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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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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6 03:13
    김건희 여사, 선을 넘으셨습니다
    입력 : 2024.07.15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스포일러는 있었다.
    대선 직전인 2022년 1월 공개된 7시간45분가량의 녹취록이다.
    김건희 여사는 말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서울의 소리)는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남편’도 ‘우리’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을 거라고 했다.

    이번엔 취임 후다.
    최재영 목사에게서 ‘디올 백’을 건네받던 날(2022년 9월) 발언이다.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이 자리’에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넣어보면 어색하다.
    ‘대통령 자리’를 넣어야 어울린다.

    2024년 1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텔레그램 메시지)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부모가 자식 대신, 어른이 아이 대신, 상사가 부하 대신 사과하곤 한다.
    ‘우리 OOO가 어려서(뭘 잘 몰라서, 초보여서) 실수했는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식이다.
    왜 퍼스트레이디가 대통령 대신 사과하나.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중략)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은 정치적 인화성이 크다.
    우선 ‘댓글팀’. 퍼스트레이디가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수사받을 사안이다.

    ‘동지’ 역시 문제적 표현이다.
    김 여사와 한 전 위원장은 어떻게 동지가 됐나.
    다시 녹취록을 뒤져보자.

    서울의 소리 기자가 ‘제보할 게 있다’며 한동훈 당시 검사장의 전화번호를 묻는다.
    김 여사는 답한다.
    “그럼 (제보할 내용을) 나한테 줘. 아니 나한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제3자 연락처를) 보내줄 테니까 거기다 해. 내가 한동훈이한테 전달하라고 할게.”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 징계결정문에는 “한동훈은 2020년 2월 5일~4월 30일 카카오톡 메시지를 징계혐의자 처(김 여사)와 332회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둘은 오랫동안 동지 관계였다고 봐야 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2021년 12월 김 여사는 허위 이력 논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약속했다.
    약속을 어긴 건 잘못이다.

    하지만 녹취록을 통해 그의 정치적 욕망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시민이 스포일러를 놓쳤거나 외면했을 뿐이다.

    윤석열 정권 초기,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서 “김 여사와 메신저로 대화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특한 스타일이구나, 사업을 오래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독특해서가 아니었다.
    김 여사는 정치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봉하마을 방문과 해외 순방에 지인을 동반하고, 팬클럽에 사진을 보내고, 측근들을 대통령실에 심었던 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VIP를 상대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전 대표는 김 여사의 주식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VIP 정체를 두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 했다가 “김 여사를 뜻한 것이었지만 허풍이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해병대원 채 상병 순직 사건은 가장 예민한 국정 현안이다.
    대통령실에서 구명 로비 관여 의혹을 즉각 부인한 이유도 그래서일 터다.
    하지만 부인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 의혹은 여기에 비교하면 ‘소소한’ 사안에 불과하다.
    ‘임성근 구명 로비 개입 의혹’과 ‘댓글팀을 통한 여론조작 시도 의혹’ 두 가지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대기업 CEO의 배우자는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
    검찰총장 배우자는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하물며 대통령 배우자라면 더 엄정하게 선을 지켜야 한다.
    부부 사이 통상적 조언을 넘어 스스로 주체가 돼 공적 업무에 관여해선 안 된다.

    김 여사 스스로 자제하길 모두가 바랐다.
    2년여가 지난 이제는 기대가 무망함을 안다.
    ‘문자 읽씨 ㅂ’ 논란이 점입가경인 가운데서도 김 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독 외교’를 펼쳤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한인 교회를 방문하고, 워싱턴에서 탈북민을 만나 북한 인권 개선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자제시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국회와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미진하면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퍼스트레이디의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기 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2022년 3월 9일 주권자는 ‘기호 2번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을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투표용지에 ‘김건희’는 없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71515170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portal_news&utm_content=240715&utm_campaign=newsstand_top_imag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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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58
    [논설] 해병대 사건, 새로운 녹취 공개되어 충격, 이번에는 경호처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7/15

    또 다른 스모킹건이 나온 것일까?
    14일 한겨레가 으로 보도한 내용을 보니 채상병 수사외압 사건의 실체가 점점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겨레신문은 전 경호처 직원 송씨와 공익제보자의 통화에서 ‘김용현 경호 처장이 구명의 배후라는 언급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일차 녹취 보도에서는 안 나왔던 김용현 경호 처장이 언급되자 정가가 술렁거리고 있다. 김용현 경호처장은 윤석열의 초등학교 1년 선배이고 측근 중 측근이기 때문이다.

