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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하나라도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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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8-12 00:20
    전현희 눈물의 연설 화제, "권익위 국장을 죽인 건 김건희!"
    민주당·조국혁신당도 논평서 김건희 향해 책임 물어
    조하준 기자
    입력 2024.08.11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합동연설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전현희 최고위원 후보.(출처 : 굿모닝충청 유튜브 영상 갈무리)


    지난 10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경기도 합동 연설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전현희 후보의 눈물의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전 후보는 지난 8일 있었던 권익위 김 모 부패방지국장 사망사건을 두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김건희 여사"
    라고 직격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도 당 차원 논평에서 비슷한 논조로 비판했다.

    이 날 전 후보는 "하늘의 빗물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는 말로 운을 떼며 자신이 전 날 숨진 김 국장의 빈소를 조문한 사실을 알렸다.
    그는 숨진 김 국장이 자신이 권익위원장으로 재직했던 시절 아끼던 직원이었으며 누구보다도 강직하고 청렴한 직원이었다고 했다.
    또한 조문한 자리에서 김 국장의 부인과 자녀들을 부둥켜 안고 오랫동안 울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왜 이 분이 돌아가셔야 했는가?"라고 외치며 "누구보다 강직하고 누구보다 청렴한 권익위의 전도유망한 젊은 국장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 논문을 갖다 주겠다고 웃으면서 얘기했던 그 모습. 너무도 눈에 선하다"며 고인과의 추억을 격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어 전 후보가
    "'공직자의 부패와 청렴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강직하고 청렴한 젊은 국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누가 죽였나? 누가 살인자인가?"
    라고 격정적인 어조로 외치자 청중들은 일제히 '김건희'라고 외쳤다.

    전 후보는 또
    "왜 이 분이 돌아가야만 했나? 윤석열 정권이 살인자다! 그렇지 않나?"
    라며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쏟아내며 발언을 했다.

    이에 청중들도 '맞습니다'를 외치며 호응했다.

    이어 전 후보는
    "그 날 장례식장을 떠나면서 울분에 못 이겨서 그 자리에 있는 윤석열 정권의 실세들에게 외쳤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다'고"라며 더욱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전 후보는 자신이 그렇게 말하자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이 쫓아와서 자신에게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고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이에 전 후보는 "어이가 없었다"고 밝히며 "참으로 무도하고 반성을 모르는 잔인한 정권이다. 그렇지 않나?"라고 했다.
    이 때 전 후보는 목이 다 쉴 정도로 격한 연설을 했다.

    이어 전 후보는 김 국장은 사실상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피살을 당한 것이며 윤석열 정부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현희 후보의 격정적인 눈물의 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5분짜리 연설이지만 그 안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도 당 차원의 논평을 내어 전현희 의원과 마찬가지로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체는 윤석열 정부라고 직격했다.

    먼저 민주당은 10일 황정아 대변인 명의로
    '“공직자가 권력에 굴복하면 정의가 죽는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정의는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란 제목의 서면브리핑을 발표했다.

    황 대변인은
    "‘종결 처리 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양심적 의견을 냈던 공직자를 죽음으로 내몬 윗선부터 밝혀야 한다"
    고 지적하며 국민의힘이“무조건적인 정치 공세는 협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입이라도 다물라. 대통령 부부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망가질 셈인가?"라고 질타했다.

    황 대변인은 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의가 김건희 여사라는 성역 앞에 무릎 꿇려졌습니다. 이 추악한 권력 사유화, 권력농단의 수렁을 벗어날 길은 오로지 특검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통과시켜 모든 의혹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했다.

    조국혁신당도 11일 배수진 대변인 명의로
    '김건희 여사는 권익위 김 국장 죽음 앞에 떳떳한가'
    란 제목의 논평을 내어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배 대변인은
    "그놈의 명품백이 뭐길래 받은 걸 안 받은 척, 받아도 되는 척, 사과하는 척, 마는 척 하며 온 국민을 바보취급하더니 급기야 부패방지업무의 최고전문가인 공무원까지 희생시켰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를 향해
    "김건희 여사는 권익위 김 국장 죽음 앞에 떳떳한가? 윤석열 정권은 이 죽음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배 대변인은 김건희 종합특검을 반드시 출범시킬 것이며
    "특검은 권익위 결정 과정까지 샅샅이 들여다 볼 것이다. 결국 김건희 종합특검도 무고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다루게 됐다"고 했다.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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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21:45
    [사설] ‘명품백 조사’ 권익위 국장 사망, 철저히 진상규명해야
    수정 2024-08-09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조사했던 김아무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이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김 국장이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극심한 자책감과 자괴감을 토로했다는 증언과 정황도 속속 나오고 있다.

