뻥튀기해서 홍보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의료기기 납품 중소기업의 현지 지사와 맺은 총판 MOU도 섞여 있었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그런데 그 111건의 MOU 중 이상한 계약이 있었던 것이 MBC 취재진의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경제사절단 중 하나로 베트남 순방에 동행한 의료기기 납품 중소기업이 현지 베트남 지사와 맺은 이른바 ‘총판’ MOU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MBC 취재진이 추가로 확인한 결과 문제의 의료기기 중소 기업은 제품 개발에도 실패했다고 한다.
사실상 없던 일이 된 셈이다.
8년 전 박근혜 씨의 이란 순방 당시 언론들의 뻥튀기 보도. 하지만 과연 그 실체는?(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무엇보다 MOU란 것은 ‘양해각서’란 뜻으로 “정식 계약 전에 합의한 사항을 명시한 문서”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2016년 5월 이란 순방 당시 언론들은 박근혜 씨가 이란에서 52조 수주 ‘대박’을 냈다며 엄청나게 뻥튀기해서 보도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현재 그 당시 박근혜 씨가 이란 현지에서 쓸어담아온 52조 계약 건은 어떻게 됐을까?
2016년 박근혜 씨의 순방 당시 한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총 18건의 MOU 중 사업 진행 중인 것은 고작 1건에 그쳤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MBC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산업부 소관 18건의 MOU 중 사업이 진행 중인 것은 단 1건에 그쳤고 나머지 17건은 모두 중단, 보류된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즉, 박근혜 씨가 이란 현지에서 52조 대박을 터트렸다는 건 모두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로 떡칠된 허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또한 재벌 총수들을 데리고 나간 해외 순방 때마다 MOU 체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작년 10월 카타르 순방 당시에도 대통령실은 총 202억 불 규모의 MOU와 계약 성과가 있었고 “중동 빅3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들에 총액 792억 불 규모의 거대한 운동장이 만들어진 것이다”고 성과를 자랑하듯이 말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라고 홍보한 것들 중 90% 이상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였음이 드러났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이에 MBC 취재진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한 해 경제사절단을 꾸린 해외 순방 때 맺은 MOU와 계약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해외 순방 중 체결한 MOU와 계약은 총 401건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중 91%인 367건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였고 실제 계약은 19건으로 4.7%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BC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 국장은 “이건 실제 말 그대로 계좌에 돈이 들어와야 되고 계약을 통해서 그렇게 해야지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데. 따라서 MOU가 제대로 안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홈페이지에서 경제사절단 모집을 할 때 우대조건에는 'MOU 체결 예정건 보유 등'이란 문구가 첨가됐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작년 10월 윤 대통령의 카타르 순방 당시 경제사절단 모집 공고문을 띄웠는데 그 공고문을 보면 우선 선발 기준으로 ‘해당 국가와 명확한 비즈니스 성과가 기대되는 경우’라고 고르면서 그 옆에 ‘MOU 체결 예정건 보유’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었다.
이 문구는 문재인 정부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라 한다.
이로 볼 때 아예 MOU 체결 건 수를 염두에 두고 모집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MOU가 예정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으면 대통령 순방에 맞추자고 기업에 제안하기도 했다”고 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성과 홍보르르 위해 MOU 부풀리기에 정신을 쏟고 있었던 셈이다.
작년 10월 카타르 순방 당시 최대 성과라고 떠들었던 LNG 운반선 건조 계약의 실체.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에 사전 계약이 체결된 것이었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카타르 순방 당시 현대중공업이 카타르에너지와 맺었다는 LNG 운반선 건조계약의 경우 39억 불(한화 5조 2,000억 원) 수주를 했다며 자신들의 치적으로 포장했지만 사전 계약은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에 체결된 것으로 밝혀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래 총 16회의 해외 순방을 갔다.
미국이 5회, 일본 2회, 영국 2회, 프랑스 2회 등을 기록했는데 그 와중에 양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에는 단 1번도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서방 국가에 지나칠 정도로 편중되어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비용은 두 전임 대통령에 비해 2배 이상 더 많을 뿐 아니라 기존의 예산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비비까지 끌어다 썼다.(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또 하나의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예산이 박근혜 씨나 문재인 전 대통령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더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 씨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주로 해외 순방 예산이 200억 안팎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 책정된 예산도 부족하다며 예비비를 더 끌어다 써서 578억까지 증액됐다.
