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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7 01:45의사들은 진짜 돈밖에 모를까
수정 2024-02-26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40년 전 의대에 들어갔다.
어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돈 잘 벌겠네!”
갑자기 부모의 생계까지 책임지게 되어 교수 되기를 포기하고 개원했을 때도 주변의 반응은 똑같았다.
“돈 억수로 버시겠네요!”
24년 전 의약분업 때 파업 투쟁에 동참했다.
햇병아리 개원의의 눈에 의료 현장은 엉망이었다.
보장성, 접근성, 의료 정의, 과학과 비과학 등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그중 단 하나도 제대로 된 담론의 장에 오르지 못했다.
여론은 오직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돈밖에 모르는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려고 저런다!”
언론은 대중의 구미에 맞추기 바빴고, 정부는 은근히 그걸 부추겼다.
이성적인 분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뒤로 의료 현장은 계속 황폐해졌다.
급기야 필수의료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국민은 불안하고 화가 나 있지만, 정부는 무책임하고 무관심했다.
의사들은 무기력하고 불행한데, 의대 경쟁률은 끝없이 치솟았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의사를 “돈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라고 보는 태도다.
마치 변방 너머에 도사린 야만족처럼, 태초부터 존재해온 적대적 타자로 보는 것 같다.
의료도, 의사도 우리가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생로병사라는 삶의 국면에서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쳐 의사를 만든다.
특별히 돈을 좋아하는 사람, 인성이 못된 사람만 가려서 의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대에 들어간 순간부터 주변에서는 그를 “돈밖에 모를 것”이라고 단정한다. 모든 의사가 결국 그렇게 된다면 그건 사람 탓일까, 제도 탓일까?
여기 용한 마법사가 있다.
지팡이를 한번 휘두르자 의사들은 한명도 남김없이 화성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가장 이타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추천받아 그들을 의사로 만든다.
그러면 의사의 문제가, 의료의 문제가 해결될까?
아닐 것이다.
나는 어떤 집단이든 10·80·10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본다.
10퍼센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다.
10퍼센트는 자신의 이익밖에 모른다.
나머지 80퍼센트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사회의 기풍이 바르고 제도가 합리적이라면 좋은 쪽으로 행동하고, 반대라면 그릇된 쪽으로 기운다. 의사든, 법조인이든, 교사든, 상인이든 마찬가지다.
의사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가 불의한 집단을 응징하자는 구호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좋든 싫든 의사는 의료 전문가다.
또한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안다.
그러니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의사’라는 단일 집단은 없다.
개원의와 의대 교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같은 개원의라도 내과의사와 안과의사의 입장은 정반대일 수 있다.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말할 것도 없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모순을 찾을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필수의료가 문제라고 하니 당장 내년 의대 정원을 우수리 없이 2000명 늘리겠단다.
논리도 근거도 없다.
교육은 누가 하나?
교수를 1000명 증원한단다.
의대 교수를 연탄처럼 공장에서 찍어낼 모양이다.
전공의들이 반발해 사직하면서 크든 작든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표면적으로는 필수의료와 의대 정원 문제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그간 쌓여온 의료 현장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충심이 깃들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의협은 소통 전문가를 모셔서라도 의료의 모순을 차근차근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정부는 어떤 식으로 필수의료를 확충할 것인지 명확한 논리와 근거로 국민과 의사를 설득해야 한다.
국민은 이 국면이 선악을 가리는 장이 아니라, 모두 안심하고 의료 혜택을 누릴 방법을 찾는 과정임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를 “돈밖에 모르는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는 데 휩쓸려서는 안 된다.
악당은 응징했는데 의료는 그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치른 희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9943.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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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7 01:30((꼭 반드시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글))
‘운동권’ 때리기
입력 : 2024.02.26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서울의 봄’과 5·18 민주화운동이 비극적으로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종로에 있는 TOEFL 학원에 등록했다.
어느 날 거기서 서클(동아리) 후배와 마주쳤다.
나와 그는 눈인사만 한 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계엄령하 살벌한 상황에서 서울 뚝섬 근처에서 20여명의 선후배가 시위하다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1980년이다.
지난 2월 초부터 갑자기 ‘운동권’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여당과 극보수 언론이 이 기회에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연일 운동가 출신 야당 정치인을 공격한다.
노리는 것은 ‘운동권’ 전체에 대한 폄하인 듯하다.
사실 따져보면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한 의미를 내포한다.
뭔가 특수한 부류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전문시위꾼’으로 매도하기 딱 좋다.
운동가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을 갈라치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물론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 중 비판을 받아도 마땅한 인사들이 있다.
정당정치 영역으로 진입한 후 지지자들을 실망하게 한 명망가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이념적 선명성 추구, 과도한 진영론, 정책적 사고 부재, 낮은 젠더 의식 등으로 과오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법을 명백히 위반한 일부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조사나 기소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곤혹스럽다.
하지만 여당의 어떤 정치인은 야당의 운동가 출신 정치인에게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돈 번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제 그들은 게으른 특권층으로 매도된다.
어떤 극보수 신문은 ‘반민주·반인권 일삼는 무소불위의 집단’이라고 이들에게 맹폭을 가했다(그런 특성은 되레 그 신문에 해당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가들은 당시 학교에서, 공장 등의 일터에서 쫓겨나고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투옥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학교나 일터로 돌아가서 세속적 성공을 하기는 힘들었다.
시위, 농성, 투옥으로 점철된 이들에게는 정치 말고는 열려 있는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운동 경력은 정치권과 시민운동에서만 대체로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정받았다.
