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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21:44[사설] “주식양도세 필요” 거론한 이 대통령, 본격 논의 시작을
수정 2026-04-12
이재명 대통령이 “거래세와 양도세를 바꿔야 한다”며 주식양도소득세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주식 양도차익에 매기는 양도소득세는 극히 일부의 대주주에게만 부과하고 있어, 조세 형평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금융투자를 통한 소득에 적절한 세금을 매기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전체회의에서 “(주식) 거래세는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다 내는 것이라 사실은 문제”라며 “언젠가는 거래세와 양도세를 같은 수준에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원론적 수준이지만 주식양도세의 도입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라도 주식양도세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노동을 통한 소득에는 근로소득세·사업소득세가, 예금 이자에는 이자소득세가, 부동산 양도차익에는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데, 유독 주식 양도차익에는 아무런 세금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은 수십년 전부터 주식양도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세금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였다.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 투자를 통한 소득이 5천만원을 넘으면 22~27.5%의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여야 합의로 법이 통과됐고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시행이 유예된 뒤, 2024년 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합의로 폐지되고 말았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합의 이유에 대해 “우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코스피가 4000대를 가게 되면 시장 참여자들이 기꺼이 새로운 세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코스피는 2500선에서 횡보하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한 코스피는 지난 2월 6000을 돌파했고,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5000선을 지키고 있다.
더 이상 ‘주식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과세를 미루기 어렵다.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린 데에는 기업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상법 개정 등 이재명 정부의 정책 의지가 큰 몫을 했다.
이제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 체계도 선진국형으로 정비해야 진정으로 주식시장 정상화가 완성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주식양도세를 포함해 금융투자소득 관련 세제 개편에 대한 검토를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253835.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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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21:35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생수’ 마케팅 [유레카]
전정윤 기자
수정 2026-04-12
“‘살아 있는 물’이라는 뜻을 지닌 ‘생수’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
최재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생수 산업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9일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올린 ‘생수 산업은 망해야 합니다―생수의 비밀’ 영상에서 “생수는 구정물”이라며 마시는 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다.
최 교수의 비판 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병입 생수는 살아 있는 물이 아니라 ‘죽은 물’이라는 주장이다.
물을 퍼서 컨테이너로 옮긴 뒤 다시 페트병에 담고, 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닿는 동안 물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원래 공공재인 물을 기업이 판매하는 것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는 지적이다.
셋째는 미세플라스틱(5㎜~1㎛ 플라스틱. 1㎛ 이하는 초미세플라스틱) 문제다.
사실 최 교수는 2013년에도 칼럼을 통해 “병에 든 물은 이내 병든 물이 된다”며 흐르는 물인 아리수 사용을 권장했다.
13년 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최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 배경엔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플라스틱은 태양광·산소·열을 만나 작은 입자로 쪼개지는(미세화) 과정을 거친다.
이 입자들이 장기로 이동해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를 보면,
수돗물보다 페트병 물에서 세배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국내에선 국립환경과학원이 생수 30여종과 정수장 4곳의 물을 별도로 연구한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다.
20㎛ 이상의 ‘큰’ 미세플라스틱이 수돗물에서 리터당 평균 0.12개, 생수에서 리터당 평균 1.32개 검출됐다.
플라스틱 티백 한개에서 116억개가 검출될 정도로 심각성이 크지만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초미세플라스틱을 제외하더라도, 생수가 수돗물보다 11배나 많은 플라스틱을 포함하고 있다.
1994년 대법원의 ‘생수 국내시판 금지 조치’ 무효 판결을 거치며 국내 생수 산업이 본격화된 지 30년 남짓 지났다.
1995년 제정된 ‘먹는물관리법’상 명칭은 ‘먹는샘물’이지만, 민간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구분하던 ‘생수’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와 노후 상수도관 문제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생수 수요를 폭발시켰지만, 국내 수질 및 상수도관 관리 체계는 이제 세계적 수준이다.
미세플라스틱 우려가 현실화한 지금, 막연한 불안감에 기댄 생수 소비 문화를 재고해 볼 때가 된 건 아닐까.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3825.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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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21:29[사설] 환영할 만한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반인권” 언급
수정 2026-04-12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스라엘군의 전쟁 범죄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린 것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경시하는 발언”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은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세계인들의 지적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11일)이라고 재차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쟁 범죄는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관한 문제다.
