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29
-
tradbred(@tradbred)
- 33 팔로워
- 33 팔로잉
- 소속 방송국 없음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19:26((꼭 반드시 한 번은 읽어 봐야만 하는 글))
남과 북, 그리고 중국마저 외면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주장] 광복절에 생각나는 약산 김원봉, 이제라도 명예 회복해야
김성수(wadans)
25.08.15
▲약산 김원봉(해방 후 모습) ⓒ 몽양기념사업회
제80회 광복절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약산 김원봉(1898~1958)이다.
의열단을 창설하고 조선의용대를 조직했으며, 한국광복군 부사령관까지 역임한 그는 일제강점기 가장 활발한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공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
189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김원봉은 1919년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했다.
의열단은 1920년대 일제와 친일파들이 가장 두려워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다.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 식민통치 기관에 대한 폭탄 투척과 친일파 암살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은 이후 황포군관학교를 거쳐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자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1942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을 맡았고, 1944년에는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문제는 해방 이후였다.
김원봉은 1948년 김구(1876~1949)·김규식(1881~1950)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그대로 북한에 남았다.
이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남한에서는 보수세력들이 그를 '월북자'로 낙인찍으며 배척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목숨을 걸고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운 그의 공로는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에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욱 참혹한 것은 가족들이 당한 비극이었다.
1950년 7월 초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경남 밀양의 김원봉 생가에 군경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표적은 김원봉의 네 동생인 김구봉·김용봉·김봉기·김덕봉이었다.
당시 22세로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막내 김구봉(1928~1950)은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끌려갔다.
아무런 죄목도, 재판도 없었다.
단지 '월북자' 김원봉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였다.
이렇게 끌려간 네 형제는 밀양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 300여 명과 함께 집단 학살당했다.
이승만의 철저한 정치적 숙청
▲경남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1898~1958)의 막내 동생 김학봉씨가 생전인 2015년 8월 14일 오전 밀양시 삼문동 자택에서 약산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 연합뉴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뿌리째 제거하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김구 계열과 김원봉 일가는 그 핵심 타깃이었다.
김구는 1949년 6월 암살당했고, 김원봉의 형제들은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이라는 혼란을 틈타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멸균실 수준'으로 철저히 제거해버린 것이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좌익 전향자들을 계몽·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전시에 적에게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예비검속해 대량 학살한 것이다.
공식 통계만으로도 4934명이 희생됐지만,
실제로는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까지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원봉의 동생들은 보도연맹원도 아니었지만, 단지 '빨갱이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이 참극에 휘말린 것이다.
김구봉의 아들 김용건씨는 2020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어떤 얼굴인지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아버지가 학살당하던 1950년 7월 어머니 배 속에서 태동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원봉은 초기에는 국가검열상·노동상·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8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이후 북한에서도 그에 대한 명예 복원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김원봉이 중국을 무대로 30여 년간 항일투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의 지원을 받았던 아나키스트 출신의 비주류 좌파라는 이유로 굳이 기릴 이유를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김원봉과 그의 가족은 남한에서는 '월북자'로, 북한에서는 '반당 분자'로,
중국에서는 '비주류'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야말로 삼중고의 비극을 겪은 것이다.
75년 만에 밝혀진 진실과 과제
▲밀양에 있는 의열기념관과 의열체험관. ⓒ 윤성효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금기시돼 왔다.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은폐작업은 군사정권 시대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11월, 필자가 몸담았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마침내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 학살당한 사건"임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희생자들의 명예는 회복되지 못했다.
김원봉 집안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빨갱이'로 몰려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나 명예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김원봉의 경우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의 월북이라는 선택을 두고 여전히 찬반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일제강점기 동안의 독립운동 공로만큼은 이념을 떠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역사학자들은 김원봉을 독립운동가 재평가 1순위로 꼽고 있다.
이념을 떠나 순수하게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김원봉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2015년 영화 에서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는 대사가 큰 화제가 됐고,
2019년에는 그의 출생지인 밀양에 의열기념관이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차원의 명예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김원봉은 아직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그의 동생들이 당한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나 명예회복 조치도 없었다.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이런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념과 체제를 초월해 순수한 애국정신으로 조국광복에 헌신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불의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통합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역사교육과 인권의식 제고가 필요하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포를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려 했던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묻는다.
언제까지 약산 김원봉과 그 가족들을 비운의 희생자로 남겨둘 것인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가 해방된 조국에서 '빨갱이'로 몰려야 했고, 그의 형제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적 정의를 실현할 때가 아닌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5725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19:17도쿄 인생사진 '핫플', 그 다리에서 수류탄 던졌던 이 사람
[리뷰] 광복절... , 이 책에 편안하게 압도당하는 이유
이정환(bangzza)
25.08.15
▲양근환, 김구, 박열(왼쪽부터). 1948년 경교장에서 함께 한 모습이다. ⓒ 독립기념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AI가 내놓는 답이다.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인간적인 고뇌와 희생, 그리고 뜨거운 애국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이 말,
그만큼 많은 사람들 소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영화 을 통해 안옥윤 지사(전지현 역)의 삶과 마주했을 때 소감이 그랬다.
