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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 29
  • tradbred

    @tradbred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23:42
    군검찰이나 서초동 검찰이나 하는 짓이 똑 같아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15

    윤석열 정권의 거짓말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대통령실은 그동안 “해병대 수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으나, 그것을 부정하는 증거가 나오고 있어 해병대 전우회는 물론 보수층까지 분노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고, 국방부가 이를 회수한 지난 8월2일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00 대령과 김00 해병대사령관 비서실장이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통령실 개입 증거

    (1) 김00 대령은 지난 7월30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해병대수사단 조사결과에 대한 언론브리핑 자료를 달라’고 직접 요청해 제출받았다.

    (2) 두 사람 사이의 통화가 이뤄진 시간대와 사건 이첩 및 회수 시간대를 비교해보면 외압 정황이 너무나 뚜렷하다.

    해병대수사단은 2일 오전 11시50분 사건 이첩을 완료하고 경북경찰청을 빠져나왔다.
    1시간1분 뒤인 오후 12시51분, 김 대령이 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35분 뒤인 오후 1시26분, 김 비서실장이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가 이뤄졌다. 이 통화 24분 뒤인 오후 1시50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경북경찰청에 전화해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날 저녁 7시20분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서 사건기록을 되가져갔다.

    군검찰은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이날 입건했다. 저녁 8시40분께엔 ‘박 대령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봐 대통령실이 해병대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그동안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는 사실을 국방부로부터 보고받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회수 통보 직전 국가안보실과 해병대 간 통화가 확인된 이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걸 누가 지시했느냐인데, 국방부와 안보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박정훈 대령 측은 사건 이첩 당일에 ‘사건기록 회수- 박 대령 입건- 보직해임 논의 결정’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 데에는 대통령실 차원의 개입이 있을 거라고 의심해왔다.

    국방부가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하기 직전 대통령실과 해병대사령관 쪽이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군검찰 통화 사실 알고도 숨겨 충격

    해병대 전우회와 국민들이 더욱 분노한 것은, 군검찰이 이러한 통화 사실을 알고도 대통령실과 해병대 쪽의 통화내용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구가의 지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 윗선이 국방부 장관이든 윤석열이든 이는 법위반으로 모두 처벌감이다.

    군검찰의 허술한 조사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군검찰은 지난 9월15일 임기훈 당시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도 같은 방식으로 조사했는데, 질문은 9개뿐이었고 진술서는 고작 3쪽에 불과했다.
    봐주기 조사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정훈 대령 쪽 김정민 변호사는 “누가 수사기록 탈취와 항명 입건을 밀어붙였는지가 밝혀져야 한다”며 “수사 외압 실체를 가려내기 위한 특검 수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병대 전우회 부글부글, 특검 여론 높아져

    한편 대통령실이 수사에 개입하고도 이를 부인하고, 믿었던 군검찰마저 수사를 엉성하게 하자 해병대 전우회가 분노해 연일 거리로 나서고 있다.
    해병대 전우회는 보수적 성격이 짙으나 이번 사건으로 사분오열되었다.
    심지어 보수층에서도 해병대 수사 개입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정과 상식을 구호로 집권한 윤석열이 정작 임성근 사단장을 비호하기 위해 군검찰마저 장악해 수사 결과를 왜곡하려 든다면 거대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특검을 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탄핵 마일리지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군검찰이나 서초동 검찰이나 하는 짓이 똑 같아

    서초동 검찰은 수십 가지가 넘은 ‘본부장 비리’는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야당은 인디안 기우제 식으로 수사해 수백 군데를 압수수색하였다.

    수백억에 이르는 자신들의 특활비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김혜경 여사가 사용한 경기도 법인 카드는 또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김건희 명품 수사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혜경 여사는 자신이 먹은 밥값 24000원을 따로 지불하였고,
    나머지 76000원은 비서 격인 배 모 씨가 지불했는데, 그때 사용된 총 10만원이 사실이라 해도 이게 3년 동안 수사할 내용인가?

    따라서 검찰이 공소시효 하루를 남겨 두고 김혜경 여사를 기소한 것은 후안무치한 짓으로 김건희 명품수수에 맞불을 질러 물타기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다고 김건희의 주가조작과 명품수수 사건이 사라질까?
    이제는 해외 언론까지 나서 연일 보도하는데 말이다.

    해병대 수사 개입 사건을 엉터리로 수사한 군검찰이나, 본부장 비리는 덮어두고 야당만 때려잡은 서초동 검찰이나 오십보백보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수사를 제대로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나중에 직무유기로 처벌받을 수 있다.

    권력은 유한하고 민심은 무한하다.
    부동시로 군대도 안 간 윤석열을 돕다가 자신들이 패가망신당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해병대 전우회가 거리로 나서겠는가?
    역대 이런 악랄하고 비열한 정권은 없었다.



    https://www.amn.kr/4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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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23:27
    책임 회피를 위한 언론플레이, 축구협회와 윤석열 정부
    이득신 작가
    기사입력 2024/02/15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다가 최악의 경기를 펼친 끝에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물리적 충돌 기사가 연일 축구팬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의 보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4강전인 요르단과의 경기를 앞두고 손흥민-이강인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는 기사였다.

    탁구를 치려했던 선수들과 이를 제지하려던 선수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 부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장유유서를 앞세운 위계질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스포츠 계에서는 더욱 심하다.
    후배들이 감히 선배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강인을 비롯한 몇몇 후배 선수들이 주장인 손흥민을 향해 하극상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보도가 계속되었다.

    기사만 놓고 볼 때는 마치 선수들 사이의 갈등이 주된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강인은 사건이 보도 되자 자신의 SNS에 사과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간과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본질을 짚어보자.

    우선 이 사건에 대한 제보자가 축구협회 직원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더 선의 보도가 있은 직후 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해당사건이 있었다고 시인해버린다.

    설사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통 선수보호차원에서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일반적인데 반해 너무 빨리 사건의 존재를 시인해 버린 것이다.

