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29
-
tradbred(@tradbred)
- 34 팔로워
- 34 팔로잉
- 소속 방송국 없음
-
29
tradbred (@tradbred)2025-04-08 01:27역사상 최고의 오물 윤석열 파면, 이제 김건희 잡아야
유영안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5/04/04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문형배 헌재 재판관 권한대행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주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광화문 광장에서 안국역까지 도로에 가득찬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마치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조국이 광복되는 기분이었다.
시민들은 서로 껴안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울기도 하였다.
행사 진행자가 “우리가 이겼다!”를 외치자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며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농악에 같이 춤을 추었다.
그 장면을 취재하던 외국 기자들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성과 집회를 마치 K팝 콘서트장으로 만들어버린 한국인의 흥에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이토록 질서정연하게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민족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긍정적 마인드와 흥이 한국을 지탱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K팝이 세계를 석권한 게 우연이 아닌 것이다.
사물놀이와 판소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집회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전원일치 파면에 수구들 입 닫아
윤석열 탄핵 선고가 있기 전에 수구들은 4대4 기각이니 5대3 기각이니 8대0 각하니 온갖 가짜뉴스를 흘리며 혼자 정신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형배 헌재 재판관 권한대행이 국회 탄핵 소추단이 제기한 5가지 죄목이 왜 헌법 위반인지 하나씩 진술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파면을 직감한 것이다.
윤석열은 국회 탄핵소추단이 제기한 5가지 죄목에서 모두 헌법 위반을 저질렀다.
국회가 탄핵을 두 번 했으니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도 국회가 회기를 달리해 의결했으므로 법 위반이 아니라고 헌재는 판결했다.
또한 헌재는 국힘당이 제기한 검찰 수사 자료, 공수처 수사 자료도 유효하다고 판결했고, 부정선거도 없었다고 판결했다.
이제 김건희 단죄해야
이로써 윤석열이 꿈꾼 검찰 공화국, 무속공화국, 친일공화국, 부패공화국은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극우들은 이에 반발하며 또 다시 난동을 피우겠지만 며칠 지나면 조용해질 것이다.
이제 자신들을 비호해줄 윤석열도 없고 김건희도 곧 체포되어 감옥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헌재 판결 즉시 대통령 지위를 잃고 관저에서 나와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가야 하지만 검찰이 곧 다시 체포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이 파면되었으니 이제 검찰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모두 유죄, 김건희도 유죄 받을 것
대법원이 3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주범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이 이 사건에 연루된 김건희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뒤집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고검은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재기수사 명령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지난해 10월 김건희의 주가조작 혐의를 무혐의로 판단했다.
이후 고발인인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건희를 다시 수사해달라며 항고해 서울고검이 이를 검토 중이므로 곧 수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보다 더 무거운 선고 받을 김건희
김건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외 마약 수사 외압,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명태균 게 이트, 여론조작, 공천 개입, 창원 산단 부지 선정 개입, 석박사 논문 표절,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대통령실 및 관저 공사 개입, 대통령실 인사 개입, 삼부토건 주가조작 개입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수사만 되면 김건희가 윤석열보다 더 많은 형량을 선고받을 것이라 전망했다.
계엄도 알고보면 김건희가 명태균 게 이트 때문에 선포했을 거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그밖에 김건희는 자질구레한 범죄가 수십 가지다.
역사상 부부가 이토록 많은 범죄를 저지른 나라도 없을 것이다.
특히 무속인인 노상원이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체포해 서해로 끌고 가 죽인 후 북한 소행으로 조작하려 한 것에도 김건희가 개입했을 거라는 소문도 있어, 이 부분도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호처에 있는 서버를 포렌식하면 관련 혐의가 모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천박한 여자가 윤석열 이용해 신분 상승 노려
김건희가 체포되어 수사를 받으면 사방에서 폭로가 타져 나올 것이다.
특히 쥴리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이다.
김건희가 쥴리가 맞다는 증언이 수십 명 나왔지만 검찰은 쥴리 논쟁을 제기한 사람들만 기소했다.
성형수술로 얼굴도 바꾸고 이름마저 바꾼 김건희가 검사인 윤석열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노렸으나 윤석열이 파면됨으로써 모든 게 끝났다.
경찰도 검찰도 더 이상 김건희를 비호하지 않고 가혹하게 수사할 것이다.
그래야 자기들도 산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윤석열이 검사 시절 그냥 덮어준 국힘당 의원들의 비리도 재수사가 이루어져 사방에서 곡소리가 날 것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국힘당은 사분오열되고 보수는 결국 공멸할 것이다.
https://www.amn.kr/52860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8 01:20ㄴ)
[굿모닝 퓨처] 사유하지 않는 언론과 '악의 평범성'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따옴표 저널리즘 문제"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
입력 2025.04.07
그런데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유력 정치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기삿거리 하나 던져주니 그 기사를 받은 것뿐입니다.
