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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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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8-11 21:15
    “김건희 사건 종결 양심에 반해” 권력이 몰아간 권익위 공무원의 죽음
    입력 : 2024.08.09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조사 실무 책임자였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부패방지국장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김 여사 사건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된 것에 ‘양심에 반해 괴롭다’는 자괴감을 토로해 왔다고 한다.

    숨지기 이틀 전에는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하다.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문자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다.

    타살 흔적이 없고 메모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비극적 선택에 몰리기까지 얼마나 괴로워 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9월13일 재미교포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디올백을 받았지만 권익위는 지난 6월 김 여사에 면죄부를 줬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에게도 적용된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4항은 “공직자 등의 배우자는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하여 공직자 등이 받는 것이 금지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고인은 김 여사 사건을 종결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무시당했다.
    고인은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권익위원,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권익위원 등은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김 여사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인이 김 여사에 대한 직접조사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윗선에서 반대해 좌절됐다는 후문도 있다.

    ‘김건희권익위원회’로 전락한 조직에서 부패방지 업무 책임자인 고인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에게 가방을 건넨 최 목사는 이후 청탁금지법 위반, 주거침입, 스토킹처벌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김 여사는 경호처 건물로 검사를 불러 간단히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이제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성격도 달라졌다.
    김 여사 개인 비리도 심각하지만, 김 여사의 과오를 덮는 불의의 과정이 담당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반부패 총괄기관이라는 권익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감찰이 불가피하다.
    김 여사 사건 종결 과정에서 고인에게 압력을 가한 인사가 누구인지,
    그 인사는 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김 여사는 지금이라도 유족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 바란다.
    늦었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4080917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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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20:46
    권익위원장 출신 전현희 "윤 정부가 죽인 것, 공직자 소신 지켜드릴 것"
    민주당 대전·세종 합동연설회서 화두 오른 '권익위 고위 간부 사망' '신임 독립기념관장'
    24.08.11
    심규상(djsim)

    민주당 대전·세종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당대표 및 최고위원 합동연설회에서도 최근 숨진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간부와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쟁점이 됐다.

    국민권익위원장 출신인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을 조사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
    "윤석열 정부가 살인한 것"이라며
    "공직자들의 소신을 반드시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전 최고위원 후보는 11일 오후 3시 대전 배재대 스포렉스홀에서 대전·세종 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합동연설회 연설에서
    "숨진 권익위의 젊은 국장은 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였다"면서
    "하지만 윗선에서 강압으로 좌절하고 고민하다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전 후보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서도 수사 외압에 공포를 느낀 여러 공직자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고, 소신을 지키려다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외압을 고발하고 고통 당하고 있는 이들의 소신을 지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를 끝장내겠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 독립기념관장을 그만두게 하고 천공과 결별을 선언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8일 독립기념관장에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김형석 이사장이 취임한 데 따른 비판이다.

    김병주 최고위원 후보도
    " 친일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한 것을 보고 '윤 대통령에게 일본으로 떠나라'고 외치는 사람이 많다"고 직격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53425&PAGE_CD=N0002&CMPT_CD=M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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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9:00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양재하
    김종성
    24.08.11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친일파도 있다.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해방이 명확히 '대박'이었다.
    그런 판단으로 해방 다음 날 지금의 한국프레스센터 주변에 나타났다.
    그는 전직 일간지 기자였다.
    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언론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0년 8월에 와 가 폐간된 이래, 한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하나였다.
    그래서 매일신보사에 들어가지 않는 한, 식민지 한국 안에서 한국어로 일간지 기사를 쓸 기회는 없었다.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가 1995년 1월 에 기고한 '해방언론 50년사' 제1편은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에서 일간신문을 인쇄할 수 있는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매일신보사를 비롯하여 일인들이 발간하던 일어신문인 경성일보와 조선신문, 그리고 인쇄소로는 근택인쇄소 등이 있을 정도였다. (중략) 우리말 단행본을 인쇄할 수 있는 시설을 가진 곳도 서울에서는 한성도서, 협진, 서울일신, 수영사, 대동, 청구, 고려 등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5년간의 그 같은 암흑이 걷히고 1945년 8월 15일 새벽이 됐다.
    그러자 언론인들은 업계를 복구하기 위해 신속히 행동했다.
    위 기고문은 "45년 8월 15일부터 이 해 말까지 40종을 넘는 신문이 새로 창간되었다"고 설명한다.
    언론인 일부는 해방 이튿날 지금의 프레스센터 주변에 나타났다.
    매일신보사를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정신이 멀쩡한 위 친일파도 그 대열에 섞여 있었다.

