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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9 00:16김용민, 한덕수 영장 기각에 "내란특별재판부 즉시 설치"
당 지도부 향해 조속한 결단 촉구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8.28
지난 27일 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을 받고 있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경기 남양주병)이
"내란특별재판부를 즉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 지도부를 향해 조속히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28일 오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김용민의원, 민트TV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대법원은 지난 대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사건을 기록도 다 읽지 않고 파기환송함으로써 대선에 개입하고자 했다. 지귀연 판사는 법해석을 넘어 창조하는 수준의 법왜곡으로 내란수괴 윤석열을 풀어주었다. 또한 내란의 주요 재판을 맡아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재판을 지연시켜오고 있다"며 기존 사법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어제 중앙지법은 내란공범 한덕수를 풀어주었다.
증거인멸과 진술번복 등 구속사유가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지적하며 "사법부는 본인들이 풀어주고 비호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엄중하게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는건 사법부가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또 김 의원은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법원에 내란사건을 맡길 수 없다"며 "내란특별재판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내란특별재판부의 설치를 즉시 결단하시라. 그것이 진정한 내란종식을 앞당기는 길이다"고 촉구했다.
현재 사법부를 향한 불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초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가 내란 수괴 혐의로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형사소송법 조문을 왜곡 해석하며 구속취소 결정을 하는 비정상적 특혜를 베푼 것과 5월 초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선고한 것을 기점으로 더욱 심화됐다.
검찰 못지 않게 현재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 수준으로 찍힌 집단이 사법부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며 검찰개혁 못지 않게 사법개혁을 원하는 여론 역시 대두되고 있다.
사법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기존 사법부에 내란 재판의 권한을 맡겨도 될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1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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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6:48((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좋은 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수정 2025.08.27
이은희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어떤 길을 갈 것인가
그리스의 작은 섬 아이기나는 제우스 신과 강의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아이기나에 비극이 닥친 것은, 남편의 바람기에 넌덜머리가 난 헤라 여신에게 아이아코스의 친부가 알려진 탓이었다.
분노한 헤라는 역병을 내려 이 작은 섬을 초토화했고, 하루아침에 백성 없는 나라의 허울뿐인 왕이 되어버린 아이아코스는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엎드려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신의 왕이라도 이미 죽은 이들을 살려낼 방도는 없었다.
고민하던 제우스는 마침 눈에 띈 개미굴의 개미들을 모두 아이아코스의 백성으로 변신시켜 빈 땅을 채워주기에 이른다.
이후 아이기나섬의 사람들은 개미라는 뜻의 ‘뮈르미돈(myrmidon)’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사람이 되었어도 여전히 개미 시절처럼 근면하고 성실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설화처럼 개미는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도 나오듯 근면 성실의 대명사이다. 또한 ‘개미군단’이라 지칭될 때는 작지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집단이라는 뜻도 함께 가진다.
이는 생물학자들의 관찰로도 증명되었다.
먹이를 찾아 나선 개미 떼들의 귀갓길은 그야말로 잘 훈련된 군대의 행진과도 비슷하다.
이들은 각자 제 몸무게 의 몇배씩이나 되는 무거운 먹이를 잘도 짊어진 채, 한눈팔지 않고 앞선 개미들의 뒤만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앞선 개미들이 분비한 페로몬 신호이다.
개미들은 주로 화학적 신호, 즉 냄새에 의해 외부 자극을 인식하기에 앞선 개미의 체취는 그 어떤 내비게 이션 정보보다도 정확해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눈 밝은 과학자들은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한 개미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아낸다.
일부는 실수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냄새 정보가 아니라 시각 정보에 의존해 새로운 경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미 집단의 규모나 크기에 상관없이 이런 ‘길치’ 혹은 ‘개척자’ 개미들의 비율은 5~15%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다수의 개미들이 따르는 길은 집으로 가는 것이 보장된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이탈자 개미들의 앞에 놓인 길은 귀가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길’이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위험한 길’이다.
확실한 길을 두고 미지의 경로로 나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일정 비율의 개미들은 늘 이런 위험하고 불확실한 길로 들어서곤 한다.
이렇게 일탈한 개미들의 상당수는 예상대로 무사히 귀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중 아주 일부는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해 집단의 부를 늘리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더 빠르고 좋은 길을 찾아내 전체 루트를 개선하기도 한다.
개미 집단이 소수의 일탈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보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행동이 장기적 혹은 거시적으로는 집단의 생존력을 높이는 전략적 탐색이기 때문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특별한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무더위가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에 무디어진 열정을 되살리는 불씨에 가까워 오히려 기꺼운 뜨거움이었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주로 참여한 이 행사는 ‘비 더 퍼스트!(Be the First!)’라는 기치에 맞게, 미래에 지어질 달 기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제안하는 자리였다.
달은 이미 1969년에 인류에게 첫 방문을 허락했지만, 이후로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거주불능 구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에 연구소를 세우고 거기에서 연구할 주제를 공모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현실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허구적 공상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선에 참여한 젊은 참가자들의 아이디어는 지극히 이상적이었으되, 그들이 내놓은 연구 제안서는 더없이 현실적이고 진지했다.
