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찾사음악을찾는사람들행복동행
♧…しㅓしㅐフㅏ ススㅣフㅓててㅏ˚ **★┃사┃**★**┃랑┃**★**┃해┃★** …────ε♡з─˚Łοv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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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인라이브꧁✨⭕┣🍀추🎭꧂(@pcw4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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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7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기를 / 무정
당신은
그런 생각 해보지 않았나요?
문득 누군가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지금 이 순간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나도 그래요
곁에 있음으로 마음에 평온을 주고
울고싶을 때
그 사람의 품에 안겨 잠들었으면
더 이상 행복한 일 없을거라는 그런 사람
보고싶을 때 볼수 있고
잠시라도 힘에겨워 하는 모습이라면
축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며
작지만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
잠깐이라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항상 그 자리에서
손 꼭 잡아주며 함께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당신 이었으면 하고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기를...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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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6
지하철
지하철 바람에날리는머리카락 누구의 머리카락인가 주인을읽은걸까 아님 주인을 버린걸까 나도모르게 옛생각이난다 너무나도 사랑했던사람 이젠 잊어야할사람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가벼렸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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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6
그리운 친구
+한문석+
빛바랜 창가에 어둠이 밀려오면
고요한 침묵 속에
밤은 또 그렇게 깊어만 간다.
가녀린 세월의 흔적들이
빗장을 내리고
텅 빈 고독의 길모퉁이에 서서
오늘은 그리운 친구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
너무너무 그리워진다.
좋지 않은 기억보단
더 좋은 기억이 많았던 시절
그 세월이 잊을 수 없어
먼 하늘 별빛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없는 그리움이
가슴 가득 찾아든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시간 속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을 홀로 달래며
상념 벙어리 되어
지나간 추억의 흔적들을 그리워하며
이 한밤 소리없는 외로움에 몸부림친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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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6
음악이 끝나면 잠들래요 / 류 경 희
조용한 저녁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있어요
텔레비젼에는 뉴스가 시작 되었고
샤워를 금방해서 그런지
덥지는 않아 선풍기도 안틀었어요
음악이 흘러나오고
손에 든 커피 잔이 잠시 떨림으로
커피 물이 찰랑거리는 흔들림
가슴이 아려 오는 콩닥거림에
당신과 함께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와
잠시 그리움에 빠져 들었어요
조금만 앉아 있을께요
음악이 끝나면 잠들래요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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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5
재 혼, 28회,
아버지의 기술은 살림살이를 풍족하게 남부럽지 않게끔 부자 소리를 듣게끔 했다.
아버지는 사랑에도 열정적이었다.
국민학교 2,3학년 때인가,
부산으로 자제 물품을 구입하러 떠났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매달 4,5일간은 정기적으로 왕래가 있었기에 으례 몇일간 늦을 거라고 했던거이
깜깜 무소식이 되었다.
한달이 가고 두달이 지나쳤다.
빨리 다녀오면 하루 가고 하루 오는 길이였지만 아버지의 길은 멀기도 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페하고 누웠고 우리들은 눈치만 볼 뿐 뾰족한 일 없이 학교에
들락 날락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영 영 돌아올 기색이 없이 봄이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이 왔다.
먹고 입는 것은 풍족 했었든가 아버지가 없어도 끼니는 제때에 꼬박 또박 먹고 학교는
빼먹지 않고 다녔다.
포풀라 가로수 낙옆이 우수수 떨어지는 제법 찬기가 드는 가을날씨였든가 싶다.
집앞 대문이 활짝 열렸고 동네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던 동생들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우르르 달겨든다.
~~"형아, 아부지가 왔다, 아짐씨를 데리고,... 어무이가 아부지 멱살을 잡고 막,때렸어,!"~~
뭔가 알것 같았으면서도 생각이 떠 올르지를 않는다.
~~"왔따메, 늬그들은 좋겠네, 엄니가 둘씩이나 되쁘러서,"~~
동네에서도 싸가지가 없는 여편네라고, 입방아 질이 초라니 방정인 아짐씨다.