    이들은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사람들이었다.
    2010년에 제63권에 실린 김동선 국가보훈처 연구원의 논문 '해방 직후 의 성격 변화와 의 창간'은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배경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우선적으로 신문을 장악하는 일에 착수했다"라며 "건준은 8월 16일 매일신보사의 접수를 기도"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을 주도한 인물은 뜻밖에도 위 친일파다.

    친일파 양재하가 총독부 기관지의 접수를 이끌었던 것이다.
    제2권 양재하 편은 해방 직후에 그가 "건국준비위원회 신문위원에 위촉되었다"라며 "의 인쇄 시설을 접수하여 창간을 시도"했다고 기술한다.

    일본 해군 되어 희생할 것을 촉구

    양재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제 침략전쟁을 찬양했던 친일파다.
    찬양도 그냥 찬양이 아니라 꽤 고약한 찬양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게 1943년 6월호 에 쓴 '조선인과 바다'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 군사전문가인 아리마 세이호가 1942년에 저술한 를 언급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역으로 지칭하는 임진왜란에 관한 이 책은 충무공 이순신을 군인정신이 없는 수준 낮은 인물로 평가했다.

    이 책을 다룬 김준배 해사 교수의 논문 '아리마 세이호의 (1942)에 보이는 이순신 비판론'(2020년, 제114호)에 따르면,
    아리마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을 '조정의 승인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을 두고 "우리 군인 정신에 비추어 논해보면 언어도단"이라고 평했다.

    아리마는 이순신을 언어도단적 인물로 혹평하면서, 해전이 임진왜란 승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말로써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평가절하했다.

    '조선인과 바다'에서 양재하는 이 책을 한 달 전에 읽었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4-9권에 인용된 '조선인과 바다'에 따르면,
    그는 "그때부터 제국이 대륙 진출에 경륜을 가지고 오늘 해군 건설에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재하가 자신의 나라처럼 언급한 '제국'은 이순신의 나라가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나라다.

    그때부터 제국이 대륙 진출에 경륜을 갖게 되고 이것이 지금의 해군 건설에 토대가 됐다는 느낌을 독후감처럼 내놓은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는 이순신이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꽤 고약한 방법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암시했던 것이다.

    양재하는 그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성장한 "제국해군의 일원"이 될 자격이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인들의 일본군 입대를 부추기는 글이었던 것이다.
    그는 "대장부는 말가죽으로 주검이 싸여야 한다(大丈夫當以馬革褱屍)"는 글귀를 거론하면서 일본 해군이 되어 희생할 것을 촉구했다.

    "옛말에 대장부당이마혁회시(大丈夫當以馬革褱屍)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 마땅히 말가죽으로써 시체를 싼다. 즉 전장에서 토사(討死)할 것이지 아녀자를 옆에 놓고 약사발을 들고 최후를 마치는 것은 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부는 모름지기 마혁회시도 좋지마는, 그보다 사람은 반드시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할 일이다."

    전투하다 쓰러져 말가죽에 싸여 매장되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게 좋다는 말이었다.

    일본 해군이 되어 바다에서 희생할 것을 부추긴 것이다.

    아녀자를 옆에 놓고 약사발을 들고 최후를 마치는 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병상에 누워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그냥 바다에서 목숨을 다하라고 선동했던 것이다.

    대중의 목숨을 매우 하찮게 여기는 인성의 소유자였다.
    극우파 성향을 가진 악질 친일파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물이 해방 다음날 매일신보사를 접수하고자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 나타났던 것이다.

    친일이 실직을 벗어나는 방편

    양재하의 접수 시도는 실패했다.
    건준이 뒤에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은 "일본군의 반발로 실패했다"고 말한다.
    일본군 덕분에 시설을 지킨 매일신보사는 김구와 김규식이 중국에서 귀국한 그해 11월 23일부터 을 찍어내게 됐다.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이듬해인 1906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한 양재하는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중학교급)와 경성법학전문학교(고교급)를 졸업한 뒤 1930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에 들어갔다가 3년 뒤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40년 8월에 폐간되기까지 동아일보사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가 친일파로 부각된 것은 그 뒤였다.
    가 폐간돼 실직자가 된 이후에 노골적인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실직 뒤에 그는 월간지 를 창간했다.
    1941년 2월부터 이 월간지를 운영하면서 갖가지 친일 논설을 발표했다.
    침략전쟁 시기라 친일을 하지 않고는 월간지를 운영할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월간지를 창간했다.

