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bred님의 로그 입니다.
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29
-
tradbred(@tradbred)
- 33 팔로워
- 33 팔로잉
- 소속 방송국 없음
-
29
tradbred (@tradbred)2026-01-13 17:09[B]
구원자인가 앞잡이인가, 프랑스 이주민 1호가 조선에서 한 일
[이희용의 월드코리안] 한국 천주교의 반석 세운 모방 신부, 한민족에게 어떤 존재였나
이희용(hoprave)
26.01.12
이들의 유해는 20여 일 동안 한강변 백사장에 방치돼 있다가
몇몇 신자가 관헌들의 눈을 피해 지금의 서강대 자리인 마포구 노고산에 묻었다.
4년 뒤 관악산 옆 삼성산에 이장됐고 1901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명동대성당 지하 묘역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통해 김대건·정하상·조신철 등과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삼성산(三聖山)이란 이름은 통일신라 초 원효·의상·윤필 스님이 삼막사(三幕寺)를 짓고 수도한 데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간에서는 세 고승 대신 고려 말 무학·나옹·지공 선사를 들기도 한다.
천주교에서는 앵베르·모방·샤스탕이 이곳에 58년간 묻힌 뒤 성인이 된 것을 예언했다고 여긴다.
서울대교구는 이들의 묫자리에 묘지석을 세우고 주변을 순교성지로 꾸몄다.
천주교 전래는 복음이면서도 비극의 씨앗
▲십자가상과 구상 시인의 기념 시비. 세 성인의 이름과 함께 ‘님들의 피로서 증거한 복음과 함께 님들의 자취도 이 땅에 영원하오리’란 시구가 새겨져 있다. ⓒ 이희용
18~19세기 조선에서는 천주교가 숱한 외래 종교의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프랑스 선교사들도 단순한 신앙인에 그치지 않았다.
서양의 과학과 문명을 전해주고 평등사상을 일깨웠다.
선교사란 창을 통해 서구 열강은 조선을 들여다봤고 조선은 서양 세계를 이해했다.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모방 신부도 제국주의의 앞잡이 구실을 한 셈이었다.
미개한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배타적 종교관과 서구 중심 동양관(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천주교 전래는 혹독한 탄압과 숱한 비극을 낳으며 병인양요를 불러왔고
조불수호통상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과 제주민란(이재수의난·신축교안)으로 이어졌다.
모방 신부 선교 190주년, 김대건 순교 180주년, 병인양요 160주년,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는 2026년 벽두에 모방 신부의 존재는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곱 씨 ㅂ어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518&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3 17:06[A]
구원자인가 앞잡이인가, 프랑스 이주민 1호가 조선에서 한 일
[이희용의 월드코리안] 한국 천주교의 반석 세운 모방 신부, 한민족에게 어떤 존재였나
이희용(hoprave)
26.01.12
▲영화 ‘탄생’의 한 장면. 말을 탄 상복 차림의 모방 신부(토마스 프레데릭슨)가 조신철(이문식)과 함께 전도 여행에 나서고 있다. ⓒ 민영화사 제공
지난해 성탄절을 맞아 12월 24~26일 tvN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 일대기를 담은 3부작 드라마 '청년 김대건'이 방송돼 관심을 모았다.
2022년 개봉된 박흥식 감독의 극장용 영화 을 재편집한 것으로, 6부작 확장판도 OTT를 통해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2026년 병오년은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180주기다.
첫 한국인 천주교 신부를 탄생시킨 주역은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피에르 필리에르 모방 신부다.
그는 로마 교황청이 우리나라에 파견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이자 프랑스인 이주민 1호다. 올해는 한불 수교 140주년이자 모방 신부 입국 190주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사제, 임진왜란 종군한 세스페데스 신부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천주교 사제는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에 종군한 스페인 출신의 세스페데스 신부다.
그러나 일본군을 상대로 사목 활동을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조선인에게 선교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
그로부터 2세기 가까이 지난 1779년 우리나라에 천주교 공부 모임이 생겨났다.
모임 일원인 이승훈은 1784년 중국 북경 북천주당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돌아와 주변 인물에게 세례를 주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가 꾸려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목자 없는 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천주교 교리에 따르면 사제만이 세례를 제외한 각종 의식을 집전할 수 있어 교회법 위반이었다.
1790년 북경교구는 조선교회에 전례 금지령을 내리고 선교사 파송을 약속했다.
구베아 주교는 조선인과 용모가 비슷하면 비밀리에 활동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중국인 주문모를 최초의 조선 선교사로 임명했다.
주문모 신부는 1794년 입국해 신앙의 씨앗을 뿌리다가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돼 첫 외국인 천주교 순교자가 됐다.
신도들이 몰살하거나 숨어버려 암흑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조정의 혹독한 탄압은 천주교가 지식인 중심에서 상민과 천민들에게 확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교황청은 1831년 9월 9일 북경교구에서 조선교구를 독립시키기로 하고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마카오에서 만주까지 왔다가 국경 경비가 삼엄해 때를 기다리던 중 1835년 10월 20일 뇌내출혈로 선종했다.
모방이 꼽은 한국인 사제 후보 기준 4가지
▲로마 교황청이 파견한 선교사 1호이자 첫 프랑스 이주민인 모방 신부 초상화 ⓒ 위키피디아
브뤼기에르와 함께 만주까지 따라온 신부가 모방이었다.
그는 1803년 9월 20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시골 마을 바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이어교구 대신학교를 졸업하고 1829년 5월 13일 사제로 서품된 뒤 고향 인근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활동하다가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두고 1831년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갔다.