‘오세훈 띄워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중증외상센터 예산 삭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정부가 운영 위기에 처한 중증외상 수련센터에 예산 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습니다.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문제가 드러나고, 이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증외상센터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언론의 역할입니다.
언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추어내어 알리고, 여론을 형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언론은 사유(思惟)해야 합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대변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브룩 보렐(Brooke Borel)은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사실이 아닌 말을 할 때, 추가 설명 없이 그 발언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다면, 그는 기자가 아니라 속기사에 불과합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면 적어도 대중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런 보도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며,
결국 언론은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역할만을 하는 것”
이라는 게 브룩 보렐의 주장입니다(, 브룩 보렐(Brooke Borel), 2016, 2023), The Chicago Guide to Fact-Checking–시사인 2025. 2. 28).
요즘 언론을 보면 고구마 100개 먹은 것처럼 답답합니다.
많은 보도가 정치인의 말을 인용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제 제기도 거의 없고 비판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언론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유하는 일부 언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마치 키재기를 하는 것처럼, 전달자의 역할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전달자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통념, 가치, 기준에 맞지 않아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주위에서 유튜브를 통해 시사·보도 정보를 접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시사·보도 콘텐츠를 보는 이유는 기존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뉴스가 단순 전달에 그치며 깊이가 없고 피상적이라는 것도 한몫합니다.
요즈음 가장 많은 뉴스를 생산해 내는 정치 뉴스의 경우, 시작부터 끝까지 정치인의 말만을 그대로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헌법재판소(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선고일을 지정하자,
한덕수 권한대행은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언론마다 헤드라인으로 뽑은 내용은 일관되게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언론은 “어떤 헌재 결정도 받아들여야…정치인들 자극 발언 삼가달라"(연합뉴스, 2025. 4. 2)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고,
또 어떤 언론은 ”韓대행 ‘헌재 어떤 결정도 받아들여야…폭력엔 무관용“(중앙일보, 2025. 4. 2)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습니다.
폭력에는 무관용이라는 내용이 추가되는 정도입니다.
기사 내용은 전체가 담화문을 요약한 수준입니다.
정치 뉴스에 정치인만 있고 언론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이는 헌재가 위헌이라고 밝힌 재판관 미임명에 대해 두 권한대행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를 비판하거나 지적하는 언론이 많지 않은 현실과도 연결됩니다.
헌재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권한대행이 국민을 향해 헌재 결정을 따르라고 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꼬집는 언론도 몇 안 됩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두 권한대행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고 있습니다.
뉴스 기사에 고민이나 사유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우리 언론의 현주소라 씁쓸하기만 합니다.
사유하지 않는 평범함이 만들어낼 사회적 해악이 작지 않다는 악의 평범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634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8 01:16ㄱ)
[굿모닝 퓨처] 사유하지 않는 언론과 '악의 평범성'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따옴표 저널리즘 문제"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
입력 2025.04.07
‘굿모닝 퓨처’는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온라인 포럼’이 현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하기 위해 굿모닝충청을 통해 우리 사회와 대화하는 창구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 지구적으로 국가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굿모닝 퓨쳐’는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일단을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위기의 우리 사회를 전환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필진 주.
사유하지 않는 평범함이 만들어낼 사회적 해악이 작지 않다는 악의 평범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심미선 순천향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196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 전범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한 책입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의 강제 이주 및 학살을 계획하고 지휘한 총책임자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장본인입니다.
600만 명이라는 수치는 서울시민의 3분의 2, 부산시민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로, 이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학살당했습니다.
아렌트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여하였습니다.
재판에 참여한 아렌트는 그토록 잔인한 학살을 저지른 사람이 의외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즉, 근면하고 성실하며,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평범한 인간들, 심지어 선량한 시민들이 절대악을 저지르는데, 의외로 거기에는 선과 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죄라면 당시 공무원이었던 자신이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아이히만의 주장에도 일견 수긍이 갑니다.
관료 사회에서 상부의 지시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1980년 광주만 봐도 당시 군인들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아니 적당히 따랐다면 오늘날 광주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렇게나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들어간 군인들은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고,
그렇게 잡은 정권은 권력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광주시민의 고통으로 남았고, 우리는 이 고통을 역사로 기억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비상계엄은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선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평범한 일상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위헌적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장갑차로, 버스로 그리고 헬리콥터로 경찰과 군인들이 속속 서울로 국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모인 국회의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국회는 3시간을 조금 넘긴 오전 1시경에 비상계엄 해제를 선포했습니다.
당시 많은 시민에게는 무장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까지 들어갔음에도 어떻게 비상계엄 해제를 막지 못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남았습니다.
그 답은 군인들이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위법적인 명령이라서 충실히 따르기 불편했던 군인들이 있어서 독재를 꿈꾸며 발령한 비상계엄은 실패했던 것입니다.
만약 당시 군인들이 사유하지 않고, 관료 사회의 룰대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면, 지금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렌트가 주목한 것도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무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히만 재판의 교훈이라고 말합니다.