    친일이 실직을 벗어나는 방편이 됐던 것이다.

    위 진상규명보고서에 따르면,
    1948년에 민족정경문화연구소가 편찬한 은 양재하가 발행한 에 관해 "적극적 친일은 피한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전쟁협력, 내선일체화 운동의 잡지'가 되고 말았다"고 평했다.

    이런 잡지를 1944년 10월까지 발행했다.
    생활 자금이 에서 나왔다 해도 친일 논설을 실어 잡지를 운영했으니, 그 기간의 생활은 친일재산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았던 그가 점령군이 되어 매일신보사에 밀고 들어갔다.
    중도좌파 그룹인 여운형 라인에 줄을 선 결과였다.

    매일신보사 점령에 실패한 뒤 를 창간하고 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는 해방정국하에서 언론인의 위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경북 문경에서 당선됐다.
    26일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통에 납북됐다.

    북으로 간 뒤인 1956년에는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이 됐다.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이 친일파는 60세가 된 1966년에 눈을 감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51502&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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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6:05
    (ㄴ)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인문견문록] ·
    김창훈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8.10.


    모욕감과 수치심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나르시시즘이란 방어기제가 작동된다.
    식민지민의 정체성은 현실적 지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마음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든다.
    식민지민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지 않는다.
    남은 유일한 길은 스스로를 식민지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식민지민이 아닌 채 살아가는 것이 열패감에 시달리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출구가 된다.

    결국 일단의 무리는 정신적 친일파가 된다.
    우리의 비참함도 '결국 우리가 못난 탓'이라 생각하는 분열적 정체성을 파농은 식민지형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았다.

    당대 신문의 사회면은 식민지민중의 비참한 처지를 알리는 기사들로 가득했다.

    "사회면을 보면서 입게되는 상감(感傷)은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하고도 넘치는 상태였다. 빈민굴, 떼죽음, 파멸해가는 농촌, 학생들의 동맹휴학, 염세자..살, 끊이지 않는 검거로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비참한 현실'에 감정을 이입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고통을 경험하는 일상인 것이다"

    "사회면은 '항상 검거, 징역, 자..살, 기근 등이어서 참혹해서 볼 수가 없는' 식민지 사회의 거울이었다."

    서로의 절망과 비참함에 공감하면서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필자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외할머니는 "순사 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린 나이여서 순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책을 읽고난 후 식민지 시절을 살아내신 외할머니에게 순사가 어떤 존재였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반도 민중은 순사라는 괴물에 내맡겨진 수인(囚人)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를 다룬 탁월한 책을 이미 갖고 있다.
    최정운의 책 (미지북스 펴냄)이다.
    유선영의 책은 최정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절창'이다.
    절창이되 슬픈 절창이란 의미에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612543317662&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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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5:59
    (ㄱ)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인문견문록] ·
    김창훈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8.10.

    한국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강한 사회다.
    수준 높은 문화상품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지만 그 상품의 내용은 어두움 투성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었던 기생충,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셋 모두가 빈부격차, 폭력과 뒤틀린 욕망이 투영된 사회를 묘사한 것이다.

    한국의 성공의 이면에는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 사회를 직조해낸 빛과 어둠의 기원을 찾아나선 책이 있다.
    전 성공회대 교수 유선영의 (유선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이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란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회 모든 부문에 침투한 권위주의, 부정과 부패, 국가와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 학벌주의와 서열주의, 한 인생의 성공이 물질로 환전되는 물질주의, 경쟁위주의 사교육, 성형한국의 외모주의, '갑질'이 만연한 폭력과 착취의 아비투스에 시선이 머물렀으며 의문은 힘을 얻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어느 사회에나 권위주의, 부정부패, 서열주의, 폭력은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 양상이 다르다.

