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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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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41
    [사설] 대한민국 야당 대표는 탄압과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박진영 민주연구원 부원장
    기사입력 2024/07/15

    ▲ 타임지가 14일(현지시간)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트럼프 사진이 실린 8월 5일자 표지./출처=TIME 공식 트위터 © 서울의소리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 테러 현장을 보셨을 것이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속하게 처리되는 현장에서의 범인 제압 과정도 한국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현장에서 범인은 즉각적으로 사살되었다.
    아마도 비밀경찰국 정부기관으로 추정된다.
    정부기관에서 현장을 물샐틈없이 경호했기 때문에 더이상의 큰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다.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은 총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피를 흘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도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을 뿐더러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는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도널드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암살테러를 당했을 당시 정부가 했던 행동이 생각난다.

    이재명 전 대표 피습 직후 경찰이 사건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물청소를 했다.
    닥터헬기를 탔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범인에 대한 수사와 모든 절차가 뒤늦게 이루어졌다.

    너무 차이나지 않는가?

    미국에서는 야당 대표도 배려하고 지켜줘야 될 대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야당 대표는 탄압하고 제거해야 될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서 국회에 대해서 대결만 벌인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본인이 한 행동을 되돌려 생각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협치는 대한민국의 야당에 대한 배려는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깬 것이다. 그 댓가를 곧 받게 될 것 같다.



    출처: 민주진영 박진영 교수와 함께하는 민주진영 전략회의 "작전타임" 7월 15일 오전 8시 50분 방송 (김병주 의원 인터뷰 외)

    https://www.youtube.com/live/EcNGlmR_tNk?si=vQ7FyFMZlaDepT5p

    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6 00:38
    신라면세점 가방 안에 과연 서류가 들어있었을까?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7/15

    서울의 소리가 보도한 김건희 명품수수가 지난 총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대학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김건희의 명품수수가 지난 총선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명품수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함께 ‘김건희 리스크’란 말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국힘당은 총선에서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야당이 김건희 종합특검을 발의하려 하자 김건희 측에서 명품수수에 대해 해명이 나왔다.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에게 디올백을 선물하기 위해 코바나콘텐츠에 방문했을 때, 복도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최재영 목사가 촬영한 화면에 잡힌 것을 보면 대기자들은 신라면세점이라 씌어 있는 에코벡을 들고 있거나 다른 가방을 옆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건희 변호인이 그때 대기자들은 김건희에게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대기 중이던 대통령실 행정관이며, 가방 안에는 김건희에게 올릴 보고서 서류가 들어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건희 변호인은 그 증거로 그 전날 행정관들이 서로 주고 받은 텔레그렘 문자를 공개했다.

    그러나 김건희 측 변호인이 공개한 문자를 보면 윤석열과 김건희가 영국 방문 일정을 검토 중이란 말과 함께 보고를 하루 미를 수 있다는 말 뿐, 그들이 하루 뒤에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 갔다는 다른 증거들은 공개하지 못했다.
    그들이 정말로 그날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 갔다면 주변 CCTV에 그들이 타고 간 차나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다.

    CCTV가 이미 삭제되었다 해도 당시 대통령실 근무일지라도 공개하면 신빙성이 높을 텐데, 왜 가방과 당시 보냈다는 서류만 공개했는지 궁금하다.
    서류 속에 있는 9월 13일 날짜도 대통령실 컴퓨터에서 확인한 게 아니라 서류 속에만 그렇게 박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실을 압수수색해야 하는데 용산이 그걸 허용하겠는가?

    모르긴 모르되 대통령실은 이 건으로 최재영 목사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지 모르지만, 그 경우 법정에 그 행정관들이 모두 출두해야 하므로 긁어서 부스럼만 만들 것이다.
    행정관들이 그날 코바나콘텐츠에 갔다는 다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법원도 판단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신라면세점 없어

    김건희의 변호인은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신라면세점 에코백을 들고 있던 사람은 대통령비서실 조모 행정관이고, 에코백과 종이 가방엔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며 "이를 입증하고자 당시 들고 있던 에코백을 검찰에 임의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라면세점 에코백은 오래 전 부산 신라면세점 오픈 당시 100달러 이상 구매자에게 제공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토마토’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 부산은 1990년 이후 면세점이 운영된 바 없다고 한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1989년~1990년, 잠깐 부산에서 면세점을 운영했던 것 외에 부산에 우리 면세점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신라면세점은 부산항(부산시 동·남구)과 김해공항(부산시 강서구)에서 신라면세점 인도장을 운영 중이다.

    면세점 인도장이란 인터넷 면세점이나 시내 면세점에서 사전 구매한 면세품을 출·입국 때 건네받는 장소다.
    복수의 면세업계 관계자는 "부산항 인도장은 2015년에 문을 열었고, 김해공항 인도장도 최소 2017년보다 훨씬 전에 개점했다"고 했다.

    김건희 측 주장이 맞다면 조모 행정관은 영상이 촬영될 당시인 2022년으로부터 무려 30년 전(1989년)에 부산 신라면세점으로부터 에코백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면세점 인도장에서 에코백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5~7년 전 일이다.