    조사와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부당한 외압이나 업무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9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 국장은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이 ‘종결’ 처리된 것과 관련해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해 괴롭다’는 취지로 지인들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김 국장은 사건을 종결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상급자인 정승윤 부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앞서 권익위는 지난 6월10일 명품 가방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며 종결 처리했다.
    이날은 명품 가방 사건으로 여론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이후 국외 출장을 자제했던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6개월 만에 다시 외국 방문을 재개한 날이었다.

    최정묵 권익위 비상임위원이 사건 종결 처리에 반발하며 사퇴하는 등 극심한 진통이 이어졌고, 국민권익위가 아니라 ‘여사권익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과거 권익위는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수수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었다.

    김 국장의 사망은 법과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으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권익위의 행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 국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응급헬기 이송 관련 사건을 조사한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당시 권익위는 이 전 대표 등의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입증할 자료가 부족하다면서도, 헬기 이송에 관여한 의료진과 소방서 관계자들이 행동강령을 위반했다고 해당 기관에 통보하는 등 무리한 조사 결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 국장의 사망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 안에서도 “공직자가 법과 원칙, 양심과 상식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 죽음으로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면, 정의를 위해 이 문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유승민 전 의원)는 주장이 나온다.

    권익위를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킨 이들이 김 국장 사망의 진정한 배후다.
    누가 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도록 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53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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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21:42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검찰 [아침햇발]
    기자 이춘재
    수정 2024-08-11

    노무현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될 무렵인 2006년 7월 말 조선일보에 ‘계륵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노 대통령이 인기가 너무 없어서 당시 여당(열린우리당)에 ‘쓸모는 없으나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닭갈비(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고 비아냥대는 글이었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금도를 벗어난 일부 언론의 사회적 일탈”
    “절제력을 잃고 선정적 제목 장사로 대통령과 정부를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행위”
    등 청와대 홍보수석의 공개 발언에서 당시 대통령 참모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항상 ‘오버’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한 고위급 참모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고소를 검토해 보라고 민정수석실에 지시했다.

    그러자 검찰 출신의 한 참모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고소하면 검찰은 무조건 기소하려고 한다.
    사실상 대통령 하명 수사라고 생각할 텐데, 검사가 시시비비를 가릴 엄두를 낼 수 있겠나. 대통령 하명 수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검찰의 생리다. 결국 민심만 더 나빠진다.”

    설득력 있는 그의 반론에 고위급 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 대통령도 반대할 게 뻔했다.
    국정 운영에 책임감을 느끼는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검찰 고소는 그 자리에서 없던 일이 됐다.


    검찰 생리를 너무 잘 아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지금 정반대로 행동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명예훼손 수사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과잉 충성’을 유도한다.

    지난 5월 이원석 검찰총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찐윤’ 검사들로 교체했다.
    그러자 새 지휘부는 1년 가까이 묵혀뒀던 이 사건을 끄집어내 ‘윤석열 대선 후보 검증 보도’를 한 언론인들을 기소했다.
    마치 대통령을 위한 수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과시하듯 사람 목숨까지 불사한 수사였다.