    유선영은 먼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소개한다.
    아비투스란 특정한 환경과 조건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한 사회의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감정구조 즉 아비투스가 한 사회를 특정한 형태로 주조한다. 한번 형성된 아비투스는 특별한 계기를 만나 변화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유선영은 한국인의 감정의 기원으로 일제강점기 전후를 주목한다.

    비교적 안정적 사회를 오래 유지했던 조선이 급격히 와해된 것은 서세동점이란 국제적 흐름 때문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한국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감정은 '업수이여김'이었다.

    19세기말 독립신문을 만들고 독립협회를 주도하던 서재필은 미국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떠나기 전 대중을 향해 고별연설을 한다.

    "나라를 부강케 하고 용맹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앞으로 나아가 세계 만국에 동등 대접을 받고 다시는 외국 사람들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지 말지어다."

    그는 눈물에 목이 메어 연설을 다 마치지 못했다.
    '업수이여김'이라는 감정은 조선 민족의 일상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조선지배가 본격화된 이후 일본 경찰의 조선인에 대한 폭력과 모욕은 흔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경찰은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경찰의 폭력은 반일혐의가 있는 이들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특히 위생행정을 핑계로 폭력은 불특정 다수 대중을 향했다.

    총독부 산하 경무국 소속 위생경찰의 활동에 대한 유선영의 설명이다.

    "일제는 식민지민의 일상, 신체, 의식주, 생활방식을 규율하고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합리화,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대적 위생 개념·제도·담론을 활용했다."

    문제는 위생경찰의 활동이 지극히 폭력적이었던 것에 있다.

    "청결을 빌미로 매년 몇 차례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농민에게 가하는 구타와 모욕은 다른 경관이나 헌병이 인민을 억압 멸시하는 정도 이상으로 감정을 상하게 했다.",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경찰의 매질, 구타, 무시와 조롱, 협박으로 공포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 청결검사, 검병 호구조사였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일본인 경찰과 조선인 순사들이 한집안의 어른인 노인을 자식들 앞에서 쥐어박고 더럽다고 비난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일상의 청결상태를 순사에게 검사받는 과정은 말 그대로 모욕의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경찰의 재량권은 무제한에 가까웠기에 70대 노인이나 부녀자를 두들겨 패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폭력을 당하고도 항의 한번 못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접대하거나 뒷돈을 바쳐야했다.

    "1924년 함경남도 홍원에서는 일본인 순사부장이 추계청결을 잘못했다고 한마을 40여 가구의 호주를 모두 구타했으며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칼을 휘두른 경찰에게 내려진 처분은 고작 '면직'이었다.

    위생이 목적이라기 보다 조선인을 폭력에 순치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면서 '경찰범처벌규칙'을 공포했다.

    87개 항의 행위를 규정했는데 이중 1항의 요주의자가 생업없이 각 지방을 배회하는 자 즉 '부랑자'였다.
    87개나 되는 항목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조선인을 전지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법령위반자에게는 일본에서는 벌금이 주였으나 조선에서는 태형(매질)과 구류처분이 많았다.
    1920년 태형이 폐지될 때까지 매해 3~4만 명의 조선인이 경찰에게 매질을 당했다.

    '부랑자'라는 명목으로 특정한 범죄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풍속경찰'이라는 직분을 만들어 요리집, 매음장, 예배소, 신문과 출판물도 풍속관리대상으로 관리했다.
    특별한 곳도 아니었다.
    연극장에 모인 관중조차도 수시로 단속의 대상이 되고 체포되었다.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다녔다.
    레닌 추도식을 조직한 진보조직의 청년들도 부랑자로 지목되어 처벌되었다.
    모든 조선인이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런 범죄요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해진 풍속경찰에 의한 단속은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잠재적 불안요소가 될 인물들을 부랑자로 호명하며 처벌하는 것은 적지 않은 효과를 가져왔다.

    "우선 부랑자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해야 하는 이유로 내세워 선전했던 조선 민족의 야만성과 열등성을 방증하는 상징적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구악과 오랜 적폐인 상류층 부랑자를 단속하고 징치하는 총독부는 풍속교화와 민족성제도라는 문명화 사명을 실행하는 것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자신들의 행위를 문명의 세례로 선전하며 폭력을 통해 조선인을 완벽히 순종시키는 것이 일본의 진짜 의도였던 것이다.