    경호처 강력 반발, 법적조치 하겠다 엄포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나가자 경호처는 “김용현 처장은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에 일절 관여한 바가 없고, 김 처장은 임 사단장과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구명 관련한 통화를 하거나 문자 등을 보낸 일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아울러 경호처는 “전 경호처 직원과 공익제보자의 지난 6월 말 통화 내용을 근거로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설을 제기하는 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날조”라며 “만약 전 경호처 직원이 김 처장의 구명 로비설을 제기했다면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임성근이 국회에 나와 이종호와 골프를 친 적이 없고, 일면식도 없다고 했으나, 그후 언론에 공개된 이종호와 제보자의 통화 녹취는 사뭇 달랐다는 점에서 경호처가 일방적으로 부인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차 녹취에서 이종호는 임성근이 사표내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VIP 즉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게 논란이 되자 이종호는 자신이 말한 VIP는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아니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자 민주당이 이게 말이냐, 막걸리라며 국정조사 나아가 특검을 하겠다고 말했다.

    2차 녹취가 더 충격적

    그렇지 않아도 일차 녹취 때문에 정국이 술렁거렸는데, 2차 녹취에 김용현 경호처장이 임성근 구명 로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전 경호처 차장 송씨의 말이 들어 있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야당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경호처는 무조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언론이 보도한 이상 이는 공수처가 나서 수사해야 하고, 모자라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서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여의도엔 삼성 장군 출신(수도사령부 사령관)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들이 나돌았다.
    한때는 경호처가 군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이 안 좋아지자 슬그머니 거두기도 하였다. 그만큼 김용현이 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방증이다.

    언론이 의혹도 보도하지 못하는가?

    경호처는 “한겨레는 정황이나 취지 같은 확인되지 않은 허위 날조된 전언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다”면서 “허위 날조 기사의 책임은 한겨레에 있음을 밝히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이 의혹을 보도한 것은 의무인데 이를 무조건 처벌하겠다면 되겠는가?
    이 경우 수사 결과 무죄가 드러나면 언론의 책임을 묻겠다고 해야 옳은 것 아닌가?
    이재명, 조국 대표의 수사 상황은 생중계 하다시피 했는데 왜 경호처는 의혹도 보도를 못하게 하는가?

    이 보도가 논란이 되자 송씨는 김 처장 개입설은 당시 관가에 떠도는 설을 친한 후배들과 사담으로 나눈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송씨는 “그 사담은 ‘육군 장성 출신 김용현이 자신이 싫어하는 해병대를 망가뜨리고자 임성근 사단장을 일부러 구명해 해병대 명예 실추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라며 “이 말을 들은 후배들은 너무 비약적인 소설이니 어디 가서 말도 꺼내지 말라고 웃어넘겼다”고 했다.

    시중엔 진짜 스모킹건 따로 있다는 설 나돌아

    시중에는 아직 안 터진 스모킹건이 있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혹시 이번에 공개된 2차 녹취가 그것인지는 모르나,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의혹만 커져 특검의 필요성만 다시 부각될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다.
    과거 윤석열은 이재명 대표에게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감옥에 갈 것 같으니까 거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국힘당은 “특검을 거부한 자가 법인이다”라 말했다.
    이제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용산을 강타할 것이다.

    여당에서도 탄핵 자주 거론

    여당에서도 “특검은 곧 탄핵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특검에 탄핵 사유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여당도 뭔가 아직 터지지 않은 대형 폭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상컨대 그 폭탄은 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에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02-800-0707 번호를 누가 사용했는가가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은 원래 야당에서 자주 하는 말인데, 집권 여당에서도 금기어에 해당하는 탄핵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넌센스다.
    미국에서 유행한 ‘코끼리는 말하지 마’ 이론도 모르는 모양이다. 죄가 없다면 왜 특검을 못하는가? 뭔가 특검을 하면 걸릴 것 같으니까 거부하는 것 아닌가?

    어떤 정부든 공무원이나 군인사에 특정인이 로비를 하고 개입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공식 라인이 아닌 일반인이나 전혀 다른 부서가 개입했을 경우 이는 국정농단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경호처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그런 차원에서 경호처는 공수처가 요구하는 압수수색이나 자료요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않고 또 국가 안보 운운하며 거부하면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윤석열은 자신이 근무하는 정부의 심장부를 압수수색하였다.
    그때는 정의고 지금은 부정인가?

    국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야당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참에 김건희 주가조작, 명품수수, 해병대 사건은 말끔하게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 정권은 존립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내일이면 또 무슨 사건이 터지려나, 이게 나라인가?
    나라에 망조가 든 것 같다.


    https://www.amn.kr/4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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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51
    콩가루 집안 전당대회, 국민의힘 분당 대회 될 듯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7/15

    요즘 국힘당의 전당대회를 두고 전당대회가 아니라 분당대회가 될 것 같다는 냉소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웃기지도 않은 ‘언어유희’는 김건희가 한동훈에게 보낸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동훈의 지지율이 가장 높자 한동훈을 눈엣가시로 여긴 누군가가 문자를 세상에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네 후보 중에서 한동훈을 가장 집요하게 공격하는 사람은 원희룡인데, 그 자체가 자신이 윤심을 받고 출마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문자 논란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한동훈이 오히려 김건희는 사과를 안 하려 했다고 폭로해버리자 원희룡은 어디선가로부터 얻은 새로운 정보를 폭로했다.