이듬해 중국 사천교구 선교사로 임명돼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난 뒤 조선 선교사를 자원해 교황청 허락을 받았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병사하자 1836년 1월 12일 상복 차림에 삿갓을 쓰고 조신철의 안내를 받아 압록강을 건넜다.
모방 신부는 조선에 들어온 뒤에도 얼굴과 신분을 감추려고 늘 상복 차림으로 다녔다.
정약종 아들이자 정약용 조카인 정하상의 도움으로 서울 뒷골(중구 주교동)에 자리 잡고 경기도와 충청도 등지로도 전도에 나섰다.
통역을 대동했으나 한문에 능통해 필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누추한 움막에 살면서 잡곡밥과 산나물로 끼니를 때우느라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신앙심으로 견뎌냈다.
조선식 이름은 나백다록(羅伯多祿)으로 백다록은 반석이란 뜻의 세례명 베드로를 음차한 표기다.
그의 헌신 덕분에 신유박해 직전 1만 명에서 6000명으로 줄어든 천주교 신자는 9000명으로 회복됐다.
모방 신부는 입국하자마자 천주교 교세를 지속적으로 넓히려면 조선인 사제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후보를 물색했다.
선발 기준은
▲때 묻지 않은 소년일 것
▲천주교 집안일 것
▲신앙심이 깊고 본인은 물론 가족도 신부가 되기를 바랄 것
▲건강하고 근면할 것 4가지였다.
▲영화 에서 모방 신부가 선발해 유학 보낸 한국인 사제 후보들이 마카오 조선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건(윤시윤), 최양업(이호원), 최방제(임현수). ⓒ 민영화사 제공
이에 따라 뽑힌 세 소년이 각각 충남 당진 출신의 김대건, 청양 태생인 최양업, 홍성이 고향인 최방제였다.
최방제는 1820년생, 나머지 둘은 1821년생 동갑내기였다.
최양업은 최방제와 4촌 간이었고, 그의 외조부가 김대건 할머니와 친남매여서 김대건과는 6촌 간이었다.
1836년 2월과 3월 최양업과 최방제가 차례로 뒷골의 모방 은신처에 들어왔고 김대건은 7월에 합류했다.
모방은 이들에게 천주교 교리와 라틴어를 가르쳐 그해 12월 유학을 보냈다.
귀국하는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넌 뒤 중국을 도보로 종단해 이듬해 6월 7일 마카오 도착했다.
세 소년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임시로 세운 조선신학교에 입학해 신학, 철학, 라틴어 등을 배웠다.
모방 신부는 북경신학교가 가톨릭 정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고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있던 마카오를 택했다고 한다.
신학교 교장 칼레리 신부는 파리신학교에 보낸 편지에서
"조선의 학생들은 훌륭한 사제 덕목을 갖췄다.
신심, 겸손, 면학심, 스승에 대한 존경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최방제는 5개월 만에 열병으로 숨졌다.
김대건과 최양업은 조선 원정을 계획하던 프랑스 극동함대의 통역을 맡아 마카오를 떠났다가 계획이 취소되자 중국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김대건은 1845년 8월 사제품을 받고 10월 귀국해 부교구장을 맡았으나 8개월 만에 붙잡혀 석 달 뒤 순교했다.
1849년 신부가 된 최양업은 12년간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선교·사목·저술 등에 힘쓰다가 1861년 과로로 순직했다.
한국인 사제 1호와 2호인 김대건과 최양업은 각각 '피의 순교자'와 '땀의 순교자'로 불린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왼쪽부터 모방 신부,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의 묫자리. 뒤에는 성모상, 왼쪽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이희용
이들이 유학을 떠날 즈음 자크 샤스탕 신부가 두 번째 서양인 선교사로 입국했다.
1836년 4월 26일 2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된 로랑 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도 이듬해 5월 4일 들어와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가 됐다.
서양인 신부들이 들어와 있다는 소문은 조정의 귀에 들어갔다.
앵베르는 1839년 8월 김여상의 밀고로 체포됐다.
의금부와 포도청이 나머지 서양인 신부들을 찾으려고 신도들을 혹독하게 고문해 희생자가 속출했다.
앵베르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라는 요한복음 구절을 인용하며 모방과 샤스탕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세 신부는 그해 9월 21일 서울 용산의 새남터에서 참수된 후 목이 내걸렸다.
당시 모방과 샤스탕의 나이는 36세였고 앵베르는 47세였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518&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2 19:38국민의힘 당명 개정 추진, ‘자유’ 넣으면 선거 이길까?
기자명 아이엠피터(임병도)
입력 2026.01.12
장동혁 "전 당원 뜻 물어 당명 개정"... '도로 자유한국당' 우려 속 온라인에선 "오염된 단어" 지적도
국민의힘이 또다시 간판을 바꿔 달 것으로 보입니다.
장동혁 대표 체제 이후 당명 개정 이야기가 솔솔 나오더니, 구체적인 절차까지 밟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지난 9일부터 책임당원을 대상으로 당명 개정 여부를 묻는 ARS(자동응답전화) 조사를 실시했고, 새 당명에 대한 의견도 받았습니다.
정희용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책임당원 77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명 개정 의견 수렴 결과 68.19%가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장 대표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당의 가치와 방향을 재정립하고, 전 당원의 뜻을 물어 당명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 25일 사랑의교회 예배 후에도 "국민의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고 보수 정당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당명 개정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당명 개정의 명분은 거창합니다.