수상자 중, 고3 학생의 소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처음에는 내신 수행평가를 위해 가볍게 생각해냈던 아이디어가 이 대회와 맞물리면서 점차 빠져들어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 몇개월을 매달렸다는 말에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누군가의 모습 말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7204401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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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4:05(2)
검사 출신 내세워 기념관 건립 추진했던 윤석열
[윤석열 정권의 역사 파괴]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과 두 정권의 실패
김종성(qqqkim2000)
25.08.27
8개월 뒤에는 조선일보사도 이승만 미화에 나섰다.
1995년 2월 8일 자 사설은 "조선일보의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전(展)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그의 사후 30여 년 만에 처음 역사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 뒤 "광복 50년 동안의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사(史)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벤트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탈냉전을 단속하고 반공세력 나름의 국가 정통성을 정비하려는 기획에서
이승만 미화 작업이 일어났던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2023년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반공세력은 말로는 언제라도 북한을 때려눕힐 듯 말하지만,
실상은 대체로 수세적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쪽도 북한이고, 무장공비를 주로 파견한 쪽도 북한이다.
반공정권들의 반공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거리두기'에 불과했다.
반공정권들이 주로 압박한 대상은 남한 대중과 진보세력이다.
반공세력은 이들에 대해서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다.
반공정권들의 주된 표적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계승한 반공정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에 드론을 띄웠던 윤 정권이 국민을 상대로는 군대까지 동원했다.
윤석열의 반공정책도 실상은 북한이 아니라 국민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 윤 정권이 불러들인 유령이 이승만이다.
1990년대 반공세력이 반공체제를 지키고자 이승만을 소환했듯
윤 정권 역시 반공정책을 목표로 이승만을 소환했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미화 혹은 우상화는
대부분의 경우에 역사 왜곡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을 앞세운 윤석열의 반공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을 미화하려면, 그의 분단정책, 불법 계엄, 불법 개헌, 선거부정, 민간인 학살, 친일청산 방해 등을 은폐하거나 재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미화에 앞장선 박민식은 '공과 과를 고루 보자'며 이승만을 유공자로 둔갑시켰다.
윤석열이 임명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김광동은 이승만 시기의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하고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부각시켰다.
윤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을 몰아낸 4·19도 재평가될 수밖에 없고,
4·19가 재평가되면 이를 계승하는 부마항쟁·광주항쟁·6월항쟁·촛불혁명에 대한 평가도 뒤집힐 수밖에 없다.
이는 4·19에 의해 계승된 독립운동-3·1운동-동학혁명 등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윤 정권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착공했다면,
한국 근현대사는 아주 엉망이 됐을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9587&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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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3:59(1)
검사 출신 내세워 기념관 건립 추진했던 윤석열
[윤석열 정권의 역사 파괴]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과 두 정권의 실패
김종성(qqqkim2000)
25.08.27
국민의힘 정권처럼 자유당 정권도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던 중에 몰락했다.
우남 이승만의 80회 생일을 8일 앞둔 1955년 3월 18일, 자유당 정권은 서울시를 앞세워 우남기념회관 설립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승만이 분단을 획책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친일 청산을 방해하고 불법 쿠데타와 불법 개헌으로 집권을 연장하는 모습들을 목격했다.
이승만 정권은 그런 기억을 가진 국민들 머릿속에 '거룩한 국부 이승만'의 이미지를 주입하고자 우남기념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는 대중의 인식 속에 각인된 생생한 역사를 지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국회의원 정중섭(1898~1978)은 1956년 6월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우남회관이나 대통령 동상의 건립보다도 '못 살겠다'는 국민을 구호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달 22일 어느 신문사 기자는 "민생문제가 도탄에 빠진 오늘날 우남회관 건립에 막대한 비용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질문지를 경무대에 제출했다가 대통령 직속 공보실에 의해 차단됐다(이틀 뒤 1면).
결국 이승만 정권은 공사를 마치지 못한 채 몰락했다.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 11월 7일에 개관한 건물의 명칭은 우남기념회관이 아니라 시민회관이다.
이승만을 몰아내는 데 참여한 서울시민들이 공사를 마무리한 뒤 자신들의 이름을 건물 명칭에 넣었다.
이 건물은 1978년에 세종문화회관으로 개칭됐다.
민심 등지게 된 이승만 미화
▲2023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정권도 '현대판 우남기념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인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한국인들은 이승만이 왜 하와이로 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국민을 상대로 이승만을 미화하고 기념관 건립에 관한 동의를 얻으려면 역사 왜곡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승만 미화는 민심이 윤 정권을 등지게 된 주요 요인이다.
이승만 미화에 앞장선 박민식 처장은 2023년 5월 17일 자 인터뷰에서 자신이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승만을 오해했다면서 "보훈처장이 되고 나서 많은 자료를 보고 학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내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승만에 대한 '깨달음'을 부각시켰다.
'지적 퇴행'을 '깨달음'으로 자평한 그는 '이승만의 공과 과를 두루 보자'며 이승만 왜곡에 앞장섰다.
그는 취임 2개월 뒤인 2022년 7월 19일에는 이승만 57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며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승만 출생 148주년인 2023년 3월 26일에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공식화했다. 4월 7일에는 보훈처가 예산 460억 원을 책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태평양 너머로 날아가 이승만 메시지를 역송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미국 시각으로 그달 28일, 그는 워싱턴에서 미국 학자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재조명'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미국인들은 이승만이 일본과 긴밀했던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일, 친일 청산을 저지한 일, 친일파를 중용한 일 등을 호평했다.