운동가들은 회사에서, 학교에서 혹은 공공성 관련 영역에서도 우대를 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대다수 민주화 운동가들이 “생업으로 돌아갔다”라고 얘기하는 극보수 신문은 사설까지 동원해 이런 특수한 사정을 외면한다.
마치 ‘생업’에 묵묵히 종사한 운동가는 순수하고 도덕적인데 정치권으로 간 운동가는 타락한 사람처럼 암시한다.
정치무대로 가지 않았던 운동가들과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을 대립시키는 전술이다.
물론 극소수는 변호사, 대기업 임원, 교수도 되었지만 아주 예외적 경우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잃어 요절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엄중한 시대에 별다른 고뇌 없이 세속적 이익을 맘껏 누린 사람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운동권’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공론의 장에 진입해 있다.
나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처럼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은 타인이 강요할 수도, 강요해서도 안 되는 깊은 내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다른 학자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부채 의식이 강했다.
그때는 대부분이 그랬다.
주변에 자신의 행복, 미래,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화가 이름 없는 ‘수많은 일반 시민의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과연 희생하고 헌신한 운동가들 없이 일반 시민들만의 힘으로 그게 가능했을까?
여권에서는 ‘특권’이라는 말을 강조했지만 내게는 ‘청산’이 민주화 및 통일 운동에 매진했던 사람들을 내치고 이 기회에 민주주의도 걷어차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독재부역자 청산’ ‘친일파 청산’이라는 구호는 위험하고 낡았지만 모순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운동권 청산’이라니!
지금 정치권에서는, 특히 야권에서도 총선 공천에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매일 터져 나온다.
전직 운동가들에게 결코 유리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와중에 하고 싶은 얘기는 그들이 치열하게 민주화에 이바지한 점을 늘 기억하고 존중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말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외치던 시절은 흘러간 과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226200000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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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21:19((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함운경? 저님이 진짜 미쳤나 싶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4-02-26
살면서 너무 창피해서 이불킥을 할 때가 서, 너 차례 있었는데, 지금 내 심경이 딱 그렇다. 이래서 뭘 잘 알지도 못하면 절대 나대지를 말아야 한다.
2018년인가? 알고 지내던 한 인생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선배는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신, 삶의 궤적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진짜로 존경할 만한 선배였다.
그 선배 말씀이 오랜 운동권 동지였던 함운경이 군산에서 수산물 가게를 열었다는 거다.
당시는 내가 페이스북을 할 때였고 페친 숫자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 선배의 부탁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함운경의 수산물 가게를 좀 홍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까지 함운경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족히 듣고 있었다.
삼민투 위원장으로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의 선봉에 섰던 인물.
그 전설의 투사 함운경을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후 함운경은 몇 차례 선거에서 낙방한 뒤 칩거 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함운경이 수산물 가게를 열었다니 내 마음이 어찌 짠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정말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존경심을 담아 그의 가게를 홍보했다.
내 기억에 수십 명의 페친들이 그의 가게에서 수산물을 주문해 주었다.
그게 우리 민중들의 연대 방식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 따뜻한 연대에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함운경은 당시 나에게 꽤 긴 글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또 엄청 공손한 말투로 “선배님이 걸어온 어려운 길들을 후배들이 잘 이어받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배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던 함운경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한단다.
그러면서 나온 기사 제목이 이다.
살다살다 이런 개소리까지 듣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2018년 어느 날 잘 알지도 못하고 나댄 나의 경솔함 탓에 함운경의 수산물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 페친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속된 말로 쪽이 팔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진짜 제대로 느꼈다.
거듭 죄송할 뿐이다.
이제 와서 운동권이 쓰레기?
문화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바른언론시민행동, 민주화운동 동지회 등이 공동개최한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서 함운경이 “타락한 운동권 세력의 가장 문제점은 시대적 지진아라는 점”이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함운경은 스스로를 ‘운동권 청소부’라고 자처한단다.
우선 나는 청소노동자를 청소부라고 부르지 않지만, 네가 운동권 청소부를 하건 운동권 청소노동자를 하건 뭘 청소하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찼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네가? 뭘 청소할 자격은 되고?
자, 운동권을 청소하겠다면 최소한 자기는 운동권이 아니어야 한다.
이건 뭐 함운경 스스로가 요즘 온갖 매체에서 운동권 욕을 하고 다닌다니 그런 줄 알겠다. 그런데 그 시기와 기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운동권을 청소하겠다는 것은 운동권을 쓰레기쯤으로 여긴다는 뜻일 텐데, 쓰레기를 치우려면 내가 쓰레기가 아닌 최소한의 상식적인 정화 기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쓰레기였는데 오늘 갑자기 “난 청정구역이에요” 이러면 사람들이 “어이구, 정말 깨끗하시군요” 잘도 이러겠다.
그러면 함운경이 언제 쓰레기로부터 벗어났는지를 살펴보자.
1985년 삼민투 위원장으로 미문화원을 점거했던 이 운동권(쓰레기)은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서 10년 동안이나 재야 운동을 하면서 전문 재야 쓰레기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관악구에 출마해 제도권 쓰레기의 길을 추구했다.
이게 왜 제도권 쓰레기의 길이냐면 그 출마가 그냥 무소속 출마가 아니라 당시 최대 재야 조직이었던 전국연합 소속의 출마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운동권 출마였다는 이야기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발탁으로 386 정치인들이 대거 원내에 진출할 때 함운경도 주변을 기웃거리다 민주당 소속 군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는 민주당 공천을 못 받았다.
내가 보기에 함운경이 그토록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86 정치인들과 함운경의 차이는, 다른 이들은 그때 국회의원이 됐고 함운경은 그때 공천을 못 받았다는 것뿐이다.
