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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5 23:25(나)
독립운동사 몇가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의 저술 덕분에
[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3]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역사학자 계봉우
이희용(hoprave)
26.06.15
크질오르다에서 한글신문 '레닌기치' 편집진을 교육하고 훗날 저명한 러시아 한국학자가 되는 박미하일도 가르쳤다.
그는 고려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동학당 폭동', '조선역사', '꿈속의 꿈', '조선말의 되어진 법', '조선문법', '이두집해', '조선문학사' 등의 역작을 쏟아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가운데 독립군 대장 출신의 홍범도가 무(武)의 상징적 존재라면 계봉우는 문(文)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만했다.
계봉우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유물사관과 계급투쟁론을 따르면서도 서양 중심의 기계적인 시대 구분을 거부했다.
공산사회의 원형으로 간주하는 원시사회를 별도 편으로 구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삼국시대를 고대 노예제 사회가 아닌 조기 봉건제 사회로 봤다.
식민지 시기도 이식자본주의 시대로 설명하는 대신 반일 투쟁 중심으로 서술했다.
그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를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신라 시기도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어 남북국 시대라고 명명했다.
통일신라와 조선에서 일어난 민란을 별도 항목으로 나눠 농민운동 관점에서 상세히 다뤘으며, 동학농민운동도 농민전쟁이자 사회혁명으로 인식했다.
고국 떠난 지 100년 만에 유골함에 담겨 귀향
▲카자흐스탄에 안장돼 있던 독립유공자 계봉우 지사의 유해가 2019년 4월 22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2호기에서 운구되고 있다. 계봉우 지사는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뒤에도 민족교육에 전념해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 정부로부터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연합뉴스
계봉우는 1959년 7월 5일 세상을 떠나 홍범도 장군 묘소가 있는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 묻혔다. 올해로 67주기를 맞는다.
강제이주 이후의 행적과 저작은 철의 장막에 가려져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잊혀갔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방) 정책, 한소 수교, 소련 해체, 한국-카자흐스탄 수교를 거치며 양국 간 교류가 이뤄지고 연구도 진행됐다.
1993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 기사는 그를 "오늘날 러시아 한인 사회의 원로급 인사들을 거의 길러내기도 한 독립운동가 겸 역사학자"라고 소개한 뒤 "사방자 또는 뒤바보란 필명으로 독립신문에 연재한 주인공을 두고 그동안 박은식이라는 설이 유력했으나 자서전을 통해 계봉우였음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저술이 공개되면서 독립운동사의 빈칸 중 일부가 메워지고 몇 가지 수수께끼도 풀렸다. 국어학과 국사학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8월 광복 50주년을 맞아 계봉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때 이동휘, 박차정, 신언진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처음 서훈됐다.
계봉우의 4남 계학림 씨도 모국을 방문해 훈장을 대신 받고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부친의 육필 원고 등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2019년 4월 21일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계봉우·황운정 지사와 부인 김야간·장해금 여사의 유해 봉환식이 열렸다.
4위의 유해는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에 실려 이튿날 고국으로 돌아온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계봉우가 고국을 떠난 지 100년, 카자흐스탄에서 타계한 지 60년 만이었다.
▲유해 봉환식 주관하는 문재인 대통령2019년 4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 봉환식을 주관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것도, 대통령이 해외 애국지사 유해 봉환식을 주관한 것도 처음이었다.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42684&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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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5 23:25(가)
독립운동사 몇가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의 저술 덕분에
[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3]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역사학자 계봉우
이희용(hoprave)
26.06.15
▲독립운동가이자 국학자 계봉우 지사계봉우 지사는 국권 회복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 역사와 국어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국가보훈부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역사학자가 여럿 있다.
신채호와 박은식이 대표적이고 정인보, 김준엽, 장도빈 등도 들 수 있다.
주시경,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이병기, 이극로, 김두봉 등 국어학자도 적지 않다.
우리 역사를 바로 보고 널리 알리는 일과 우리말을 지키는 일이 국권을 회복하는 투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봉우(桂奉瑀)는 국사와 국어 두 분야에서 모두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것도 망명과 강제이주로 4개국을 전전하며 이뤄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분단과 냉전으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모국과 단절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 저작물에는 발음하기 쉽도록 성을 '게'라고 썼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묘비에도 '게봉우'라고 새겨져 있었다.
'북쪽의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으로 북우(北愚)를 호로 삼았는데, 한글로는 뒤바보라고 했다.
사방자(四方子), 단선(檀仙)이라는 필명도 사용했고 하근(河瑾)이란 성명을 쓰기도 했다.
'시일야방성대곡' 읽고 구국운동 결심
계봉우는 1880년 8월 1일 함경도 영흥(현 함경남도 금야군)에서 태어났다.
관노 집안인 데다 희성(稀姓)이어서 가계는 물론 아버지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장씨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으나 외아들을 공부시키려는 부모의 일념 덕분에 7살 때부터 서당에 다니고 사립 양사학교와 낙인중학교를 졸업했다.
1887년 여동생에 이어 1891년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1894년 과거제가 폐지되자 계봉우는 서당 공부를 중단했다.
동학에 입교하는가 하면 정감록에 빠져 도인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비판한 장지연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읽고 구국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의 자서전 '꿈속의 꿈'에는 당시에 쓴 시 "살아도 구차히 살면 사는 것이 또한 욕이요, 마땅히 죽을 때에 죽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로다"가 실려 있다.
