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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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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dbred

    @tradb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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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6-06-08 19:44
    [교수논단] 대학 내 비정규직 교수들에 대한 차별이 도를 넘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목원대 박철웅
    입력 2026.06.08


    [굿모닝충청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목원대 박철웅]
    우리나라에서 ‘비정년트랙 교수제도’가 도입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질서에 맞추어 사용자를 위한 소위 ‘노동의 유연성’을 장려하면서부터이다.

    즉 정년 교수와 마찬가지의 일을 하고 교육부의 교원 확보율에도 들어가지만, 처우와 계약기간을 사용자 맘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대학 내의 비정규직 교수라고 하면, 비정규교수(강사)와 비정년트랙(강의전담, 연구전담, 산학협력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비정년트랙교원은 초기에는 그 비율이 정년트랙교수의 삼분일 정도가 대학 평균이었으나, 계속하여 늘어나서 그 수가 절반에 육박하는 학교들이 생기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순서를 따지자면, 비정규교수부터 논하여야 마땅하지만,
    같은 일을 하고도 차별을 당하는 비정년트랙교수의 사연이 덜 알려진 측면이 있어서 이를 먼저 다루고자 한다.

    현재 비정년트랙의 연봉은 정년트랙의 평균 40~50퍼센트 정도이고,
    그나마 상여금 등 각종 수당에서 제외되거나 차등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도 심각하지만,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정년트랙 교수들에 의한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다.

    정년트랙 교수가 학과장이나 보직교수로 사용자를 대리하는 대학의 구조의 특성상
    이러한 사례는 수업권 침해, 의사결정 배제, 인격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광범히 하게 퍼져있다.

    정년트랙 교수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당했던 관행을 너무나 당연하게 비정년트랙 교수와 비정규교수(강사)에게 돌려주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아래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교수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교육권’과 ‘수업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교수회의, 학과 회의, 총장 선거, 교수평의회, 교수협의회 등에서 배제되거나 의결권을 갖지 못한다.

    정년 교수들과 똑같은 책임은 강요당하지만,
    기본 권리가 배제되는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차별을 당하고 있는 현황이다.

    그런데도 관리할 책임이 있는 대학 본부는 ‘학과(장)의 자율’이라는 명목으로 기계적 중립 지키고 있다.

    ‘을’이 갑질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관리자의 중립은 결국 ‘갑’의 입장을 거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는 보직교수가 정년트랙교수로써 만약 ‘을’인 비정년트랙 교수 편을 들었다가는 정년 교수 카르텔에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기인한다.

    교육부는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만든 데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된 차별 실태를 조사한 적조차 없다.

    오직 ‘서울대 10(3)개 만들기’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구조조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요한 대학평가의 기준이 실적 위주의 정량적 평가로만 구성 되어있다.

    반대로 건강한 대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ESG 좋은 경영’등이 주요 평가 기준이어야 하고, 이 가운데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같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준수 여부가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다.


    필자는 현재 비정년트랙 교수들이 겪고 있는 차별이 단순히 임금차별을 넘어서 기본 노동권과 인격권 침해임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수업을 바꾸고, 과목을 폐지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누군가의 자존감을 박탈하고 당장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학교 내에 이러한 ‘차별’을 목도하고 자란 청년세대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떤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는 자문을 해보면, 통탄의 심정을 금할 수 없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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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8 19:35
    [동그라미 만평] 모두가 극단주의의 무가치함과 싸워야한다.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홍순구 시민기자
    입력 2026.06.08

    [굿모닝충청 홍순구 시민기자]

    오만한 확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을 부정하며, 인류 보편의 인권을 위협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오늘날 정치 지형에서 극우와 극좌로 대변되는 극단적 편향은,
    사회를 개선하는 동력이기는커녕 공동체를 갉아먹는 독소가 되었다.

    평등과 계급 타파라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 극좌의 길을 걸었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시대를 현대의 관점에서 돌아보자.
    그들이 구축하고자 했던 사회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가 엄중한 단죄를 내렸다.

    그럼에도 오늘날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좌파' 혹은 '좌빨'이라는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행태가 과연 합리적인가.

    과거의 과오를 현재의 정치적 상대에게 덧씌우는 낙인찍기는 본질적인 토론을 거부하는 비겁한 방어 기제에 불과하다.


    질서와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극우의 광기를 분출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사례 역시 본질은 같다.

    오늘날 자유를 외치면서도,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권리를 구속하려 드는 이른바 '극우 선동꾼'들의 행태는 역사의 교훈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그 방식은 가장 반민주적인 폭압을 선택하는 기만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와 폭력은 문명의 진보와 가장 거리가 먼 원시적 반응이다.
    안타깝게도 이 원시적 전염성은 현대화된 디지털 환경을 악용하여 더욱 강력하게 증폭되고 있다.

    극단주의가 위험한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믿는 가치가 절대적이므로, 이를 방해하는 모든 개인적 권리나 다양성은 희생될 수 있다"는 독선에 있다.

