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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8 23:20대한민국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득신 작가
2023/10/18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또는 대한민국을 떠나 살고 있어도 대한민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그렇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
이것은 정권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들 각자는 이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자유가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싫어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기는 하다.
하나는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지난 100여년 동안 강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도 많았지만, 스스로 그 이민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이민은 존중해야 마땅하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일 수 있다.
모든 지구인에게 그렇게 행동할 자유와 권리가 무제한 주어진다면, 지금 당장 수십억명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길이다.
이것 역시 존중해야 마땅한 실존적 선택이다.
다른 국적을 취득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인이 이 길을 걸었다.
이 일은 나라 밖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기 위해 4.19 혁명을 경험했으며,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항쟁을 거쳐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까지 이루어 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윤석열 탄핵을 부르짖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다른 모든 국가가 그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바친 열정과 헌신, 눈물과 희생의 산물이다. 박정희 한사람이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민 각자의 노력이 개인의 삶과 국가의 위상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더 훌륭한 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을 위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애썼으며,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훌륭한 국가일까.
어떤 객관적 지표나 평가기준을 만들수도 있겠지만, 종국적으로는 각자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달리 할 수있을 것이다.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의 모습일 것이다.
국가는 수천년 전에 생겨났으며, 그 오랜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면 오직 악만을 행하지도 선만을 행하지도 않았다.
오늘날에도 모든 국가들이 선과 악을, 정의와 불의를 동시에 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는 과거에 비해 악을 더 적게 선을 더 많이 행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고 믿는다.
이것이 문명과 역사와 인간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훌륭한 삶도 존재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묻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도전한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 10.29 이태원참사를 생각하게 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선을 향한 국가의 모습에서 다분히 역행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역사의 퇴보이기도 하며 인류 역사의 퇴보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영역이며 선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지사들의 험난한 투쟁을 생각한다면, 이념 따위는 논의의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대한민국의 퇴보하는 역사 속에 소용돌이치는 질곡으로 들어와 있다.
과거의 역사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헤쳐 나가야할 운명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집회의 현장에서 더 나은 개인의 삶과 대한민국을 위해 구호를 외치며 투쟁을 이어가는 수많은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https://www.amn.kr/4556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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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8 18:42((꼭+ 반드시+ 필히 읽어 봐야만 하는 글))
[조하준의 직설] 의사들의 '선택적 분노'에 분노한다
의사들의 강약약강 태도와 그것이 주는 교훈
조하준 기자
승인 2023.10.18
문재인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엔 총파업을 하고 기를 썼으면서 윤석열 정부 앞에서는 눈을 내리까는 '의레기'들의 '선택적 분노'를 풍자한 본지 서라백 작가의 만평.
최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계획을 놓고서 다시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바이러스-19가 창궐하는 와중에도 파업을 했던 의사들이 윤석열 정부 치하에선 조용한 것이 참으로 아리송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선택적 분노’가 아니냐는 비판이 의사들을 향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선택적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지난 16일 의협신문 기사를 통해 나왔다.
의협신문의 16일 〈의대 증원 소식에 '동맹휴학' 꿈틀 젊은 의사 투쟁 또 앞장서나?〉란 기사를 보면 이렇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계획에 젊은 의사들이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섰으며 특히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동맹휴학'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전공의들의 경우 의대 정원 증원이 결정되면 파업을 진행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윤석열 정권에서는 파업 자체를 신중히 고려해야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걸작인데 기사에 나온 부분을 그대로 따오면 이렇다.
한 전공의는
"윤석열 정권에서 파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만큼 파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파업에 직접 참여하기엔 조금 꺼리는 경향도 있다"며 "지난 정권과 달리 이번 정권에서는 자칫 감옥을 진짜로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흘러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즉, 문재인 정부는 ‘보복’을 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마음껏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자신들을 때려잡아 감옥에 보낼 가능성이 높아서 무섭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선택적 분노’의 원인이다.
실제로 지난 2000년에 의약분업을 놓고 의료계 파업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때 의료파업을 주도했던 의사들을 재판에 넘겨 1심에서 전원 유죄를 받은 검사가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전공의들이 더욱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신조어로 강약약강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한 태도를 말한다.
의대생들과 의사들의 태도가 그렇다.
지난 2020년 8~9월에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을 중심으로 의료계 파업이 발생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추진 관련 법안에 대한 반발로 총파업을 했다.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당시 코로나바이러스-19가 창궐하고 있었던 시점이란 것이다.
현재 마스크를 벗고 다녀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2020년 당시 코로나바이러스-19는 흑사병에 비견될 정도로 전 지구를 뒤흔들었던 엄청난 전염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고 저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의료 공백 우려와 코로나바이러스-19와의 싸움이 더 급했기에 의료인들을 상대로 강경하게 나설 수가 없었다.
때문에 2020년 9월 4일 당시 대한의사협회장 최대집을 불러 합의안을 작성해서 그들을 다시 현장으로 복귀시키는데 주력해야 했다.
설령 그 당시 자신들이 했던 파업이 이익 수호가 아닌 나름의 대의를 위해서 행한 결단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도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디로 숨었고 전공의들은 왜 눈치를 살살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3년 전엔 의사들의 이권 수호에 분노했다면 현재는 그들의 ‘선택적 분노’에 더욱 분노하게 된다.