    내친김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 ‘출장 조사’까지 했다.
    공정과 상식은 내 알 바 아니고, 나를 알아주는 주군에게만 충성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윤 대통령이 원했던 게 바로 이런 자세다.
    졸지에 원조 ‘친윤’이었던 전임 지휘부는 무능하고 불충한 검사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전임 지휘부가 수사를 슬슬 한 것도 아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수사 대상 언론인들과 통화한 사람들을 모조리 통신 조회했다.
    그 대상이 무려 1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도 문제이지만, 그 방식은 더욱 심각하다.
    정치인, 언론인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도 대거 포함됐다.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는 초등학생 딸까지 조회를 당했다.
    봉 기자가 단골로 다니던 닭갈비 집 사장과 엘피 바 주인은 검찰이 보낸 ‘통신이용자정보 제공 사실 통지’ 문자를 받고 영문을 몰라 몹시 불안해했다고 한다.
    장사가 안돼 폐업 신고를 했는데 거기서 뭐가 잘못된 게 아닌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는 것이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해 놓고도 검찰은 “적법한 수사”만 되뇐다. 그
    러면서 “국민을 위한 검찰” “법불아귀”(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같은 번지르르한 말은 입에 잘도 올린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주요 신문들이 사설이나 칼럼으로 검찰을 비판했다.
    검사들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지난 2021년 대선 국면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그랬으니까.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공수처를 “미친 사람들”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공수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135명 대 최소 3천명)의 통신 조회를 한 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민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김은혜 당시 대통령 홍보수석이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를 “희대의 정치공작 사건”이라고 규정하자 곧바로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홍보수석의 말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한 것이다.

    정치공작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커녕 단서도 없지만, 일단 대통령의 장단에 맞추고 보는 게 이들에겐 중요하다.
    이렇듯 검찰 수뇌부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무고한 시민들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세상이 됐다.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보는 검찰은 그래서 위험하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3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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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8-11 21:34
    사도광산 비판 우려해 일본 대표 발언 ‘바꿔치기’한 외교부
    입력 : 2024.08.09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관련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 발언을 실제와 다르게 소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물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됐다는 발언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옮긴 것이다.
    외교부가 일본의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지우기를 용인해놓고 국내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발언을 조작한 것 아닌지 해명이 필요하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수석 대표 발언문에 따르면,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지난달 27일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이 발언을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로 바꿔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지난 수개월간 일본 정부와 가진 진지한 협상의 결과물”이라고 자찬했다.

    외교부는 너무 긴 표현을 옮기며 줄이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고 해명했으나,
    해당 보도자료는 발언의 축약이 아니라 주요 언급을 발췌한 것이다.

    게다가 국가 간 외교에서 상대국 발언문의 핵심 단어를 멋대로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안의 성격상 ‘모든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는 의미가 천양지차여서 함부로 바꿔 쓸 내용이 아니라는 점은 외교부가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닌가.

    일본과의 사도광산 협상에 대한 외교부의 설명은 줄곧 석연치 않았다.
    외교부는 처음엔 ‘강제성이 드러나는 표현’을 일본이 수용했다며 성과를 강조했으나 ‘강제’(forced to work) 표현 명시를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표현 문제를 일본과 협상한 것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이후 이재정 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일본에 ‘강제동원’ ‘강제노역’ 등 표현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실토했다.

    결국 외교부는 일본에 ‘강제성’ 표현 요구를 거부당했는데도 유산 등재에 찬성해준 것도 모자라, 국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대표의 발언문까지 직접 ‘마사지’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까지 일본을 감싸는 이유가 뭔지 요령부득이다.


    일본 정부는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의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명부를 공유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양보만 거듭하니 한국 정부를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지금의 한·일 관계는 “일본의 역사를 세탁하려는 기시다 정권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완벽한 공범을 찾아냈다”(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는 논평이 과하지 않다.

    ‘사도광산 외교참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40809173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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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21:15
    “김건희 사건 종결 양심에 반해” 권력이 몰아간 권익위 공무원의 죽음
    입력 : 2024.08.09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조사 실무 책임자였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부패방지국장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김 여사 사건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된 것에 ‘양심에 반해 괴롭다’는 자괴감을 토로해 왔다고 한다.

    숨지기 이틀 전에는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 송구하다.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문자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다.

    타살 흔적이 없고 메모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비극적 선택에 몰리기까지 얼마나 괴로워 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9월13일 재미교포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디올백을 받았지만 권익위는 지난 6월 김 여사에 면죄부를 줬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에게도 적용된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4항은 “공직자 등의 배우자는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하여 공직자 등이 받는 것이 금지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고인은 김 여사 사건을 종결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무시당했다.
    고인은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권익위원,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권익위원 등은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김 여사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인이 김 여사에 대한 직접조사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윗선에서 반대해 좌절됐다는 후문도 있다.