이를 덮어놓고 ‘홀로코스트 경시’로 몰아가는 것은 자신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귀를 막는 그동안의 행태를 반복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엑스에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프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썼다.
전날 이스라엘 외무부가 앞서 10일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전쟁 범죄를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자, 재차 반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애초 “사실인지 알아봐야겠다”며 공유한 동영상은, 이스라엘 방위군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영상이다.
이 대통령은 해당 영상이 2년 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인의 주검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확인되자,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한다”는 글을 다시 올렸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영상에 찍힌 이스라엘군의 행태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미국 백악관도 당시 “매우 충격적”(deeply disturbing)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면죄부’ 삼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상대로 반인권적 범죄를 저질러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미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미국의 이란 침공을 부추긴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고,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소탕하겠다며 레바논을 무차별적으로 공습해 수백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평화를 염원하는 전세계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레바논계 영국 언론인 기다 파크리)는 비판이 왜 나오는지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253839.html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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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20:06왜 한국은 연예인의 도덕성에 민감할까
기자명 김욱 칼럼니스트
입력 2026.04.12
[김욱의 한국 문명 탐구] 한국에서 스타는 왜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의 도덕적 일탈은 단숨에 커리어를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대중은 음주운전, 학교폭력, 거짓말 등의 논란에 강렬한 분노와 실망을 표출하며, 한번 도덕성에 흠집이 난 연예인에게 대중 곁으로 돌아올 자리를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다.
결국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영영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서구권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록스타가 마약 스캔들에 휘말리더라도, 그것이 때로는 팬덤 내에서 반항아의 전설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많은 외국 팬들이 "왜 한국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도덕성에 이토록 가혹한가?"라며 의문을 품는 지점이다.
동일한 일탈 행위가 두 문명권에서 이토록 극명하게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서구에서 스타는 ‘신화적 존재’다
서구의 스타 시스템은 철저하게 거리 유지와 신비감을 기반으로 조직되어 왔다.
할리우드 배우, 록스타, 슈퍼모델은 대중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로 그려진다.
팬들은 그들의 실제 삶에 개입하지 않으며,
작품과 무대라는 ‘완벽하게 연출된 판타지’만 소비한다.
기행이나 스캔들이 스타의 아우라를 오히려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탈은 그들을 비범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장치이며,
팬들은 이를 판타지 소비의 연장선에서 즐긴다.
서구의 숭배 구조는 기독교적 사고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절대적 존재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 자체가 숭배의 근거가 된다.
스타 역시 일상 너머의 타자이며, 그 타자성이 곧 매력의 원천이다.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다.
서구 팬덤이 스타에게 바라는 것은 초월적 이미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일탈은 이야기의 일부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이다.
2. 한국에서 스타는 ‘관계의 대상’이다
반면 한국의 스타는 숭배가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다.
아이돌이든 배우든 그들은 대중과의 ‘정서적 연결’을 자산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스타가 “오빠”, “누나”, “막냇동생”, “조카 같은 아이”로 호명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먼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일상적 호칭 속으로 들어오는 친근한 인간이다.
이는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라, 문명적 관계 감각의 반영이다.
한국은 유일신 숭배 전통이 없다.
신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한 사회다.
유교 문명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도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관계의 조화였다.
사람의 가치는 고립된 개인의 탁월함보다,
관계를 어떻게 조율하고 성숙시키는가에서 드러난다고 여겨졌다.
이 전통은 시대를 건너뛰어 현대 한국의 팬덤 문화마저 관통한다.
오늘날 K-팝 팬들은 스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와 맺고 있는 관계를 소비한다.
연습생 시절의 고난, 데뷔 과정, 성장의 서사, 사적인 일상 등은 팬과 스타를 정서적으로 묶어주는 관계 자산이다.
팬들은 스타의 관찰자가 아니라 동반자다.
스타의 성공은 ‘스타 혼자만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결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스타의 일탈은 단순한 도덕 위반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붕괴, 즉 배신이다.
3. 도덕성은 한국 스타의 핵심 자산이다
관계는 신뢰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일탈은 더 크게 느껴지고, 배신감은 더 깊어진다.
팬들이 스타의 일탈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 스타가 “우리와 공유해 온 이야기 전체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감정과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관계 서사가 한순간에 ‘추악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서구 팬덤에게 스타의 일탈은 하나의 이벤트이지만,
한국 팬덤에게는 내가 쌓아 올린 관계의 파괴다.