"보수 정당의 정체성과 가치를 명확히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당 안팎, 특히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당명에 '자유'를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연 '자유'라는 단어를 넣어 이념적 선명성을 강조하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기 때마다 '간판갈이' vs '민주' 지킨 민주당
우리 정당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당명 변경의 역사입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을 먼저 보겠습니다.
1955년 민주당 창당 이후 수많은 분당과 합당이 있었지만, 당명에서 '민주'라는 단어가 빠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하며 창당한 1995년 '새정치국민의회의'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총선 승리를 거둔 2003년 '열린우리당' 정도가 예외입니다.
이를 제외하면 언제나 당명에 '민주'를 포함하며 그 정통성을 이어왔습니다.
반면 국민의힘 계열은 다릅니다.
이들은 선거에서 참패하거나, 대통령 탄핵 같은 결정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당명을 바꿨습니다.
민주자유당에서 신한국당으로, 차떼기 파동 때는 한나라당으로, 디도스 사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에는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쇄신의 의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당명 변경은 쇄신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덮기 위한 '신분 세탁'이나 '이미지 쇄신용'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자유' 내세웠던 자유한국당, 결과는 '괴멸적 참패'
지금 국민의힘 일각에서 주장하는 '자유'라는 키워드, 낯설지 않습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였던 2017년,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꿀 때 선택했던 이름이 '자유한국당'이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핵심 가치라며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홍준표, 황교안 대표 체제 하에서 당은 급격히 우경화되었고,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극우 세력과 손을 잡았습니다.
광장에서는 과격한 구호가 난무했고, 당은 이념 투쟁에 몰두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패배했습니다.
서울 구청장 25곳 중 24곳을 민주당에 내줬습니다.
보수의 텃밭이라 불리던 부산, 울산, 경남마저 무너졌습니다.
'자유'를 외치며 이념적 선명성을 강화하고 극우 세력과 결집했지만,
국민들은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중도층은 등을 돌렸고, 합리적 보수마저 고개를 저었습니다.
'도로 자유한국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공화 좋지만 오염돼"... 싸늘한 온라인 여론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한 누리꾼은 "보수의 기본 가치인 '공화'나 '자유'는 미국 공화당처럼 가장 중요한 단어가 맞다"면서도 "문제는 이 보물 같은 단어들이 극우 정당들에 의해 오염되고 희화화되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이라는 당명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 등으로 이미지가 훼손되어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현실론도 나옵니다.
하지만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름들에 대해서는 냉소적입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당명에 이념적인 단어인 '자유'를 넣어 극우 색채를 드러내는 과거로 회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국민의힘이 지난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가 단순히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민심을 읽지 못하는 불통,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
그리고 혁신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2012년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당명뿐만 아니라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넣으며 중도 확장을 꾀했습니다.
그 결과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자유'와 '공화'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고, 당명에 넣으면 표 떨어지는 단어가 돼버린 현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힘이 직면한 진짜 위기일 수 있습니다.
당명을 무엇으로 바꾸든, 그 안에 담길 내용이 극우적 이념과 낡은 색깔론이라면
국민의힘은 또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http://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158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2 19:20((꼭 반드시 읽어 봐야만 하는 글))
'일베의 세계관'을 가진 20대 남성의 심각한 극우화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각인의 시간'을 심각하게 두려워하고 개입해야"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6/01/12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공동 기획했던 대규모 웹조사 결과를 기억하시나요.
대선 직후였던 조사당시, 20대 남성은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국이 공산화될 것’이라는 문항에 무려 47%가 동의했고, ‘홍콩처럼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에도 44%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놀랍게도 이는 전통적 보수층인 70대 남성들의 동의율(20%대)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습니다.
합리적인 정책 비판이 아니라, 냉전 시대에나 볼 법한 색깔론과 맹목적인 공포가 21세기를 사는 청년 세대의 세계관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데이터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의도 정치권과 평론가들이 습관처럼 읊조리는 주문이 있습니다. 바로 '연령 효과(Age Effect)'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자산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안정을 추구하며 보수화된다는, 이제는 다소 낡은 공식입니다.
그들은 이 공식을 들고 와서 이렇게 안심시킵니다.
"지금 10대, 20대가 극우적 행태를 보여도 걱정 마라. 그들도 취업하고 결혼하면 유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희망 회로이자, 데이터를 철저히 무시한 기망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 사회의 주류인 '86세대'를 보십시오.
대학 시절 전두환 군사 독재에 맞서 돌을 던졌던 그 20대 청년들이, 지금 환갑을 넘긴 60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공식대로라면 그들 역시 지금쯤 태극기를 흔들며 '박정희 신화'를 찬양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진보 진영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의 정치적 DNA는 나이가 아니라, 가장 예민했던 청년기에 몸으로 겪은 시대적 경험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86세대에게 '광주'와 '6월 항쟁'이 씻을 수 없는 정서적 문신으로 남았듯,
한번 각인된 세계관은 늙지도, 쉽게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60대가 되어서도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자의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10대와 20대를 덮친 비극을 직시해야 합니다.
86세대가 최루탄 연기 속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연대감을 배울 때,
지금의 청년 세대는 교실과 커뮤니티에서 무엇을 학습했습니까?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조롱하는 밈을 놀이처럼 즐겼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을 공정이라 포장하는 일베식 능력주의를 상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노래가 그들에겐 투쟁가가 아니라 흥겨운 노동요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순간의 철없는 일탈이 아닙니다.
혐오의 내면화입니다.