다만 "나는 20세기 초 낙후된 봉건적 조선에는 일본 식민 압제에 저항할 실질적 힘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라면서 "전면적 무장투쟁을 촉구하는 어떠한 호소도 모험이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1906년 10월 김정규·권영호 등과 함께 고향에 홍명학교를 설립해 한문, 역사, 지리 등을 가르치다가 1909년 함흥의 영생중학교 교사로 옮겨갔다.
1907년에는 이동휘의 권유로 대한자강회와 서북학회에 가입하고 비밀결사 신민회에서도 활동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계봉우는 12월 북간도로 망명했다.
이듬해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 소영자(小營子)에 이동휘가 세운 길동기독학당(일명 광성학교)에서 조선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애국계몽단체 청년친목회, 대동협신회 등과 항일비밀결사 광복단에도 가입했다.
월간지 '대진'의 책임 주필을 겸하며 '우리의 원수를 잊지 말자'는 뜻의 '오수불망(吾讐不忘)'을 비롯해 '조선역사', '신한독립사' 등 역사 교과서를 집필했다.
1912년에는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갔다.
권업회에 참여해 권업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안중근 동생 안정근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고의사(萬古義士) 안중근전'을 신문에 연재했다.
1913년 이상설과 이동휘 등이 조직한 대한광복군 정부 책임비서로도 활약했다.
▲권업신문에 연재한 안중근 전기계봉우 지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던 권업신문에 1914년 6월 28일부터 10여 회에 걸쳐 단선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만고의사 안중근전’.독립기념관
1919년 경찰 감시 따돌리고 두 번째 망명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 압력을 받은 러시아 정부는 한인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추방령과 체포령을 내렸다.
이동휘와 함께 북간도 왕청현(汪淸縣)으로 대피했다가 1916년 11월 일본 형사들에게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인천 영종도에서 1년간 유배된 뒤 3년간 영흥을 떠나지 못하는 처분을 받았다.
연금 기간에도 '최신동국사'를 펴낸 데 이어 3·1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인산(因山·국장)에 맞춰 거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신학교 입학 수속을 핑계로 2월 27일 서울로 올라왔다.
3·1운동 2차 시위 책임자인 강기덕의 부탁을 받고 선언서 초안을 작성해 건네준 뒤 3월 3일 인산을 보고 평양을 거쳐 귀향했다.
그해 8월 경찰의 감시를 따돌리고 러시아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철혈광복단 단장으로 추대됐으나 북간도를 대표하는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돼 상해로 떠났다.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북간도 그 과거와 현재', '아령실기(俄領實記)', '김알렉산드라 소전(小傳)', '의병전' 등을 기고했다.
1920년 계봉우는 김립의 권유로 이동휘가 이끄는 한인사회당에 입당했다.
한인사회당은 한인공산당을 거쳐 고려공산당으로 개편됐다.
그는 기관지 '자유종' 주필로 활동하다가 원동(遠東)공화국 수도 치타로 파견됐다.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원동부 산하 한인부 위원으로 선출되고 출판부장으로도 임명돼 노동신문을 발간했다.
당시 고려공산당은 러시아 한인 2세가 주축인 이르쿠츠크파와 민족주의 계열의 상해파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었다.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동양비서부는 일국일당 원칙을 내세워 이르쿠츠크파에 힘을 실어주고 상해파를 탄압했다.
1921년 5월 계봉우도 반혁명분자로 몰려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홍범도 계봉우 기념관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 묘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홍범도 계봉우 기념관 외관(왼쪽)과 전시실 내부.국가보훈부
자유시 참변 겪고 교육과 연구에만 몰두
한 달 뒤 볼셰비키군을 등에 업은 이르쿠츠크파가 상해파 부대를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독립군 수천 명이 희생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이르쿠츠크파는 비판의 화살을 받아 궁지에 몰렸다.
상해파의 이동휘가 모스크바까지 가서 항의한 덕분에 계봉우도 석방됐다.
이때부터 그는 이념 대결이나 정치 투쟁에서 발을 빼고 교육과 연구·저술에만 몰두했다.
조선인 청년회 잡지 '새 사람' 주필로 일하면서 소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고 아동들을 위한 조선어 교과서를 집필했다.
'신찬주신사'도 펴냈는데, 신채호처럼 조선을 주신이라고 표기한 것이 눈길을 끈다.
오성묵과 함께 무신(無信) 동맹을 조직해 한글신문 '선봉'에 반종교 운동과 관련한 글을 기고하는가 하면 '과학의 원수', '고려인의 구력(舊曆)과 명절의 미신'을 집필하기도 했다.
연해주 고려인을 위한 문법서 '고려문전' 감수 작업에도 참여해 저자 오창환과 논쟁을 벌였다.
계봉우는
▲자음과 모음이란 명칭 대신 초성·중성·종성이라고 부를 것
▲'ㅂ' 받침이 '우'로 변하는 것을 불규칙동사나 불규칙형용사로 규정할 것
▲초성 'ㅇ'과 종성 'ㆁ'을 구별해 쓸 것
▲'놀애(노래)', '달이(다리)', '남우(나무)'처럼 어근의 형태를 밝혀 적을 것 등을 주장했다.
1937년 10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17만여 명에 이르는 연해주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다.
그에 앞서 지도자 2500여 명을 간첩 혐의로 처형했다.
계봉우는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동지들과 연락을 끊고 이들과 찍은 사진까지 없애며 시골학교 교사로 눈에 띄지 않게 지낸 덕분에 처형은 면했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6500㎞ 떨어진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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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5 22:58[사설] 국민의힘, ‘전국 재선거’ 요구 진심이면 당론으로 정하라
민중의소리
발행 2026-06-15
투표용지 부족으로 시작된 선거 관리 논란이 개표수 입력 오류, 선관위원과 직원들의 근태 해이 등과 맞물려 분노와 실망을 키우고 있다.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행정 선진국이자 K-민주주의 종주국으로서의 국격과 자부심에도 커다란 상처를 냈다.