    특히, 이런 사건의 경우 협회 직원이 아니고서는 제보자가 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둘째, 아시안 컵에서 보여준 졸전에 대해 축구협회가 받아야 할 거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선수들 간의 충돌을 앞세운 언론플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시안컵 종료직후 축구협회에 대해 엄청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는데,
    특히, 요르단 전에서의 무기력한 패배로 인한 비난을 모면하기위한 축구협회의 간악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셋째,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경질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나온 보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대표팀 운영과정 및 선수관리 등의 문제를 소홀히 한 책임이 뒤따른다.
    선수들끼리의 물리적 충돌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협회가 선수 관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고 클린스만 감독 경질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 치고는 비열하기 그지 없는 언론플레이라는 것이다.

    넷째, 정몽규 회장 퇴진 여론과도 맞닿아 있다.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협회가 만들어 놓은 감독 선임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독단적인 방식으로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해 버렸다.

    이에 대한 여론은 감독경질과 회장 퇴진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선수들의 갈등을 부각시켜 사건을 보도해 버린 것이다.

    축구협회처럼 이렇게 간악하고 졸렬한 언론 플레이는 현 정부들어 더욱 교활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건희 일가의 부정부패 사건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터트리기도 하고, 김건희의 뇌물수수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몰카 공작에 당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케케묵은 사건을 꺼내어 김혜경 여사를 법카 사건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축구협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김건희처럼 간악하고 교활한 방식의 언론플레이가 떠오른다.



    https://www.amn.kr/4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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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23:15
    ‘서울의 봄’에 ‘건국전쟁’으로 맞불놓은 수구들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15

    ‘산불이 타들어 가고 있는 곳의 맞은편에 일부러 불을 놓아 거센 불길을 잡는 것과 같이 난관에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려는 방법’을 흔히 ‘맞불작전’이라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검사독재 타도’를 외치자 국힘당이 ‘운동권 청산’을 외친다거나, 민주당이 김건희의 명품수수를 공격하자 국힘당이 경기도 법인카드를 다시 들고 나온 경우가 대표적인 ‘맞불작전’이다.

    그런데 ‘맞불작전’을 잘못 펼치면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
    북한이 연일 동해에 미사일을 쏘아대자 이에 대응한답시고 우리 군도 미사일을 쏘았는데, 무슨 일인지 미사일이 반대로 돌아 우리 군부대를 타격하였다. ]
    그 유명한 ‘강릉선제타격’ 사건이다.

    그런데 최근 영화 두 편이 서로 맞붙어 화제다.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1400만 명을 동원하여 역대급 흥행을 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에서 이승만의 건국을 다룬 ‘건국전쟁’이란 다큐 영화를 내놓았다.

    영화 ‘서울의 봄’ 1400만 동원에 긴장한 수구들

    전두환 일당의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400만 명이 넘은 역대급 관객을 동원하자 신기하게도 조중동이 먼저 긴장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20대와 30대 관람객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수구들은 그동안 20대를 상대로 보이지 않게 보수화 작업을 시도했다.
    각 대학에 대학생 청년 당원을 모집해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졸업 후 입당시켜 청년 정치인으로 키우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나온 게 ‘이준석 키즈’들이다.
    그 바람에 ‘20대 보수화’란 말이 회자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난 대선 때 이들 상당수가 윤석열을 지지했다.
    2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20대 보수화로 국힘당은 재미를 좀 보았으나,
    윤석열이 소위 ‘체리따봉’으로 이준석을 축출하자 이 20대 남성들이 대거 이준석 신당으로 이동하였다.

    청년들 ‘서울의 봄’ N차 관람으로 윤석열 정권에 저항

    그런데 영화 ‘서울의 봄’이 상영되자 신기하게도 20대와 30대들이 대거 극장으로 모여 들었고, 일부 청년들은 ‘N차 관람’이라 하여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 영화가 수구들을 더욱 긴장시킨 이유는, 영화 속에 나오는 ‘하나회’가 현재 윤석열 검찰의 ‘특수부’와 너무나 닮았다는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이 1979년에 일어났으니까 벌써 45년이 지났다. 따라서 현재의 20~40대들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잠깐 배웠을 뿐, ‘하나회’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자 전두환의 ‘하나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두 시간 반 동안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극적요소와 배우들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도 흥행에 한몫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청년 세대가 이 영화로 하여 부모 세대가 겪은 군부독재 시절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국힘당이 두려워하는 이유다.

    국힘당의 웃기는 맞불작전

    영화 속 ‘하나회’가 현재 윤적열 정권의 검찰 특수부와 같다는 말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긴장한 곳이 또 한 곳 있었으니 거기가 바로 국힘당이다.
    총선을 앞두고 ‘서울의 봄‘이 혹시 영향을 미칠지 노심초사한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이 대선 때 전두환을 칭송하다가 ‘개사과’를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는데, 그 불똥이 선거로 튈지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한동훈이 최근 상영된 영화 ‘건국전쟁’을 보고 이승만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데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다“라고 칭송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보고 국부로 모시는 국힘당의 역사관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든 ‘반민특위’ 설치를 방해하고 결국 해체했으며,
    3.15 부정선거를 자행해 4.19가 일어나 하야하고 화와이로 도망갔다는 점에서 그를 국부로 모시는 것은 문제가 많다.

    헌법전문 위배한 수구들

    우리 헌법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하는 부분이다.
    4.19는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로 촉발했고, 4.19로 이승만은 하야한 후 미국으로 도망갔다.

    따라서 국힘당과 한동훈이 그런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은 헌법전문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힘당은 1948년을 건국의 해로 보고 이른바 ‘건국절’을 주장하는데, 이것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1919년 건립)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전문을 위배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부터 고개를 든 소위 ‘뉴라이트’ 세력이 박근혜를 거쳐 현재 윤석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자들로,
    이들이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를 허용하고,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철거하게 했다.
    국방부 장관이 된 신원식은 “이완용도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막말까지 하였다.