    댓글팀 운영 폭로에 국힘당 와글와글

    그 새로운 정보란,
    한동훈이 측근을 공천했다는 것,
    김건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켰던 김경율을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하려 했다는 것,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재직 시 외곽에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동훈은 “노상방뇨하듯 거짓말을 쏟아놓는다”고 반박했다.
    노상방뇨란 원희룡이 검사임용 때 거리에 소변을 본 후 순경이 뭐라 하자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고 큰소리친 사건을 말한다.

    파문을 일으킨 것은 친윤으로 통하는 장예찬인데, 그는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재직 시 외곽에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팀을 운영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러자 한동훈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을 뿐, 그 말을 한 장예찬을 고소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법적 처벌 운운하고 나섰을 텐데 왜 장예찬에게는 너그러운 것일까?
    긁어서 부스럼 될까 두려운 것일까?

    그러나 한동훈의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가자 이번에는 한동훈이 비대위원장 때 당비를 횡령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내용인즉 국힘당의 여의도연구소에서 총선 때 70억을 들여 각 지역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때 한동훈이 총선과 무관한 대선 후보 선호도를 두 번이나 조사하게 해 결과적으로 당비를 횡령했다는 것이다.

    자중지란, 적전분열

    그동안 이런 저런 전당대회를 지켜보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힘당 전당대회처럼 치졸하고 비열한 경우는 처음 본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선거인데, 자신의 소신이나 포부를 밝히는 것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만 화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그 중심에 한동훈과 원희룡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동훈과 원희룡은 윤석열 정권 탄생의 주역들로 두 사람 모두 윤석열 정권에서 가각 법무부 장관과 국토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중 한동훈은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윤석열이 신임하는 검사였고 장관이었다.
    한동훈과 윤석열은 박근혜 국정농단 때 특검에 소속되어 박근혜를 구속하는 데 기여했다.

    동지에서 적으로?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을 그만 두고 국힘당 비대위원장으로 올 때만 해도 한동훈이 윤석열이 점지한 후계자란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동훈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평생 검사 생활만 한 한동훈은 정무적 감각이 부족해 총선 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허둥댔다.
    이걸 두고 홍준표 대구 시장이 “정치 정자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와 선거를 하니 내참 어이가 없다.”고 일갈했는데, 선거 결과도 역대급 참패였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실정 때문에 국힘당이 참패했지만, 총선을 지휘한 한동훈의 무능과 외고집도 한몫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동훈은 뭔가 새로운 전략을 내세울지 알았는데, 겨우 내놓은 게 이, 조(이재명, 조국) 심판이었다.
    역대 총선 중 야당이 여당이나 정부를 심판한다는 말을 들어 보았어도 여당이 야당을 심판한다는 들어보..지 못했다.

    마치 자신들이 약자처럼 코스프레 하려는 꼼수를 부리려 했겠으나 유권자들에게 그게 통하겠는가?
    한동훈이 외친 이조심판은 오히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더 부추기게 하는 효과만 냈다. 국민들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정권 심판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한동훈의 완벽한 선거 전략 실패다.
    홍준표가 왜 한동훈에게 ‘애’라고 말한지 알겠다.
    검찰 세계와 정치판은 다른데, 한동훈은 아직도 검찰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동훈의 태도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치에 입문한 이상 진중해야 하는데 한동훈은 특유의 깐족거리는 태도로 일관했고, 표정도 이상해 보였다.
    특히 고개를 약간 비틀고 위를 쳐다보는 모습은 오만하게 보였다.
    키가 더 크게 보이려고 까치발을 한다거나 키높이 구두를 신고 다닌 것도 어색해 보였다.

    한동훈의 자기정치와 엘리트 의식

    한동훈은 유세장에 가서도 자당 후보를 띄워주는 게 아니라 자기 홍보에 열중했다.
    그러자 홍준표가 “셀카 찍느라 세월 다간다”고 일갈했다.
    정치가가 외모나 이미지에만 치중하면 진정성이 사라져 신뢰감이 덜 가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소탈하고 솔직한 정치가의 모습에 더 박수를 보내준다는 것을 한동훈은 모르고 있다.

    이 모든 게 한동훈의 엘리트 의식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에 사법고시 패스, 검사, 검사장, 법무부 장관, 집권여당 비대위원장을 했으니 어깨에 힘을 줄 만한 하지만, 정치는 외형적인 경력만 가지곤 안 통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상고 출신이지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이유는 외모나 학력 때문이 아니다.
    진정성이 안 보이는 정치인은 일회용으로 쓰일 뿐 결코 대성할 수 없다.

    한동훈의 확증편향도 문제다
    한동훈은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야당이 하는 일은 모두 잠재적 범죄로 보는 ‘검사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국 자녀는 표창장 하나로 가족을 도륙냈으면서도 자신의 딸이 봉사 시간을 조작하고, 돈으로 산 앱을 출시해 상을 받고, 논문을 대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하면 그만한 죄는 징역 10년도 모자랄 것이다.

