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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5 04:47한동훈이 채상병 특검법 발의하겠다는 진짜 이유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6/24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힘당 당 대표 선거에 나갈 후보들이 출마의 변을 밝혔다.
나경원, 한동훈, 원희룡이 한 시간 차이로 출사표를 던졌는데, 묘하게 윤상현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나선 나경원은 “보수의 가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그럼 왜 지난 총선에선 역대급 참패를 당했을까?
역설적으로 국힘당이 보수의 가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한 것 아닌가.
차마 국힘당이 패배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보수의 가치가 패배한 적은 없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정신승리’로 보인다.
국회에서 법 제정을 반대하기 위해 ‘빠루’를 들고 설친 나경원이 보수의 가치 운운하니 더 우습다.
한동훈의 속이 들여다 보이는 출사표
나경원과 윈희룡의 출사표는 차치하고, 한동훈의 너무나 뻔한 출마의 변에는 불쾌감마저 느끼게 했다.
특히 채상병 특검을 조건부로 발의하겠다며 제법 비장한 표정을 지을 때는 쓴웃음마저 나오게 하였다.
한동훈은 스스로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총선 참패 후 국힘당이 변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총선 패배의 책임자가 당을 살려내겠다고 한 것도 논리에 맞지 않고, 한동훈의 역량으로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한동훈은 지난 총선 때 이종섭 호주대사, 황상무 회칼 발언, 대파 소동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게 왜 제 책임입니까?” 하고 반문했다.
그랬던 한동훈이 당대표 선거에 나오면서 지난 총선 참패의 책임은 오로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것은 용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꼼수로 보인다.
한동훈은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용산의 실정 때문에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총지휘한 선거에서 참패하고 그 책임을 용산에 두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안무치한 짓이다.
그때는 용산에 아무 말 못하고 이제 와서야 혁신을 강조하니, 그런 꼼수에 국민이 또 속을지 모르겠다.
지금 국힘당 지도부 중에 한동훈 편이 몇이나 될까?
한동훈, “당 대표 되면 해병대원 특검법 발의”
한동훈은 출사표에서 자신이 당 대표가 되면 해병대원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꼼수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1) 민주당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게 아니라, 조건부 특검을 발의해 민주당이 특검을 피한다고 역공하려는 꼼수.
(2) 특검과 수사관을 여당이 추천하는 사람으로 임명하여 수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꼼수.
(3) 해병대원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함으로써 용산과 대립각을 세우는 척해 중도층을 잡아보겠다는 꼼수.
(4) 특검을 통해 윤석열을 궁지에 몰아 자신이 새로운 보수를 창출할 수 있는 인물로 부각시켜 대권까지 가보려는 꼼수.
김건희 특검엔 반대한 한동훈
그러나 한동훈은 야당이 주장하는 김건희 종합 특검엔 반대했다.
이유는 단 하나, 실제로 용산을 움직이는 사람은 윤석열이 아니라, 김건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 때 한동훈의 측근인 김경율이 김건희를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해 화가 잔뜩 난 김건희는 한때 한동훈에게 사퇴하라는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한동훈이 윤석열이 다칠 수 있는 해병대 특검은 받아들이면서 김건희 종합 특검은 거부한 것은 스스로 김건희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건희는 서울의 소리가 공개한 ‘7시간 녹취록’에서 “내가 집권하면 너희들은 무사하지 못할 거야”하고 낄낄 거렸다.
윤석열 당선이 곧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실제로 김건희 관련 보도를 했던 서울의 소리와 열린공간TV 및 뉴탐사는 무수히 많은 탄압을 받았다.
실천 없는 차별화는 무용지물
나경원과 원희룡이 원활한 당정관계를 주장하는 반면에 한동훈은 수평적 당정관계 재정립을 출마의 변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뭐가 수평적 관계인지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건희 명품수수에 대해 “국민 눈높이” 운운하던 한동훈은 서천 화재 현장에 내려가 윤석열에게 90도 ‘폴더절’을 하여 사실상 굴복했다.
그랬던 한동훈이 무슨 재주로 수평적 당정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한동훈 딴에는 과거 이명박과 박근혜가 갈등하는 척해 정권을 재창출했듯이 자신도 윤석열과 갈등하는 척하면 떠나간 중도층이 돌아올 것이라 여긴 모양이지만, 실천 없는 차별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동훈이 용산과 진짜 차별화하려면 출마의 변에 다음과 같은 것을 발표했어야 했다.
(1) 채상병 및 김건희 종합 특검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
(2) 윤석열이 거부한 14개 법안을 국회에서 다시 의결해 통과시키겠다.
(3)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처벌하겠다.
(4) 굴종적 대일관계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겠다.
(5) 전국민에게 조건 없이 민생 지원금을 지급해 경제를 살리겠다.
(6)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고 중국, 러시아와도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
(7) 측근 비리는 모두 덮고 야당만 죽이는 검찰을 개혁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한동훈의 성향으로 봐 위의 (1)~(7) 중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이런 것을 안 하고 도대체 뭘로 차별화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민은 항상 옳다던 윤석열은 그 국민의 뜻을 배신했고, 말로만 혁신 운운하는 한동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뭘로 용산과 차별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선 투표용 꼼수
한편 원희룡이 용산에 다녀오더니 갑자기 당대표 선거에 나가겠다고 선언했는데,
모르긴 모르되 한동훈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선거가 한동훈 대 나경원 쪽으로 흐르면 한동훈이 1차에서 과반을 얻어 당선될 수 있으므로 친윤인 자신이 출마해 한동훈의 1차 과반을 저지시키고 결선투표를 노리겠다는 꼼수로 읽힌다.
문제는 원희룡이 나경원을 이기고 2위라도 해야 결선투표를 할 수 있는데, 만약 한동훈이 1차에서 과반을 얻어 당대표가 되면 나경원과 원희룡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만다.
설령 원희룡이 2위를 해 결선투표를 한다고 해도 나경원과 윤상현이 지지해줄지도 미지수다.
어쨌거나 ‘어대한’ 즉 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소위 대세론은 깨졌다.
한동훈이 조건부 특검 수용을 말한 이상 용산의 견제도 더 심해질 것이다.
어쩌면 갈등 코스프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친윤파와 친윤파가 갈등해 어쩌면 보수가 공멸할지도 모른다.