사유 없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평범함이 얼마나 큰 사회적 해악을 가져올 수 있을지, 악의 평범성은 말해줍니다.
그러면 언론은 과연 사유하고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요즘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아닐까 합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늘 어느 정치인의 말을 ‘따옴표‘ 형식으로 전달합니다.
정치 뉴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보도 패턴입니다.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기저에는 공인의 말은 사실일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만약 언론에서 인용한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거짓을 전한 정치인이 비난받을 일이지,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전한 언론에는 책임이 없다는 정서도 있습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2025년 2월 6일을 전후해서 이런 제목의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오세훈 ’문 닫을 위기' 중증외상 수련센터 지킬 것…서울시 기금 5억 투입".
당시 넷플릭스에서는 중증외상센터라는 시리즈물이 인기를 얻고 있어서 중증외상센터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는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관련 뉴스 내용은 대부분 오세훈 서울시장의 페이스북을 인용하고 있었으며, 중요한 필수 예산을 삭감한 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일부 보도에서는 ‘야당’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제목에서부터 오세훈 ”중증외상센터 예산 삭감…민주당 예산 폭주 탓“(아주경제, 2025. 2. 10)으로 보도한 언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으로서는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장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입니다.
한겨레 등의 후속보도를 보면, 처음부터 정부 예산안에는 중증외상센터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관련 예산 8억8000만 원 증액 의견을 제출했고,
보건복지부도 이를 수용했으나 이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증액 협상 반대로 최종 예산안에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사실관계가 드러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증외상센터 예산 삭감, 민주당이 했다고 한 적이 없다“고 밝혔고, 이 말은 또다시 뉴스 기사의 제목이 되었습니다(아이뉴스, 2025. 2. 20).
분명히 오 시장의 페이스북의 내용을 기사화하기 전에 어렵지 않게 팩트체크할 수 있었던 사안입니다.
또 국회 보건복지부의 반론권도 보장되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언론은 팩트체크도 하지 않았고, 반론권을 담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일반 서민의 생명을 지키는 문제와도 직결되지만, 정부·여당이 중증외상센터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을 때, 국회가 예산을 책정해 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삭감했을 때, 언론은 이를 공론화했어야 했습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634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7 20:03[서라백 만평]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서라백 작가
입력 2025.04.07
시리즈는 계속된다.
해치웠다고 생각한 최종 보스는 매번 되살아난다.
그들의 DNA는 또 다른 숙주를 순식간에 찾아내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게임은 그렇게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달라진 건 '아직' 없다.
내란수괴는 놀랍게도 아직도 '자유의 몸'이며, 이에 빌붙었던 빌런들은 여전히 명패를 움켜진 채 호흡기를 돌리고 있다.
몽매한 좀비들에겐 텔레파시가 송출되고 태극기와 미국기를 흔들어 대며 모여든다.
계엄군의 장갑차를 몸으로 막았다.
혹한의 겨울 속 알루미늄 호일을 뒤집어 쓰고 아스팔트 위에서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대선 일자가 확정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개헌'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지금이야말로 미루던 개헌 '적기'라는 것이다.
기실 개헌 필요성은 일찌감치 제기됐다.
골자는 대통령 임기와 권력구조 개편이다.
하지만 급조한 과정에선 행정수도 이전 명문화나 5.18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은 곁가지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
의미의 퇴색이다.
순서가 잘 못 됐고 의도가 불손하며 괘씸하다.
떫은 감을 홍시라고 따먹어도 충분하다고 호들갑을 떤다.
설익은 밥인데 솥뚜껑을 열고 주걱을 집어넣는다.
남은 60일 동안 국회 특위에서 개헌안을 마무리 짓고 이어 남은 한 달 새에 국민에게 찬반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답정너'다.
아직도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태도다.
'포용'이라는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담겨 나온다.
쌀로 밥 짓는 뻔한 레퍼토리로 '대화'와 '타협'을 논한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위 아 더 월드', '손에 손잡고'를 부른다.
선거가 개헌론에 잠식되면 내란 심판이라는 본연의 취지가 희석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3년 전 '삽질'을 다시 반복해도 된다는 것인가.
전임 대통령이 퇴임 후 시골 책방에서 느긋하게 낭만을 즐기는 동안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이 압사했고, 해병대원이 물에 휩쓸려 세상과 이별했다.
500여 명이 수거돼 확인 사살 당하거나 바다에 수장될 뻔 했다.
영현백에 3천 명의 주검이 담길 뻔 했다.
'촛불혁명'으로 어렵게 쟁취한 국민권력을 문재인 정부는 5년만에 적폐권력에게 반납했다.
윤석열의 횡포를 방관하다 결과적으로 내란수괴를 잉태한 꼴이 됐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도 모자랄 지경이건만, 말끔한 사모관대를 걸치고 수염이나 다듬으며 '선비질'을 해대는 누구가 있다.
닥치고 칼같은 촛불을,
총같은 응원봉을,
피와 뼈같은 붉은 인주가 묻은 투표용지를 들고 전선에 나설 지어다.