영화 에서 격렬하게 총격전을 벌이는 그 장면으로 김상옥 지사(박희순 역)를 접했을 때도 역시 그랬다.
김종훈 기자가 새로 내놓은 (필로소픽)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다.
와 를 통해 중국 등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전한 바 있는 저자가 이번에 선택한 무대는 '하필', 일본이다.
앞서 중국을 무대로 했던 이야기와는 또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양근환 지사의 경우만 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일본 심장부에서 친일파를 처단한 이야기다.
양 지사와 민원식이 1921년 3월 25일 마주쳤던 그 장소, 도쿄역 호텔 2층 14호실은 202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은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희미해 보일 뿐이다.
그를 의열단으로 이끈 '직장 상사'의 유서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의 옛 모습. ⓒ thetokyostationhotel.jp
저자가 전하는 양 지사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양 지사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창덕궁 경비부대에 있었으며, 또한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초의 여성 기자였던 최은희의 부친이 면천해줬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엘리트로서의 자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양 지사가 거사를 벌인 상황 역시 '훌륭한 영화 소재' 그 자체다.
자신을 유학생으로 소개하고 민원식(일제강점기에 시사신문 대표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쿄역 호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양 지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독립을 부르짖는데 어떻게 국내가 평온할 수 있겠냐는 양 지사,
그 코앞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모두 폭도로 매도했다는 민원식.
거사 직전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논쟁이었다고 한다.
도쿄 한복판에서 의열단의 마지막 거사를 결행한 김지섭 지사의 삶도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천상 선생님의 그것.
보통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일본어를 익혀 재판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던 그 삶을 바꾼 것은 '직장 상사'가 남긴 한 장의 유서.
작가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이 한일합병에 분개해 자결하면서 남긴 '여운'에 김 지사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그 후 의열단에 가입한 김 지사가 일왕 왕궁 앞에 도착한 것은 1924년 1월이었다.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그의 품에는 폭탄(수류탄) 세 개가 있었다.
불심검문을 받자 폭탄 하나를 던졌다고 한다.
불발이었다.
김 지사는 왕궁 앞 이중교로 내달렸다고 한다.
다시 폭탄을 던졌지만 또 불발.
현장에서 붙잡힌 그의 법정싸움은 더 영화 같다.
김 지사는 "무죄를 선언하든지 사형에 처하든지 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실로 개나 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소.
이같은 사실은 일본 안에 있는 일반 일본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일이오.
나는 이것을 한 번 알려주고 싶었소... (중략) 다시는 (일본) 관리배들에게 속는 일 없이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세계평화를 위해 싸워주기를 기대하였소."
355만 9784원짜리 호텔, 그 방에 숨쉬는 '여운'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의 현재 모습. ⓒ 김종훈
김 지사가 일본 사람들에게 조선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폭탄을 던졌던 그 곳, 이중교 전경 사진은 참 아름답다.
많은 여행객들이 그 곳을 찾는 이유다.
저자는 "구글 지도에 단 리뷰에 사람들이 반응할 때마다 알람이 오는데, 그 중 가장 반응이 뜨거운 장소가 바로 이중교"라고 전한다.
실제로 이중교는 도쿄 여행 중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핫플'로 잘 알려져 있다.
그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김 지사,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저자로서는 이중교를 마주하며 두 가지를 얻는다.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자, 동시에 그 아름다움의 역사적 여운까지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관광객이면서도, 이렇게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는 걸 경험하는 목격자도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매우 아쉬웠을지 모른다.
양근환 지사가 친일파를 처단한 도쿄역 호텔, 그 방에 머무르려 했지만 포기했기 때문이다.
"예약하기를 누르고 들어가는 순간 가격이 이렇게 나왔다.
세금 포함 355만 9784원. 그랬다.
도쿄역 호텔은 100여 년 전 그때나, 내가 답사를 진행한 2024년 세밑이나 최고급 호텔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급 호텔에 머무를 수 있는 이들은 한정적이다.
그런 곳에 친일파가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항일'의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들이 싸운 상대는 적국이라는 추상이 아니라 최고권력자들이라는 실체였다는 걸 말이다.
숙박을 포기한 도쿄역 호텔 앞에 선 저자가
"그 날 양근환 의사는 어떤 마음으로 이 호텔에 들어간 것일까?"
란 여운과 마주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압도적인 '0페이지'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의 저자 김종훈 기자가 새로 내놓은 책 '항일로드 2000km'. ⓒ 필로소픽
저자로 하여금 이런 여운을 느끼도록 만든 장소, 일본 남단 가고시마부터 북단 미야기에 이르기까지 9개 지역 49곳에 이른다.
책표지를 열자마자 보이는 그 경로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당대 세계적인 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이 고뇌하고 희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진짜 수학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즐거웠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엄숙함, 경건함 또는 비분강개 류의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편안함이다.
저자는 윤동주의 시비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지산 녹차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 보라고 권한다.