    모욕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인들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교육열이 조선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조선인들은 근대가 가져온 교육시스템에서 승리해서 자신들이 모욕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또한 모욕의 가해자는 일본이었고 그들은 근대적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었기에 조선인은 물질적 성공을 미친 듯이 추구하기 시작했다.

    신분제가 급속히 이완되는 틈을 타 물질적 성취를 통한 신분 상승을 꾀했다.
    교육열, 물질숭배 이 모든 것들이 하나처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모욕감, 수치심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자기모멸감은 증폭되었고 타인과 자신을 향한 공격성으로 전변한다.

    알제리 혁명전쟁에 참가한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민의 정신을 분석했다.

    파농은 책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그린비 펴냄)에서 식민지민의 피부 아래에는 히스테리 증상인 공격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알제리 흑인에게 나타나는 귀신들림과 춤에 대한 열광은 파농에 따르면 공격성의 정신질환적 표출이었다.

    "장기간 모욕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중략) 수치감을 극복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남과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자기확신에 집착하기도 한다."

    수치감이 촉발한 장기간의 무력감은 공격성을 강화시킨다.

    "장기간 무력감을 경험한 사람은 공격적으로 될 여지가 큰데 이는 자신을 무력상태에 밀어넣은 트라우마를 정복하기 위해,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애적 분노에 사로잡혀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공격성과 순응성은 장기간의 모욕과 수치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612543317662&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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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5:34
    (2)
    "대통령 부부가 둘 다 너무 이상해요"

    [박세열 칼럼] 이상함을 넘어 '기이함'으로 진화하는 尹부부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8.10


    표층과 심층의 문제다.
    표층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과 무관하다.
    고로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장면을 브리핑에서 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심층에서 많은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대통령이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는 건 곤욕이다.

    대통령이 즐겨 입는 해군 마크 티셔츠는 평시엔 '미담거리'지만, '채상병 사건'의 불편한 맥락이 개입된 현재엔 누군가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해병대만 빼고 해군 인사들만 격려할 순 없다.
    딜레마다.

    애초에 대통령이 '격노'를 부인하지 않고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면,
    PI가 꼬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불쾌한 상황이 계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공식적으로 윤 대통령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군과 관련된 대통령의 PI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딜레마다.

    채상병 사건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따위도 없다. 대통령의 PI를 담당하는 참모들이 "그래도 해병대원들은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할 수도 없다.
    참모들도 극한 직업이다.

    대통령과 '세트'로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영부인의 PI는 더욱 심각한 상태다.

    디올백을 받는 장면을 전국민이 지켜본 상황에서, 영부인은 '바이바이 플래스틱백'이라 적힌 에코백을 계속 메고 다녀야만 하는 운명에 빠졌다.
    에코백을 맨 장면이 노출될 수록 사람들은 '디올백'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심성에 사로잡히겠지만, '디올백'을 받은 행위가 문제 없다는 '논리적 일관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영부인은 공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어떤 '빽'이든 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에코백'을 들지 않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궁금해 할 것이다.
    이렇게 영부인은 영원히 '가방'을 들어야 하는 운명에 빠지게 되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점점 불쾌감이 커지는 운명에 빠져드는 것이다.

    요컨대 군 통수권자가 해병대를 만나는 게 어색하다고 해도, 영부인이 평범한 가방을 든 게 어색하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그걸 안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수록 대통령과 영부인의 PI는 더 '망하는' 악순환의 길로 간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대통령이 해병대를 격려하는 모습을 매번 봐야 하고, 영부인이 에코백을 메는 모습을 매번 봐야만 한다.
    이를테면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하지 않고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대중의 '기괴한 심성'도 아마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며 갈 것이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일부러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는 '악인'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부부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그 이상함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간혹 '언캐니(uncanny, 섬뜩함)'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익숙한 지식과 상식에 의한 인식의 국경을 넘어서 갑자기 낯선 영역에 도달할 때, 우린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이런 건 PI로 해결할 수 없다.

    진실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영원히 '해병대'와 '명품백'의 잔상에 갇혀 지내야 한다.
    마치 윤석열 부부가 있는 채팅방에 강제 초청됐는데, 아무도 모르게 2년 째 관전하다보니, 눈치가 보여 막상 채팅방을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묘한 기분이다.
    다행히 카카오톡엔 '조용히 나가기' 버튼이 있지만, 현실에는 그런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907412119536&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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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5:26
    (1)
    "대통령 부부가 둘 다 너무 이상해요"

    [박세열 칼럼] 이상함을 넘어 '기이함'으로 진화하는 尹부부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8.10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참 이상하다.