    청년들 ‘건국전쟁’ 보면 관람비 전액 돌려줘 논란

    한편 국힘당에서 청년들에게 ‘건국전쟁’을 보도록 독려한 가운데,
    영화 제작사가 40대 미만의 청년들이 영화를 보면 나중에 관람비 전액을 돌려주고 있어 ‘선거용 이벤트’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영화는 ‘트루스포럼’이란 곳에서 제작되었는데,
    이곳은 2017년 서울대 출신 대학원생 중심으로 만들어진 보수 단체로,
    이 단체가 공동 제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제작사는 "표 사재기가 아니고 관람 지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는 "시장교란행위인지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14일 오전 현재 트루스포럼을 통해 돈을 돌려받은 사람은 1500명에 달한다.
    교묘한 선거운동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선관위는 즉각 나서 반환되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살다 살다 이런 선거 운동은 처음 본다.
    혹시 그것도 이승만에게 배운 것인가?
    역사를 두려워하라.
    차라리 제목을 ‘건국전쟁’이라 하지 말고 ‘표얻기 전쟁’이라고 하라.

    그런다고 20대~40대가 국힘당을 찍을까?
    김건희 명품수수에 대해 사과도 안 하고, 사과는 한 개에 만 원인데도 물가도 못 잡은 윤석열 정권이 누구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

    한동훈이 ‘통닭쇼’를 해도 ‘연탄쇼’를 해도 분노한 민심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 기관이 어디서 돈을 받아 처먹었는지 ‘박빙’ 운운하지만 강서구청장 선거가 그랬듯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https://www.amn.kr/4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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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00:48
    (다)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충격적인 자료' 안중근의사도 살인자로 규정한 '밀고자'
    이 기사는 는 과거 kbs가 방송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2/12


    오만과 독선의 독재와 종말

    우측사진은 3.15 정부통령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야당참관인을 내쫓고 투표함을 교체하여 개표를 하였는데, 여당당선표가 유권자수보다 많아 표를 줄이는 촌극도 연출됐으며, 부정선거가 극명해 지자 마산서 부정선거 반대운동이 벌어진 후 행방불명된 김주열군의 시신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발견됐다.

    서울 종로에선 고려대 학생들을 정치깡패들이 집단으로 폭행하여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이 주동이 된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름하여 4.19혁명 이다.

    오른쪽 사진은 경무대(청와대)에서 이화장 으로 피신하는 이승만 일행의 사진이다.
    당시 이 신문엔 4.19 혁명을 데모로 표기 했는데, 이때는 일시적 데모로 간주하고 기사를 올렸지만, 날이 갈수록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성공적 혁명이 되었다.
    그것도 자랑스러운, 독재를 몰아낸 민주혁명이었다.

    그러나 2008년 현재엔 뉴라이트가 혁명이 아닌 데모라고 비하 시킨다.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다시 이시대로 회귀 하겠단 것인가?

    이 날의 혁명은 처절했다.
    이때 본인은 학교를 땡땡이 치고 소공동 경남극장에서 죤 웨인, 스잔헤아워드, 주연의 징키스칸 영화를 1회 관람을 하고 시청 앞으로 나오다 혁명대와 휩쓸려 전차를 타고 효자동 경무대 앞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경험을 했다.

    6.25전쟁 때도 경험 못한 극한의 경험이었다.
    총에 맞아 튀는 피! 비명조차 못 내며 쓰러지는 학생들 ! 당시 고교생 이던 나와 친구는 너무 놀라 눈알이 뒤집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 현장의 참상이 여러 날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밑에 사진은 부정선거로 당선된 부통령 리(이)기붕이 그의 장남 육군소위 이강석의 총에, 일가족 모두 사살되고 강석은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어찌 보면 이승만 보다는 자신들의 만행을 일찌감치 깨닫고 선택한 용단이라 하겠다.

    리기붕의 가족은 이랬다,
    父 이기붕, 妻 박 마리아,長 男 이강석, 次男 이강욱 이었다.
    원래 이기붕은 국일관 지배인 출신으로 부통령 재목이 아니었다.
    항상, 허약한 체질에 용기보다는 YES MAN의 전형이었지만, 그의妻 박마리아는 놀부妻와 같은 기질의 여인으로 한때, 정계를 시끄럽게 한 그녀는 이승만에게 자신의 長男인 이강석을 養子로 입적시키고 李起鵬 의 출세를 진두지휘 한 여인 이었다.

    밑에 사진은 정치깡패 두목 이정재다.
    그는 경무대 곽영주에게 발탁되어 반공청년단, 화랑동지회, 등 반공이 들어가는 단체는 모두 연관됐으며, 주로 야당 탄압이 그 주목적이었다.

    마치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펼쳤던 폭력테러 집단을, 그대로 계승한 것 같다.
    옆의 사진은 경무대를 빠져나와 이화장에서 주위동정을 살피는 이승만이다.

    ▲ 좌측의 검정뿔테 안경의 허정(당시 국무총리)씨와 하와이로 쫓겨 가는 이승만


    그러나 성난 학생과 국민들은 이동상을 두들겨 부숴 버렸다.
    목이 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
    그런데 뉴라이트에선 다시 세종로 복판에 이 영감탱이 동상을 또 세운단다.
    경제도 어려운데 그 돈을 헐벗은 서민들한테 사용 할 것이지, 옆의 사진은 사형직전의 경무대 의 작은 왕 곽영주의 사진이다.
    이정재, 임화수, 등 깡패는 모두 사형 시켰다.

    그러나 국민이 쫓아낸 이승만은 하와이로 도망친 후 그곳에서 도 교민들에게 그리 좋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하와이를 택했다.

    귀소본능 이랄까?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도 하와이 는 그를 대통령 의 발판을 만들어 준 곳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교민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것은 대통령이 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그리고 기획 없는 통치철학을 통해 동족분열과 정적 제거, 제주 4.3사건, 여순반란 사건, 6.25 동란, 44,5입사건, 3.15부정선거, 12년간 그의 정치적 행태가 말해주듯, 철권통치의 교훈이었다.