상당히 어이없는 좌담회였다.
박민식은 '메이드인 아메리카' 망언들을 서울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국민 인식을 바꿔보고자 했다.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해줄 권위 있는 학자들이 국내에 있었다면, 이승만에 관한 논리적 준비가 덜 된 미국 학자들의 입을 빌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이승만 미화가 한국 역사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박민식은 5월 17일에는 '민간이 건립을 추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러더니 6월 28일, 민간이 주도하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뒤이어 9월 10일,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 모금이 시작했다.
11월 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500만 원을 기부했다.
11월 9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화문 동편의 송현동을 기념관 부지로 거론했다. 12월에는 국가보훈부가 이승만을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2024년 2월 1일에는 영화 이 개봉되고 윤 정권이 힘을 실어줬다.
그해 8월 13일, 기념관 부지가 서울 용산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석 달 뒤 12·3내란이 실패하면서 기념관 건립은 동력을 잃었다.
이승만 때는 기념관 건립 공사가 시작되기라도 했지만,
윤석열 때는 삽도 못 뜨고 동력을 잃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반공세력
▲2024년 3월 26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이 놓여있다.연합뉴스
윤 정권이 역사 왜곡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승만을 미화한 일은 탈냉전 시기의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4·19혁명으로 추락한 이승만의 위상이 탈냉전과 제1차 북핵위기를 계기로 일정 정도 되살아난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탈냉전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문익환 목사 등이 김일성과 회담하고(1989.3.27.) 전대협 대표 임수경이 평양을 방문하고(6.30.) 노태우 정권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1991.12.13.)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1993.2.25.)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을 받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1993.3.13.)하면서 한반도는 탈냉전과 어울리지 않는 제1차 북핵위기에 휘말렸다.
이로 인한 한반도 긴장은 1994년 상반기에 다소 누그러졌다.
탈냉전으로 한국인들의 의식이 변하는 가운데서, 커질 것 같던 북핵위기가 더 크게 확산되지 않은 상황은 냉전시대 주역인 반공세력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들이 독재자이자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는 원인이 됐다.
4·19혁명 이후 숨죽였던 이승만 지지자들이 노골적으로 이승만을 미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친일군인 백선엽과 반공검사 오제도 등을 규합해 긴급모임(1994.2.4.)을 갖는 등의 움직임을 보인 반공주의자 이철승(1922~2016)은 1994년 3월 13일 자 인터뷰에서 "여야 정치인 할 것 없이 전범의 테러리스트인 김일성을 못 만나 안달을" 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건국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을 거론했다.
1994년 6월 15일 지미 카터(1924~2024) 전 대통령의 방북은 북핵위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진전시켰다.
북·미 양국은 그해 10월 21일 제네바합의를 체결하고 위기를 봉합했다.
카터의 방북은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합의(6.18.)라는 뜻밖의 성과도 낳았다.
탈냉전의 훈풍이 한반도 냉전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반공세력의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
그해 6월 30일의 일이 다음 날 에 이렇게 보도됐다.
"30일 정오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우남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활성화를 위한 모임이 각계 인사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 기념사업회는 70년대 초반에 조직됐지만 그동안 활동이 지지부진해오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국가 기반을 닦은 위인을 푸대접해서는 안 된다'는 원로들의 의견이 높아지자 활성화를 위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9587&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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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3:09((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김건희의 패악질))
왕도 절제했던 종묘, 김건희는 카페로 썼다
지난해 종묘에서 대통령 부인이 차담회... 지켜야 할 종묘 대신 권력에 고개 숙인 국가유산청
이민규(zkzk753)
25.08.27
▲종묘 망묘루. 망묘루란 '종묘를 바라보는 누마루 집'을 뜻하며 누마루는 보통 마루보다 다락처럼 높고, 세면이 개방되어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루다. ⓒ 국가유산포털
▲종묘 주요 지도. 빨간 테두리한 곳이 망묘루다. ⓒ 궁능유적본부
지난해 9월 3일, 종묘 망묘루에서 벌어진 일은 역설 그 자체였다.
조선의 왕들조차 제례 때만 발 디딜 수 있었던 공간이 대통령 부인의 '차담회'라는 이름의 사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소방차 전용문은 권력자를 위한 전용 통로가 되었고,
냉장고와 가구가 반입되면서 수백 년간 지켜온 금기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곳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역사의 것인가 아니면 권력자의 것인가.
조선 왕조는 스스로 절제했다.
종묘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제례라는 공적 절차로만 접근했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은 그 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CCTV는 멈췄고,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대청소를 강요받았다.
종묘라는 세계유산은 역사와 기억의 상징이 아니라,
한 사람의 권력을 치장하는 무대장치로 쓰였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답은 간단하다.
종묘는 두 번 무너졌다.
한 번은 김건희 여사의 발걸음에, 또 한 번은 국가유산청의 침묵에.
당시 국가유산청과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종묘가 그런 식으로 쓰여선 안 된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들은 권력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차담회를 위해 직원들을 동원했고, 냉장고를 옮겼으며, 대청소를 지시했다.