즉 국힘당의 분열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윤석열이 말한 “정신 나간 당, 보깨버릴 당”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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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5 04:46논설] 그놈의 “한 방 없었다” 타령 언제까지 할 건가?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4/06/24
전국민의 관심 속에서 채 상병 특검 입법 청문회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렸지만, 수구 언론들은 마치 버릇처럼 ”한 방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한 방‘이란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확실한 증거인데, 국회의원들이 무슨 수사관이 아닌 이상 그런 증거를 채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야당이 채 상병 입법 청문회를 연 것은 윤석열 정권의 수사 외압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관계 당국과 증인들의 비협조를 보여줘 특검의 당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선 이번 청문회는 성공을 거두었다.
유튜브 중계로만 200만이 넘은 국민들이 청문회를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를 통해 몇 가지 유의미한 성과도 거두었다.
특히 참고인과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의 ‘베틀’은 영화보다 재미있었다.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참고인의 증언에 쩔쩔 매는 임성근 사단장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어서 의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참고인의 증언에 자꾸만 시선을 밑으로 두는 임성근 사단장이 가엾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고 야당 입법 독주?
한편 국힘당은 야당이 11곳 상임위를 차지하고 나머지 7곳을 주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법제사법위원회가 실시한 채상병 트검 입법 청문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야당 입법 독주” 운운했고, 수구 언론들은 “야당 벌써 거만 국민 등 돌려” 식으로 보도했다.
수구 언론들의 보도가 맞다면 윤석열 정권의 국정 지지율이 올라야 하는데, 한국 갤럽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여전히 26%다.
국민 네 명 중 세 명은 윤석열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수구 언론들은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은 것을 비판했는데, 조국혁신당이 13~15% 정도 가지고 간 것은 고려하지 않은 꼼수다.
다수결 원리 무시한 국힘당
다수결(多數決; Majority rule)이란, 회의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 쪽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안에 관하여 의견이 갈렸으나 토론 등의 절차로 만장일치를 이뤄낼 수 없을 때 이용하는 의사 결정의 차선책이 바로 다수결이다.
선거가 다수결의 원리로 진행되기에 민주국가에서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표를 받기 위한 정책 위주로 정치를 하게 된다.
의회의 의사결정은 대개 참석한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헌법 및 법률의 제정 및 개정 절차는 엄밀히 말하면 다수결은 아니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는 원칙은 같다.
다수결 원칙은 분명한 한계점이 있지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행되는 민주적 제도다.
한 사람의 격노로 모든 게 꼬였다
청문회에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윤석열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했다.”고 말했다.
업무 배제 후 매일 '죽음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당시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간 통화기록을 보고 '참담했다'며 작심한 듯 윤석열을 겨냥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지금 현재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됐습니다. 너무나 참 담하고 대명천지 이 대한민국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하고 한탄했다.
윤석열은 대장동 사건 때 이재명 후보에게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어 감옥에 갈 것 같으니까 거부하는 것 아닙니까?”하고 공격했다.
그말을 그대로 돌려주면 윤석열은 자신이 범인이가 때문에 특검을 거부하는 것 아닌가?
핵심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
증인으로 나온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은 “ 특검법안 수사대상이 된 사안과 관련해서 이미 고발이 돼서 현재 공수처가 한창 수사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대답을 거부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거듭 물었지만 이시원은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정청래 위원장이 이시원에게 10분 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검사 출신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이시원이 청문회장에서 사실상 쫓겨나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발언 도중 끼어들다 지적을 받았다.
그러자 정청래 위원장이
“국회가 그렇게 우습습니까. 그렇게 국민들이 우스워요? 또 끼어듭니까. 퇴장하세요. 10분간 퇴장하세요. 반성하고 오세요.”하고 이종섭마저 퇴장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윤석열의 표정이 궁금하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정청래 위원장이 특검 발의에 대해 의논할 일이 있으니 남아 달라는 부탁에도 본질문과 보충질문 시간이 끝나자 보란 듯이 일어나 퇴장해버렸다.
마치 인사 청문회 때 퇴장한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를 보는 듯했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저렇게 거만하게 구니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다.
영상으로 증언을 대신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죄송합니다. 방금 의원님께서 말씀하셨던 부분은 제가 공수처에 피의자로 지금 되어 있어 답변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란 말을 반복해 빈축을 샀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자신이 말한 ”말하지 못할 고뇌“에 대해선 ”해병대 조직이 한 젊은 해병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 앞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내외부적으로 복잡한 요소에 의해서 정치적 쟁점까지 되다 보니까 그게 아쉬워서 제가 해병대를 지휘함에 있어서 고민을 담았던 표현입니다“라고 둘러댔다. 사실은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게 정답인데도 말이다.
KBS뉴스 유튜브 채널만 청문회 중계 안 해 논란
한편 국회에서 열린 '순직해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를 MBC, SBS, TV조선, 채널A, JTBC, YTN 등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에서는 일제히 유튜브 채널로 청문회를 생중계했는데, KBS뉴스 유튜브 채널에는 청문회 생중계를 하지 않았다.
KBS뉴스 유튜브 채널은 특검법 입법 청문회는 물론, 방송3법과 관련한 과방위 청문회와 국회 운영위원회 중계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KBS 측은 “야당 단독으로 이뤄진 청문회를 생중계하면 야당 입장만 전달되기 때문에 생중계를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엔 국민의힘 의원들은 출석하지 않았지만 이종섭 전 국방장관과 임성근 전 사단장, 이시원 대통령실 전 비서관 등 주요 증인들이 대거 출석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단독 개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를 알리는 게 공영방송의 의무인데 KBS가 권력의 시녀로 변해버렸으니 통탄스럽다.
그놈의 ‘격노’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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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4 02:20비극적 최후... 이 사람이 왜 독립운동가가 아니란 말인가
[독립운동가외전] 이승만 정권이 죽음의 구덩이로 밀어넣은 항일투사, 임종업
김종성
24.06.23
일제강점기 후반의 경북 항일운동에서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긴 세 명의 동년배가 있다. 1906년과 1907년에 태어난 박상희·황태성·임종업이 그들이다.