정치 유튜버 언론 알아야 바꾼다는 “이번 사건은 앞으로 민주 세력이 집권할 시 참고해야 할 반면교사이다.”고 했다.
그는 “배려, 타협, 협치도 사람 가려서 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주어진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 또한 과거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나는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좋은 방향으로.”고 한 바 있다.
그러면서 “용서나 화해, 화합은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지고 반성한 사람하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도하고는 화해하는 게 아니야.”라고 했다.
필자 또한 그에 동의한다.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불공정’ 행태에 분노했다던 대학생들은 현재 윤석열 정부 인사들에 대한 비리에는 놀라울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에 들고 일어났던 의료인들은 윤석열 정부 앞에선 꼬랑지를 내리고 있다.
그 밖에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제 펜 놀리는대로 아무 기사나 막 써가며 물어뜯었던 ‘기레기’들은 윤석열 정부 앞에선 공손하기 그지 없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 정부는 만만하고 보수 정부는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민주 정부도 화가 날 때는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필자는 독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강을 잡을 때는 기강을 잡아야 하고 권한을 사용해야 할 땐 사용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법과 정치가 마냥 부드럽기만 해서는 절대 나라를 통치할 수가 없다.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병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 민주 정부였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살펴보면 ‘민주’라는 단어에 너무 함몰되어 마냥 부드럽게만 다가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덕분에 사회 개혁이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출항했지만 정작 개혁은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의 적폐 삼위일체로 꼽히는 것이 재벌, 언론, 검찰인데 그 셋 중에서 민주 정부 시절에 제대로 개혁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70년 넘게 이어진 저 끈끈한 카르텔을 단 5년 만에 끊어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가 저 적폐 삼위일체와 맞서 싸울 때 제대로 칼을 뽑지 않았다는 점도 부인할 수가 없다.
필자가 작년 대선 패배의 원인 중 제 1순위로 꼽은 것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우유부단함’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분명히 인품이 훌륭한 신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폐 세력과 맞서 싸울 때는 신사가 아니라 전사가 되었어야 했다.
이재명 대표의 말대로 신사적인 태도는 상대도 신사일 때나 보이는 것이다.
괴물을 상대로 신사적으로 다가가면 그 괴물에게 공격을 당해 죽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찰이란 괴물 앞에서도 너무도 신사적이고 부드럽기만 했다.
그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며 레임덕 없는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가 너무 부드럽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의료인들의 ‘선택적 분노’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이젠 깊이 새겨야 한다.
‘애들을 귀해하면 어른 머리에 상투를 푼다’는 속담은 절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병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00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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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7 00:29((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선거의 결과로 드러나는 보수의 맨얼굴
이득신 작가
기사입력 2023/10/16
예상대로 그들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선거의 패배이후 며칠 침묵하던 그들이 내민 카드는 임명직 당직자들의 사퇴였다.
선출직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자리를 보전했다.
역시 다분히 그들다운 행보였다.
윤석열의 바지사장인 김기현이 당대표를 사퇴한다는 것은 선거 패배의 책임이 윤석열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김기현이 물러날 리는 없는 노릇이다.
이 와중에 안철수와 이준석의 설전도 흥미롭다.
게다가 홍준표 대구시장은 장수가 패배의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해대고 있는 중이다.
선거 전부터 범죄자를 공천한 문제가 고스란히 그들의 패배로 연결된 것이다.
윤석열이 제기한 이념전쟁과 홍범도 장군의 동상이전 문제,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한 세력을 공산전체주의로 몰아붙이는 형국에서 국민들은 등을 돌리는 중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보여준 무능과 패악질의 총합이 이번 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들이 그 동안 보여 왔던 모습들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극우와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맨얼굴을 숨기고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형식을 내세우곤 했다.
보수는 전통, 현재의 체제와 구조, 문화와 규범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지키려는 사상이다. 그 사상은 엄중하고 엄정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자신들을 스스로 보수라고 부른다.
보수의 정신과 품격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보수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보수는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친일주의자, 사대주의자, 전체주의자, 파쇼들이 보수를 도용하고 있다.
폭력, 생떼, 억지주장, 집단난동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부를 수가 없다.
누구나 뻔히 보는 앞에서 약자의 것을 빼앗고, 나랏돈을 제 돈처럼 챙겨 빼먹는다면, 어찌 이들을 보수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과 손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강자에게 빌붙어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어찌 보수라 칭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구나 두려움 없이 할 말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권리이다.
이를 침해하고 억누르려는 자는 절대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왜 대한민국의 보수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아 과거를 조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비판하면 먼저 입을 막으려 한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위협한다.
지금은 공산전체주의라는 신조어을 만들어 공격한다.
그렇게 대한민국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을 연명해 왔다.
사회와 문화, 국가, 지역에 따라 보수의 가치와 이념은 달라지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보수의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품격이다.
보수는 근대이래로 시대의 승자요, 주류였다.
정정당당한 승자로서의 태도를 갖춰야 한다.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에는 어떠한 제한도 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신념이 있어야 진정한 보수라고 말할 수 있다.
면제를 대물림하는 자,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자신들의 의무를 결코 등한시하지 않는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권력으로 치부를 가리는 자,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법을 지키며 공익을 중요시 한다.