이번 사태는 명백히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의 무능과 무책임이 원인이다.
진상조사와 함께 엄정한 법적·행정적 책임을 묻고, 선관위를 해체 수준으로 쇄신해 재구성하는 것이 국민적 합의다.
그러나 부정선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선관위가 선거 관리를 해태한 문제와 부정선거를 기도하고 실행한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부정선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협조와 은폐가 필요하며, 특정 세력과의 정치적 결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정선거는 윤석열 내란과 맞먹는 민주헌정 질서 위협이다.
전한길, 황교안 등 ‘아스팔트’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이야 불평불만 정도로 치부됐다. 그들은 객관적 증거도, 합리적 추론도 제시하지 않고 허위조작 정보를 흔들며 일방적으로 소리쳐 대화도, 토론도 불가능하다.
내란 이후 윤석열의 부정선거 주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국민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했다. 올림픽공원에서 날마다 이어지는 ‘부정선거 재선거’ 촉구 시위가 점점 참여 숫자가 주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민의힘의 장동혁 대표가 부정선거론에 기대 재선거를 주장하는 사태는 전혀 다르다.
부정선거는 선거 관리가 부실하다고, 결과가 의심스럽다고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장 대표 등이 제시한 후보들의 득표가 같은 이른바 ‘쌍둥이 득표’는 우연일 뿐 부정선거의 근거가 전혀 아니다.
부정선거가 아주 작은 범위에서라도 이뤄졌다면 이는 국기를 흔드는 대형 조직범죄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국민은 선거도 선출된 권력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부정선거가 사실이라면, 해법은 재선거가 아니다.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색출해 법이 정한 최고한도의 처벌을 해야 한다.
장 대표는 방금 치러진 선거 결과를 불신하고 재선거를 하자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당선자를 낸 정당이 선거를 다시 하자는 초유의 사태다.
장 대표가 ‘전국 재선거’를 거듭 주장하자 5선 중진 나경원 의원도 동조했다.
이 정도면 지나가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허공에 재선거를 실시하라고 외치기 앞서 명확하게 당론으로 채택해야 옳다.
의원총회를 열든, 그 이상의 의결기구를 동원하든 당론으로 채택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대표만 외롭게 재선거를 요구할 뿐, 함께 하는 의원도, 공식 논평도 없는 기이한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나경원 의원 주장처럼 재선거를 위한 오세훈 서울시장 등의 선제적 사퇴도 내부에서 결론내야 한다.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진지한 정치세력이라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이성을 되찾길 바란다.
재선거는 4500만 유권자의 기존 선택을 무화하고,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밟는 일이다. 막대한 행정력과 국민들의 수고가 뒤따르며, 정치적 혼란도 극심할 것이다.
결과가 뒤바뀌는 선거구 곳곳에서 불복과 항의가 쏟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대구의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면, 국민의힘도 격렬하게 반발할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이 원하는 것은 이런 국가적 혼돈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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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5 22:55[사설] 실패로 끝난 미국의 이란 침공, 완전한 평화는 아직
민중의소리
발행 2026-06-15
미국과 이란의 종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종전 양해각서(MOU)의 서명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양측 모두 종전 합의에 대한 최종 승인과 서명만이 남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최종안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 보도로 흘러나온 주요 조항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을 드러냈다.
로이터 통신이 이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내놓은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 포기와 호르무즈 해협 즉각 개방을 약속했으며,
미국은 이에 상응해 해상 봉쇄 해제와 대규모 동결 자금 반환 및 원유 제재 유예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번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란은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는 점을 공언해왔다.
호르무즈 해협은 당연히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반면 이란은 전쟁 이전부터 요구해 온 동결 자금 반환과 석유 수출 허용 등 국제적 제재를 걷어냈다.
외견상 미국의 공격과 이란의 방어로 전개되어 온 이번 전쟁의 주도권이 사실상 이란측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이 전쟁에서 실패한 경우는 많았다.
물론 미국의 실패는 대개 단기적·전술적·군사적 승리 이후 지속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떠안게 된 장기적·전략적·정치적 패배였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군사적으로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는 단 한 번의 우세도 점하지 못한 완벽한 실패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트럼프의 주장처럼 '다시 위대해'지기는커녕 쇠락의 추세에 더 가속을 붙이고 말았다.
중동전쟁이 일단 멈추는 건 모두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고유가와 공급망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완전한 평화의 시기가 오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60일 동안의 추가 협상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고 나면 다시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란을 억제하겠다는 기획이 등장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이런 미국의 전략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번 종전 합의에 낙관해선 안 된다.
에너지 전환이나 공급망 재편은 물론이고 미국 일변도의 외교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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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23:372300년 전 맹자가 오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 출근한다면?
[인물로 본 세계사] 성선설의 사나이, 역성혁명을 허하다
김성수 저자
기사입력 2026.06.13.
맹자(孟子, 기원전 372?~기원전 289?)는 죽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살아 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한국정치판에서 가장 절실하게 소환되어야 할 사람이 바로 이 노인이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어질게 살아라"는 다소 온건한 권고를 남겼다면,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금이 백성을 못 살게 굴면 갈아치워도 된다"고 공개적으로 외쳤다.
전국시대 제후들이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씰룩거렸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맹자의 이름은 가(軻), 자는 자여(子輿)다.