    ‘김건희권익위원회’로 전락한 조직에서 부패방지 업무 책임자인 고인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에게 가방을 건넨 최 목사는 이후 청탁금지법 위반, 주거침입, 스토킹처벌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김 여사는 경호처 건물로 검사를 불러 간단히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이제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성격도 달라졌다.
    김 여사 개인 비리도 심각하지만, 김 여사의 과오를 덮는 불의의 과정이 담당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반부패 총괄기관이라는 권익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감찰이 불가피하다.
    김 여사 사건 종결 과정에서 고인에게 압력을 가한 인사가 누구인지,
    그 인사는 또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김 여사는 지금이라도 유족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 바란다.
    늦었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



    https://www.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4080917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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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20:46
    권익위원장 출신 전현희 "윤 정부가 죽인 것, 공직자 소신 지켜드릴 것"
    민주당 대전·세종 합동연설회서 화두 오른 '권익위 고위 간부 사망' '신임 독립기념관장'
    24.08.11
    심규상(djsim)

    민주당 대전·세종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당대표 및 최고위원 합동연설회에서도 최근 숨진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간부와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쟁점이 됐다.

    국민권익위원장 출신인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을 조사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
    "윤석열 정부가 살인한 것"이라며
    "공직자들의 소신을 반드시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전 최고위원 후보는 11일 오후 3시 대전 배재대 스포렉스홀에서 대전·세종 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합동연설회 연설에서
    "숨진 권익위의 젊은 국장은 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였다"면서
    "하지만 윗선에서 강압으로 좌절하고 고민하다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전 후보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서도 수사 외압에 공포를 느낀 여러 공직자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고, 소신을 지키려다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외압을 고발하고 고통 당하고 있는 이들의 소신을 지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를 끝장내겠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친일 독립기념관장을 그만두게 하고 천공과 결별을 선언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8일 독립기념관장에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김형석 이사장이 취임한 데 따른 비판이다.

    김병주 최고위원 후보도
    " 친일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한 것을 보고 '윤 대통령에게 일본으로 떠나라'고 외치는 사람이 많다"고 직격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53425&PAGE_CD=N0002&CMPT_CD=M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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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8-11 19:00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양재하
    김종성
    24.08.11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친일파도 있다.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해방이 명확히 '대박'이었다.
    그런 판단으로 해방 다음 날 지금의 한국프레스센터 주변에 나타났다.
    그는 전직 일간지 기자였다.
    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언론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0년 8월에 와 가 폐간된 이래, 한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하나였다.
    그래서 매일신보사에 들어가지 않는 한, 식민지 한국 안에서 한국어로 일간지 기사를 쓸 기회는 없었다.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가 1995년 1월 에 기고한 '해방언론 50년사' 제1편은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에서 일간신문을 인쇄할 수 있는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매일신보사를 비롯하여 일인들이 발간하던 일어신문인 경성일보와 조선신문, 그리고 인쇄소로는 근택인쇄소 등이 있을 정도였다. (중략) 우리말 단행본을 인쇄할 수 있는 시설을 가진 곳도 서울에서는 한성도서, 협진, 서울일신, 수영사, 대동, 청구, 고려 등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5년간의 그 같은 암흑이 걷히고 1945년 8월 15일 새벽이 됐다.
    그러자 언론인들은 업계를 복구하기 위해 신속히 행동했다.
    위 기고문은 "45년 8월 15일부터 이 해 말까지 40종을 넘는 신문이 새로 창간되었다"고 설명한다.
    언론인 일부는 해방 이튿날 지금의 프레스센터 주변에 나타났다.
    매일신보사를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정신이 멀쩡한 위 친일파도 그 대열에 섞여 있었다.

    이들은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사람들이었다.
    2010년에 제63권에 실린 김동선 국가보훈처 연구원의 논문 '해방 직후 의 성격 변화와 의 창간'은 "여운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배경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우선적으로 신문을 장악하는 일에 착수했다"라며 "건준은 8월 16일 매일신보사의 접수를 기도"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을 주도한 인물은 뜻밖에도 위 친일파다.