    반면 영상 속 에코백은 너무 깨끗하다.
    다른 사진에는 에코백이 아닌 네모난 상자처럼 보이는 종이가방도 보인다.
    언제부터 공무원들이 저런 곳에 서류를 넣어 보고했는가?
    저런 가방을 대통령실에 두고 사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
    대통령실엔 봉투도 없는가?

    공무원이 김건희에게 보고할 의무도 없어

    그리고 명품수수 사건이 공개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야 대기자들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던 행정관이라 밝힌 것도 우습다.
    그게 사실이면 명품수수 사건이 터졌던 작년에 행정관들이 나서 그때 대기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라고 밝혔어야 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기자가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행정관이라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실엔 영부인 일정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권은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김건희를 관리해줄 사람이 없었다.
    공무원이 김건희 심부름을 했다면 그 자체가 위법하다.

    백번 양보해 그 사람들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행정관이라 해도, 하필 신라 면세점 가방 안에 서류를 넣어 간 것도 어색하다.
    보고할 서류가 얼마나 많기에 종이봉투가 아닌 신라면세점 가방 안에 넣어 갔다는 건지 모르겠다.

    영국 방문 시 일정이나 유의사항이 담긴 보고서는 불과 몇십 쪽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국가 보고서를 반팔 셔츠 입고 츄리닝 입은 채 받는가?

    본질 아닌 것으로 본질 희석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건희가 명품을 수수했다는 그 자체이며, 나머지는 사건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곁가지를 아무리 동원해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부산 신라 면세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다는 에코백도 사실이 아닌 것이 드러났으니 이제 그걸 어디서 구했다고 변명할 것인가?

    VIP를 윤석열과 김건희에서 김계환 사령관으로 바꾸더니,
    이제 선물을 서류로 교체할 참인가?


    https://www.amn.kr/48936

    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4 20:24
    하와이 교민들은 왜 한국 야구대표팀 투수를 무릎 꿇렸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박석윤
    김종성(qqqkim2000)
    24.07.14

    ▲ 1920년 8월 2일 자 에 소개된 박석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국 프로야구선발팀과 대결한 친일 투수가 있었다.
    조선대표팀과 미 프로선발팀의 시합이 열린 1922년 12월 8일 발행된 는 "북미합중국직업야구단"의 방한을 보도하는 2면 좌하단 기사에서 "작일 하오 7시 50분 남대문착(着) 열차로 입경하야 금일에 전조선군(全朝鮮軍)과 전투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한 뒤 "중앙체육단의 박석윤"을 거명했다.

    조선 제일의 투수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선수들이 주축인 미국 선발팀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도 3명 있었다.
    만만치 않은 이 팀과 "전투를 개시할" 전조선군 투수는 24세의 친일파 박석윤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친일파가 된 게 아니라 이때 이미 친일파였던 인물이다.

    근대 문헌들과 관련된 학술지인 의 2016년 제14호에 실린 홍윤표 OSEN 선임기자의 기고문 '납·월북 체육인들에 대하여'는 1922년판 한·미 올스타전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조선대표팀은 미국선발팀과의 대결에서 3-23으로 완패했다.
    비록 처참하게 지기는 했지만 그 경기에서 조선팀의 실책이 10개나 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완투했던 박석윤이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박석윤은 조선 제일의 투수였다.
    생업은 영어교사일 때도 있고 기자일 때도 있고 외교관일 때도 있었다.
    제2권 박석윤 편은 "1923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취직해 영어교사 겸 야구부 코치로 근무했다"라며 "1924년 3월부터 6월까지 정치부 기자를 지냈다"고 설명한다.
    외교관 활동은 이 이후에 나타난다.

    박석윤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휘문고보 코치가 된 1923년에 그의 팀은 고시엔(갑자원)대회 조선 예선전에서 전원 일본인들로 구성된 팀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그런 뒤 일본에서 열린 고시엔 본선에서 8강에 올랐다.


    제28권 제4호에 실린 이종성 한양대 교수의 논문 '휘문고보의 고시엔 야구대회 8강 진출의 역사적 의미'는 고시엔 한국 예선에서 한국팀이 우승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고,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이 본선에 진출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야구 분야에서는 반일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박석윤이 정치 분야에서는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한국 야구의 희망이었던 박석윤은 "최남선의 여동생인 최설경의 남편"이다.
    1898년 10월 26일 전라도 담양에서 출생한 뒤 6세 때 서당에 들어가고 9세 때 담양 청평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다. 13세 때 중앙학교에 입학한 그는 1911년인 그해에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제일중학교, 죠사이중학교, 교토 제3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전에 그는 이미 친일파가 되어 있었다.