눈치가 코치라고 비꼬는 말이란 거 뻔히 알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아짐씨! 암말 말고 저리 가시오,잉! 성질 났승께,!"~~
~~"워메,저 싸가지 없는 쌔끼좀 보소, 어른한테,대든것 좀,보랑께,!"~~
이때, 형이 왔고 그 뒤에 누나도 있다.
"명수야,! 뭔일이냐,? 아짐씨들 비키시오 잉,!"
형은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크다.
나하고 세살차이 국민학교 5학년 이지만 덩치가 중학생보다도 더 크다.
동네 아짐씨들은 눈치를 슬슬 보면서 대문간에서 멀어진다.
형은 대문을 잽싸게 닫아건다.
안방에서는 어머니의 통곡이 있고 아버지의 달램이 있다.
부억켠에서 부스럭 거림이 있나 했더니 배가 남산만큼 불룩한 아짐씨가 서성인다.
ㅡ"사람이,그럴수는 없는 거여,당신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여,
워떻게 한집에서 두집 살림을할 수 있당가,"ㅡ
어머니는 악을 썻고 아부지는 싹싹 빌고 달래고 있다.
찟겨진 창호지 틈새로 방안의 전경이 알록 거린다.
동생들이 어머니의 비통에 놀랬는지 일제히 울음을 터트린다.
한놈 두놈도 아니고 다섯놈이 일제히 울움보를 터트르니 어느놈 입을 막을 재간이 없다.
에라이 나도 울어버리자,
결국은 형도 누님도 울게되고 온잡안이 초상집이 됐다.
여덟명의 자식들이 울어 재끼니 부모님의 맘,이야 편켔는가,
쌈박질을 멈추고선 아이들을 달랜다.
ㅡ"아부지,! 작은 각시 얻은거엿,!"ㅡ
ㅡ"너,! 너,! 머라고 했냐,! 요 싸가지 없는 쌔끼 좀,보소,!"ㅡ
아버지는 얼척이 없어 하면서 몽둥이를 찾는 시늉을 한다.
형은 그런 아버지가 무섭지도 않은지 코를 씩 씩 불면서 아버지를 째려본다.
ㅡ"워메,당신은 그런 말 들어도 싸다구여, 자식 쌔끼들을 한 둘도 아니고 자그마치 야달명이나
내질러 놓구선, 뭐가 부족해서 또,각시질이랑께여,"ㅡ
ㅡ"여편네가, 할 말, 안할 말, 안가리고 항께,자식놈,쌔끼까지 대든당께,"ㅡ
한지붕 두가족 살림이 됐다.
작은엄니는 얼마 안가서 여자 아기를 낳았고 어머니는 정성스례 새 아기를 돌보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던 어느날 작은 엄니는 아기를 업고 떠났다.
아마도 어른들끼리 어떤 타협이 있었던가 보다.
콧물 눈물을 흘리면서 작은 엄니는 몇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손을 저었다.
40년도 넘는 세월이지만 엊그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판박이처럼 박혀 졌다는 것이다.
무모하리 만큼 대쉬하는 성깔도 생김새도 사랑을 쫒는 열정 까지도 닮아진것이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아버지의 우직스러운 고집이 내가슴에 자리하고 있는한 나는 처음처럼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업에 열심히다.
산다는 것은 만나는 것이기에 현업에 열심히 종사한다는 것은 그녀를 만나는 길인것이다.
여름이 왔다.
수선 스러웠던 봄이였고 침묵하는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었기에 여름이 온다는 예보도 없이
왔다고 느끼는가 보다.
가슴의 간절한 기다림에 지우처서 계절의 감각을 잊고 있었나,
사랑하는 마음은 기다림에 길들여 지고 곧 익숙해 집니다.
가슴이 아무리 슬프고 아파도 사랑하면 기다려집니다.
돌아오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사랑하면 언젠가 돌아옵니다.
내 가슴에 기다림이 남아 있는한 나는 당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침묵하는 가을이나 적막한 겨울과 다르게 여름은 떠들썩 했다.
ㅡ"아버님,! 다음주 쯤, 바캉스 가요,"ㅡ
ㅡ"으,...응,그러자 꾸나,"ㅡ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자식들은 떨어져 살아도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잊지않고 찾아온다.