명심하라,
'협상'을 제안하는 자가 배신자이며 프락치이며 내란 동조자다.
닥치고 내란 척결이 우선이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596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7 20:00[교수논단] 누가, 왜 지금 개헌을 말하는가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입력 2025.04.07
어제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새삼 떠오른 날이었다.
탄핵 선고후 모처럼 숨 돌린 일요일 오후였는데,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에 계엄 트라우마가 다시 떠오르며 머리 끝이 쭈뼛해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시절 군부독재의 종식과 함께 개정된 ‘87년 헌법’의 개정 필요성이 학계, 정치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폭넓게 논의되어 왔다.
필자 역시 점점 높아지는 국민의 권리의식과 사회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개헌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은 물론, 그 시점에 있어서도 지금은 개헌론에 불을 지필 때가 아니다.
개헌은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일이고, 극도로 예민한 이슈이기 때문에 개헌 시기의 선택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물론 계엄 사태 전부터 87년 헌법 체제의 여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개헌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많은 국민들도 공감했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일의 처리는 선후가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개헌을 할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작년 12월 3일 계엄선포라는 황당한 비상상황이 창졸간에 발생했고, 넉달 동안 지난한 과정을 거쳐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4일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파면을 선고하였다.
이렇게 파면이 결정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고, 내란에 대한 진상 규명에 이은 법적 단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뜬금없이 개헌 이슈를 불쑥 들고나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과거의 평화적인 상황과 달리, 12. 3 계엄사태로 인해 엄중한 비상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개헌 논의 여건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은 아니다.
군대까지 동원한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선포 행위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은 물론, 자신이 임명한 헌법재판관마저도 만장일치로 헌정 유린행위로 보아 파면을 선고했다.
그런데 정작 그 우두머리는 사죄는 고사하고 해괴한 말로 자신의 극렬 지지층을 선동하는 언사를 일삼고 있어,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역사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작금의 내란을 주도하고 동조했던 세력들의 행태는 헌재의 결정에 대한 불복은 물론 국민과 헌법정신을 우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위헌적·불법적인 계엄으로 인해 국가가 큰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국민들은 갈수록 극한적인 대립의 장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헌법을 짓밟는 또 다른 폭거가 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헌보다는 내란의 종결이 선결적 최우선 과제이다.
그리고 ‘개헌’은 개개의 일반적 법률 개정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국가의 중대사이다. 따라서 헌법 개정의 주체인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렴하면서,
전문가들의 진지한 논의의 장을 거쳐 개정안이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 개헌 논의는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국은 곧이어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전국적인 선거 국면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보다 진지하고 충실한 개헌 논의가 진행되기 곤란할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불과 두달도 남지 않은 대선 과정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진행되다 보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 궐위’라는 백척간두의 비상한 상황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을 원만히 선출한 뒤에 헌법 개정을 논하더라도 결코 늦지 않다고 본다.
아직 내란사태도 제대로 종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개헌론으로 지리멸렬한 공방을 거듭하게 되면 또 다른 위기를 낳을 수도 있다.
이번 내란사태를 겪은 국민들은 다시금 친위 쿠데타 망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려는 세력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의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민주적 위헌 행위를 자행한 자들과 그 세력에 대해 법률이 정한 바대로 준엄하게 의율(擬律)해야 한다.
지금 이 절체절명의 시점에 국회가 할 일이 정말 많다.
국회는 계엄으로 흐트러지고 땅에 떨어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폭망 직전이라고 아우성인 서민들의 민생을 챙기면서 경제회복을 위해 올인해야 하며,
전 세계적으로 추락한 국격을 회복하는 일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597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7 02:10아직도 반성 없는 尹, 또 지지자들 향한 선동 입장문 내놔
한남동 관저 퇴거 언급도 내란 사태에 대한 사죄도 없어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4.06
12.3 내란 사태의 수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탄핵심판 인용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에도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탄핵심판 직후 낸 입장문과 마찬가지로 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선동을 이어갔다.
아울러 한남동 관저에서 언제 퇴거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사죄도 전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6일 변호인단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나라의 엄중한 위기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여러분의 여정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변호인단 여러분. 2월13일 저녁 청계광장을 가득 메웠던 여러분의 첫 함성을 기억한다”며 “몸은 비록 구치소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러분 곁에 있었다”고 했다.
국민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탄핵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가 주도해 만든 지지 단체로 지난 2월 13일 청계광장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이어 그는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나라의 엄중한 위기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여러분의 여정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들을 향해서도 “청년 여러분. 이 나라와 미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라며 “오늘의 현실이 힘들어도 결코 좌절하지 말라”고 했다.
아울러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라. 청년 여러분께서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윤 전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직에서는 내려왔지만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며 “힘냅시다! 감사합니다”고 했다.