입을 막고 종북과 좌빨을 외치는 자,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비판에 당당하다.
자신이 가는 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권력의 그늘에서 시민의 피를 빠는 자,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자,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민주주의 파수꾼이며, 민족을 핍박했던 자들을 향해 분노한다.
민족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과거를 엄격하게 평가하며 화해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보수다.
이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은 보수라 말할 수 없다.
수구세력이자 파쇼이며 나찌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다를 없는 자들이다.
진짜 보수가 아니면서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대한민국사회의 부정부패 비리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연명하기 어려워지니 가짜와 위조들이 그들의 간판 노릇을 해 온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을 내세웠다.
그들의 간판으로는 갈수록 드러나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우니 그들은 각종 힘을 이용해 자신들의 추잡함을 감춰왔다.
과거에는 군부의 힘을 이용했고 지금은 언론의 힘과 검찰의 힘을 이용하여 그들의 부패를 감추려고 한다.
그렇게 못된 힘을 이용하는 세력의 정당 이름이 ‘국민의힘’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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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6 20:58((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4형제·국내 잠입·예술... 독립운동가 이육사와 정율성의 공통점
[황광우의 역사산책22] 두 분이 걸어간 여정
23.10.16
황광우(madox58)
지난 10월 1일, 광주 양림동 정율성 공원에 설치되어 있던 정율성의 동상이 파괴되었다.
참담한 일이었다.
이럴 수가. 분단의 상흔이 이렇게 길게 드리우는가!
나는 현장에 달려갔다.
지나가는 한 시민이 말했다.
"저 양반 동상은 중국에 설치되어야 해."
나는 시민에게 다가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아니예요. 정율성 선생은 광주의 대표적인 자랑스런 독립운동가랍니다.
정율성 형제 4분이 모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어요.
큰 형은 상해임정 요인이었구요. 둘째형과 셋째 형은 의열단 단원이었습니다.
율성(律成)은 호인데요, 노래로 독립을 이루리라는 뜻이랍니다.
해방은 되었으나 고향 광주에 돌아올 수 없었던 비운의 독립투사였지요."
"(끄덕끄덕) 그런가요. 내가 잘못 알았네요."
일제강점기 4형제가 항일투쟁에 앞장 선 경우는 드물다.
안동의 이육사와 광주의 정율성 집안의 4형제가 독립의 대의에 청춘을 바쳤다.
이육사는 1904년생이고, 정율성은 1914년생이다.
정율성이 이육사보다 열 살 어리지만, 두 분이 걸어간 여정은 사뭇 흡사하다.
독립운동의 길 걸은 4형제
이육사는 6형제였다.
원기(源祺)와 원록(源祿), 원일(源一)과 원조(源朝), 원창(源昌)과 원홍(源洪)이다.
이육사는 6형제 중 둘째였다.
둘째 이원록이 우리가 아는 이육사의 본명이다.
1927년 대구조선은행 폭탄사건으로 4형제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 사건으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정율성은 광주에서 태어났고, 능주에서 소학교를 다녔다.
정율성의 두 형 효룡과 충룡은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
일경의 추적을 따돌리고 두 형은 그해 상해로 떠났다.
효룡은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이 되었고, 여러 차례 옥살이를 하던 끝에 죽었다.
충룡은 의열단의 일원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1927년에 죽었다.
셋째 형 의은 역시 이름 그대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생이 되었고, 졸업 후 신입생 조직의 임무를 띠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때 형 의은이 중국으로 데려간 동생이 있었으니 그가 정율성이다.
이육사의 형제들처럼 정율성의 4형제도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
이육사는 의열단의 지도자 윤세주의 감화를 받아 단원이 되었다.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하고 신입생 조직의 임무를 띠고 국내에 잠입하다가 체포되었다.
즉, 이육사는 정율성의 형 정의은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동기생으로, 둘 모두 신입생 조직책으로서 국내에 잠입하였다. 정의은은 호남 일대에서 신입생을 모집하였고, 이육사는 경상도 일대에서 신입생을 조직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
두 사람의 스승
이육사를 의열단의 길로 이끈 윤세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태항산에서 전사한 윤세주 선생의 무덤을 찾아 2005년 중국에 간 적이 있다.
나는 태항산이 서울의 관악산이나 광주의 무등산처럼 우뚝 솟은 산봉우리인 줄 알았다.
가서 보니 태항산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처럼 거대한 산맥이었다.
태항산 여행을 마치고, 장츠대학의 총장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 참석했다.
총장의 비서는 '중국인들은 70도가 넘는 독주를 유리잔으로 세 잔을 마셔야 친구로 맞이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삼배 제의를 환영하오. 나는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친 중국과 조선의 연대를 기념하는 의미로 마시겠소.
1942년 일본은 주력군 3만여 명을 동원하여 팔로군의 태항산 근거지를 공격하였소. 이때 팔로군과 조선의용군은 일본군의 소탕에 맞서 함께 대항하였소.
일본군에게 포위를 당한 팔로군의 탈출로를 뚫은 조선 청년이 있었소.
그의 이름이 윤세주요.
당신네 나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자 등소평의 목숨을 구해준 이가 윤세주임을 잊지 말길 바라오."