시원한 동해안 바닷바람이나 쐐면 마음이 상쾌해 지려나 해서 따라 나섰다.
"경포대 해수욕장은 넘,사람이 많아서요,"
"그람,낙산 해수욕장으로 가자꾸나, 거긴 모래도 좋구 수심도 얇구, 호수도 있지,"
낙산 해수욕장은 속초에서 가까운 도로변 몇백미터에 있다.
해변 끝 언덕 너머로 "낙산사"가 보인다.
몇해전 낙산사 의상대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광경은 정말 가관이었다.
낙산 해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4km의 고운 모래사장이 펼처져 있고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남대천이 하구에 큰 호수를 이루고 있다.
동해안 해수욕장은 거의가 해변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면은 곧 수심이 가파르게 깊어진다.
그러나 낙산 해수욕장은 수심이 수십미터까지 완만하여 수영이 미숙한 사람도
마음놓고 즐길 수 있다.
아들내외와 여아 손주 하나 막내딸 내외는 아직 아기가 없고 큰 딸은 34세의 노처녀 인데도
시집을 갈려는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천성이 낙천적이다.
텐트를 쳤다.
큰 딸래미는 텐트가 없다.
"아버지,! 오늘밤엔 저하고 같이 자요,"
"안돼,! 이놈아, 동생들을 보그라,쌍쌍이 오죽 보기좋나, 늬는 시집 안갈거여,
오늘 밤까지 아무 머스마라도 데리고 와야지,..."
"에구,...우, 또,그 잔소리,!..."
놀러 왔으면 마음 편하게 해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것 많이 보고,
편하게 쉬고,
재밌게 놀다가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럴라면은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하거늘,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랑이 끊겨 그리움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별일 없는 듯
어울려서 즐기려 해도 의미 없이 노닥거리고 있다.
해변에는 더위를 식히려고 나온 피서객들의 웃음소리와 장난스런 기성이 있고 바다에는
물결이 일으키는 포말의 은빛 거품에서 사람들은 얽히고 섥히고 해서 깔깔 자즈러진다.
여느날 같으면 함께 어울려서 물장구라도 치련만,
텐트안에 들어 그저 고즈넉하게 여름을 식힌다.
"아빠! 주무실려고 왔어욧!"
"으,응,...깜빡 잠들었네,"
"아빠,! 대전 아줌마 하고 뭔일, 있으세요,?"
"뭔일이라니,!? 그런 일 없다야,"
분위기가 알콩달콩 따질 때가 아니다.
고소한 생선찌게가 끓고 비취 탁자에는 저녁상이 차려졌다.
아들 딸 내외에 큰 딸 손지 나,자그마치 7명이다.
가슴이 뿌듯하다.
몇년후면 자손들이 몇명이나 더 늘 것이다.
나의 핏줄에서 연결되어진 새 생명이 자손만대로 뻗혀서 무궁한 발전이 있을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백년도 살 것 같지만 생과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렇지만 생과사는 하나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生속에 死가 있고 死속에 生이 있다고 해서 생과사는 마음에 있으니 나는 백년을
살 것이라고 생각이다.
지금 어머님은 90세가 넘으셨어도 안경도 쓰시지 않고 정정하시다.
ㅡ"장수 자손인데 백년이 대수냐, 하,하,하,..."ㅡ
흰 쌀밥에, 글케 짜지도 않고 달콤한 간장게장이 그리 맛이 있을수가,
함께 나오는 생선찌게는 더 시원하고 맛있다.
무슨 생선인지 고소한 맛이 환상적이다.
"야! 찌게맛이 환상적이구나, 누구 솜씨야,?"
"아부지,! 또,막내딸 솜씨 일거라고,...지례짐작 하셨지,예,...
미안 스럽지만요,며느리 솜씨랑께요,"
"뭐,!? 뭐시라고야,? 며늘아 솜씨라고야,!?"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찌게는 커녕 콩나물 국도 제대로 끓이지 못했던 며느리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더니만 며늘아가 이런 환상적인
생선찌게를 끓였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현상이다.
"아가,! 수고했다. 사람이 하고자하면 못할일이 없는거여,네가 시집살이는
제대로 했구나,허,허,허,...."