대통령실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외 투자 유치를 멈추면 국가적 손해라는 명분을 들이밀며 예산을 증액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자신의 지지율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는 과연 어떠했던가?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이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출처 : MBC 스트레이트 영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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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9 16:48[조동욱의 과학 칼럼]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성 목소리는?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생체신호분석전문가·한국산학연협회장
김종혁 기자
승인 2024.01.29
소리의 근본은 이성을 유혹하는 것이다.
곤충을 비롯하여 영장류인 사람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심지어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다는 보고가 있다.
어찌 보면 남녀공학의 대학에서 남성 교수들이 여성 교수들보다 많은 관계로 여학생들의 귀에는 남학생들보다 더 강하게 강의 내용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맹꽁이가 우는 것도 이성을 부르는 소리이며 최고 영장류인 인간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사망하기 전까지도 지속되며 그 연장선에서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도 본능적인 일 중 하나이다.
오늘은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 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맹꽁이의 경우 암놈 맹꽁이는 낮은 중저음의 수놈 맹꽁이에게 다가간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중저음을 내는 맹꽁이 수놈은 덩치가 더 크다는 보도도 있다.
사람의 경우도 여성들은 물론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학설로는 중저음의 소리를 내는 남성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특히 인중을 울리는 낮은 중저음의 소리가 여성에게 호감을 준다고 하며, 중저음의 소리를 내는 남성의 경우 생물학적으로도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보다 왕성한 사람많다.
일 예로 캐나다 맥마스터대학의 Feinberg교수에 의하면 중저음의 소리를 내는 남성이 자녀가 더 많다는 보고도 있다.
이에 비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미간을 울리는 높은 소리에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남녀 공히 약간의 비음을 내는 사람에게 성적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영화배우 전도연이 이에 해당한다.
전도연은 외모로는 특별히 섹시 어필 하는 한다고 볼 수 없지만 어딘가 성적 매력을 풍만히 느끼게 하는 비결이 비음을 적절히 사용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박보검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오늘은 남녀 4명씩을 대상으로 음높이와 관련된 음성 분석요소, 음성에 실리는 에너지와 주파수변동률, 진폭변동률, NHR 등과 같이 음색에 대한 음성 분석요소를 대상으로 모 방송국에서 보내 주었던 실험 음원을 대상으로 실험을 행하고자 한다.
이 방송국 프로그램 내용은 목소리만을 듣고 여성의 경우는 어떤 남성 목소리에 끌리는지, 역으로 남성의 경우는 어떤 여성 목소리에 끌리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출현한 남성들 모두가 낮은 음을 내고 있었다.
이 네 명의 남성의 목소리만을 듣고 여성들이 선택한 남성 목소리는 3번이었다.
즉, 중저음에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를 선호하였다.
여성의 경우 앵앵거리는 높은 음을 남성들이 선호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여성 4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또 하나는 여성 3번에 대한 선호도도 높았다.
이 경우는 말에 대한 신뢰도에 대한 수치가 좋은 경우이다.
결론적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주는 목소리는 남성은 중저음에 부드러움,
여성은 미간을 울리는 높은 음과 신뢰도 높은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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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376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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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22:53누가 대통령 귀에 ‘엉터리 경제이론’을 속삭이는가 [아침햇발]
기자정남구,정남구
수정 2024-01-28
“장관님들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지난 15일 열린 이른바 ‘민생토론회’ 세번째 시간에 첫 토론자로 나선 이우경 에이에스엠엘(ASML)코리아 사장이 한 말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저도 전문가이긴 합니다만, 입시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께)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2023년 6월19일 당정협의)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토론회 서두에 16분에 걸쳐 한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어떤 일이든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한다.
문제는 엉터리일 때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경제 관련 사안도 예외가 아닌데, 올해 들어 계속 외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황당함마저 느끼게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은 윤 대통령의 ‘후배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는 지난해 10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요일이던 11월5일 금융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올해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일이었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공매도에도 순기능이 있어서 지나치게 제약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 증시를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공매도 제한’을 꼽아온 것을 짚은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첫날 코스피지수가 5.7%, 코스닥지수가 7.3% 폭등했다.
이차전지주를 대표하는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상한가(30%)까지 올랐다.
그 뒤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입에 달고 다닌다.
‘세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주식 양도세 과세 때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인지 판단하는 보유 주식 시가총액 기준액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렸다.