도덕성은 팬과 스타가 맺은 관계의 근본적 구성 요소다.
그래서 한국에서 스타는 연예인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서구 부모들이 자녀의 K-팝 팬 활동을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총기를 흔들거나 욕설을 일삼으며 마약 스캔들로 비범함을 증명하는 서구식 록스타 모델보다, 사회적 도덕 기준을 지키려는 스타가 더 안전하고 건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4. 그러나 도덕성 요구에 원칙이 없다
스타에 대한 한국의 엄격함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관계 중심 문화는 분명 강점이 있지만, 동시에 문제점도 안고 있다.
관계가 깊을수록 배신감도 커지고, 대중의 도덕적 요구는 때로 지나칠 수 있다.
스타가 완전무결한 성인군자로 살아야 한다는 압력은 실존적 부담을 낳는다.
말과 행동의 사소한 실수조차 회복 불가능한 낙인이 되기 쉽다.
미성년 시절의 행동이나 부모의 채무, 사적인 문제까지 도덕성 문제로 환원되면서
스타의 삶은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된다.
이 지점에서 팬과 스타의 관계는 ‘함께 성장’이 아니라,
스타를 끝없이 관리하고 바로잡으려는 강제적 양육으로 변질되기 쉽다.
과연 스타가 도덕군자로 살아야만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까?
이 모습은 한국의 입시 경쟁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스타를 타자로 숭배하는 문화가 아니라,
관계 속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문화다.
그래서 도덕성 문제에 더욱 민감하고, 상처도 더 깊다.
이러한 반응은 분명한 문제점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한국적 관계 문화의 건강한 측면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구조를 서구식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메타인지는 필요하다.
우리가 왜 스타의 도덕성에 이렇게 집착하는지,
그들에게 과도한 관계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찰 위에서 지금의 ‘여론 재판’ 방식도 개선될 수 있다.
건강한 관계라면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스타의 사생활까지 침해하지 않고,
그들을 도덕군자로 몰아가는 압박을 경계하는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원칙이 부재하다.
그래서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관계 중심 문화의 강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요구의 균형을 잡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김욱 칼럼니스트는 오랫동안 시사블로거로 활동하면서 부산 지역의 정치와 문화,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해 왔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며 브런치에 한국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https://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39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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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19:52[노트북을 열며] 이재명이 던진 '인권'이라는 돌직구
"홀로코스트 추모일 앞두고 모욕적"이라며 반성 거부한 이스라엘의 오만
인권 유린 앞에 '국익' 앞세워 침묵 강요하는 야당, 그들이 말하는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최영규 기자
입력 2026.04.12
청와대를 출입하며 연일 쏟아지는 현안과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좇다 보면,
지도자의 철학이 국가의 품격을 어떻게 결정짓는지 뚜렷하게 목도하는 순간이 온다.
지난 사흘간 이재명 대통령의 엑스(X·옛 트위터)를 무대로 숨 가쁘게 전개된 '인권 외교' 공방전이 바로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명확하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을 건물 옥상에서 발로 밀어 떨어뜨리는 등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한 영상이 공개됐고,
이 대통령은 이를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과 '위안부 강제 동원'에 빗대어 엄중히 질타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교부는 즉각 반발했다.
해당 영상은 2024년 9월 카바티야에서 발생한 과거의 일이며, 이미 군 차원의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자국의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앞두고 이러한 비유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라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의 항변은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
영상이 촬영된 시점이 언제이든, 인권을 유린하고 학대하는 행위가 국제인도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시 미국 백악관과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조차 "매우 충격적(Deeply disturbing)"이며 "혐오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던 사안이다.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방패 삼아 현재의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이성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크리에이터 'Jvnior'의 감사 인사에 화답하며 "인권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라고 재차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순적 태도를 꿰뚫어 본 결과다.
더욱 씁쓸한 것은 국내 정치권의 반응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스라엘의 적반하장식 반발을 틈타 "국익을 저해하는 SNS 정치를 중단하라"며 대통령을 흔들었다.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조차 얄팍한 외교적 득실로 계산하며, 가해자의 편에 서서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국익'인가.
"사욕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자들을 매국노라 부른다"
12일 오전 이 대통령이 남긴 이 서늘한 문장은 정쟁에 눈이 멀어 헌법 정신을 외면한 이들을 향한 통렬한 꾸짖음이다.
우리 헌법은 보편적 인권 존중과 침략 전쟁 부인을 명시하고 있다.