    정권연장에 급급하여 온갖 해선 안 될, 민주주의 의 역행하는 군주식 독재는 그를 파멸로 이끌었고 종당엔 하와이로 도망쳐 1962년 병속에서 자신의 왕국을 회상하며 1965년 시체가 된 뒤에야 조국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린 기억해야 할 것이 그의 독재로 혼란에 빠졌던 우리민족과 정치적 후퇴를 생각 안할 수 없다.

    더욱이 이분을 국조로 섬기기 위해 임정을 무시하고 법과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다.
    각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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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00:42
    (나)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충격적인 자료' 안중근의사도 살인자로 규정한 '밀고자'
    이 기사는 는 과거 kbs가 방송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2/12


    밀고성 증인이 된 이승만


    이승만 이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기 보다는 평화를 빙자해 동족의 피의 대가를 자신의 업적으로 치부하는 비열하고 악랄한 무뢰한에 지나지 않았다.
    평화와 외교를 지향한 그가 하나님을 앞세워 행한 일은 종교와 동족분열, 그리고 그토록 증오하던 테러리즘을 손수 자행한 장본인이었다.

    또, 그는 증인이 아닌 밀고자 로 전락하는데........

    국민군단의 위용이 나날이 높아지자, 주미 일본영사관에선 어찌 알았는지?
    미국국무장관에게 한국인의 군사훈련에 항의를 하여 무기불법 소지 문제로 교민의 대표인 박용만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이 사건은 이승만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때 이승만이 증인으로 나와, 박용만이 미국영토에 군사학교를 설립한 것은 하와이에 정박 중인 일본군함 츌운호를 격침시키기 위함이며, 미국과 일본 사이에, 사변을 일으켜 양국 간 외교를 깨려하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진술했다.

    그로인해 박용만은 유죄판결을 받아 몰락하고 대조선 국민군단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승만은 눈엣가시 같은 박용만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여 하와이 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박용만을 추종하던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들은 동조를 거부하자, 본격적인 테러와 폭행을 감행했으며 총기난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의 증언은 밀고성 고발이며 결의형제의 결속을 배반하고, 교포사회의 애국심을 무참히 짓밟은 반역행위였다.
    어떠한 변명과 구실도 대신할 수 없는 선택이었으므로, 굳이 변명을 한다면, 이는 마치 씨저를 살해한 브루터스의 웅변과 같을 것이다.

    하와이와 같은 좁은 땅에서 외교를 위한 동족을 범법자로 만든 파렴치한 짓이었고, 개인의 야심에 애국심을 뭉개버린 그의 독선적인 욕망의 극치였다.

    그의 테러행각은 오늘날 잘 포장되어 애국과 한국의 국조로, 모래위에 누각처럼 서게 됐다. 그를 옹립한 뉴라이트의 공로다.


    ▲사진에 보이는 백속에 야구배트가 있는걸 보아 폭행직후 기념촬영을 한것 같다. © KBS


    동시대에 시카고에서 악명을 높이던 이태리계 깽두목 알 카포네와 다를 게 무엇인가? 위사진에 보이는 빽속에 야구배트가 있는걸 보아 폭행직후 기념촬영을 한껏 같다.
    누굴 해한 것인지? 기념사진을 찍은걸 보면, 대단한 인물에게 폭력을 가한 것 같다.
    대한민국 국부의 경력치곤 너무 소름끼치게 비열하다.


    ▲ 좌측은 이승만이 교민들에게 돈을 갈취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이다. 우측은 자랑스러운 박용만의 대 조선군단의 훈련장면이다 , © KBS

    이 분이 박용만 선생님이다.
    님은 1928년 베이징에서 흉한의 습격을 받고 살해 되었다.
    누가 살해했는지…? 명확치 않다.
    1925년 베이징에서 이승만의 대통령직을 탄핵한 후 3년 뒤였다.
    이들의 결의형제 맹세는 이렇게 끝났다.

    이승만과 동지회는 자신의 욕망을 달성키 위해 전명운 장인환 의사 및 안중근 의사까지 살인자로 규명하고 활동시킨 단체다.


    ▲이승만과 그를 지지했던 동지회다. 이들은 같은 동족에게 테러와 총기난사를 서슴지 않았다. © KBS

    본격적인 하와이 교민들을 갈취한 수단들

    ▲이승만은 교민들에게 돈을 각출하기 위해 공채를 발행하여 돈을 걷어 드렸다. 우측엔 우표 © KBS

    교민들의 돈으로 귀족처럼 외교에 힘쓴다는 명목하에 호의호식하며 직함(대통령)에 맞게 생활하는 이승만, 그러나 교민들은 사탕수수 밭이나, 파인애플 공장에서 힘들게 벌어 기탁하고 강제로 채권과 공채를 사야만 했다.

    그 돈은 몽땅 이승만의 주머니로 입금 됐으며 고생하는 교민들에 비해 아주 핸섬한 젠틀맨이다.

    ▲ 헨섬한 젠틀맨 이승만과 1941년 미일전쟁 발발 © KBS


    이승만의 라디오 방송의 효과와 이용

    1941년,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벌어지고 일본이 패망하자, 이승만에겐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아무런 내막도 몰랐던 고국의 동포들에게 그의 일성은 희망을 넘은 열광의 기쁜 소리였다.

    하와이의 사정을 알길 없는 고국의 동포들은 이승만의 라디오 소리에, 이승만은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할 구세주 인양 대단한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그의 외교능력이 포장된 라디오 방송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우매한 국민들은 이승만을 너무 몰랐었다.
    예나 지금이나 매스컴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도 이승만을 우상화하며 행적을 포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친일사관에 젖은 노예집단들이 우리나라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이때 임정에선 총리와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에 위촉했으나,
    그는 '떠들지 말라'며 자칭 대통령직을 고수했다.
    우리헌법 전문에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기록됐는데, 이때는 상해임시정부의 법은 절대적이었음에도 이승만은 이를 무시하고, 떠들지 말라고 밀어 붙였다.
    무법자 의 일방적 추태인데도, 오늘날 추종자들은 한술 더 떠 헌법전문마저 고치려 한다.

    그 첫 번째 행태가 1948년을 건국절로 명명하고 이승만을 국조로 옹립, 임시정부 역사를 대한민국과 별개의 고난의 항쟁사로 묶어,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를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과 동격으로 비하시킴을 당연하다고 외치고 있다.