윤 대통령은 1월2일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2025년부터 과세하기로 돼 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선 증권거래세를 매기지 않고, 투자 소득에 과세한다.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오래전부터 한 걸음씩 내디뎌온 것이 금투세다.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 발언은 막 취임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내면서 주식 양도세 범위 확대 등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추진했던 최 부총리는 1월8일 “금투세 폐지는 1400만 투자자를 위한 감세”라고 말을 바꿔야 했다.
윤 대통령은 1월17일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개편 의사를 내비쳤다.
이날 발언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한번도 그런 연구 결과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부자들 세금 깎아주려는 것을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려다 금을 밟고 만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꽤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실증분석 결과, 미흡한 주주 환원 수준,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나왔다.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설명력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상한 말을 계속하고, 정책은 꼬이고, 정부 부처는 수습하느라 고생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 가운데 ‘경제·민생·물가’를 이유로 꼽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규모 부자 감세가 족쇄가 되어 재정정책을 기둥으로 한 경제정책이 먹통이 된 상황을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8일부터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올해 들어서는 민생토론회를 직접 주재하고 있지만,
‘부자’ 지지자를 위한 선심 쓰기를 민생정책이라고 포장해 내놓는 게 대부분이다.
더는 속을 사람이 없는 그런 엉터리 논리를 대통령 귀에 속삭이는 이들을 쳐내지 못하는 한, 윤 대통령도 이 나라 경제도 앞날이 아득하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올인’한 1월 한달 동안 공매도 금지의 약발도 다하고, 주가는 큰 폭 하락했다.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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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21:58재난을 대하는 권력의 예의
입력 : 2024.01.28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권력은 시민 삶에 별 관심이 없고
재난 앞에서 최소한 예의도 없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냉랭한 체감온도 속 뒤로 남겨진다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적’ 재난이 일어나면 반복되는 일이 있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와 이에 대한 권력의 외면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요구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에 대해선 그 책임을 온전히 인간에게 지울 수 없다.
다만 좋은 국가일수록 이런 자연재난에 맞서는 인간이 자기 책임을 다하였는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
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적’ 재난은 그 책임이 온전히 인간에게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자연은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우리 인간이 평소에 혹은 특정한 시기에 필요한 대책을 소홀히 해서 생겨난 비극이다.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서 제대로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는 건 그 국가가 혹은 권력이 그만큼 부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관련해 미국 컬럼비 아 대에서 재난을 연구하는 존 머터 교수는 (2020)에서 이렇게 쓴다.
대규모 재난이 일어난 국가에서
“권력자들은 가식적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거 시기를 제외하면 시민의 삶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권력자들도 시민의 삶에 대한 자신들의 무관심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체계로는 재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진상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권력이 이런 특별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에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원안과는 전혀 다른 ‘누더기’가 되었다는 오명을 쓰는 이유다.
실제 이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정부와 여당의 요구와 입장을 상당히 수용하였다.
첫째, 특별검사 요구권 삭제.
둘째, 활동 기간 축소(18개월에서 15개월).
셋째, 피해자 범위를 희생자의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로 축소.
넷째, 조사위원에 대한 국회의 직접 추천권 명기.
다섯째, 청문회에 불출석하는 증인 등에 대한 동행명령권 삭제.
여섯째, 조사 불응·허위자료 제출·동행명령 불응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과태료로 변경.
세월호 특조위와 비교해보면,
유가족이 조사위원을 추천할 권리가 사라진 부분이 눈에 띈다.
이번 특별법에 따르면, 특별조사위원 11인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각 4인, 국회의장이 3인의 추천권을 갖는다.
‘편향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당이 유가족 추천권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이마저 수용했다.
그럼에도 여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다며 지난 9일에 있었던 국회 표결에 불참했다.
이제 이 법안의 운명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달려 있다.
이에 지난 23일, 유가족과 시민들은 특별법이 시행되길 바라며 서울광장에 설치된 159개의 영정을 향해 밤새 1만5900배의 절을 올렸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21도까지 떨어졌다.
같은 날,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선 이날의 체감온도처럼 막막한 일이 벌어졌다.
22일 밤 시작된 불길이 점포 227개를 태운 뒤 23일 오전이 되어서야 진화됐다.