문화 유산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권력의 시종이 되어버린 순간 종묘는 또다시 두 번 무너졌다.
한 번은 대통령 부인 앞에서,
또 한 번은 그 부인을 향해 침묵한 관리들의 태도 속에서.
▲2024년 10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국빈 방한 공식 환영식에 서있다. ⓒ 연합뉴스관
비슷한 장면을 해외에서 떠올려보자.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파를 들여놓고 손님과 차를 마신다?
영국 왕실도 버킹엄궁을 개인의 응접실로 열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의 부인도 백악관에서 무슨 모임을 열든 기록과 절차를 투명하게 남긴다.
그 기준은 단순하다.
바로 공공의 자산은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한국의 종묘에서는 이 기준이 무너졌다.
김건희 여사의 차담회는 단순한 사적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그 권력에 편승한 기관이 함께 빚어낸 일이다.
당신들이 지켜야 할 것은 권력자의 기분인가, 수백 년 이어진 우리의 역사인가.
왕도 절제했던 공간을 대통령 부인은 쉽게 넘어섰고,
그 잘못을 견제해야 할 관리들은 스스로 권력에 무릎을 꿇었다.
종묘는 아직 서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유산 의식은 그날 무너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유산에도 실립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60491&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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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3:04고종 후손의 분노 "김건희가 왕후인가? 어찌 종묘를 사적으로 쓰나"
'김건희 망묘루 사적 차담회' 사건 재점화... 의친왕기념사업회 "대한민국 국격 떨어트려"
글: 김지현(diediedie) 사진·영상: 권우성(kws21)
25.08.27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인 종묘(宗廟). 사진은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망묘루'. ⓒ 권우성
고종황제 장증손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은 분노했다.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건희씨가 영부인 시절이던 2024년 9월 3일 지인들을 불러 세계유산 종묘 망묘루에서 사적 차담회를 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대통령 영부인은 왕조시절 왕후나 대비마마가 아니라 위대한 국민들이 뽑은 선출직 공무원 대통령의 부인"이라면서 "세계문화유산 종묘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스스로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린 것에 규탄하며 정식 사과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망묘루는 '임금의 정자'다.
'김건희 망묘루 사적 차담회' 사건은 지난해 12월 중순께 JTBC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의친왕기념사업회는 김건희씨를 규탄하는 입장을 냈었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 대선이 지나면서 잊히는 듯했지만 다시 사건은 재점화했다.
지난 26일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고양갑)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가유산청장에게 질의하면서다.
김 의원의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김건희씨는 2024년 9월 3일 지인 등 6명과 종묘 안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었는데, 이를 위해 전날(9월 2일) 냉장고 등 창덕궁에 있던 가구를 옮겨 설치했다.
종묘관리소 직원들은 김건희씨의 차담회를 위해 거미줄을 제거하는 등 청소를 단행했다. 뿐만 아니라 차담회가 열렸던 날은 종묘의 휴관일이었는데 소방차 등이 드나드는 소방문을 통해 차량으로 경내에 진입했고, 경내 CCTV를 껐다고 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국가유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고종 장증손의 일침 "김건희에게 누가 사적이용 권한을 줬나"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인 종묘(宗廟). 사진은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망묘루'. ⓒ 권우성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장은 27일 오전 와 한 인터뷰에서
"김건희씨가 너무나도 생각이 짧았다"면서 "영부인이라는 권력을 이용한 월권행위"라고 규정했다.
특히 "종묘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유산 문화재이고, 저희 황실 후손 입장에서는 조상들을 모시는 신성한 곳"이라면서 "선조들도 종묘에 갈 때는 예를 갖췄는데, 영부인이 아는 사람을 불러 차담회를 장소로 썼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무시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그는 "황실의 후손들도 성묘 시기에 입장료를 내고 종묘에 입장한다.
휴관일에도 못 들어간다"면서
"당연히 정부의 법과 규정을 따른다.
심지어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향 한 자루 사르거나 술 한잔 올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황실 관계자 역시 공화정에서는 법률을 준수해야 하는 시민과 똑같다고,
하물며 영부인도 시민일 뿐'이라고도 강조했다.
이준 회장은 "종묘관리소 공무원들에게 들은 내용에 따르면 당시 외국인 2명과 신부, 스님 등이 종묘 망묘루를 사용했다"면서
"영부인이 과거 코바나콘텐츠 운영 시절 주관한 마크 로스코 전(展) 때 인연을 맺었던 마크 로소코 작가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소코씨 등이 현장에 왔었다고 한다"고 했다.
2024년 9월 초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마크 로소코 작가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소코씨와 딸 케이트 로소코씨가 한국에 방문했었다.
그는 "종묘관리소장이 다른 공무원들에게 대통령실로부터 받은 지시를 전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가끔 궁능유적관리본부나 종묘관리소에서 행사가 있을 때 황손들에게 의견을 묻곤 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종묘가 남편이 뽑은 공무원한테 명령해 궁궐 가구 가져다 차 마셔도 되는 곳인가"
▲‘종묘가 김건희 개인 카페냐’ 어처구니 없는 그 현장 다녀왔습니다. 권우성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공식 입장문을 냈다.