그리고 나는 독주 세 잔을 연거푸 마셨다.
장츠대학교 총장을 모시던 청년은 세 잔을 다 마시지 못하고 내 앞에서 고꾸라졌다.
의열단의 지도자는 김원봉과 윤세주였다.
윤세주가 이육사의 스승이었다면, 김원봉은 정율성의 스승이었다.
정율성은 1933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하였고, 졸업 후 김원봉의 명령에 따라 일본인 첩보활동에 종사하였다.
님 웨일즈가 쓴 을 보면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인 첩자 혐의를 쓰고 죽는 비운의 혁명가 김산이 나온다.
김산은 정율성의 매부 박건웅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고, 정율성은 여기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1937년 항일투쟁의 본거지 연안으로 들어갔다.
글과 음악
이육사는 시인으로, 정율성은 음악으로 항일투쟁에 종사한 점도 흥미롭다.
국내에 잠입하다 체포된 이육사는 감옥 생활 끝에 몸이 망가졌다. 더는 활동할 수가 없었다.
의열단의 밀명을 계속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투쟁 대열에서 이탈할 것인가, 진로를 고뇌했다.
마침내 선생은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치는 작가의 길을 결심하였다.
'청포도'를 썼고, '광야'를 발표하였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라며 호방한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시인의 펜은 칼보다 강하고, 음악가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
육사의 호가 옥살이의 고통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듯이, 율성(律成)의 호는 노래로 독립을 이루리라는 결의였다.
정율성은 연안송을 작곡하여 중국 인민을 항일의 길로 불러들였다.
연안 보탑산 위에 노을이 불타오르고
강변에는 달빛이 흐르네
봄바람은 들판으로 불어오는데
산과 산들이 철벽을 만들었네
아, 연안 장엄하고 위대한 도시여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아, 연안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케이팝(K-pop)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연일 방탄소년단(BTS)이 전 세계에서 올리는 성취를 입에 담기에 바쁘다.
20세기 한류의 대표는 정율성이었다.
또한 앞으로도 중국 인민이 있는 한 정율성의 연안송은 영원할 것이라고 본다.
1943년 1월 1일, 육사는 신석초와 함께 눈길을 걸었다.
답설을 하면서 육사는 조용히 속삭였다.
"가까운 날에 난 북경으로 가려네."
선생은 왜 북경에 잠입했을까?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부음이 왔다.
동생 원창이 북경으로 달려갔으나 선생의 유해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있었다.
해방은 되었으나 정율성은 고향에 올 수 없었다.
해외에서 독립투쟁을 하신 분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노후는 쓸쓸했다.
"조선인은 나를 중국 사람으로 여기고 중국인은 나를 조선사람으로 여긴다. 차라리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냥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
이육사가 북경에서 일본놈의 고문에 죽었듯이, 정율성도 북경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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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5 18:26((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대구 10월항쟁' 증폭시킨 친일파, 역설적인 기여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성옥
김종성(qqqkim2000)
23.10.15
▲ 1946년 10월 2일, 대구 태평로 삼국상회 부근에서 경찰이 진압을 벌이고 있고 왼쪽에는 시위 군중들이 경찰의 발포에 쫓기고 있으며 도로가에는 시민 여러 명이 쓰러진 모습. ⓒ 10월항쟁유족회
윤석열 정권처럼 친일 문제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경고가 우리 현대사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
그중 하나는 미군정하의 대구 10월항쟁(대구 10월 사건)이다.
대구 10월 폭동으로도 불렸던 이 사례는 친일청산과 관련된 한국인들의 분노가 일단 한번 터지고 나면 물불 가리지 않는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46년에 발생한 이 사건의 주역들은 흔히 '좌익'이나 '좌파'로 불린다.
그런데 이 당시의 좌파나 좌익은 엄밀히 말하면 항일 운동가였다.
이들은 해방 당일인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좌경화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미 그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일제강점기 때 좌파 이념을 공부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좋아서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항할 생각으로 그 이념을 공부했다. 일본제국주의의 모순과 약점을 찾아내자면 그 공부가 최선의 길이었다.
이렇게 일제에 대항할 목적으로 좌파 이념을 공부한 사람들이 10월항쟁의 전면에 섰다.
항일 운동가 출신들이 이 운동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들이 궐기한 것은 미군정의 경제적 실정이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일파 청산이나 제국주의 청산이 미군정하에서 진척되기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월 항쟁이 친일문제와 관련됐다는 점은 학계 논문에서도 충분히 강조됐다.
2004년에 제75집에 실린 역사학자 허종의 논문 '1945~1946년 대구 지역 좌파세력의 국가건설운둥과 10월인민항쟁'은 이렇게 평한다.
"10월인민항쟁은 미군정이 친일 경찰을 비롯한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을 군정의 요직에 기용하고 경제정책의 실패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무엇보다 자주적인 민족국가 수립에 대한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2016년에 제16권 제2호에 게재된 김상숙 단국대 강사의 논문 '1946년 10월 항쟁과 대구 지역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10월 항쟁은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 잘못된 식량정책과 민생정책, 토지개혁 지연, 미소공위 결렬 후 좌익세력 탄압 등의 정세를 바탕으로 일어났다"고 평한다.