이 대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이며, 진정한 의미의 국익이다.
비겁한 눈치 보기가 국익으로 포장되는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단호했다.
송영길 전 대표가 리트윗하며 강조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인권 수호를 향한 평화적 결단이다.
핍박받는 약자의 고통에 눈감는 외교로는 결코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없다.
가짜 국익의 장막을 걷어내고 '인권'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선택한 이재명 대통령의 외로운 돌직구는, 대한민국 외교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4450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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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2 00:09((꼭 반드시 읽어 봤으면 하는 좋은 글))
벼슬이 된 한국의 정규직
기자명 김욱 칼럼니스트
입력 2026.04.11
[김욱의 한국 문명 탐구] 한국 노동시장 비정규직 차별은 과거제의 망령
지난 4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조건이라면 비정규직의 보수가 더 많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은 보상이 붙는 것이 상식이라는 설명이었다.
사실 이 말은 노동의 원리로 보면 당연한 말이다.
불안정성과 위험, 낮은 예측 가능성은 그 자체로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5년 6~8월 기준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이 389만 6,000원, 비정규직이 208만 8,000원이었다.
불안정성이 더 큰 쪽이 오히려 더 적게 받는 구조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다.
이 발언을 둘러싼 반발도 거셌다.
특히 공정과 능력주의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서 반응이 두드러졌다.
“힘들게 공부해서 정규직이 됐는데 왜 비정규직이 더 많이 받아야 하느냐”,
“그럴 거면 누가 치열하게 준비해서 정규직 시험을 보겠느냐”
는 식의 불만이 쏟아졌다.
그러나 바로 이 반응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깊은 모순을 드러낸다.
스스로 가장 현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이들이, 막상 노동시장이라는 이해관계의 장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전통적인 신분 질서의 감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공정을 경쟁의 입구에서만 이해하고 이후의 보상 질서에는 잘 적용하지 않는다.
공정이란 선발 절차의 투명성만이 아니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책정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낡은 관습을 향해서는 “유교적 꼰대 문화”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보상 체계라는 문제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
정규직이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과 무관하게 더 높은 보상과 더 큰 존중이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이 감각은 놀라울 만큼 조선시대의 과거(科擧) 중심주의와 닮아 있다.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곧 사람의 격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 바로 그것이다.
조선의 과거 제도는 단순한 관료 선발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합격과 동시에 신분이 수직 상승하고 가문의 위상까지 달라지는 통로였다.
급제는 능력의 증명인 동시에 평생의 특권을 보장하는 자격증이었다.
그 특권은 “공정한 경쟁을 통과했다”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었다.
능력주의는 평등의 언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합격 이후의 거대한 불평등을 승인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의 과거 급제와 오늘의 정규직 우대 논리가 만난다.
오늘날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비슷한 구조가 숨어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가, 얼마나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하는가보다 먼저 “어떤 관문을 통과했는가”가 대우의 기준이 된다.
임금이 현재의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과거의 입직 시험에 대한 포상처럼 이해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입직 신분이 임금의 핵심 근거가 되는 셈이다.
물론 현실의 모든 임금 격차를 단순화해서 볼 수는 없다.
정규직 임금에는 장기근속, 숙련 축적, 조직 책임, 승진 구조 같은 요소도 반영된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도, 오직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큰 격차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노동시장 논리라기보다 신분 질서의 잔재에 가깝다.
특히 비정규직이 더 큰 불안정성과 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더 낮은 보수를 받는 구조는, 합리적 계약 질서라기보다 관문 통과자의 특권을 옹호하는 문화에 의해 지탱된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업은 벼슬길이 아니다.
직장은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공간이다.
따라서 임금은 원칙적으로 ‘무슨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해도 내가 정규직 시험을 뚫었으니 더 받아야 한다”는 감각은 자유계약 사회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과거 급제 사회의 잔향에 더 가깝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부 젊은 세대가 전통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다.
일상 속 유교적 예절과 가족주의, 위계적 문화는 낡고 비합리적이라며 비판하면서도, 정규직이라는 기득권을 방어할 때만큼은 전통이 남긴 관문주의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계승한다.
자신에게 불편한 전통은 타파해야 할 적폐가 되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주는 전통은 공정한 질서로 둔갑한다.
전통에 대한 비판의 언어는 현대적인데,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본능은 놀라울 만큼 조선적이다.
