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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21:41전두환보다 잔인하고 박근혜보다 무능한 윤석열
유영안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9/10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한 정권은 두 말 할 것 없이 전두환 정권이다.
그렇다면 가장 무능한 정권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을 든다. 그
런데 그 두 정권을 합쳐 놓은 정권이 탄생했으니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윤석열은 전두환보다 잔인하고 비열하며, 박근혜보다 무능하다.
잔인하고 비열한 것도 문제인데, 거기에다 무능까지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실제로 윤석열 정권 들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전두환을 롤모델로 삼은 윤석열
윤석열은 대선 때 영남에 가서 “전두환 대통령은 5.18 빼고 경제는 잘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자 얼마 후 문제의 ‘개사과’를 올렸다.
지지율이 내려가자 사과하는 척했지만 사과는 개나 먹으란 뜻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윤석열은 전두환을 롤모델로 삼았다.
경제에 문외한인 자신이 그건 머리를 빌려서 하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에겐 남의 머리를 빌릴 지식도 없었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되자 12.12 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자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99% 넘게 지지해 대통령이 되었다.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모여서 투표를 하여 뽑았기 때문에 ‘체육관 대통령’이라고도 불렀다.
제8, 9대 박정희와 10대 최규하, 11대 전두환을 이 방식으로 선출했고 제5공화국에서는 선거인단에서의 선출방식으로 바뀌면서 폐지되었으나 간선제의 방식은 그대로였다.
군인 출신인 전두환의 포악성과 독재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실제로 전두환은 집권을 위해 광주를 피로 물들였고 김대중 총재를 내란음모죄로 구속시켰다.
그러나 전두환은 법정에 서야 했고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국민통합 차원에서 사형만은 면했다.
하지만 그후 전두환은 한 번도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재산이 29만원이라더니 드러난 비자금만 9000억에 가까웠다.
그의 아들은 지금도 미국에 수십만 평의 땅을 가지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스스로 깡패임을 입증
전두환이야 군인 출신에다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이니 그렇다고 쳐도, 국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윤석열은 왜 이런가.
그 잔인성이 전두환이 울고 갈 정도다.
검찰, 경찰, 국정원, 방첩대 등을 동원해 국민을 사찰하고 정적의 가족 및 사돈네 팔촌까지 샅샅이 뒤져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면 구속시키는 정치가 더 비열하고 잔인하다.
그 점에서 윤석열은 이미 전두환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평생 검사 생활만 하다보니 조작과 협박밖에 모르는 모양이다.
윤석열은 “저는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수사로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고 해 인기를 얻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뿐, 권력을 손아귀에 쥔 윤석열은 검찰을 이용해 정적들과 그 가족들을 도륙냈다. 스스로 깡패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 생긴 말이 ‘윤로남불’이다.
모든 사건 뒤에 김건희가 있다
윤석열은 수십 가지가 넘은 소위 ‘본부장’ 비리는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야당의 비리는 사돈네 팔촌까지 압수수색해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면 언론에 대서특필하게 하고 온 가족을 매장시켰다.
300만 원짜리 디올백을 선물로 받은 영상이 있어도 김건희는 무혐의가 내려진 반면에, 김혜경 여사는 경기도 법인 카드로 10만 4000원을 사용했다는 죄로 3년 넘게 수사를 하고 기소까지 하였다.
반면에 윤석열은 수백억에 달하는 검찰 특활비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법원 판결에 따라 제출한 영수증도 대부분 주요 내용이 가려진 것들이었다.
검찰은 수사상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검찰이 룸살롱에 가서 양주 퍼마신 것도 보안인가?
검사들을 불러놓고 쇠고기 전문집에서 쇠고기와 술을 수백만원어치 먹어도 그게 보안인가?
김건희는 그밖에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코바나콘텐츠 뇌물성 협찬, 아크로비스타 삼성 전세 대금, 박사 논문 표절, 석사 논문 표절, 20가지가 넘은 학력 몇 경력 위조,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대통령실 및 관저 공사 개입, 관저 불법 증축, 이종호의 군 및 경찰 인사 개입에 연루되어 있다.
최근엔 공천 개입까지 터져 나와 파장을 일으켰다.
만악의 근원이 바로 김건희였던 것이다.
전두환도 안 한 굴욕적 대일외교
윤석열 정권은 해병대 수사 개입, 마약 수사 개입, 친일파 대거 인사로 전국민의 공분을 샀고, 그 전에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 방류 허용, 일제 강제 징용자 우리 기업이 배상, 동해 일본해 표기 허용 등으로 굴욕적 대일외교를 해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상하게 했다.
최근엔 퇴임을 앞둔 기시다가 방한해 분노에 불을 지폈다.
또 무엇을 밀약해 주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독도가 위험하다는 말도 들려온다.
윤석열은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해외 순방을 다니며 거액을 썼고, 부산엑스포를유치하겠다며 돈을 5000억 넘게 쓰고도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이참에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국정조사 혹은 특검을 해야 한다.
심지어 감사원도 대통령실 용산 이전 후 벌인 각종 사업에 위법이 있다고 적시했다. 대부분의 공사를 김건희가 운영했던 코바나콘텐츠 후원 업체가 공사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도 김건희 종합 특검 때 수사해야 할 것들이다.