이날 오후 화재 현장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수장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찾았다. 피해를 본 상인들은 이들의 방문에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권력자의 관심도, 언론의 관심도, 대다수 평범한 이들의 관심도 서천시장에서 재난을 입은 상인들이 아니었다.
모든 관심은 지난 며칠 사이 두 권력자 간에 갑자기 불거진 권력다툼에 집중돼버렸다.
한동훈 위원장이 90도로 고개 숙여 윤 대통령을 맞은 이야기,
윤 대통령이 어깨를 툭 치며 악수를 청한 이야기,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 특검 시절 입었던 점퍼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이 대통령 전용열차로 함께 상경한 이야기 속에 재난에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혀버렸다.
급히 다툼을 봉합한 두 권력자가 재난 현장에 함께 머무른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결국 두 권력자의 행보는 재난을 바라보는 현재 권력의 시선이 어떠한지 알려준다.
더 암담한 이유는 “선거 시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권력이 “시민의 삶에 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이제 그 무심함이 재난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킬 필요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얼어붙는 체감온도 속에 뒤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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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21:56방심위 직원들을 응원한다
입력 : 2024.01.28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한국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라는 민간독립기구가 있다.
홈페이지에 나온 설치 목적은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이다.
방송 관계자 외에 이런 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이 비슷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방통위가 2020년 11월 두 기관을 혼동하지 말라고 자료를 낸 적도 있을 정도다.
이렇듯 존재감이 없던 방심위가 지난해 가을부터 무서운 기세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요즘은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보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더 많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
지난달 25일 뉴스타파는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보도했다.
그간 방심위 직원들과 부지런한 미디어 담당 기자들 사이에 돌던 ‘소문’이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의혹은 명료했다.
류 위원장이 자신의 가족과 평소 알고 지낸 이들을 동원해 일부 방송사 뉴스를 심의해달라고 방심위에 민원을 넣도록 한 뒤,
본인이 직접 이를 심의해 과징금 등 중징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상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방송사였다.
권익위에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류 위원장의 행위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을 넘어 방심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
류 위원장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언론의 해명 요구에 며칠간 답하지 않다가 갑자기 ‘민원인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제기했다.
방심위 내부에서부터 문제가 됐고, 언론이 보도한 의혹을 아예 없는 일처럼 취급하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류 위원장 주장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자’, 그러나 누가 봐도 ‘공익제보자’인 직원을 색출하겠다며 검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그리고 청부 민원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야권 추천 김유진·옥시찬 방심위원의 해촉을 밀어붙였다.
의혹이 제기되고 한 달 가까이 흐른 지난 21일자 한겨레 보도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는데 다음날인 22일 방심위 노조는 류 위원장이 당시 해당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다행히 류 위원장과 일부 위원, 간부를 제외하면 방심위 자체는 아주 건강한 조직으로 보인다. 방심위 직원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끊임없이 류 위원장에게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방심위를 취재하는 경향신문 강한들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그 시작은 지난해 9월 방심위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작성자는 아무런 논의 없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든 류 위원장에게 항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방심위 사무처 팀장 27명 중 11명이 실명과 서명 날인까지 남긴 의견서를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방심위가 ‘통신심의’에서 그간 한번도 다루지 않았던 인터넷 언론사 심의를 하겠다고 나서자 ‘위원회 내·외부의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적 보완과 심의 기준이 마련된 후 시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팀장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소속 직원 4명 전원이 방심위 고충처리위원회에 고충을 제출했다.
표면적으로는 ‘원부서로 보내달라’는 요구였는데 실상은 류 위원장 체제에서 일어나는 무리한 ‘가짜뉴스 심의’와 가짜뉴스센터 운영에 대한 항의였다.
고충처리위를 통해서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자 방심위 직원들은 더 단결했다.
지난해 11월14일 방심위 평직원 200여명 중 150명이 ‘연대 서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흐름이 지난달 익명 제보자의 청부 민원 권익위 신고로 이어졌다.
지난 12일엔 방심위 직원 149명이 권익위에 실명 신고서를 다시 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방심위가 ‘정상적’으로 방심위의 일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처음 게시판에 글을 올린 탁동삼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국 확산방지팀장은 지난 22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직업인으로서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직원들의 단체행동이) 그 정도 의미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상을 걸고 나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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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21:50돈의 분열증, 부동산과 금융의 공생
입력 : 2024.01.28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돈은 순리대로 돌아야 인간을 위한 돈이 된다.