    이 오만한 확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을 부정하며,
    인류 보편의 인권을 위협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오직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적대감에 사로잡혀 상대의 굴복만을 요구하는 파괴적인 에너지로 변질되었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무도한 정치 세력의 횡포와 내란 사태를 겪으며,
    극단적 편향이 지닌 무가치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제는 '누가 더 옳은가'를 가리는 소모적 투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어렵게 지켜낸 우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야 할 때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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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8 01:16
    ((꼭 한번은 읽어 봤으면 하는 좋은 글))
    [김우재의 플라이룸 ](79) 논문 1편에 1700만원
    수정 2026.06.05
    김우재 낯선 과학자

    AI로 생성한 학술 생태계의 위기 그래픽. 김우재 제공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몸길이 2~3㎜짜리 파리 한마리에서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알아내는 데 몇해가 걸리기도 한다.

    그 지루하고 외로운 노동 끝에 겨우 논문 1편이 나오고, 그것은 다른 연구자의 실험 위에 벽돌처럼 한장 얹힌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고 했을 때, 그 거인은 앞서간 동료들이 정직하게 쌓아올린 벽돌의 더미였다.
    과학이란 본래 그렇게 한장 한장 더디게 쌓아 올리는 탑이었다.


    오픈액세스-청구서의 수신인만 바뀐 가짜 혁명

    그런데 지난 2월, 그 어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 나왔다.
    세계 최대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같은 일류 오픈액세스 저널 30여곳에 더는 논문 게재료를 대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 중국 학자들이 쏟아낸 오픈액세스 논문은 전 세계의 3분의 1, 그 게재료로만 1조원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가장 권위 있다는 그 저널들에 등을 돌린 이유는 단 하나, ‘가성비’였다.

    부실하거나 가짜인 저널이어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과학자들은 영향력지수의 노예로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오픈 액세스 게재료의 노예가 됐다.

    오픈액세스는 지식해방의 혁명으로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부다페스트와 베를린에 모인 학자들은,
    세금으로 만든 지식을 왜 돈 낸 사람만 읽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지극히 옳은 분노였다.
    누구나 공짜로 읽을 수 있게 하자.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착취의 구조가 아니라 청구서의 수신인뿐이다.

    예전엔 논문을 ‘읽는 자’가 구독료를 냈다면, 이제는 ‘쓰는 자’가 게재료를 낸다.

    ‘네이처’에 논문 1편을 싣는 값이 1700만원,
    신참 연구원 반년치 월급이다.

    전 세계가 이 게재료로 쓴 돈은 4년새 1조2000억원에서 3조4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불었다.

    그사이 엘스비어의 모회사는 38%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거뒀다.
    구글도, 애플도 넘어서는 숫자다.
    인류의 지식을 다루는 일이 스마트폰이나 검색 광고를 파는 일보다 남는 장사가 된 것이다.

    따져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연구비는 국민 세금이고, 논문은 과학자가 쓴다.
    그 논문을 심사하는 일조차 과학자가 공짜로 해준다.

    우리가 동료의 원고를 밤새 읽어 학문의 품질을 떠받치는 동안,
    그 노동의 열매는 고스란히 출판사 주주의 배당으로 흘러간다.

    출판사가 하는 일이라곤 PDF에 자기 로고를 박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 PDF를 ‘모두에게 공개’하겠다며 또 한 번 돈을 갖다 바친다.

    출판사가 돈을 더 버는 길은 분명하다.
    논문을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이다.
    많이 찍어낼수록 1편에 들이는 심사의 밀도는 옅어진다.

    지식의 민주화는 어느새 지불 능력의 위계화로, 다시 물량의 경제로 둔갑해버렸다.


    현장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매일 받아보는 e메일이 있다.
    “존경하는 박사님, 귀하의 탁월한 업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학술지가 보내온 낯간지러운 초대장이다.

    약간의 게재료만 내면 며칠 만에 논문을 실어주겠다는 이런 저널을 우리는
    ‘약탈적 학술지’라 부른다.
    심사라는 학문의 최소한을 건너뛰고 돈만 챙기는 가짜 저널들이다.

    2010년 미국의 도서관 사서 제프리 빌이 이 말을 만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명단은 출판사 1000곳 가까이 불어났고, 학자들은 그것을 경전처럼 떠받들었다.

    한 추산으로 약탈적 저널의 논문은 2010년 5만여편에서 2014년 42만편으로 폭증했고, 그 저자의 3분의 2가 아시아·아프리카 출신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입에 잘 올리지 않는 진실은 따로 있다.
    ‘약탈적’이라는 낙인은 거의 언제나 변방을 향한다는 사실이다.

    1700만원을 받는 ‘네이처’는 ‘명문’이고,
    몇백달러를 받는 나이지리아의 작은 저널은 ‘약탈자’다.

    그 경계선은 학문의 질이 아니라 권력의 지도를 따라 그어진다.

    어떤 연구자들은 ‘약탈적’이라는 말 자체가 가난하지만 정직한 제3세계 저널과 진짜 사기꾼을 한 솥에 뭉뚱그리는 잘못된 이름이라 비판한다.
    또 어떤 이는 이 저널이 차라리 ‘패러디’에 가깝다고 본다.
    정상이라는 출판 체제 역시 지식을 상품으로 팔고 중심부만 떠받든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들이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탈자를 손가락질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그들은 병을 만든 자가 아니라 병의 증상일 뿐이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약탈자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많은 연구자를 약탈자의 품으로 떠미는가’이다.