    고려대 한승조, 육사22기 지만원, 박효성, 안병직, 류석춘, 복거일, 이명희 등 을사5적 과 같은 맥락의 인사들이다.

    전쟁영웅 맥아더의 후광

    해방 후 이승만의 귀국은 글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해방직후 신탁통치를 위해 미국에선 하지중장이 우리나라를 통치할때 이므로 제일 높은 사람이 하지 중장 이었는데, 하지가 이승만에게 경례를 붙이자, 한국 사람들은 전부 놀랐다.
    하지보다 더 높은 사람 이승만, 그것은 2차 대전의 영웅 맥아더에게 편지와 메모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직위로 인간적 교우를 다졌던 터에,
    맥아더의 배려로 하지에게 대통령의 예우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본 도쿄에서 맥아더와 이승만과의 충분한 교감이 있은 직후의 일이라 이상할 것은 없는 사실이나 그때의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고,
    다만 라디오를 통해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열심히 애국한 애국자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더욱 이승만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에 충분했다.

    귀국한 이승만에게 러브콜을 한 무리들은 친일파 들이었다.
    하지중장의 입장에서도 통치의 경험이 있는 친일파들을 처벌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승승장구 남북단일 독립국이 아닌 남한단독정부에 열을 올려 장애물을 제거해 나갔다.

    여운형도 암살되고, 김구도 제거하고, 동족상잔 의 비극 6.25, 장기집권에 최대난적 신익희의 돌연사, 조병옥의 위수술중 사망, 죽산 조봉암의 빨갱이 죄목으로 사형집행, 3.15 부정선거, 4.19 혁명,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 시켰는가?

    4.19혁명 중, 하와이로 도주, 망명, 죽은 후 시체로 귀국, 이분을 대한민국의 국조로 모신다니…….

    국민이여, 지금은 눈을 부릅뜨고 역사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 때 입니다.
    자칫하면, 맥아더도 제2의 국조로 섬겨질까 두려워 집니다.

    이승만의 등장으로 이득을 본 집단은 친일파 들입니다.

    그들은 국가의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1%에 해당하는 귀족으로 그들의 권력과 재력은 국가의 명운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역사마저 자신들의 입맛대로 고쳐, 마치 자신들이 애국의 선봉에 희생자인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믿는 기독교에 이런 무리들이 선발대라니……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룟유다의 후예들이란 사실 앞에 어이없어 목 놓아 울분의 기도만 할뿐입니다. 과연, 이들의 행위가 성경적일까요? 의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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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5 00:34
    (가)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충격적인 자료' 안중근의사도 살인자로 규정한 '밀고자'
    이 기사는 는 과거 kbs가 방송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4/02/12

    이 기사는 과거 kbs가 방송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한 내용이다.

    이승만은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뒤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독립운동을 획책한 적이 없다. 한국독립은 국제연맹에 청원서를 내고 위임통치를 받은 후에 해야 할 일이며, 독립이 된다면, 반드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표방할 것"
    이라고 역설을 하며 가장 양심적 평화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처럼 2박 3일간 미국각지에서 모인 교민들을 기만하며 대통령 취임식을 치렀다.

    ▲1919년 3.1절을 기화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대회의 이승만과 그가 규합한 순진한 교민들, 몇 안되는 이들을 모아놓고 대통령 취임식을 했다. ©KBS

    이승만이 임시정부에서 축출 된 것은 논문 때문입니다.

    그의 논문은 미국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 에 관한 논문으로 미국이 한국을 신탁통치 해달라는 논문이었고, 이에 격분한 임시정부에서는 만장일치로 그를 탄핵 했지만 이승만은 나는 대통령 이므로 너희들의 탄핵은 인정 할 수 없다며 무시하자,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격분했다고 합니다.

    또, 전명운 장인환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더 있습니다.
    우선 교민들은 전명운 장인환의사를 구명하고자, 당시 하와이 바나나농장 에서 어렵게 일한 동포 들이 정말 목숨 같은 돈을 모으게 됩니다.
    애국지사를 죽일 수 없다는 애국심에서 동포애가 발휘된 것입니다.
    그러나 동포들 중 아무도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가 없었고, 황색인종을 도와줄 백인은 없었습니다.
    다행이 하버드 석사요 프린스턴대 철학박사인 이승만을 찾아갔고, 이승만은 수락합니다.

    그러나 1등급 호텔에서 자신이 머물게 해달라는 현실에 맞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교민들은 모금한 그 피 같은 돈으로 그의 조건을 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쓸데없는 곳에 돈만 쓰고 시간만 허비하다, 마지막엔 나는 살인자를 변호하는 통역은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위에 망국의 한을 품은, 교민들을 타국 땅에서 믿었던 이승만 때문에 또 한 번 피눈물을 흘리며 나라 없는 절망에 땅을 치며 통곡을 해야만 했습니다.

    1904년 민영환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이승만은 1905년,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의 포부는 남달라 미국사회에 유명 인사들과 교류를 위해 틈나는 대로 편지와 메모로 자신의 입지를 폭 넓게 굳힌 것 같다.
    그것은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조그만 동양의 고학생이 만났다는 사실에서 입증되며, 후에 2차 대전의 영웅 맥아더를 만난사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가 5년 만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함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러한 그가 천재적 기질을 갖고 애국을 한 사실은 1904년 이전 1898년 정부전복을 꾀한 죄목으로 투옥됐다가 민영환에 의해 미국으로 유학 온 것 외엔 뚜렷한 것이 없다.

    1908년 3,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미국인 친일파 스티븐슨을 살해 했을 때 이승만은 이들의 법정통역을 살인재판으로 명명하고 무참히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도 테러"로 간주하고
    살인자라 맹 비난했는데, 어떤 이유에서 일까?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그는 교육과 선교활동에 뜻을 밝힌 것으로 보아, 종교적 문제로 거절했을 수 있고, 자신의 외교적 입지를 곤란하게 하므로 통역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것이던 거절을 함으로써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사회에서 자신과 테러를 차별화시키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럼, 그는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사회에서 어떤 외교활동을 펼쳤을까?
    미국 외에 접촉한 나라는 몇 나라나 될까?
    전혀, 소득의 결과가 없다.