10월항쟁은 미군정의 지배가 친일청산이나 제국주의 청산을 도외시했음은 물론이고 이 지배가 한국인의 경제생활에도 해악을 끼쳤다는 점을 역사에 남기는 기능을 했다.
일제 식민지배뿐 아니라 미군정 지배체제 역시 우리 민족의 체질에 맞지 않았음을 후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에 더해, 이 시대 한국인들이 미군정의 통치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생생한 증거도 함께 남겼다.
10월항쟁이 그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사건이 10월 한 달로 그치지 않고 그해 12월 중순까지 계속된 데도 기인한다.
또 대구나 경북에 한정되지 않고 남한 내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파급된 것도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10월항쟁은 짧게 보면 실패했지만, 역사에 증거를 남기고 다음 세대에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사례였다.
친일경찰 이성옥
그런데 이 사건이 그만한 성과를 내는 데 역설적 방법으로 기여한 인물이 친일경찰 이성옥이다.
친일보수 진영이 볼 때 그는 어이없는 행동을 했다.
그의 행동은 미군정에 맞서는 우리 국민들이 강력한 대항 수단을 갖게 만들고 10월항쟁이 생명력을 보유하도록 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런 점에서, 이성옥은 역설적 의미의 10월 항쟁 유공자다.
이 친일 경찰은 동학혁명 발발 전년도인 1893년 6월 8일 경상도 진주에서 출생했다.
제2권 이성옥 편은 그가 30세 때인 "1923년부터 경상북도 왜관경찰서 경부보를 지냈다"고 알려준다.
대한제국 멸망 13년 뒤인 1923년에 '순사' 바로 위인 '경부보'였던 그는 이듬해에 '경부'로 진급하면서 안동경찰서로 옮겨갔다. 그 뒤 김천경찰서·안동경찰서·포항경찰서를 거쳐 1938년에 대구경찰서로 갔다가 2년 뒤 안동경찰서로 되돌아갔다.
한편, 1940년부터는 경찰 일을 하면서 대구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도 겸했다.
촉탁보호사의 임무는 사상범의 재범을 막는 일이었다.
석방된 항일투사들의 '원대 복귀'를 저지하는 임무를 겸했던 것이다.
이성옥은 늦어도 3·1운동 4년 뒤부터는 일본의 녹봉을 받았다.
26세 때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목격하고도 일제 경찰복을 입은 것을 보면, 3·1운동 당시 그가 시위대에 어떤 시선을 보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으로 늦어도 1923년부터 일왕의 녹봉을 받다가 20년 뒤인 1943년에야 퇴직했으니, 그의 재산은 사실상 친일재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친일재산을 축적하는 중에 그에게 수여된 표창도 많았다.
1932년에는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인 쇼와(昭和)를 딴 '조선 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고,
1938년에는 훈8등 서보장이라는 훈장을 받고, 그 뒤에는 '지나사변 공로자 공적조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본이 1937년에 일으킨 중일전쟁의 공로자로 선정됐으니, 이보다 확실한 '친일 인증'은 없을 것이다.
그에 더해, 1940년에는 일본 왕조의 역사가 2600년임을 전제로 하는 '기원 2600년 축전 기념장'을 받았다.
그런 뒤인 1943년에는 경부 위의 경시로 특진하면서 퇴직했다.
이때 훈7등 서보장이 수여됐다. 일본의 시각에서 볼 때 그는 모범적인 경찰이었다.
이성옥은 해방 2년 전에 경찰을 그만뒀다.
그런 그가 해방 이듬해의 대구 10월 항쟁에 소환된 것은 그해에 미군정이 그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1946년 4월 13일자 '인사 왕래'는 "이성옥 씨(대구경찰서장) 입경 인사차 내사"라며 경찰서장이 된 이성옥이 서울을 방문해 동아일보사에 인사차 들렀음을 알려줬다.
▲ 1946년 4월 13일 자 기사 "이성옥 씨(대구경찰서장) 입경 인사차 내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미군정의 실정과 친일청산 문제
미군정이 그런 친일 경찰들을 중용한 일을 합리화하는 논리 중 하나는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그런 테크노크라트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 당일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전국 치안을 신속히 장악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굳이 친일 경찰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치안은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었다.
민중의 지지를 받는 그런 기구가 있었는데도 굳이 친일 경찰을 중용한 사실은 미군정의 반역사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표다.
청산돼야 할 것을 사수하는 그 같은 반역사성을 드러냈기에 그것에 대한 저항이 10월항쟁의 모습으로 대구에서 폭발하게 됐던 것이다.
10월항쟁은 그달 1일부터 전개됐다.
이날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한 것이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다음날 대구경찰서·대구역·대구부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시위대가 대구경찰서 등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은 미군정은 강경 대응을 모색했다.
미군정의 존 프레지아 소령은 경북을 관할하는 제4관구경찰청장 권영석과 대구경찰서장 이성옥에게 군중 해산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성옥은 경찰서 앞으로 몰려드는 대구시민들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일제는 그에게 각종 훈장과 기념장을 수여했지만, 한국 민중이 궐기한 이 상황 앞에서 이성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찰이었다.
위의 허종 논문은 이성옥과 권영석이 그날 오전에 보여준 모습을 이렇게 서술한다.