지금의 중국 산둥성(山東省) 쩌우청(鄒城) 일대인 추(鄒)나라 출신으로,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기원전 483?~기원전 402?)의 문하에서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 장씨가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다만 이 미담은 전한(前漢) 시대 유향(劉向, 기원전 77?~기원전 6?)이 쓴 《열녀전(列女傳)》에 처음 등장할 뿐, 당대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훗날 덧붙여진 교훈 서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머니 신화는 2천 년 전에도 유통됐다.
성선설, 사람은 원래 착하다, 그러니 변명하지 마라
맹자 사상의 핵심은 성선설이다.
"사람의 본성은 본디 선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맞서 순자(荀子, 기원전 298?~기원전 238?)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내세웠고, 고자(告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중간노선을 택했다.
성선이냐 성악이냐 논쟁은 2천 년이 넘도록 이어졌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인류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네 가지 마음의 실마리, 즉 사단(四端)이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보았다.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면 누구나 달려가 붙잡는다.
이 자연스러운 반응이 바로 인간본성의 선함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악인이 왜 이리 많은가?
맹자의 답은 명쾌하다.
물욕과 탐욕이 그 착한 본성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빠진 게 아니라, 나쁜 환경이 사람을 망가뜨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현대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매년 대학 입시철이면 온 나라가 들썩인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이고, 출생률은 세계최저를 경신한다.
어린 학생들은 새벽 두 시까지 학원에 앉아 있다.
맹자가 이 광경을 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착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저렇게 몰아붙이는 환경이야말로 성선을 짓밟는 폭력이라고 했을 법하다.
민본주의, 백성이 가장 귀하고, 임금은 가장 가볍다
맹자 사상의 두 번째 핵심은 민본주의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와 땅의 신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
조선왕조 5백 년 내내 선비들이 이 구절을 입으로는 외우면서 실제로는 왕권강화에 복무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빼어난 아이러니다.
맹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여 민심을 잃으면 그를 몰아내는 혁명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이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한다.
왕조가 바뀌어도 되는 근거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은 발끈했다.
황제자리에 오른 그가 맹자를 읽다가 이 구절에서 벽에다 책을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맹자의 역성혁명 관련 구절들을 삭제한 이른바 '맹자절문(孟子節文)'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검열의 원조를 찾는다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 뒤 조선에서는 성리학자들이 맹자를 교과서로 삼았다.
하지만 역성혁명론은 살짝 봉인해두었다.
군주에게 불편한 대목은 덮고, 충효와 질서만 강조했다.
맹자가 이를 보았다면 "이건 내 책이 아니오"라고 했을 것이다.
왕도정치, 어진 정치가 패도를 이긴다
맹자는 전국시대 각국을 돌아다니며 제후들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역설했다.
무력과 이익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는 패도(霸道)가 아니라, 덕과 인의(仁義)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진정한 통치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양혜왕(梁惠王, 기원전 370?~기원전 319?)을 만나러 가서도 첫 마디에 이익 이야기를 꺼내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하지만 맹자는 굽히지 않았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곳간을 열지 않으면 정치가 아니고, 세금으로 백성을 쥐어짜면서 인의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 유세는 대부분 외면당했다.
당시 제후들은 부국강병, 즉 빠른 시간 안에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만드는 데 몰두했다.
법가(法家) 사상가들이 유행했고, 상앙(商鞅, 기원전 390?~기원전 338)이나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기원전 233?) 같은 인물들이 더 환영받았다.
맹자는 결국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들과 함께 책을 정리하며 여생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한 현자의 전형적인 말년이다.
역사에 미친 영향, 당나라에서 뒤늦게 재발견되다
맹자가 사후에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당(唐)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그를 재발견하면서부터다.
한유는 불교와 도교에 밀려난 유학을 다시 세우면서 맹자를 공자의 정통계승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송(宋)나라 주희(朱熹, 1130~1200)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묶어 사서(四書)로 확립하면서 맹자는 공식교과서가 되었다.
공자가 죽은 지 천 년이 지나서야 공자 다음의 아성(亞聖)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뒤늦은 명예회복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조선에서 성리학이 국시(國是)로 채택되면서 맹자는 필독서가 되었다.
과거시험을 보려면 맹자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맹자를 읽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꿨고, 동시에 자신들의 기득권도 공고히 했다.
이처럼 좋은 사상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맹자 본인은 이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맹자를 읽는다는 것
오늘 한국에서 맹자를 읽는 일은 단순한 고전 탐독이 아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 이 사회의 현실을 향해 곧장 날아든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먹고살 기반이 없으면 도덕심도 유지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청년들이 집을 살 수 없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도덕과 시민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맹자식으로 보면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먼저 살 수 있게 해야 착하게 살 수 있다.
"임금이 잘못을 거듭 저질러도 간언을 듣지 않으면 갈아치울 수 있다."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론이 오늘날의 탄핵제도와 닮았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권력은 백성의 뜻에서 나오며, 백성의 뜻을 저버린 권력은 정당성을 잃는다.
2016년과 2024년,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은 어쩌면 2300년 전 맹자가 예언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이익만 밝히면 아래도 이익만 좇는다."
정치지도자들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좇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사회전체가 이익경쟁의 장으로 변한다는 경고다.
부동산투기, 주식 불법거래, 친족 특혜채용, 뉴스를 펼치면 맹자가 2천 년 전에 이미 걱정했던 장면들이 현재형으로 펼쳐진다.