    논문이 화폐가 될 때

    답은 단순하다.
    논문이 진리를 적는 그릇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화폐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영향력지수란 한 사기업이 만들어 파는 상품일 뿐인데, 과학자들은 그 숫자를 향해 내달리는 경주마가 돼버렸다.

    ‘셀’, ‘네이처’, ‘사이언스’에 논문 1편 실으면 장원급제라도 한 듯 추앙받고,
    그러지 못하면 연구비도 자리도 위태롭다.

    그 천박함의 끝에서 우리는 ‘학술용병’을 본다.
    강의실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외국인 교수가 6년간 논문 496편을 어느 대학 이름으로 찍어내자, 그 대학의 순위가 올랐다.

    숫자가 목적이 되는 순간, 약탈적 저널도 거기 빌붙어 자라는 곰팡이가 된다.

    그렇다면 길은 없는가.
    나는 몇해 전 태국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들은 생물학을 서구의 논문 게임이 아니라 자국의 식량과 농업이라는 절박한 문제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짜 대안은 더 정교한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각자가 제 발밑의 문제를 푸는 주체적인 과학 생태계다.

    사이허브도, 모든 논문을 즉시 공개하자는 국제협약도 있지만, 평가제도와 출판 과점의 사슬을 끊지 않는 한 다 헛일이 될 뿐이다.
    한 연구자의 말처럼 “딱 걸렸으니 값 내리겠다”며 머리 숙일 출판사는 없다.


    그래도 중국과학원의 선언은,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해온 진실을 처음으로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과학이 지식에 가격표를 달았고, 그 가격표가 이제 과학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진실을 이제 우리 모두 회피할 수 없다.

    초파리로 노벨상을 받은 허먼 멀러가 핵실험이 유전자에 남길 상처를 알리기 위해 평생 광장에 섰던 것처럼, 보통 과학자 역시 더는 무균실 안에 숨어 있을 수 없다.


    나는 다시 내 초파리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또한 생활형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몇해에 걸쳐 벽돌 한장을 빚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그 벽돌이 정직한 탑이 될지, 남의 금고를 채우는 돌멩이가 될지는 실험대가 아니라 우리가 광장에서 던지는 질문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0514560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portal_news&utm_campaign=newsstand_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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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8 00:29
    [이삼남 이야기] 그들은 왜 ‘아직도’ 조롱을 멈추지 못하는가?
    유기환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학생
    발행 2026-06-07


    스타벅스의 광주 비하 마케팅은 단순한 실수였을까?
    누군가는 그것을 기획했고, 누군가는 승인했으며, 누군가는 이상함을 느끼고도 묵인했을 것이다.

    ‘탱크데이’, ‘책상을 탁’ 같은 문구가 기업의 공식 행사 문구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왜 ‘아직도’ 일베식 놀이문화와 조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 또래 남성들을 떠올렸다.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실무를 집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30대,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세대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구체적이 된다.
    왜 서른이 넘어서도 어떤 남성들은 여전히 조롱의 문화를 재미라고 믿는가.

    남중·남고를 다니며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쟤는 또라이야.”
    이상하게도 이 말은 욕이면서 동시에 칭찬이었다.

    선생님 몰래 장난을 치고, 담을 넘어 야자를 째고, 뜬금없고 독한 말을 던지는 사람은 또래 남성 집단 안에서 묘한 인정을 받았다.

    문제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짜릿했다.
    사회가 하지 말라는 것을 일부러 하는 일이 내집단 안에서는 용기처럼, 재치처럼, 일종의 매력처럼 승인되었다.

    성인이 된다고 이 감각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스무 살이던 시절만 해도 술 잘 먹고 담배 잘 피우는 형이 멋있는 형으로 여겨졌다.
    주량을 부풀리고, 일부러 독하게 섞어 마시고, 이기지 못할 술을 들이켜다 사고를 치는 것조차 통과의례처럼 승인되었다.
    나 역시 그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문제는 그 행동이 내집단 바깥으로 나올 때 발생한다.
    취직한 선배들이 더 이상 과거처럼 술 먹고 사고 치면서 나랑 놀아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웃어넘겨 주지 않는 사람들,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 절차를 밟고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재미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사람은 자라면서 내집단도 바뀐다.
    학교 친구, 대학 선후배, 직장 동료, 가족과 이웃으로 관계가 넓어지며 무엇이 멋있고 무엇이 부끄러운지도 달라진다.

    문제는 그 자리를 인터넷 커뮤니티가 대신할 때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성장한다고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하는 농담과 말투를 오프라인에서 꺼내는 것은 외면받기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일베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의 언어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흘러나왔고,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는 어떤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자 주요한 내집단이 되었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 게시물 ⓒ자료사진


    이 지점에서 스타벅스 논란을 다시 보자.
    ‘탱크데이’나 ‘책상을 탁’ 같은 문구가 아무 검토 없이 결정되었을까.
    누군가는 그것을 기획했고, 누군가는 승인했으며, 누군가는 이상함을 느끼고도 묵인했을 것이다.