동년배이며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 외에,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최후가 비극적이라는 점이다.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1906~1946)는 20대 초반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좌우합작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선산지부를 이끌었다.
해방 직후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구미지부를 책임지게 된 그는 미군정의 친일청산 훼방과 경제정책 실패에 맞서 '대구 10월 항쟁'에 참여했다.
이 일로 인해 경찰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박상희의 동지이자 조귀분·박상희 부부의 중매자인 황태성(1906~1963)은 구미 서쪽인 김천에서 신간회 지부를 무대로 항일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을 벌였다.
그런 뒤, 건준을 계승한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경북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이 됐다.
황태성은 대구 10월 항쟁 때 검거를 피해 월북했다.
이북에서 차관급인 부상(副相)을 지낸 그는 1961년 5·16 쿠데타 뒤에 남하했다.
옛 동지의 동생을 만나 통일 방안을 논의할 목적이었다.
결국 그는 체포돼 사형 집행을 받았다.
임종업(1907~1950)은 황태성의 동생인 독립운동가 황경임(1910~1994)과 결혼했다.
6·10만세운동과 김천 지역 민족운동을 주도한 그는 광복 뒤에 건준 김천군 인민위원장이 됐다.
10월 항쟁 때문에 박상희는 세상을 떠나고 황태성은 북으로 갔지만, 임종업은 남한에 남았다. 그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석방된 뒤에는 이승만 정권의 사상개조 조직인 국민보도연맹에 억지로 가입했고, 얼마 안 있어 한국전쟁 중에 학살을 당했다.
세 사람은 가까운 데 사는 동년배 항일투사인 데다가 혼맥으로 연결된 사이였다.
그런 이들이 해방 이후에 세 정권에 의해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박상희는 미군정에, 임종업은 이승만 정권에, 황태성은 박정희 정권에 목숨을 빼앗겼다. 일제에 맞섰던 세 사람의 목숨을 미군정·이승만·박정희가 지운 것이다.
임종업은 일제와 어떻게 맞서 싸웠나
세 사람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임종업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2년 뒤에 지금의 김천읍 황금동에서 출생했다.
그가 항일운동에서 두각을 보인 것은 열여섯 살 때다.
3·1운동 5년 뒤인 1924년에 중학교급인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학이 일어났다.
3·1운동 뒤에 하나의 현상처럼 번져나간 동맹휴학은 이 시기 학생 항일운동의 주된 방식이었다. 배재고보에서 이 운동을 주도한 일로 인해 임종업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일제 때문에 퇴학을 당한 임종업은 반격을 가했다.
일제를 퇴장시키기 위한 투쟁에 착수한다.
퇴학 2년 뒤인 1926년에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때 열여덟 살인 그는 순종황제의 장례일을 기한 6·10만세운동에 참여한다.
국장 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때 그는 격문을 배포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훗날 '남부군 사령관'으로 알려질 중앙고보생 이현상(1905~1953)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임종업이 배포한 격문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가워할 단어가 있었다.
윤 대통령이 틈만 나면 강조하는 '자유'가 그 종이에 박혀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는 중앙고보생 이선호·이병립·이천진·박두종이 작성한 그 격문에 "2천만 동포여, 원수를 구축(驅逐)하라. 피의 대가는 자유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알려준다.
진정한 자유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임종업은 온몸으로 보여줬다.
임종업은 자유를 알게 됐지만 자유를 수시로 억압당하는 사람이 됐다.
6·10을 계기로 감옥을 수시 출입하게 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집행유예를 받은 그는 1930년에 또다시 검거돼 징역 10개월을 받고, 1932년에도 검거돼 징역 2년을 받고, 1935년 이후에 또 검거돼 징역 2년을 받았다.
감옥을 나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는 일이 되풀이됐다.
23세 때인 1930년에 징역 10월을 받은 일은 그가 무슨 이유로 독립운동을 했는지를 웅변한다.
단순히 일본을 거부하고자 벌인 게 아니었다.
그가 거부한 것은 사상 최악의 인간착취 시스템인 제국주의였다.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인 제국주의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위 조사보고서는 그해 1월 10일에 조선방직 노동자들이 파업한 일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부산 조선방직주식회사에서 파업이 발생하자, 임종업은 신간회 부산지회와 부산합동노동조합에서 활동하던 김시엽 등과 함께 '우리들은 일어섰다', '일본제국주의에 반항하고 그 식민지 착취 정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격문 200여 장을 작성하여 1.13에 부산 및 조선 각지의 사상단체에 배포하였다. 이로 인해 임종업은 부산경찰서에 검거되었고, 1930.2.5에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법원과 검찰청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에 임종업은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방직 파업에 개입했다가 부산지법 검사국에 송치되고 뒤이어 징역형을 받았다.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노동자·농민의 편에 섰던 이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항일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가 1931년에 백낙도·나정운·김창식 등과 함께 결성한 김천그룹은 지역 농민·노동자·청년 운동의 확산에 기여했다.
김천그룹은 1932년의 대대적 검거 작전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1933년에 황태성의 아이디어로 김천그룹재건협의회로 거듭났다.
일제는 1935년에 300여 명의 관련자를 파악한 뒤에야 김천그룹과 김천그룹재건협의회의 존재를 인지하게 됐다.
임종업의 영향력을 가늠케 하는 일이다.
임종업은 해방을 경찰서에서 맞이했다.
일제를 향한 그의 싸움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해방과 함께 남북이 분단된 데다가 친일파의 지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 10월항쟁에 나섰다가 징역 5년을 받은 뒤, 1948년에 가석방으로 나오게 됐다.
그의 싸움은 1945년 이전이나 이후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 싸움의 성격은 거의 같았다.
그런데 그가 받은 타격은 그 이전과 이후에 크게 달라졌다.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미군정은 그에게 5년 형을 선고했다.
이승만 정권은 한술 더 그를 전향자 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강제 가입시킨 뒤 한국전쟁 직후에 집단 학살을 당하게 만들었다.
1950년 7월 14일, 그는 학살 희생자가 됐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제6권은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김천 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끌려온 보도연맹원들은 5~6명씩 묶여진 채 구덩이 앞에 앉혀진 다음, 헌병이 쏜 총에 맞아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학살이 진행되어 각 구덩이 50여 명, 총 100여 명이 학살되었다."