과거제가 나쁜 전통은 아니다.
오히려 유교적 성취주의와 과거제적 경쟁 문화는 오늘의 한국을 만든 강력한 동력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입신양명의 열망과 교육 숭상은 전 사회를 치열한 학습 경쟁으로 몰아넣었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과 교육열, 평균적 교양 수준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압축 성장과 높은 노동 경쟁력 뒤에는 분명 이 전통의 힘이 있었다.
문제는 그 유산을 어디까지 계승하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장점이 컸다고 해서 그 원리와 부작용까지 함께 숭배할 수는 없다.
시험을 통한 선발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발의 정당성이 곧 선발 이후의 포괄적 특권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급제가 벼슬과 신분을 함께 부여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정규직 합격 역시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고용 계약일 뿐, 사람의 격을 나누는 신분 증서가 아니다.
긍정적 유산은 이어가되, 입직이 곧 신분이 되는 낡은 감각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김욱 칼럼니스트는 오랫동안 시사블로거로 활동하면서 부산 지역의 정치와 문화,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해 왔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며 브런치에 한국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https://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39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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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1 23:54이스라엘 스스로 확인한 시신 앞에서, 검증을 논하는 자들에게
사실로 확인된 장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가
박태훈
기사입력 2026/04/11
이스라엘 군이 2024년 9월 팔레스타인인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발로 밀어 떨어뜨리는 영상
서안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재명 대통령의 리트윗을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 불렀습니다.
그 한 문장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우리가 지금 다투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SNS 소통 방식이 아닙니다.
침묵이 당연해진 세계에서, 누군가가 마침내 그들을 보아주었다는 사실 앞에서 터져 나온 눈물입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홀로코스트 전야에 유대인 학살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이준석 의원은 검증되지 않은 영상을 공유한 것이 외교적 무게를 망각한 경솔한 행동이라 비판했습니다.
명백한 궤변입니다.
이준석 의원이야말로 공격할 빌미를 찾았다는 생각에 실수한 겁니다.
먼저 사실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유한 영상은 2024년 9월 19일 서안지구 카바티야에서 촬영된, IDF 병사들이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투척하는 장면입니다.
B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가 사실로 확인했고,
바이든 행정부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매우 충격적(deeply disturbing)“이며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행위”라고 공개 규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 당국 스스로도 조사에 착수한 사건입니다.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악명 높은 계정’이라는 이스라엘 외교부의 주장은,
영상이 담고 있는 행위의 실재를 단 한 글자도 지우지 못합니다.
이준석 의원이 지적한 ‘검증 문제’는 개미 손톱만큼 정당합니다.
최초 공유 당시 ‘아동을 살아서 던졌다’는 설명은 부정확했고, 이 대통령 스스로 수 시간 안에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생존자든 시신이든, 아이이든 저항군이든, 팔레스타인인의 몸을 건물 옥상에서 내던지는 행위는 제네바 협약이 명시한 시신 존엄 보호 의무를 위반하는 국제인도법 위반입니다.
더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자체 수정을 마친 이후에도 비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판자들의 진짜 문제는 ‘검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이스라엘의 행동에 감히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외교부의 반론은 더욱 황당합니다.
그들은 이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낡은 방패입니다.
하마스의 테러 역시 규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IDF의 전쟁범죄 의혹을 덮는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4년 1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를 방지하라는 잠정조치를 명령했습니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2025년 9월, 국제법이 정의하는 집단학살 행위 다섯 가지 중 네 가지가 이번 전쟁에서 자행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식량과 물의 차단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SNS 발언이 아닙니다.
국제사회의 공식 판단입니다.
홀로코스트와의 비교가 불경하다는 이스라엘 외교부의 항의는 스스로 홀로코스트의 세계사적 비극성을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반박하고 있습니다.
-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이스라엘계 미국 역사학자인 오메르 바르토프 브라운대 석좌교수는 이스라엘의 가자 작전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며, 2024년 5월을 기점으로 그 결론이 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아모스 골드버그 교수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이 집단학살이며, 이를 인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작가이자 이스라엘인인 다비드 그로스만은 오랫동안 사용을 거부해 온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마침내 직접 사용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비교는 홀로코스트를 격하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 물음을 불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네타냐후 정권에게 있는지, 저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준석 의원은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원칙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수사적 장치입니다.