    어떻게 자기 직장에서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 가능했는가.

    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을 ‘재미’라고 승인해주는 내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고통을 조롱하고, 피해자를 희화화하고, 민주화운동을 비웃는 감각을 ‘센 드립’이나 ‘용기’로 치켜세우는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 내집단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책임의 문제가 되고, 사회에서는 윤리의 문제가 되며, 피해자와 시민들에게는 모욕의 문제가 된다.

    그때서야 당사자는 자신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상식에 얼마나 깊이 절여져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비슷한 시기 래퍼 리치이기의 가사가 논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어떤 내집단 안에서 그는 감히 남들이 못 하는 말을 뱉는 사람, 이른바 ‘야마 있는’ 래퍼로 승인된다.

    그러나 그 언어가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예술적 용기가 아니라 폭력적 조롱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앞으로 더 자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말에 보상을 준다.

    차분한 토론보다 독한 조롱이 더 많은 반응을 얻고, 신중한 말보다 선을 넘는 말이 더 빨리 퍼진다. 그런 공간에 오래 머물수록 사람은 커뮤니티의 상식과 사회의 상식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해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단호한 사회적 대응이다.
    역사적 고통을 조롱하고 차별과 혐오를 놀이로 소비하는 행위가 별다른 책임 없이 넘어갈 때,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그것을 ‘밖에서도 통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다른 하나는 더 다양한 오프라인 공동체다.
    사람이 여러 공동체에 속할수록 한 집단에서 멋있어 보이는 행동이 다른 집단에서는 부끄러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조롱은 무지의 표현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 조롱은 알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고,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태도이며, 내집단의 인정을 사회적 상식보다 앞세우는 방식이다.

    그동안 이들의 조롱은 철없는 장난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물었다.

    어떻게 그들을 포용할 것인가.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그들이 시간이 지나고 철이 들면 이런 장난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류 세대는 더 이상 철없는 청소년이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30대가 되었고, 직장에서 의사결정을 하며, 사회의 공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위치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왜 그들은 아직도 조롱을 멈추지 못하는가.
    그리고 사회는 어디까지 그것을 장난으로 봐줄 것인가.

    역사적 고통을 비웃는 일, 피해자를 희화화하는 일, 차별과 혐오를 재치로 포장하는 일은 더 이상 ‘센 드립’도 ‘야마’도 아니다.
    그것은 책임져야 할 말이고, 제재되어야 할 행동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포용만이 아니다.
    경계선이다.
    어떤 말은 농담이 아니라 폭력이며, 어떤 조롱은 취향이 아니라 혐오라는 사실을 사회가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https://vop.co.kr/A000016948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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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7 21:20
    베를린 재선거 이유는 '잘못된 투표용지' 배부가 근본 원인
    국민의힘·보수 언론이 '재선거 사유'로 든 베를린 사례, 그 실체는?
    조하준 기자
    입력 2026.06.07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 투표일이었던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역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미숙한 행정으로 인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 언론들이 독일 베를린의 사례를 들며 '재선거'을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실체는 그들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발했던 지난 3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서울 지역 개표 중단과 선거 연기를 요구하며 "지난해 독일 베를린 지선에서 독일 헌법재판소가 선거 당국의 총체적 부실 운영이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고 선거 결과를 왜곡했다는 사유로 선거 전면 무효를 선언하고 재투표를 명령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또한 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투표용지 부족이 유독, 국민의힘 강세 지역이었던 곳 또한 가벼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출구 조사 발표 이후에 투표를 계속 한 것만으로도, 헌법이 규정한 자유선거의 원칙은 무너졌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전면 재선거’를 판결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며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비단 국민의힘 뿐 아니라 조선일보 또한 제목으로 베를린 사례를 다루면서 "이번 서울시 선거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 이 보도 이후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조선비즈, 뉴데일리, 중앙일보 등 다수 매체가 서울의 투표용지 부족사태와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비교·분석 없이 베를린 사례를 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이 주장하고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들이 확대 재생산한 베를린의 재선거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2021년 당시 베를린에선 주의회·구의회·연방의회·주민투표 등 4가지 선거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 중 주의회·구의회 선거는 2022년 11월 베를린 주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연방의회 일부 투표구 선거는 2023년 12월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재선거가 진행됐다.