나라 곳간 거덜 낸 윤석열
경제는 어떤가.
윤석열 정권 들어 무역수지 적자, 경상수지 적자, 내수부진으로 지난해 세수손실이 56조가 나 나라 곳간이 빌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대기업 법인세 인하, 종부세 인하, 상속세 폐지, 금투세 폐지 등을 추진해 부자들 세금만 감세해 주고 있다.
그 사이 자영업자 100만 개가 사라져 서민들은 거리로 나앉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세계 8대 경제 대국이었던 한국은 지금 세계 13위로 쳐졌다.
언론 자유지수도 15단계나 후퇴했다.
윤석열의 잔인성과 야비함은 이미 전두환을 능가했고, 무능함은 박근혜를 능가했다. 거기에다 총선에서 이겨보려고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하다가 의료대란이 일어나 지지율이 23%까지 곤두박질치고 보수 텃밭인 대구와 경북 그리고 70대까지 등을 돌리자 여야의정 협의체를 만들자고 꼬리를 사렸다.
의대 증원 2000명 증원 뒤에는 의료 민영화가 있다.
친일파로 도배가 된 윤석열 정권
윤석열은 3대 역사기관 수장까지 모두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뉴라이트로 채우고, 김형석, 김문수, 안창호 등 신친일파를 각각 독립기념관장, 고용노동부 장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광복회는 물론 모든 독립 유공자 단체가 윤석열 정권에 등을 돌렸다.
윤석열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 했고, 요즘은 김좌진 장군마저 지우려 하고 있다.
김구가 테러리스트란 책도 나왔다.
‘반일종족주의’를 저술한 낙성대 경제 연구소가 친일파 소굴이다.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은 일본 수상이 준 ‘차세대 지도자상’까지 수상하였다.
그가 바로 ‘왕초 밀정’이다.
그것도 모자라 윤석열 정권은 서울 지하철과 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독도 조형물까지 치웠다.
아마도 방한한 기시다 일본 총리의 눈치를 본 것 같다.
제1야당 대표를 한 번, 그것도 억지로 만난 윤석열은 기시다를 무려 12번이나 만났다.
그런데 형님으로 모시던 바이든도 기시다도 지지율이 폭락해 권좌에서 내려가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요즘 제일 억울해 하는 사람이 최순실이라고 한다.
박근혜는 또 얼마나 억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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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20:30[논설] 김건희 수사 끝난 게 아니라, 공수처와 특검이 기다리고 있다
유영안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9/10
흔히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란 말을 자주 하는데, 김건희 명품수수 사건 수사가 그렇다.
이미 권익위가 무혐의로 종결하고 검찰도 이를 수용하여 무혐의로 종결하려 했으나, 이원석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수심의마저 불기소 권고를 하여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검찰은 조만간 수심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할 예정이다.
짜고 친 고스톱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김건희 명품수수 사건이 끝난 게 아니다.
더 무서운 공수처 수사가 기다리고 있고, 이어서 특검도 기다리고 있다.
용산으로선 산 넘어 산인 셈이다.
공수처는 검찰과 달리 일방적으로 무혐의를 내릴 수 없다.
용산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공수처마저 마음대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
검찰이 수심위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검찰은 수차례 수심위의 권고를 무시한 바 있다.
지금의 검찰은 친윤으로 장악되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철벽 방어를 칠 것이고, 그것을 위해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1~4부 차장까지 모두 교체했다.
사실상 김건희 수사팀을 해체한 것이다.
중앙지검장으로 온 이창수는 대표적인 친윤 검사다.
전주지검장을 하던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 수사를 하다가 졸지에 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원석 검찰총장도 패싱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전횡은 언젠가 법정에 서서 응징 받을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치욕만 남기고 떠나는 이원석 검찰총장, 심우정 신임 검찰총장은 더 할 듯
한때 이원석 검찰총장을 믿었으나 역시 명분 쌓기용이란 게 드러났고, 새로 임명된 심우정 검찰총장도 믿을 수 없다.
그는 심대평 전 충남지사의 아들로 뼛속까지 보수다.
청문회 때 주요 질문에 답을 회피한 것으로 봐 이원석보다 더 윤석열 정권에 충성할 것으로 보인다.
심우정은 잘생긴 외모와 달리 그의 안경 속에 감추어진 것은 이기적 출세욕이었다.
겉으론 착해 보여도 속에는 야수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사람이 가장 무섭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자신이 윤석열 정권에 충성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 알게 될 것이다.
공수처 믿어야 할까?
문제는 공수처도 별로 믿음이 안 간다는 점이다.
수사 인력도 부족한데다 이종호 변호를 했던 사람들이 검사로 임용되 있었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공수처장은 언론에 나와 자꾸만 법과 원칙을 강조했지만, 언제 그들이 법과 원칙을 안 따진 적이 있었던가.
윤석열도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집권했다.
그들이 한 말은 언어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수처가 검찰과 다른 점은 독립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검찰은 법무부 산하의 한 행정기관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이기는 하지만 독립성이 강하다.