국가 수반의 발언이 모든 인권 침해국을 동시에 다루어야만 정당성을 얻는다면,
세상 어떤 지도자도 어떤 발언도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 속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강제 징용, 그리고 민간인 학살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바로 그 역사의 고통 속에서 단련된 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무원칙한 편향이 아닙니다.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길어 올린 도덕적 일관성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저작 『휴전』 속에서 경고했습니다.
진짜 위험은 괴물 같은 악인이 아니라,
질문 없이 믿고 행동할 준비가 된 평범한 사람들, 기능하는 관료들에게서 온다고.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그 만행에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외교적 수습’을 논하는 목소리입니다.
레비의 경고가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저희가 바란 것은 단지 주목받는 것, 목소리가 들리는 것뿐”이라고 썼습니다.
기적을 바란 것도, 특혜를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 안에서 ‘국격’과 ‘외교적 실익’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 쪽이 더 부끄러운 일인지, 역사는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보편적 인권이 외교적 계산보다 앞서는 것이 진정한 국격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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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1 23:54♡죽고 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13가지♡
1.삶에 집착마라 이세상은 잠시 머무는 소풍일 뿐이다
2.남과 비교 마라 관 뚜껑 덮이는 순간 모두가 평등하다
3.체면 치레마라 장례식에 올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4.물건 쌓지 마라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어 가져갈 게 없다
5.외모에 목메지 마라 주름은 훈장이며 살결은 결국 먼지기 된다
6.명품 뽐내지 마라 화장터 불길 속에선 결국 다 잿더미다
7.후회와 불안에 갇히지 마라 죽음 앞에서는 그지 무거운 짐이다
8.집에 집착 마라 내가 떠나면 결국 남이 살 빈집이 된다
9.지식 뽐내지 마라 치매라도 오면 내 이름조차 잊게 된다
10.돈 매달리지 마라 남은 재산은 자식들 싸움만 부추긴다
11.남눈치 보 지 마라 주고 나면 세상은 나를 금방 잊는다
12.누구도 미뭐하지 마라 원수 조차 죽으면 한 줌 훍으로 돌아간다
13.권력 탐내지 마라 떠나고 나면 호령도 부질없는 바람 소리다
세이클럽 사연 중에서..
https://me.sayclub.com/bdcst/reqst-song-detail?bsrl=gX6vqYKLMCR16bu6T8v2Dg%3D%3D&asrl=RiQ8LBI9lnDqX%2F%2BXKMHqvw%3D%3D&boardType=REQSONG&bdcstDomainId=abcd00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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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1 18:50[조하준의 직설] 김태효의 사대주의
조하준 기자
입력 2026.04.10
윤석열 정부 당시 안보 실세로 불렸던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미국 등 우방국에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정황이 포착돼 수사망에 올랐다.
이것만으로도 논란이 될 일이었지만 JTBC 단독 보도를 통해 드러난 정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우선 그는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당시 주한 미국대사 필립 골드버그에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해 헌법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누구보다 숭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단"이라며 계엄 선포를 합리화하는 궤변을 늘어놨다.
이어 그는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EU에도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던 것이 2차 추가 종합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쯤 되면 김태효가 나라 망신을 앞장서서 자행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의 나라 망신 행태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본래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였던 그는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중용을 받았고
이른바 '가치 외교'를 주도한 장본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태효가 주도한 '가치 외교'로 인해 당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며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대립각을 세워 심각한 외교, 안보 불안을 야기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어 대화 창구조차 손상시켰으면서 미국을 상대로는 대통령실이 도청됐음에도 항의 한 번 못했고
일본을 상대로도 과거사 분쟁, 독도 문제,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 등에서 모두 저자세 굴욕 외교를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른바 '중일마' 발언은 단연 압권이다.
여기에 더해 서방 국가들에게 내란을 통해 들어설 '윤석열 독재정권'을 지지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내려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김태효는 세계관만 냉전시대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국가관 역시 냉전시대에 머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물론 미국이란 나라가 흔히 아는 것과 달리 무조건적으로 '민주주의의 수호자' 노릇을 했던 것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가 중남미 지역에 '더러운 전쟁'이란 것을 벌이며 극우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했던 전례가 있듯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면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것도 방치했던 것이 미국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는 중남미 지역 정세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걸 김태효는 애써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 씨 정권은 폭압적인 독재정권이고 이미 남한은 민주주의가 정착된지 40여 년이 다 돼 간다.