    재선거 진행을 결정한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19 펜데믹 중 여러 선거가 한꺼번에 시행된 것에 이어 그날 대규모 마라톤까지 겹쳐 혼잡한 상황에서 선거 준비와 과정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의석 배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베를린 주헌법재판소는 주선관위가 1인당 투표 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계산해 한 투표소당 유권자의 26% 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특히 선거 준비 과정에서 특정 선거구 간 투표용지가 뒤바뀐 일이 있었음에도 문제 사례를 파악하지 않아 12개 선거구 중 최소 5개 선거구에서 잘못된 투표용지를 배부했고, 일부 투표소에선 선거규칙에 위배되는 투표용지 사본을 제작해 무효표를 만들었던 점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주의회 의석 가운데 약 60%(147석 중 88석)가 이런 선거상 하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산했다.
    결국 베를린에서는 2023년 2월 12일 주의회 및 구의회 선거가 다시 치러졌다.
    재선거 결과 기독민주당이 제1당에 올랐고, 이후 베를린 시정 운영 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판결한 건은 2021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와 관련해 베를린 내 2256개 투표구 중 455개 투표구에서 재투표를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즉, 베를린 지방선거 전체를 전면 무효로 한 결정이 아니라 연방의회 선거 중 베를린 일부 지역에 대한 부분 재투표 명령이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투표 대기시간과 투표 시간의 연장 자체만으로는 선거상 하자라 볼 수 없지만 의석 배분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단순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불과했던 국내 사안과 등치할 수 없는 사안인 셈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발생한 사건은
    투표용지 부족에 잘못된 투표용지 배분, 선거규칙에 위배되는 투표용지 사본 제작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건이었다.

    때문에 베를린의 사례를 근거로 '전면 재선거'를 요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국민의힘 측에 불리한 결과로 작용했다는 증거도 없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주장과 보수 언론들의 무비판적 확대, 재생산으로 인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더욱 득세해 지금까지도 '재선거 요구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선관위가 선거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상응한 처벌도 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빌미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 동조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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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7 20:46
    [동그라미 만평] 사법 질서를 비웃는, 물 만난 부정선거론자들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홍순구 시민기자
    입력 2026.06.07

    [굿모닝충청 홍순구 시민기자]

    법과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법 집행만이 극단 세력의 음모론이라는 불씨를 잠재우고 민주적 질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선거관리위원희의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불필요한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선관위가 즉각적인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및 사법적 절차에 따른 책임 이행을 약속했음에도, 일부 정치권 인사들과 결탁한 극단적 세력들은 이 사태를 ‘물 만난 고기’처럼 활용하며 사태를 왜곡하고 증폭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이미 수차례 허위임이 증명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정당한 참정권 요구와 교묘히 뒤섞어 대중을 선동하기까지 하고 있다.

    특히 특정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선거관리위원회라는 독립 기관의 실수를 확대 해석함으로써, 이재명 정부를 향한 무분별한 공세를 이어가며 분열을 획책하는 모습은 도를 넘었다 보여진다.

    사회적 불안을 먹고 자라는 음모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위험한 독소다. 더욱이 이들의 노골적인 선동은 젊은 층, 이른바 ‘이대남’의 동조를 이끌어내어 사회적 소요를 키우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국민적 분노와 우려에는 공감하면서도 근거 없는 음모론과 폭력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경고했으나, 상황은 악화일로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이어 극우주의자 모스탄, 전한길 등 극우 인사들까지 대열에 합류하며 기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국가 기강을 뒤흔드는 무법적 행태에 ‘솜방망이 처벌’은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지난 서부법원 침탈 사건에서 목격했듯이, 공권력의 미온적인 대응은 결국 법치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사회적 혼란을 가속화하는 묵인으로 읽힐 수 있다.


    선관위가 실수의 과정을 소명하고 사과와 대책을 선언했음에도, 이를 시스템 파괴의 도구로 악용하는 세력에 대해 정부는 이제 더욱 단호하고 엄정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들에게 형식적인 경고나 요식행위는 통하지 않는다.

    오직 법과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법 집행만이
    극단 세력의 음모론이라는 불씨를 잠재우고 민주적 질서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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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6 20:30
    ((꼭 반드시 한번은 읽어 봐야만 하는 좋은 글))
    민주당 지도부는 답하라
    "왜 내란 의혹 핵심 인물들을 기소하지 못하게 방치했는가"
    "그 틈을 타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국민의힘이었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
    기사입력 2026/06/06


    -왜 내란 의혹 핵심 인물들을 기소하지 못하게 방치했는가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의 무능과 우유부단이 민주주의의 적들에게 다시 정치적 공간을 열어준 사건이다.
    우리는 먼저 민주당에 물어야 한다.


    왜 추경호는 아직 정치 일선에 서 있는가.
    왜 이진숙 김태규는 아직도 공적 책임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가.

    왜 한동훈은 아직 보수 재건의 얼굴처럼 소비되는가.
    왜 오세훈은 이명박과 함께 서울 한복판에서 손을 흔들 수 있는가.

    이들은 단순한 야당 정치인이 아니다.
    내란 사태와 헌정질서 파괴, 극우 정치의 확산, 검찰권력의 정치화, 언론 장악과 민주주의 후퇴의 과정에서 반드시 수사받고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들이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무엇을 했는가.

    시민들은 민주당에 절대 의석을 만들어주었다.
    그 의석은 안락한 의회 운영권이 아니라 내란 청산의 명령이었다.
    검찰개혁을 완수하라는 명령이었다.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라는 명령이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세력의 정치적 재기를 막으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그 명령을 집행하지 않았다.


    기소권 완전분리와 검찰개혁은 지체되었다.