    누가 당대표가 되어도 분열 불가피

    한동훈이 당대표가 된다고 해도 문제다.
    국힘당 주류를 이룬 친윤들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실제적으로 당을 이끌어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최고위원으로 친윤이 더 많이 당선되면 집단 사퇴로 한동훈 체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만약 한동훈이 채상병 특검에 조건부 승인을 한다거나 김건희 종합 특검에 협조할 뜻이 보이면 용산은 감추어 두었던 ‘캐비닛’을 꺼낼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동훈도 자신이 알고 있는 용산 비밀을 폭로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변하지 않은 이상 국힘당은 앞으로 실시될 모든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다.

    당장 내년 4월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데, 그때도 참패하면 국힘당에서 윤석열 탈당 카드가 다시 나올 것이고, 윤석열은 결국 탄핵되고 말 것이다.

    https://www.amn.kr/4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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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41
    [사설] 대한민국 야당 대표는 탄압과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박진영 민주연구원 부원장
    기사입력 2024/07/15

    ▲ 타임지가 14일(현지시간)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트럼프 사진이 실린 8월 5일자 표지./출처=TIME 공식 트위터 © 서울의소리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 테러 현장을 보셨을 것이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속하게 처리되는 현장에서의 범인 제압 과정도 한국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현장에서 범인은 즉각적으로 사살되었다.
    아마도 비밀경찰국 정부기관으로 추정된다.
    정부기관에서 현장을 물샐틈없이 경호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큰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다.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은 총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피를 흘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도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을 뿐더러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는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암살테러를 당했을 당시 정부가 했던 행동이 생각난다.

    이재명 전 대표 피습 직후 경찰이 사건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물청소를 했다.
    닥터헬기를 탔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범인에 대한 수사와 모든 절차가 뒤늦게 이루어졌다.

    너무 차이나지 않는가?

    미국에서는 야당 대표도 배려하고 지켜줘야 될 대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야당 대표는 탄압하고 제거해야 될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서 국회에 대해서 대결만 벌인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본인이 한 행동을 되돌려 생각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협치는 대한민국의 야당에 대한 배려는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깬 것이다. 그 댓가를 곧 받게 될 것 같다.



    출처: 민주진영 박진영 교수와 함께하는 민주진영 전략회의 "작전타임" 7월 15일 오전 8시 50분 방송 (김병주 의원 인터뷰 외)

    https://www.youtube.com/live/EcNGlmR_tNk?si=vQ7FyFMZlaDepT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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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38
    신라면세점 가방 안에 과연 서류가 들어있었을까?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7/15

    서울의 소리가 보도한 김건희 명품수수가 지난 총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대학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김건희의 명품수수가 지난 총선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명품수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함께 ‘김건희 리스크’란 말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국힘당은 총선에서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야당이 김건희 종합특검을 발의하려 하자 김건희 측에서 명품수수에 대해 해명이 나왔다.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에게 디올백을 선물하기 위해 코바나콘텐츠에 방문했을 때, 복도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최재영 목사가 촬영한 화면에 잡힌 것을 보면 대기자들은 신라면세점이라 씌어 있는 에코벡을 들고 있거나 다른 가방을 옆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건희 변호인이 그때 대기자들은 김건희에게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대기 중이던 대통령실 행정관이며, 가방 안에는 김건희에게 올릴 보고서 서류가 들어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건희 변호인은 그 증거로 그 전날 행정관들이 서로 주고 받은 텔레그렘 문자를 공개했다.

    그러나 김건희 측 변호인이 공개한 문자를 보면 윤석열과 김건희가 영국 방문 일정을 검토 중이란 말과 함께 보고를 하루 미를 수 있다는 말 뿐, 그들이 하루 뒤에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 갔다는 다른 증거들은 공개하지 못했다.
    그들이 정말로 그날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 갔다면 주변 CCTV에 그들이 타고 간 차나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다.

    CCTV가 이미 삭제되었다 해도 당시 대통령실 근무일지라도 공개하면 신빙성이 높을 텐데, 왜 가방과 당시 보냈다는 서류만 공개했는지 궁금하다.
    서류 속에 있는 9월 13일 날짜도 대통령실 컴퓨터에서 확인한 게 아니라 서류 속에만 그렇게 박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실을 압수수색해야 하는데 용산이 그걸 허용하겠는가?

    모르긴 모르되 대통령실은 이 건으로 최재영 목사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지 모르지만, 그 경우 법정에 그 행정관들이 모두 출두해야 하므로 긁어서 부스럼만 만들 것이다.
    행정관들이 그날 코바나콘텐츠에 갔다는 다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법원도 판단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신라면세점 없어

    김건희의 변호인은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신라면세점 에코백을 들고 있던 사람은 대통령비서실 조모 행정관이고, 에코백과 종이 가방엔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며 "이를 입증하고자 당시 들고 있던 에코백을 검찰에 임의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라면세점 에코백은 오래 전 부산 신라면세점 오픈 당시 100달러 이상 구매자에게 제공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토마토’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 부산은 1990년 이후 면세점이 운영된 바 없다고 한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1989년~1990년, 잠깐 부산에서 면세점을 운영했던 것 외에 부산에 우리 면세점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신라면세점은 부산항(부산시 동·남구)과 김해공항(부산시 강서구)에서 신라면세점 인도장을 운영 중이다.