    그는 하와이로 건너와 박용만이 이끄는 국민회를 장악하고 법정투쟁을 벌리는데 이는 나라를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든든한 친위대 를 양성시키는 수순이었을 뿐이었다.

    이승만의 야심과 비열한 욕망

    그의 야심이 드러난 것은 1919년 3월 1일 고국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를 따르는 교민들을 규합하여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한인대회의 발언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뒤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독립운동을 획책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독립은 국제연맹에 청원서 를 내고 위임통치를 받은 후에 해야 할 일이며, 독립이 된다면, 반드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표방할 것"이라고 역설을 하며 가장 양심적 평화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처럼 2박 3일간 미국각지에서 모인 교민들을 기만하며 치렀다.

    이날 이승만은 미국의 신화 같은 초대대통령 워싱톤이 앉았다는 의자에 앉아 건방을 떨며 새한국의 초대대통령이 자신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며 대통령 취임식 까지 했다.

    이때는 이미 임시정부의 직함인 국무총리직을 박탈당하고 퇴출당한 아무것도 아닌 신분인데도 임정의 대통령직함을 그냥 사용했다.
    이것은 분명한 사기인 것이다.
    마치 그의 행위는 그리스신화의 기회의신 카이로스를 연상시켰다.

    ▲ 이승만은 하와이교포들 사이에 반목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서로 앙숙이 되게 철저히 양극화 시켰다. ©KBS

    1918년 국민군단과 박용만 사건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 태생으로 일본 동경으로 유학, 1904년, 보안회에 입회하여 일본의 개척권 요구에 항거하는 운동에 참여, 한성감옥에 투옥됐는데 그는 그 감옥 안에서 이승만과 운명적으로 만나 결의형제가 되었다.

    1904년 출옥한 박용만은 이승만과 동일시점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1906년 헤이팅스 대학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하고 1909년 네브라스카에서 한인소년병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1년 신한민보의 주필을 거쳐, 1913년 하와이로 와서 신한국보의 주필이 되었다.

    그는 군대를 양성해 일본본토를 공격해 독립을 이룩하자 ! 고 외쳐 교포사회에 감동을 일으켰다.

    교포들의 감동으로 그는 1913년 6월11일 하와이 호놀룰루시의 큰 산 너머 코올라우(Koolau)구역 아후이마누에 위치한 파인애플 농장(1360에이커)에 대조선군단이라는 독립군을 창설하였다.

    그는 생도들에게 낮에는 일을, 밤에는 군사훈련을 시켰다.
    애국심에 독립이란 감동이 더해져 교포사회의 지원은 상상 이상이었다.

    박용만은 1차적으로 하와이 항에 정박 중인 일본함정 츌운호를 격침시키는 목표를 세웠는데, 때를 같이해 이승만은 하와이의 독립운동 자금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백인우월주의에 돈 없는 황색인종이 무슨 방법으로 외교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돈의 힘이었다.

    그는 미국본토에서 박용만의 대의에 참여와 협조를 빙자해 하와이로 건너와, 그곳에서 교육 사업으로 학교를 세워 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고 교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를 기억하는 교포들의 증언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분열과 대립의 상징이었으며,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증언 했다.

    신앙에 있어서는 자신이 믿고 만든 교회와 감리교중 하나만 선택하라며, 교회를 분열 시켰으며, 이것은 자신이 세운 자신의 우상화 종교를 믿고 자기를 추종하는 사제가 되라고 강압적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이는 박용만과 대조선국민군단의 와해를 획책키 위한 고도로 기획된 야비한 이승만 식의 전략이었다.
    급기야 이승만파 와 박용만파로 갈리어 분열 됐는데,

    하와이 교민 1세대들은 분열로 인한 큰 고통의 상처로 남게 되었고 이들은 이승만이 교포사회에서 잔악한 위험인물 이라는 걸 서슴없이 증언하고 있다.
    KBS에서 어렵잖게 취재한 증언을 들어보자.



    https://www.amn.kr/47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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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4 21:51
    탄핵사유 쌓여가는 윤석열의 부산행
    이득신 작가
    기사입력 2024/02/14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총선 지원에 나서고 있는 윤석열이 부산에 대해 들이는 공이 가히 눈물겨울 정도이다. 윤석열은 13일 “부산을 남부권 중심축이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2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라고 말했다. 노골적인 '총선 행보' 비판에도 윤석열은 부산부터 찾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시청에서 지방시대를 주제로 민생 토론회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부산항 북항 재개발 사업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는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는 우선 지난 2030부산엑스포 유치실패로 떠나간 부산 민심을 잡기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부산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되는대로 쏟아 붇는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가덕도신공항은 추진 중인 사안으로 별도의 정책 발표와 지원약속은 큰 의미가 없는 사안이다.



    https://www.amn.kr/4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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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2-14 21:50
    이승만의 부활 ‘건국전쟁’
    이득신 작가
    기사입력 2024/02/14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은 부정부패로 인한 필리핀 혁명으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 하와이로 망명을 갔기 때문에 미국의 도움에 의해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가 필리핀의 대통령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었다. 처벌받지 않고 쫓겨난 권력자가 부활하는 방식이다.

    전두환은 12.12와 5.18등 다단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결국 나중에 사형선고를 받지만 그는 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철저히 유린당했으며, 지만원 같은 자에 의해 광주는 북한군 침투설이 확산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역시 국정농단 등의 죄목으로 법의 심판대에 선후 감옥으로 향했지만 사면되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2번이나 맡았다가 2번 모두 쫒겨났던 인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가 탄핵 당했고, 해방 후에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가 4.19 시민혁명으로 사퇴해서 미국 망명을 떠났다.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부활했던 것처럼 처벌받지 않은 이승만이 부활을 서두르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을 내세워 미국 땅에서 호위호식하며 지냈고 끊임없이 독립운동 진영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 4.19 당시 이승만은 탄핵당한 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 백수십명을 살상한 죄로 처벌받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는 사형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그가 대통령직에 있던 기간 중 자행되었던 수십만에 이르는 양민 학살과 헌정유린, 반민특위 무력화, 독재, 부정부패 등도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과다. 이승만이 사형 당했어야만 하는 이유들이다. 이런 중대한 과오 때문에 역대 어느 정권도 이승만에 대한 기념사업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만, 민간단체 수준에서 이승만 전기를 발간하거나 조선일보가 떠들썩한 이벤트를 열었을 뿐이다.