맹자가 지금 여의도에 나타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한동안 말없이 국회 중계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역시 환경 탓이구먼."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 추나라의 유학자로, 공자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켜 성선설과 민본주의를 확립했다. 그의 언행을 담은 책 《맹자》는 사서(四書) 중 하나로 동아시아 정치·철학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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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21:34원고지 1.6매로 무기징역 때린 엘리트 판사, 그리고 대법관 됐다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서성, '보신주의자'의 성공 스토리
김성수
기사입력 2026.06.14.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서성(徐晟, 1942~) 항목에서 전직 대법관 박우동(1934~)의 말이 눈에 박혔다.
"사형 다음의 중형을 선고한 판결에 그렇게 아무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재판장이라는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한 대법관이 동료판사의 판결문을 보고 한 말이다.
그 판결문은 무기징역 선고 이유를 원고지 1.6매에 담은 것이었다.
재판장은 서성.
그리고 서성은 나중에 대법관이 됐다.
1942년 서울출생, 제1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법관
서성은 1942년 9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외조부 이석구(李錫九, 1880~1956)는 동덕여대와 성균관대 설립에 기여한 교육운동가였다.
1960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입학했으며, 대학 1학년 때 4·19혁명 시위에도 참여했다.
1963년 고등고시가 사법시험으로 전환된 후 처음 시행된 제1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 수석합격이 서성의 이력 전체에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최고의 엘리트 법관."
그런데 이 최고의 엘리트 법관이 남긴 판결문 가운데 무기징역 선고 이유를 원고지 1.6매에 담은 것이 있다.
1969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용된 서성은 1971년 서울형사지법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안사건 재판부에 배속됐고, 그때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독재정권이 조작한 간첩사건들의 재판을 맡아 유죄를 선고했다.
세계사 속의 동류, '보신주의적 엘리트'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다.
당대 최고의 법학자로 명성을 쌓았으나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즉각 그 체제에 봉사했다. 그의 이론은 독재에 법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전후 법학계에서 고립됐지만 형사 처벌은 면했다.
흥미롭게도 안기부는 서성을 가리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만 치중해온 이기적인 성품"의 "보신주의적 인사"라고 평가했다.
자신들에게 충성한 판사를 '보신주의자'라고 평한 것이다.
안기부의 눈에도 서성은 신념으로 독재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독재에 협력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뜻이다.
이것이 서성 이야기의 가장 씁쓸한 아이러니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협박전화를 받으면서도
서성의 이력에는 복잡한 면이 있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배석판사를 맡았을 때 그는 공소사실이 조작됐다고 재판부 내에서 강하게 주장했다.
"이것은 조작한 사건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 말이 도청돼 어머니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용기는 일시적이었다.
서성은 미국유학 중 재임명 배제명단에서 빠지는 조건으로 민사법원으로 전보됐다. 체제와 타협한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간첩조작사건들을 줄줄이 유죄로 처리했다.
오주석, 고창표, 박박, 허철중, 네 명의 피해자, 모두 재심 무죄
서성이 재판장으로 유죄를 선고한 사건들을 보면 한 가지 패턴이 있다.
피의자들은 법정에서 고문사실을 폭로했다.
서성은 이를 묵살했다.
그리고 유죄를 선고했다.
오주석 사건(1983년).
안기부 수사관들이 58일간 불법구금 해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았다.
오주석은 법정에서 "비눗물을 코에 붓는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서성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010년 재심 무죄.
고창표 사건(1983년).
예비역 중령을 고문으로 간첩으로 조작했다.
함께 기소된 김병주에게는 사형, 고창표에게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012년 재심 무죄.
박박 사건(1984년).
재일한국인을 39일 불법구금 해 간첩으로 조작했다.
유죄 선고.
2012년 재심 무죄.
허철중 사건(1984년).
재일한국인 2세를 21일 불법구금 해 고문으로 조작했다.
허철중은 한국어가 서툴러 통역도 없이 재판을 받았다.
변호인은 "고문 이야기를 법정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서성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012년 재심 무죄.
그리고 1986~1987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시절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정삼근 사건, 김양기 사건, 강희철 사건도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원고지 1.6매짜리 무기징역 판결문
1987년 강희철 사건 항소심 판결문이 문제다.
무기징역 항소기각 이유를 원고지 1.6매에 담았다.
내용도 바로 전의 김양기 사건 판결문과 몇 글자만 달랐다.
판결문을 복사해 단어 몇 개만 바꾼 수준이었다.
전 대법관 박우동은 이 판결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사형 다음의 중형을 선고한 판결에 그렇게 아무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재판장이라는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법원문화에서 이 발언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1985년 김근태,
고문을 알고도 중형을 선고했다
서성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1985년 김근태(1947~2011) 사건 재판이다.
민청련 의장 김근태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1941~2016)에게 23일간 전기고문을 당한 뒤 기소됐다.
서울형사지법 합의11부 재판장 서성은 이 사건을 맡았다.
김근태는 법정에서 고문사실을 상세히 폭로했다.
서성은 뜻밖에도 이 진술을 제지하지 않았다.
김근태는 경기고 4년 후배인 서성이 부드럽게 재판을 진행하자 기대를 품었다고 회고했다.
"은근히 믿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986년 3월 6일 선고공판에서 서성은 김근태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6년을 선고했다.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는 진술을 외면하고, 안기부가 제출한 사상검열감정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특히 영국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의 책을 "국가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소지"했다고 판시했다.
경제학과 출신 김근태가 소지한 경제학 교재가 간첩의 증거가 됐다.
재판은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관이 됐다, '보신주의자'의 성공스토리
서성은 1997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비슷한 시기에 정치판사로 지탄받던 박영무(1943~), 이철환, 정상학, 가재환(1940~2025) 등은 대법관이 되지 못했는데 서성만 됐다.