    면세점 인도장이란 인터넷 면세점이나 시내 면세점에서 사전 구매한 면세품을 출·입국 때 건네받는 장소다.
    복수의 면세업계 관계자는 "부산항 인도장은 2015년에 문을 열었고, 김해공항 인도장도 최소 2017년보다 훨씬 전에 개점했다"고 했다.

    김건희 측 주장이 맞다면 조모 행정관은 영상이 촬영될 당시인 2022년으로부터 무려 30년 전(1989년)에 부산 신라면세점으로부터 에코백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면세점 인도장에서 에코백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5~7년 전 일이다.

    반면 영상 속 에코백은 너무 깨끗하다.
    다른 사진에는 에코백이 아닌 네모난 상자처럼 보이는 종이가방도 보인다.
    언제부터 공무원들이 저런 곳에 서류를 넣어 보고했는가?
    저런 가방을 대통령실에 두고 사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
    대통령실엔 봉투도 없는가?

    공무원이 김건희에게 보고할 의무도 없어

    그리고 명품수수 사건이 공개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야 대기자들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던 행정관이라 밝힌 것도 우습다.
    그게 사실이면 명품수수 사건이 터졌던 작년에 행정관들이 나서 그때 대기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라고 밝혔어야 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기자가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행정관이라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실엔 영부인 일정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권은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김건희를 관리해줄 사람이 없었다.
    공무원이 김건희 심부름을 했다면 그 자체가 위법하다.

    백번 양보해 그 사람들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행정관이라 해도, 하필 신라 면세점 가방 안에 서류를 넣어 간 것도 어색하다.
    보고할 서류가 얼마나 많기에 종이봉투가 아닌 신라면세점 가방 안에 넣어 갔다는 건지 모르겠다.

    영국 방문 시 일정이나 유의사항이 담긴 보고서는 불과 몇십 쪽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국가 보고서를 반팔 셔츠 입고 츄리닝 입은 채 받는가?

    본질 아닌 것으로 본질 희석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건희가 명품을 수수했다는 그 자체이며, 나머지는 사건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곁가지를 아무리 동원해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부산 신라 면세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다는 에코백도 사실이 아닌 것이 드러났으니 이제 그걸 어디서 구했다고 변명할 것인가?

    VIP를 윤석열과 김건희에서 김계환 사령관으로 바꾸더니,
    이제 선물을 서류로 교체할 참인가?


    https://www.amn.kr/48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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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4 20:24
    하와이 교민들은 왜 한국 야구대표팀 투수를 무릎 꿇렸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박석윤
    김종성(qqqkim2000)
    24.07.14

    ▲ 1920년 8월 2일 자 에 소개된 박석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국 프로야구선발팀과 대결한 친일 투수가 있었다.
    조선대표팀과 미 프로선발팀의 시합이 열린 1922년 12월 8일 발행된 는 "북미합중국직업야구단"의 방한을 보도하는 2면 좌하단 기사에서 "작일 하오 7시 50분 남대문착(着) 열차로 입경하야 금일에 전조선군(全朝鮮軍)과 전투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한 뒤 "중앙체육단의 박석윤"을 거명했다.

    조선 제일의 투수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선수들이 주축인 미국 선발팀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도 3명 있었다.
    만만치 않은 이 팀과 "전투를 개시할" 전조선군 투수는 24세의 친일파 박석윤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친일파가 된 게 아니라 이때 이미 친일파였던 인물이다.

    근대 문헌들과 관련된 학술지인 의 2016년 제14호에 실린 홍윤표 OSEN 선임기자의 기고문 '납·월북 체육인들에 대하여'는 1922년판 한·미 올스타전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조선대표팀은 미국선발팀과의 대결에서 3-23으로 완패했다.
    비록 처참하게 지기는 했지만 그 경기에서 조선팀의 실책이 10개나 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완투했던 박석윤이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박석윤은 조선 제일의 투수였다.
    생업은 영어교사일 때도 있고 기자일 때도 있고 외교관일 때도 있었다.
    제2권 박석윤 편은 "1923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취직해 영어교사 겸 야구부 코치로 근무했다"라며 "1924년 3월부터 6월까지 정치부 기자를 지냈다"고 설명한다.
    외교관 활동은 이 이후에 나타난다.

    박석윤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휘문고보 코치가 된 1923년에 그의 팀은 고시엔(갑자원)대회 조선 예선전에서 전원 일본인들로 구성된 팀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그런 뒤 일본에서 열린 고시엔 본선에서 8강에 올랐다.