    지난 4월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총선 패배 원인 분석 토론회에서 김종혁 당 조직부총장(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의 PI가 완전히 망했다"며 "대통령이 격노한다고 나가면 그걸 보는 국민이 행복하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패배의 제 1요인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데에는, 이른바 '친윤' 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정체성)는 정치인, 기업CEO 등 인물에 초점을 맞춰 회사나 단체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긍정적인 최고 지도자 이미지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 유명 CEO들은 자신의 캐릭터나 메시지, 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구축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스스로 평생 구축한 PI를 통해 미국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종합 엔터테이너다.

    '리더'들의 이미지가 마케팅이 되고 그 마케팅은 조직 홍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 투자자의 77.7%가 CEO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악의 PI 실패 사례는 이마트의 오너 정용진의 '멸공' PI가 아닐까 싶다.

    유통업계의 큰손인 그가 감자밭을 방문하거나 백종원과 같은 셀럽들과 관계를 과시할 땐 호감도가 상승할 수 있지만, 갑자기 SNS로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면 PI를 담당하는 참모들은 물론, 이마트 종사자들이나 주주들,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신세계그룹 담당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제대로 된 참모라면 옆에서 말렸겠지만,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거나, 본인 스타일이 '안하무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완전히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 정치인은 그 메시지와 상징성의 총합으로 자신이 이끄는 정당이나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홍보한다.
    PI 전략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것은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보완하는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넘친다 싶으면 덜어내고, 장점이 묻힌다 싶으면 보강해야 한다.
    일관성'도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PI가 완전히 망했다고 한다.

    '윤석열'이라는 리더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가 자주 쓰는 말, 손짓 하나, 옷차림, 걸음걸이, 먹는 음식, 시선처리, 목소리, 사소한 습관들은 메시지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리더는 어떤 결정과 행동을 함으로써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을 유권자들의 동의와 지지로 이어지도록 만든다.
    특히 참모들은 리더의 PI 구축을 위해 방문 장소(장소에 담긴 메시지)와 그 장소에 적합한 메시지를 고려해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부각시킬지, 어떤 메시지를 감출지 정교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완전히 망한' PI 마케팅 사례는 셀 수가 없다.

    '격노'의 아이콘이랄지, '술꾼'의 이미지랄지 하는 것들이다.
    특히 유수의 언론인들이 점잖은 칼럼으로 수차례 '술을 멀리하라' 조언해도 듣지 않고 여당 행사장에서 맥주를 돌리면서 스스로 강화하는 '술꾼'의 이미지는 국정 운영 모든 사안에 '밈'으로 들러붙는 고약한 PI 실패 사례로 꼽힌다.

    이런 PI는 그나마 개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이상하긴 해도 우리 주변에 있는 친근(?)한 이미지들이어서다.
    그런데 개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PI들이 있다.

    이른바 '내로남불의 덫'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들인데, 대중은 공정하다 믿은 리더가 공정하지 않다는 걸 발견했을 때 두 배로 실망하게 된다.
    이럴 땐 리더도, 대중도 '인지 부조화' 현상에 빠져든다.

    PI 전략은 정교해야 한다.
    기계처럼 '긍정적 이미지'를 쫓다간 또 망할 수가 있다.
    소위 '미담으로 망하는' 사례다.

    이를테면 윤석열 검사가 '국정원 댓글 사건'의 부당한 수사 개입에 항의하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때 일선 검찰청을 방문해 검사들을 격려하면 '정의와 공정'의 PI가 강화되지만,
    '채상병 사건'의 부당한 수사 개입의 주요 용의자가 된 후 해병대 부대를 찾아 사진을 찍으면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라는 반응을 불러온다.

    이를테면 이명박이 '가훈이 정직'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나,
    박근혜가 최순실과의 우정을 '순수한 마음'으로 포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사례는 '미담으로 망하는' 전형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대통령실은 7일 "尹 대통령, 진해 해군기지서 휴가보내며 해군·해병 장병 격려"라는 제목의 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다.