    친일파 양재하가 총독부 기관지의 접수를 이끌었던 것이다.
    제2권 양재하 편은 해방 직후에 그가 "건국준비위원회 신문위원에 위촉되었다"라며 "의 인쇄 시설을 접수하여 창간을 시도"했다고 기술한다.

    일본 해군 되어 희생할 것을 촉구

    양재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제 침략전쟁을 찬양했던 친일파다.
    찬양도 그냥 찬양이 아니라 꽤 고약한 찬양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게 1943년 6월호 에 쓴 '조선인과 바다'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 군사전문가인 아리마 세이호가 1942년에 저술한 를 언급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역으로 지칭하는 임진왜란에 관한 이 책은 충무공 이순신을 군인정신이 없는 수준 낮은 인물로 평가했다.

    이 책을 다룬 김준배 해사 교수의 논문 '아리마 세이호의 (1942)에 보이는 이순신 비판론'(2020년, 제114호)에 따르면,
    아리마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을 '조정의 승인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을 두고 "우리 군인 정신에 비추어 논해보면 언어도단"이라고 평했다.

    아리마는 이순신을 언어도단적 인물로 혹평하면서, 해전이 임진왜란 승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말로써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평가절하했다.

    '조선인과 바다'에서 양재하는 이 책을 한 달 전에 읽었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제4-9권에 인용된 '조선인과 바다'에 따르면,
    그는 "그때부터 제국이 대륙 진출에 경륜을 가지고 오늘 해군 건설에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재하가 자신의 나라처럼 언급한 '제국'은 이순신의 나라가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나라다.

    그때부터 제국이 대륙 진출에 경륜을 갖게 되고 이것이 지금의 해군 건설에 토대가 됐다는 느낌을 독후감처럼 내놓은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는 이순신이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꽤 고약한 방법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암시했던 것이다.

    양재하는 그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성장한 "제국해군의 일원"이 될 자격이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인들의 일본군 입대를 부추기는 글이었던 것이다.
    그는 "대장부는 말가죽으로 주검이 싸여야 한다(大丈夫當以馬革褱屍)"는 글귀를 거론하면서 일본 해군이 되어 희생할 것을 촉구했다.

    "옛말에 대장부당이마혁회시(大丈夫當以馬革褱屍)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 마땅히 말가죽으로써 시체를 싼다. 즉 전장에서 토사(討死)할 것이지 아녀자를 옆에 놓고 약사발을 들고 최후를 마치는 것은 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부는 모름지기 마혁회시도 좋지마는, 그보다 사람은 반드시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할 일이다."

    전투하다 쓰러져 말가죽에 싸여 매장되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게 좋다는 말이었다.

    일본 해군이 되어 바다에서 희생할 것을 부추긴 것이다.

    아녀자를 옆에 놓고 약사발을 들고 최후를 마치는 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병상에 누워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그냥 바다에서 목숨을 다하라고 선동했던 것이다.

    대중의 목숨을 매우 하찮게 여기는 인성의 소유자였다.
    극우파 성향을 가진 악질 친일파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물이 해방 다음날 매일신보사를 접수하고자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 나타났던 것이다.

    친일이 실직을 벗어나는 방편

    양재하의 접수 시도는 실패했다.
    건준이 뒤에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은 "일본군의 반발로 실패했다"고 말한다.
    일본군 덕분에 시설을 지킨 매일신보사는 김구와 김규식이 중국에서 귀국한 그해 11월 23일부터 을 찍어내게 됐다.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이듬해인 1906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한 양재하는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중학교급)와 경성법학전문학교(고교급)를 졸업한 뒤 1930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다.
    이 해에 조선일보사에 들어갔다가 3년 뒤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40년 8월에 폐간되기까지 동아일보사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가 친일파로 부각된 것은 그 뒤였다.
    가 폐간돼 실직자가 된 이후에 노골적인 친일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실직 뒤에 그는 월간지 를 창간했다.
    1941년 2월부터 이 월간지를 운영하면서 갖가지 친일 논설을 발표했다.
    침략전쟁 시기라 친일을 하지 않고는 월간지를 운영할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월간지를 창간했다.

    친일이 실직을 벗어나는 방편이 됐던 것이다.