이준 회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종묘를 신성시하고 경건한 자세로 여기는 종묘의 직계 후손들은 국가원수 부인의 행동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라고 분개했다.
"저희 직계 조상님 모신 사당이자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에서 지인들과 깔깔거리며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함부로 사용한다는 말입니까?
후손들에게 허락 받았습니까? 국민들에게 허락 받았습니까?
남편이 뽑아준 국가유산청장한테 명령하고 언제든 궁궐의 가구를 가져다가 세팅하고 지인들과 차 마셔도 되는 곳입니까? (중략) 권한을 누가 줬습니까?
김건희 여사의 세계문화유산 종묘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린 것에 규탄하며 정식 사과를 요청합니다."
한편, 는 2024년 9월 3일 김건희씨의 망묘루 사적 사용 당시 참석자와 행사 목적에 대해 국가유산청에 질의했지만 27일 오후 3시 현재까지 답변을 듣진 못했다.
다만 전날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아주 부적절한 사례"라며
"잘못된 행위를 했으면 반드시 감사 청구하고 고발 조치해 엄중히 문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60512&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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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2:57[2]
대기업 인사팀의 수상한 움직임... 상상도 못 한 영입 제안
[이동철의 노동OK]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이후 기업·노조·정부가 해야 할 일
이동철(leeseyha00)
25.08.27
정부, 시행령으로 노란봉투법 취지 훼손해서는 안 돼
정부에도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에 원청 대기업은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부인하며 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경우 하청 노조는 노동위원회에서 원청 대기업이 갖고 있는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입증해 원청 대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원청 대기업이 막무가내로 사용자성을 회피한다면 불가피하게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기준과 노동쟁의 범위를 구체화시키고, 교섭의 절차 등을 규율하는 것은 정부에서 정한 시행령과 행정지침입니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다단계 하청 노동을 사용해 이윤을 취하면서도 정작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던 모습에 대응하여,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폭넓게 확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사용자 판단기준과 노동쟁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으로 이름 붙여진 노조법 제2조와 3조 개정안의 명칭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서 유래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47억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했습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받았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노조 간부들이 기업의 손해배상 가압류로 목숨을 잃었고,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요구를 회피한 원청 대기업의 탐욕에 맞서 스스로를 가두고 농성했습니다.
기업의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반대 캠페인을 주도한 시민단체 손잡고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 잡고)는,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노란봉투법'이 법을 지키지 않는 자본가들이 법의 허술한 점을 비집고 들어가 만들어낸 창살없는 '돈의 감옥'에 갇힌 '노동권'이 해방될 수 있는 '작은 출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의 감옥'의 처참함을 온 몸으로 세상에 드러내준 건,
사법부가 기존 '판례'를 변경할 수밖에 없도록 천문학적 손배청구에도 굴하지 않고 '교섭'을 시도해온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이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제 기업이, 노동조합이 그리고 정부가 이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 너머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60276&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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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2:54[1]
대기업 인사팀의 수상한 움직임... 상상도 못 한 영입 제안
[이동철의 노동OK]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이후 기업·노조·정부가 해야 할 일
이동철(leeseyha00)
25.08.27
요즘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동조합을 조직해 교섭과 투쟁을 지도하던 노동조합 간부나 고용노동부 고위공무원에게 기업의 러브콜이 자주 들어옵니다.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의 통과 때문입니다.
과거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조 측의 투쟁을 기획했거나 하청 노조의 운영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노조 간부, 혹은 향후 법적 분쟁에 대비해 노동 행정을 담당한 전관을 영입해서 노사관계 전략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됐습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로 사용자 개념을 기존의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에서 특정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 지배력을 가진 자"로 넓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노조에 속한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근로 관계가 없는 원청 기업도 교섭에 나서야 합니다.
원청 기업이 기존처럼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고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리해고처럼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노사교섭의 대상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텐데요.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이나 생산시설 이전 등의 사안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를 기업의 '고도의 경영상의 판단'으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경영자 단체와 일부 친기업 언론에서는 노조가 마구 파업을 할 것처럼 보도하는데 파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노조법상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사 간에 교섭과정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못한 사안을 '노동쟁의'라고 하는데요.
교섭 과정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지방노동위원회라는 곳에서 의무적으로 조정을 거쳐야 합니다.
조정이 결렬 되어야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쟁의' 대상이 아닌 것은 조정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해고나 사업장 이전, 그리고 사업장의 폐업은 조정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정을 거치지 않은 정리해고나 폐업에 반대하는 노조의 생존권 투쟁은 대부분 불법파업이 됩니다.
이제 기업은 정리해고나 생산시설의 이전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 내용 중 근로조건과 밀접한 결정은 노동자들과 성실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의 청구를 책임에 맞게 제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파업한 노조와 조합원에 대해 기업이 막대한 손해배상금액을 청구하여 노조활동이 위축되고 노동자의 생계가 위협 받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책임 정도에 맞게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됩니다.
기업은 노란봉투법 인정하고 장기적 노사관계 전략 마련해야
노란봉투법의 통과로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자단체는 울상입니다.
하청 노조의 무리한 교섭 요구와 파업으로 노사관계가 불안정해질 것이라 우려합니다.