결국 파면된 이후에도 그는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서 윤 전 대통령 본인이 주장했던 '경고성 계엄', '호소용 계엄' 등에 대해서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고 12.3 내란 사태 당시 선포한 비상계엄이 중대한 위헌, 위법행위였다고 인정한 이상 그는 중형을 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하기는커녕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의 지지층들을 선동하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내놓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상 더는 한남동 관저에 머물러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틀이 지나도록 퇴거하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고 있다.
박근혜 씨의 경우 2017년 3월 10일 탄핵심판 인용으로 파면된 이후 이틀이 지난 12일 밤에 청와대에서 퇴거했는데 윤 전 대통령은 아직도 퇴거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에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내란수괴 윤석열이 또다시 극우세력에 대한 선동을 획책하고 나섰다"며
"헌재가 헌정질서를 유린한 불법 계엄을 헌법의 이름으로 단죄했는데도 윤석열은 사죄의 의사도 없이 극우 세력을 선동하고 나섰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에 대해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고 조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형사 재판을 앞두고, 극렬 지지층을 선동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내란수괴의 후안무치함에 분노한다"고 일갈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578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7 01:39韓, 황교안처럼 12.3 내란 문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봉인?
민주당 "'내란 문건' 봉인, 꿈도 꾸지 말라!"
조하준 기자
입력 2025.04.06
지난 4일 탄핵심판 인용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또 하나 관심을 모으는 것이 바로 '대통령기록물'이다.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씨가 파면됐을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전 총리는 '세월호 7시간' 관련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봉인해버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12.3 내란 사태 관련 문건을 봉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어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권한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로 넘어갔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임기 종료 1년 전부터 대통령기록관으로 대통령 기록물을 이관하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기록물 이관 대상 기관은 대통령비서실, 경호처, 국가안보실 등에서 생산한 기록물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비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15년 동안 열람이 제한된다.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은 비공개 기간이 최대 30년까지 늘어난다.
현행법은 ‘지정기록물’ 지정권한을 대통령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기 때문에 전례에 따라 한 대행이 ‘지정기록물’ 지정 권한을 갖게 된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별도 규정이 없고,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도 제한 규정이 없다.권한대행도 지정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한 대행은 윤 전 대통령 재임 중 생산된 기록뿐 아니라, 자신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이 권한 대행으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 기간에 만들어진 기록도 ‘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이 최대 30년 동안 '비공개'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씨가 탄핵심판 인용으로 파면된 이후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전 총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씨의 행적에 관한 기록물들을 모두 '지정기록물'로 정하며 봉인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박근혜 씨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지정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해선 국회 재적 의원 2/3 이상이 찬성하거나 고등법원장이 중요한 증거라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하면 공개가 가능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초기는 여소야대였기에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지금까지도 다 열람이 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밝혀진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 중 절반 정도는 검찰 수사를 통해 해소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최초 보고, 최초 지시 시각 등이 모두 조작된 것이었으며 최순실이 그 때에도 국정에 개입하고 있었고 그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회의를 주재했다는 점, 박근혜 씨가 올림머리 손질을 하느라 1시간 반을 허비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2047년이 돼야 알 수 있는 판이다.
이 때문에 한덕수 권한대행이 비상계엄 국무회의록 등 내란 혐의 수사에 결정적일 수 있는 자료들까지 봉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윤석열 내란 수사가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 정권 들어서 논란이 됐던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 김건희 전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자료, 대통령실 용산 이전 등 관련 기록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통령기록물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대통령기록관장 채용에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인 정 모 씨가 최종 후보에 포함된 것이 JTBC 단독 보도로 확인됐다는 점도 우려를 낳는 부분이다.
정 전 행정관은 윤 대통령 취임 두 달 뒤인 2022년 7월부터 지난 2월 20일까지 대통령실에 파견돼 근무했다.
현재 국회에는 대통령 권한 대행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 기간을 정할 수 없도록 하는 대통령기록물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행안부 대통령기록관은 이르면 7일부터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을 차례대로 찾아 이관 대상 기록물 현황 파악을 한다.
대상 기관은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경호처를 비롯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같은 대통령 자문기관 등 28곳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6일 황정아 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황교안 전 총리와 같은 행태를 저지르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황 대변인은 "대통령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라며 "헌법 질서를 짓밟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12.3 내란 관련 기록물은 응당 국민께 있는 그대로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께서 요구하는 진실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황교안 전 총리가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봉인했던 것을 언급하며 "기록은 역사이며, 역사는 국민의 것이다. 기록물 공개가 공익이고 역사에 대한 사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덕수 권한대행은 내란 정권 내각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기록물들이 어떠한 손상이나 누락, 삭제, 조작 없이 모두 신속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조치하시라"고 주장했다.
만일 한덕수 권한대행이나 대통령실이나 내란의 진실을 훼손하거나 은폐한다면 "명백한 내란 공범이며, 역사의 법정에서 내란의 진실을 숨긴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582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6 22:16나)
내 몸보다 대의 앞세워 목숨 건 '참 보수' 이 사람, 달리 보인다
허균도 직에 오르지 못한 항일과 절의의 고장... 홍주읍성과 두번의 항일의병
이영천(shrenrhw)
25.04.06
홍주를 격하?