    위 진상규명보고서에 따르면,
    1948년에 민족정경문화연구소가 편찬한 은 양재하가 발행한 에 관해 "적극적 친일은 피한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전쟁협력, 내선일체화 운동의 잡지'가 되고 말았다"고 평했다.

    이런 잡지를 1944년 10월까지 발행했다.
    생활 자금이 에서 나왔다 해도 친일 논설을 실어 잡지를 운영했으니, 그 기간의 생활은 친일재산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았던 그가 점령군이 되어 매일신보사에 밀고 들어갔다.
    중도좌파 그룹인 여운형 라인에 줄을 선 결과였다.

    매일신보사 점령에 실패한 뒤 를 창간하고 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는 해방정국하에서 언론인의 위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경북 문경에서 당선됐다.
    26일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통에 납북됐다.

    북으로 간 뒤인 1956년에는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이 됐다.
    8·15 해방을 기분 좋게 맞이한 이 친일파는 60세가 된 1966년에 눈을 감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51502&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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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dbred (@tradbred)
    2024-08-11 16:05
    (ㄴ)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인문견문록] ·
    김창훈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8.10.


    모욕감과 수치심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나르시시즘이란 방어기제가 작동된다.
    식민지민의 정체성은 현실적 지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마음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든다.
    식민지민의 삶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지 않는다.
    남은 유일한 길은 스스로를 식민지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식민지민이 아닌 채 살아가는 것이 열패감에 시달리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출구가 된다.

    결국 일단의 무리는 정신적 친일파가 된다.
    우리의 비참함도 '결국 우리가 못난 탓'이라 생각하는 분열적 정체성을 파농은 식민지형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았다.

    당대 신문의 사회면은 식민지민중의 비참한 처지를 알리는 기사들로 가득했다.

    "사회면을 보면서 입게되는 상감(感傷)은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하고도 넘치는 상태였다. 빈민굴, 떼죽음, 파멸해가는 농촌, 학생들의 동맹휴학, 염세자..살, 끊이지 않는 검거로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비참한 현실'에 감정을 이입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고통을 경험하는 일상인 것이다"

    "사회면은 '항상 검거, 징역, 자..살, 기근 등이어서 참혹해서 볼 수가 없는' 식민지 사회의 거울이었다."

    서로의 절망과 비참함에 공감하면서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책을 읽으며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필자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외할머니는 "순사 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린 나이여서 순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책을 읽고난 후 식민지 시절을 살아내신 외할머니에게 순사가 어떤 존재였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반도 민중은 순사라는 괴물에 내맡겨진 수인(囚人)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를 다룬 탁월한 책을 이미 갖고 있다.
    최정운의 책 (미지북스 펴냄)이다.
    유선영의 책은 최정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절창'이다.
    절창이되 슬픈 절창이란 의미에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612543317662&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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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5:59
    (ㄱ)
    한반도 민중은 마침내 비참의 공동체가 되었다
    [인문견문록] ·
    김창훈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8.10.

    한국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강한 사회다.
    수준 높은 문화상품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지만 그 상품의 내용은 어두움 투성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었던 기생충,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셋 모두가 빈부격차, 폭력과 뒤틀린 욕망이 투영된 사회를 묘사한 것이다.

    한국의 성공의 이면에는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 사회를 직조해낸 빛과 어둠의 기원을 찾아나선 책이 있다.
    전 성공회대 교수 유선영의 (유선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이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란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회 모든 부문에 침투한 권위주의, 부정과 부패, 국가와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 학벌주의와 서열주의, 한 인생의 성공이 물질로 환전되는 물질주의, 경쟁위주의 사교육, 성형한국의 외모주의, '갑질'이 만연한 폭력과 착취의 아비투스에 시선이 머물렀으며 의문은 힘을 얻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어느 사회에나 권위주의, 부정부패, 서열주의, 폭력은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 양상이 다르다.

    유선영은 먼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소개한다.
    아비투스란 특정한 환경과 조건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한 사회의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감정구조 즉 아비투스가 한 사회를 특정한 형태로 주조한다. 한번 형성된 아비투스는 특별한 계기를 만나 변화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유선영은 한국인의 감정의 기원으로 일제강점기 전후를 주목한다.