"아버님,! 아녜요,언니와 작은 애기씨가 많이 도와 주셨어요,
워찌나 음식 솜씨가 좋으신지요,"
"안다,알어,...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네 마음이 큰거여,네,겸손이 빛난거여,"
ㅡ 아,아,...나는 자식 농사는 잘 지었구나,ㅡ
ㅡ가족이 있어 행복 하구나,ㅡ
잊고 사는 행복이었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있다.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너무 가진 것이 없어 라고 생각이들 때,......
나는 가족이 있어 행복 하다고 느끼면 될 것이다.
끝없이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할 일이다.
기다리면은 언젠가 소식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 멀리 떨어져서 살드래도 명절이면 잊지않고 안부를 묻고 찾듯이 그녀도 곧
소식이 있을 것이다.
상현달이 중천에 떠 있는 탓에 바다는 그저 고즈넉하게 여름밤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아즈라한 수면위에 비치는 파란 달빛을 보면서 발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살을
느끼면서 겉는다.
자식들을 피해서 벗어난 것도 혼자 생각하면서 걷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뭔가 모르게 좋은일이 있을것 같은 기분이 되어 겉는다.
해변끝에 조그마한 동산이 시작되고 그 언덕에 낙산사가 있다.
갑자기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와서 팔을 잡는다.
ㅡ"누,누구얏,!"ㅡ
아들이다.
ㅡ"아부지,! 한참을 찾았어요,"ㅡ
ㅡ"뭔,일로,!?"ㅡ
ㅡ"전화예요"ㅡ
ㅡ"누군데,!?"ㅡ
ㅡ"대전 아줌마예요,"ㅡ
건네받은 휀폰엔 따스한 온기가 있다.
그러면 그렇지 그녀에게서 소식이 올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예사롭게 전화를 받는다.
ㅡ"여보세요,"ㅡ
ㅡ"저예요,인서,예요,"ㅡ
ㅡ"알아요, 알고 있어요,"ㅡ
ㅡ"미안해요,...어쩔 수 없는 일이 있어서요,"ㅡ
ㅡ"그래요, 말,못 할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많이 생각을 했었어요,"ㅡ
그러나 반가움은 잠시잠깐,
행동은 언어는 생각을 벗어나서 울분을 토한다.
ㅡ"당신,! 내가 누구여,!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여,!?"ㅡ
탁,
핸폰을 꺽는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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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5
당신이 그렇다면 나 또한 / 무정
우리 서로가
그리워하며 살아갈수 밖에 없는 거리에 있을지라도
당신은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갈 수 있은 것 만으로
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어요
당신이 내게 말했지요?
하늘이 당신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
그 사람이 나라고...
나 또한 그래요
당신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생명수 같은 사람이예요
잊지 말아요
당신이 하루하루 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듯이
나 또한 당신 생각으로
하루를 열고 닫을 수 있음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의심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을
혹시라도 혼자 버려두지 않을까 하는 것 같은거...
그런 일
하늘이 구멍나도 절대로 없을테니까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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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4
그대라서
나는 덜 떨어진 바보
풀빛 향기에 취하듯
그대 얘기에 헤죽헤죽
콩당콩당 두근두근
멈출 줄을 몰라
잠자는 공주 살아나는
모세혈관의 울렁거림 ...
그대라서 가능한 꿈같은 현실
바다같은 소망은 그대만 바래요
하늘같은 소망은 그대만 섬기지요
내 그대만을
한없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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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4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 무정
기억할께요
당신이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내 생에 처음으로
간절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 그 눈빛과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던 당신의 그 미소
잊지 않을께요
내가 누군가의 사랑이 되기 위해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열어주고 전해주었던 그 마음과
생에 처음으로
당신이 나에게 느꼈을 그 따스함
우리 약속해요
서로에게 아픔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모든 관심과 사랑의 한방울까지 아끼지 않고
서로에게 마지막 사랑이 될 것을...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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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3
간절한 이상
불현듯 보고프면 달려가고 싶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달음질치는 마음이지만
만나는 길은 험하고 애처롭습니다
귓가에 맴도는 벨소리에
조급한 심장은 안절부절합니다
그러다 지칠즈음 삐죽이 내미는 손
서운하고 야속하지만 모른척도 못 합니다
먼 발치라서 싫은건 지
마음이 아니라서 정이 들지 않는건 지
그대의 대화에선 알 수 없는 숨은 그림찾기를 하고
무어라 당부하면 묵묵히 듣기만 하는 설운 사랑
그래도 마음에선 놓을 수 없는 지
걱정과 염려가 묻어나는 저 편 목소리에
아직은 때가 아닌가보다 생각합니다
내가 저 만치만 가까이 있었어도
괜찮았을텐데
이렇지는 않을건데 .....