장담하는데 그때 함운경이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면 지금쯤 “운동권이 왜 쓰레기냐” 이러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하고 엄청 싸우고 있었을 거다.
아니냐?
그때라도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운동권 쓰레기” 운운했으면 정화 기간을 인정해주겠다. 그런데 함운경은 이후에도 매우 오랫동안 쓰레기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뭐 주워 먹을 게 없는지 기웃거렸다.
2004년 함운경은 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2006년에는 마침내 열린우리당 후보 공천을 받아 군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이때는 본 선거에서 낙선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청년 몫으로 배당된 중앙위원까지 지냈다.
열린정책연구원 교육연구센터 소장으로도 일했다.
함운경 같은 자의 일관성
함운경은 2015년에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런데 거기서도 공천을 못 받고 2016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종합해보면 아무리 짧게 봐줘도 그의 쓰레기 기간은 2015년까지 이어졌다.
더 길게 보면 2018년 내가 그의 수산물 가게를 홍보할 때까지도 그는 쓰레기 주변에 있었다. 아니냐? 아니면 답해보라.
2018년 명백히 운동권이었던 내가 그 가게를 홍보해 줄 때 그건 또 왜 고마워했냐? 쓰레기가 홍보해준다며 걷어찼어야지!
아, 아무리 쓰레기의 홍보라도 당신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면 그 냄새는 또 참아줄 만한가? 2018년이면 그의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좋게 봐주려고 해도 너무 쓰레기였던 기간이 길었던 것 아니냐?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이걸 입증하는 수많은 실험들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가 한 번 뱉은 말, 자기가 한 번 정한 스탠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일을 쭉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함운경 같은 자들이 보여주는 저런 극적인 배신은 매우 드문 행동이다.
2015년까지 열린민주당에서 기웃거리다가, 2018년까지 운동권 동지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데 불과 5년 뒤인 2023년에 운동권을 쓰레기라 부르며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이게 얼마나 드문 행동이면 위대한 시인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 가장 밑바닥은 배신자들의 차지라고 묘사했겠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일관성은 다른 방면에서 분명했다.
그는 그냥 출세를 하고 싶었던 거다.
운동권 타이틀 달고 국회의원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도 거리고 싶었던 게 그의 일관성이었다.
그러니 50대 중반까지 쓰레기 주변에서 계속 출마를 반복하다가 이제 와서 반대쪽에서 먹이 좀 던져준다니 냉큼 그쪽에 붙는다.
와, 진짜 다른 관점에서 일관성 하나는 끝내준다.
2023년 함운경이 국민의힘 의원 공부모임에 참가해 그 자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쟤가 미쳤나 싶었다”라고 발언했단다.
그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다.
지금 내 심경이 딱 그렇다.
함운경, 쟤가 진짜 미쳤나 싶다.
쟤라니! 선배보고 어디 불경하게! 그런가?
그러면 존칭으로 바꿔주겠다.
저분이 진짜 미쳤나? 아니면 저님이 진짜 미쳤나?
https://vop.co.kr/A00001648317.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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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20:56김건희, 양주·전통주·책·스탠드 주는 대로 다받아...'뇌물 백화점!'
최재영 목사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경호실, 경비실에도 다받더라!
백은종 대표 "대통령실이 말한 선물 창고에 양주와 스텐드 등의 선물도 보관되어 있는가?"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2/25
서울의소리가 25일 오후 2시에 김건희 여사의 추가 선물 수수 영상을 공개했다.
최재영 목사는 경호처와 경비원을 통해 김건희에게 어렵지 않게 물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을 앞두고 공개된 영상이어서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서울의소리는 김건희가 디올백 외에 받은 선물에 대해서 공개했다.
사건은 문제의 명품백 수수 사건이 있기 약 두 달 전인 2022년 7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최 목사는 고급 술 1병과 책 8권을 들고 김건희가 운영하는 회사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을 찾았다.
최 목사는 그 날 오전 11시경에 김건희에게 배상면주가 1병과 자신의 책 8권을 들고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저녁 6시 조금 넘어서 코바나콘텐츠가 있는 아크로비스타에 도착한 후 다시 카카오톡을 통해 김건희에게 도착했다고 알렸다.
이에 김건희는 비서가 전화를 할 것이라 답했다.
사전에 예정된 방문이 아니어서 경호담당 직원과 다소 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런데 처음엔 선물 반입이 어려운 것처럼 대응하던 경호담당 직원은 김건희의 비서와 통화한 후 선물 반입을 도와줬다.
경호담당 직원이 직접 선물 보따리를 들고 보안검색대까지 안내해줬다.
이 때 최재영 목사가 보안검색대의 용도에 대해 질문했는데 “거기서 물건 스캔 같은 건 다 하나봐요?”라고 묻자 보안검색대 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최재영 목사는 선물 전달을 위해 12분 간 대기한 후 아크로비스타를 떠났다.
최 목사가 김건희에게 다음 날 선물을 잘 받았는지 묻자 김건희는 잘 받았다고 답했다.
서울의소리가 이 날 공개한 2개의 영상 모두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만 첫 번째보다 두 번째 것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영상 당시 최재영 목사는 선물을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도 아닌 그냥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경비원에게 맡겼다.
그런데도 김건희 비서의 이름만 대고도 선물을 맡길 수 있었고 별도의 검사도 없이 김건희 비서가 찾아갔다는 뜻이기 때문에 매우 심각하다.
그만큼 당시 아크로비스타의 보안이 굉장히 허술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마음만 먹는다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로 술병에 도청기나 소형 카메라를 장착해 코바나콘텐츠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가 “박절하지 못해서” 최재영 목사의 선물을 받았다는 취지로 신년 대담에서 털어놓았지만 그보다는 김건희가 뇌물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상이다.