참여연대는 대법관 후보자 인준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지만 임명을 막지 못했다.
대법관 재직 중 그는 일부 의미 있는 판결도 내렸다.
교도소 수갑 채우기 불법판결, 영장실질심사제도 지지발언.
그러나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2003년 대법관 퇴임강연에서는 후배법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관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 말은 후배가 아닌 과거의 자신에게 했어야 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카를 슈미트는 법학교재에 반드시 나치부역의 역사와 함께 등장한다.
뛰어난 법률가가 독재에 봉사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서성은 제1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였다.
그 지적능력으로 그는 조작된 사건의 허점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보 지 않았다.
안기부의 평가대로 그는 '보신주의자'였다.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독재에 협력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서성을 떠올렸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권력에 봉사할 때, 그 피해가 가장 크다는 것을.
원고지 1.6매짜리 무기징역 판결문이 그것을 말해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서성 전 대법관. ⓒ반헌법행위자열전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606130937543930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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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21:20학원 강사인 내가 '참교육' 보다가 날 밤 샌 이유
[리뷰] 넷플릭스
원광연
26.06.14
요즘 가장 뜨거운 화제작, 드라마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누군가는 현실을 잘 고발했다고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무리한 설정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 학부모, 학생은 물론이고 드라마를 본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며칠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의 첫 회를 무심코 틀었다가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에 1편부터 마지막 10편까지 내리 달린 뒤, 모니터를 끄고 나니 창밖은 이미 환하게 해가 뜬 낮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졸린 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밀려왔다.
이 작품은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기 위해 가상의 정부 기관인 '교권 보호국' 감독관들이 학교 현장에 투입된다.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밤새 시청자를 화면 앞에 묶어두기에 충분할 만큼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교실 짓밟는 일들
에는 선 넘은 일진 뿐만 아니라 법을 우습게 보며 행동하는 '촉법소년' 아이들, 학교를 쥐고 흔드는 진상 학부모, 사욕을 채우는 비리 교사까지 교실을 짓밟는 무소불위의 부조리들이 그려진다.
지금 무너진 교단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직 교사들은 내가 학원에서 가르쳤던 제자 세대다. 그렇기에 현실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이 너무 답답했던 탓일까, 나 역시 그 순간 만큼은 선생님이 된 제자들을 대신해 매를 드는 듯한 응징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이다 판타지에서 깨어나 환한 햇빛과 마주한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 파문과 문화 개방 바람을 타고 국내 언론과 미디어마저 연일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2000년 겨울에 본 일본 영화 이었다.
학급 붕괴와 소년 범죄에 공포를 느낀 기성세대가 반항하는 청소년들을 섬에 가두고 서로 죽이게 만드는 'BR법(신세기 교육개혁법)'.
이 법에 따라 국가가 아이들을 사지로 모는 극단적인 설정은, 26년 전 그 겨울의 나를 비롯한 한국 관객들에게는 일본 특유의 세기말적 판타지에 불과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정서가 그래도 남아 있던 시절이기에, 영화 속에서 등교를 거부하던 제자가 교정을 나서던 담임 선생님을 칼로 찔러 쓰러뜨리는 장면, 스승의 권위가 피 흘리며 바닥에 내팽개쳐지던 모습은 그저 크리스마스이브에 마주한 '먼 나라의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26년이 흐른 지금, 그 황당했던 디스토피아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무분별한 악성 민원에 내몰린 교사들이 세상을 떠난 비극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사이다 응징
법과 제도가 교실의 무질서를 방치한다는 무력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면서,
대중은 드라마 이 선보인 거침없는 사이다 응징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설정상 이 작품 속 '교권 보호국'의 응징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제재가 아니라 국가가 공인한 '공적 제재'다.
작품을 보는 이들은 대부분 '매운맛' 응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26년 전 스크린 속에서 보았던,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공포와 분노가 이제는 현실의 대한민국 교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고, 나 역시 그 무력감과 분노에 동조했기에 10부작을 정주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학교 폭력이나 일진이 없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어쩌면 물리적인 폭력의 강도는 과거가 더 거칠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더 큰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는,
폭력이 일어나는 양상이 구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학교 폭력은 학교나 등하굣길 같은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 묶여 있었고, 종례 후 집에 돌아가 현관문을 잠그면 최소한의 '시간적 단절'과 도피처가 있었다.
무엇보다 교실 안에는 가해자들조차 감히 넘을 수 없었던 교사라는 통제권자가 존재했다.
아무리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며 기세를 올리던 일진이라도, 담임 선생님이나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걸리는 것만큼은 두려워했다.
교사의 눈을 피해 숨어서 악행을 저지를지언정, 그 권위 자체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었다.
거친 시대였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도록 통제할 '어른'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통제력을 잃은 교실이 가해자들에게 일종의 '치외법권'이 되어버렸다.
교사의 권위가 무력화된 그 공백을 타고, 학교 폭력의 형태는 걷잡을 수 없이 잔인해졌다. 이제 폭력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24시간 내내 피해자의 영혼을 갉아먹는 디지털 지옥으로 진화했다.
청소년 범죄 역시 불법 사이버 도박, 고리사채, 약물 유통 등 성인 조직범죄의 구조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다.
문제는 이토록 커진 폭력의 사슬 앞에서, 정작 학교와 공동체는 아무런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해줄 어른이 없다는 절망감 속에 갇힌 피해자도, 정의감 대신 비겁함을 먼저 배우고 무력감에 갇힌 아이들도, 결국 그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다.
'상식의 보루'로서의 어른
결국 26년 전의 과 지금의 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기성세대가 올바른 가치관과 통제력을 잃었을 때, 공동체는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가?'