아무리 미국이 북중러를 견제할 목적으로 남한이 필요하다 한들 이미 남한 국민들이 자체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는데 다시 독재정권을 옹호하려 든다면 미국 입장에선 스스로 북중러에게 책잡힐 거리를 주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 측에서도 당시 주한 대사 골드버그가 김태효에게 대놓고 깊은 유감과 유려를 표명했으며 미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 또한 "심각한 오판"이라며 윤석열을 비판하고 나섰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역시도 김태효의 '간절한 메시지'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들을 상대로 있지도 않은 '종북좌파의 준동'을 들먹이며 윤석열 독재정권을 승인해달라고 하는 것이 나라 망신이 아니면 무엇이 나라 망신일까?
지금까지도 김태효가 별 다른 불이익 없이 천연히 나다니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김태효란 인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소위 뉴라이트라 불리는 극우 세력들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반시대적 성향의 사람들로 이들에게 외교와 안보를 맡기면 도리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보수와 수구는 마땅히 구분돼야 한다.
지금의 뉴라이트 세력들은 '보수'가 아닌 '수구' 집단에 불과하다.
윤석열 내란 세력을 말끔히 청소해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이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80년 가까이 묵혀왔던 친일의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세계를 향해 큰 뜻을 펴지 못한 이유가 굴종적이고 사대 근성에 찌들어 있는 매국노 잔당들이 국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매국노 잔당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마지막으로 몸부림을 친 정권이었다고 봐야 한다.
구 냉전시대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국제질서에 발을 맞추고 이념이 아닌 국익을 최우선하는 외교를 발휘해야만 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몸값이 더욱 높아진다.
이것은 이미 1000년 전 고려인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준 교훈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더욱 나라 망신의 주범인 뉴라이트 세력들을 몰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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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bred (@tradbred)2026-04-11 18:42[동그라미 만평] '원팀’의 저력과,‘진흙탕’의 자멸
홍순구 만평작가의 '동그라미 생각'
홍순구 시민기자
입력 2026.04.11
[굿모닝충청 홍순구 시민기자]
경선은 단순히 후보를 가려내는 절차를 넘어, 정당의 정치적 역량과 품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엄중한 시험대다.
정당에 있어 선거 과정은 그들의 정치적 자산과 민주적 역량을 평가받는 시험대다.
유권자는 경선이 치러지는 모습을 통해 집권의 당위성을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자멸의 징후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개되는 두 정당의 대조적인 풍경은 ‘승리하는 조직’과 ‘무너지는 조직’의 차이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됐던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은 정원오 후보의 선출로 귀결됐다.
결과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경선 뒤에 보여준 후보들의 태도였다.
탈락자들은 이의 제기 없이 결과에 승복했고, 곧바로 ‘불꽃 선대위’ 아래 뭉쳐 원팀으로서의 단일대오를 완성했다.
잡음 없는 경선 마무리가 당의 결집력을 증명한 셈이다.
민주당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전략 지역의 후보 선출을 신속히 마무리하며 선거 체제로 조기 전환했다.
공천 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한 덕분에 지지층의 결집은 물론 중도층의 긍정적인 평가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내부 에너지를 소모적인 갈등이 아닌 외부의 승리로 돌릴 준비를 마친, 전형적인 ‘이기는 집’의 문법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수렁에 빠졌다.
서울과 경기 등 승부처의 대진표조차 짜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는 사이,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에서는 당의 컷오프 지침마저 무력화되며 9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시계 제로’의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질서마저 실종된 경선은 건강한 경쟁이 아닌,
당의 권위를 스스로 허무는 ‘정치적 자해’에 가깝다.
경북도지사 경선은 한술 더 떠 점입가경이다.
정책 대결은 실종된 지 오래고, 현직 최고위원과 도지사가 주고받는 선 넘은 인신공격만이 난무한다.
지지층 사이에서조차 "이러다 다 죽는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당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리더십의 부재다.
지지율 추락과 함께 '지방선거 필패론'이 당을 엄습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당 대표는 다음 주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집안에 불이 났는데 가장은 먼 길을 떠나는 격이다.
이러한 지도력의 공백은 경선 갈등을 중재할 동력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당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경선은 단순히 후보를 가려내는 절차를 넘어, 정당의 정치적 역량과 품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엄중한 시험대다.
단합된 힘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정당과 내부 투쟁에 매몰되어 과거로 퇴행하는 정당. 어쩌면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경선을 대하는 각 당의 태도에서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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