사업 경영 결정까지 노동쟁의에 포함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사관계 불안으로 인해 사업을 국내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조법의 개정 내용들은 없었던 노동자의 권리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판결을 통해 대기업이 하청 노동자를 사용해 이익을 누리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순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2010년 현대중공업의 하청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시작으로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했다면, 노조법에 따라 하청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교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쏟아졌습니다.
최근에도 법원은 CJ대한통운이 집화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만큼, 택배노조와 교섭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의 교섭요청을 거부한 한화오션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교섭의무를 인정한 법원의 판례를 기반으로 이를 입법화한 것입니다.
기업들은 엄살을 그만 부리고 노란봉투법이 현실화된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노사관계는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하청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부정적인 미디어 노출은, 고객사에 대한 적절한 제품과 서비스 공급에 지장을 주고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을 줍니다.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 부족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중요한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대기업은 소송 등 법적 대응에 주력해 하청 노조와의 교섭의무를 회피해 왔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어 교섭의무가 구조화된 지금은, 노조 간부나 전직 고용노동부 고위 공무원을 영입해 노조의 교섭요구나 분쟁에 대응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미봉책보다는 하청 노조와의 소통 채널을 마련하고 노동쟁의 발생 시 효과적인 분쟁 해결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노사관계가 기업의 리스크가 되지 않도록 장기적 노사관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
노동조합도 이제 노란봉투법 이후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다단계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불합리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사회적 공감에 기반해, 대기업의 탐욕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조직하는 한편 장기농성 등 물리적 투쟁으로 원청 대기업을 협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이제 원청 대기업과 교섭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시점에서 노동조합은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원청 대기업과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상설적 협의 창구를 마련하고 분쟁의 가능성을 줄여야 합니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는 노란봉투법 적용이 예상되는 산업 분야의 다양한 노동조합 조직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조직화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준비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조선업,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노란봉투법이 이슈화되었지만, 노란봉투법의 적용으로 하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업종은 더 다양합니다.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합니다.
원청 대기업의 이윤을 하청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과정에서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별 노조의 이해관계를 넘어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윈윈할 수 있도록 상급단체가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교섭을 지도해야 합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60276&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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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2:39나)
다국적기업이 파는 씨앗의 정체... 위험 느낀 '논산 농부'의 고집
[2025 환경생태 현장르포] 더불어농원 권태옥 농부
김고은(0915goeun)
25.08.27
토종씨앗과 이야기를 전하다
토종씨앗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지혜이자, 공동의 지식이자, 빅데이터이기도 하다.
오늘날 더 이상 씨앗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니까 씨앗에서 땅에서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소외되는 것은 우리의 뿌리가 싹둑 잘리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권태옥 농부는 기후위기 혹은 재난의 시대에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작물의 생산과 유통이 모두 다국적기업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라고 말했다.
"기후는 우리가 피부로 많이 느끼잖아요. 현장에서 느끼는 거니까요. 되게 심각해요. 작년과 재작년에 특히 충청남도, 전라북도에 집중적으로 비가 왔어요.
한 달 넘게 계속요. 이런 속담이 있거든요.
백일 가뭄에는 살아도 열흘 장마에는 못 산다.
계속 가물면 수확량이 한두 개라도 나오는데, 장마가 계속 이어지면 다 잠기고 수확량이 하나도 안 나와요. 벌레도 많이 생기고요.
그럼 농약을 더 진하게 쓰려고 할 거 아니에요. 악순환이 되는 거죠.
그래서 기후위기가 오면 오히려 이야기가 더 필요해요.
달력을 보고 몇 월 며칠에 하는 것보다 자연을 보고 농사짓는 게 더 정확하거든요.
그만한 게 없어요.
오디가 나올 때는 콩을 심으면 좋아요. 보리가 나오면 생강을 심을 때고요.
지금은 뻐꾸기가 울 때예요. 자기 둥지에 안 낳고 다른 둥지에다 알을 낳거든요.
그럼 콩하고 팥하고 준비하는 거죠. 이런 데이터가 많아야 진짜 좋아요.
이게 없이는 기후위기에 대처를 할 수가 없어요."
농부들은 온몸으로 더위와 추위, 비와 바람을 맞는다.
햇살이 어떤지, 습도가 어떤지, 기온이 어떤 속도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작물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다.
그러므로 기후 변화를 더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권태옥 농부는 근 10~20년 사이에 기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세상은 더 편해진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짜 그런지는 의문이다.
과거에는 씨만 뿌리면 웬만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농약이나 비료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됐다.
토종씨앗은 그나마 낫다.
자신이 자랄 땅에서, 변하는 기후 속에 맞춰 적응해 왔기 때문이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동안 뿌리를 이어온 작물이다.
그런데 다국적기업에서 판매하는 씨앗은 그렇지 않다.
다국적기업의 씨앗은 10~20년 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구체적인 지역의 땅에서 적응한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도 없다.
불임처리가 된 일회용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태옥 농부가 토종씨앗을 모으고 지키는 일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토종씨앗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모아 잇고,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농가와 작물을 전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기후가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에, 씨앗을 소수의 기업만 가지고 있는 것은 향후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몇 안 되는 다국적 종자회사가 전 세계 씨앗을 다 갖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눈이 펑펑 와서 채종을 못 하면 어떡해요.