    1993년에 발행된 제2권에 실린 장세윤 당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박석윤: 항일무장투쟁 세력 파괴·분열의 선봉장'은 "조선총독 사이토의 참모인 아베에게 포섭된 그는 3·1운동 직후부터 부일배가 되어 민족운동가 김준연의 전향 공작을 벌였지만, 이 공작은 실패로 돌아갔다"라며 그가 총독부의 도움으로 도쿄제국대학을 다녔다고 말한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이 그런 일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 밀정이거나 프락치

    ▲ 1923년 7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 당시 박석윤이 감독을 맡은 휘문보고가 고시엔대회 조선예선에서 우승을 거두고 찍은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는 총독부의 수당을 받아 1925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했다.
    젊은 시절부터 친일 재산을 받아가며 밀정이나 프락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4-6권 박석윤 편은 하와이 교민들이 박석윤·박석기 형제를 일본 밀정으로 의심한다는 1924년 8월 28일자 기사를 소개한다.
    야구 잘하는 법대생의 정체가 일찍부터 노출됐던 것이다.

    서른 살이 넘은 1930년대의 박석윤은 친일 성향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1930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의 부사장이 되고, 1931년에는 친일 친목단체인 동우구락부의 총무간사가 되고, 1932년에는 만주지역 친일화를 위한 민생단 조직에 참여했다.

    그의 친일은 스케일이 계속 커져갔다.
    1934년에는 만주국 국무원에서 촉탁 신분으로 근무하고 1937년에는 만주국 국무원 외무국의 조사처장이 됐다.
    1939년에는 바르샤바주재 만주국 총영사가 되고, 1940년에는 만주지역 항일세력을 무너트리기 위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총무가 됐다.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의 녹봉을 받으며 이 지역 항일세력 탄압에 가담했던 것이다.


    박석윤의 친일 인생에서는 세 번의 '정치적 도루'가 발견된다.

    그가 바르샤바총영사로 있던 때에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그는 첫 번째 도루에 나선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폭격하자 폴란드를 탈출해 이탈리아·리투아니아 등을 시찰한 후 만주국의 귀국명령을 받고 베를린·모스크바 등을 거쳐 1940년 6월 신징으로 돌아왔다"고 은 말한다.

    만주국 수도인 오늘날의 창춘(장춘)에 귀환한 그는 만주국 외교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1945년에 두 번째 도루를 감행한다.
    "1945년 5월 일본의 패전이 예상되자 조선에 돌아와 은둔"했다고 사전은 말한다.
    그런 뒤 반일 지도자인 여운형을 찾아간다.
    "8월 해방 직전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에게 행정권을 넘겨줄 뜻을 밝히자, 여운형과 접촉하여 전후처리문제를 교섭"했다고 사전은 말한다.

    세 번 변신 시도하다, 북한에서 비참한 최후

    두 차례의 도루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세 번째는 달랐다.

    통일적인 한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개최(1946.1.16)되고 본회담이 무기한 휴회(5.6)에 들어가는 1946년 상반기는 한반도가 분단될지 통일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때였다.
    바로 이 시기인 그해 3월, 그는 질병 치료를 이유로 평양을 방문한 뒤 평남·함남·강원이 만나는 평남 양덕군으로 올라간다.

    위 홍윤표 기고문은 "박석윤은 해방 뒤 1946년 3월 평양을 거쳐 지병인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양덕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고 전해진다"고 말한다.
    해방 전후에 서울의 여운형과 접촉했던 인물이 미·소 회담 기간에 이북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그가 친일청산에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해 7월에 그는 양덕군에서 친일분자라는 이유로 체포돼 양덕보안소에 구금됐다가 석방됐다.
    1947년 2월에 다시 체포된 그는 1948년 1월 평안남도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상소가 기각돼 동년 6월에 사형이 확정됐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사망했다.

    26세 때인 1924년에 박석윤은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하와이를 방문했다.
    위 기고문은 "현지 교민들이 어느 날 그를 해변으로 불러내 꿇어앉힌 뒤 모래밭에 칼을 꽂아놓고 친일 행각을 반성하고 자결을 하라고 강요"한 일화를 소개한다.
    이때 그는 동생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마침 그와 함께 끌려갔던 동생 박석기가 그 칼을 집어들고 제 가슴을 X자로 그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내면서 형의 결백을 주장한 덕분에 곤경을 모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 번째 도루 때는 이런 요행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에 정착했다면 친일청산기구인 반민특위에서 잠깐 고생하다가 끝났을 그는 이북으로 요양간 일이 화근이 돼 친일청산의 대상이 되고 52세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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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4 19:55
    [조하준의 직설] 영부인이 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나?
    조하준 기자
    입력 2024.07.14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미국 순방 중에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1일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뉴스 섹션을 보면 김건희 여사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의실에서 북한 억류 피해자와 유족, 북한인권 개선 활동 중인 탈북민, 북한 전문가 등을 만나 북한의 인권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사진들을 게재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많은 의문점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는 김건희 여사가 그 자리에 무엇 때문에 갔느냐이다.
    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일 뿐 어떤 공직자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지 영부인이 할 일은 아니다.