    제28권 제4호에 실린 이종성 한양대 교수의 논문 '휘문고보의 고시엔 야구대회 8강 진출의 역사적 의미'는 고시엔 한국 예선에서 한국팀이 우승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고,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이 본선에 진출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야구 분야에서는 반일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박석윤이 정치 분야에서는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한국 야구의 희망이었던 박석윤은 "최남선의 여동생인 최설경의 남편"이다.
    1898년 10월 26일 전라도 담양에서 출생한 뒤 6세 때 서당에 들어가고 9세 때 담양 청평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다. 13세 때 중앙학교에 입학한 그는 1911년인 그해에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제일중학교, 죠사이중학교, 교토 제3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전에 그는 이미 친일파가 되어 있었다.

    1993년에 발행된 제2권에 실린 장세윤 당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박석윤: 항일무장투쟁 세력 파괴·분열의 선봉장'은 "조선총독 사이토의 참모인 아베에게 포섭된 그는 3·1운동 직후부터 부일배가 되어 민족운동가 김준연의 전향 공작을 벌였지만, 이 공작은 실패로 돌아갔다"라며 그가 총독부의 도움으로 도쿄제국대학을 다녔다고 말한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이 그런 일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 밀정이거나 프락치

    ▲ 1923년 7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 당시 박석윤이 감독을 맡은 휘문보고가 고시엔대회 조선예선에서 우승을 거두고 찍은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는 총독부의 수당을 받아 1925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했다.
    젊은 시절부터 친일 재산을 받아가며 밀정이나 프락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4-6권 박석윤 편은 하와이 교민들이 박석윤·박석기 형제를 일본 밀정으로 의심한다는 1924년 8월 28일자 기사를 소개한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의 정체가 일찍부터 노출됐던 것이다.

    서른 살이 넘은 1930년대의 박석윤은 친일 성향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1930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의 부사장이 되고, 1931년에는 친일 친목단체인 동우구락부의 총무간사가 되고, 1932년에는 만주지역 친일화를 위한 민생단 조직에 참여했다.

    그의 친일은 스케일이 계속 커져갔다.
    1934년에는 만주국 국무원에서 촉탁 신분으로 근무하고 1937년에는 만주국 국무원 외무국의 조사처장이 됐다.
    1939년에는 바르샤바주재 만주국 총영사가 되고, 1940년에는 만주지역 항일세력을 무너트리기 위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총무가 됐다.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의 녹봉을 받으며 이 지역 항일세력 탄압에 가담했던 것이다.


    박석윤의 친일 인생에서는 세 번의 '정치적 도루'가 발견된다.

    그가 바르샤바총영사로 있던 때에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그는 첫 번째 도루에 나선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폭격하자 폴란드를 탈출해 이탈리아·리투아니아 등을 시찰한 후 만주국의 귀국명령을 받고 베를린·모스크바 등을 거쳐 1940년 6월 신징으로 돌아왔다"고 은 말한다.

    만주국 수도인 오늘날의 창춘(장춘)에 귀환한 그는 만주국 외교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1945년에 두 번째 도루를 감행한다.
    "1945년 5월 일본의 패전이 예상되자 조선에 돌아와 은둔"했다고 사전은 말한다.
    그런 뒤 반일 지도자인 여운형을 찾아간다.
    "8월 해방 직전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에게 행정권을 넘겨줄 뜻을 밝히자, 여운형과 접촉하여 전후처리문제를 교섭"했다고 사전은 말한다.

    세 번 변신 시도하다, 북한에서 비참한 최후

    두 차례의 도루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세 번째는 달랐다.

    통일적인 한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개최(1946.1.16)되고 본회담이 무기한 휴회(5.6)에 들어가는 1946년 상반기는 한반도가 분단될지 통일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때였다.
    바로 이 시기인 그해 3월, 그는 질병 치료를 이유로 평양을 방문한 뒤 평남·함남·강원이 만나는 평남 양덕군으로 올라간다.

    위 홍윤표 기고문은 "박석윤은 해방 뒤 1946년 3월 평양을 거쳐 지병인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양덕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고 전해진다"고 말한다.
    해방 전후에 서울의 여운형과 접촉했던 인물이 미·소 회담 기간에 이북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그가 친일청산에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해 7월에 그는 양덕군에서 친일분자라는 이유로 체포돼 양덕보안소에 구금됐다가 석방됐다.
    1947년 2월에 다시 체포된 그는 1948년 1월 평안남도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상소가 기각돼 동년 6월에 사형이 확정됐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사망했다.

    26세 때인 1924년에 박석윤은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하와이를 방문했다.
    위 기고문은 "현지 교민들이 어느 날 그를 해변으로 불러내 꿇어앉힌 뒤 모래밭에 칼을 꽂아놓고 친일 행각을 반성하고 자결을 하라고 강요"한 일화를 소개한다.
    이때 그는 동생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마침 그와 함께 끌려갔던 동생 박석기가 그 칼을 집어들고 제 가슴을 X자로 그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내면서 형의 결백을 주장한 덕분에 곤경을 모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 번째 도루 때는 이런 요행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에 정착했다면 친일청산기구인 반민특위에서 잠깐 고생하다가 끝났을 그는 이북으로 요양간 일이 화근이 돼 친일청산의 대상이 되고 52세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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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4 19:55
    [조하준의 직설] 영부인이 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나?
    조하준 기자
    입력 2024.07.14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미국 순방 중에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1일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뉴스 섹션을 보면 김건희 여사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의실에서 북한 억류 피해자와 유족, 북한인권 개선 활동 중인 탈북민, 북한 전문가 등을 만나 북한의 인권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사진들을 게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많은 의문점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는 김건희 여사가 그 자리에 무엇 때문에 갔느냐이다.
    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일 뿐 어떤 공직자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지 영부인이 할 일은 아니다.