이날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는
"대통령실이 말한 선물 창고에 양주와 스텐드 등의 선물도 보관되어 있는가?"
라고 물었지만 아직까지 대통령실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https://www.amn.kr/4727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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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19:35개혁신당 김종인 영입에 국힘당이 긴장하는 이유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26
이낙연 신당과 합당한 지 11일 만에 결별한 이준석이 김종인을 개혁신당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추호’도 그 당에 갈 리 없다고 하던 김종인이 이낙연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개혁신당으로 간 것이다.
역시 ‘추호대감’답다.
김종인은 기자들의 각종 질문에 “추호도 그런 일은 없다” 해놓고 며칠 후 그 말을 뒤집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추호대감’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김종인만큼 여야를 막론하고 자주 오간 사람도 드물 것이다.
김종인이 여야를 막론하고 자주 오간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1) 자기 나름대로 꿈꾸는 정치적 플랜이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해 한이 되었다.
(2) 누구든 자신을 어른으로 모셔주면 간다.
(3) 여야 정치인들이 하는 짓이 다 하수로 보인다.
한편으론 1942년생인 김종인이 아직도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야를 오간 것은 그의 지나친 노욕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김종인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그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김병로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며 법조인이었다.
즉 김종인의 뿌리는 호남이다.
경제민주화 울구어 먹기 40년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 번도 실현하지 못했다. 박근혜가 김종인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해서 도왔지만 곧 배신했고, 민주당이 분당되자 비대위원장으로 같지만 이해찬, 청청래를 컷오프시키고, 셀프 비례대표가 논란이 되어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다가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을 돕다가 배신당하고 무관의 제왕으로 있다가 다시 이준석 신당을 선택한 것이다.
그게 신념인지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여야를 자주 오가자 국민들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내심으론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김종인이 버틴 것은 ‘경제민주화’란 로열티 때문이다.
당의 무게는 한 사람으로 정해지지 않아
이준석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느 당보다 중량감 있고 정무적 능력이 탁월한 김종인 위원장을 공관위원장으로 모시게 됐다”며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공천 업무에 신속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석의 말처럼 김종인이 중량감은 있는 것은 맞지만 정무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정무감각이 뛰어나다면 그토록 자주 여야를 오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의 무게는 한 사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당의 무게는 오랜 역사와 구성원들의 실천적 투쟁에 의해서 축적되는 것이지 특정인이 낙하산처럼 간다고 해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준석의 가벼운 말과 행동이 당의 무게를 반감시켰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가벼운, 너무나 갸벼운 이준석
이준석은 나이답지 않게 말이 너무 많고, 모든 것에 포석을 미리 깔아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게 하는 묘한 버릇이 있다.
하지만 정치는 포석을 깔아 상대 말을 잡아 죽이는 바둑이 아니라, 땀 흘려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얻어지는 농사다.
그걸 알기 전에 이준석은 대성하기 힘들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박근혜 키즈로 들어가 이준석이 한 일은 갈라치기밖에 없다.
남녀를 갈라치기하고, 청년과 노인을 갈라치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하는 데 능숙했다.
지난 재선 때도 이준석은 ‘세대 갈라치기 작전’으로 임했고, 20대 남성들의 지지로 재미를 보기도 했지만, 정치를 특정 세대만 보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힘당이 긴장하는 이유
개혁신당이 이낙연과 결별한 후 지지율이 더 내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힘당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20대와 30대 남성들이 이준석 신당을 더 많이 지지하면 국힘당은 60대 이상 외는 이길 세대가 없다.
(2) 김종인의 존재감이 전보다 떨어졌지만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에서 일부분 지지층이 있어 이 층이 개혁신당을 지지하면 국힘당은 치명타를 입는다.
(3) 호남은 개혁신당의 지지율이 조금 올라도 민주당 후보가 대부분 당선될 수 있지만,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 일부가 개혁 신당을 지지하면 국힘당 후보는 간발의 차이로 모두 낙선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낙연의 신당이 민주당에 피해를 주는 비율보다 이준석의 신당이 국힘당에 피해를 주는 비율이 더 높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불과 1~2% 차이로 당락이 바뀌는 곳이 많을 터, 국힘당을 지지하려던 일부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이 개혁신당을 지지하면 국힘당은 그나마 어려운 수도권에서 강남과 서초를 제외하고는 전부 패할 수 있다.
혹자는 이낙연의 신당이 민주당에 더 피해를 많이 줄 거라 분석하고 있지만, 호남에서 이낙연 신당의 지지율이 매우 낮고, 그것은 수도권으로 전이되므로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호남인은 항상 전략적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의 갈등 수위가 너무 높아 소수당에 시선 보낼 여력 없어
한편 이번 총선은 워낙 민주당과 국힘당의 갈등 수위가 높아 양 진영이 똘똘 뭉칠 것이기 때문에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에 유권자들이 시선을 줄 여력이 없다.
따라서 이준석과 이낙연의 신당은 각각 지지율이 5%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반면에 조국 신당은 비례대표 투표에서 15% 이상 얻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 진영 전체 파이가 늘 수 있다.
최근 일부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보다 야당심판론이 더 높다고 하지만 왜곡된 것이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과거 지향적이므로 실정을 거듭해온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더 셀 수밖에 없다.
특히 파탄 난 경제와 안보불안은 평화를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에게 국힘당을 심판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총선 전에 국지전 일어나면 국힘당이 오히려 불리
총선 전에 국지전이 일어나면 국힘당이 유리할 거라는 말도 있지만, 이미 평화시대를 경험한 국민들은 수구들이 획책하는 북풍이나 총풍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 북풍은 잘못 이용하면 역풍만 분다.