    두 번째는 그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이란 단체는 결코 순수한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NED는 그동안 탈북자 단체들에 자금줄을 대주며, 대북 전단 살포를 적극 지원해 왔던 단체로 김 여사가 만난 수잔 숄티는 탈북자 박상학과 함께 수시로 대북 전단을 살포해 남북 관계를 긴장,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며 한반도 평화를 파괴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어디 그 뿐인가?
    수잔 숄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북한에 굽실거렸다'라는 막말을 퍼붓던 사람이기도 했다.

    2020년 9월 29일 뉴스타파 보도를 살펴보면 "탈북민 단체들의 활동은 미국 정부가 남북한 양쪽 모두를 보다 더 압박해주기 바라는 미국 방위산업체 이해관계자들과 미국 보수 매파의 지지와 금전 지원을 받는 일종의 국제적 캠페인이 됐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또 뉴스타파는
    "북한인권을 외치는 워싱턴의 단체들은 미국의 오랜 습성을 보여준다. 북한과 평화 외교를 섬세하게 쌓아가려는 한국의 주권을 억제하려 드는 것이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이 NED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던 자칭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워싱턴 내 초강경파와 이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단체들이 외치는 인권 구호 이면에는 이른바 “불량배 국가”의 정권을 교체한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NED는 대단히 불순한 단체이며 결코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는 왜 이들과 만나서 '북한 인권'에 대해 의논한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북한 인권'이란 주제는 복어 독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한 주제이다.
    소위 말하는 일부 종북주의자가 아닌 이상 북한의 인권 실태가 대단히 열악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 평화무드 장착을 위해 노력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도 북한 인권 실태를 몰라서 입 밖으로 안 꺼낸 것이 아니다.

    세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입 밖으로 안 꺼낸 이유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수구 정당 출신 대통령들은 걸핏하면 '북한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규탄을 쏟아냈는데 그에 대한 결과는 어떠했던가?
    실상 '북한 인권' 문제는 수구 정당 집권기에 대북 적대 정책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던 수단에 불과했다.

    막상 그들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은 없었다.

    12일 국민주권당은 구산하 대변인 명의로 낸 는 제목의 논평에서 "국정 운영에 아무 자격이 없는 김건희가 '북한 인권' 공세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무자격자'가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위험천만한 행보를 일삼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 말이 옳다고 본다.
    김건희 여사는 국정 운영에 끼어들 자격이 없으며 그가 국정에 개입하면 그것이 곧 '국정농단'이 된다.

    그렇게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윤석열 정부는 왜 채 상병 특검법에는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임성근이란 무능한 장수의 무리한 작전 투입으로 인해 억울하게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채수근이란 장병의 한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거창하게 북한 인권 주민을 논하기 전에 먼저 국군 장병들의 인권부터 논하는 것은 어떤가?

    북한 인권 문제가 열악한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북한 김 씨 정권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가능성도 없으며 남북 통일을 위해선 좋든 싫든 그들과 대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왜 알아서 미국 네오콘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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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7-13 20:51
    떡볶이
    입력 : 2024.07.11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전복과 해삼을 물러지게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가래떡을 한 치 기장으로 썰어 넣고 녹말, 후춧가루, 기름, 석이 등 여러 가지에 간장물을 풀어 냄비에 볶는다.”

    19세기 조리서 (연세대본)에 보이는 떡볶이의 조리법이 이렇다.

    본문에는
    “잔치하는 데와 술상을 보는 데에 쓰기 좋다”
    “볶을 때 너무 되게 볶지 말고 자연히 지적지적하게(수분이 잦아들도록) 볶는다”
    등의 주석이 붙어 있다.

    보신 대로다.
    옛 떡볶이는 있는 집에서 마음먹고 만들어, 잔칫상이나 점잖은 술상에 낼 만한 일품요리였다.
    또 다른 19세기 조리서 속의 떡볶이 조리법도 읽어볼 만하다.

    “떡볶이는 떡을 잡탕 무보다 조금 굵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숙주, 고기를 담가 붉은 물을 없앤 후 가늘게 두드려 양념해 자잘하게 익혀 펴서 내고 장국을 맛나게 끓여 양념과 떡을 한데 넣어 볶아낸다. 도라지, 박오가리, 표고도 넣고 석이와 표고는 달걀에 부쳐 가늘게 썰어서 얹는다.”

    1970년대까지 가냘프게 이어진 서울 문안의 떡볶이는 전근대 조리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붉은 빛깔은 일절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에 파천황의 떡볶이가 나타났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온 원조 밀가루를 한국인이 밀떡으로 소화한 덕분이었다.
    떡국이며 떡볶이에 쓰는 긴 흰떡은 본디 멥쌀가루로 뽑는다.

    떡의 기본은 쌀이다.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이래, 1985년 이전까지 쌀은 늘 부족했다.
    쌀밥만큼이나 한국인의 원망과 희망이 맺힌 음식이 곧 흰떡이었다.

    한국인은 원조 밀가루를 변용해 ‘밀떡’이라는 희대의 발명을 해낸다.
    여기다 싸구려 저품위 시판 고추장이 가세한다.
    감칠맛을 더할 어묵 또한 뒤따랐다.