    "대통령은 오늘(7일) 오후 해군 및 해병대 장병들과 농구, 족구 등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하며 단합을 다졌습니다.대통령이 진해기지사령부 체육관에 들어서자 해군 장병 30여 명이 "필승"을 외치며 환영했고, 대통령은 장병 한명 한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고가 많다"고 격려했습니다.

    대통령의 점프볼로 장병들의 농구 경기가 시작됐고, 경기를 관람하던 대통령은 경기 쉬는 시간 동안 자유투 라인에서 슛에 도전했습니다. 대통령이 첫 슛에 실패하자 장병들은 "한번 더!"를 외쳤고, 그 응원에 힘입어 다시 한번 슛에 도전했습니다. 대통령이 세 번째에 슛을 성공한 데 이어, 5번째, 마지막인 6번째 슛도 연달아 성공하자 다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장이 해트릭을 기록하시었다'는 느낌의 이런 브리핑 자료는 참모들의 '과잉 충성'의 발로인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의 PI 구축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예시 자료로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런데 브리핑 자료의 다음 부분에서는 '이상함'을 넘어 '기괴함'을 느끼게 된다.

    "(해군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해병대 장교는 "지난 20년 군 생활 동안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제복 입은 군인을 기억하고 대우해 준 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나가자, 해병대. 나가자, 대한민국!" 구호를 외쳤습니다."

    해군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는데 해병대가 빠질 순 없겠다.
    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수사 대상으로 적시된 특검법안에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대통령은 단 한마디도 해명한 적이 없다.

    일부 예비역해병대 전우들은 대통령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은 전시에서나 볼 법한 '항명수괴죄(후에 항명죄)'로 입건된 상황이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진상 규명을 원하는 대략 70% 이상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 브리핑 자료는 '기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병 대원 사망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이런 내용을 굳이 브리핑 자료에 포함시킨 것은 몇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겠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907412119536&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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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01:59
    “뉴라이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하고…윤석열은 8·15 전에 물러나라”
    민족문제연구소, 야4당, 시민사회 독립기념관 겨레의마루에서 규탄집회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4-08-10

    10일 독립기념관 겨레의마루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집회에서 시민단체와 야당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공 : 뉴스1

    친일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가 10일 독립기념관 겨레의마루에서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 야 4당, 시민사회는 이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윤석열 정권규탄집회’를 열었다.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은 ‘친일인명사전에 오류가 있다’는 김형석 관장의 주장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을 시작한 임종국 선생은 10여 년간 친일파 연구에 목숨을 바쳤다.
    친일인명사전을 수정하겠다는 김형석 관장의 말은 바로 역사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 독도를 지워버린 태도에서 보듯 윤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이익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며
    “뉴라이트 대통령은 당장 용산에서 내려오라.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조선이 무능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인정할 수 있냐”며
    “김형석 관장이 사임할 때까지 정무위원회 위원 및 300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다”며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관장 임명 철회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일본은 여전히 식민 지배를 부정하고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는데 우리는 친일매국 인사들이 역사까지 팔아넘기려 한다”며
    “대통령 임기는 짧지만 역사는 계속이어진다. 역사를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역사를 지키겠단 국민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0일 독립기념관 겨레의마루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집회에서 시민단체와 야당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공 :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독립기념관 이사에 뉴라이트 본산 격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과 오영섭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연구교수가 임명되면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이어 독립기념관장에도 뉴라이트 인사가 임명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며 “불길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됐다”고 우려했다.

    연구소는 “친일청산 부정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비호, 자의적 역사해석, 4.3과 5.18에 대한 반역사적 주장을 거듭하며 나아가 국론분열을 자행하는 인물 네트워크를 보유한 김형석은 독립기념관법 제1조에 비춰봐도 관장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결국 문제는 대통령이다. 노동부 장관으로 노동을 탄압하는 사람을 보내고,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방송을 억압하는 사람을 보내고, 독립기념관장으로 친일파를 영웅으로 둔갑시키려는 이를 보낸 게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10일 독립기념관 겨레의마루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촉구 집회에서 시민단체와 야당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공 : 뉴스1



    https://vop.co.kr/A000016592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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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01:55
    전 권익위원장 전현희 “윤석열 정권이 살인자”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4-08-10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했던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김건희 명품백 수수’ 사건을 조사했던 권익위 간부 사망과 관련 “윤석열 정권이 살인자”라고 비판했다.