지금 민심은 폭발 직전의 마그마다.
따라서 어떤 선심성 공약을 내놓아도 안 통한다.
거기에다 김건희 주가조작, 명품수수, 해병대 수사 개입, 고발사주 유죄, 양평고흥지구 부동산 비리,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까지 잠복하고 있으니 국힘당이 무슨 수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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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19:34순조롭다던 국민의힘 공천 속 들여다보니 더 가관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26
여야 공히 공천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수구 언론들은 국힘당의 공천이 순조로운 반면에 민주당은 ‘비명횡사’니 ‘비명집단학살’이니 마치 분당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으나, 사실은 국힘당도 공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언론들이 이를 잘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장제원의 지역구 부산사하갑 난리법석
현재 국힘당에서 공천 갈등으로 삭발을 하거나 탈당을 시사하는 곳은 십여 군데 되는데, 그중 대포적인 곳이 바로 장제원의 지역구였던 부산 사하갑 선거구다.
이곳에서 총선을 준비했던 송숙희 전 부산 사상구청장이 이 지역에 갑자기 김대식이 단수추천을 받자 삭발을 하며 거칠게 저항하고 있다.
송숙히 예비 후보는 본선 경쟁력 등에서 본인이 앞서는데 김대식 후보가 장제원의 사학 출신 가신이라 지역구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김대식은 장제원 일가가 세운 동서학원 소속 동서대에서 교수로, 경남정보대에서 총장으로 재직했다.
진주을 등 부울경도 난리 무소속 출마 시사
국힘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현역인 강민국(초선) 의원을 단수 추천한 경남 진주을도 공천 휴유증을 알고 있다.
김재경 전 의원, 김병규 전 경남도 경제부지사 등 경쟁자들은 강 의원을 '부적격 인사'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강 의원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됐던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당 윤리위원회에 징계절차 개시를 청원했다.
현역 의원 외 다른 예비후보들의 반발도 이어졌다.
이수원·원영섭(부산 진구갑), 박진관(경남 김해을), 김경원(경북 영천시·청도군) 등 예비후보 6인은 공천 결과에 반발해 지난 21일 국힘당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공천을 결정한 근거를 요구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비후보들은 무소속 연대 결성 등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 중대한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을은 거의 분당 상태
국힘당이 민주당의 낙동갈 벨트를 허물겠다고 부산 전재수 지역구에 4선 서상수를, 지난 총선 때 민주당 김두관이 당선된 영남 양산을에 김태호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을에 조해진을 자객공천했으나 역시 공천잡음으로 시끄럽다.
김해을에서 총선 준비를 하던 김성우·김진일·박진관·서종길·이상률 예비후보들은 "경선 없이 이대로 확정되면 후보 단일화 후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용인병도 시끌시끌
용인병도 시끌시끌하다.
비례대표 초선인 서정숙 의원은 경기 용인병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고석 변호사가 이 지역구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컷오프(공천 배제)됐다.
고 변호사는 윤석열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자 서정숙 예비 후보는 "용인병에서 특정인 공천을 위해 1년 반 동안 공천 특권 카르텔이 있었다"며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서정숙은 탈당 후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향후 당의 태도를 보고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4선 홍문표 경선 포기
한편 충북에서도 공천 잡음이 일어났다.
4선인 홍문표가 3선 이상 감점이 되자 이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다.
그곳엔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을 한 강승규가 공천됐다.
홍문표 의원은 강승규 후보가 대통령 시계를 지역구에 1만개나 뿌렸다며 부당함을 강조했다.
이게 사실로 밝혀지면 사전선거 운동은 물론 기부행위에 해당되어 논란이 될 것이다.
강서을은 서로 모함하느라 정신없어
서울 강서을도 예비후보끼리 싸움이 전입가경이다.
이곳 터줏대감이었던 김성태가 컷오프되었지만 박성민과 삼청교육대 입소 논란과 관련해 티격태격 싸운 바 있다.
김성태는 자신의 공천 부적격 판정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박성민을 공개 비판했다.
특히 강서을 공천 경쟁자인 박대수 의원의 배후에 박 의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삼청교육대 출신 '핵관'은 공천 적격 사유라도 된다는 말이냐"라고 따진 바 있다.
대전 중구도 난리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둔 듯한 '추가 공모'도 입길에 올랐다.
국힘당 공관위는 22일 대전 중구에 '추가신청 공고'를 냈는데, 한동훈 지도부의 영입인재인 채원기 변호사가 이날 "중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달라는 시대적 요청 때문에 뒤늦게 중구에 투입됐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중구에 공천을 신청했던 이은권 전 의원 지지자들은 이날 당사를 찾아 "전략공천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충남 아산갑도 시끌
현역의원들의 반발도 어어졌다.
이명수(4선 · 충남 아산갑) 의원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지역구에서 경선을 진행해 달라고 공관위에 요구했다.
이 의원은 "총선을 얼마 앞두고 벌어진 이번 일은 내 개인이 아닌 아산시민에 대한 정치적 모멸 행위이며,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아 아산 및 충남 지역 국민의힘 승리에도 역행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정우택 지역구는 돈봉투 싸움
정우택(5선) 국회부의장과 윤갑근 전 검사장이 맞붙는 충북 청주상당은 정우택이 받은 돈봉투 사건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경선을 실시해 정우택이 승리했다.