    두 번째는 그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이란 단체는 결코 순수한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NED는 그동안 탈북자 단체들에 자금줄을 대주며, 대북 전단 살포를 적극 지원해 왔던 단체로 김 여사가 만난 수잔 숄티는 탈북자 박상학과 함께 수시로 대북 전단을 살포해 남북 관계를 긴장,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며 한반도 평화를 파괴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어디 그 뿐인가?
    수잔 숄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북한에 굽실거렸다'라는 막말을 퍼붓던 사람이기도 했다.

    2020년 9월 29일 뉴스타파 보도를 살펴보면 "탈북민 단체들의 활동은 미국 정부가 남북한 양쪽 모두를 보다 더 압박해주기 바라는 미국 방위산업체 이해관계자들과 미국 보수 매파의 지지와 금전 지원을 받는 일종의 국제적 캠페인이 됐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또 뉴스타파는
    "북한인권을 외치는 워싱턴의 단체들은 미국의 오랜 습성을 보여준다. 북한과 평화 외교를 섬세하게 쌓아가려는 한국의 주권을 억제하려 드는 것이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이 NED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던 자칭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워싱턴 내 초강경파와 이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단체들이 외치는 인권 구호 이면에는 이른바 “불량배 국가”의 정권을 교체한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NED는 대단히 불순한 단체이며 결코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는 왜 이들과 만나서 '북한 인권'에 대해 의논한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북한 인권'이란 주제는 복어 독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한 주제이다.
    소위 말하는 일부 종북주의자가 아닌 이상 북한의 인권 실태가 대단히 열악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 평화무드 장착을 위해 노력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도 북한 인권 실태를 몰라서 입 밖으로 안 꺼낸 것이 아니다.

    세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입 밖으로 안 꺼낸 이유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수구 정당 출신 대통령들은 걸핏하면 '북한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규탄을 쏟아냈는데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던가?
    실상 '북한 인권' 문제는 수구 정당 집권기에 대북 적대 정책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던 수단에 불과했다.

    막상 그들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은 없었다.

    12일 국민주권당은 구산하 대변인 명의로 낸 는 제목의 논평에서 "국정 운영에 아무 자격이 없는 김건희가 '북한 인권' 공세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무자격자'가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위험천만한 행보를 일삼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 말이 옳다고 본다.
    김건희 여사는 국정 운영에 끼어들 자격이 없으며 그가 국정에 개입하면 그것이 곧 '국정농단'이 된다.

    그렇게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윤석열 정부는 왜 채 상병 특검법에는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임성근이란 무능한 장수의 무리한 작전 투입으로 인해 억울하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채수근이란 장병의 한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거창하게 북한 인권 주민을 논하기 전에 먼저 국군 장병들의 인권부터 논하는 것은 어떤가?

    북한 인권 문제가 열악한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북한 김 씨 정권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가능성도 없으며 남북 통일을 위해선 좋든 싫든 그들과 대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왜 알아서 미국 네오콘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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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3 20:51
    떡볶이
    입력 : 2024.07.11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전복과 해삼을 물러지게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가래떡을 한 치 기장으로 썰어 넣고 녹말, 후춧가루, 기름, 석이 등 여러 가지에 간장물을 풀어 냄비에 볶는다.”

    19세기 조리서 (연세대본)에 보이는 떡볶이의 조리법이 이렇다.

    본문에는
    “잔치하는 데와 술상을 보는 데에 쓰기 좋다”
    “볶을 때 너무 되게 볶지 말고 자연히 지적지적하게(수분이 잦아들도록) 볶는다”
    등의 주석이 붙어 있다.

    보신 대로다.
    옛 떡볶이는 있는 집에서 마음먹고 만들어, 잔칫상이나 점잖은 술상에 낼 만한 일품요리였다.
    또 다른 19세기 조리서 속의 떡볶이 조리법도 읽어볼 만하다.

    “떡볶이는 떡을 잡탕 무보다 조금 굵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숙주, 고기를 담가 붉은 물을 없앤 후 가늘게 두드려 양념해 자잘하게 익혀 펴서 내고 장국을 맛나게 끓여 양념과 떡을 한데 넣어 볶아낸다. 도라지, 박오가리, 표고도 넣고 석이와 표고는 달걀에 부쳐 가늘게 썰어서 얹는다.”

    1970년대까지 가냘프게 이어진 서울 문안의 떡볶이는 전근대 조리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붉은 빛깔은 일절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에 파천황의 떡볶이가 나타났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온 원조 밀가루를 한국인이 밀떡으로 소화한 덕분이었다.
    떡국이며 떡볶이에 쓰는 긴 흰떡은 본디 멥쌀가루로 뽑는다.