그러나 정작 돈의 생각은 다르다.
자기가 경제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굽신굽신해야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돈은 어떻게 돌고 있을까?
돈은 유동성이 최고인 재산 중의 재산이며 모든 여타 재산에 대한 일반적 등가권(title)이다.
생산적으로 투자되면 유용한 가치를 창출할뿐더러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한다.
화폐-생산-노동-임금으로 이어지는 생산적 화폐순환 또는 소득경제 순환이 일어난다.
생산적 투자의 위험부담이 싫을 경우 돈은 본성상 자산적 투자로 흐른다.
물론 그 고삐를 풀어주는 제도적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인간의 살림살이에 유용한 필요 물자의 조달이라는 책임에서 해방되어 교환가치증식에 몰두하는 화폐-자산-화폐의 순환 또는 화폐-화폐의 순환(채권자-채무자)이 발전한다.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불로소득 잔치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부가가치생산과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실질경제 순환은 쪼그라든다.
안정적 일자리와 임금소득은 옛날이야기로 밀려난다.
자산적 축적에 특유한 거시경제동학과 함께 자산불평등이 확대된다.
일반 대중의 삶과 심성도 자산경제 돈잔치판과 투자자 욕망에 흽쓸린다.
너도나도 내 집의 주인은 물론 워너비 건물주가 되고 싶어한다.
이로써 불로소득자본주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피케티가 놓친 21세기 자본체제의 지배적 모양새다.
자산경제 동전의 뒷면에 있는 것은 부채의 폭증이다.
가계부채와 자산투자기업 특히 부동산개발기업의 부채(부동산PF대출)가 그 선두를 달린다.
화폐창조권을 사유화한 은행과 각종 금융기관들이 자산·부채경제의 공모자로 변질해 그 흥망, 자산인플레와 이어지는 부채디플레,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와 운명을 같이한다.
자본주의라면 어디든 법적 소유권보장체제가 돈의 정신분열증을 떠받친다.
인간의 살림살이는 그 분열증을 원천적으로 피할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공공적, 제도적 조절양식 여하에 따라 병증은 상당 정도 치유될 수 있다.
돈 권력의 본성 대 사회공공성 논리 간의 이중운동에 따라 축적체제 양상은 큰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인다.
해방적 나우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법적 소유권이 돈의 방종적 축적놀이와 불로소득청구권을 보장한다 해도 그 지배권의 현실적, 시공간적 실현과정은 사회세력 간의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고 정치적, 정책적 쟁투와 제도화를 통과해야 함을 말해준다.
돈의 민주화 길도 그만큼 복잡하다.
폴라니는 토지, 화폐, 노동을 사회의 본원적 공동자산(사회의 실체!)으로 보고
시장사회가 이를 허구적 상품으로 포섭해 사회의 실체적 경제와 생태적 균형을 파괴한다고 갈파했다.
이 놀라운 통찰에 우리의 축적체제론을 더하면 돈의 분열적 축적 길과 이에 종속된 인간의 살림살이 운명은 부동산과 금융의 조절양식, 양자의 접합방식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은 그 자체 자산적 축적의 큰 소굴이다.
하지만 부동산 및 금융시장 양쪽 모두의 탈규제와 상호의존적 공생, 그에 따른 부동산의 금융화를 통해 자산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한국에서 결정적으로 이 뚜껑이 열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민주 대 반민주 대립이 널리 통용되고 진영정치 기준도 되지만 부동산과 금융의 통제고삐 여하라는 시각으로 보면 다른 인식이 가능하다.
이 시각이 갖는 함축은 의미심장하다.
왜 한국경제가 개발주의에서 불로소득주의로 압축전환했는지,
왜 우리가 민주화의 역설에 빠졌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다.
박정희 시대에 오늘의 부동산공화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고 말하지만 어폐가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산업경제를 위한 금융통제를 시행해 부동산과 금융의 사이 좋은 공생의 길을 막았고 금융의 주요 물줄기는 부동산투자로 흐르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로 대표되는 줄푸세정책이 자산경제 물길을 새 단계로 올려놓았다.
윤석열 정부는 묻지마 줄푸세 2.0정부다.
미국 바이든의 정책(확장재정, 부자증세, 친노동, 학자금부채탕감)의 절반만 해도 정권도 살고 나라살림과 민생도 숨이 좀 트일 텐데 시대착오적 역주행으로 나라살림은 엉망이고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렸다.