지금의 20대는 10년 뒤, 20년 뒤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86세대가 영원한 386으로 살아가듯, 이들은 '일베의 세계관'을 가진 채로 40대 팀장이 되고, 50대 임원이 되고, 60대 장관이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5.18을 폭동이라 부르고,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당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주류 상식'이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한탄하시겠습니까?
연령 효과라는 말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괴물에게 넘겨주는 직무 유기입니다.
지금 당장 이 거대한 퇴행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철없을 때 한때'라고 방관했던 그 혐오의 씨앗이, 이미 거대한 숲을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86세대의 경험을 존중하듯,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각인의 시간'을 심각하게 두려워하고 개입해야 합니다.
글쓴이: 박태훈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 일베폐쇄서포터즈 단장
https://www.amn.kr/56590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2 18:52“오빠가 뭘 알아, 시키는 대로 해” 국정을 쥐락펴락한 김건희
왜 지금, 서울의소리 퍼스트레이디2 ‘내란 우두머리는 김건희였는가’라는 질문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6/01/12
윤석열 정권의 실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이제 분명해졌다.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이다.
형식상 대통령은 윤석열이었지만, 실질적 권력은 김건희와 분점돼 있었다.
아니, 각종 증언과 수사 정황을 종합하면 결정권은 오히려 김건희에게 더 가까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권 출범 이후 국정 운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김건희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는 더 이상 ‘정치적 의혹’이나 ‘소문’의 영역이 아니다.
특검 수사와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들의 잇따른 내부 폭로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을 좌우한 구조적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대선도, 인사도…막전막후에서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
김건희가 ‘내조형 영부인’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확인됐다. 대선 과정부터 인수위원회, 그리고 정권 초기까지 그는 일관되게 비공식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공공연히 ‘여사 라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김건희를 직접 보좌하거나 그의 의중을 전달하는 인물들이 공식 보고 체계를 건너뛰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전직 고위 참모 A씨의 증언은 이 비정상적 권력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A씨는 정권 출범 직후, 중대한 국정 현안과 관련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직접 제출했다.
통상적인 업무 절차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대통령님께 OO 사안 보고서 올리셨죠?”
전화를 건 인물은 대통령실 참모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실상은 김건희의 일정과 의중을 관리하던 인물 B였다.
이어진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왜 대통령님께만 드렸습니까?”
“보고서를 한 부 더 만들어 오셨어야죠.”
훈계조의 말투였다.
A씨가 보고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었지만,
실제 권력의 보고 대상은 김건희였다는 사실이 이 짧은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정부는 내가 믿고 합류한 ‘합리적 보수 정부’가 아니었다.”
“그것도 모르세요?”…여사는 대통령 위에 있었다
문제는 단순한 월권이 아니다.
이 사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헌법적 권력 구조가 이미 내부에서 붕괴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을 건너뛰거나, 대통령 위에서 국정이 조율되는 체제가 사실상 고착화돼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모르세요?”
여사 라인 인사들이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던졌다는 이 말은 상징적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압도하고, 헌법이 정한 권력 질서 위에 군림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는 단순한 국정 운영의 일탈이 아니다.
권력의 사유화이자,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김건희는 더 이상 ‘영부인’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인사에 개입했고,정책 흐름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통령실 내부 권력 지형을 재편했다.
겉으로는 물러난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정의 중심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면마다 김건희의 판단과 의중이 작동했다는 증언은 이제 예외가 아니다.
특검 수사와 연이은 내부 폭로는 하나의 결론을 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 공동 통치 체제’였다는 사실이다.
왜 지금, 「서울의소리 퍼스트레이디2」"내란 우두머리는 김건희인가"라는 질문
이 같은 권력 구조와 헌정 파괴의 실체를 기록하고 고발하기 위해,
서울의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 퍼스트레이디2 – 내란 우두머리는 김건희였다」를 제작해서 2월 초 개봉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정치 비판물이 아니다.
대선 개입 의혹, 비선 권력의 형성, 대통령 권한의 사유화,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내란 과정을 증언과 자료를 통해 체계적으로 기록한 공익적 고발 다큐멘터리다.
언론이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질문, 권력이 감추려 했던 장면들, 그리고 지금도 규명되지 않은 내란 책임의 소재를 영화라는 기록 매체를 통해 시민 앞에 고발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이는 특정 인물을 공격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권력 사유화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과연 누구였는가.
헌법 위에 군림하며 국정을 좌우한 실질 권력자는 누구였는가.
더 나아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권한을 사유화하고,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이 구조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헌정 붕괴의 과정, 그 내란적 상황의 기획자와 주도자는 과연 누구인가.
서울의소리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레이디2 – 내란 우두머리는 김건희였다'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덮으려 했던 실질적인 내란 주도자의 실체를 기록하고, 시민 앞에 끝까지 고발할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https://www.amn.kr/56587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2 17:47중수청은 '9대 범죄' 수사, 공소청은 '공소 제기 및 유지'만 담당
보완수사권 부여 문제는 법안에서 빠져
조하준 기자
입력 2026.01.12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발표한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법 정부안이 12일 오후 발표됐다.
해당 안건에 따르면 중수청은 '9대 범죄' 수사를 담당하게 되고 공소청은 공소 제기와 유지 업무만 담당하는 것으로 나왔다.
쟁점 사항이었던 공소청 보완수사권 부여 문제는 이번 법안에서 빠졌다.
추진단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법 정부안 입법예고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정부안을 발표했다.