따라서 용산이 일방적으로 무슨 지시를 내릴 수도 없고, 공수처도 그 지시에만 따를 수 없다.
그랬다간 나중에 특검이라도 벌어지면 직무유기, 직권남용, 모해위증죄로 법정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믿음이 안 가는 이유는 이미 확보한 02-800-7070 전화번호와 대통령실 통신 내역이 있지만 용산을 압수수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같으면 이미 백악관을 압수수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에 이어 공수처까지 김건희 명품수수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하면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공수처 해체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김건희 종합 특검 이루어질까?
만약 공수처도 무혐의로 종결하면 김건희 종합 특검 여론이 드높아질 것이다.
야당은 이미 김건희 종합 특검을 발의했다.
국힘당이 이번에도 반대하면 지지율이 폭락할 것이고, 한동훈도 대선 주자로서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최근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권의 국정 지지율, 국힘당 지지율, 한동훈 대선 주자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이른바 ‘트리플 디커플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월에 있을 재보궐 선거는 물론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도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10월 재보궐선거에서 국힘당이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진다면 윤석열 탈당 카드가 조기에 나올지 모른다.
윤석열 탈당 카드 다시 거론될 듯
만약 윤석열이 탈당하면 야당이 발의할 각종 특검이 국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용산은 그러기 전에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국힘당 의원들을 회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이 반발하면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한동훈이 국힘당에서 힘이 없어도 8명은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탈당하면 국힘당 의원들도 좀더 자유스럽게 표결에 임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건희를 처벌하지 않고서는 윤석열 정권은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비리 혐의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종호 개입 비선 라인 국정농단은 아직 수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거기서 대형 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삼부토건 주가조작, 마약 수사 외압도 핵폭탄이다.
이래저래 용산은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될 것이다.
끝나도 끝나는 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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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2:49((꼭 읽어 봤으면 하는 글))
21세기의 ‘강도 귀족’과 ‘머크레이커’ [시민편집인의 눈]
수정 2024-09-09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폭발을 낳았지만, 그 열매가 고루 나뉜 것은 아니었다.
혁신 기술을 활용한 자본가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 동안, 노동자들은 기계에 매달려 지치도록 일하고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은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강도 귀족’(Robber baron)으로 불린 19세기 말 미국 기업가들의 예를 들었다.
철도, 철강, 기계, 석유 등의 신기술로 기회를 잡은 이들은 정치인을 매수하고 경쟁자를 축출하며 덩치를 키웠다.
이들이 극단적인 사치로 부를 과시할 때,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으며 노예처럼 일했다.
특히 가난한 집 아이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민자들은 탄광 등 위험한 곳에서 일하다 종종 목숨을 잃었다.
아제모을루와 존슨은 이렇게 불평등이 극심했던 미국 사회가 1940~1970년대의 ‘대압착(평등화)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던 데는 사회운동가, 진보 정치인과 함께 머크레이커(muckraker·추문 폭로자)의 역할이 컸다고 썼다.
머크레이커는 20세기 초 시사잡지 등에서 활약한 탐사 저널리스트를 말한다.
미국 육가공업계의 끔찍한 노동조건을 폭로한 ‘정글’의 작가 업턴 싱클레어,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저지른 정경유착과 노동 탄압 등을 고발한 아이다 타벨(매클루어스 매거진)이 대표적이다.
퇴비(muck)를 갈퀴질하는 사람(raker)처럼 냄새나는 곳을 쫓아다닌다는 비하가 담겼지만, 오늘날 탐사기자들은 ‘머크레이커의 후예’를 흔쾌히 자처한다.
정곡을 찌르는 폭로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1세기에도 기업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임금을 억누르고 취약한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리셀 화재 등 최근의 산업재해를 보면, 한국의 강도 귀족들은 ‘위험의 외주화·이주화’를 애용하는 듯하다.
노동 안전에 애쓰는 기업도 없지 않지만, 숙련된 정규직이 장비를 갖추고 수행해야 할 위험 업무를 비정규직, 하청, 파견, 현장 실습생 등에게 넘겨 버리는 회사가 너무 많다.
그래서 초짜 외주노동자가 안전 장비도 없이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잦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고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 중 하나다. 최근엔 신분이 불안정하고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희생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의 많은 언론사는 광고주인 기업들이 불편해할 보도를 외면한다.
그래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국내 언론에서 노동자의 고통과 한숨을 깊이 다루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한겨레는 노동 문제에 몸을 사리지 않는 드문 매체 중 하나다.
노동을 존중하는 보도는 한겨레의 창간 정신이기도 하고,
2009년 ‘노동OTL’ 연재 등에서 봤듯 한겨레의 경쟁력 요소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최근에도
‘아리셀 사고 한달에 본 이주노동자 재해 무방비 실태’
‘급식실 조리실무 노동자의 작업 환경’
‘폭염 산재 무방비 현장’
‘청소노동자의 씻을 권리’
‘쿠팡의 노동착취 의혹’
등 다양한 보도로 주목받았다.
비정규 노동자 등이 쓰는 ‘6411의 목소리’도 다른 매체에서 보기 어려운 귀한 연재다.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전달하고,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만드는 것은 언론이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에 기여하는 길의 하나다.