숨막히는 긴축재정 기조에도 세수부족이 엄청 심각한데 눈앞 선거라고 또 감세폭탄을 던진다.
심지어 안전진단 없는 재건축이라니(1·10대책).
안전판 없는 윤석열리스크,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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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18:09(나)
'로비의 달인'의 노골적인 친일 구직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갑병
김종성(qqqkim2000)
24.01.28
그가 유별나게 자리에 연연했다는 점은 또 다른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을 중추원 참의로 만들어준 사이토 총독에 대한 집착이 여기서 나타난다. 에 따르면, 윤갑병은 퇴임한 사이토에게 의견서를 보내 "그의 퇴임 이후 한국 정세를 걱정하며 그의 조속한 재부임을 간청하였다"고 설명한다.
의견서에서 그는 또 다른 한국인의 자리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실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다. 위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총독부 국장(학무국장)을 지냈던 이진호의 해직을 애석해 하며 총독으로 재부임해 오면 한국인을 더욱 많이 국장으로 임명해줄 것을 간청하고, 바로 뒷면에 자신이 한일합병 이래 얼마나 일제를 위해 분골쇄신했는가 하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총독부 국장은 지금으로 치면 장관급이었다. 그런 자리에 한국인들을 많이 기용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자기 자신의 충성 경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윤갑병은 1924년 12월부터 1933년 12월까지, 1934년 4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이 외에 부지사급이나 도지사 관직도 지냈고 각종 친일단체 간부직을 맡았다. 거기다가 광업권을 설정하고 임업용 토지를 대여받는 일도 있었으니, 그가 확보한 친일재산의 규모가 상당했으리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친일재산을 발판으로, 그는 지침 없는 친일 행각을 이어갔다. 에 따르면, 70대 중반 때인 1939년에는 '일본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그 이유'라는 글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아 단결이 세계평화의 절대 조건이라며 "유색인종을 유린해서 번영을 꾀하는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국가는 모두 일본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또 1942년 중추원 회의 때는 "반도 모든 동포로 하여금 속히 황국신민의 실질을 완비토록 하는 것에 시정의 중심에 둘 것"을 촉구했다. 그렇게 맹렬한 대일 충성을 이어가던 그는 패망 2년 전인 1943년 1월 5일 사망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9524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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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1-28 18:09(가)
'로비의 달인'의 노골적인 친일 구직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갑병
김종성(qqqkim2000)
24.01.28
1919년 3·1운동은 일본을 멈칫하게 했다. 강압적인 무단통치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3·1운동 뒤에 취임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은 전임 총독들이 즐겨 쓰던 '동화'라는 용어의 사용도 극도로 절제했다.
1919년 8월 30일 자 '조선통치방침'에 따르면, 사이토 신임 총독은 "종래 조선 통치를 언론하난 자는 필히 내선인의 동화를 태급히 하난 고로 기처(其處)에 난관이 생하난도다"라고 말했다. 내지인과 조선인의 동화를 너무 급히 추진해 거기서 난관들이 생겼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백년 후의 동화를 망(望)함이 근본적 통치이라"라고 말했다. 동화정책을 천천히 추진하겠다며 한국인들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을 업그레이드시킨 반면, 친일파들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포스트 3·1운동'에 대비해 나갔다. 이 시기 친일파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국민협회에 참여한 윤갑병의 사례다.
1919년 8월에 결성된 협성구락부를 모체로 1920년 1월 18일 설립된 것이 국민협회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3-3권 국민협회 편에 따르면, 이 단체는 설립 취지문에서 "일본은 이미 옛날의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토지와 인민을 포괄하는 새로운 일본이 되었다"라며 "바꾸어 말하면 일본민족만의 일본이 아니라 일·선 양 민족의 일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나타난 신일본주의의 핵심 메시지는 일본과 더불어 한국도 주체가 되는 신일본이 형성돼 있으니 일본에 적개심을 품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 취지문은 "우리는 이러한 사실과 자각에 입각하여 내선인 간에 존재하는 구거(溝渠)를 철거하여 혼연일가가 되고 공고한 국가를 형성하여 일·선 민족공존의 대의를 완수하려 한다"고 선언했다. 식민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도랑을 철거하고 완전히 하나의 집안을 이뤄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국민협회를 조직한 인물은 친일 언론인인 민원식(1886~1921)이다. 생몰 연도에서 확인되듯이 그는 국민협회 설립 이듬해에 사망했다. 국가보훈부가 1990년에 발간한 제8권 양근환 편에 따르면, 3·1운동 이듬해에 민원식은 도쿄 제국호텔에서 만난 유학생 양근환이 한국 상황을 질문하자 "국내는 아주 평온하지"라며 독립운동가들을 폭도로 불렀다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 뒤에 국민협회를 떠맡은 인물 중 하나가 윤갑병이다. 제2권 윤갑병 편은 "1925년 1월 민원식·김명준의 뒤를 이어 국민협회 회장을 맡았다"고 한 뒤 "1926년 이후 국민협회 회장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한다.