미국 텍사스가 원래 겨울에도 영상 10도 이상을 유지했는데, 갑자기 2021년에 폭설이 오고 영하 22도로 떨어졌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공급이 안 되고 사람들도 얼어서 죽었어요.
공장도 다 멈췄고요.
그런데 만약 다국적 종자회사가 채종하는 곳에 이상 기후가 와서 하나도 채종을 못 하게 되면 어떡해요.
전 세계가 다 여기서 씨앗을 받아서 작물을 기르는데. 되게 심각한 얘기죠.
그래서 우리가 지키는 거죠.
여성 농민이 씨앗 지키는 일을 잘하니까, 우리가 지키자."
▲씨앗을 받기 위해 준비중인 더불어농원 김고은
권태옥 농부는 여성 농민들과 함께 논산 지역에 토종씨앗을 수집하러 다녔다.
벌써 8년째다.
하지만 한 동네를 다 돌아다녀도 한 알이 안 나올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집에 없어서 만날 수가 없자, 6~7월 2시부터 5시 사이에 대문을 두드렸다. 가장 덥고 뜨거운 시간이라 집에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땡볕 더위 아래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니 처음에는 토종씨앗이 몇 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양이 확확 주는 것이 느껴졌다.
토종씨앗은 할머니들만 갖고 있었는데, 많이 심는 몇 가지만 남아 있어 다양하지가 않았다. 그마저도 할머니들이 일찍 요양병원에 가면서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텃밭에서 이것저것 다 심어서 먹던 시대가 지났어요.
한 종류만 농사지어서 갖다 팔고 그 돈으로 다른 걸 사 먹으니까 씨앗이 없어졌어요. 도로랑 가까이 있는 동네에는 거의 없고, 산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심고 또 심고 했던 게 남아있어요.
어느 동네에서 하나라도 나오면 그동안 찾으러 다녔던 보람을 느끼죠. 정말 심각해요. 다양하게 나와야 정상이거든요. 다양하지 않아요.
할머니들도 거의 다 돌아가셔서 몇 년 사이에 없어질 것 같아요."
그럼에도 권태옥 농부는 계속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더불어농원에 심어 그 대를 잇는다.
한 행사장에서 누군가 그에게 내년 계획을 물었을 때, 권태옥 농부는 당연한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단다.
그에게는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올해 씨를 뿌리고 씨를 거두었던 것처럼, 내년에도 당연하게 씨를 뿌리고 씨를 거둘 것이다.
올해도 내년도 그 후년에도 권태옥 농부는 토종씨앗을, 토종씨앗으로 일궈낼 땅을, 토종씨앗과 함께 전해질 이야기를, 먹거리의 뿌리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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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5-08-28 02:34가)
다국적기업이 파는 씨앗의 정체... 위험 느낀 '논산 농부'의 고집
[2025 환경생태 현장르포] 더불어농원 권태옥 농부
김고은(0915goeun)
25.08.27
비가 한참 오다 잠시 그쳤던 유월, 충남 논산의 더불어농원을 찾았다.
권태옥 농부를 만나기 위해서다.
권태옥 농부는 남편 신두철과 함께 저탄소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다.
오전 일찍 더불어농원에 도착했는데도 권태옥 농부의 하루는 이미 진작에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비 온 뒤에 속절없이 자라난 풀을 솎아 내기 바쁘다.
평소에 다양한 작물을 섞어 함께 기르고, 풀도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비닐을 치거나 과하게 솎아 내지 않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때에는 풀이 작물을 덮친다.
그러니 진짜 바쁜 건 손보다도 마음이다.
다시 비가 쏟아질 텐데, 이런 이상 기후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농원 한편에는 텐트가 보인다.
신두철 농부가 집에 들어올 시간도 부족해 농원에서 잠을 자는 곳이라고 했다.
이토록 정신없이 바쁜 유월에도 권태옥 농부는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인터뷰 이틀 전에는 더불어농원에서 마르쉐 햇밀장 10주년 이벤트가 열렸었다.
앉은키밀을 농사짓는 권태옥 농부와 밀로 음식을 만드는 작업자, 밀을 먹는 시민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고 했다.
권태옥 농부는 현재 논산시여성농민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은 아니다.
젊었을 적에는 회사에 다니기도 했고 부산에 산 적도 있다.
어쩌다가 논산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냐고 묻자 그는 소탈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이, 친정이 여기니까. 그냥 땅이 있으니까 농사지은 거죠. 특별한 계기로 온 게 아니에요. 내가 토종 씨앗을 지키니까 사람들이 이걸 제일 많이 물어봐요. 어떤 계기로 농사를 짓고 토종 씨앗을 지키게 됐냐고요. 그냥 당연한 거예요."
농사는 땅이 있으니 짓게 되었다.
토종 씨앗은 마을 어른들처럼 농사를 짓다 보니 지키게 되었다.
한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들인데, 오늘날엔 자꾸만 사람들이 당연한 것을 묻는다.
그래서 권태옥 농부는 거꾸로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이 시대에 '이렇게 사는 것이 맞냐'고 묻고 싶어 한다.