가야산과 삽교천 중심인 내포가 어떤 곳인가?
곧은 절개와 굳은 의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추상같은 기세로 학문과 시서화에 매진한 추사 김정희가 있다.
사육신 성삼문이 최영 장군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전설 같은 곳이다.
윤봉길과 김좌진은 무장봉기로 항일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다.
불교발전은 물론 독립과 우국으로 한 생을 살다 간 한용운은 어떠한가?
내포신도시 북쪽은 예산, 남쪽은 홍성으로 행정구역이 둘로 갈린다.
따라서 이곳 신도시 명명에 많은 고심이 있었으리라.
수백 년 만에 홍주로 도청을 옮겨오는 일이니 더욱 그랬을 터이다.
가야산에서 덕숭산, 다시 용봉산으로 이어지는 빼어난 산세를 신도시가 고스란히 받아 안았다.
흔히 홍주와 결성에서 한 글자씩 빌어 홍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홍성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차분하게 살펴야 한다.
조선의 지방 관제 중 州(주)가 붙은 지명은 부윤·부사·목사가 파견되는 부나 목이 통상적이다.
충청도엔 청주·충주·공주·홍주가 있었고 이들 도시에 번갈아 충청감영이 설치되었다.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홍주 일부를 청양에 떼어주고, 이름을 홍성으로 바꾼다.
하지만 전국 어디도 이름에서 州가 빠진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네들의 행정편의를 뛰어넘어, 식민체제에 강력히 반발한 홍주의 저항정신과 항일의식을 말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이름이 곧 지역이고, 지역이 곧 정신이니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웅장한 홍주읍성이 그나마 제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 옛 지도엔 없는 남문을 가파른 언덕에 세운 뜻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대나무처럼 곧은 절개와 의리, 충의가 오래된 성벽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래된 성 돌이, 따스한 봄볕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있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16297&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6 22:14가)
내 몸보다 대의 앞세워 목숨 건 '참 보수' 이 사람, 달리 보인다
허균도 직에 오르지 못한 항일과 절의의 고장... 홍주읍성과 두번의 항일의병
이영천(shrenrhw)
25.04.06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봄바람이 간지럽다. 홍주 가는 길이 뭔지 모를 신명에 살짝 달뜬다.
희망, 새로움, 설렘 같은 정취는 봄이란 계절의 전유물일까.
길에서 풍운아 허균(許筠)이 떠오른다.
내자시정에 임명된 1607년,
홍주목사에 오르려 요로에 청탁했던가 보다.
홍주 출신인 스승 이달(李達)의 영향이었을까.
예로부터 글 잘하는 이의 몫이었으니, 자부심 가득한 그도 내심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벗 '이안눌'의 차지였고, 허균은 부끄러움에 시 한 수를 남긴다.
홍주 고을은 예로부터 글 잘하는 신하를 불러 썼으니 洪州自古用詞臣(홍주자고용사신)
시인 소세양과 정사룡 이름이 그중 가장 뛰어났네. 蘇鄭詩名最絶倫(소정시명최절윤)
검은 인 끈이 오늘 아침 이안눌에게 돌아갔으니 黑紱今朝歸子敏(흑불금조귀자민)
자잘한 재주는 처음부터 남들보다 못하다네. 謏才元是不如人(소재원시불여인)
乞洪陽不得而子敏爲之(걸홍양부득이자민위지) (허균평전. 허경진. 돌베개. 2002. p210)
얼마나 살기 좋은 고을이었으면 직을 탐냈을까.
탄핵과 모함에 수도 없이 관직에서 쫓겨나기를 되풀이했어도, 홍주목사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만은 시로 남겼으니 말이다.
홍성 나들목을 벗어나자, 졸린 봄 햇살이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는 와룡천 건너로 기와집이 번듯하다. 4월 햇살에 검은 지붕 선이 돋보이고, 낮은 산에 기댄 집에선 강한 기운이 뻗쳐온다. 그런데 남향이 아닌 북서향이라니?
이곳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항일무장투쟁의 본산이다.
19세기 조선을 뒤흔든 안동김씨 세도가 저 지붕 선에 아직도 남아 있을까?
어린 시절 노비를 해방하고 전답을 나눠줬다는 김좌진 장군 생가다.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결한 김상용의 11대손이다. 내포 지역이 올곧은 보수의 본향이란 사실을 저 검은 기와가 묵언으로 알려주는 듯하다.
오늘날 타락한 그런 극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에 재산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질서와 법률, 전통과 정의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 '참 보수'였다.
김좌진은 조카뻘인 김복한에게 글을 배웠다.
김복한이 누구던가?
죽으면서 '일본의 패망을 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지사다.
을미 의병과 여하정
홍주아문을 지나면 동헌 안회당이다.