"이들은 군중 해산에 소극적이었고 11시 45분경 경찰이 무기와 제복을 버리고 군정 막사로 피신하였다. 이어 12시경 프레지아 소령도 경찰서를 떠나자, 군중들이 경찰서를 점거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유치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석방하였다."
이성옥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대구 민중의 손에 무기를 쥐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미군정의 초기 대응을 약화시켜 10월 항쟁이 보다 강력하게 퍼지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행동은 미군정의 경제적 실정과 반역사성을 고발하는 대구시민들의 목소리가 전국적 호응을 얻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이 항쟁이 역사에 기록되고 역사적 과제를 남길 정도로 강력한 양상을 띠도록 하는 데도 긍정적 작용을 했다.
미군정의 실정과 친일청산 문제가 한국 민중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더욱 널리 알려지도록 데에 친일파 이성옥이 역설적 의미의 기여를 했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한일협정을 강행하는 박정희 정권의 친일 노선에 맞서 1964년과 1965년에 거국적으로 궐기했다.
이 일은 박정희가 군복을 벗고 민간정부 대통령의 외피를 입었을 때 일어났다.
그에 비해 10월항쟁은 현역 미군들로 구성된 미군정에 맞서 일어났다.
제주 4·3항쟁(4·3사건)과 이 일은 그 정도로 대담한 사건이었다.
미군정하에서도 친일 문제에 불만을 품었고 그것이 봉기로 이어지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것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친일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잘 증명한다.
대구경찰서장 이성옥의 근무지 이탈로 인해 한층 선명해진 우리 국민들의 역사청산 의지를 윤석열 정권은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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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4 02:51[컬쳐 인사이드] 영화제가 너무 많은 게 문제일까?
굿모닝충청
승인 2023.10.13
전국 224개 시·군·구에서 열리는 영화제만 220개라며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이러한 지적이 심해졌다.
심지어 너무 많다는 주장에 영화제 관련 내년도 정부예산 삭감이 대거 이뤄졌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오히려 영화제는 더욱 많아져야 하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더는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관객들과 OTT 플랫폼이 영화관의 위기를 가속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한국 영화산업을 견인할수록 오히려 소외되는 영화와 관객이 많아지기에 영화제는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문화 향유에 대한 욕구와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며, 참여의 문화행사에 열광하는 대중적 방증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제에 대한 비판의 논지를 살피면서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어떤 이들은 영화제가 지역주민의 문화복지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화인들만의 축제라는 시각이 비등한 주장이다.
일부 영화제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영화제들은 지역주민이나 관객을 중심으로 영화제 콘셉트와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전국에 영화제가 많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제가 영화인들의 축제라는 점 자체가 크게 문제인지도 알 수 없다.
영화제는 상업성과 블록버스터 중심의 영화산업 풍토에서 참신하고 혁신적인 실험을 통해 영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영화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앞서가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체성의 영화제가 아니라면 문제일 뿐이지 영화제의 본질은 분명 옳다.
또한, 그들은 영화제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에 낭비가 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제는 몇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영화제는 영세하다.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열리는 소규모 영화제들이다.
알음알음 갹출하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영화제들은 오히려 밀착 관계와 친교 형성이 가능하다.
비대면 문화가 많아질수록 이러한 친밀한 관계성의 영화제는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영화제에 전문인력이 부족하므로 문제라고 말한다.
영화제는 사전에 전문인력을 갖추는 것만 생각할 수 없다.
영화제를 통해서 전문인력이 육성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영화인력들이 트레이닝을 받을 좋은 기회와 과정이 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전문인력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영화제가 많을수록 젊은이들이 일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
해외 특히 프랑스보다 영화제가 더 많기에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문화 향유가 잘 되어있는 나라에서는 영화제 같은 행사가 많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 문화 향유 기회는 많지 않다.
따라서 영화제가 이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아울러 해외와 비교해 숫자가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내실을 어떻게 기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 상황이 어렵고 긴축 재정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제 같은 행사는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위기의 상황일수록 오히려 투자를 늘려야 한다.
한국영화가 위기에 빠진 것은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내년에도 한국영화는 어려운 지경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민간 부문에서 영화산업에 투자를 꺼리거나 줄이는 상황에서 나서는 것은 공공부문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이 지나 K-영화산업의 과실만 취하고 생색낼 수만은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화관에 관객이 모이지 않은 것을 볼 때 영화제도 가치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관에 가지 않는 이유는 애써 갈 이유가 없기에 어디서나 똑같은 영화를 억지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멀티플렉스일수록 더욱 강하다.
다양한 영화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한 영화관의 역할을 영화제가 하는 셈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영화들은 볼 수 있거나 처음 접할 수 있다는 희소성과 차별성의 가치가 영화제의 동인이다.
더구나 직접 참여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영화인들을 직접 마주하며 상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비대면으로 비인간적인 사회가 될수록 더욱 소중한 장이 된다.
만약 영화제가 많아서 문제라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 숫자를 줄인다면 결국 대형 영화제 몇 개만 살아남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영화제들은 사라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영화제 축소론자들이 지적하는 문제 많은 대형 영화제들만 살아남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악순환을 낳는다.
많은 영화 속에서 좋은 영화제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경쟁력이 강화된다.