    전 후보는 지난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강직하고 원칙을 지키는 청렴한 공직자였던 그분이 법과 원칙과 다른 결정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고인은 지인과 대화에서 ‘권익위 수뇌부 인사가 이 사안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고,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어 괴롭다’ ‘권익위 부패방지업무를 해온 20년간의 내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고 호소해 왔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전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호하기 위해 청렴하고 강직한 공직자 한 명이, 한 가정의 배우자이자 아버지의 목숨이 희생됐다. 윤석열 정권이 강직한 공직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고, 대통령 부부를 지키기 위해 권익위를 망가뜨리고 청탁금지법을 무력화시킨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과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고인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 권익위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해서 명백하게 진상을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며 “고인의 명예를 지키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

    다음은 입장문 전문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입장문


    윤석열 정권이 살인자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강직한 공직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어제, 김건희 명품백 사건 청탁금지법 위반 조사를 담당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부패방지국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담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과 동료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권익위의 김건희 명품백 사건 조사 종결 처리 이후 지인과의 대화에서 “권익위 수뇌부 인사가 이 사안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고,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고인은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어 괴롭다”, “권익위 부패방지업무를 해온 20년간의 내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평소 호소해왔다고 합니다.

    국민권익위에서 부패방지업무를 담당해온 강직하고 원칙을 지키는 청렴한 공직자였던 그분이 법과 원칙과 다른 결정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호하기 위해 청렴하고 강직한 공직자 한 명이, 한 가정의 배우자이자 아버지의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살인자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강직한 공직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독립적 기관으로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청렴성을 수호해온 반부패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고, 대통령 부부를 지키기 위해 권익위를 망가뜨리고 청탁금지법을 무력화시킨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과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고인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청탁금지법 수호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고 대통령 부부에게 억지 면죄부를 발부한 권익위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해서 명백하게 진상을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습니다!
    고인의 명예를 지키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8월 9일
    전현희 (前국민권익위원장)



    https://vop.co.kr/A000016592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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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0 23:04
    2)
    ‘김건희 명품백 조사’ 권익위 국장의 비극…법치가 무너졌다 [논썰]
    기자 박용현
    수정 2024-08-10


    법 허점 이용한 꼼수로 방송장악 밀어붙이는 방통위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한 방송장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상 방통위는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2명은 야당이 추천하도록 돼 있습니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방통위는 대통령이 임명한 2명만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은 방통위 회의의 의결정족수를 ‘출석’위원이 아닌 ‘재적’위원 과반수로 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위원만 출석해서 의결이 이뤄지면 소수의 독단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재적위원을 아예 2명으로 줄여놨습니다.

    그 2명이 독단적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정한 ‘재적위원 과반수’라는 요건은 형식적으로는 충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울뿐인 과반수입니다.

    법원도 여기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8일 이진숙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문화방송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6명의 임명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이 의결정족수를 아예 ‘숫자’로 못박았다면 방통위의 꼼수가 불가능했을 텐데,
    법에 허점이 있었고 정권이 이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꼼수를 막도록 의결정족수를 4명으로 명시한 방통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대통령 부인 특검법은 거부권 예외’ 헌법에 못박아야 하나

    윤 대통령은 이미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해 역대 가장 많은 1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헌법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부·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이 여백을 지배합니다.

    입법부가 명백히 부당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경우에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도무지 거부할 명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 스스로 과거에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2021년 12월29일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8일 ‘채 상병 특검법’도 세번째로 발의됐습니다.
    이번 특검법엔 ‘이종호 등이 김건희 등에게 임성근의 구명을 부탁한 불법 로비 의혹 사건’이 수사 대상에 추가됐습니다.
    김 여사가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 역시 거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법에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으니 내키는 대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만큼 반민주적인 사고도 없습니다.

    한 국가의 원수가 이렇게 천박한 인식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헌법에 ‘대통령 부인이 관련된 특검법은 거부권의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라도 넣어야 한단 말입니까.

    형식적 법 규정만 따지는 건 반쪽짜리 법치입니다.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이 부정되면 껍데기뿐인 법치입니다.

    법치와 공정을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실제 보여주는 건 그런 법치입니다.

    대통령부터 검찰, 권익위, 방통위 할 것 없이 모두 법의 회색 지대에 숨어,
    법의 본령인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53086.html?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ewsstand&utm_term=t3&utm_content=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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