동헌 뒤 네모난 연못 안에 네모난 섬이 있고, 그 위에 육각정이 섰다. 절로 시흥이 돋는 여하정(余何亭)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이던 1896년 이승우가 세웠으니, 나라의 앞날과 백성의 안위를 걱정한 우국충정이 이름에 서렸을까?
'나(余)는 어찌(何)할 것인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뜻을 담은 이 정자는 그러나, 이름에 걸맞진 않았나 보다.
승지였던 김복한의 낙향은 동학혁명이 배경이다.
청일전쟁과 조선을 악용할 명분을 찾던 일본이 1894년 7월 경복궁을 점령한다.
꼭두각시 정권을 내세워 개혁을 강요하며 내정을 쥐락펴락하자, 분개한 김복한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것이다.
이듬해 왕후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당하고, 뒤이어 단발령이 시행된다.
상투를 자르라는 말은 선비들에게 목숨을 내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국지사이던 김복한이 의거를 일으킨다.
1차 홍주 의병이다.
무장봉기였으되, 홍주성을 손쉽게 함락한다.
1896년 정월 초하루 수백 의병이 무혈입성한다.
이어 정월 대보름과 이튿날 청양과 정산 등지에서 각 수백 명이 합류함으로써 기세를 올린다. 김복한이 대장으로 추대된다.
홍주목사 이승우도 김복한의 설득에 의병에 합류, 그야말로 민관이 하나가 되어 일본군에 맞선 셈이다.
그런데 이는 속임수였다.
이승우가 배신하여 순검대를 끌어들인다.
김복한 등 의병 주요 인물들을 체포, 투옥함으로써 결국 강제 해산당한다.
이런 관리가 나라를 위해 어찌할까를 고민했다고 생각들지는 않는다.
그에겐 모름지기 자신의 안위가 우선 아니었을까?
고종실록 1896년 4월 9일 기사에 김복한을 비롯한 홍건·이상린·송병직·안병찬·이설을 벌하자는 법부 의견에, 고종은 특별사면하여 방면하는 아량을 보인다.
서문 수로, 조양문과 병오 의병
고을 위상에 어울리는 성문의 위용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라는 누란의 지경에 빠져버린다.
을씨년스런 그해(1905) 외교권이 강제로 일제에 찬탈당한다. 을사늑약이다.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가 발각되어 김복한을 비롯한 지사들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 고문으로 김복한은 평생 불구로 살아야만 했다.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또 다른 지사가 있었다.
가산을 털어 무기를 마련한 민종식이다.
'광수장터 봉기'라 부르는 몇 번의 홍주성 공략에 말미를 찾지 못한다.
무기 열세를 느낀 그는, 소수 병력의 거사로는 불리하다는 걸 깨닫는다.
1906년 4월 보령 홍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여산·진안·장수·용담·무주 등을 돌며 병력을 모은다.
기세를 몰아 청남·서천·남포·보령 등을 점령하며 홍주로 향한다.
홍주 남산에 이르러 5천 의병이다.
일본군이 지키던 홍주성을 공략한 날이 5월 19일 장날이다.
성문이 굳게 닫혀 공격이 여의치 못했다.
이에 날랜 의병 셋을 서문 수로를 통해 잠입시킨다.
이들이 안에서 성문을 열자 성이 함락된다.
그러나 성안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이미 달아나고 없는 상태였다.
성을 함락시킨 민종식은 부대를 재편하여 적의 반격에 대비한다.
일본군이 이튿날부터 공격을 개시한다.
28일까지 여섯 차례다. 소총과 화승총의 싸움이다.
월등한 화력의 일본군에 맞서 열흘 가까이 성을 지켜낸다.
당황한 일제는 한양에서 1개 대대를 급파한다.
첨단 무기인 기관포와 폭약, 기마대까지 딸려 보낸다.
5월 31일 새벽 2시 30분, 일본군이 조양문에 폭탄을 터트리고, 시가전이 벌어진다. 성안이 쑥대밭으로 파괴된다.
날이 밝은 7시 30분까지였다 하니, 의병의 분전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천여 명이 학살당하고 수백 명이 포로가 된다.
홍주성의 이 싸움은 1907년 이후 들불처럼 일어난 전국적 항쟁의 불씨였다.
1909년 일제가 잔악한 살육을 벌인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이어진다.
어느 식목일, 학생들이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당시 사상자 유해가 발견된다.
이들 유해를 모아 만든 의사총이 읍성 가까운 언덕에 자리한다.
전투 후 사상자들을 흙으로 덮었음이 밝혀진다.
참으로 잔인한 족속이다.
죽지 않은 부상자도 적잖이 생매장되었을 터다.
이때 일본군을 찬양하는 비석을 이완용이 읍성에 세운다.
현명한 백성들이 그 비석을 허물고 의병을 기리는 비석으로 바꿔 놓는다.