영화제는 알파 세대에게도 오래된 미래다.
영화제는 전 국민이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많아져야 한다.
모든 국민이 영화를 감독으로서 만들고 배우가 되며 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고 문화의 권리를 누리려는 이들이 모두 공유하는 행사이어야 한다.
비대면의 플랫폼이 자본의 동학으로 번창할수록 국민이 원하는 것은 대면의 교류와 상호작용의 욕구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더욱더 주목해야 한다.
그 속에서 스스로 창작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영화산업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산업 그리고 나라 전체의 창조성과 새로운 비전이 성립할 수 있다. 그것이 기반이 될 때 한국의 경제성장은 물론 민주국가로서 국가 브랜드도 격상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69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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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3 02:05세브란스 주4일제 실험에서 배운다
입력 : 2023.10.12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생존 단계에서 벗어나 자아 발전의 시간’,
‘실수하지 않고 마음을 쏟아 일하는 시간’,
‘불안과 슬픔이란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
지난 11일 세브란스 주4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간호사의 이야기다.
10분 남짓한 현장 발언이었지만 뭉클했다.
단지 하루 더 쉬는 것뿐인데 한 개인의 삶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병원 특성상 간호사는 교대제 근무 형태로 일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야간 근무까지 감내해야 하고, 시간 부족으로 끼니조차 제때 먹지 못하고 일할 때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간호사의 높은 업무 강도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간호사 10명 중 7명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이직 생각을 갖고 있다.
다수의 간호사들은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그냥 몇년만 버티고 나가자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유로 간호사 평균 근속기간은 7.5년에 불과하다.
불규칙한 교대 근무는 개인이 오랜 시간 감당하기에는 벅찬 조건이다.
병원 간호사 이직률 15.2%는 전체 산업의 3배나 된다.
왜 우리는 그동안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지 못했을까.
코로나19 시기 정부는 간호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2021년 9·2 노·정 합의 이후 예측 가능한 교대제와 교육 전담제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미흡하다.
세브란스 주4일제 사례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교대제, 야간·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4일제 시행 이전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간호사 ‘번아웃’과 퇴사·이직 의도가 감소했다.
의료사고 위험성은 낮아졌고, 환자 응대와 서비스 질은 향상됐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견과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의견이 대폭 감소했다.
단 하루지만 취미나 여가활동에 1시간8분 정도 더 할애할 시간이 생겼고, 자기 모색을 위한 시간에 44분을 더 쓰고 있다.
매년 3~6명의 간호사가 퇴사했던 병동에서 올해는 퇴사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주4일제는 개인의 연간 노동시간 단축(469시간20분)은 물론 출퇴근 교통시간 절약(52시간36분)과 같은 간접적인 효과도 확인된다.
향후 장시간 노동 해소와 건강,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과제로 ‘주4일제’와 같은 근무 형태를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6월2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간호사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환자 대비 간호사 인력과 배치,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관련 처우 개선, 적정 직무 교육훈련, 심리지원 체계였다.
병원 간호사들이 더는 일터를 버리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최근 한 조사에서 10명 중 5명은 주4일제를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할 곳으로 ‘교대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곳’이나 ‘산업재해 및 위험성이 높은 곳’을 꼽았다.
세브란스는 주4일제 실험과 연구조사를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추진한 첫 사례다. 주4일제 논의는 아이슬란드, 스페인, 벨기에 등 해외 사례가 소개되면서 본격화됐다.
스코틀랜드나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일부 지방정부에서도 주4일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균형 있는 노동시간 편성(1999년), 괜찮은 노동시간 원칙(2017년, 2019년)과 함께 간호사의 중단 없는 휴식과 연차휴가 개선조치도 권고한 바 있다.
핀란드는 간호사 주 48시간 이상 노동 규제를, 프랑스는 고령 간호사 노동시간 경감조치를 하고 있다.
세브란스 주4일제 실험에 참여한 간호사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도 찾을 수 있다.
“불과 몇개월 안 되지만 하루 더 쉬는 것뿐인데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고, 불안·슬픔 등 마음의 병을 치유할 시간이 주어졌어요.”
노동자 건강과 일과 삶의 균형은 이런 실제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012202401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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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3 01:39‘누칼협’
입력 : 2023.10.12
최민영 논설위원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마음이 병든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했을 때의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뇌는 같은 부위에서 인식한다. 나홀로 생존이 어려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도록 진화한 결과다.
외로운 사람은 우울증에 쉽게 빠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각종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라는 연구도 있다.
고립감이 극심해진 것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다.
2021년 저명한 영국 ‘사회심리학저널’에 국제연구진은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단절감, 경쟁, 외로움을 조장해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불평등 속에서 사회 결속력과 신뢰는 낮아지고, 실패를 완충해줄 공동체와 연대는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패는 오로지 개인이 나홀로 감당할 몫으로 당연시된다.
서로 의지하고 치유하는 경험은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며 어려워졌다.
를 쓴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외로운 개인들이 서로 공격하고 배제하며, 정치는 극단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정신건강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악화일로인 것은 이런 환경 탓이 크다. 지난 3월 ‘보건사회연구’ 논문을 보면 2030세대 42.1%가 지난 1년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사회에서 청년들은 잔뜩 날이 서 있다.