그대 곁에 함께 있다면
이런 슬픔은 오지도 않을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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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pcw4862)2021-07-21 18:03
재 혼, 27회,
평상시 같으면은 휴게소를 두어번 들려서 왔으련만,
5백리 길 을 단숨에 달려왔다는 것은,그만큼 마음은 평정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마을이 가까워 질수록 마음은 어둡다.
어느새 집 앞에 다달았다.
잠시 카니발 시동을 끄고서 담배를 꼰아문다.
긴 한 숨으로 뿜어내는 담배 연기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려오는 도중에서 두어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신호만 갔다.
그녀의 집은 1층이다.
심호홉을 하곤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ㅡ"아무도 없을거요,"ㅡ
아파트 관리원인듯한 나이 지긋한 분이다.
"언제부터,?"
"일주일도 넘었나 본데요,"
"연락처나, 무슨 메모지나 남긴것은,...!?"
"없어요, 친구분들인가,...와서 간단한 이불떼기 같은 걸 챙겨가데요,"
염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재현되고 있다.
한 줌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빈손으로 돌아서야 한다니 .......
허탈한 심정으로 난감한 현실을 실감한다.
마침내 무너져 버린 자신을 본다.
ㅡ"인서씨! 당신은 지나간 추억을 잊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건가요,!?"ㅡ
ㅡ"인서씨! 끝없이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사랑이 있다는 것을 잊으셨나요,"ㅡ
당분간,이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한다.
변함없이 마음을 주는 사랑이 있다는 것은 내가 오늘도 내일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아주 떠나버린 사람은 아니다.
당분간이라는 제한적인 이별을 해서 자신의 신상에 얽혀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사연이
있었을 거였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숨어 버린 것이였다면 살던 아파트도 처분했을 터였고
나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수단이였다면 아픈말로 절교를 선언하면 될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인하고 덤벙대고 씩씩해 보이지만,
가슴에는 부드러운 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해꼬지는 않을 것이라고,
얼마동안 어두운 푸른빛의 상처를 안고 살다가 잊을 것이라고,
능히 생각하고 조급함이 없이 차분히 떠났을 것이다.
ㅡ"친구분인듯한 분들이 와서 이불떼기 같은 걸 챙겨 갔어요,"ㅡ
어떤 사고가 있었던 게다.
시련과 고난은 더 큰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연습일 뿐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축복의 실마리를 찾아서 분투할 것이다.
마음이 이미 고요하면 외부의 사물이 모두 움직여도 마음에 편안함을 방해하지 못한다.
당분간이 몇달이 이어지더라도 조급함을 버리고 생각하면서 기다리면된다.
돌아오는 길을 멈추고서 마을을 되돌아 본다.
아파트 촌이지만 산촌처럼 느껴지는 마을이다.
멀리 보이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석양빛을 받고 잘 정돈된 조경들이 주홍빛으로 어른댄다.
마음과 눈이 함께 이르러 자세히 생각하고 서두르지 아니하니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아까 전에 덤벙대는 마음으로 마을을 찾을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전경이다.
서두리는 마음으로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나에게 변함없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가 다시 내일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 사랑을 지키는 마음으로 당분간이 계속 이어가드래도 기다려야한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현업에 충실한다.
직업에서 갖는 스트레스도 가끔 있었다.
젊었을 땐 아버지가 욱박지르면서 가르치다시피한 닥트 기술에 중오에 가까운 원망을 했었다.