일본 전통 풍취를 즐길 수 있는 교쿠센안 카페나 나가사키 온천에서의 하루도 추천한다. "진짜 수학여행을 떠나자"는 프롤로그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는 2000km에 이르는 여정에 대한 소감을 정리한 에필로그에도 이어진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 여행은 혼자 가도 좋고, 둘이 가도 좋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가면 더 귀하다"고 강조하는 정도다.
그저 "그곳에서 알고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과 잠시 마주치면 좋다는 것 뿐이다.
하나하나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수 있는 그 삶은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래서 더 귀한 우리의 이야기니까.
이 책의 여운이 꽤 오래 가는 이유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57074&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16:37'명품사랑'이 빚은 김건희의 비극
[이충재의 인사이트] 디올백 수수에서 시작해 반클리프 목걸이로 끝난 파멸의 시간...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 명품욕, 권력형 부패로 변질
이충재(h871682)
25.08.13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가 결국 구속된 가운데 그의 '비극'이 지독한 명품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건희를 얽어맨 특검의 단초는 '디올 명품백 수수 사건'이었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도 명품 목걸이의 출처가 들통났기 때문입니다.
특검 수사에선 그라프 목걸이, 샤넬 구두,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등의 명품도 김건희 수수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김건희의 시작과 끝을 명품이 장식한 셈입니다.
법원이 12일 구속영장을 발부한 핵심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로, 김건희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반클리프앤아펠 고가의 목걸이가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당초 김건희 측은 이 목걸이에 대해 "모조품으로 직접 구입한 것"으로 행방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모조품은 김건희 오빠의 장모 집 압수수색에서 발견되면서 수사가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지만,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로부터 진품을 구입해 제공했다는 자백을 받아내 급반전을 이뤘습니다.
모조품으로 바꿔치기 한 사실이 입증되면서 김건희 스스로 증거 인멸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셈입니다.
경호용 로봇개 사업자로부터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쉐론 시계는 김건희가 직접 명품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는 윤석열 취임 직후 만난 김건희로부터 "시계를 구매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김건희가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외국에 나갈때 이런 종류의 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건데, 사실상 뇌물로 달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시계가 발견된 장소도 김건희 오빠 장모집으로 이 역시 증거인멸 혐의를 입증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김건희의 명품사랑은 특검이 지난달 25일 윤석열 부부 자택에 대해 실시한 압수수색 영장에서도 확인됩니다.
당시 압수물 목록에는 그라프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 100여개의 품목이 적시됐습니다.
그라프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을 준비한 건 통일교 전 고위간부로,
2022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김건희 여사 선물이니 전해 달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현재 실물은 확보되지 않았지만 구매 영수증이 확인된 점으로 볼 때 다른 장소에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검 주변에선 통일교 측이 명품 선물을 계획한 것도 김건희가 명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준비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김건희가 명품을 선호한다는 건 정권 초기부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취임 며칠 뒤 윤석열 부부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있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당시 김건희 착용한 신발이 디올 제품이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건희의 뇌물성 명품 수수가 이뤄진 시점도 대개 윤석열 임기초입니다.
최재영 목사로부터 디올백을 받은 것은 2022년 9월이었고, 반클리프와 그라프 목걸이, 샤넬 구두 등 수수 시기도 임기 첫해였습니다.
윤석열 당선 이전부터 김건희의 명품욕이 컸고, 정권을 잡으면서 권력을 이용한 명품 소유 욕구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김건희의 명품욕은 널리 퍼져있습니다.
주요 외신들은 디올백 수수와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숍 방문 등 명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를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사치에 대한 명백한 사랑으로 인해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된다'는 내용도 있었고,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50대의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렸습니다.
일부 외신은 한국의 명품 구입액이 세계 1위라는 점을 부각하고,
그 원인으로 '사회적 지위 과시 욕구'를 꼽는 분석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김건희의 과도한 명품사랑을 내면의 결핍이나 외모, 학력 등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찾는 시각도 있습니다.
논문을 표절해 학력을 세탁하고, 경력을 위조해 교수 행세를 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을 쓴 크리스 라반 박사는 유명 브랜드의 가방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가방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부족한 무엇인가를 명품 브랜드의 위력으로 메우고자 하는 '승인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 되고도 명품을 갈망했다면 김건희는 단순한 승인 욕구를 넘어 권력형 부패에 깊이 빠져 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6525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16:32권성동이 쏘아올린 '윤석열 당선무효'
[이충재의 인사이트] 통일교 자금 제공 의혹으로 촉발된 윤석열 대선자금 수사... 쇼핑백 두 개, 현금 10억 추정
이충재(h871682)
25.08.14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교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선자금 수사로 번질지가 초미의 관심입니다.
통일교 전 간부 진술로 촉발된 이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본격적으로 파헤칠 경우 파장은 엄청날 거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입니다.
통일교 자금이 윤석열 대선 캠프에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나면 대선 비용 반납은 물론 국민의힘 정당 해산 기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분석입니다.