그런데 한겨레가 노동·산업안전 보도의 폭을 더욱 넓힌다면, 매체의 영향력과 성장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등 기술변화로 ‘버려질 위기’에 놓인 직장인,
육아와 업무 병행 문제로 좌절하는 비정규직,
통제만 받고 보호는 못 받는 플랫폼 노동자,
직장 내 성차별과 경력단절 위기에 분노하는 여성 등
‘보도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노동 현실을 더 깊이 파고들면 어떨까.
생생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 탄탄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로 현실을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하면 수십만, 수백만이 공감하지 않을까.
영상, 인터랙티브 콘텐츠, 팟캐스트로 만들고 소셜미디어 전파에도 공들이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토론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20세기 일부 머크레이커의 약점이었던 선정성·편파성은 빼고
‘매우 단단한 사실’과 ‘소통 기술’로 무장한, 21세기 머크레이커의 활약을 기대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7755.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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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2:30열여덟 어른, 엄마가 되었을 때 [똑똑! 한국사회]
수정 2024-09-09
허진이 | 자립준비청년
지난 주말, 어린 시절 같은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의 집에 다녀왔다.
친구는 최근에 출산을 해 어느새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 있었다.
친구와 철없이 보낸 학창 시절이 기억에 선명한데 이제는 능숙하게 아이를 돌보고, 심지어는 자신의 집 마당 텃밭에서 키우는 작물의 특징을 잘 아는 멋진 엄마가 된 모습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친구가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둘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 대화의 주제는 출산과 육아였다.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에 친구는 고민이 많은 듯, 올해 결혼 6년차에 곧 세돌을 앞둔 아이가 있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었다.
아기의 태열을 낮추는 방법, 아기 피부에 좋은 제품, 분유와 기저귀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물었고, 나는 그간 터득한 나만의 육아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친구와 고민을 나누다 보니 문득 ‘어느새 내가 육아 선배가 되어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년 전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함에 눈물을 흘리던 때가 떠올랐다. 보육원 친구들 중 가장 빨리 가정을 이뤘던 나는 누구에게도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고, 부모님 도움 없이 아기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며 겁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에는 ‘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나 봐’라며 울었던 내가 지금은 육아 선배가 되어 친구의 막막함을 덜어주고 있다니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처음 하는 모든 일이 남들보다 막막하게 느껴진다.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어른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려면 부족함을 드러낼 때 느낄 부끄러움을 이겨낼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외손뼉만으로는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옛말처럼 어떤 일들은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워서 주변의 지혜나 혜안이 필요하다.
고민이 많던 친구에게 그 어떤 답변보다 내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노하우가 가장 힘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지만 자립준비청년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존재가 많지 않다.
이럴 때는 주변의 것을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대학 시절 나는 새로 사귀게 된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떤 집은 종일 커튼을 닫고 생활하고, 어떤 집은 반찬을 그릇에 덜지 않고 통째로 먹기도 했다.
양육자가 있는 집은 처음 방문해보았기에 집마다 다양하게 살아가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그렇게 친구들의 집을 다니며 ‘내 집이 생긴다면 나는 6인용 식탁을 사야지’, ‘집에 티브이를 두지 않아야겠다’ 등 미래에 내가 꾸릴 가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때 터득한 내 취향은 결혼 후에 남편과 함께 살 집을 꾸미는 데 사용되었고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은 간접경험으로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간접경험은 내게 ‘처음 있는 일’의 막막함뿐 아니라 시행착오도 줄여주었고 ‘나다움’도 찾게 해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처음’ 앞에 서 있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있다.
어렵고 두렵기만 한 ‘처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곳에 가 보거나 여러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친구에게 육아 노하우를 알려준 것처럼 내가 한 시행착오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새출발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통해 ‘엄마 허진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에서는 자립준비청년 선배이자 한 가정의 아내, 엄마인 내 경험을 전하려 한다.
내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처음’을 상상하고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자신만의 것을 이룰 수 있기를 응원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7708.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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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2:11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
입력 : 2024.09.09
손제민 논설위원
1945년 8월15일 한반도 인구 8%에 해당하는 약 210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들 중 70만명이 일본에 남았고, 140만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귀향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귀환 수단은 선박이 유일했고 그마저도 자리를 얻기 어려웠으며 항해 도중 숨진 이도 많았다.
가장 비극적 사례는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 폭침 사건’이다.
그해 8월22일 일본 본섬 최북단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노무자 수천명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이 출발했다.
이 배는 이틀 뒤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로 침몰했다.
당시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때로 일본 군부가 수송 책임을 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이 배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쳐 폭발해 승선자 3735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하면서도 승선자 명부는 침몰 당시 상실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재일 사학자 김찬정의 (1984) 등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2014년엔 승선자가 8000명에 달했다는 외무성 자료가 발견됐고,
2016년 이 배가 폭탄을 싣고 출항했다는 방위성 자료가 나오며 고의 폭침설도 제기됐다.
유족과 한·일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요구에 일본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최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방한을 앞두고 우키시마 승선자 명부 일부를 한국 측에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3·5월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 후 명부 존재를 마지못해 인정했고, 그중 일부를 이번에 내놨다.