경북 지역 항일운동을 이끈 임종업은 일제 지배를 벗어난 뒤 이승만 정권하에서 참변을 당했다. 동년배 동지들인 박상희와 황태성은 각각 미군정과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이 일제가 아닌 다른 권력에 의해 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강점의 모순이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이처럼 오래 계속되리라고는 예견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위에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부가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사람을 빼놓으면 일제강점기 후반의 경북 항일운동이 제대로 이해되기 힘든데도 국가보훈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확히 구현해 내야 할 책임을 보훈부가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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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왜란님의 프로필 이미지
임인왜란 8분 전 좋아요 좋아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38916&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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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4 01:162)
부산 엑스포, 해외보다 국내 홍보에 더 치중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6.22
'꽉잡아윤기'는 작년 4월 28일에 홍보 영상을 올렸고 ‘THE윌벤쇼’는 7월 7일에 올렸다.
두 영상에 각각 세금 6,050만 원과 4,200여 만 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THE윌벤쇼’의 영상이 업로드 되기 9일 전인 6월 26일에 서울과 부산에 설치돼 있던 '그린클 챌린지 부스'가 철거됐다는 점이다.
결국, 그린클챌린지를 소개하면서 엑스포를 홍보하겠다며 수천만 원의 세금이 들어간 엑스포 홍보영상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THE윌벤쇼’가 만든 홍보 영상에는 다른 영상과 달리 부산시로부터 세금을 지원받았다는 고지도 없다.
부산시가 엑스포 홍보 예산을 집행하면서 그 결과물을 제대로 검수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부산시는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 답변을 통해 “엑스포 유치 지지를 높이기 위한 국내 홍보는 필수적”이라면서 “부산시에서 국내 홍보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고, 정부 유치위원회가 회원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홍보를 주로 담당했다”고 해명했다.
종편에 집중된 홍보비에 대해 부산시는 “엑스포 유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국가적 과제”라면서 “전 국민이 시청 가능한 채널로, 한정된 홍보비 내에서 효과적인 홍보 매체를 선정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 투표 한 달 앞두고 집중된 홍보비에 대해 부산시는 “유치 의지 결집을 위한 대국민 홍보가 필수적”이었다며 “각계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유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한 홍보 방안”이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부산시가 제작을 지원했다는 문구는 없었다”며 일부 유튜브 영상에 세금 지원을 밝히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검수 책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또 부산시는 작년 엑스포 유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인, '해외 유치 홍보 활동'의 구체적 내역에 대해서는 “외교 활동 관련 상대국의 비공개 관례 등 국제적 신뢰 관계에 따라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의 예산 내역은 점점 더 불투명하고 비밀스럽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언론의 기본 업무가 권력 감시라는 점을 볼 때 의도적으로 감시를 방해하려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결국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실패할 만해서 실패한 것이었지 결코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 머니 탓으로 돌릴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엉망진창이었던 상황에서 개최에 성공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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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4 01:151)
부산 엑스포, 해외보다 국내 홍보에 더 치중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6.22
부산엑스포 홍보비 중 MBN, TV조선 등 국내 매체에 들어간 홍보비가 43억 5천만 원. 반면, BBC, CNN 등 해외 매체에 들어간 홍보비는 27억 7천만 원이었다.(사진 출처 : 뉴스타파)
작년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 29 : 119라는 4배 이상의 격차로 참패를 당했다.
이 결과만으로도 부끄러운데 최종 프레젠테이션 영상에선 발표되고 이미 11년이나 지나 유행이 많이 지났을 뿐 아니라 부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싸이의 이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등 졸작이었음이 드러나 더더욱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최근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작년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을 한다며 부산광역시가 쓴 예산 330억 원의 집행 내역을 뉴스타파가 검증한 결과,
해외보다 국내 홍보에 더 많이 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엑스포 개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권이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홍보 전략을 세웠어야 하는데도, 정작 부산시는 국내 홍보에 더 열을 올린 것이다.
또한 부산시는 엑스포 유치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인 해외 홍보에 배정된 예산에 대해서는 “외교 관계”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구체적 사용처의 공개를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와 언론은 부산의 엑스포 유치 실패 원인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 머니' 탓으로 돌렸지만 실상 부산은 질 만해서 리야드에 진 것이었던 셈이다.
작년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 배정된 정부 예산은 3,200억 원에 이르지만, 지금까지도 정부는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뉴스타파가 개최 후보 도시 당사자인 부산시가 홍보·유치비 명목으로 330억 원을 쓰고 남긴 1,261건의 예산 지출 기록을 모두 확보해 예산 검증에 나섰다.
작년 부산시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배정한 예산은 약 330억 원인데 이 중 300억 원가량이 ‘유치·홍보비’ 명목으로 쓰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종합홍보용역비로 105억 원, 해외유치 홍보활동 종합용역비로 76억 원이 집행됐다.
181억 원에 이르는 두 용역 모두 롯데 계열사인 대홍기획이 따냈다.
181억 원의 종합용역비 외에 나머지 118억 원의 홍보 유치비를 1차로 분석했다.
그 결과, 해외보다 국내 홍보 비용을 더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 택시 등 국내 광고물에는 26억 8천만 원, 해외 광고물은 그보다 6억 원이 적은 20억 8천만 원이 투입됐다.(사진 출처 : 뉴스타파)
MBN, TV조선 등 국내 매체에 들어간 홍보비가 43억 5천만 원. 반면,
BBC, CNN 등 해외 매체에 들어간 홍보비는 27억 7천만 원이었다.
또한 지하철, 택시 등 국내 광고물에는 26억 8천만 원, 해외 광고물은 그보다 6억 원이 적은 20억 8천만 원이 투입됐다.
부산시가 국내 언론과 광고에 쓴 홍보비는 다 합해 70억 3천만 원,
반면, 해외 홍보비는 이보다 22억 원이 적은 48억 5천만 원으로 집계됐다.
비율로 따지면, 국내 홍보비와 해외 홍보비가 각각 6대4였다.