정우택은 돈봉투 사건을 자신을 죽이기 위한 ‘정치적 인격살인‘이라 말했지만 수사가 시작되면 입지가 곤란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공천잡음만 부각해 보도하는 기레기들
이처럼 국힘당에도 공천잡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도 수구 언론들은 보도를 별로 안 하고, 민주당의 공천잡음만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동훈이 시스템 곤천 운운했지만 국힘당은 지금까지 현역 의원 컷오프가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 재의결 시 반란표를 막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하지만 국힘당의 진짜 공천 갈등은 대구와 경북에서 나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힘당은 이곳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김건희 특검 재의결 때 반란표가 나올까 두려워서다.
아무 감동이 없는 조용한 공천으론 결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
한동훈만 그걸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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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19:33신장식, 지식인들 위선 일갈..."검찰개혁 외치면서 조국은 꺼려"
뉴스공장 출연, "조국 묻는 게 싫은 그분들"
"조국 비판하며 자신의 도덕적 우위 과시"
"한동훈, 토론하자...정치제도 공부 좀 해라"
"음주운전 이력 죄송, 제가 감당해야 될 몫"
설인호 기자
승인 2024.02.26
가칭 '조국 신당'의 영입 인재 1호인 신장식 변호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대하는 지식인들의 태도에 쓴소리를 뱉었다.
신 변호사는 26일 오전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식인들이 점잖은 표정으로 조국을 도덕적으로 비판하면서 본인의 도덕적 우위를 과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식인들은 조 전 장관과) 같은 진영에 있으면서도 토를 달면서 자신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소재로 쓴다"며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조국이라는 '검불'이 내 옆에 와서 묻는 것은 급구 꺼리는, 조국 스치고 조국 묻는 게 싫어하는 그분들"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녹색정의당이 아닌 조국 신당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더불어민주당은 왼쪽 포지션에 있기는 하지만 캐치올 파티(catch-all party),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이라며 "강하고 빠르게 움직일 기동대가 별도의 조직으로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한 "민주 진보 개혁 정치의 왼쪽 날개는 재건해야 할 상태"라며 최근 조 전 장관이 언급한 "정의당을 대체하겠다"는 말을 다시 인용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하라"며 정치적 자질과 지식을 지적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최근 "조국 전 장관이 병립형으로 3%를 어떻게 넘기느냐"고 말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신 변호사는 "한동훈 씨는 지금 윤석열 검찰 대통령의 검찰 공화국이 아니라면 어디 가서 공천 경쟁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자기가 정치를 이룩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정치 개혁과 정치 제도에 대해서 좀 공부를 한 다음에 저와 토론 한번 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신 변호사는 자신을 둘러싼 음주 운전 논란에 대해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적 소재로 삼아서 공격하는 건 그냥 온전히 제가 감당해야 할 몫"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조선일보처럼 4년 전에 음주 운전을 한 것처럼 헤드라인을 뽑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처음에 그렇게 여러 언론에서 제목을 뽑았는데 다 바꿨다. 근데 조선만 여전히 오늘 아침까지 그렇게 쓰여있있다. 4년 전은 아니고 18년 전"이라고 정정을 요구했다.
신 변호사의 국회 입성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6~17대(2000~2004년) 총선 때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지만 연달아 낙선했고, 18대(2008년)는 진보신당 후보로 나섰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21대 총선(2020년)에는 정의당 비례대표 순번 6번을 받았지만 음주 운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당시 비례 1번을 받은 의원은 현재 개혁신당으로 당적을 옮긴 류호정 전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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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6 19:31김건희 소환 놓고 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갈등 파장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26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을 하다가 국힘당 비대위원장으로 가자 그 대타로 박성재가 법무부 장관이 되었는데, 송경호 중앙지검장 교체 문제로 이원석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수장인 총장이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은 이례적으로, 윤석열 정권과 검찰 사이에도 이미 금이 갔다는 설이 파다하다.
검찰이 법무부와 갈등을 빚는 이유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발사주 사건으로 손준성 전 대검수사정보 기획관이 유죄를 받자 조직이 흔들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검찰이 윤석열 정권을 무작정 비호했다간 자신들도 언젠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염려를 한 것 같다.
검찰 불만 표출
거기에다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 대장동 50억 클럽 득검도 재의결을 앞두고 있어 검찰 내부가 어수수선하다는 전언이다.
한편으론 소위 ‘윤 라인’만 주요 보직을 맡고 나머지는 소외된 것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원석 총장의 임기가 오는 9월로 끝나기 때문에 혼자 덤터기 쓸 수 없을 거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김건희 특검 해야 한다는 송경호 중앙지검장의 말이 갈등의 씨앗
법무부 장관이 송경호 중앙지검장을 교체하려는 이유는, 송경호 중앙지검장이 김건희를 소환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송경호는 인천 지검장 출신으로 윤석열의 최측근 중 측근인데, 김건희를 소환해야 한다고 말했으니 용와대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노’한 윤석열의 말을 전달받았을 박성재 신임 법무부 장관이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송경호 중앙지검장을 교체하자고 하자, 이원석 검찰총장이 “차라리 나를 문책하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 시기에 서울중앙지검장을 교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문책을 하려면 나에게 하라"며 송 지검장 유임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에서 경질 대상으로 전락한 송경호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등 주요 수사를 지휘했는데,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의 증거가 워낙 명확해 결론을 못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김건희에게 무혐의가 내려지면 나중에 자신이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윤석열과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송경호는 한때 차기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건희 수사와 관련해 여려 이견이 생겨 급기야 교체설이 나돌았다.
당초 법무부는 큰 폭의 인사를 계획하고 인사검증까지 마쳤지만 결국 보류했다.