퇴임하는 일본 총리의 이례적인 방한을 앞두고 ‘방한 선물’로 포장하자는 쪽으로 사고 회로가 작동한 듯하다.
하지만 많은 유족이 부모·형제를 불귀의 객으로 보내고 그 진상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이 자료를 내놓은 게 아니어서 향후 책임 인정과 배상 문제에 협조할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명부 제공은 한·일 간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고통과 상처는 후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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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2:07서사원 폐지, 결국 서울시 ‘공공돌봄 민영화’ 목적이었나
입력 : 2024.09.09
공적 돌봄을 위해 설립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을 해산시킨 서울시가 9일 ‘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 돌봄 기관을 하루아침에 없앤 뒤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어리둥절하지만, 계획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찬다.
서사원 대안으로 설치될 사회서비스지원센터의 역할은 민간 서비스업체 지원 및 육성이라고 한다. 결국 ‘공공 돌봄의 민영화’를 돌봄 공공성 강화라는 말로 포장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서울시는 “서사원이 직접 서비스 위주로 운영돼 민간 육성이나 서비스 연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공공 역할을 ‘민간 지원·관리·육성’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중에 이런 일을 할 사회서비스지원센터가 서울시복지재단 산하에 신설될 거라고 한다. 아울러 돌봄 상담센터인 ‘120 콜센터’를 신설하고, 중증 장애인과 외상·증증 치매 등 고난도 돌봄에 대해서는 추가 인건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돌봄 수요가 날로 커지고 다양화함에 따라, 민간 돌봄 업체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영리 목적의 민간업체에 맡겨진 사회서비스는 고용과 서비스 이용 양면에서 불안정성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애초 서사원이 설립된 배경도 이 때문이었다.
서사원은 돌봄 강도가 높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해 민간에서 잘 받으려 하지 않는 이용자에 대한 긴급 돌봄을 도맡았던 곳이다.
또 돌봄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로 인식되는 돌봄 노동시장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바꿔나가려 했다.
서사원이 폐지된 후 민간 기관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 자폐 스펙트럼 아동 보호자 등은 돌봐줄 사람을 못 구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돌봄 노동자 100여명은 여전히 실직 상태에 놓여 있다.
공공 돌봄의 마중물 역할을 해 온 서사원을 시장 논리인 재무건전성을 이유로 폐지해버린 것도 모자라, 민간 서비스업체 육성 방안을 내놓으면서 ‘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라 포장하는 서울시는 도대체 공공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돌봄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돌봄 문제가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중요한 현안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지자체가 더욱 적극 개입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 역할을 민간 서비스업체 지원·감독과 전화 상담센터 운영 정도로 한정 짓는다면 더 이상 공공 돌봄의 미래는 없다.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40909181501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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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2:01참으로 ‘별난’ 대통령
입력 : 2024.09.09
양권모
분명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의 국회를 너무 싫어한다.
“국회만 없으면 장관 할 만한 것 같다”(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는 말에서 ‘장관’ 대신 ‘대통령’을 넣으면 딱 윤 대통령의 요즘 심사일 게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국회) 상황 ”이라며 지금 국회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책임의 절반 이상은 대통령에 있는데도 모른 체다.
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반감은 22대 국회 개원식 불참으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참석 안 한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은 지금 못지않거나 더 고약한 정치 상황에서도 국회 개원식에는 참석했다.
야당의 그 ‘조롱과 야유, 피켓 시위’ 속에서도 협치를 당부하는 연설을 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존중했기 때문일 터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 국회 입법권을 존중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국회 개원식 불참을 통해 그걸 재확인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만이 “처음 경험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때까지 바라보던 국회하고 너무 다르다”고 했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오히려 윤 대통령이 여태까지 보던 대통령들과 너무 다르다.
참으로 ‘별난’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만큼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심각한 도덕성 의혹이나 왜곡된 역사 인식, 망언 전력, 자질 부족 등이 드러나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된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 경우 역대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하거나, 그래도 임명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라도 설명했지만 윤 대통령은 막무가내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일제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제주4·3은 공산 폭동’ 등 왜곡된 역사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공산 혁명에 악용될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다.
그런 이유 등으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는데, 윤 대통령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임기 절반이 지나지 않았는데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29명에 달한다.
그새 지난 24년 동안 ‘공직윤리’의 파수 역할을 해온 국회 인사청문회의 허들은 무력화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남발도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21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역대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다.
특히나 본인과 가족의 방탄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심각한 것은 야당과 싸움만 하려드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도 무차별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점이다.
결국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은 검찰에 의해 무혐의 불기소로 결론났다.
검찰수사심의위라는 구색까지 맞춰 면죄부를 갖다 ‘바친’ 꼴이다.
검찰 수사 지휘부를 통째로 갈아치우고, ‘황제 출장 조사’를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국회에서 의결될 두 번째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배우자 보호’를 위해 이리 물불 안 가리고 휘두르는, 무도한 대통령은 예전에 없었다.
윤 대통령의 상궤를 벗어난 국정운영에 대해 민심은 이미 ‘심리적 탄핵’ 상태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3%에 그쳤다.
총선 이후 5개월 동안 지지율은 20%대에 고착되어 있다.