일본이 장악한 상태에서 행정 관료로 변신해 복귀
윤갑병의 출생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 에는 1864년으로 적혀 있고, 제4-11권에는 1863년으로 쓰여 있다. 이 시기에 평안도 의주에서 출생한 그는 임오군란이 일어난 해인 1882년에 종9품 무관인 어영청 초관(哨官)이었다. 중앙군인 어영청의 하급 장교로 있었던 것이다.
그는 20대 후반인 1890년에 군인 신분으로 유배형을 받았다. 주상 비서실 일지인 음력 고종 27년 11월 7일 자(양력 1890년 12월 18일 자) 에 따르면, 전보총국 직원과 짜고 전보를 훔쳐본 뒤 거짓 전보를 쳐서 상인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 발각돼 함양군에 약 1년간 유배를 가게 됐다. 전보통신의 신뢰성을 깨뜨린 점이 재판에서 비중 있게 고려됐다.
1891년 12월까지 유배형을 산 그는 그 뒤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가 1993년에 펴낸 제1권 윤갑병 편은 "일본에 건너가 근대 문물을 견학하였으며, 중국에도 가서 중국의 변화하는 정세를 살피고 돌아왔다"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인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의 요청하에 청나라군이 들어오고 그런 요청 없이 일본군이 덩달아 들어왔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고종 31년 6월 21일(1894년 7월 23일) 동학군 본부가 아닌 경복궁을 점거하고 조선 정부를 장악했다.
이때 일어난 일이 윤갑병의 복귀다. 에 따르면, 음력 7월 16일(양력 8월 16일)에 그는 내무아문 주사에 임명됐다. 일본이 조정을 장악한 상태에서 행정 관료로 변신해 복귀했던 것이다.
그 뒤 궁내부 주사, 농상아문 참의, 충남 정산군수 등을 역임한 그는 러일전쟁 때인 1904년에 일진회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친일의 길을 걸었다. 이때 일본군 지원을 위한 일진회 북진수송대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돼 1908년에 일본 훈장인 서보장을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어 1907년에 함북관찰사가 된 그는 일제 치하에서 강원도 도지사,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참의 등의 고관을 지냈다.
그가 회장을 역임한 국민협회는 신일본주의를 선전해 3·1운동 이후의 한국 대중을 견제했다. 그런데 신일본주의는 일본 정부와 총독부에 대한 어필이라는 측면도 컸다. 이 주의는 일본을 상대로 친일파들의 지분을 요구하는 도구가 됐다.
2006년 제62권에 실린 송규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의 논문 '일제하 참정권청원운동의 논리'는 "신일본주의는 일본과 조선 민족공동의 국가인 새로운 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며 한국인이 신일본에 충성하는 대신에 신일본은 "조선인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한국과 하나가 된 신일본이므로 참정권 일부를 한국인들에게 떼어줘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는 3·1운동의 충격을 받은 일본을 상대로 친일세력의 정치적 지분을 요구하는 데 활용됐다. 3·1운동을 조롱하고 비판한 친일파들이 이 운동을 자신들의 대일 발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런 쪽의 이해관계에 밝은 친일파들이 모인 단체가 국민협회였다.
윤갑병은 그 같은 국민협회의 특성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로비의 달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상당히 노골적으로 관직을 추구했다. '친일 구직'의 수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별나게 자리에 연연
위 은 국민협회 회장에 취임한 1925년을 전후한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여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여덟 차례나 총독을 찾아가고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 자신의 친일 행적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으며 출세를 애걸했다"고 설명한다. 이 로비는 성공했다. 그는 1924년 12월 24일부터 지금의 국회의원급인 중추원 참의 직을 수행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9524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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