대마도에 끌려간 9인의 의병 대표자들이 갖은 고초를 겪다 4년 만에 가까스로 석방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16297&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5-04-06 21:36문형배 안부인사에, 김장하 선생 "단디해라 했다"
파면 선고 뒤 '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대행 이야기 회자 ... 국회 청문회 발언 다시 관심
윤성효(cjnews)
25.04.06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창원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긴장 속에 차량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에서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12·3 불법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문 대행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시민들 속에서, 특히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맞어! 맞어!'하는 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넉 달 동안 광장과 거리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쳤던 시민들은 문 헌법재판관이 읽어내려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내용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오전 11시 22분. 문 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하자 시민들은 벌떡 일어나 부둥켜 안거나 소리를 지르며 "국민이 이겼다"라고 외쳤다. 눈물을 흘리는 청년들도 많았다.
흥분 속에 기쁨을 만끽하던 무리 속에서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김영만(82)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김장하 이사장께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거 같다"라고 했다.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을 지낸 고승하(77) 작곡가는
"진주 김장하 선생께 전해달라. '똘똘한 문형배 헌법재판관을 키워주어 고맙다'라고 말이다"라고 했다.
잠시 뒤 광장을 나오면서 김장하(81)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께 전화를 드렸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파면'이라고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셨는지 물었다.
김영만 고문과 고승하 작곡가가 했던 말을 전하자 김장하 선생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면서 "그랬나"라고만 대답했다.
말씀을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 찬반 갈등 속에 문 대행이 겪었을 고민이나 마음고생을 함께 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통화에서 '단디해라'고 말했던 거 같다"
헌재의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문 대행과 김장하 선생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더러 "김장하 이사장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냐"고 묻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12·3 불법비상계엄 이후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탄핵 관련해 말을 아꼈다.
강연차 진주를 찾았던 김승환 전 전북도교육감과 3월 20일 같이 했던 식사 자리,
부산 공연 하루 전날인 3월 28일 저녁 진주에 들렀던 이승환 가수와 함께 했을 때도 탄핵 관련 이야기가 나왔지만, 김 이사장은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올해 1월 새해 인사차 만났던 자리에서 여쭈었더니, 김 이사장은 "지난 연말에 문 대행하고 짧게 통화 한 번 했다. 연말에 안부를 전하는 휴대전화 문자가 왔는데 내가 답을 안했더니,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전화를 했더라. 탄핵 관련해 특별히 말은 없었는데 '단디해라'고 말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김장하 선생이 12·3 계엄 이후 진주에서 벌어진 시국대회에 한번 참석했던 적이 있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저녁 진주시청 앞에서 윤석열퇴진 진주시민모임이 열었던 '윤석열 체포 진주시국대회'였다.
김 선생은 집회가 시작될 때부터 거리행진이 시작되기 전까지 촛불을 들고 앉아 있었다. 김 선생은 주최측에 소개를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김 선생과 함께 했던 하정우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집행위원장은 "낮에 점심을 하면서 저녁에 집회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고, 댁에 모셔다 드렸는데 오후에 전화가 와서 시국대회에 가보자고 하셔서 모시고 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회 중간에 추우니까 가자고 말씀을 드렸더니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이 정도 추위는 견뎌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라고 전했다.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으라"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선고한 뒤, 김장하 선생을 함께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많은 사람들이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문 대행이 2019년 4월 국회 청문회 때 했던 말이 이번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 다닐 때 김 이사장의 장학금을 받았던 문 대행이 공식적으로 거론하기는 두 번 정도다.
문 대행은 고등학교와 대학 다니는 동안 김장하 이사장의 장학금을 받았다.
국회 청문회가 있기 전인 같은 해 1월 16일 경상국립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행사 때였다. 김 이사장의 생일날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시민들이 "김장하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연 행사였다.
김 이사장과 늘 함께 하며 사회문제 등에 대해 고민해왔던 고 김수업(1939~2018) 경상국립대 교수(한글학자)와 고 박노정(1950~2018) 시인(옛 대표이사 겸 발생인)이 같은 해 세상을 떠나자,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홍창신 전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전민규 큰들문화예술센터 대표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문화단체들이 김 이사장 몰래 행사를 준비했다.
김 이사장께 '좋은 공연이 있다'고 해서 모시고 와서 시민들이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렸다.
당시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문형배 대행이 그 자리에 함께 해서 울먹이면서 김 이사장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50여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다가 2022년 5월 문을 닫았고, 자신의 호를 딴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교육과 문화예술, 사회, 여성, 인권 등 분야를 지원했다.
그는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이듬해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있다가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고, 1990년 시민주로 창간했던 옛 주주·이사로 참여했으며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신문)가을문예'를 지원했다.
김 이사장은 2021년에 재단을 해산하면서 당시 남은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했고, 평생 사회에 환원한 기부금이 수백억원에 이른다.
그날 생일 때 있었던 행사에는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마련했던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문 대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경남 하동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 4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업사로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하셨고, 수백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오광대 복원사업, 경상(국립)대학교 남명학관 건립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에 있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으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 말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간직한 저의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은 임기 6년을 마치고 오는 18일 퇴임한다댓글 1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