직선제 도입 이래 집권 3년차 대통령 지지율로는 최저다.
역대 대통령은 지지율이 급락하면 반성하고 쇄신하는 척이라도 했다.
인사 쇄신도 하고, 영수회담도 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도 하고,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은 했다.
한데 윤 대통령은 바닥의 지지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신 국회·야당 탓을 하고, 여당 대표 탓을 하고, ‘검은 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변화 없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독단·독선의 국정운영을 계속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국회와 야당은 무시하고, 여당은 들러리 세우고, 오로지 ‘거부권’과 ‘검찰’에 기대어 남은 2년8개월을 버틸 요량인 것 같다.
갑작스레 검찰이 전임 대통령 수사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도 그 일환일 터이다.
머잖아 지지율 20% 선도 무너질 수 있다.
민심이 성나면 배를 뒤집는다는데 과연 그런 걸로 버틸 수 있을까?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90917530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portal_news&utm_content=top_thumb3&utm_campaign=newsstandC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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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1:46다시 '사상 최악'이 될지 모를 한일관계
[取중眞담] '한국 야당이 정권 잡았을 때' 우려하는 일본 신문을 읽고
24.09.09
김경년(sadragon)
이미 11번이나 만났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주말 서울에서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을 했다.
퇴임을 불과 20일 앞둔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을 꼭 만나야겠다며 서울 찾는 걸 보니 한일관계가 정말 좋아진 건 맞는 것 같다.
문재인 시절엔 그렇게 만나자고 해도 무슨 '해결책'을 가져오라며 외면하던 일본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떠오른다.
두 정상 간 비공개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된 것만 보면 이번 회담에서 정부가 거둔 '성과'는 대략 세 가지다.
제3국에 사는 재외국민들의 대피를 서로 돕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한국 국민의 일본 입국 절차를 간소화한 것
그리고 해방 직후 배(우키시마호)를 타고 귀환하다 침몰해 목숨을 잃은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명단 일부를 전달받은 것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살펴보면 과연 성과가 맞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제3국에서 상대국의 재외국민 대피를 서로 도운 것은 작년에 수단과 이스라엘 등에서 한 대로 하면 되고, 일본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면 한국 여행객들이 편해지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사람이 더 올 테니 일본 관광업계가 오히려 좋아할 일 아닌가.
우키시마호 피해자 명단도 그동안 없다고 잡아떼오다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아주 일부만 선심 쓰듯 내놓았으니 유족들은 우롱당한 기분을 토로한다.
대신 언론이 관심을 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기시다 총리가 강제 징용에 대해 "저 자신은 당시 가혹한 환경 아래 많은 분들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한 게 끝이다.
누가 누구에게 가한 고통과 슬픈 경험인지 '주어 없는 문장'인 데다, 일본 정부가 아닌 총리 개인의 소감이니 외교상으로도 별 의미 없는 발언이다.
사실 그간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대해 취해온 태도로 볼 때,
이번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획기적이고 진전된 발언을 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문제 등 모든 현안에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들어줬으니, 과거사 문제라고 해서 일본에 뭘 요구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배상금 지급할 강제동원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외교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것이라는 상식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있는 현상에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차에 정상회담이 열린 6일 저녁 일본 인터넷판에 실린 쿠사카베 모토미 서울특파원의 기사가 확 눈에 들어왔다.
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바로 "총리님과 함께 일궈온 성과들은 제가 취임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는 윤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두발언, 그중에서도 '성과'라는 단어에 주목하며 자신이 한국에서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쿠사카베 기자는 아마도 윤 대통령이 말하는 최대의 성과일 이른바 '제3자변제' 이후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당초 피해자들에게 지불하기 위해 준비한 돈이 40억 원이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120억 원이나 초과됐다는 것이다.
일본 전범기업이 내야 할 돈을 한국 기업이 대신 내게 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강제동원 피해자 15명 가운데 4명은 일본 측의 사죄와 배상 참여가 없는 한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어서 재단 측이 배상금 상당액을 법원에 공탁하려고 하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아 "새로운 법적 다툼으로 발전되고 있는" 딱한 현실도 꼬집었다.
한국 정부의 동의하에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지만,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전시물에 '강제노동'이란 말이 들어있지 않고 방문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장소에 설치한 것을 설명하느라 한국 정부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도 전했다.
급기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윤 정권의 대일 정책을 '굴종외교'로 비판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사람을 공직에 앉히지 못하게 하는 특별법안까지 발의한 현실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이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성과'를 얘기하며 의기양양해 하고 있지만 어림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정권을 차지한다면..."
그러면서 쿠사카베 기자는 "윤 정권의 지지율은 30% 밑으로 떨어져 있다"라며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정권을 차지한다면 대일 정책은 크게 변할 것이며, 그러면 해결되지 않은 한일 간 현안이 표면화되고 관계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 정권이 인기가 없는 덕분에 야당이 차기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적지 않고 그럴 경우 최근 2년여 간의 밀월관계는 '뒤로 돌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일 관계의 어두운 앞날을 우려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기 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고, 일본의 언론은 당시 한일관계를 '국교 정상화 이래 사상 최악'이라고 규정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으로서는 양국 정부가 맺은 멀쩡한 위안부 합의가 정권이 바뀌자 뒤집혔으며, 한일 국교 정상화 때 해결됐다고 생각한 강제동원 문제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대신 '일본의 마음'만 얻어 역사 문제를 대충 봉합한 결과이다.