액수와 상관없이 불법자금으로 선거를 치뤘다면 당선무효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권성동의 통일교 자금 수수 의혹은 두 건입니다.
통일교 간부가 윤석열이 당선된 20대 대선 직전인 2022년 1월 현금 1억원을 건넸다는 것과 한 달쯤 뒤 권성동이 통일교 한학자 총재를 찾아가 큰 절을 하고 금품이 든 쇼핑백 두 개를 받아갔다는 내용입니다.
특검팀은 통일교가 돈을 건넨 시점이 3월에 치러진 대선 직전이라는 점에서 대선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입니다.
돈을 건넨 통일교 간부가 "윤석열 후보를 위해 잘써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입니다.
주목되는 건 한학자 총재가 권성동에게 줬다는 쇼핑백에 담긴 금액입니다.
돈의 액수에 따라 자금 성격을 보다 명확히 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선 쇼핑백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5억 내지 10억원은 될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과거 뇌물사건 재판에서 5만원권 현금을 가방이나 박스, 쇼핑백에 담는 시연을 했던 상황으로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를 기준으로 일반적인 크기의 쇼핑백에는 3억원~5억원을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계산이라면 쇼핑백 두 개에 담긴 돈은 10억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은 단순한 뇌물이 아니라 이권을 노린 조직적인 계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교는 교인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켜 윤석열의 대선후보 선출을 도왔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알려진대로 통일교는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캄보디아 메콩강 개발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등 통일교 현안과 관련한 각종 청탁을 시도했습니다. 통일교 1인자인 총재까지 직접 나섰다는 건 교단 전체의 명운을 걸 정도로 윤석열에게 올인했다는 방증입니다.
물론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학자 총재가 직접 돈을 건넸다는 진술만 있지 이를 뒷받침할 물증은 아직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교가 돈을 건넨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이 돈이 대선 과정에 사용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건 또다른 문제입니다.
대선 이후 불거질 수 있는 사법적·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거캠프가 자금 조달 및 사용 내역에 대한 안전장치를 철저히 해놓았을 개연성이 큽니다.
만약 특검이 윤석열의 개입 사실을 밝혀낸다면 '당선무효'형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의 수사 의지가 강해 당시 후보인 윤석열까지 수사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대선자금의 실체는 규명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수사가 윤석열의 친구이자 윤핵관의 핵심인 권성동이 직접 돈을 수수한 의혹이라는 점에서 과거 대선자금 수사보다 용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특정종교가 이권을 노리고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뿌렸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전모를 규명해 엄단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습니다.
특검 수사에서 불법 대선자금이 드러날 경우 국민의힘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불법 대선에 따른 선거비용을 반환해야 합니다.
2002년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이 드러나자 이를 변제하기 위해 여의도당사를 팔아 '천막당사'로 옮긴 전례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도이치 발언'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백억원의 선거비용을 토해낼 위기에 놓였습니다.
금전적 피해 외에도 내란 가담 의혹과 관련한 정당해산 여론이 더욱 가열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간판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6384&SRS_CD=0000016346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16:25시계 전달 사업가 “김건희가 대선 후원금 부탁…6명 모아서 냈다”
사업가 서성빈씨 특검에 진술
“김건희가 이들 명단 달라고 했고
이후 대통령 명절 선물 보낸 걸로 안다”
조해영 기자
수정 2025-08-15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시계를 전달한 사업가 서성빈씨가
“김 여사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후원금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라고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씨는 김 여사 쪽이 당시 후원을 한 인사들의 주소 등을 물었고 이후 이들에게 대통령 명의 명절 선물이 보내졌다고도 밝혔다.
서씨는 15일 한겨레에
“대통령 선거 당시 김 여사로부터 후원금을 모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 여사가 ‘상대 후보(이재명 대통령)보다 빨리해야 하니까 여기저기 아시는 분이 있으면 부탁드린다’라고 이야기했다”라고 밝혔다.
서씨는 이같은 내용을 특검팀에서도 진술했다고 한다.
서씨는 2022년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후원금 최고 한도액인 1천만원을 후원 한 바 있다.
서씨는 “6명 정도 모아서 후원금 낸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김 여사가 이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전달했다”며
“이후 김 여사가 대통령 명절선물을 후원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전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주변 사람이 꽤 많아서 6천만∼7천만원 정도”
를 모아서 (윤 전 대통령에게) 후원금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13484.html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02:33((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글))
[b]
한국과 닮은꼴, 역사는 종종 같은 장면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8월15일 한국과 우크라이나
임상훈(anarsh)
25.08.14
2024년 하반기부터, 러시아는 점령지 방어를 강화하며 전선 안정화를 꾀했고,
서방 내부에서는 '현실적 종전안' 논의가 시작됐다.
이 흐름 속에서 젤렌스키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쟁 초기의 강경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며 외교적 입지를 좁히는 족쇄가 되었고,
결국 미·러가 단독으로 종전 구조를 설계하는 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초대 거부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비공식 배제'가 굳어지고 있다.