행안부와 법무부는 이날부터 오는 26일까지 각각 입법 예고한다.
먼저 공소청법을 살펴보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검사의 직무를 재편하고 그 직무를 책임성 있게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그를 위해 공소청 검사의 직무 1호에서 '범죄수사'와 '수사개시' 부분을 삭제하고 '공소의 제기 및 유지'로 명시해 공소 전담기관으로 재편됨을 명확히 했다.
또 검사의 직무에 대해 내·외부 통제를 신설하거나 실질화해 권한 통제 및 책임성을 강화했다.
아울러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구속영장 청구와 공소 제기 여부 등을 심의하는 사건심의위를 각 고등공소청마다 설치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검사의 적격심사가 형식적이란 지적에 따라 적격심사위원회 위원 중 법무부장관이 아닌 외부에서 추천하는 위원의 비율을 높여 검사의 적격심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적격심사위원은 법무부 장관이 4명의 검사를 지명하고 2명의 의원을 위촉하도록 돼 있는데 검사를 4명에서 2명, 위촉 위원을 2명에서 1명으로 각각 절반씩 줄였다.
또한 검사의 직무수행에 있어 책임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항고·재항고와 재정신청 인용률 및 그 사유, 무죄판결률 및 그 사유가 근무성적 평정기준에 합리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검사의 정치 관여를 차단하고 정치적 중립성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 관여 행위의 양태를 구체화하고 정치 관여 처벌규정을 신설했다.
만일 검사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 또는 가입을 지원·방해하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이어 중수청법을 살펴보면
검찰청의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하는 개혁으로 인해 중대범죄에 대한 국가 전체의 수사대응 역량에 누수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먼저 중수청의 수사대상인 중대범죄는 지능적·조직적 화이트컬러 범죄를 중심으로 설정하고 대형참사범죄 및 사이버범죄와 같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국익과 직결돼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포함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검찰의 수사개시 대상인 부패·경제 등 범죄 뿐 아니라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마약, 내란·외환 등 국가보호, 사이버범죄 등 '9대 중대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했고 대통령령을 통해 고액 경제범죄와 기술유출, 국제 마약밀수, 대규모 해킹 범죄 등 중대범죄의 죄명 등을 특정할 예정이라 덧붙였다.
그 밖에 공소청 또는 수사기관 소속 공무원이 범한 범죄, 개별 법령에 따라 중수청에 고발된 사건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중대범죄 수사를 빈틈없이 수행하고 인재의 유치를 도모하기 위해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을 두고 직무 특성에 맞는 경력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으로 이원화하더라도 전문수사관이 수사사법관으로 전직하고 고위직에도 제한없이 임용되도록 함으로써 인사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수사에 기여하며 전직이 가능한 ‘유연한 협력체계’이고, 중수청은 검찰 외에 경찰, 타 분야 다양한 전문가에게도 ‘열려있는 체계’로 설계함으로써 수사역량이 확보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수청과 다른 수사기관 간에 수사 경합이 발생한 경우, 중수청이 타 수사기관에 대해 이첩을 요청하거나 사건을 이첩할 수 있도록 규정해 혼선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했으며 공수처 사건의 경우 공수처장이 이첩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또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사업무의 특징과 인권보호의 당위성에 비춰 행정안전부장관의 지휘·감독권을 규정해 중대범죄수사에 관한 적정한 통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즉, 행안부 장관은 중수청 사무에 대해 일반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고 구체적 사건에 관해선 중수청장만을 지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 밖에 중수청 내 공모직 감찰관과 시민이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해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내부 통제장치도 마련했고
중대범죄 수사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범죄자에 대한 기소 및 성공적인 공소유지와 연계될 수 있도록 중수청·공소청 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번 법안으로 수사-기소 분리 즉, 수사를 개시한 기관이 이를 종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을 구현하면서 범죄대응 역량도 유지하여 범죄로부터 국민의 일상을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며 법안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울러 “법무부는 후속 법령 정비도 적극 지원하여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공소청을 운영하고, 형사사법체계 개혁의 성공에도 기여하여 국민주권정부의 법무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법안은 수사와 기소가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형사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방점을 두고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국민주권정부 검찰개혁의 요체인 중대범죄수사청이 민주적 통제 아래 공정하고 전문적인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남은 설립 준비기간 동안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 밖에 윤창렬 추진단장은 “현재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설치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 과정이 조속히 이루어져 신속하게 입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기한 내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하위법령 마련 및 조직, 인력, 시스템 구축 등 후속 조치도 꼼꼼히 챙기는 한편,
형사소송법 등 수사-기소 관계법률 개정안 마련 및 국회 제출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월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번 논의에선 쟁점 사항이었던 공소청 보완수사권 부여 여부가 빠졌다.
이렇게 중수청법과 공소청법까지 신설되면서 검찰청은 올해 10월에 78년의 역사를 끝으로 해체되는 것이 확정됐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38558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2 17:36尹 외환죄 재판부 기피 신청...여전히 계속되는 법 꼼수
구속영장 추가 발부에 앙심 품었나?
조하준 기자
입력 2026.01.12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이정엽)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일반이적 혐의 첫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 '법 꼼수'를 부려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작년 11월 10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과 함께 지난 2024년 10월 말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쌓을 목적으로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일반이적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일반이적 혐의 재판부에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했고 재판부는 지난 2일 이를 받아들였다.