엑스포 개최지 선정은 BIE, 즉 국제박람회기구에 속한 179개 회원국의 투표로 결정된다. 따라서 개최지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실제 투표권이 있는 국가의 표심을 움직이는 홍보 전략을 짜고 예산 집행도 여기에 맞춰야 했지만, 부산시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단일 홍보 예산 집행액으로 가장 많은 1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 tvN의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한국어로 제작되고, 한국인 시청자를 겨냥한 이 예능 프로그램이 실제 투표권이 있는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었을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을 포함해 국내 언론과 광고에 쓴 70억 원대 홍보비는 결국, 실제 투표권이 있는 국가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 채, 국내 방송·신문사만 배불리는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내 언론사별로 지원받은 엑스포 홍보 예산을 살펴보면 종편 채널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비 명목으로 MBN, 채널A, TV조선 등 종편채널에 지원된 세금은 8억 원이 넘는다.
MBN은 작년 3월 라는 제목으로 47분 남짓한 방송 한 편을 만들었는데, 부산시로부터 제작비와 송출료 등으로 세금 2억 5,000만 원을 받았다.
또 다른 종편, 채널A가 만든 두 편에도 MBN과 같이 부산시로부터 세금 2억 5천만 원을 받았다.
TV조선에도 이라는 방송에 1억 원이 지원됐다.
또 부산시는 TV조선에 공익캠페인 광고비로 2억 원 등 모두 3억 원의 홍보비를 지원했다. 그렇게 막대한 세금을 들여 만든 종편 방송의 내용은 당연히 엉터리에 가까운 오보 투성이였다. 특히 채널A의 경우는 투표 판세가 80 : 87까지 따라붙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했는데 그 가짜 뉴스의 진원지는 바로 윤석열 정부였다.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 명목으로 MBN, 채널A, TV조선 등 종편채널에 지원된 세금은 8억 원이 넘는다.(사진 출처 : 뉴스타파)
이에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뉴스타파에
"일부 언론은 마치 부산이 유치가 될 것처럼, 또는 박빙인 것처럼 오보에 가까운 왜곡된 보도들이 나왔단 말이에요. 거기에 앞장선 언론이 TV조선, 채널A 등 종편이었어요. 지금 와서 보니 이런 광고비를 받고 그렇게 오보에 가까운 편향된 보도를 한 게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들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산시는 최종 투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해외 언론보다 국내 언론에 홍보를 치중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개최지 투표를 직전에 둔 지난해 11월 한 달간, 부산시가 국내 언론에 지출한 광고비는 10억 원이 넘는다.
작년 11월, 한 달간 부산시는 개최지 선정 투표일로부터 D-30, D-7, D-DAY 등 세 단계로 나눠 국내 신문 광고비로 5억 8,800만 원, 국내 방송 광고비로 3억 2,000만 원 등 2023년 11월 한 달간 국내 신문과 방송을 모두 합해 11억 8,800만 원의 광고비를 썼다.
그 밖에 부산시는 빅인플루언서들이 만든 각종 유튜브 채널에도 엑스포 홍보비를 줬다. 모두 6개 유튜브 채널이 부산시로부터 받은 세금은 3억 5,000만 원에 이른다.
이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지만 더 어처구니 없는것은 따로 있다.
쇼트트랙 선수 곽윤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와 ‘THE윌벤쇼’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부산 엑스포 홍보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이 채널 영상엔 ‘그린클 챌린지’가 소개되어 있다.
부산시는 빅인플루언서들이 만든 각종 유튜브 채널에도 엑스포 홍보비를 줬다. 모두 여섯 개 유튜브 채널이 부산시로부터 받은 세금은 3억 5천만 원에 이른다.(사진 출처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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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3 23:51검사 윤석열과 군인 박정훈이 말하는 ‘수사 외압과 격노’
김상수 작가
기사입력 2024/06/22
전 해병대 박정훈 수사 단장이 말하는 윤석열 ”격노“와 수사 외압 정체.
11년 전 검사 윤석열이 말하는 ‘수사 외압과 격노’ 폭로.
윤석열 검사는 당시 TV 중계 카메라 앞에서 직속 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수사 외압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대들고(항명) 폭로, 일약 ‘국민검사’ 영웅이 된다.
이후 여주지청장으로 가 있는 동안 윤석열 장모 최은순과 동업자이던 정대택이 최은순 김건희 사기 비리를 봐준 검사 윤석열을 고발하고 대검에 투서를 낸다.
황교안 법무장관 결재로 윤석열은 비리 검사로 징계를 받고 대구로 대전으로 연속 좌천된다.
내막적으로는 윤석열이 김건희 최은순 사기 비리를 덮어준 검사로 대구로 쫒겨갔는데도 언론 표방 매체들은 ‘강직한 검사’로 윤석열을 미화시켜 대중들에게 거대한 미신으로 증폭되어 알려진다.
당시 검찰 출입 기자들은 마치 ‘정의의 검사’ 윤석열이 법무부 장관 황교안과 검찰 수뇌부로부터 보복성 좌천 인사를 당한다는 투의 기사를 낸다.
드디어 박근혜 특검 수사팀으로 대검 특수부 선배 박영수 특검에 의해 윤석열은 수사팀장으로 차출된다.
이것이 윤석열 권력 욕망 다단계 쿠데타 잉태 시기다.
2013년 10월 21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국정감사장.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 조작 및 정치 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을 이끌어오다 전격 교체된 윤석열(53·여주지청장)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21일 국정감사장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 사건 관련 보고서를 보고) 하면서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윤 전 팀장은 또 “국정원 수사를 못할 만한 외압을 느꼈다”고 말했다.
2024년 6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장.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사건 조사의 경찰 이첩과 회수 과정에 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천천히 결심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박 대령은
“한 사람(윤석열)의 로 인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고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 저렇게 많은 통화와 공모가 있었다는 게 너무나 참담하고,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납득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를 이끈 박 대령은 수사 외압과 압박을 강하게 느꼈고 윤석열의 월권 권한 남용 “격노”가 이 사태의 본질과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 수사단장은 항명 등 혐의로 지금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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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3 22:43[조하준의 직설] 조선일보가 가짜 뉴스 운운할 자격이 있나?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6.22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두고 '가짜 뉴스'라고 단정한 조선일보를 가리켜 '미친 개'라고 비판한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출처 : 봉지욱 기자 페이스북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지난 21일 이른바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의 당사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모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김석범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배임증재·수재,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범죄수익 은닉 등 혐의를 받는 김씨와 신 전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조선일보가 쓴 기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22일 조선일보는 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우선 제목부터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직 이 사건의 유, 무죄는 판가름 나지 않았고 오직 피의자인 김만배와 신학림이 구속된 것이 전부다.