ㅡ"늬들 세상에서는 전문,기술자가 큰소리치는 세상이 될꺼여, 전문,기술은 만고의 진리여,"ㅡ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부터 지원병제도 징병제도 보국대를 조직하여 전쟁인력을
징집하는등 한민족 말살정책을 시도했다.
아버지는 일본의 강제노역을 피해서 만주로 뛰었고 그 와중에서 일본으로 역행하는 대 모험을
시도하여 대판(大阪) 방직공장에서 나고야,고베,시모네쎄끼등등을 전전하면서
닥트 기술을 익혔다.
타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절실했던것은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었다.
손에 전문 기술이 없기에 날 품팔이나 해서 끼니를 떼워야 했다.
당시의 일본은 家네공업이 집안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풍습이라서 외부인 에게는 전문기술을
가르치지 않았고 허드레 일꾼으로만 부렸다.
아버지의 집념은 일본인을 감동시켰고 결국은 기술을 전수받기에 이르렀다.
기술자가 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30세가 넘는 나이였다.
기술자에게는 많은 혜택이 따랐다.
생활이 윤택해 졌으며 여러군데서 중매도 들어왔다.
특히나 기술을 전 수 해준 일본인 사장은 아버지를 자신의 가업을 잇는 사윗감으로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했다.
그럴수는 없었다.
일본인의 만행을 피해서 낮선 타국으로,... 망국의 한,이 가슴에 시퍼렇게 살아 있기에
단호이 거절했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단군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ㅡ"내가 늬들한테 기술은 배웠을 망정! 쪽발이 데릴 사위는 안한다."ㅡ
동포 처자를 만나 불야 불야 결혼을 서둘렀다.
그 때,아버지 나이는 35세였고 신부는 15년차 19세였다.
기술자의 권위는 하늘에 닿았다.
전문 기술자가 아니었다면 꿈이라도 꾸었겠는가,
시모네 쎄끼,에 신혼을 차렸고 조그마한 공장도 운영하게됬다.
드뎌,망국생활 십수년만에 기반을 닥게 된것이다.
1942년, 누나가 태어났고 1944년,형이 태어났다.
1945년,8월15일, 해방이 되었다.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국선을 탔다.
ㅡ"애순이,아버지! 쫌,생각 좀,해보고 귀국합시다,"ㅡ
아버지는 단호했다.
ㅡ"내 조국이 해방 됐는디, 여기서 뭉그적 거린다고,!? 말이나 된소리여!
빌어 먹어도 내 조국에서 빌어 먹을랑께!"ㅡ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할것도 말것도 없이 가솔을 이끌고 귀국선을 탔다.
해방이 되지 않았드라면 나는 1년 빨리 태어 났을 거였지만 귀국하고 이참 저참 하다가
한 1년 늦게 태어났다.
태어나자 마자 6,25 전쟁이 터졌다.
재수대가리가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방귀가 깨진다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전쟁을 격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기술은 어디에 가서도 빛을 발했다.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기반을 닥았고 터를 잡았다.
먹고 사는것이 편안하니께,
동생들은 줄을 이어서 태어났다.
밑으로 아들이 셋,딸이 둘, 합하여 5남,3녀,의 대 가족이 된것이다.
아버지의 뚝심은 천하가 알아주는 거시기 였다.
35세때 결혼해서 슬하에 자식을 8명이나 생산했으니,....그것도 전쟁을 두번씩이나 격으면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피는 물 보다 진하다고,
아버지 닮지 아들이 어디 있겠냐고,
나는 아버지의 고집이 싫었다.
일본놈식 야리끼리 우께가 싫었고 군대식 취침 기상이 싫었다.
ㅡ"사람은 본분을 지켜야 한다. 일하기 싫은자는 먹지도 자지도 말아야한다.
먹고 입는것은 부지런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ㅡ
거침없이 휘둘리는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까지 들어 메쳤다.
ㅡ"늬들이 선생이여, 학교 선생이면, 공부나 가르 칠 것이지, 아그들 데려다 놓고 꼴,베기를 시켜,"ㅡ
무지 몽메한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의 원칙은 일본놈들의 가풍이였고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길들여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 자신이 어느새에 아버지를 닮아 있다는 것이다.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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