12일 열린 일반이적 혐의 첫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은 '재판부 기피' 신청이라는 법 꼼수를 부렸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본안 심리를 담당하는 재판부가 아직 공소장만 제출된 단계에서, 어떠한 증거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피고인을 구속한 채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과 재판 실무에 비춰볼 때 극히 이례적이고 비상식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또한 재판부가 증거능력 인정여부가 판단되지 않은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를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제출받아 구속심사 검토 자료로 사용했다며 "이는 재판부가 이미 공소사실에 대한 예단을 형성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음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고도 했다.
거기에 더해 재판부가 3월 이후 공판기일을 주 3∼4회 지정한 점도 언급하며 "이미 8건 이상의 사건으로 각각 기소돼 연속적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윤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일 지정은 구속 피고인의 실질적인 방어권 행사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김 전 장관 변호인단 역시 재판부가 공소장을 송달받지 않은 상태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며 "공소장만으로 영장을 발부한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통상 기피 신청이 제기되면 타당한지를 다른 재판부가 판단해 결정으로 결과를 내놓는다.
다만,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재판부가 바로 기각하는 간이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기피 신청이 있는 때에는 소송 지연이 명백하거나 관할 규정에 어긋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송 진행을 정지해야 한다.
따라서 '법꾸라지'란 별명을 가진 윤석열 전 대통령답게 이번에도 법안 하나하나에 갖가지 트집을 잡으며 또 다시 법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재판부가 자신에게 추가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재판부란 점 역시 윤 전 대통령이 앙심을 품은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 전 장관 측은 이날 재판이 비공개로 전환되기 전 특별검사보가 불출석한 것도 트집을 잡았다.
변호인인 이하상 변호사는 피고인 인정신문 전 "특검보가 없으면 진행 절차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특검보 지휘 아래 공판을 진행해야 하는데 파견 검사들로만 진행하는 건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특검팀은 "규정상 특검이나 특검보 지휘하에 공소 유지를 할 수 있게 돼 있다"고 "규정이 있는 상황에서 (변호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개정 특검법 제7조에는 '파견 검사는 특검이나 특검보의 지휘 및 감독에 따라 특검과 특검보의 재정 없이 법정에서 공소 유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재판부는 "(특검보에게) 잠깐이라도 오시라고 하는 건 어떠냐, 이 문제 때문에 논의해야 하냐"고 특검 측에 요청했고, 박억수 특검보가 출석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일반이적 혐의 재판부는 재판 중 다수의 국가 비밀이 노출될 것으로 예상돼 국가 안보를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결심 전까지 매회 공판에서 그 전에 이뤄진 절차와 당일 절차를 고지 후 비공개 여부를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은 지난 2024년 10월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쌓기 위해 남북 간 군사적 대립을 부추길 목적으로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당시에 투입된 무인기가 평양 인근에 추락하면서 작전·전력 등 군사 기밀이 유출된 만큼 일반이적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외환유치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았으나 현실적으로 북한과 통모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에 적과의 통모 여부와 관계 없이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경우 적용되는 일반이적죄로 기소했다.
일반이적죄는 형법 99조에 따르면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38563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1 19:18유튜브 요약본 보는 당신의 착각
유튜브 요약본부터 직장과 여론까지, 확신이 만들어지는 순간
황인수(insyus)
26.01.11
▲TV앞에 있지만, 모두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종종 일부만 보고도 모든 내용을 안다고 느낀다. ⓒ 황인수
"뭐 보고 있어?"
소파에 기대 앉아 있는 아내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 보니 드라마였다.
"이거 완전 재미있어. 같이 보자."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아내는 유튜브 요약본으로 보고 있었다.
넷플릭스도 구독 중인데, 굳이 왜 요약본일까.
"다 보려니 시간 아까워서."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아내는 친구와도 그 드라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를 보던 풍경은 사라졌다.
시청률 60%를 넘기던 드라마도 이제는 없다.
대신 우리는 요약본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 드라마 내용 다 알았어."
메타 착각
하지만 정말 그럴까.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다 알았다"라고 말할 때, 뉴스를 제목만 보고 "아, 그 이야기"라며 넘길 때, 아이에게 "아빠가 다 해봐서 아는데"라고 조언할 때, 우리는 정말 다 알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전체 중 일부만 알고 있으면서 모두 안다고 믿는 상태, 우리는 지금 '메타 착각' 속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차이는 직장에서 더 선명해진다.
"내가 이 회사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이건 내가 다 해봐서 아는 거야."
"회사 일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속 김부장이 반복하던 말이다.
그의 판단 기준은 명확하다.
연차, 과거의 성공 경험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문제는 환경은 바뀌었는데 판단은 과거에 머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김부장은 틀린 걸까.
문제는 정답 여부가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점검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태도다.
성실했고 회사에 오래 기여했고 실제로 성과를 냈던 사람일수록, 오히려 메타 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에는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의 길을 막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개인 차원의 메타 착각은 실수로 끝난다.
하지만 사회로 확장되는 순간, 착각은 의견이 되고 여론이 되고 결정이 된다.
일부 자극적인 기사의 내용으로 어떤 연예인을 규정하는 여론몰이도 그렇다.
또, 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런 문장을 자주 본다.
"해당 정책은 국민 다수가 요구해 온 사안입니다."
이 말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 맥락은 사라지고 '국민 다수'라는 단어만 남는다.
질문은 무엇이었는지, 다수는 누구인지, 응답률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떤 반대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정책 판단의 불확실성을 '확신의 언어'로 덮어버린 메타 착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메타 착각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왜곡된 정보의 결과이기도 하다.