젤렌스키의 경우, 이승만처럼 동맹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돌출 행동으로 배제를 자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맞춘 전략 수정과 메시지 전환을 미룬 결과,
구조적 불리함이 고착화됐다.
이는 '자초한 배제'라기보다 '적응 실패로 굳어진 배제'에 가깝다.
결국 두 사례는 같은 형식 속에서 다른 본질을 보여준다.
한쪽은 스스로 문을 닫았고, 다른 한쪽은 문이 닫히는 동안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다는 차이다.
1945년 얄타와 포츠담, 1953년 판문점, 그리고 2025년 알래스카.
시공간은 달라도, 강대국이 설계하고 약소국이 밖에서 지켜보는 장면은 변함이 없다. 결정문 속 문장은 길고 세밀하지만, 그 문장을 쓰는 손은 언제나 힘 있는 쪽에 있다.
당사국이 없는 회담장은 종종 전쟁터보다 냉혹하다.
이 장면은 단순히 국제정치의 구조 탓만은 아니다.
구조는 강대국에 유리하게 짜여 있지만, 그 틈새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전략과 외교력은 결국 지도자의 몫이다.
이승만이 자리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나, 젤렌스키가 문이 닫히는 동안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 모두, 각자의 시대에서 배제를 굳히는 선택이었다.
강대국이 마련한 테이블에 초대받기를 기다리는 전략은 언제나 위험하다.
초대장은 필요할 때만 발부되고, 필요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폐기된다.
발언권을 잃은 자리에서의 침묵은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결정이 내려지는 동안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지켜보는 무력감이다.
역사는 종종 같은 장면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달라지는 것은 대사의 언어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뿐이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안에서 줄을 긋고, 누군가는 밖에서 그 줄을 바라본다.
펜을 쥔 적 없는 나라는, 결국 남이 그어놓은 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외교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6948&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02:32((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글))
[a]
한국과 닮은꼴, 역사는 종종 같은 장면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8월15일 한국과 우크라이나
임상훈(anarsh)
25.08.14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위키미디어 공용
1945년과 2025년 8월 15일.
시대와 무대는 달라졌지만, 말과 침묵이 맞서는 장면은 변함이 없다.
강대국들의 이권 분배를 가리는 화려한 수사와 포장된 문장들은, 역설적으로 공허하게 울린다. 그 뒤에서 초대받지 못한 약소국의 강요된 침묵은 절박한 운명과 무력감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강한 울림을 남긴다.
수사학에서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말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선택이며, 그 선택이 담는 의미는 종종 발언보다 오래 남는다.
그러나 여기서의 침묵은 선택이 아니다.
스스로 입을 다문 전략이 아니라, 발언권조차 박탈당한 채 강요된 침묵이다.
그 부당하고 슬픈 침묵이, 역설적으로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80년 전, 한반도의 운명도 그렇게 결정됐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은 찾아왔지만, 그 방향은 이미 2월 얄타에서 강대국들 사이에 그려졌다.
신탁통치 구상이 오갔고, 한반도 처리의 원칙이 물밑에서 합의됐다.
그리고 다섯 달 후 포츠담에서는 "한국의 독립이 적당한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문구가 선언문에 박혔다.
해방을 맞는 순간에도 한국인은 회담장에 없었고,
강대국들이 서로의 이익을 맞바꾸는 사이, 한반도의 미래는 지도 위 선 몇 줄로 나뉘었다.
올해 8월 15일, 우크라이나가 그 자리에 서 있다.
알래스카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종전, 휴전, 혹은 장기 대치를 결정할 협상에 들어간다.
그러나 푸른색과 노란색의 국기는 그 테이블 위에 없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른 나라가, 그 미래를 결정하는 말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테이블 밖에서 그 장면을 지켜봐야 한다.
1945년 2월, 얄타의 혹한 속에서 미국·영국·소련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럽전 종전을 앞두고 전후 질서를 설계하는 회담이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의 땅, 크림반도의 휴양지였다.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오늘 전쟁과 점령의 상징이 된 그곳에서, 한때 점령지였던 한반도의 해방이 논의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제 속 한반도는 중심이 아니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 조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밀려든 부차적 사안에 지나지 않았다.
루스벨트와 처칠, 스탈린 사이에서 오간 대화는 '해방'이라는 희망보다 '신탁통치'라는 관리 방안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전후 한반도의 틀은 그 자리에서 이미 기울고 있었다.
그해 7월, 포츠담에서는 일본의 항복 조건이 공식 문서로 다듬어졌다.
포츠담 선언 제8항에는 "한국이 적절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지, '자유롭고 독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했다.
선언은 승전국이 패전국에 건네는 최종 통첩이었고, 그 안에서 한국은 한 문장으로만 존재했다.
해방을 앞둔 한반도의 미래가 그렇게 모호한 문구에 의탁된 채, 주인 없는 결정문 속에 박혔다.