    대도시를 낀 식품산업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먼저 궤도에 오른 산업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생계를 위해 무작정 대도시로 온 사람들에겐, 더욱이 여성에겐, 음식장사가 그나마 만만했다.

    시골여성은 주방에서 매일 음식노동을 해온 이들이다.
    농어촌을 떠나, 막 대도시 변두리에 터 잡은 여성들은 골목길과 시장과 길거리의 좌판 또는 포장마차로 나가 전근대 떡볶이와는 다른 붉고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모두가 기억하고, 모두가 다시 사 먹을 만한 인상적인 빛깔과 선명한 맛이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코흘리개, 청소년, 학생, 노동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싸고 배부른 떡볶이에 빠져들었다.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떡볶이는 한국 현대사와 함께 태어난 새로운 음식이다.
    한국인이 유제품에 적응한 뒤로는 크림과 치즈도 껴들었다.
    떡볶이에 튀김, 김밥, 순대를 더해 한 벌의 정식(定食)도 만들었다.
    피자와 파스타가 대중적으로 퍼지면서는 토마토퓨레, 토마토페이스트까지 응용하고 있다.

    짜장(춘장)떡볶이, 카레떡볶이, 치즈떡볶이, 크림떡볶이, 로제크림떡볶이 다음에는 무엇이 뒤따를까?
    지켜볼 일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으니까.

    한국형 변화무쌍과 한국형 속도전 속에서, 떡볶이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를 음식이니까.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711205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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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19:24
    늙으면 왜,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수명이 길까
    입력 : 2024.07.13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

    >> 생물학적 특성…좋은 식습관·청결·대인관계가 장수 비법

    늙으면 왜,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수명이 길까

    “대기실에 할머니들 천지삐까리네요. 다들 한가하구먼!”
    매사 부정적이고 성인지감수성에 둔감한 할아버지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수명이 더 길어서라고 하자, 왜 할머니가 더 오래 사느냐며 따져 물었다.

    올해 보험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수명은 90.7세이고 남성의 평균수명은 86.3세라고 한다.
    할머니가 4년 이상 더 생존한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수명이 긴 이유는 다양하다.
    의학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운명 같은 것이다.
    전두엽의 발달이 더딘 남성이 여성보다 충동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여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남성이 더 많다.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인 심장질환도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한원인이다.

    균형 잡힌 식생활,
    청소와 빨래가 이뤄진 청결한 환경,
    친밀한 대인관계.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세 가지도 건강과 수명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영양 부족과 질병에 취약하고, 외로움에 시달린다면 생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더 오래 사신다고 불만인 할아버지에게, 생명 연장의 비법을 알려드렸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수다 떠세요.”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4071306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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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19:00
    2)
    윤석열·김건희의 '가장 무도회', 인질 잡은 보수정당 이제 그만 놓아주길
    [박세열 칼럼] 당원들은 윤·김 부부를 비토하기 시작했다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7.13.


    보스처럼 굴던 윤석열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당원들은 그를 '보스'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 여권 권력 투쟁의 장에서 '반윤 투사'가 된 '한동훈 당대표'를 전제하지 않은 어떤 전망도 무의미해진 것 같다.

    설사 만에 하나 그가 당대표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다져진 그의 지지도는 (그의 실력과 별개로) 향후 여권 권력 투쟁에서 불변의 상수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을 발목잡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한동훈에겐 '매직 에이트', 8표의 캐스팅보트가 있다.

    물론 문제는 한동훈에게도 여전히 '보수 정당의 비전'이란 게 안 보인다는 점이다.
    권력 투쟁에만 능숙한 '정치 초짜'가 당대표가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걱정거리'지만, 지금 보수 정당 당원들은 '윤석열 비토'에 더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애초에 윤석열은 보수 정당의 '객'이었을 뿐이다.
    '친윤 그룹'은 보수의 변방에서 대통령을 타고 중심으로 들어온 비주류였다.

    윤석열이 보수 정당에 무슨 뿌리가 있는가.
    '윤석열 정치'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그는 어쩌다 대통령이 된 뜨내기였다.

    이 사실을 윤석열과 김건희만 모르고 있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정당의 주인인양 행세했다.
    무슨 '당원 동지' 의식이 있었겠는가.
    많은 관전자들이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그걸 느끼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가장 무도회'를 그만두고 이제 보수정당을 그만 인질에서 놓아주시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71208335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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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19:00
    1)
    윤석열·김건희의 '가장 무도회', 인질 잡은 보수정당 이제 그만 놓아주길
    [박세열 칼럼] 당원들은 윤·김 부부를 비토하기 시작했다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7.13.

    보수정당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보수정당의 특징은 일사불란이다.
    당 내 위계 질서가 또렷하다.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보스'의 뜻을 따른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과 이회창의 보수정당은 이런 통념에 잘 부합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대세를 추종하는 특질이다.