나를 메타 착각으로 이끌고 있다는 신호
메타 착각 속 세상, 그렇다면 우리는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을까.
우리는 부분만 알고 있다.
메타 착각은 "나는 꽤 많이 알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일부만 보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해야 한다.
"이게 맞을까?"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시선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메타 착각으로 이끌고 있다는 신호는 어디서 나타날까.
메타 착각은 감정과 행동을 먼저 건드린다.
불편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편을 고르게 한다.
그럴 때 이렇게 물어보자.
"이 말은 나에게 지금 무엇을 믿게 만들고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를 누군가가 만든 프레임 안이 아니라, 그 프레임 밖으로 이동시킨다.
마지막으로 확신을 말하는 사람보다 조건을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다.
"답은 하나입니다" "이건 상식입니다"라고 단정하는 말보다 "이 경우에는", "현재 기준으로는"이라고 시작하는 말에 메타 인지가 있다.
여러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영역이 어디인지 알고, 누가 그 빈틈을 이용하려 하는지 눈치채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확신하고 있는 그 생각은 이미 지나가 버린 생각은 아닐까.
그리고 지금 당신을 확신하게 만드는 그 말은 정말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을까.
아니면 당신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을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338&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1 15:50쿠팡 없이 40일 살아보니 이런 소득도 있네요
이참에 점검해본 생활... 냉장고가 정리되고 줄어든 카드 대금, 걷기 운동은 덤
정현순(jhs3376)
26.01.10
내가 마지막으로 쿠팡에서 물건을 산 것은 11월 29일 오전이었다.
11월 29일 저녁에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그 후부터는 쿠팡 이용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서다.
며칠 동안 지켜보다 12월 11일에 어렵사리 회원 탈퇴를 하고도 앱은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쿠팡의 변화를 기대했는데
특별히 물건을 살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궁금한 마음에 하루에 한두 번씩은 그곳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한편으로는 쿠팡 측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무언가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사과와 변화는커녕 날이 갈수록 실망감과 모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대표의 사과는 없었고 청문회 때 외국인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한국말을 할 줄도 모르고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했다.
진짜 청문회를 하러 나온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하면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열심히 일한 젊은 노동자의 죽음을 왜곡하는 보도다.
그 후로도 쿠팡의 비상식적인 운영에 대한 보도는 계속되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쿠팡의 이중성이 괘씸했고 분노도 느껴졌다.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사라져 휴대폰과 컴퓨터에 있던 쿠팡 관련 것을 모두 없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한 층에는 4가구가 사는데 그들도 새벽 배송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쿠팡 정보 유출 사건이 보도되기 전까지는 젊은 사람들이라 새벽 배송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벽 배송에 필요한 에코백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혀 다른 온라인 마켓 에코백이 놓여 있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 다르지만 내 경우에는 새벽 배송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구태여 그런 빠름이 아니어도 괜찮은 생활이다.
새벽 배송은 대부분 식자재가 차지하고 있기에 이참에 내 생활도 점검해보기로 했다.
우선 냉장고 정리부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식자재도 넉넉히 있었다.
와우 회원일 경우 최소한 1만 9800원을 채워야 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액수를 채우려고 이것저것 사놓은 것이 제법 있었다.
그러다 보면 금액을 넘는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딱 1만 9800원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 금액을 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게 되어 양이 많아지기 일쑤였다.
이번을 계기로 쿠팡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탈쿠팡 40일, 결론은 살 만하다
40일 동안 쿠팡 없이도 살아보니 그런대로 살 만했다.
처음에는 불편했고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온라인 마켓을 전혀 사용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 예전에 가끔 사용하던 온라인 마켓을 다시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40일 동안 온라인 마켓에서 구입한 것은 명란젓과 쌀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동네에 있는 마트나 채소가게를 이용했다.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목록에 넣었지만 당장 사지 않아도 괜찮은 것도 있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현명한 소비를 해왔다고 생각했으나 쿠팡 없이 40일을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인
터넷에서 식품도 충동 구매를 했었다.
쿠팡을 끊은 지 40일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시간이 흐르니 오히려 '탈쿠팡'을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냉장고 안이 깨끗해지고 훨씬 넓어졌다.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점도 장점이다.
다른 온라인 마켓에서 주문한 상품은 쿠팡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장을 보려면 내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하지만 상품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살짝 만져도 보고, 가격을 물어보고, 고르고, 여러 사람과 부딪히는 일들이 생동감마저 들게 한다.
많이 사면 들고 오기 힘드니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결제할 카드 대금도 줄어들었다.
걷기 운동은 덤이다.
조금 더 늦어도, 조금 더 비싸도, 조금 번거로워도 상관없단 생각도 들었다.
그 너머에는 또 다른 가치가 존재하고 있었으니.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603&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댓글 0
-
29
tradbred (@tradbred)2026-01-10 17:24그래서 한국은 언제 베네수엘라가 되나요?
[박세열 칼럼] 베네수엘라 만들 뻔한 윤석열…'판타지'도 적당히 해야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6.01.10.
대체 한국은 언제 베네수엘라가 되는 것일까?
일부 극우 사이트나 '윤어게인' 세력이 음지에서 킬킬거리며 쓰는 '베네수엘라' 비유가 별안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국민의힘 공식 논평에 등장했다.