이번 사건은 박성재 신임 법무부장관이 당분간 검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은 봉합됐지만, 총선 이후 다시 한번 힘겨루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성재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 때 의원들이 송경호 경질에 대해 묻자, “청문회 준비도 바빠서 검찰 인사 계획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라고 했지만,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이미 인사안까지 마련했고 시행만 남겨뒀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때 이미 송경호 경질이 사실상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항상 문제의 중심엔 김건희가 있어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수사와 관련해 김건희의 소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이견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말이 아무래도 용와대로 전달되어 김건희가 ‘대노’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 김건희에게 찍히면 무사하지 못한다.
한동훈도 “국민 눈높이” 운운하다가 사퇴 카드가 터져 나왔다.
용와대의 실제 주인은 김건희란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니란 방증이다.
이 사건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은 것은 총선을 앞두고 법무부가 검찰과 갈등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더구나 그것이 김건희 소환 문제라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은 총선 전까지 잠복해 있다가 총선 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힘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면 검찰도 마냥 용와대 말만 들을 수 없다.
눈치 빠른 검찰의 발빼기
그러나 용와대가 분노한 이상 총선이 끝나면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 제2라운드 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50억 클럽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김건희 명품수수 사건 등의 민감한 수사를 맡고 있다.
따라서 총선이 끝나면 송경호가 경질되고 새로운 실세가 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될 것 같다.
하지만 검찰로 본부장 비리를 덮은 데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김건희를 소환도 안 하고 그대로 주가조작 사건을 덮으면 검찰무용론이나 검찰 해체 여론이 다시 비등해지고, 정권이 바뀌면 검찰이 실제로 해체되고 기소청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검찰은 좋은 시절 다 지나간다.
대형로펌으로 가 전관예우를 받으며 일 년에 수십억을 버는 일도 사라진다.
검찰이 최근 동요되고 일부가 흔들리고 있는 이유도 바로 자신들의 ‘도시락’ 때문이다. 검찰이 서서히 발을 빼는 이유다.
캐비닛 열릴 수 있어
만약 용와대의 압력이 계속되면 그 유명한 검찰 캐비닛이 열릴 수 있다.
야당 때려잡던 캐비닛이 본부장 비리 타도용으로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윤석열은 자신이 키운 검찰에 오히려 당할 수 있다.
윤석열은 그것도 모르고 망나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력 부대인 검찰마저 흔들리고 총선마저 패하면 윤석열은 급격히 레임덕에 빠질 것이고, 만약 야당이 200석 이상 확보하면 즉각 탄핵이 추진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한동훈을 국힘당 비대위원장으로 보냈지만 보수만 일부 결집했을 뿐, 중도층은 여전히 정권 심판론 여론이 높다.
용와대가 잠 못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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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5 19:32나)
좌파가 된 공안검사... 과거를 지울 수 있을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강중인
김종성(qqqkim2000)
24.02.25
좌파로 변신했지만... 지울 수 없는 과거
강중인은 일반적인 친일 검사들과 달리 방송과 언론 활동을 통해서도 반민족행위를 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열혈 친일검사였다.
그랬던 그가 8·15 뒤에 180도로 달라져 토지개혁과 친일청산을 외치는 민전에도 가담하고 미군정과 대립하는 남로당에도 관여했던 것이다.
강중인은 미군정하에서 사법부 총무국장에도 임명됐다.
해방정국하의 법조계에서 주류적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좌파와 합세해 토지개혁과 친일청산을 외쳤다.
박정희처럼 기회주의적으로 좌파 활동을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확신에 기초해 그렇게 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느낌에 힘을 실어주는 장면이 위에 언급된 1949년 11월의 재판이다.
친일세력이 친일청산을 무산시키려고 일으킨 프락치 사건에 걸려든 그는 그달 26일 공판 때 일종의 '법정투쟁'을 벌였다.
판사나 검사의 질문에 상관없이 법정에서 자기주장을 반복적으로 선전했던 것이다.
다음날 발행된 은 '말성 이르키는 강 피고'란 제목으로 그의 법정투쟁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앞서 심문을 받은 다른 피고인은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명의 위협 때문에 탈당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반면, 강중인은 도리어 재판부를 설득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검사가 그의 발언을 제지하면서 "피고는 남로당의 노선을 되풀이하고 있어 법정투쟁을 한다"며 비공개 공판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재판장도 주의를 줬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강중인이 어느 정도는 진심을 갖고 토지개혁과 친일청산을 외쳤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일제 때 본심을 감추고 살았던 것인지, 아니면 해방 뒤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가 일제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공안정국에 가담한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위 공판 이후의 이야기를 은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1950년 3월 서울지방법원 제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았다.
1950년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월북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03866&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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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2-25 19:30가)
좌파가 된 공안검사... 과거를 지울 수 있을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강중인
김종성(qqqkim2000)
24.02.25
박정희는 친일파에서 남로당(남조선노동당)으로 전향했다.
박정희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그런 전향을 한 사람이 덕전중인(德田仲仁)이란 창씨명을 가진 강중인(姜仲仁)이다.
박정희는 일제 패망으로 인해 만주국 군대와 분리됐다.
그런 상태로 1946년 5월 6일 톈진항을 출발해 이틀 뒤 부산에 도착했다.
고향 마을에 출현한 것은 그달 중순이다.
기존 조직과 절연된 뒤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그가 남로당에 가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중인은 37세 때인 1945년 8·15 당시에 일제 검사였다.
제1권 강중인 편은 "1943년 3월 대전지방법원 검사로 자리를 옮겨 1945년 8월 해방 때까지 검사로 있었다"라고 말한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일제 공권력 기구는 8·15 뒤에도 미군정의 보호를 받았다.