    이승만을 건국대통령 운운하며 기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높아졌다. 이승만은 우리 사회의 수구반공 반민족냉전 세력의 깃발 같은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정부 최초로 윤석열 정권에서 이승만 기념사업을 공론화하고 수백억원의 보훈부 예산까지 책정하여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고 있다. 급기야 윤석열 정권은 이승만을 2024.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윤석열이 거의 모든 면에서 천박하고 바르지 못한 자이면서, 특히 그의 역사인식은 명백하게 반민족적 반국가적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역사인식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개탄스럽기만 하다.

    최근 이승만의 전기 영화 ‘건국전쟁’이 다큐멘타리 영화로 개봉했다. 설 명절 기간 동안 누적 2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의 다큐 영화를 제작한 자들은 역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이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온 자들일 것이다. 이런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고 관람하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이승만을 부활을 도모하고 민간을 부추겨 이승만을 칭송하는 영화를 만드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루 속히 윤석열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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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2-14 21:49
    조국 전 장관 출마가 두려운 수구들 벌써 공격 시작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14

    조국 전 장관이 13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러자 국힘당과 수구 언론들이 일제히 나서 또 다시 ‘조국 리스크’ 운운하며 부정적 기사로 도배를 했다. 조국이 보통 인물 같으면 신당을 창당하든, 출마를 하든 신경도 안 쓸 텐데, 왜 이렇게 경기를 일으킬까? 겉으론 양심이 있느니 없느니 하지만 속으론 조국이 두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국이 왜 신당을 창당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총선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본다.

    신당 창당 이유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이 신당을 창당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무능한 윤석열 정권의 검사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2) 초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4)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출마의 변만 보면 대선 출마 선언 같기도 하다. 그만큼 조국은 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신당 창당을 통해 평소 자신이 꿈꾼 세상을 만들어 실현해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같다. 그러나 조국이 이 민감한 시기에 신당을 창당한 가장 큰 이유는, 검찰공화국을 통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민주 세력을 도륙 내다시피 한 윤석열 정권을 응징하는 데 일차적 목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검사독재 타도에 국민들 지지 더 많아

    총선의 구도가 검사독재 타도와 운동권 청산으로 좁혀졌고, 국민들이 검사독재 타도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고 있으므로 조국의 신당 창당은 일단 명분이 있다. 이낙연이 단지 이재명이 싫어 탈당 후 신당을 만든 반면에 조국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명분이 부족한 신당 창당은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지만 명분이 뚜렷하면 국민들이 지지를 해준다.

    조국 전 장관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한발 앞서 제시하는 정당을 만들겠다. 윤석열 정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답답하다 못해 숨이 막힌다”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조국은 이어 “4월10일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 정권 심판뿐 아니라, 복합 위기인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킬 계기가 돼야 한다.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행동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수구 언론들 벌써부터 공격 시작

    조국 전 장관이 부산에서 신당 창당 선언을 하고 윤석열 정권의 검사독재를 타도하겠다고 밝히자, 국힘당은 물론 수구 언론들이 일제히 경기를 일으키며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조국이란 존재가 그들에겐 부담이 된다는 뜻이다. 조국은 강남, 서초에서도 인기가 높다.

    서초 집회 때 그쪽 학부모들이 많이 나와 조국수호를 외친 바 있다. 그후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었다. 그런데도 국힘당과 수구 언론들은 ‘조국 리스크’ 운운하며 민주당을 걱정하는 체하고 있다. 사실은 또 다시 조국 바람이 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국힘당과 수구 언론들은 조국의 신당 창당선언이 민주당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거라며 벌써부터 이간질을 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인즉 조국의 등장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문재인 정부 심판론을 상기시킬 수 있고, 사법 불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수구들의 소망일 뿐이다. 국민들은 누가 더 부도덕한지 이미 알고 있다. 국정 지지율이 20개월 동안 30% 박스권에 갇혀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국 강남이나 부산에서 출마하면 바람 일어날 것

    수구들이 정작 걱정하는 것은 민주당이 구성하려는 비례연합당에 조국이 합류하면 혹시 바람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수구들은 부산이 고향인 조국이 부산에 출마해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통해 바람을 일으키면 국힘당이 PK에서도 패할 수 있다는 염려를 하는 것 같다. 조국 정도의 지명도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여론조사 ‘꽃’이 부산 18개 지역구에 각각 500명씩 총 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개 지역은 민주당이 앞서고 있고, 총 8개 지역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조국이 부산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자세한 것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산은 윤석열 정권의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 투기로 가뜩이나 분위기가 안 좋은데다가 부산 엑스포 유치도 29대 119로 참패해 국힘당에 대한 여론이 별로 안 좋다. 거기에다 서병수, 하태경 등이 지역구를 옮겨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또한 윤석열 정권에서 복무한 검사 출신들이 대거 공천되면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조국, 법정 구속 운운한 한동훈 저격

    조국이 신당을 창당할 것 같자 한동훈이 “법정구속을 피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된다고 구속될 사람이 구속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전직 법무부 장관이 함부로 구속 운운한 것은 한동훈이 아직 자신을 검사라 착각하고 내뱉은 오만이다. 법원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기자가 그 질문을 하자 조국은 한동훈에게 “본인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공개하고 고발사주 의혹 고발장이 접수되기 하루 전 손준성 검사 등과의 단체 카톡방에 올린 사진 60장이 어떤 내용인지 밝혀주면 좋겠다. 손준성 검사를 왜 ‘검사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는지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김건희) 명품백 수령 사건에 대해서 왜 입장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고 역공했다. 한동훈이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이다.