신뢰를 무너뜨린 지도자가 '자초한 배제'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 전쟁 휴전 협정에 서명하는 유엔군 대표 윌리엄 K. 해리슨 중장과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 남일 대장.위키미디어 공용
8년 뒤에도 똑같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는 전쟁의 총성을 멈추게 할 서명이 이루어졌지만,
그 서명자 명단 어디에도 '대한민국'은 없었다.
문서에 이름을 올린 것은 유엔군사령관,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었다. 전쟁을 치른 땅의 주인조차 부재한 채, 3년의 전쟁은 그렇게 멈췄다.
1945년과 1953년, 두 장면은 서로 다른 전쟁과 상황 속에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당사국 없는 결정'이다.
강대국은 설계하고 서명하며, 약소국은 결과를 통보받았다.
회담장 밖에 선 자의 침묵은, 종종 전쟁터의 포성보다 더 깊고 오래가는 패배감을 남긴다.
1953년 여름, 한반도는 전쟁의 파괴와 피로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휴전 협상은 이미 2년 넘게 이어졌고, 판문점에서는 매일같이 종전의 조건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의 구도는 처음부터 대한민국에 불리했다.
유엔군사령부가 전선을 대표했고,
북한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이 함께 참여했다.
강대국들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는 구조 속에서, 한국 정부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대표된 당사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 불리한 구조를 바꿀 기회를 스스로 좁혔다.
그는 휴전 자체를 반대했다.
전쟁이 멈추면 분단이 고착화된다고 보았고, '북진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를 압박 수단으로 1953년 6월, 반공포로 약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미국과 유엔군사령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조치였고, 동맹국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결국 미국은 휴전 협상에서 이승만을 완전히 배제하기로 했다.
판문점에서 서명한 사람들은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조선인민군총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문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전쟁의 당사자가, 그리고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나라가, 종전의 문서에 서명하지 못하는 장면은 냉엄한 국제정치의 단면을 드러냈다.
휴전 협상장에서 쫓겨난 이승만에게 미국은 다른 형태의 보상을 제안했다.
그것이 1953년 10월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 조약은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제도화했지만,
동시에 휴전 체제와 분단 구조를 영구화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분단 고착화'라는 패배를 받아들였고, 군사적·외교적 안전보장을 얻는 것으로 체면을 유지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강대국과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지도자가 맞이한 '자초한 배제'의 전형이었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 '적응 실패로 굳어진 배제'
▲2017년 7월 7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8월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마주 앉는다.
의제는 단순하지만 무겁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전으로 끝낼 것인지, 휴전 상태로 둘 것인지, 아니면 장기 대치로 끌고 갈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이 회담 구도에서 우크라이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2년 반 넘는 전쟁 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가, 전쟁의 결말을 논하는 자리에 부재한 것이다.
이 장면은 이미 70여 년 전 판문점에서 대한민국이 겪었던 일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그러나 이 부재는 단순한 구조의 산물만은 아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영토 완전 수복'과 '군사적 승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국내 결속과 사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휴전이나 중재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와의 직접 대화를 추진하려는 시점에도,
그는 강경한 전쟁 지속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서방 각국에서는 전쟁 피로감과 지원 축소론이 고개를 들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56948&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01:59[사설] 또다른 정치검찰 흑역사, ‘청와대 하명수사’ 무죄 확정
수정 2025-08-14
이른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이 14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해 판을 키운 정치적 사건이 검찰의 패배로 결론 난 것이다.
곧 해체될 운명에 처한 윤석열 ‘정치검찰’의 흑역사 리스트가 한줄 늘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송철호 전 울산시장,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송 전 시장 당선을 돕기 위해 당시 청와대와 경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송 전 시장 등이 울산경찰청장이던 황 의원과 청와대에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의원)과 관련한 수사를 청탁했다며 2020년 1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의 발단은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의 동생이 지역의 건설업자 김아무개씨와 맺은 ‘30억원 불법 용역계약’으로부터 비롯한다.
김씨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유력했던 김 시장의 동생으로부터 ‘형(김기현)이 울산시장이 되면 사업상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계약이 이행되지 않자, 김씨는 김 시장 형제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검찰(2016년)과 경찰(2018년)에 의뢰했다.
그런데 검찰은 고발인인 김씨를 별건수사로 구속했고,
김 시장 형제는 무혐의 처분했다.
구속된 김씨는 검찰로부터 “송철호 시장과 황운하 청장의 비리를 진술하면 풀어준다고 회유 및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김씨의 지인을 소환해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라고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쯤 되면 검찰의 편향된 수사가 오히려 감찰 및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9년 11월 이 사건을 울산에서 서울로 가져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으로 판을 키운 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검찰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가족을 집중 수사하고 기소해 청와대와 갈등이 커진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저지하고 윤석열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칼을 겨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인 지역 토착비리 의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편파수사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213345.html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01:56특검 다음 타깃은 감사원…최재해·유병호 기소되면 ‘직무정지’
김건희 특검팀, 관저 의혹 ‘봐주기 감사’ 수사
감사원 내부 의견서·문건·이메일 등 남아 있어
김남일 기자
수정 2025-08-14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수사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에 정치권 관심이 쏠린다.