    비교적 안정적 사회를 오래 유지했던 조선이 급격히 와해된 것은 서세동점이란 국제적 흐름 때문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한국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감정은 '업수이여김'이었다.

    19세기말 독립신문을 만들고 독립협회를 주도하던 서재필은 미국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떠나기 전 대중을 향해 고별연설을 한다.

    "나라를 부강케 하고 용맹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앞으로 나아가 세계 만국에 동등 대접을 받고 다시는 외국 사람들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지 말지어다."

    그는 눈물에 목이 메어 연설을 다 마치지 못했다.
    '업수이여김'이라는 감정은 조선 민족의 일상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조선지배가 본격화된 이후 일본 경찰의 조선인에 대한 폭력과 모욕은 흔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경찰은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경찰의 폭력은 반일혐의가 있는 이들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특히 위생행정을 핑계로 폭력은 불특정 다수 대중을 향했다.

    총독부 산하 경무국 소속 위생경찰의 활동에 대한 유선영의 설명이다.

    "일제는 식민지민의 일상, 신체, 의식주, 생활방식을 규율하고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합리화,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대적 위생 개념·제도·담론을 활용했다."

    문제는 위생경찰의 활동이 지극히 폭력적이었던 것에 있다.

    "청결을 빌미로 매년 몇 차례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농민에게 가하는 구타와 모욕은 다른 경관이나 헌병이 인민을 억압 멸시하는 정도 이상으로 감정을 상하게 했다.",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경찰의 매질, 구타, 무시와 조롱, 협박으로 공포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 청결검사, 검병 호구조사였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일본인 경찰과 조선인 순사들이 한집안의 어른인 노인을 자식들 앞에서 쥐어박고 더럽다고 비난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일상의 청결상태를 순사에게 검사받는 과정은 말 그대로 모욕의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경찰의 재량권은 무제한에 가까웠기에 70대 노인이나 부녀자를 두들겨 패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폭력을 당하고도 항의 한번 못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접대하거나 뒷돈을 바쳐야했다.

    "1924년 함경남도 홍원에서는 일본인 순사부장이 추계청결을 잘못했다고 한마을 40여 가구의 호주를 모두 구타했으며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칼을 휘두른 경찰에게 내려진 처분은 고작 '면직'이었다.

    위생이 목적이라기 보다 조선인을 폭력에 순치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면서 '경찰범처벌규칙'을 공포했다.

    87개 항의 행위를 규정했는데 이중 1항의 요주의자가 생업없이 각 지방을 배회하는 자 즉 '부랑자'였다.
    87개나 되는 항목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조선인을 전지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법령위반자에게는 일본에서는 벌금이 주였으나 조선에서는 태형(매질)과 구류처분이 많았다.
    1920년 태형이 폐지될 때까지 매해 3~4만 명의 조선인이 경찰에게 매질을 당했다.

    '부랑자'라는 명목으로 특정한 범죄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풍속경찰'이라는 직분을 만들어 요리집, 매음장, 예배소, 신문과 출판물도 풍속관리대상으로 관리했다.
    특별한 곳도 아니었다.
    연극장에 모인 관중조차도 수시로 단속의 대상이 되고 체포되었다.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다녔다.
    레닌 추도식을 조직한 진보조직의 청년들도 부랑자로 지목되어 처벌되었다.
    모든 조선인이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런 범죄요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해진 풍속경찰에 의한 단속은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잠재적 불안요소가 될 인물들을 부랑자로 호명하며 처벌하는 것은 적지 않은 효과를 가져왔다.

    "우선 부랑자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해야 하는 이유로 내세워 선전했던 조선 민족의 야만성과 열등성을 방증하는 상징적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구악과 오랜 적폐인 상류층 부랑자를 단속하고 징치하는 총독부는 풍속교화와 민족성제도라는 문명화 사명을 실행하는 것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자신들의 행위를 문명의 세례로 선전하며 폭력을 통해 조선인을 완벽히 순종시키는 것이 일본의 진짜 의도였던 것이다.

    모욕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인들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교육열이 조선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조선인들은 근대가 가져온 교육시스템에서 승리해서 자신들이 모욕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또한 모욕의 가해자는 일본이었고 그들은 근대적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었기에 조선인은 물질적 성공을 미친 듯이 추구하기 시작했다.