조선일보는 설마 피의자의 구속이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계속해서 해당 보도를 살펴보면 조선일보는 "이 사건은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뒤집으려 범죄 피의자와 언론, 정치권이 짜고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라며 언론학계의 전언을 인용해 "언론 윤리를 넘어서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사상 초유 사건"이라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이 역시도 검찰의 주장일 뿐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이 진실 보도인지 가짜 뉴스인지는 판가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대놓고 '가짜 뉴스'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뉴스타파의 봉지욱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조선일보의 해당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조선일보를 보면 지가 판사고 검사고 대통령인 줄 안다"고 하며 "아직 수사 중인데 스스로 가짜뉴스라고 판결하고 각종 소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지들 아래 있다고 본다. 만들 수도 날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고 일침하며 "그건 애완견도 사냥개도 아닌 미친 개의 행태다"고 덧붙였다.
또 봉 기자는 "미친 개는 언론학에 없지만 한국에 많다"며 "미친 개는 주인도 물어뜯는다.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는 말로 끝맺었다.
헌법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것이 있지만 대다수 한국 언론들이 이 원칙을 지키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 이유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적한 대로 검찰에 빨대를 꽂으며 검찰 측 말만 받아쓰는 것이 대다수 한국 언론들의 행태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죄수복을 입고 구속 수감되어 있더라도 그는 무죄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이 검찰의 공소장만을 일방적으로 받아서 보도하니 대중들은 형이 확정되기 전부터 피의자를 곧 '범인'으로 낙인 찍는 일이 발생한다.
훗날 그 피의자가 무죄로 풀려나더라도 검찰은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검찰 편에 서서 열심히 피의자에게 돌팔매질을 했던 언론들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모른 척 한다. 이것이 지난 70여 년 간 이어온 한국 검찰과 언론의 자화상이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이재명 대표의 '검찰의 애완견' 발언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 20일 필자가 취재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SBS와 한국일보에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현장에서도 어느 기자가 이재명 대표의 발언에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필자의 심정은 "그렇게 발끈하기 전에 당신들이 했던 짓이나 곰곰이 반성해 봐라"였다.
그간 언론이 검찰과 편을 먹고 검찰의 앞잡이가 되어 돌팔매를 던졌고 그 때문에 맞아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논두렁 시계'에 대해 SBS는 15년이 지나도록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장은 검찰이 하는 주장일 뿐 그것이 곧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시금석이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 언론들은 지금도 그걸 깨우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고깝게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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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3 22:35[조하준의 직설] 조선 인조만도 못한 尹의 '가치 외교'
조하준 기자
승인 2024.06.23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렸던 북러정상회담으로 인한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북러관계는 더욱 밀착하게 됐고 한반도 유사시에 러시아군이 자동으로 개입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원인에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가치 외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나서 해결은커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서 얻게 되는 국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필자가 2년 1개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노선을 보면서 든 생각은 참 투명하면서도 참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감정은 감정이고 국익은 국익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은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 아니다.
때문에 외교에 있어서 손익 계산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척을 지더라도 이겨낼 힘이 있지만 한국은 과연 그럴 힘이 있나?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외교 무대에 있어서 투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국익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상인들이 속된 말로 '진상'이라 불리는 손님 앞에서도 늘 싱글싱글 미소를 지으며 립서비스를 퍼붓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현실적으로 한국의 국력에서 외교를 하려면 상인의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를 그런 손익의 개념이 아닌 '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구시대적 냉전시대 이념 논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국가들은 절대 선이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진영 국가들은 절대 악이라고 설정한 뒤 구 공산권 국가들을 적대시하는 이상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윤석열 정부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외교와 이념을 결부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필자는 잘 모르겠다.
외교에 이념을 결부시키는 행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이미 400년 전에 입증된 바 있다.
조선의 인조는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는데 명나라의 책봉을 받기 위해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뒤엎고 숭명배금정책을 썼다.
하지만 당시 명나라는 망해가기 직전의 나라였고 청나라는 이제 막 창성하고 있던 나라였다.
그런데 망해가는 명나라를 섬기고 창성하는 청나라를 수시로 자극했으니 결국 병자호란이 발생했고 그 결과는 삼전도의 굴욕이었다.
병자호란은 결국 조선이 청나라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만 않았어도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지금의 북러관계 밀착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가치 외교'를 표방하며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우크라이나 편을 드는 행위를 반복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인조와 윤석열 대통령은 쌍둥이처럼 빼닮았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오히려 조선의 인조만도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나마 인조의 숭명배금정책은 나름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구원병을 내어 조선을 도왔던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아야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니 그 명분을 위해 국익을 일정 부분 희생했다는 나름의 핑계댈 구석이라도 있다.
반면에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는 어떤가?
도대체 우리가 우크라이나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았고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생각해보면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의 구성국 중 하나로 6.25 전쟁 당시엔 우리의 적성국이었던 나라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가 끼어들어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할 이유도 실리도 없다.
이 때문에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는 조선 인조의 숭명배금정책만도 못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조선 인조의 숭명배금정책이 가져온 결말이 삼전도의 굴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가 가져올 결말도 가히 좋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국가 외교는 국익을 위해 하는 것이고 최선의 국가 안보는 전쟁을 예방해 국민들이 전쟁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말 무엇이 국익을 위한 길이고 무엇이 국가 안보를 위한 길인지 안다면 이제부터라도 외교 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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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3 00:54한국사로 장난질을 한 역사학자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이병도
김종성(qqqkim2000)
24.06.22
이병도와 조선사편수회로 상징되는 일제 식민사관은 한국인의 역사 인식을 좁은 반도 안에 가뒀다.
이병도가 몸담은 조선사편수회의 원래 명칭이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사를 반도의 틀에 가두려 했던 일제의 의도가 이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박성수 교수는 1986년 9월 17일 자 기고문에서 "일제는 조선총독부에다 소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구로이타를 고문으로 앉혔다"라며 구로이타 가쓰미(黒板勝美), 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 이마니시 류(今西龍) 세 학자를 거명한 뒤 이렇게 지적한다.