    내란 숙주 정당에 대한 해산·해체 논의는 흐려졌다.
    대법원장 조희대와 문제 대법관들에 대한 국회 차원의 책임 추궁은 충분히 전개되지 못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재판은 지연되고 있는데,
    민주당은 그 지연을 뚫고 나갈 정치적·입법적 압박을 조직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무엇이 벌어졌는가.
    해체되어야 할 세력이 다시 선거 경쟁의 한 축이 되었다.
    책임져야 할 인물들이 후보가 되고 당선인이 되고 차기 권력의 얼굴이 되었다.

    민주주의 파괴 세력이 다시 “정상 정치세력”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이것은 민주당 지도부의 명백한 정치적 실패다.
    특히 공천은 참담했다.

    서울시장 정원오 공천은 시민적 검증과 시대적 상징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대구시장 김부겸 공천은 그의 피눈물 나는 투혼으로 적진에서 싸워나갔지만,
    정작 민주당 지도부는 지역주의와 정면 대결하고 있는 김부겸을 지원하는 중앙의 정치적 서사를 만들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의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평택을 선거에서는 애초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정치적 책임의 최소한이었다.
    그런데 내란 척결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함께 싸워온 진보진영에서는 이미 김재연 진보당 후보가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하고 깃발을 세웠다.
    그럼에도 조국 전 의원은 평택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검찰의 표적수사와 왜곡된 법리 적용, 선택적 증거 채택에 의한 표적 재판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조국 전 의원의 입장에서 국회 복귀는 민주주의 회복의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시민들 역시 그의 복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판단이었다.

    함께 내란에 맞서 싸워온 동지들이 이미 선택한 공간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조정 없이 조국 출마가 강행되면서, 선거는 민주주의 회복과 내란 청산이라는 본래의 의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오히려 진보진영 내부의 경쟁과 상호 비방이 부각되면서 시민들이 기대했던 개혁 의제는 실종되었고, 선거판은 다시 상처 주기와 분열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 틈을 타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은 국민의힘이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윤석열 캠프 출신이자 검사 출신, 보수정당 경력을 가진 김용남을 후보로 공천했다.
    물론 김용남이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평택을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김용남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결정은 민주당 지도부의 현실 인식 부재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였다.


    결국 평택을 공천은 민주당 지도부의 실패이자 정치적 패착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민들이 요구한 연대와 개혁의 상식을 외면했고,
    진보진영 내부의 조정 능력마저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스스로 승리할 수 있는 선거를 패배의 길로 몰아갔으며,
    해체와 쇄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국민의힘에 국회의원 의석 하나를 더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더 이상 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국민에게 “선거로 심판해 달라”고 말하기 전에, 민주당 자신이 먼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했어야 한다.

    검찰개혁을 완수했어야 한다.

    내란 책임자들을 수사와 기소의 법정 앞에 세우도록 압박했어야 한다.
    헌정질서 파괴 세력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켰어야 한다.
    국민의힘 해산·해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어야 한다.


    개혁은 느리면 실패한다.
    정의는 지연되면 조롱당한다.
    내란 청산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에게 시간을 주면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얼굴을 바꾸고, 다시 권력을 향해 돌아온다.
    역사는 이미 여러 번 그것을 보여주었다.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국민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반민주 세력의 뿌리를 제대로 도려내지 못했다.

    그 결과 부패한 정치세력은 반복해서 되살아났고,
    마침내 윤석열 정권과 내란 사태라는 참극에 이르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허한 국민통합이 아니다.
    헌정질서 파괴 세력에 대한 단호한 청산이다.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 분리다.
    사법 권력의 책임 추궁이다.

    극우 정치와 내란 옹호 세력의 제도적 퇴출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즉각 전면 쇄신해야 한다.


    첫째, 추경호, 이진숙, 한동훈, 오세훈, 김태규 등 내란 사태와 민주주의 파괴 과정에서 중대한 책임 의혹이 제기된 인물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왜 지연되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따져 물어라.

    둘째, 검찰 수사·기소권 완전분리 입법을 즉각 완수하라.

    셋째, 내란 숙주 정당인 국민의힘 해산·해체 문제를 헌법질서 차원에서 정면으로 제기하라.

    넷째, 조희대 대법원장과 문제 대법관들에 대한 국회 탄핵 및 사법개혁 논의를 즉각 본격화하라.

    다섯째, 시민이 납득할 수 없는 공천 실패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책임져라.


    민주당이 지금도 망설인다면 2028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는 다시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시민들은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
    이제 더 이상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내란 청산 없는 국민통합은 허구다.
    검찰개혁 없는 민주주의 회복은 기만이다.
    사법개혁 없는 헌정질서 회복은 불가능하다.
    책임정치 없는 거대 의석은 시민의 배신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민 뒤에 숨지 말라.
    국회 의석 뒤에 숨지 말라.
    지금 당장 개혁의 최전선에 서라.