드라마 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화진의 힘에 짓눌린 누군가 절망과 분노를 섞어 묻는다.
"네가 뭐야, 예수야 부처야?"
구원자라도 되느냐는 그 냉소적인 질문에 나화진은 송곳 같은 한마디를 꽂아 넣는다.
"어른이야."
이 대사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밤새 화면을 지켜본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이 박히는 한마디다.
가해자들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나화진의 모습에 우리가 환호했던 이유는,
그가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여서가 아니다.
붕괴된 교실 속에서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옳고 그름의 경계'를 그어주는 어른의 부재에 우리가 그만큼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 교실이 무법 지대가 되었기에,
대중은 결국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힘의 지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응징이 주는 쾌감은 잠시일 뿐이다.
이렇듯 힘으로 누르는 법만 가르치는 '참교육'이라는 이름의 판타지에만 머문다면, 그 시스템이 타락하여 교육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강한 힘이 약자를 지배한다'라는 생존 논리만 남게 될 것이다.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될 미래는, 결국 아이들을 거친 서바이벌의 전장으로 내몰았던 26년 전 그 의 비극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를 든 영웅이 아니다.
억압이나 방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교실 안에서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세우고, 죄에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상식과 논리를 몸소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어른들의 연대다.
매운맛 응징이 주는 짜릿한 쾌감 뒤에 숨은 공동체의 무력함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아이들 앞에 당당히 "어른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기성세대의 마땅한 책임'을 고민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기사의 시각적 효과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작품의 스틸컷이 들어가면 좋겠으나, 시민기자 개인 차원에서 저작권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이미지 없이 본문만 송출합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4139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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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20:56[동그라미 만평] 오세훈의 마이웨이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홍순구 시민기자
입력 2026.06.14
[굿모닝충청 홍순구 시민기자]
진정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정쟁의 선봉에 서기 전에 무너진 시민의 신뢰부터 바로 세우는 것이 순서다.
선거의 승리는 참 무섭다.
사상 첫 서울시장 5선이라는 대기록을 쓴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기간 내내 서울시민의 불안을 자극했던 ‘GTX-A 삼성역’ 철근 부실시공 논란을 두고 이를 제기한 민주당에 ‘무리한 정치 공세’라며 역공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향한 날 선 비판과 더불어, 연일 대여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 차기 보수의 대권 주자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참으로 ‘염치’ 없는 촌극이 아닐 수 없다.
‘GTX-A 삼성역’은 단순한 정치적 쟁점이 아니다.
수많은 시민이 매일 이용해야 할 교통의 대동맥이자,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철근 배근 문제로 점철된 부실시공 의혹은 ‘정치 공세’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기에 민주당 정원오 후보 또한 선거 유세 중 시민들의 불안을 고려해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던 것인데, 이제 와서 이를 정치적 이슈로 쟁점화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진정으로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행정가라면, 재선거의 유불리를 따지거나 상대 당을 탓하기에 앞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철저한 재시공을 약속하고 실행하는 것이 마땅한 우선순위다.
0.7%라는 근소한 차이로 집권했다가 거센 민심의 역풍 속에 파국을 맞이한 ‘내란 수괴’ 윤석열의 과오를 전혀 반면교사 삼지 못한 듯 하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거둔 1.15%의 승리는 압도적 지지라기보다는 시민들이 보낸 경고와 마지막 기회가 뒤섞인 숫자다.
그럼에도 책임 회피와 상대 탓으로 일관하며 ‘피의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태도는,
사태의 본질을 지나치게 아전인수 격으로 호도하는 듯 보인다.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는 연일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민선 5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걸맞은 책임을 보이겠다면 삼성역 부실공사 ‘재시공’부터 결단해야 마땅하다.
진정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정쟁의 선봉에 서기 전에 무너진 시민의 신뢰부터 바로 세우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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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00:24"출근길 공개 망신이 안전대책인가"…한화오션 '노동자 체벌' 논란
조선하청지회 "안전규정 위반 이유로 하청노동자 줄세워…인권침해"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26-06-12
한화오션이 안전규정 위반을 이유로 하청노동자들을 출근길에 줄 세우는 방식의 '체벌식 안전관리'를 하는 모습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한화오션이 안전규정 위반을 이유로 하청노동자들을 출근길에 줄 세우는 방식의 '체벌식 안전관리'를 시행했다며 노동자 인권침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노동자 통제와 징계 중심의 안전대책으로는 산업재해를 막을 수 없다며 근본적인 안전시스템 개선을 촉구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12일 성명을 내고 "노동자 체벌이 안전대책이 될 수 없다"며 "한화오션은 인권을 침해하는 하청노동자 체벌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11일과 12일 오전, 한화오션 서문식당 옆 출퇴근 길목에 A업체 물량팀 노동자 10여 명이 오전 7시부터 줄지어 서 있었다.