    떡의 기본은 쌀이다.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이래, 1985년 이전까지 쌀은 늘 부족했다.
    쌀밥만큼이나 한국인의 원망과 희망이 맺힌 음식이 곧 흰떡이었다.

    한국인은 원조 밀가루를 변용해 ‘밀떡’이라는 희대의 발명을 해낸다.
    여기다 싸구려 저품위 시판 고추장이 가세한다.
    감칠맛을 더할 어묵 또한 뒤따랐다.


    대도시를 낀 식품산업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먼저 궤도에 오른 산업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생계를 위해 무작정 대도시로 온 사람들에겐, 더욱이 여성에겐, 음식장사가 그나마 만만했다.

    시골여성은 주방에서 매일 음식노동을 해온 이들이다.
    농어촌을 떠나, 막 대도시 변두리에 터 잡은 여성들은 골목길과 시장과 길거리의 좌판 또는 포장마차로 나가 전근대 떡볶이와는 다른 붉고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모두가 기억하고, 모두가 다시 사 먹을 만한 인상적인 빛깔과 선명한 맛이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코흘리개, 청소년, 학생, 노동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싸고 배부른 떡볶이에 빠져들었다.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떡볶이는 한국 현대사와 함께 태어난 새로운 음식이다.
    한국인이 유제품에 적응한 뒤로는 크림과 치즈도 껴들었다.
    떡볶이에 튀김, 김밥, 순대를 더해 한 벌의 정식(定食)도 만들었다.
    피자와 파스타가 대중적으로 퍼지면서는 토마토퓨레, 토마토페이스트까지 응용하고 있다.

    짜장(춘장)떡볶이, 카레떡볶이, 치즈떡볶이, 크림떡볶이, 로제크림떡볶이 다음에는 무엇이 뒤따를까?
    지켜볼 일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으니까.

    한국형 변화무쌍과 한국형 속도전 속에서, 떡볶이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를 음식이니까.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711205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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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19:24
    늙으면 왜,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수명이 길까
    입력 : 2024.07.13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

    >> 생물학적 특성…좋은 식습관·청결·대인관계가 장수 비법

    늙으면 왜,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수명이 길까

    “대기실에 할머니들 천지삐까리네요. 다들 한가하구먼!”
    매사 부정적이고 성인지감수성에 둔감한 할아버지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수명이 더 길어서라고 하자, 왜 할머니가 더 오래 사느냐며 따져 물었다.

    올해 보험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수명은 90.7세이고 남성의 평균수명은 86.3세라고 한다.
    할머니가 4년 이상 더 생존한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수명이 긴 이유는 다양하다.
    의학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운명 같은 것이다.
    전두엽의 발달이 더딘 남성이 여성보다 충동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여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남성이 더 많다.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인 심장질환도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한원인이다.

    균형 잡힌 식생활,
    청소와 빨래가 이뤄진 청결한 환경,
    친밀한 대인관계.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세 가지도 건강과 수명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영양 부족과 질병에 취약하고, 외로움에 시달린다면 생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더 오래 사신다고 불만인 할아버지에게, 생명 연장의 비법을 알려드렸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수다 떠세요.”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4071306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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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19:00
    2)
    윤석열·김건희의 '가장 무도회', 인질 잡은 보수정당 이제 그만 놓아주길
    [박세열 칼럼] 당원들은 윤·김 부부를 비토하기 시작했다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7.13.


    보스처럼 굴던 윤석열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당원들은 그를 '보스'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여권 권력 투쟁의 장에서 '반윤 투사'가 된 '한동훈 당대표'를 전제하지 않은 어떤 전망도 무의미해진 것 같다.

    설사 만에 하나 그가 당대표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다져진 그의 지지도는 (그의 실력과 별개로) 향후 여권 권력 투쟁에서 불변의 상수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을 발목잡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동훈에겐 '매직 에이트', 8표의 캐스팅보트가 있다.

    물론 문제는 한동훈에게도 여전히 '보수 정당의 비전'이란 게 안 보인다는 점이다.
    권력 투쟁에만 능숙한 '정치 초짜'가 당대표가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걱정거리'지만, 지금 보수 정당 당원들은 '윤석열 비토'에 더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애초에 윤석열은 보수 정당의 '객'이었을 뿐이다.
    '친윤 그룹'은 보수의 변방에서 대통령을 타고 중심으로 들어온 비주류였다.

    윤석열이 보수 정당에 무슨 뿌리가 있는가.
    '윤석열 정치'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그는 어쩌다 대통령이 된 뜨내기였다.

    이 사실을 윤석열과 김건희만 모르고 있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정당의 주인인양 행세했다.
    무슨 '당원 동지' 의식이 있었겠는가.
    많은 관전자들이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그걸 느끼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가장 무도회'를 그만두고 이제 보수정당을 그만 인질에서 놓아주시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71208335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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