    그것이 시민이 민주당에 의석을 준 이유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https://www.amn.kr/5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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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6 20:20
    이재명 대통령 "배신 단죄해야 정의로운 통합...친일 부당재산 환수"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숭고한 헌신 반드시 보답"
    "사리사욕으로 공동체 배반한 이들을 단죄하는 것 매우 중요한 책무"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 정상화하자 중동 파도...국난 앞에 한데 뭉쳐야"
    정현숙 이메일
    기사입력 2026/06/06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에 따른 보상과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에 대한 단죄를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충일인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제71회 추념식에서 "공동체를 지킨 분들을 예우하는 것과 더불어 사리사욕으로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을 단죄하는 것 역시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책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를 통해
    "헌신은 드높이고 배신은 단죄할 때 국가 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정의로운 통합도 가능하다"라며
    "지난 2일 공포된 '친일재산귀속법'을 통해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부당 축적한 재산을 조사·환수해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본보기를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그에 걸맞은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라며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 모두를 위한 숭고한 헌신에 반드시 보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모든 분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책임을 다하기 위해 추모의 마음을 다하는 날"이라며
    "그분들이 바친 '모든 내일' 위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선열들의 정신을 기리며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무"라며 "헌신에 대한 예우는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돌아봤다.

    이 대통령은 "모두를 위한 헌신이 외면받는다면 장차 또 다른 위기 앞에 어느 누가 공동체를 위해 나서겠나"라면서
    "예우와 보상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주권정부는 1년 전 현충일에 드린 약속을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유족의 보상 범위 확대를 위한 독립유공자법 개정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며 "참전유공자 배우자들에게 생계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착실히 이행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 참배 전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사각지대 없는 보훈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위탁 의료기관을 순차 확대하겠다는 약속 역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보훈병원이 없는 강원과 제주에도 준보훈병원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군 장병과 소방관, 경찰과 해경을 일일이 거론한 뒤
    "현재를 지키고 있는 '제복 입은 시민'들께도 마땅한 예우를 다해야 한다"면서
    "부족함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군 복무 중 부상당한 장병이 전역과 동시에 보훈 대상자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개선할 것"이라며 "처우를 세심히 살피고 부족한 점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선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 공동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마다 대한국민께선 힘을 모아 고난을 극복해 왔다"라고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날 대한민국은 또다시 위기의 파도를 넘고 있다"며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정상화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밀어닥친 중동전쟁의 높은 파도가 경제와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러나 언제나 국난 앞에 더 큰 '우리'로 한데 뭉치는 대한국민의 저력이 있어 어떤 위기도 능히 극복할 것"이라며
    "정부는 국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바라 마지않던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이 가득한 더불어 잘 사는 대동 세상,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올바로 기리고 숭고한 정신을 더욱 빛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추념식은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으며,
    지난해 9월 인천 옹진군 영흥도 내리 갯벌에 고립된 남성을 구조하다 순직한 고 이재석 경사와 올해 2월 육군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상근·장희성 준위의 유족들도 초청됐다.





    https://www.amn.kr/5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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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6 20:12
    [조하준의 직설] 부정선거 음모론 빌미 제공한 선관위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선동에 가담한 국민의힘
    조하준 기자
    입력 2026.06.06

    2박 3일 봉쇄 사태'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 대한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가 5일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개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지난 3일 있었던 9회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더욱 날뛰며 투표함을 투표소에 억류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서울시 개표는 선거 이틀 후인 5일에야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아울러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 등이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어떤 이유로든 설명되지도 않고 납득되지도 않는 사태다.

    안 그래도 아직도 극우 세력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고 있는 상황이고
    전직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조차 여기에 빠져 12.3 내란 사태를 일으켰다.

    그렇다면 선관위는 이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했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예견된 사태였을지도 모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조차 받지 않으며 비상임위원들의 임명절차가 완전히 따로 진행되고 그 중에서 누가 수장이 될지는 스스로 정하게 돼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조직 내 감시와 통제 세력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렇게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전혀 받지 않는 조직이니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처럼 썩을 수밖에 없으며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특히 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겸임하는 구조인 것도 문제다.

    사법개혁 과정에서 지켜봤듯이 그간 사법부는 국민들에게 '봉사'하기보다는 그 위에서 '군림'하려 들었다.


    노태악 위원장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도 빠질 수 없다.

    그는 본래 지난 3월 임기가 만료된 인물이었는데 조희대 대법원장이 후임으로 천대엽 대법관을 내정했다 거센 반발에 부딪혀 '선거의 안정적 관리' 등을 구실로 임기를 연장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진작에 떠났어야 할 인물이 조 대법원장 때문에 억지로 그 자리에 있었던 상황이다.

    또한 노 위원장은 "폐기되는 투표용지가 많아 부정선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음모론적 편견과 예산 절감이란 미명 하에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기존 60~70%에서 50%로 하향 조정하는 지침을 내렸고 끝내 이 사달이 벌어졌다.

    선관위를 헌법상 독립기구로 그 지위를 보장한 데는,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관리 업무를 집행함에 있어 타 정부기구의 간섭이나 입김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라는 헌법정신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 사실을 망각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의무 불이행과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선관위 스스로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더욱 활개치고 다니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왜곡된 신념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국민의힘이 패배한 선거마다 '부정선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왜 스스로 책잡힐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다시 이로 인해 나라가 사분오열될 판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이번 사태는 선관위의 중대한 실책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는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까지 끌어들여 공격을 퍼부으며 사안을 정쟁화하려 하고 있다.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감사원의 감사조차 안 받는 기관인데 이 대통령이 특정 지역만 콕 집어서 투표용지를 없애라고 지시라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당 내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장동혁 대표는 사건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를 방문, 진입하려 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투표함 억류 시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 까지 였다.