온라인 유행어가 단적인 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인 ‘누칼협’은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내가 알 바 아니다”의 ‘알빠노’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태도를 반영한다.
1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대회’에서 “청년의 정신질환은 사회적 질병이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신장애·은둔청년 당사자 모임 ‘펭귄의 날갯짓’의 이광호 사무국장은 “무한경쟁 속에 고통을 호소해도 공감은커녕 ‘누칼협’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면 청년우울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사회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31012185500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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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3 01:23고양지청서 민낯 드러난 검찰 특활비, 이대로 둘 건가
입력 : 2023.10.12
뉴스타파·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12일 공개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특활비) 지출기록 분석 자료는 베일에 가려 있는 검찰 특활비의 민낯을 보여줬다.
기밀 수사나 정보 수집 활동에 쓰여야 할 특활비가 불분명한 용처에 검사들 쌈짓돈처럼 사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취재단은 법원 판결로 2017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68개월간 총 869건의 고양지청 특활비 기록(먹지 등으로 가림처리)을 확보해 이 중 761건을 판독하는 데 성공했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검찰 특활비는 말 그대로 특수한 활동에만 써야 한다.
불가피하게 현금으로 사용했다면 증빙 자료 등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
취재단에 따르면 고양지청이 해당 기간 동안 지출한 3억5000만원가량 특활비는 3건을 제외하고 모두 현금으로 지출됐다.
그러나 지청장부터 말단 수사관까지 감사원 지침대로 어떤 수사나 정보 수집 활동에서 어떤 이유로 특활비를 썼는지 제대로 기록을 남기고 영수증을 첨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A지청장은 인사 발령으로 떠나기 사흘 전 일요일인 2018년 7월15일 특활비 150만원을 지출했다.
2017년 9월과 11월엔 대검 우수 사례에 선정된 B검사와 수사관들에게 포상금 등으로 각각 100만원의 특활비가 지급됐다.
정부 예산에 포상금 항목은 따로 있다.
따라서 특활비를 포상금으로 전용한 것은 기획재정부 예산 지침 위반이다.
C검찰총장으로부터 연말에 특활비가 갑작스럽게 하달된 사례도 있다.
2017년 12월26~28일 총 7건에 1100만원의 특활비가 ‘검찰총장 수사지휘 지원’ 등 명목으로 집행됐다.
남은 특활비를 국고로 반납하지 않기 위해 연말에 ‘몰아쓰기’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수사를 하지 않는 공판 검사에게도 꾸준히 특활비가 지급됐고, 경찰 수사 사건에 특활비가 집행된 경우도 있었다.
검찰 특활비 규모는 연간 80억원에 이른다.
이번에 전국 67개 지방검찰청 중 한 곳인 고양지청에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검찰과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투명하게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그렇잖아도 나라 재정이 어려운데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수사도 축소된 만큼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검찰 특활비가 부당하고 불투명하게 쓰이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31012185900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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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3-10-13 01:16[사설] 검찰 특활비 의혹, 국정조사·특검 외에 규명 방법 없다
등록 2023-10-12
검찰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실태가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정보수집 활동에 써야 하는 특활비를 회식, 기념사진 촬영, 공기청정기 대여 등에 쓴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부서별 나눠먹기, 연말에 몰아쓰기, 격려·포상금 지급 등의 비정상적 집행 사례가 또 확인됐다.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쓴 정황이 확연한 만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시민단체와 언론사 등으로 구성된 ‘검찰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은 12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5년8개월치 특활비 지출증빙서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용 내역을 알 수 없도록 먹칠을 한 자료를 공개했는데, 고양지청의 경우 드문드문 글자가 보이도록 먹칠이 돼 있어 오랜 분석 끝에 상당 부분을 판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집행 명목이 수사활동이나 정보교류활동으로 돼 있는 것은 60%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기밀이 요구된다고 보기 힘든 검거·공판활동 등이었다.
수사활동의 경우도 기밀이 요구되는 특정 사건이 적시되지 않은 채 지급됐다.
또 이임식을 사흘 앞둔 지청장이 일요일에 특활비 150만원을 받아가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차장·부장검사들이 일정 액수씩 나눠 받거나 11~12월에 전체의 30~40%를 몰아 쓰는 행태도 드러났다.
구체적 수사·정보활동과 무관하게 나눠먹기식으로 집행됐을 가능성이 짙다.
특활비 사용 용도를 벗어나 격려·포상금 지급에 전용된 사례도 드러났다.
특활비를 경조사비로 쓴 의혹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공동취재단이 지금까지 판독한 특활비 집행기록은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 빙산의 일각에서 확인되는 오남용 사례만 봐도 심각하다.
전수조사를 한다면 상상 이상의 실태가 드러날 수도 있다.
검찰이 한사코 정보공개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런 의구심을 키운다.
정부는 그동안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이나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문제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켜왔다.
하지만 검찰의 특활비 오남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수사하는 데 쓰라고 준 예산을 유용한 셈이니 ‘세금 도둑질’과 다를 바 없다.
정부는 국고보조금을 빌미로 시민단체·노조를 옥죄려 할 게 아니라 국민 세금을 축내는 검찰의 오랜 적폐부터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정부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할 수밖에 없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11905.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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