    수구 언론들 조국 당선되어도 무효라 억지

    한편 수구 언론들은 조국이 신당을 창당한다고 하자, 조국이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당선되어도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조국이라고 그걸 예상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검찰이 온갖 조작으로 조국을 구속시킬 수는 있지만, 신당 창당으로 모여든 조국 지지자들마저 모두 구속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조국이 구속되면 윤석열 정권의 검사독재가 더욱 부각되어 국힘당이 역풍에 쓰러질 것이다.

    1대1 단일구도로 총선 치를 것

    조국은 전 지역구에 1대1 구도를 만들어 검찰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지역구 출마로 민주당에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민주 진영의 당선을 확실히 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국의 신당 창당이 민주당이 추구하는 검사독재 타도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수구들의 예상은 틀렸다. 조국이 설마 민주당 후보가 떨어지도록 독자 후보를 내겠는가? 조국 신당이 진영을 갖추게 되면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후보 단일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수구들이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후 불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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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2-14 21:47
    한동훈의 이재명 증오는 지극한 콤플렉스의 발로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2/14

    한동훈이 국힘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한 것이라곤 자기정치와 이재명 대표 공격밖에 없다. 한동훈이 유독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윤석열 얼굴로 총선을 치렀다간 참패하기 때문에 구도를 이재명 대 한동훈으로 잡아 총선을 치르려는 꼼수다.

    그러나 그의 총선 전략은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사퇴 카드가 꺼내지고, 그 일로 결국 경경율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서 초반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동훈은 대통령실에 불려가 2시간 30분 동안 교육 아닌 교육을 받고 왔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민생에 대해 얘기했다지만, 그들의 머리에 2시간 반 동안 얘기할 민생거리가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대통령실을 다녀온 후 한동훈은 김건희에 대해 일절 거론하지 않았으며, 누가 물으면 그저 “전과 생각이 같다”라고 애매모호하게 둘러댔다. 버티고 있떤 김경율도 그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한 갈등의 최종 승자는 검건희란 말이 그래서 회자된 것이다.

    한동훈, “검사 독재가 있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독재’를 언급하자 한동훈은 관훈토론에서 “만약 검사독재가 있었다면 이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한동훈은 “검사를 사칭한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 같다”며 “그렇게 검사독재를 한다면 이 대표가 지금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무사한 것은 검사독재를 안 해서가 아니라, 구속될 구체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세 해 넘게 이재명 대표를 표적 수사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 하나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동훈은 이재명 대표가 구속되지 않은 것이 검사독재가 아니라는 근거로 삼았다. 이런 걸 ‘궤변’이라고 한다.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박사 논문 표절, 20가지가 넘은 학력 및 경력 위조, 양평공흥지구 부동산 비리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도 안 하고, 야당만 죽이려는 검찰이 독재가 아니면 무엇일까? 오죽했으면 민주당 이소영이 의원이 “검사 독재가 아니면 김건희는 지금 감옥에 있을 거다. 그렇지 않나. 한동훈 위원장님, 말장난 그만하자”고 일갈했겠는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암살미수 사건 음모론 퍼드렸다는 한동훈

    한동훈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피습 이후에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뜨리며 경찰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럼 검찰이 없어지면 다음 번 공략은 경찰을 없애는 것인가. 정치적 이해관계, 자신의 방탄을 위해 국민의 자산과 도구를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펌훼할 경우 손해는 우리에게 온다. 그런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동훈의 이 말도 왜곡 날조된 것이다. 민주당은 음모론을 편 적이 없으며, 정당한 의혹 제기를 한 것이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난 지 38분 만에 현장을 물청소해 증거를 인멸한 곳은 경찰이다. 또한 부산대는 이재명 대표의 피 묻은 와이셔츠를 버렸다가 나중에 진주 의료물 폐기업체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게 하였다.

    또한 국무총리실 대테러 센터는 수사가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1cm열상, 경상, 노인이 범행, 과도’라고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수구 언론들이 일제히 이를 보도하게 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경찰은 조력자를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단독범행’으로 부랴부랴 발표했다.

    한동훈의 관훈토론 발언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짚지 않고 그저 이재명 대표를 공격해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려 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일반 사건도 며칠 동안 현장을 보존하는데, 하물여 제1야당 대표가 괴한이 휘두른 칼에 목이 다쳤는데 사건 현장에 폴리스 라인도 치지 않고, 아직 수사도 안 벌어진 상황에서 현장을 물청소하는 게 맞는가? 그래놓고 누구에게 감히 음모론 운운하는지 기가 막힌다.

    물타기의 도사들

    지난 몇 년 간 아무리 수사를 해봐도 이재명 대표가 돈 받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검찰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뿔이 났는지 물타기용으로 김혜경 여사의 법인 카드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자신들이 쓴 검찰 특활비는 제대로 공개도 못하고 말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 “심각한 범죄” 운운한 한동훈은 김건희에 대한 질문엔 “공직에 있던 시절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고 둘러댔다. 그럼 자신이 국회에 나와 한 말은 공직이 아닌 사직에 있을 때 한 말인가? 그래서 사직 야구 타령을 했는가?

    지나친 증오는 지극한 콤플렉스의 다른 말

    한동훈은 “지금의 민주당이 과거 우리가 알던 장면, 윤보선,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이 대표에게 있다. 이 대표에게 안타까운 점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한 말은 모두 참말이라서 제소한 소송마다 다 패소하였는가?

    이재명 대표는 가급적 한동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할 가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급해주면 괜히 한동훈만 키워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동훈은 걸핏하면 이재명 대표를 걸고 넘어진다. 윤석열 얼굴로 총선을 치르면 참패하기 때문에 구도를 이재명 대표 대 자신으로 잡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한동훈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윤석열 국정 지지율은 갈수록 내려가고 중도층은 꿈쩍도 하지 않아 벌써부터 국힘당에서는 한동훈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한동훈은 이재명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기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친 증오는 지극한 콤플렉스의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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