    자유주의 계열 정당은 조금 달랐다.
    '제왕적 총재' 김대중 시대를 지나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역동적인 당의 기풍이 체화됐다.
    하지만 보수정당 특유의 '보스 정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유지됐다.

    변곡점은 박근혜 탄핵이었다.
    리더십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 당대표에 30대 이준석을 선출했을 때,
    보수정당과 아무런 상관도 없던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을 때,
    '승리에 목마른 보수'의 선택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수 정당이 '대중'과 호흡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평도 나왔다.
    자유주의 정당(민주당 계열)이 2002년 노무현 당선 때 받아들인 방식을, '탄핵의 폐허' 위에 뚝 떨어진 보수 정당이 뒤늦게 체화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렇게 맞이한 윤석열 시대 3년차, 평가를 할 시간이다.
    변화하는 듯 보였던 국민의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가장 구태적인 '보스 정치'에 인질로 붙잡혀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정당의 '정'자도 모르던 윤석열은 어떻게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보수 정당을 입맛대로 요리했는가.
    어떻게 보수 정당을 타고 올랐고, 어떻게 집어 삼켰으며, 어떻게 작금의 분열 위기로 몰아 넣었는가.
    지금 한국 보수 정당이 진지하게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이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키워내지 못하고,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절망에 빠진 보수정당의 구원자로 등판해 전국에서 '표'를 끌어왔고 결국 보수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는 영웅 신화에 스스로 취했다.

    당과 자신(대통령)을 동일시했다.
    대통령이 되자, 당의 '보스'처럼 굴었다.
    그 힘의 원천은 한국 대통령제가 보장하고 있는 막강한 권력, '자리 배분(관직)'과 '예산권(돈)'이었다.

    대통령은 이회창 때나, 이명박, 박근혜 때나 가능한 정치를 보수 정당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밑에 작은 '보스(친윤계)'들을 두고 정당을 직할 체제로 운영하려 했다.

    '보스 정치'는 막스 베버가 근대 미국 정치를 분석하면서 쓴 말이다.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의회로부터 독립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권력'인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그 파워의 원천은 미국식 '엽관제'다.
    대통령 선거 승리의 보상은 관직에 따른 봉록의 형태를 띠었다.

    베버가 활동하던 시대에 미국 대통령은 30만 명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관료 지명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베버는 미국의 정당체제를 두고 아예 "정당은 순전히, 오로지 관직 사냥꾼을 위한 조직"이라고 규정한다.
    "선거 시에는 득표 가능성에 따라 정책 프로그램을 바꾸고", "정당이 일관된 신념이나 원칙을 전혀 갖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막스 베버가 보기에 미국 정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이념도 신념도 없이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며 벌이는 무규칙 경기였다.

    왕정과 공화정, 혁명을 두루 경험한 유럽인의 눈에 '신대륙'의 새하얀 백지 위에 그려진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모습은 그러했다.
    이건 민주주의를 뒤늦게 이식받은 한국이나 일본식 '계파 정치'의 원형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당 조직을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수많은 보스들에게 맡긴다.
    그 보스들은 '대통령'이라는 최종 보스의 당선을 위해 뛰고, 그 추종의 대가로 '관직'을 내려받고 논공행상을 한다.

    '표가 될 만한 것은 뭐든지 한다'는 한국식 사생결단적 정치 문화는 원초적이다.
    이런 특질은 독재에 억눌렸다 해방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빠른 성숙을 상징하는 장점으로 설명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극단적 팬덤 정치(민주당) 부작용이나 엉뚱한 포퓰리스트(윤석열)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토양으로, 비판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 50대 50 반영 룰로 대통령 후보가 됐다.
    여론조사에서는 밀렸지만 당원 투표에서 홍준표 후보를 크게 앞섰다.
    '본선에서 무난히 질 홍준표'보다 '잠재력을 지닌 정치 신인'을 택한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혹은 도박)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대통령은 이때 '당심'과 자신을 동일시했는지 모른다.

    대체 어디에서 학습했는지, '용병' 출신 대통령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당과 호흡해 온 것처럼 행동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엔 '직언'을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회창도 하지 못한 '5년만의 정권 탈환', 이 업적에 짓눌린 당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납작 엎드렸다.
    대통령은 '내부 총질' 당대표를 총력을 동원해 쫓아내더니 '친윤'이 아닌 당대표 후보들을 하나하나 폭력적으로 주저앉혔다.

    당의 우려를 무시하고 지난해 11월 보궐선거에서 범죄자를 사면하고 후보로 만들었다가 참패했지만, 또 다시 당대표를 쫓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을 비상대책위원장에 세운 지 한 달도 안돼 '사퇴하라'고 겁박하는 이해 못할 일들을 서슴없이 행했다.

    윤석열은 애초에 보수 정당에 대한 비전도 없었고, 애정도 없었다.

    윤석열은 2021년 6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도전을 선언했고,
    같은 해 11월 5일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선출됐다.