만약 차기 정권이 '제3자변제'를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고 일본 전범기업들의 한국내 압류자산을 현금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일본이 다시 한국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비난하면서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 될 것이다.
백 보 양보해서, 현 정권 사람들이 주장하듯 일본에 많은 것을 양보한 대신 그만큼 가져오는 것이 있다고 하자.
그럼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받고 싶어 하는 피해자들의 피눈물은 무시해도 되는 건가.
일본 정부에도 당부한다.
과거사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고 그냥 묻어놓고 가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본 정부에도 적어도 절반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인 지난 6일 피해자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나 이제 정부에 등록된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8명만 남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2080&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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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1:28((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한동훈은 비전이 없어서 망할 것이다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4-09-09
두 달 전쯤인가?
‘한동훈은 싸가지가 없어서 망할 것이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찾아보니 그 칼럼에서 내가 이렇게 적었더라.
아무튼 나는 예언 같은 거 잘 할 능력도 없고 내 예언이 맞을 것이라 자신하지도 않는 편이다.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는 한, 예언이란 결국 확률의 싸움이다.
그래서 모처럼 미래에 관해 한 마디 해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동훈이 저 싸가지를 가지고 정치인으로 성공할 확률은 너무 낮다. 한동훈은 언젠가 저 싸가지 때문에 크게 망할 것이다.
지금도 비슷한 심정이다.
나는 예언 같은 거 잘 할 줄 모른다.
그 두 달 사이에 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리도 없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봐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차기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다.
싸가지가 없어서?
뭐, 그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나는 한동훈이 만들려는 세상이 뭔지 당최 모르겠다.
그리고 난 이렇게 비전이 없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를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남긴 역사의 족적(?)
윤석열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하지만 그 중 딱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는 윤석열이 우리나라에서 ‘저런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구나’라는 극히 예외적인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지 비전이 보이지 않는데,
단지 더불어민주당의 연속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안티테제로서의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왜 나쁜 선례냐면,
윤석열이 이걸 가능케 함으로써 그야말로 개나 소나 대통령 꿈을 꾸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 개나 소나 중 하나가 바로 한동훈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1992년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면면을 보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다.
이들 중에는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도 있고, 매우 존경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그런 호오(好惡)를 떠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런 세상이 오겠구나’라는 이미지 없이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단지 보수가 집권하면 보수적인 세상이 올 것이고, 진보가 집권하면 진보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개나 소나 닭이나 말이나 다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보수고 진보고를 넘어 그 정치인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것을 비전이라 부른다.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이명박의 비전은 신자유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였다.
박근혜의 비전은 박정희로의 복고와 통제였다.
나는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극혐했기에 그들의 비전이 틀렸다고 외쳤다.
그런데 윤석열에게는 그게 없었다.
뭔 세상을 만들려는지 알 수 없으니 그것과 싸울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반짝하고 사라진다.
지금은 시답잖아 보이지만 김무성이라는 사람은 2014년부터 무려 2년 가까이 차기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렸다. 하지만 그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등장한 반기문, 황교안도 마찬가지다.
이낙연 전 총리? 지금은 정치권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신세로 전락했지만 이 사람도 2019년부터 꽤 오랫동안 차기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렸다.
이낙연 쪽 사람들은 그가 2021년 초 이명박 박근혜 사면을 주장하는 큰 실수를 저질러 대권 후보로서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만, 내가 보기에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게 아니었어도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민주당 사람으로서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것 외에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세력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윤석열 이전까지 대통령들은 늘 새로운 세력과 함께 시대를 열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처럼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정치인들조차 그랬다.
돼지저금통과 노란 리본으로 전국을 물들이며 화려하게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거대한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정말 역사적 사건이다.
비전이 없으니 자기 세력이 없고, 자기 세력이 없으니 임기 내내 반국가세력 운운하며 극우들에게 러브콜이나 보낸다.
이 황당한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바야흐로 자기의 시대를 여는 비전의 정치인이 아니라 개나 소나 다 꿈 꿀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자리가 됐다.
그렇다면 묻자.
과연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인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비전 없이 등극한 윤석열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지난 3년 동안 모두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력은 언제나 미래를 바라본다.
그래서 그 미래의 비전을 제공하는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어떤가?
그에게서 어떤 미래의 비전을 볼 수 있나?
단언컨대 없다.
이건 한동훈 본인에게 물어봐도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란다. 도대체 왜? 잘 생겨서?
나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백보를 양보해 그가 잘 생겼다고 치자.
그런 이유라면 정우성이 더 적임자다.
영어를 잘 해서? 그런 거라면 개그맨 김영철이고.
달변이어서? 그거라면 김제동이지!
민주당과 더 잘 싸울 것 같아서? 싸움 하면 정찬성 아니냐?