핵심 국가시설 이전을 아무 권한 없는 김건희씨가 주도하고,
여기에 대통령실과 경호처 등이 총체적으로 연루된 사실을 감사원이 덮어줬다는 의혹 전반이 수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봐주기 감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위원은 기소만 해도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감사원장 등 지휘부 사퇴 요구 성명까지 나온 감사원 내부에서는 수사 방향에 관심이 큰 상황이다.
특검팀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 의혹 강제수사 첫 타깃으로 관저 공사를 주도한 21그램, 공사 이전 실무를 총괄한 김오진 당시 대통령실 관리비서관, 관저 이전 의혹을 조사한 감사원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우선 김건희씨 사업을 후원했던 무자격 업체 21그램이 관저 증축 공사를 어떻게 하게 됐는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오진 전 비서관은 21그램이 공사를 맡게 된 경위에 대해 ‘누가 추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와 밀접한 분들이 추천했다’는 식으로 함구한 바 있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지만,
관저 준공검사조서 조작 등과 관련한 허위공문서 작성(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과 이를 지시(직권남용)한 대통령실 인사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 시절 측근인 윤재순 당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등이 수사 대상이다. 관저 공사를 배후에서 총괄한 혐의를 받는 김건희씨는 직권남용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관저 감사 범위 축소 의혹
관저 이전 의혹 수사와 관련해 특검팀은 감사원을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압수수색했다.
김건희씨와 21그램 의혹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감사원 조사 기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비교적 입증이 쉬울 것으로 보이는 21그램 선정 과정 수사가 마무리되면,
특검팀은 곧바로 감사원의 봐주기 감사 의혹 및 관저 스크린 골프장 뇌물 의혹으로 수사 방향을 틀 전망이다.
이 경우 감사원은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
봐주기 감사 논란을 규명할 감사원 내부 검토의견서, 감사위원 작성 문건, 내부통신망 기록, 이메일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추가 압수수색이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참여연대는 관저 부지 변경 과정에 김건희씨가 관여했는지 등 핵심 의혹을 감사 대상에서 임의로 빼버린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로 최재해 감사원장과 김영신 감사위원, 최달영 당시 사무총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는 직권남용 혐의를 추가해 이들을 다시 고발했다.
검찰과 공수처는 특검팀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6∼7월 고발 사건을 모두 민중기 특검팀에 이첩했다.
고발 내용은 2022년 12월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가 참여연대의 감사 청구 범위를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감사 실시를 결정했는데, 감사원이 임의로 감사 범위를 축소해 감사를 진행하고 이를 감사보고서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당시 감사원은 관저 이전 의혹 감사보고서에 “관저 이전 대상지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변경된 것과 관련해서는 국민감사청구심사위에서 부지 선정을 제외한 관저 이전 과정에서 법령에 규정된 필수 절차를 거쳤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으로 의결했다”며,
이에 따라 관저 이전 부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변경되는 의사 결정 과정을 감사 대상에서 뺐다고 밝혔다.
이미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이전이 확정돼 관련 절차가 진행된 상황에서 아무 이유 없이 부지가 바뀌었는데도 이를 감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당시 감사원 행정안전1과에서 국민감사청구심사위 회의를 위해 작성한 검토의견서가 있으며, 심사위는 이 의견서에 따라 ‘국무회의 외에 다른 필수 절차를 거쳤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참여연대의 감사 청구 취지대로 감사 실시를 의결했다고 한다.
올해 초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심판 때는 이런 의견서가 존재하는지 몰라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관저 이전 의혹 감사보고서에는 이 외에도 감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관계와 다른 허위 내용이 여럿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감사보고서 의결을 앞두고 조은석 감사위원(현 내란 특별검사)이 내부통신망을 통해 감사보고서 허위 작성 부분과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문건을 작성해 공유했지만, 김영신 주심 감사위원과 최재혁 행정안전감사국장 등이 이를 무시하고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21그램 직접 조사 방해 의혹
관저 이전 의혹 감사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이었던 유병호 감사위원은 21그램에 대한 직접 조사를 막았다는 혐의(직권남용)로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고발된 상태다.
앞서 한겨레는 관저 감사 초기 실지감사를 맡은 감사관들이 감사원법에 따라 민간업체인 21그램 대표에게 ‘출석 조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이를 보고받은 유병호 당시 사무총장이 질책하며 ‘질문서만 보내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관저 공사에 참여한 지게차 업체까지 직접 조사했던 감사원이,
정작 관저 불법 증축 공사를 총괄한 21그램에 대해서만 납득할 수 없는 감사 지휘를 한 것이다.
결국 감사 실무자는 21그램 쪽에 ‘출석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21그램 직접 조사가 빠진 최종 감사 결과는 지난해 5월 감사위원회의까지 그대로 올라갔지만, ‘이게 말이 되느냐’는 조은석 감사위원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감사보고서가 부결되자 감사원은 그제야 21그램 등에 대한 직접 조사를 했지만,
이미 나온 감사 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21그램 직접 조사가 빠진 감사 진행과 감사 결과 부의에는 최재해 감사원장, 유병호 당시 사무총장, 김영신 감사위원, 최달영 당시 사무총장, 최재혁 행정안전감사국장, 손동신 당시 행정안전1과장 등이 관여했다.