    그러나 이후 독립 투사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서 제거하려 했고, 백범 김구를 폄훼하는 이승만 추종 세력에 포획됐다.
    윤봉길과 김구는 정치 입문을 위한 상징으로 소모한 그는 대통령이 돼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가 날아가려면 좌우의 날개 방향이 같아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반으로 갈라치기 했다.

    그의 경제 철학은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인가 싶었는데, 막상 하는 행동은 은행을 '이자 장사꾼'으로 공격하거나, 재벌 총수들을 병풍처럼 대동하고 다니는 일들이었다.

    노조, 과학기술계, 교육계를 막론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카르텔'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안보는 어떤가 도심에서 벌어진 참사에 음모론을 개입시킨다.
    대한민국 하늘은 북한의 정체모를 비행체에 번번 뚫린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원인은 대통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집권 여당은 '김건희가 사과했으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두고 총력을 다해 상대를 죽이려 들고 있다.
    진단이 엉뚱하면 처방은 산으로 간다.
    그러자 윤석열 체제 있던 당원들이 직접 나서는 모양새다.
    배를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친윤 진영'이 '절륜', '패륜' 소리를 듣고 있는 한동훈을 때리면 때릴수록 한동훈 지지세는 더 강고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YTN-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를 보면 (7∼8일, 유권자 2003명 전화면접, 응답률 11.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한동훈의 당대표 적합도는 61%였다.

    원희룡(14%), 나경원(9%), 윤상현(1%) 다 합해도 한 후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배신자'에 61%의 지지를 몰아주는 걸 어떻게 설명하냐고?
    여권 지지층이 한동훈을 '배신자'라 여기지 않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즉 이건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한 당원들의 강력한 비토 여론이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71208335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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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02:06
    '20년째 억지 주장' 일 방위백서, 올해도 "독도 일본 땅"
    기자명 아이엠피터(임병도)
    입력 2024.07.12

    한국을 '파트너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 명기... 한국선 관련 논쟁으로 시끌

    ▲ 일본 정부는 1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2024년 방위백서를 채택했다. 올해 방위백서에는 20년 연속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이 담겼다. ⓒ연합뉴스

    일본이 올해 방위백서에서도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본의 이런 억지 주장은 20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에 따르면 방위성은 방위백서에서 "우리나라(일본) 고유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일본식 표현)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적었습니다.

    방위백서에 나온 지도를 보면 독도 주변이 일본 영해임을 의미하는 파란색 실선으로 처리됐고, , 명칭도 다케시마로 표기됐습니다.
    일본의 이런 표기는 2005년 발간된 방위백서 이후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방위백서 처음으로 '한국을 파트너'라고 표기


    ▲ 일본 정부는 1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2024년 방위백서를 채택했다. 올해 방위백서에는 20년 연속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이 담겼다. 사진 속 지도에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를 둘러싼 영토문제'라는 문구가 있다. ⓒ연합뉴스

    올해 일본 방위백서는 한국을 파트너라고 지칭했습니다.
    앞서 일본 정부는 4월에 발간한 '외교청서'에서도 한국을 파트너라고 표현했습니다.

    은 '방위백서에서 한국을 파트너로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명기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통상 3월까지 일어난 일을 기술하는 방위백서에 6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 결과를 상세하게 기술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방위백서는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시련을 맞았다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핵무기 탑재 공격 능력, 중국의 대만 주변과 남중국해 군사 활동 등을 꼽았습니다.

    특히 중국의 군사 활동에 대해선 "일본과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 사항이자 지금까지 없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며 동맹국 또는 뜻을 같이 하는 나라와 협력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미·일 동맹?... 문재인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을 '파트너'라고 표현했지만, 일본을 향한 한국 내 반응은 좀 다릅니다.

    지난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의원들 간의 고성이 벌어졌습니다.
    이날 김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한·미·일 (군사) 훈련이 강화돼서 한·미·일 동맹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정신 나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논평에서 ‘한·미·일 동맹을 굳건히 한다’고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2일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해 "저열한 도발행위는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할 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야유를 했고,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사과를 요청했지만 김 의원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지난 2017년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과 만났을 때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공식적으로 한국은 미국과는 동맹이지만 일본과는 동맹 관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보수와 국민의힘에선 한국과 일본이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과 군사적 동맹을 맺기는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일본이 방위백서에서 한국을 '파트너'라고 수천 번을 표기한다고 해도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일본 영해 안에 포함하는 억지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은 어렵지 않을까요?



    http://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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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7-13 02:03
    국민들 “윤 정권 같은 막장 드라마는 처음” 한탄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7/12

    역대 정부 중에도 이런 저런 실정과 친인척 비리가 있었지만, 윤석열 정권만큼 총체적으로 무너진 정권은 없었다.

    경제는 무역수지 적자, 경상수지 적자, 세수 손실로 이미 기업과 민생이 파탄 났고, 잘한다는 안보는 북한으로부터 오물풍선을 선물로 받았다.
    외교는 지나친 친미, 굴종적 대일 외교로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까지 남겨 주었다.