그래서 나는 한동훈이 절대 차기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 운운하며 그가 쉬운 상대라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려운 상대이긴 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내 예언이 맞을지 틀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전 없이 누군가의 안티테제로 대통령이 되는 황당한 일은 지난 대선 한 번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훈의 시대가 결코 열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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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9-10 01:08바보조일[바로보는 조선일보] - 13. 조선일보는 매를 벌지 말고 당장 폐간하라
이득우 조선일보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
기사입력 2024/09/09
조선일보 이한수 종업원이 9월 2일에 ‘나석주는 왜 조선일보에 거사 계획을 알렸나’라는 글을 올렸다.
독립투사들이 펼친 피 끓는 항일투쟁을 묻어버리는 반역의 시대에 일본 띄우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조선일보의 보도라 새삼 충격적이다.
‘의거 전 편지 보내 보도 부탁… 절대적 신뢰 있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1926년 당시에 조선일보는 나석주 의사에게 절대적 신뢰를 받았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친일 실업인들의 모임인 대정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창립했다는 한계에도 민족주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한때 ‘조선 민중의 신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한수 종업원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기밀이 새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이종업원이 깜빡 잊은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는 1933년 친일·반민족 행위자 방응모가 인수하면서 철저한 반민족 신문이 되어버렸고 나석주 의사가 편지를 전한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방씨 일가 이전과 이후의 조선일보는 반민족 행위에 관한 한 하늘과 땅 차이다.
이종업원은 내친김에 속내를 속 시원히 드러낸다.
‘"범인이라 썼다"비난 몰역사적… 맥락 무시, 역사 재단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즉 독립투사를 범인이라 썼다고 비난하면 몰역사적이고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란 주장이다.
조선, 동아일보가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보도하면서 ‘범인’이라고 쓴 사실에 대한 변명이다.
‘당대 신문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일제 통치를 찬양하는 일 아닌가?’라고 역공이다.
혼자 죽기는 싫으니 동아를 끼워 넣은 애교야 그렇다 치자.
이종업원의 '현묘한 논리'에 나 자신이 일제 통치를 찬양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도매금으로 반민족 매국 행위자로 매도될까 움찔한다.
일제의 가혹한 검열로 불가피하게 범인과 범행이라고 썼고 당시는 ‘범행’이라고 써도 ‘의거’라고 알아들었단다.
사건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뉴라이트라며 일제의 착취와 수탈을 미화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장한 민족이다.
그런 조선 민중의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앞장서 ‘극충극성(克忠克誠)’을 맹세한 조선일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조선일보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는 ‘범행’이라는 단어 대신 ‘흉행’이라고 표현하는 창의성까지 발휘했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과거를 함부로 재단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세상을 떠나 말할 수 없는 당대 사람들은 한마디 변론도 할 수 없다.나 의사가 조선일보에 보낸 편지가 후대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당대 기자들은 ‘도매금’으로 매도당해도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나 의사 편지는 적어도 당대 신문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밀을 지키고 이후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경이롭다.이들 모두 독립 투쟁을 함께 한 게 아닌가.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렇게 험난한 시대를 건너 대한민국을 세웠기에 지금 그렇게 비난할 자유도 얻었다는 사실엔 수긍하길 바란다.‘
이종업원의 현란한 마무리가 경이롭다.
그래도 세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나석주 의사께서 방응모가 인수한 1933년 이후의 조선일보에 편지를 맡겼을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보라는 말이다.
일장기를 1면에 모시는 신문을 나석주 의사가 신뢰할 수 있었을까?
방응모가 인수한 이래 자행했던 반민족 행위는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기 때문이다.
1926년의 조선일보와 1933년 이후의 조선일보는 ’같은 이름, 다른 신문‘으로 보인다.현재도 반민족 반민주에 여념이 없는 방씨 조선일보를 미루어 나석주 의사의 편지는 다른 곳으로 전달되었을 것이 뻔하다.
둘째, 조선일보가 가혹한 검열로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의사들의 의거를 ’범행‘이나 ’흉행‘이라고 썼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해방 후에라도 진심으로 고백하고 사죄했는지 묻고 싶다.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가 없기에 지금도 조선일보는 떳떳하게 ’침범을 걱정할 나라는 일본‘이라는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족벌언론기업 조선일보는 한글로 된 일본 신문이라는 말이 비아냥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셋째,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동아일보에 동지애를 과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여운형 선생이 이끌던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의 길을 걷는다.동아일보는 창간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지만 철저한 반성으로 반민족 논조를 더욱 강화한다.
민족이나 정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이 먼 조선일보는 이때를 라이벌인 동아일보를 압도할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여 편집 방침까지 바꾸며 적극적인 반민족 행위로 나섰다는 것이 정설이다.
매를 번다는 말이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야단을 맞는다는 뜻이다.
일본 띄우기에 진심인 조선일보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아마도 조선일보가 정성을 들여온 일본띄우기가 성공적이라 생각하며 좀 뻔뻔스러워도 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당시 사정이 그러해서 독립투사를 ’범인‘, ’범행‘이라고 썼기로서니 뭐가 문제냐는 투다. 오히려 그런 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민족 정론지 조선일보를 탓하는 사람은 일제 통치를 찬양하는 자로 몰아붙이는 현란한 논리 비약까지.
조선일보는 더 이상 매를 벌지 말고 당장 폐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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