지난달 8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21그램 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유병호 감사위원과 최재해 감사원장을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고발했다.
기소되면 감사위원 직무정지
수사 결과에 따라 특검팀이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위원 등을 기소할 경우,
두 사람의 직무가 정지된다.
감사위원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있을 때만 면직이 가능하지만,
형사재판을 받는 상황이 되면 해당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권한 행사가 정지(감사원법 제15조)되기 때문이다.
최 감사원장 임기는 오는 11월, 유 감사위원 임기는 2028년 2월이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13371.html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8-15 01:44전공의 없던 18개월…중증환자에겐 ‘공포’였다
환자 스스로 ‘가방 항암’ 버텨
의정갈등 피해 신고 1천건 육박
허윤희 기자
수정 2025-08-14
“전공의들이 돌아온다지만 언제든 또다시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권영대(54)씨는 1년6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으로 미뤄진 딸(22)의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전공의들이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면서 희귀병·암 환자, 중증 질환자들은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권씨의 딸은 가벼운 상처에도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는 희귀질환인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
증상이 심하면 눈, 혀, 식도에 염증이 생기고 근육 위축과 손·발가락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한다.
권씨는 지난 5일 통화에서 “딸 손가락이 점점 굳어가는 증상이 심해져 미세접합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 날짜가 지난해 3월 초로 잡혔는데, 의-정 갈등 때문에 올 12월로 미뤄졌다”며 “수술이 늦어지면 예후가 좋지 않고 재활도 힘들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권씨는 수술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력감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평생 관리가 필요한 희귀질환자로 살아가는 아이가 공포와 두려움을 이야기할 때 슬펐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암 수술 대기,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
의대생에 이어 전공의 복귀가 결정되는 등 의-정 갈등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갔지만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남 목포에 사는 김민수(가명·67)씨도 지난해 2월 초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뒤 7개월 만에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전립선암이 다른 암보다 전이가 빠르다고 하는데, 수술을 받지 못하니 잠도 못 자고 불안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정말 피가 말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는 “주변 환우분들 보면 의-정 갈등 기간에 치료를 제때 못 받아 증세가 심해지거나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아닌가”라며
“의대생·전공의 복귀에만 관심이 쏠리고, 얼렁뚱땅 마무리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지 못해 집에서 ‘가방 항암’ 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늘었다고 한다.
‘가방 항암’은 암 환자들이 가방에 항암 치료제와 케모포트(정맥 주입 기구)를 챙겨 다니며 직접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식도암 환자인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의료 공백으로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중증 질환자의 피해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병원 입원 치료가 안 되니 환자들이 집에서 알아서 치료를 해왔다. 자기가 치료를 하다 발진·고열 등 부작용이 생기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응급실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아 고통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에서 대기하거나 어떤 분들은 요양병원에서 검증이 끝나지 않은 면역치료를 받는 등 암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항암치료의 골든타임이 지나간 사례도 있다”고 증언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접수된 피해 신고는 모두 955건이다.
수술 지연이 508건(53.2%)으로 가장 많고, 진료 차질(233건), 진료 거절(170건), 입원 지연(44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의료 공백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초과사망자’(위기가 없었을 때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넘어선 수치)가 3천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2~7월 6개월간 전국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초과사망자가 3136명으로 추산됐다.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 만들어야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정부의 재정도 큰 타격을 받았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뒤 응급 등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해 예비비 2004억원, 지방자치단체 재난관리기금 1712억원, 국민건강보험 재정 2조9874억원 등 무려 3조3590억원이 투입됐다.
각종 재난의 예방 및 복구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지자체가 매년 적립하는 법정 의무 기금인 재난관리기금은 의사들의 당직비, 야간수당 등에 써야 했다.
의료 공백 재발을 막기 위해선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20년 의대 정원 증원 추진 때도 ‘의사 집단행동→의료 공백→정부 선처’가 반복됐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를 겪은 환자들은 의료계도, 정부도 환자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란 신뢰를 잃게 됐다”며
“최소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주 회장도 “암 등 중증 질환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는 환자 중심의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환자를 의-정 갈등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멈출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재는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중환자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막을 법적 장치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필수유지 의료행위 공백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로 폐기된 바 있다.
민간 의료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벗어나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체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 통계 2025’를 보면,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2%(2023년 기준)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은 31.2%다.
공공병원 부족은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나 의사 집단행동 등 보건의료 위기 때마다 의료체계가 흔들린 원인으로 꼽힌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현재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병원 위주의 의료체계로 인해 의료비 상승, 지역 간 의료 불균형, 재난 의료 취약성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공의료를 확충해 안정적인 의료체계를 만들어야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는 물론 의사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13397.html댓글 0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

개
젤리 담아 보내기 개
로즈 담아 보내기 개







0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