    심지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으로 분류했다가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삭제했다.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이 독도에서 군사 훈련을 할 때, 미군이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된 지도를 사용해도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다.
    그 잘 나가던 한류마저 주춤하고, 군대는 군대대로 사망자가 속출해 부모들이 자녀들을 군대 보내는 데 망설이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검사 출신인 윤석열이 집권한 후 생긴 일인데, 거기에는 대부분 김건희가 개입되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용산의 주인은 김건희란 말이 회자되고 있겠는가?

    거기에다 무속인 천공까지 설치고 있으니 국민들의 말마따나 막장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복도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대통령실 행정관?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에게 디올백을 주던 날 코바나콘텐츠 사무실 복도에는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신라면세점이 박힌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김건희를 변호하는 사람이 그 두 사람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는 조모, 유모 행정관이고, 가방 안에는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정권에는 제2부속실이 없다.
    따라서 부속실이 아닌 사람이 보고서를 김건희에게 올려도 문제다.
    백번 양보해서 그 두 사람이 대통령실 행정관이라 해도 보고서를 신라면세점 가방 안에 넣어 가는가?
    김건희는 당시 츄리닝에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국가 보고서를 그런 복장으로 받는다는 말인가?
    이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국격의 문제다.

    VIP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최근 JTBC와 MBC가 녹취를 공개했는데, 거기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범으로 김건희 계좌를 관리한 이종호가 VIP에게 말해 임성근을 구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게 문제가 되자 이종호는 녹취 속에 나오는 VIP는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아니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말해 웃음거리가 되었다.

    녹취 속에는 이종호가 임성근을 사성장군까지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삼성 장군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투 스타인 임성근을 사성장군으로 만들어 준다는 말이 된다.

    이종호가 비록 해병대 출신이지만 주가조작범 주제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알고 있다는 것도 어색하다.
    또한 녹취록에는 이종호가 경찰 승진에도 개입한 게 나오는데, VIP가 김계환이라면 해병대 사령관이 경찰 인사도 한다는 뜻이다.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한편 이종호가 평소 김건희를 V2라 지칭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ㄱ변호사는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에서 ‘이 전 대표가 사석에서 수차례 윤석열과 김건희를 각각 V1과 V2로 지칭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문자로 사생결단 싸우는 집권 여당

    총선 참패 후 어떻게 하면 당을 혁신할까 고심해야 할 국힘당이 요즘 때 아닌 문자 전쟁을 벌이고 있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시각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줄어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부족한데다 그나마 공무원 시험에 기댔으나 윤석열 정권 들어 공무원 채용도 줄어 노량진 학원가마저 한산하다는 소문이다.

    무슨 정책 가지고 논쟁을 해도 모자랄 판에 국힘당 대표 선거에 나온 후보 4명이 김건희가 한동훈에게 보낸 문자 가지고 사생결단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인다. 문자를 보고도 답을 안 한 한동훈이나, 김건희가 사과를 안 해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원희룡이나 오십보백보다.
    거기에 장예찬과 진중권이 각각 자신이 미는 후보를 지원사격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총선 때 김건희가 사과해선 안 된다고 한 사람들은 대부분 친윤

    총선 때 김건희가 사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사람들은 대부분 친윤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동훈이 김건희가 보낸 문자를 ‘읽씨 ㅂ’해 총선에서 졌다니 기가 막힌다.

    원희룡이 총선 때 김건희에게 사과하라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점은 나경원도 마찬가지다.

    원희룡과 한동훈의 충돌이 11일에도 이어졌다.
    원희룡이 한동훈을 겨냥, 사천 의혹 등을 제기하자 한동훈이 "거짓 마타도어 구태정치"라며 맞불을 놓았다.
    원희룡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천 의혹, 사설 여론조성팀 의혹, 김경율 금감원장 추천 의혹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사실이면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느냐"고 공격했다.

    그러자 한동훈이 "마치 노상방뇨하듯 오물 뿌리고 도망가는 거짓 마타도어 구태정치를 제가 당원동지들과 함께 변화시키겠다"고 역공했다.
    그러자 원희룡이 "거짓말부터 배우는 초보 정치인은 당원을 동지라 부를 자격이 없다"면서 "이제 거짓말 기술에 대해 검증을 받을 시간"이라고 하며, "그래서 거짓말이 들통나면 사퇴를 하시겠다는 것이냐"고 역공했다.

    이종호 김건희에게 15억 빌렸다?

    한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인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에 나섰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이씨가 김건희로부터 "15억 원을 빌렸다"고 진술한 것이 확인됐다.

    이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판 과정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2차 작전 시기에 김건희의 계좌를 관리한 혐의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김건희는 그밖에 국민대 박사 논문 표절, 숙명여대 석사 논문 표절, 20가지가 넘은 학력 및 경력 위조,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의혹, 아크로비스타 삼성 전세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등을 받고 있다.

    김건희 종합 특검이 이루어지면 아마 박근혜보다 더 많은 형량이 나올 것이다.
    김건희가 발 뻗고 잘 수 없는 이유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또 있을까?


    https://www.amn.kr/4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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