일본인 상급자들이 철수한 뒤였기 때문에,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고속 승진의 기회가 있었다.
기존의 공권력 기구가 이처럼 미군정과 한국인 직원들을 중심으로 강화됐기 때문에, 이런 곳에 있었던 사람이 공개적으로 좌파 진영에 넘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중인은 대놓고 좌파 활동을 했다.
위 사전은 "해방 후 좌익 활동에 가담하여 1946년 3월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토지문제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라고 말한다.
민전으로 약칭되는 이 조직이 토지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는 여운형과 김규식이 주도한 좌우합작회담 때 나타났다.
민전은 그해 7월 25일의 제1차 좌우합작회담 정식회담(본회담) 때 좌파 진영을 대표해 '5원칙'을 제시했다.
대표적 우파 매체 중 하나인 그해 7월 28일 자 1면 우상단에 따르면,
친일청산과 더불어 토지개혁이 민전이 표방한 5대 원칙에 포함됐다.
민전이 내세운 토지개혁 방식은 "무상몰수, 무상분여"였다.
민전 토지문제연구위원인 강중인은 '일개 연구원'이 아니었다.
1945년 11월 25일 자 2면 우중단은 그가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인 죽첨정 3정목에 세워진 조선법제연구소의 소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10여 명의 연구원과 2만여 권의 서적을 보유한 이 연구소는 자산가의 후원을 받았다. 이런 연구소의 소장이 된 상태에서 민전 토지문제에 개입했다.
거기다가 1946년 5월부터는 변호사 활동도 병행했다.
강중인의 의견이 민전의 토지정책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민전이 좌파 진영을 대표해 내놓은 '무상몰수·무상분배'가 그의 생각과 상당 부분 일치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친일파 출신답지 않게 민전의 토지정책에까지 관여한 강중인은 박정희가 참여한 남로당에도 가세했다.
1949년 11월 27일자 2면 좌상단에 따르면, 전날 법정에서 그는 "남노당에 가입하였으며, 법학자동맹의 간부로서 일한 것은 사실"이라고 진술했다.
박정희는 해방 뒤에 좌파로 전향했지만, 공개적이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강중인은 박정희처럼 남로당 활동을 한 것에 더해, 공개적인 좌파 운동까지 벌였다. 남한 좌파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거의 다 가본 셈이다.
강연에 기고까지... 열혈 친일검사
강중인은 1908년 4월 5일 경북 영덕에서 출생했다.
중학교급인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를 21세 때인 1929년에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27세 때인 1935년에 졸업한 그는 총독부 체신국에 근무할 때인 1937년에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29년 3월 6일 자 2면 우하단에는 빡빡머리 학생 9명의 사진이 각각 등장한다.
다른 사진은 다들 정면을 응시하는 데 반해, 강중인의 사진만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사진이 신문에 나온 것은 보성고보의 우수 졸업자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짜 2면 중간은 그의 이름을 우등생 3명 가운데 제일 먼저 거론했다. 수석 졸업을 한 모양이다.
이처럼 학교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를 가진듯한 그가 남들보다 늦게 졸업장을 받았다. 또 직장 생활과 시험공부를 병행했다.
집안이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법원에 들어간 것은 사법시험 합격 이듬해였다.
은 "1938년 11월부터 1940년 6월까지 경성지방법원 및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사법관시보로 있으면서 1939년 4월부터 8월까지 경성지방법원 검사대리를 맡았다"라고 기술한다.
법원과 검찰이 분리되지 않았던 이 시절 풍경을 반영하는 '경성지방법원 검사대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강중인은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예비검사를 거쳐 1940년 11월 검사로 임용됐다. 이 시기부터 그의 행적에는 '밥값'을 톡톡히 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친일행위로 월급을 받고 재산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보은 행위로 볼 수 있는 것들이 33세 때인 1941년 이후로 나타난다.
그가 정식 검사가 된 뒤에 담당한 사건 중 하나는 1941년의 보안법 및 육군형법 위반 사건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운영하는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사이트에 게시된 풍본영길(豊本英吉, 조남권) 판결문에서 그의 창씨명을 확인할 수 있다.
"보안법 위반 피고 사건에 대해 조선총독부 검사 덕전중인 관여 심리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라는 문장이 있는 이 판결문은 하숙방에서 시국 대화를 나눈 한성상업학교 학생들에게 각각 징역 2년과 8월을 선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중국의 장제스(장개석)는 위대한 인물이다', '조선 민중도 일치단결하면 독립이 가능하다', '똑같은 노동을 해도 조선인은 봉급을 적게 받는다' 등등이었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해도 하숙방 대화 자체만으로 일제의 치안 질서가 훼방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판결문 곳곳에는 "불온한 언동을 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하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불온한 말'을 한 것을 '불온한 언동'을 했다고 표현해 구체적인 행위도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표현이 사용됐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내용을 판사가 판결문에 담았을 가능성은 적으므로, 이런 표현은 검사 강중인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대화가 치안질서를 방해했'다는 과도한 결론이 나온 것은 이 시기의 공안정국 분위기를 반영한다.
강중인은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공안검사였다.
특이한 것은 강중인이 기소나 공판을 통해서만 친일을 한 게 아니라, 방송과 기고 활동을 통해서도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경성중앙방송국 방송에 연사로 출연해 '필승 사상전'이라는 친일 강연을 한 일도 있고, 대중잡지인 에 '대동아 건설', '일사보국(一死報國)', '성업(聖業) 완수' 등을 운운하는 글을 기고한 일도 있다.
한목숨 바쳐 나라에 보답하자며 공개적으로 친일을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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