    또 나경원 의원은 이미 오세훈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음에도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날뛰게끔 선동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는 여야가 함께 합심해 국회에서 지금까지 외부의 어떤 견제도, 감시도 받지 않았던 선관위에 철퇴를 내리쳐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은근슬쩍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행태에 동조하며 사안을 정쟁화시키고 있다.

    선거 참패에 대한 당내 불만 해소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같은 행동은 설명되지 않는다.

    선관위의 실책을 두고 쓸데없이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할 생각 말고 여야가 함께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해 이번 사태에 대해 진상 규명에 나서고 아울러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나 입법에 전력을 다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답이다.

    선관위를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놔둔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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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6-06-05 23:21
    사리 분별 못하고 나댄 '여왕', 왕관은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탄핵의 과거'로 미래를 덮으려 했던 오만… 민심은 '마이너스 유산'을 거부했다
    용홍근(naul8888)
    26.06.05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6.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31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박씨 왼쪽이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오른쪽이 측근이자 국정농단 사건 당시 변호인이었던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소중한

    시대를 착각한 오만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통할 것이라 믿었던 구태의연한 맹신이었을까.
    자칭 타칭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 막판, 그야말로 전격 등판했다.

    선거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다는 해묵은 오판 속에 그는 강원, 부산, 울산, 진주, 충남, 대구, 창원 등 보수의 텃밭과 격전지를 가리지 않고 누볐다.
    도도하게 흐르는 민심의 경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거침없는 행보였다.

    차갑게 등 돌린 민심

    그러나 베일이 벗겨진 성적표는 처참하다 못해 잔인했다.
    그가 영향력을 과시하려 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심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대구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 보수층의 막판 결집을 자극해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전국적 판세에서는 단호한 거부를 당한 참패다.

    이번 선거 결과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인가?
    아니, 그는 애초에 다시 정치판에 호출될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는가.

    옛말에 패군지장 불가이언용(敗軍之將 不可以言勇)이라 했다.
    전쟁에 패한 장수는 용맹을 논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숙하고 성찰하는 것이 도리라는 뜻이다.

    하물며 박 전 대통령은 단순한 선거 패장이 아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되어 쫓겨나고 사법적 단죄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사면을 받았다고 해서 그에게 지운 역사적 책임과 과오까지 씻겨 나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었으나 결국 깊은 상처를 입어야 했던 국민을 향해 평생 자숙하며 숨죽여 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다.

    과거의 유령 대신 미래 선택

    그러나 그는 선거 막판, 보수 결집의 '치트키'라도 된 양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여당의 무리한 법안 발의 등 여권발 변수로 요동치던 선거판에 올라타, 특정 후보들의 손을 잡고 "내가 왔으니 표를 달라"는 식의 퇴행적 정치를 재현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김부겸 후보가 초반 선전에도 막판 보수 결집의 벽을 넘지 못한 배경에는 분명 박 전 대통령의 유세가 대구 보수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인 영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박근혜의 '정치적 부활'을 논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선거판을 20년 전 '묻지마 친박' 시절로 후퇴시키려는 오만한 도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거쳐 간 행적은 오히려 보수의 한계를 폭로하는 몰락 지도가 되었다.

    그가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했던 전통적 지지 기반마저도 이번엔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강원과 충남의 유권자들은 과거의 향수에 기대 표를 구걸하는 정치 구태에 냉정한 심판을 내렸고, 부산과 울산 역시 '과거의 유령' 대신 미래를 선택했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박근혜'라는 석 자에 흔들리는 맹목적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등판은 보수층을 결집하기는커녕, 오히려 "또다시 국정농단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의 위기감을 자극하며 거센 정권·과거 심판론에 불을 지폈을 뿐이다.

    전통적 지지 세력이 있는 경남과 대구를 제외한 사실상의 전멸, 박근혜 개인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 이제 '마이너스' 수준으로 파산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지표다.

    또한,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 역사상 최고 득표율(45.05%)을 기록한 김부겸의 선전은, 박 전 대통령의 안방에서조차 '과거로의 회귀'에 저항하는 민심이 절반에 육박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제 그만 부끄러움 알기를

    이번 지방선거는 '부패해도 유능하다'던 보수의 신화가 끝장난 선거이자,
    '박근혜가 움직이면 표가 나온다'던 해묵은 미신이 완전히 파기된 역사적 분기점이다.

    국민은 2014년 세월호 참사의 무능과 2016년 국정농단의 수치심을 결코 잊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냉혹한 투표로 되갚아 준 것이다.

    이제 '선거의 여왕'이라는 유통기한이 지난 왕관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패배를 보고도 느낀 점이 없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또 다른 죄악이다.

    두 번 다시 정치적 영향력을 획책하며 선거판을 흐리지 말라.
    사리 분별 못하고 나댄 끝이 무엇인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똑똑히 보여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 앞에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는 하나뿐이다.
    이제 그만 부끄러움을 알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예비역 공군 중령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40696&PAGE_CD=N0002&CMPT_CD=M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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