이 정당이 논평 아이디어를 어떤 수준의 사람들 사이에서 얻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최근 대선에서도 마두로는 부정선거 논란 속에 재집권하며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했고, 누적된 국민적 분노와 내부 붕괴는 결국 오늘의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도한 돈 풀기와 권력의 독주, 야권 탄압과 언론 압박이 일상화된다면 대한민국 역시 같은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경고를 직시해야 합니다. (...)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국민의힘 조용술 대변인 논평)
'부정선거 음모론'을 은은하게 섞어 넣은 이 논평이 담고 있는 '정신 세계'에서,
나경원 의원은 한발 더 나간다.
그는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방파제'다. 국제질서 재편기, 경제 안보 위기속,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독재와 부패, 고립의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탈 것인가냐의 갈림길이다"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지금 한국의 상황은 베네수엘라의 몰락 과정을 닮아 있고, 국민의힘이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베네수엘라가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무너져 내리고, 이재명 하야 여론이 터져 나올 것이며, 야당 투사 장동혁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될 것이고, 트황상(트럼프)이 항공모함을 타고 와 이재명을 체포, 오키나와에 압송한 후, 감옥에 있는 윤석열을 구출하러 올 것이라는 판타지 소설과 그 수준이 비슷해 보인다.
국민의힘의 베네수엘라 사랑은 오래된 일이다.
2018년 홍준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대표는그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0대 경제 지표중 9개 분야가 하강이거나 침체"라며 "나라가 망한 베네수엘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는 2번(자유한국당)을 찍어야 '망하는 길'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작 그해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망한 건 자유한국당이었다.
대구와 경북을 빼고 전국 14개 광역단체장을 민주당이 싹쓸이 했다. (제주 원희룡은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나경원이 '베네수엘라행'을 경고하며 '2번 안찍으면 나라 망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2018년 선거에서 망하고도 '베네수엘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2019년 '베네수엘라 리포트위원회'라는 뜬금없고 희한한 당내 기구를 만들어 베네수엘라 연구에 몰두했는데, 황교안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를 보면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정권과 소름 끼칠 정도로 유사하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2020년 총선에서 '폭망'한 건 민주당(180석)과 문재인이 아니고 황교안과 자유한국당(103석)이었다.
그러고 나서 진짜 베네수엘라 느낌의 대통령이 마치 주술적 예언처럼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민주당에서 나온 게 아니라 본인들의 정당에서 나와버렸다.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부러웠는지 윤석열은 동해에 석유 시추를 지시했고,
비상 계엄을 선포해 주식 시장과 외환시장을 때려 부쉈다.
그리고 정치인과 언론인을 잡아들이라 명령했으며, 정당을 아예 해체하고 대체 입법 기구를 만들려고 했고,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한밤중에 국회에 침투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윤석열의 추종자들은 법원을 습격하고 윤석열에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으러 다녔다.
자, 이제부터 윤석열의 향후 롤모델은 단연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일 것이다.
군대를 일으켜 쿠데타를 감행했으나 실패하고 감옥에 갇힌 윤석열처럼,
차베스 역시 199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감옥에 2년간 갇혀 있었다.
쿠데타 실패를 자인하고 투항한 차베스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 72초간의 TV 생중계 연설을 했는데, 그는 "단지 지금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올 것"이라며 '차베스어게인'을 외쳤다.
(이제부터는 윤석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차베스의 연설에 '계몽'된 시민들은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감옥에 갇힌 차베스는 옥중에서 '대통령 선거 기권 운동'을 주창한다.
그의 제안에 발맞춰 '차베스어게인' 세력이 발호하게 되는데,
1993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기권율은 무려 40%를 기록한다.
이 수치는 대통령에 당선된 라카엘 칼데라의 득표율보다 높았다.
(윤석열은 이 지점에서 고무될 것이다.)
이후 차베스는 대통령 사면을 받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98년,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윤어게인 세력은 이 지점에서 또한 고무될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 비선' 노상원이 자신의 수첩에 "헌법 개정(재선∼3선)"이라고 적은 것처럼, 차베스도 개헌을 통해 기존 의회를 해산하고 야당을 무력화해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다.
윤석열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인을 보낸 것처럼 차베스도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했고, 사법기관, 특히 검찰과 법원을 틀어쥐었다.
차베스의 친동생은 수차례 부패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과 법원은 '봐주기'로 일관했다.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현대판 매관매직을 일삼고, 국민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장막 뒤에서 불법적으로 국정에 개입"(특검 공소장)한 윤석열 배우자 김건희도 '윤어게인'이 현실화되면 깨끗하게 풀려날 것이다.
이 이상의 '베네수엘라'가 있을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스토리는 윤어게인 세력들에게 참으로 귀감이 될 만하다.
정신을 차릴만도 하다.
제도권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거의 10년 가까이 베네수엘라를 연구하며 '판타지'에 빠져 있는 건 정상이 아니다.
어떤 현상을 비유적으로 비판하는 건 문제 없지만, 현실 자체를 '지옥'으로 묘사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려는 건 역효과를 낳는다.
정당의 주장이 대중의 '커먼 센스'와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정당의 호감도는 낮아질 것이다.
윤석열이 법정에서 한 말처럼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국=베네수엘라 말하다가 창피 당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국민의힘 주변에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보수 정당이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전락시켜서야 되겠는가.
국민의힘이 "호수 위의 달그림자" 쫓듯 '제발 나라가 베네수엘라 되게 해주세요'라며 인디언 기우제를 벌이고 있는데,
정작 '베네수엘라'를 닮아가고 있는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제발 이성을 회복하길 바란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6010815492619066&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댓글 0
- 쪽지보내기
- 로그방문

개
젤리 담아 보내기 개
로즈 담아 보내기 개







0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