"구로이타를 비롯한 위의 왜곡 3역은 '조선반도사 편찬 요지'에서 식민지 백성의 역사는 이를 근원적으로 말살하여 그들의 국민의식과 독립사상을 발본색원하는 무자비한 방법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그들의 역사를 볼품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왜곡·날조하여 기를 죽여버리는 차선의 방법이 있는데, 앞의 한국사 절멸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차라리 왜곡하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병도는 '차선의 방법'으로 한국사의 기를 꺾는 일을 조선사편수회와 함께 수행했다. 제2권 이병도 편은 "1925년 8월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修史官補)에 임명되었다"라며 "1927년 5월 수사관보를 그만두고 촉탁을 맡아 1938년 6월경까지 활동했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사편수회 촉탁으로 활동하면서 이마니시와 함께 제1편 '신라통일 이전', 제2편 '신라통일시대', 제3편 '고려시대'의 편찬을 담당했다. 수사관보로 재직하던 1926년 1월 조선사편수회 소속 학자들의 공동 연구기관인 조선사학동고회의 편찬을 맡았다."
이마니시 류 경성대학제국 교수는 한국사를 한반도 안에 구겨 넣는 데 앞장섰다.
2022년에 제69호에 실린 조원진 세종대 강사의 논문 '이마니시 류의 고조선 연구와 문제점'은 "그가 한반도 남부의 한(韓)종족만을 오늘날 조선민족과 연결"시켰다고 말한다.
그런 뒤 "이마니시는 기원전 3세기 한반도 북부에는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은 조선이 있었고 남부에는 진번·진국·임둔이 있었다고 하였으나, 기원전 3세기 이전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대륙의 고조선을 한국사와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이마니시 류의 이 같은 연구를 돕는 데에도 이병도가 가세했다.
식민지 역사 왜곡의 길로
이병도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1894. 7. 23.)으로 친일 정권의 감시를 받던 고종이 경복궁을 몰래 빠져나와(1896. 2. 11.) 러시아공사관으로 도피해 있을 때인 1896년 8월 14일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경기도 용인이다.
열아홉 살 때인 1915년에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스물셋 때인 1919년에 와세다대학 '사학 및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의 원래 꿈은 서양사 전공이었다.
은 "처음에는 서양사를 전공하고자 했으나 당시 일본사의 권위자였던 요시다 도오고와 쓰다 소우기치의 영향을 받아 조선사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알려준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해에 경성 중앙보통학교 교원이 된 그는 문학 활동에도 깊이 뛰어들었다.
1920년에는 염상섭·나혜석·김억 등과 함께 잡지 를 창간하고, 2년 뒤에는 염상섭·오상순 등과 함께 문인회를 창립했다.
이처럼 서양사와 문학에도 관심을 보이다가 서른을 앞둔 1924년부터 식민지 역사 왜곡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한국사를 반도사로 축소시키는 데 가담한 이병도는 외형상 정반대로 비치는 연구 활동에도 참여했다.
한국사를 대륙과 연동시키는 청구학회에도 가담했다.
은 "1930년 8월부터 1939년 10월까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와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청구학회(靑丘學會) 위원을 지냈다"고 말한다.
청구학회의 공식적인 설립 취지는 1930년 발간된 제1호에 실린 나카무라 히데타카의 '휘보'라는 글에 나타난다.
조범성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원의 논문 '1930년대 청구학회의 설립과 활동'(2021,107)에 인용된 나카무라의 '휘보'는 역사연구 성과를 대중에 알릴 방법이 미비한 것 등을 역사학의 결함으로 언급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청구학회를 조직한 것은 실제로 상술한 결함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극동문화를 연구하고 보급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청구라고 이름 지은 것은 대저 청구가 동방의 나라의 범칭이며 나아가 고래(古來) 조선의 이명(異名)이기도 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청구라는 명칭이 고대 한국을 지칭하기도 하고 동북아 국가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 명칭을 택했다고 소개했다.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시키는 데에 이 명칭이 적합하다고 봤다.
또 한국과 만주를 중심으로 극동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대중에 전달할 목적으로 청구학회를 결성한다고 했다.
한국사를 반도 안에 가둬두고 '볼품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위축시키던 식민지배자들이 이 시기에는 다른 데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극동문화를 연구"한다는 공식 표명에 담긴 의도는 만주침략 및 지배의 합리화였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만주사변 발발(1931. 9. 8.) 11개월 뒤에 나온 제9호 기사에 나타난다.
위 조범성 논문에 따르면 '편집후기'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는 청구학회의 연구 목적이 만주 침략과 보조를 맞추는 데 있음을 솔직히 드러낸다.
"만주사변의 발발 이래 최근 1년간 일반의 이목이 현저하게 만주의 천지에 집중되었고, 그 풍토·문물이나 역사에 관한 흥미는 상당한 자극을 받고 있다.
본회의 목적인 '조선 및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 연구 및 그 보급'은 현하 시국에 즈음하여 가장 급무라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일제 손잡고 한국사를 이리저리 왜곡
이처럼 청구학회는 한국과 만주의 역사적 연고를 활용해 일제의 만주침략을 합리화하고 분위기를 부추기는 연구활동을 수행했다.
이병도는 이 학회에 이름만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위 논문에 따르면 1930년 12월 6일 그는 총독부 도서관에서 열린 청구학회 행사 때 '평양의 재성(在城)과 나성에 대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내용은 1931년 2월에 제3호에 실렸다.
이병도는 한국사를 반도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이마니시 류의 연구에도 참여하고 한국사를 만주와 연결시켜 대륙침략을 합리화하는 청구학회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한국사를 줄였다 늘렸다 하는, 한국사를 갖고 장난질을 하는 일에 다 참여한 것이다.
일제가 한국사를 축소한 것은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고, 한국사를 만주와 연결한 것은 만주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병도가 그 둘에 다 참여한 것은 그가 최소한의 학문적 지조도 없이 일제의 침략정책에 이리저리 부화뇌동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부화뇌동은 그에게 많은 이익이 됐다.
그는 1925년부터 일제의 녹봉을 받으며 친일재산을 축적했다.
또 일제의 도움으로 학계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해방 뒤에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했다.