    신분제가 급속히 이완되는 틈을 타 물질적 성취를 통한 신분 상승을 꾀했다.
    교육열, 물질숭배 이 모든 것들이 하나처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모욕감, 수치심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자기모멸감은 증폭되었고 타인과 자신을 향한 공격성으로 전변한다.

    알제리 혁명전쟁에 참가한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민의 정신을 분석했다.

    파농은 책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그린비 펴냄)에서 식민지민의 피부 아래에는 히스테리 증상인 공격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알제리 흑인에게 나타나는 귀신들림과 춤에 대한 열광은 파농에 따르면 공격성의 정신질환적 표출이었다.

    "장기간 모욕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중략) 수치감을 극복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남과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자기확신에 집착하기도 한다."

    수치감이 촉발한 장기간의 무력감은 공격성을 강화시킨다.

    "장기간 무력감을 경험한 사람은 공격적으로 될 여지가 큰데 이는 자신을 무력상태에 밀어넣은 트라우마를 정복하기 위해,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애적 분노에 사로잡혀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공격성과 순응성은 장기간의 모욕과 수치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612543317662&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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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
    tradbred (@tradbred)
    2024-08-11 15:34
    (2)
    "대통령 부부가 둘 다 너무 이상해요"

    [박세열 칼럼] 이상함을 넘어 '기이함'으로 진화하는 尹부부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24.08.10


    표층과 심층의 문제다.
    표층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과 무관하다.
    고로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장면을 브리핑에서 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심층에서 많은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대통령이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는 건 곤욕이다.

    대통령이 즐겨 입는 해군 마크 티셔츠는 평시엔 '미담거리'지만, '채상병 사건'의 불편한 맥락이 개입된 현재엔 누군가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해병대만 빼고 해군 인사들만 격려할 순 없다.
    딜레마다.

    애초에 대통령이 '격노'를 부인하지 않고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면,
    PI가 꼬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불쾌한 상황이 계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공식적으로 윤 대통령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군과 관련된 대통령의 PI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딜레마다.

    채상병 사건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따위도 없다. 대통령의 PI를 담당하는 참모들이 "그래도 해병대원들은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할 수도 없다.
    참모들도 극한 직업이다.

    대통령과 '세트'로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영부인의 PI는 더욱 심각한 상태다.

    디올백을 받는 장면을 전국민이 지켜본 상황에서, 영부인은 '바이바이 플래스틱백'이라 적힌 에코백을 계속 메고 다녀야만 하는 운명에 빠졌다.
    에코백을 맨 장면이 노출될 수록 사람들은 '디올백'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심성에 사로잡히겠지만, '디올백'을 받은 행위가 문제 없다는 '논리적 일관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영부인은 공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어떤 '빽'이든 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에코백'을 들지 않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궁금해 할 것이다.
    이렇게 영부인은 영원히 '가방'을 들어야 하는 운명에 빠지게 되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점점 불쾌감이 커지는 운명에 빠져드는 것이다.

    요컨대 군 통수권자가 해병대를 만나는 게 어색하다고 해도, 영부인이 평범한 가방을 든 게 어색하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그걸 안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수록 대통령과 영부인의 PI는 더 '망하는' 악순환의 길로 간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대통령이 해병대를 격려하는 모습을 매번 봐야 하고, 영부인이 에코백을 메는 모습을 매번 봐야만 한다.
    이를테면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하지 않고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대중의 '기괴한 심성'도 아마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며 갈 것이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일부러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는 '악인'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부부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그 이상함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간혹 '언캐니(uncanny, 섬뜩함)'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익숙한 지식과 상식에 의한 인식의 국경을 넘어서 갑자기 낯선 영역에 도달할 때, 우린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이런 건 PI로 해결할 수 없다.

    진실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영원히 '해병대'와 '명품백'의 잔상에 갇혀 지내야 한다.
    마치 윤석열 부부가 있는 채팅방에 강제 초청됐는데, 아무도 모르게 2년 째 관전하다보니, 눈치가 보여 막상 채팅방을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묘한 기분이다.
    다행히 카카오톡엔 '조용히 나가기' 버튼이 있지만, 현실에는 그런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80907412119536&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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