노조는 해당 물량팀 일부 노동자가 안전고리를 체결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적발됐고, 이에 대한 제재로 출근 시간 전부터 많은 노동자가 오가는 장소에 세워두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출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해당 노동자들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체벌이자 노동자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또 "일부 노동자의 안전규정 위반을 이유로 같은 물량팀 전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재해 책임은 시스템 아닌 노동자에게 전가"
노조는 한화오션이 최근 발생한 산업재해 이후에도 근본적인 안전대책 대신 노동자 통제와 징계 강화에 치중해 왔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올해 발생한 크레인 관련 사고와 과거 LPG 선박 내부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등을 언급하며 "회사 경영진이 안전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의 안전대책을 시행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조합은 노동자 통제 강화 위주의 안전대책으로는 재해를 막을 수 없다고 거듭 비판했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체벌한다고 안전해지지 않는다"
노조는 이번 조치를 과거 학교에서 학생을 복도에 세워 수치심을 주던 체벌에 비유하며 "오늘날 학교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정서적 학대와 인격권 침해로 금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를 통제한다고 현장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며, 하물며 노동자를 체벌한다고 결코 안전해지지 않는다"며 "안전규정을 이유로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하청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은 인권을 침해하는 하청노동자 체벌을 즉각 중단하고, 노동자 통제와 페널티 중심의 안전대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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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6-14 00:21올림픽공원에 윤석열이 나타나 독을 풀었다
[박세열 칼럼] 정부·여당은 선관위 개혁의 주도권을 쥐어야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6.06.13.
110석 의석을 가진 국민의힘의 장동혁 대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믿기 어려운 일도 발생했다. 인천광역시장 선거 송도1동과 송도2동 관내사전투표에서, 유정복 후보와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전히 일치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투표소 2곳에서 유정복 후보와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전히 일치할 확률은 5억9000만 분의 1"이라고 말했다.
흔한 통계의 착시를 제1야당 대표가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그 지적 수준이 믿기 어렵다.
만약 단 두 개의 투표소만 존재한다면 그 두 개의 투표소에서 같은 득표율 수치가 나온다는 건 확률적으로 엄청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4460만 명이, 전국 1만4200개 투표소에서 7700명의 후보자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경쟁하는 두 유력 정당 후보의 지지율 차이 폭은 5~10% 수준의 범주에 불과하다.
비슷한 인구수로 묶인 투표 단위에서, 비슷한 득표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부 같은 숫자가 나올 경우는 확률적으로 더 커진다.
역대 선거에서도 동일 득표수가 나온 사례들이 수십곳이다.
이를테면 사전투표가 없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과 정동영을 찍은 득표수가 동일한 투표소가 수십곳 나왔다.
무엇보다, 왜 부정선거를 획책하기 위해 랜덤 투표소 득표 수를 정확히 의도적으로 맞추는 짓을 하겠는가.
그리고 누구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인가.
한국판 '프리메이슨'이라도 존재한다는 건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오류가 뻔히 보이는데, 반사회 세력이 재생산하는 음모론을 제도권 정당 대표가 덥석 문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원래 발단은 서울 송파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실제 투표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생겼다.
참정권 침해 이슈는 중대한 문제다.
선관위가 생긴 이래 이런 저런 부정 투표 의혹들은 끊이지 않았으나, 투표 용지가 부족해 발생한 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선관위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윤어게인'이 발빠르게 나섰다.
서울 송파 투표소 등 수십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고, 혼란이 이어지자 '윤어게인' 세력은 이걸 '부정선거' 프레이밍을 강화할 기회로 여겼다.
송파 올림픽공원으로 향해 시위대에 스며들어 '부정선거' 구호를 섞어 넣었다.
윤어게인 세력에 대한 사회적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불법 내란을 획책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꿈꿨던 윤석열의 복권을 지지하는 '윤어게인'은 정치 세력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적 우파'와 구별되는 이들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정립한다.
즉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선관위), 사법부(서부지법), 공권력(중국 경찰), 언론 등이 이들의 타깃이다.
반공 기독교 근본주의로 귀의한 윤석열은 옥중에서 이 '윤어게인 세력'들을 "믿음의 형제들"이라고 표현하며 "늘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은 성경의 이사야를 인용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메시아를 맞이하는 희망을 담은 내용으로 혁명이 임박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참으로 가소롭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유권자의 권리로서 '재선거'를 요구하고 '선관위 책임'을 규탄하던 시위의 흐름에 난입한 이들은 "투표함이 바꿔치기 됐다", "모종의 세력(북한, 중국,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이재명 세력 등)이 개입해 개표 결과를 조작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유포하며 체육관에 들어가려는 국가대표 주니어 여성 핸드볼 선수들마저 '프락치'로 의심한다.
야당 대표의 모친은 갑자기 '중국인 화교'가 되었다.
투표권 침해에 분노해 거리로 나온 2030 청년들의 에너지를 '윤어게인', '부정선거론'으로 전유한다.
윤석열의 망상적 '부정선거론'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행정적 오류를 정략적 음모론으로 확대해 선거 제도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그리고 진보, 보수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공격한다.
이런 류의 음모론은 보통 선거에서 패배한 지지층이 그 결과에 불복하면서 표출하는데, '윤어게인' 세력은 선거에 승리한 '오세훈 세력'(국민의힘 보수파)마저 적으로 돌리는 행태를 보인다.
승패와 상관없이 민주주의 시스템에 '독'을 풀어넣음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선관위 개혁이나, 공정한 사후 처리가 아니다.
'탄핵 불복 및 윤석열 명예회복'이라는 반사회적 목표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분노를 종속시키려 하는 데 있다.
이들의 혐오감과 피로감 유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회 혼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윤어게인'은 정치 세력이 아니라 반사회 세력으로 분류돼야 마땅하다.
비단 투표용지 사태 뿐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거나, 시스템 오류로 생긴 균열을 찾아다니며 '독약'을 푼다.
가장 큰 문제는 선관위다.
선거 사무 행정의 공백이나 시스템이 망가진 것보다 더 문제는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에게 빌미를 던져준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윤어게인'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제도권 정치인들이 주도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집권 여당과 정부는 이 사태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선관위를 해체하는 수준의 개혁의 주도권을 강하게 잡아 나가야 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6061208310236798&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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