서울대 대학원장이 되고 문교부 장관이 되고 국사편찬위원장이 되고 국민대 학장이 되고 성균관대 교수가 되고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이 된 것은 그의 역사학계 입지를 공고히 해주었다.
일제와 손잡고 한국사를 이리저리 왜곡한 이병도가 끼친 영향은 웬만한 친일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가 남긴 연구 결과는 지금도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상당 부분 내장되어 있을 것이다. 일제 잔재를 한국인의 인식 깊숙이 심어두는 역할을 했으니, 일당백의 친일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병도는 친일로 인해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의 중책을 맡았고 포상도 많이 받았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5·16민족상, 학술원상 등이 주어졌다.
93세 때인 1989년에 죽은 이병도가 아직도 역사학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여전히 일제의 망령이 그를 통해 이 사회의 역사인식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40026&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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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4-06-23 00:44윤석열 정부의 '둔촌주공 구하기' 끝은 어디인가?
[주장] 국토부, '부부공동명의 변경 허용 검토' 밝혀 논란...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24.06.22
이태경(red1917)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초지일관 추진 중인 대표적인 정책이 있다면 '집값 떠받치기'다.
정부는 '집값 떠받치기'에 정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데, 얼마나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둔촌주공(현 올림픽파크포레온)을 보면 된다.
윤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단일 재건축 사업장이라 할 둔촌주공에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할 절체절명의 위기가 도래하자 둔촌주공 일병을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규제들을 푼 바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도움에 힘입어 둔촌주공은 가까스로 완판될 수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둔촌주공에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 수반되는 실거주의무가 있었는데 윤 정부는 실거주자 보호 운운하며 민주당의 협조를 요청했고 그 결과 여야 합의로 실거주의무가 3년 유예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출을 받아야 하니 부부공동명의를 허용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됐고 국토부가 부부공동명의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릴 태세다.
물론 이는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윤 정부의 둔촌주공 일병구하기를 보고 있자면 '집값 떠받치기'를 위해 대한민국의 근간이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에 올인한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벽두에 이른바 '1.3 미분양대책'이라고 명명된 대책으로 분양시장 관련 정상화 조치를 사실상 전부 해제한 바 있다.
해당 대책은 전매제한을 사실상 1년으로 줄이고, 분양가 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폐지를 추진하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을 축소하는 한편 주택 소유자 무순위 청약 신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무주택자가 아닌 건설사, 시행사, 유주택자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온당한 대책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1.3 미분양대책'이 황급히 등장한 배경이다.
'1.3 미분양대책'은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1만 2032가구)로 불리며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 둔촌주공의 대량 미분양 사태는 분양시장의 최대 악재일 뿐 아니라 대세하락 중이던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를 더욱 가파르게 할 치명적재료였다.
'집값 떠받치기'에 혈안이던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른바 '둔촌주공 완판'을 견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분양권 전매제한 1년으로 축소·실거주 의무 폐지
▲전용면적 84㎡ 청약 당첨자를 위한 12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중도금 대출 허용
▲무순위 접수 유주택자 허용 등 둔촌주공 3종 선물세트가 등장한 것이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대책을 전부 쏟아부은 것인데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자금들이 몰려왔고 둔촌주공 일반분양물량은 완판될 수 있었다.
윤 정부, 실거주의무폐지까지 공언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특히 윤 정부는 둔촌주공을 완판시키겠다는 일념에 절대 풀어서는 안 되는 실거주의무폐지를 공언함으로써 둔촌주공을 위시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공동주택의 일반 분양물량을 단기 투기 목적으로 구매한 수분양자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본디 실거주 의무는 2021년 2월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제도로 분양가 상한제 단지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분양자는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분양가가 주변 시세 보다 저렴할수록 실거주 의무기간이 길어진다) 동안 실제로 거주해야 한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을 단기투기 목적이 아닌 실거주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 실거주 의무제도의 취지다.
실거주의무제는 입법사안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애초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둔촌주공을 완판시킬 욕심에 실거주의무제 폐지를 공언했고 이를 믿고 둔촌주공의 분양권을 구입한 수분양자들은 전매제한이 풀리자마자 분양권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준공 후 전세를 주고 그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실거주의무제 폐지에 동의하지 않자 둔촌주공 분양권자들은 난리가 났고 결국 여야 합의로 실거주의무제를 3년간 유예해주는 것으로 주택법이 개정된 바 있다.
이젠 주택법까지 어기면서 둔촌주공을 도우려는 국토부
여기까지만 봐도 둔촌주공 구하기에 쏟은 윤 정부의 정성과 노력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3년 유예하는 주택법이 시행되면서 부부 공동명의와 관련된 혼선이 일자, 지난 18일 국토부 관계자가 "실거주 의무 주택의 부부 공동명의 변경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힌 것이다.
물론 이는 완벽한 법률위반행위다.
주택법 57조의 2의 2항을 보면 거주의무자는 거주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해당 주택을 양도할 수 없다.
이견이나 해석이 불필요할만큼 명확하게 조문이 규정하고 있는데, 양도에 부부공동명의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풀이하자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의 입주자는 당첨자이자 계약자로서 부부 가운데 일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부공동명의로의 소유권 변경은 증여에 해당함으로 명백한 법 위반이다.
한편 실거주의무를 위반한 입주자는 당해 주택의 소유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이전해야 할 뿐더러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
현 상황만큼 충격적인 건 국토부 관계자의 발언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주택법) 법문이 바뀌었을 뿐이지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며 "이 경우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다.
살다 살다 이런 해괴하고 도착적인 얘긴 처음 듣는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 중 하나가 "법대로 하자"는 말이다.
법이 바뀌면 상황이 어떻건 그 법에 따라야 한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내 현실이 이러하니 법이 어떻게 바뀌었건 간에 나는 내 현실대로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자는 범법자가 된다.
그런데 국토부 관계자라는 공무원은 '법이 바뀌었다 해도 상황이 바뀐 것이 없으니 상황에 따라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본디 국회는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의회가 만든 법을 집행하며, 법원은 법을 해석한다.이게 삼권분립의 근간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법의 집행을 책임진 행정부가 고작 둔촌주공을 위해 의회의 권한과 권능을 침해하면서까지 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는 광경이다.
무참하고 절망스럽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40261&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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