이날 나눈 대화는 온통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씨앗을 밑지다'라는 말이 사라졌다
▲더불어농원 김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요리하고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아무리 당근을 많이 먹고 썰어도, 그 당근의 이파리며 줄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당근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작물을 먹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작물을 기르는 농부들도 다른 작물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농부들은 다국적기업에서 판매하는 이름 모를 모종을 사다가 작물이 상품이 될 만큼만 키우고 판다.
이 과정에서 농부들은 씨앗의 생김새나 작물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농사가 공장화되면 비료도 더 많이 들고 농약도 더 많이 든다.
다국적기업에서 판매하는 씨앗, 화학 비료, 농약이 한 세트다.
이렇게 집약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땅을 망가트리고 기후 변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런데 왜 농부들은 공장식 농사를 짓고 있을까?
이렇게 해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씨앗을 농부가 직접 만지지 못하는 것처럼 작물의 가격 형성에도 농부가 관여할 수 없다. 다국적기업에서 주는 대로 작물을 심고, 경매에서 불리는 대로 작물을 판다.
"그렇게 해야 먹고 사니까 계속되는 거죠. 주권이 농민에게 있는 게 아니에요.
씨앗의 주인도 내가 아니고, 내가 지은 농산물의 주인도 내가 아니거든요.
이게 되게 심각한 문제예요.
그런데 모종을 사서 심은 시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다니까요.
길어봤자 20~30년이에요.
그전에는 씨를 뿌려서 잘 걷었다가, 또 다음에 씨 뿌리고 그랬어요, 누구나.
만약 내가 심은 데서 씨를 하나도 못 구했어, 그러면 옆집에서 빌려와요.
'누구 엄마, 나 이번에 150일 배추를 심었는데 하나도 안 나왔네, 씨앗을 밑졌네. 이거는 우리 친정 동네에서 갖고 왔는데, 시퍼런 콩이라고 밥에 넣으면 검은색 물이 안 나와서 너무 좋아. 이거하고 바꿔줘.'
그러면 서로 바꿔요.
씨앗을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물물교환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씨앗을 밑졌다는 단어가 없어졌어요.
시골에서도 그 말을 안 써요."
권태옥 농부에게 어려서부터 농사는 받아둔 씨앗을 심으면서 시작되고,
다 자란 작물에서 씨앗을 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농사란 씨앗에서 시작해서 씨앗으로 끝나는 셈이다.
이때 씨앗이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것, 잘 나오면 서로 나누는 것, 그러니까 이웃끼리 "그냥 주는" 것이었다.
씨앗은 조금만 있어도, 몇 알만 있어도 몇백 배로 수확이 나니까 충분했다.
때로 농사가 잘되지 않아서 씨앗을 거두지 못해도 걱정이 없었다.
"씨앗을 밑졌다"는 말은 이번 농사에서 씨앗을 충분히 얻지 못했으니 옆집에서 얻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씨앗을 독점할 이유도 사고팔 이유도 없었다.
농사는 혼자 짓는 게 아니니까, 땅과 하늘과 온갖 생물이 함께 짓는 것이니까,
이웃들의 손을 거쳐서 함께 이어 나가는 것이니까,
돈 주고 씨앗 거래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씨앗은 다국적기업이 독점해서 판매한다.
결과적으로 농사 풍경에서 씨앗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농부는 이웃과 씨앗을 나누고 이어가지 않는다.
씨앗은 자신의 터전에서 뿌려지지 않고 발화하지 않는다.
작물은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품지 않는다(불임처리한 일회용 씨앗의 경우).
이 모든 과정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작물들은 씨앗을 틔울 땅과 분리된 채로 태어나 지구적 순환과 단절된 생애를 살아가고, 다음을 잇지 못한 채로 소멸된다.
이 시대 인간의 불안과 외로움은 어쩌면 우리가 먹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씨앗을 갖고 있다가 물려줘야지.
근데 그냥 물려주면 안 되고, 이야기를 물려줘야지. 전달을 잘해야 돼요.
이게 진짜 중요한 거거든요.
이름들이 다 예뻐요. 얘는 홀애비밤콩이야. 원래는 콩을 3개 심어야 하는데 얘는 하나 심어야 돼요. 그래서 홀애비라고 해요. 밤은 맛있다는 뜻이고요. 보시면 이렇게 금이 가 있거든요. 이렇게 금 간 애들이 다 맛있어요. 우리 엄마가 두유를 하는 것도 맛있고 두부를 해도 맛있대. 그러면 나도 이제 두부를 해보는 거지."
▲권태옥 농부는 등이 터진 콩들이 맛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독새기콩, 등튀기콩, 홀애비밤콩, 아주까리밤콩 김고은
토종씨앗을 전달하고 나눌 때는 단순히 '씨앗'이라는 물체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언제 어떻게 짓고 수확하면 좋을지에 관한 지혜를 비롯해서, 땅에 심기 전후 혹은 그 주변부의 이야기까지도 포함된다.
왜 이런 이름이 붙였는지, 어떻게 먹으면 좋고 다른 작물들과 관계는 어떤지가 이야기에 녹아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이 콩이, 그리고 이 콩을 심고 먹었을 사람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개념적인 '콩'과 추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콩, 어떤 사람, 어떤 삶의 양식이 씨앗을 전해 받는 사람의 삶을 가득 채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구체적인 삶의 지반을 만드는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44900&PAGE_CD=N0002&CMPT_CD=M011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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